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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심리유형을 16가지로 나누어 설명하는, MBTI라는 일반화된 검사도구가 있습니다. 요즘엔 학교에서도 많이 사용하고, 보통 직장에서 교육을 통해 분석을 많이 하곤 합니다. 2가지 태도 유형으로 외향성과 내향성을 나누는데, 이건 정신적 에너지가 외부로 향햐는지, 내부로 향하는지에 따라 구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판단(judging)을 내릴 때 사고(thinking)와 감정(feeling) 중 어느 것을 주로 사용하는지와 인식(perceiving)할 때 감각(sensing)과 직관(intuition) 중 어느 것을 주로 사용하는지에 따라 각각 2가지로 나뉘게 됩니다. 실생활에 대처하는 방식에 있어 판단과 인식 중 어느 쪽을 주로 선호하는지에 관한 경향성을 나타내는 지표까지 포함해서 모두 16가지의 유형으로 사람의 심리를 나누게 됩니다. 이 MBTI 검사가 바로 융의 심리 유형론을 근거로 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융이 우리 생활에 얼마나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프로이트가 인간의 행위를 리비도(성충동, 성본능)라는 개념으로 설명을 하며 자아, 이드, 초자아를 동원해 인간의 심리를 분석했다면, 그에게서 영향을 받은 융은 리비도 역시 인간심리를 분석하는 하나의 틀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을 합니다. 흔히 열등감으로 해석이 되기도 하는 콤플렉스(Complex)라는 개념은, 말 그대로 복합적인 요소를 나타내는 용어입니다. 인간의 심리를 바라보는 것, 인간이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 역시 하나가 아니라 다양하게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에 따라서 다양하게 세상을 해석하고, 주어진 환경에 반응을 보이는 것일 뿐 절대적인 옳고 그름의 척도를 가지고 판별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경험을 나누고 길을 찾는 사람이라는 융의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절대자가 아닌 이상 그 누구도 다른 이의 것을 두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거나 옳음을 강요할 수는 없는 법이니 말입니다. 사람들이 거미줄처럼 촘촘히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듯, 정신의 세계 역시도 그런 촘촘함이 얽히고 섫혀 있는 세상을 상상해 봅니다.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일 뿐, 어떤 것도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 없는 법입니다.
P40. 융은 생각했다. 삶의 어느 것에서도 누군가가 누군가를 대신해 줄 수 없다. 어떤 선의건 그렇게 대신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상대의 삶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보호해 준다는 명목으로, 배려해 준다는 명목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는 상대방이 겪어야만 하는 중요한 경험들을 박탈한다.... 융은 환자와 함께 병이라는 수수께끼를 풀고자 했다.
P48. 융에게 리비도는 인간이건 그 외의 동물이건 이 자연이라는 생명을 살아가게 하는 에너지다. 생명이 가진 어떤 욕망이든 관계로부터 시작되고, 관계로부터 나온다. 성욕도, 식욕도 다른 생명과의 관계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리비도라는 삶의 에너지는 다양한 관계들을 형성하는 에너지고, 성적 관계는 그 중 하나다... 이처럼 생명에게는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맺을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 리비도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융은 생명이 가진 이런 삶의 욕망의 성격을 '창조성'이라 부른다.
P62. Complex의 사전적 의미가 '복합체, 집합체'를 나타내듯, 이 말은 마음속에 군집을 이룬 어떤 현상을 표현하는 용어다. 살아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 삶이 움직이는 바탕. 이것이 콤플렉스다.
p.68 의식이 저항한다고 콤플렉스가 병적 상태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정신 특유의 생명 현상이다.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자연스런 경험들 속에서 감정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미지들이 생성되고 모여들게 마련이다. 콤플렉스는 감정의 매듭이라고 할 수 있다. 매듭들이 하나도 없는 것은 오히려 병적 상태다. 이런 상태가 다름 아닌 우울증이다. 매듭이 없어서 무엇을 경험해도 ㅇ무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 반면에 하나의 매듭이 지나치게 뚱뚱한 경우를 트라우마라고 한다. 어떤 경험의 이미지들도 오직 그 매듭 주위로만 모이게 되는 상태.
p.75 다중성은 마음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이 세상이 하나의 언어와 하나의 문법을 사용하지 않듯이, 모두가 같은 것에 웃고 울고 하지 않듯이,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오히려 우리는 살아가면서 더 많은 다른 나'들'을 발굴해야 하고, 그 나'들'을 통해 매번 새로운 별자리를 만들며 살아가야 한다. 나는 복수(단수가 아닌)다.
