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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위하여
이 책은
이 책 『엄마를 위하여』는 소설이다. 프랑스 작가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의 구도 소설.
에릭 엠마누엘(Eric-Emmanuel Schmitt)은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강단에 서다가 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 책의 내용은
일단 이 책은 에릭 엠마누엘이 추구하고 있는 영계 사이클 시리즈 8번째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가 시리즈로 쓰고 있다는 영계 사이클 시리즈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 중의 한권 『바그다드의 오디세우스』가 배송중이다.)
‘영계 시리즈’란 그가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종교를 주제로 하여 ‘드러난 혹은 감춰진 종교들’과 ‘동양의 지혜들’을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오스카와 장미 할머니』, 『바그다드의 오디세우스』 『이브라힘 할아버지와 코란에 핀 꽃』, 『밀라레파』, 『노아의 아이』
『오스카와 장미 할머니』가 그 첫 번째 소설이다. 『바그다드의 오디세우스』는 바그다드 출신의 청년 사드가 탈출의 길을 떠나 카이로, 몰타, 시칠리아, 나폴리를 거쳐 영국의 런던에 정착하기까지의 모험담이다. 『이브라힘 할아버지와 코란에 핀 꽃』은 이슬람의 한 종파인 수피즘을 다루고 있다. 『밀라레파』는 티베트 불교를 주제로 하고 있는 책.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마음 속 깊이 도사린 불안을 잠재워 주는 불교의 진리를 읽는 이들에게 보여주려 하고 있다.
이 책 『엄마를 위하여』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유교의 뒤를 이어서 정령숭배를 주제로 한 소설이다.
등장인물
파투 은디아예 : 펠릭스의 엄마, 세네갈 출신, 카페 ‘일하는 중!’을 운영하고 있다. 펠릭스 : 12살, 파투의 아들. 펠리시앵 생테스프리 : 펠릭스의 아버지 방바 : 펠릭스의 삼촌 카페 손님들 : 시몬 부인 외. 파파 룸 : 세네갈의 주술사
줄거리 :
프랑스의 벨빌(Belleville - 아름다운 동네)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파투는 세네갈 출신, 유쾌하고 밝고 따뜻한 성격을 지닌 여인으로, 카페를 경영하고 있다.
먼저 여기서 그녀의 출신지가 아프리카 세네갈이고, 성격이 유쾌하고 유머러스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읽어야 한다. 그래야 후반부에서 그녀의 변한 모습과 그것을 치유하기 위하여 아프리카 세네갈로 떠나는 것이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작명의 귀재이기도 하다. 그녀가 운영한 카페 이름이 재밌다. ‘일하는 중’. 그 가게를 찾은 손님들은 그래서 어디냐고 소재를 묻는 전화가 오면 이렇게 답한다. 지금 “일하는 중”이야. “아, 나 지금 ‘일하는 중’이야!” 는 한줌의 거짓도 들어있지 않은 답변이다.
그렇게 두루 재밌게 지내던 어느 날, 카페가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상황이 변한다. 엄마는 완전한 무기력 상태가 되어 이상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한다. 어머니를 어떻게 고칠까, 염려하는 아들 펠릭스에게 아버지가 찾아온다, 그리고...
그리고 치유 여행
아버지와 아들은 엄마를 데리고 치유 여행을 떠나게 된다. 엄마의 고향인 세네갈로.
그래서 책 제목이 『엄마를 위하여』 인 것이다. 거기에서 주술사 파파 룸을 만나고, 엄마의 살아왔던 모습도 듣게 된다.
엄마를 살렸던 나무, 그리고 과거
엄마는 어렸을 적에 바오밥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거기 생긴 자연동굴 속으로 들어가 책을 읽곤 했었다.(170쪽) 그녀가 읽었던 책은? 아가사 크리스티, 가스롱 르루, 모리스 르블랑, 쥘 베른, 앙리 트루야, 알렉상드르 뒤마.
그런데 이 바오밥 나무가 엄마에게 아주 중요한 나무가 된다. 마을이 습격을 받았을 때에, 그래서 부모가 다 살해되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엄마는 그 나무에 올라 책을 읽고 있었던 덕분에 살아남게 된다.
그것이 엄마의 의식 한 편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서 주술사 파파 룸은 이렇게 진단한다. 엄마와 대화.
“넌 남자에게 속박되길 거부하고 있어. 왜 그러는 거지?” “내 자유를 위해서요”. “자유는 목표가 아니야, 수단이지. 참된 자신이 되기 위한 수단 말이다. 넌 왜 약속의 관계에 들어가길 원치 않는 거냐?” “난……” “예전의 넌 그 독립심 덕분에 살육에서 빠져나왔지. 네가 책을 읽으려고 바오밥나무 안에 들어가 숨지 않았다면, 내 가족과 함께 너도 죽었을 거다. 그래서 넌 혼자 있으려고 하는 거야. 아무하고도 진정으로 연결되지 않고 그저 모든 것, 모든 사람을 지배하고만 있으면 모든 위험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단 말이지.” (176쪽)
그러면서, 엄마는 엄마의 조상들과 다시 연결이 된다.