p.77 자아가 목표로 하는 것은 이미지들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분류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미지가 가진 미묘한 색조 차이보다는 명확한 윤곽선에 신경쓴다. 한마디로 이미지를 엣지있게 만든다. 이미지들에 이런 작업을 하는 이유는 작은 차이들에 주목하다 보면 분류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p.78 의식은 자아가 하는 가공작업의 구체적인 기술들이다. 우리는 이 작업들을 의식할 수 있지만, 의식이 사용하는 기술 그 자체를 의식할 수는 없다. 그래서 자아를 무의식 속에 자리한 콤플렉스라고 하는 것이다. 의식의 기술에는 규정성, 정향성, 일방성이 있다. 규정성이란 개념을 만들고 분류하는 일이고, 정향성은 기존의 분류표를 지침으로 삼는 것이다. 일방성은 의식이 가진 약간의 오류 같은 것인데, 자신이 가진 분류표를 고수하려는 성격이다. 그래서 자아는 이러저러하게 세상을 분류하고 질서짓는 것을 좋아하고, 이 질서를 깨뜨리는 것을 불편하게 여긴다.
p.83 모성성이 가진 관계형성의 힘을 '에로스'라 부른다. 모성콤플렉스를 만드는 에로스는 강력한 결합력을 상징한다. 에로스가 삶에서 드러나는 예로 사랑과 권력관계가 있다.... 에로스와 반대되는 힘은 '로고스'다. 로고스는 일종의 척력으로, 분별하고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 에로스의 결합 경향을 저지하면서 모성콤플렉스가 상대를 집어삼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로고스다.
p.84 에로스와 로고스는 서로 강도를 달리하며 삶의 리듬을 형성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어느 한쪽만이 강하게 작동하는 때다. p.85 세계는 모든 사람에게 무한한 기회를 준다. 인간에게서 그의 가능성을 박탈하는 것은 세계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에 대한 그의 무능력이다. 그의 리비도를 사물과 인간에게 향하도록 하고, 그것을 자신을 위해 활기차고 아름답게 만드는 법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이 세상은 공허하다 - 칼 융 <사랑에 대하여>
p.109 의식의 입장에서 콤플렉스는 비합리적이지만, 그 비합리적인 힘은 종종 의식을 압도한다. 그 어떤 사상도, 신념도, 강한 콤플렉스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자신의 사상과 신념을 꺽고 싶지 않다면, 방법은 하나다. 그 사상이나 신념과 몸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즉, 그것들이 콤플렉스의 작동과 일치하면 된다. 이렇게 되려면, 자신의 콤플렉스를 바라보고,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콤플렉스를 방치하는 경우 의식의 무능력은 더욱 심해진다. 그래서 의식에 초점을 맞추고 사는 사람들일수록 콤플렉스에 휘둘리는 경우가 많다.... 조지 오웰의 <1984>는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던지는 글이다. 여깃 오웰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고문 앞에 신념을 저버리는 윈스턴의 모습이 아니다. 쥐는 몸에 각인된 감정을, 101호실은 우리의 머리가 그 몸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상징한다.
p.130 모순이 대립이고, 그래서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의식의 논리다. 의식은 이거면 이거고 저거면 저거지, 이것이면서 저것이라는 식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의식은 세상을 똑 부러지게 규정하고, 질서지워 나열한다.
p.148 융은 프로이트의 이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지 그것은 어떤 부분에만 맞는 것이었다. 특히나 프로이트의 이론은 젊은이들, 앞으로 나가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의 삶에 적절했다. 혹은 그런 식으로 삶을 사는 유아적 어른들에게 어울리는 이론이었다. 왜냐하면 프로이트의 억압에 의한 무의식은 가족중심주의에 빠진 개인들의 무능력에 의해 생겨났기 때문이다. 프로이트 이론의 인기는 안락한 가정 안에 머물려는 개인들의 탄생과 관련된다. 프로이트는 그 사람들이 집에 머물 수 있도록 어떻게든 근친상간 욕망과 거세불안을 잘 억압해서 올라오지 않도록 하는 식으로 치료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방편이엇다. 융은 이런 재발을 막을 근본적 치료는 하나라고 말한다. "집 밖을 나서서 자연과 대면하라. 그리고 자신 안에 자연의 시공간이 있음을 알아라. 그 미래의 것을 지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라" 라는 것뿐이라고.
p.159 무언가에 너무나도 화가 난다면, 그것은 상대의 문제가 아니다. 그 분노는 내 안에 있으나 내가 보려 하지 않는 것, 그래서 잘 관계맺지 못한 내 안의 타자가 있다는 증거일 뿐이다. 화가 나는가. 그렇다면 그것을 내 안의 타자를 발견하고 관계맺는 기회로 삼아라!
p.165 사회생활에서 자아는 상황에 맞게 가면을 바꿔 쓰며 그 사회가 기대하는 바의 행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사회생활에서 물러나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때면 이 가면을 벗게 된다. 그래서 다양한 가면을 적절히 사용하고 벗기도 하는 변장의 기술이 있는 한 페르소나 자체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가면을 자아가 자기 모습이라고 여기면 정작 자신의 삶은 사라진다.. 가면과의 동일시에 설상가상으로 가면이 하나만 있는 상태가 파시즘이다.
p.170 아니마/아니무스는 페르소나의 대극이다. 자신의 가면이 남성인 사람은 내적으로는 여성인 아니마를 가지고 있다. 반대로 여성의 가면을 쓴 사람의 내면은 아니무스다. 사회적으로 화려하고 큰 가면을 쓴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을 잘 알지 못하면 아니마/아니무스의 힘은 강해진다... 아니마는 에로스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이에 빠질 경우 모든 형체가 뭉그러져 버린 상태에 있다. '뭔지 모르겠지만 그냥 느낌이 그래', '왠지 기분에 그게 맞는 거 같아' 등의 반응이 여기에 속한다. 이처럼 아니마는 '기분'이라는 형태로 드러난다... 로고스적 성격을 지닌 아니무스는 의견의 형태로 드러난다. 아니무스는 '오직'이란 모습으로, 절대로 예외를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든지 '반드시 이렇게 해야만 한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p.186 정신병은 의식이 완저니 무너지면서 무의식 속 온갖 원형들이 올라와 버린 상태다. 의식은 자신의 공간을 무의식에게 완전히 넘겨 준 채, 무의식의 원형들이 움직이는 대로 움직인다. 그래서 정신병 환자들은 토끼도 되었다가 슈퍼맨도 되고, 공주도 되었다가 나무도 되는 등 온갖 원형들을 가로지른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될 수 없는 게 있는데,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이에 비해 신경증은 자신을 방문한 낯선 원형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고집 센 자아에 의해 발생한다. 자아는 무의식을 못 본 체한다. 융에 따른면, 이것이 억압이다. 이 억압에 의해 정체상태가 오래되면, 무의식은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게 된다. 정체상태에 빠진 에너지를 어떻게든 다른 방향으로 흘려보내기 위한 임시방편적 우회로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 이 우회로가 신체적 질병으로 나타나면 히스테리이고, 반복적 행위로 나타나면 강박 신경증이다.
p.192 만약 그 때 그 사건을 일으킨 자아의 그 태도, 당시 자아가 세계와 관계맺는 태도가 바뀌었다면 무의식은 의식을 보상하려 찾아오지 않는다. 지금 무의식이 밀고 올라왔다는 것, 그로 인해 지금 병이 발생했다는 것이 말해 주는 것은 하나다. 그 때의 나나 지금의 나나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는 것.
p.197 의사는 문제를 쉽게 해결할 좋은 방책을 알고 있을 수 있다. 그 길을 따라가면 환자는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환자의 길이 아니다. 이미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가서는 스스로 문제를 헤쳐 나갈 힘을 키울 수 없다. 융이 진료실을 들어갈 때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다짐을 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p.204 하늘의 수많은 별들, 그리고 하나의 성좌. 하나의 성좌가 자아라면, 그밖의 무수한 별들은 원형들이다. 합일이란 나의 별들과 너의 별들을 연결하는 작업이다. 그렇게 나의 별들은 나의 별들인 채, 너의 별들은 너의 별들인 채로, 그러나 이전에 각자가 연결하던 선은 풀어 헤쳐지고 그 모든 별들이 이어져 새로운 형상이 만들어진다. 별들은 이전과 같은 자리에 있지만, 이 형상 속에서 새로운 위치를 가지게 된다. 이제 예전 자아의 별자리에 붙었던 이름은 사라지고, 새로운 성좌가 하늘에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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