주술사 파파 룸은 뼛가루를 뿌리는 엄마를 보면서, 아들 펠릭스에게 말한다.
가족들이 이젠 죽은 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네 엄마가 받아들이는 것이 이 의식의 본질이지. 그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게 중요하고, 그들이 가야할 길로 가도록 네 엄마가 그들을 보내는 게 중요하단다. (179쪽)
다시. 이 책은
결국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세네갈 행은 완전한 행복을 다시 찾게 해 주었다. 엄마의 모습이 다시 예전처럼 되었고, 카페 ‘일하는 중’은 여전히 일하는 중이다. 그럼 세네갈 행은? 이 책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물고기들도 운다. 다만 그 눈물을 우리가 보지 못할 뿐이다. (167쪽)
모든 사물은 내가 그것에 고유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한, 아무 속성도 갖지 않는다.(179쪽)
“아프리카는 대지에 대한 상상력이란다. 반면에 유럽은 대지에 대한 이성이지. 넌 어떤 것의 본질을 다른 것 안에 들여올 때, 그때만 비로소 행복을 알게 될 거다.”(198쪽)
세상은 자기를 응시하는 자에게 자신의 속을 보여주는 법이다. (196쪽)
엄마를 위하여 애쓴 12살 짜리 펠릭스도 그런 깨달음을 얻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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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보니 내 눈속에 눈물이 이렇게나 많은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수도꼭지처럼 드라마를 보다가 울고, 책을 보다가 울고,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울고, 아이들을 재우고 나와서 혼자 거실에 앉아서 운다. 출산 후유증인지, 우울증인지. 출산후 뒤죽박죽이 된 나의 호르몬 문제인지 했다. 그냥 내 감정을 돌볼 시간이 없었던거 같다. “엄마를 위하여”속 엄마는 아이를 홀로키우며 카페를 운영하는데, 그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반가운 엄마였다. 고마운 단골들도 많고 모두들 우리 카페를 좋아했다. 어느날 카페를 팔고 다른 넓은 곳으로 이사를 하려고 부동산에 알아보는 중에 카페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엄마는 아무 잘못도 없이 카페에 붙어있던 빚을 알게 된다. 그 후로 엄마는 점점 산송장이 되어갔다. 1부가 엄마가 어떻게 깊은 우울감에 빠졌는지에 대해 나온다면 2부는 그 우울감을 어떻게 빠져나오게 되는 지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자랄때까지 존재를 모르던 아빠를 알게되고 아빠와 함께 엄마와 여행을 떠나게 된 2부. 책 속의 펠릭스는 요즘 내가 빠져있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필구같다. 말을 배우기시작했을때부터 엄마를 지켜준다고 한 필구. 어떻게 엄마가 결혼을 하는지 이해할 수없다는 필구. 집의 비밀번호가 바뀌어있었을때 지구가 멸망해버리는지 알았다는 필구. 책을 보면서 내내 필구생각이 났다. 나도 어쩌면 우리 첫째아들 마토에게 방치의 시간을 전해준 적이 없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펠릭스 마토는 벌써 이렇게 컸는데 나 역시 파투처럼 눈속을 텅비어버린채로 하루하루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사랑스러운 아이 펠릭스의 엄마를 향한 사랑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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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우울증에 빠진 엄마를 위하여 먼 여행을 함께 떠나는 어린 소년의 이야기, 잿빛인 세계를 다시 매혹적인 곳으로 만들어주는 치유의 소설] 이 책 뒤에 있는 책 설명 문구이다. 일단 엄마가 우울증인데 여행을 통해 다시 치유를 하는 내용이라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했고, 어떻게 치유를 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우울증에 빠진 엄마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에게 엄마는 천하무적과도 같은 존재이다. 엄마는 항상 내 곁이 같은 모습으로 있을 것만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그런 엄마도 아프고, 늙는다. 우울증이 어떤 건지 잘 아는 나에게도 우울증에 빠진 엄마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저자가 그린 우울증에 빠진 엄마의 모습은 주인공이 슬퍼할 만 하다. p.019 이처럼 친절한 요정 같은 엄마는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라고 생각할 만큼 진짜 엄마와 죽은 엄마 사이의 간격은 매우 크다. 멀리서 온 삼촌은 엄마의 모습을 보고 나서 죽었다고 표현한다. p.036 엄마가 먼저 날 버리고 떠나서 내가 울게 되리라곤 단 1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내 곁에 있으면서도 나를 떠날 줄이야..... 엄마를 우울증에 빠지게 된 결정적인 사건을 설명한다. 촉발요인인데, 난 우울증이 생물학적인 영향이 크다고 믿기 때문에 삶을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서 촉발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즉 방아쇠를 당기는 어떠한 크고 작은 요인들이 있다. p.053 그런데 그날 오후 엄마가 불행 앞에서 보여줬던 표현은 사실 건강한, 매우 건강한 것이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우울증에 걸리면 일단 기분이 없어진다. 그리고 말도 없어지고 기력도 없어진다. 좋은 일에 좋아할 수 없고, 부당한 일에 화를 낼 수도 없고, 그냥 계속 슬픈 상태가 지속된다. 이 책에서는 엄마를 우울증에 빠져나오게 하기 위해 일반적인 치료를 선택하지 않는다. 정신과에 가서 약을 타긴 하지만 결국 이 저자가 원하는 건 영계, 영성, 샤머니즘 같은 것이다. 물론 삼촌이 제시한 두 박사의 만남은 완전히 속은 거지만 말이다. 어쨌든 주인공의 아빠가 나타나면서부터 이 책은 반전을 맞는다. 결국 이 저자가 말하려고 한 건 뭘까? 가족의 완전한 합체? 아니면 자신의 뿌리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의 중요성? 아니면 이웃의 참된 의미? 어쨌든 저자의 영계 시리즈의 하나라고 하는 이 [엄마를 위하여]는 엄마가 자신의 뿌리를 찾고, 그 과정을 가족이 함께 해주고, 이웃이 뒷받쳐 주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요즘 난 해피엔딩이 좋다. 뭐든 좋게 끝나면 뭔지 모르게 개운하다. 이 책도 그랬다. 심각하게 엄마가 불쌍하게 묘사되지도 않았고, 엄마의 회복의 과정이 지나치게 병원이나 약에 의존하지 않았고(물론 영적인 무언가에 대한 부분은 소설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논란은 불가하다) 우울증에 빠진 엄마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제 기능을 하면서 치유가 되는 과정에서 엄마 뿐 만 아니라 그 모든 사람들이 치유가 된다. 읽어보면 알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중요함을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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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책의 제목은 <엄마를 위하여> 입니다.
깊은 우울증에 빠진 엄마를 위하여 먼 여행을 함께 떠나는 어린소년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12살 소년 펠릭스예요. 프랑스 파리에서 까페 <일하는 중>을 운영하는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었어요.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성실하게 삶을 일구어 가던 엄마였는데.. 활기차고, 눈빛이 초롱초롱하고, 호기심이 많고, 늘 기쁨에 넘치고 외향적이었던 엄마였는데..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요정같던 엄마는.. 슬프고 억울한 삶의 무게가 버거워 이제 다른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병원에서는 이를 우울증이라고 하였고 멀리 세네갈에서 날라온 삼촌은.. 엄마를 보고 이미 죽은 좀비라고 하네요. 엄마의 영혼을 되살리기 위해 큰돈을 내고 유명한 주술사도 찾아가 보고.. 많은 애을 써보지만.. 엄마의 상태는 더욱 심각해질 뿐입니다. 이때 특단의 조치로, 12년만에 내 앞에 처음으로 나타난 아빠와 함께 엄마를 치료하기위해 엄마의 고향 세네갈로 떠나게 되지요.
그 여행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힘으로.. 세상의 근원으로 그들을 인도합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깃들어잇는 정령의 힘으로, 엄마는 그동안 단절되었던 자신의 뿌리를 되찾고, 마침내 치유를 얻게 되지요. 보이는 세계 그 너머의 보이지 않는 영혼의 세계의 힘이 엄마를 치유하는 그 과정은 정말이지 그저 신비로웠습니다. 아마 엄마를 향한 어린 소년의 사랑이 더해져 그런 기적이 일어난것이 아닐런지.. 생각해봅니다.
현실을 보이는 세계로 한정 짓지 않고 영혼의 세계, 영적인 세계에서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는 주는 책이었네요. 소박하고 유쾌한 이웃들의 이야기도 참 따듯하여 읽는 내내 미소지을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에게서 행복의 근원을 찾는 많은 분들이 공감할 이야기,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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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로 돌아가 과거를 보다…엄마를 위하여 [서평] 『엄마를 위하여』(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저, 김주경 역, 북레시피, 2019. 11.01) 주인공 소년은 엄마의 고통을 보고서 성숙한 인간이 되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소년은 아무것도 짐작하지 못했다. 삶이 마냥 즐겁게, 익살스럽게, 부드럽게 계속되는 줄로만 알았다. 『엄마를 위하여』는 어느 날 갑자기 상태가 변해버린 엄마를 바라보며 해결책을 찾으려는 소년을 통해 엄마의 비밀이 밝혀지는 내용이다.
주인공 소년의 엄마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카페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다. 만약 가게를 팔겠다고 내놓을 경우, 판매한 돈을 몽땅 국가에 내놓아야 할 판이었다. 카페와 관련해 돈을 빌린 사람은 이전 카페 소유주였는데, 국가가 이전 소유주에게 제때 돈을 요구하지 않아 엄마가 그 부담을 져야 했던 것이다. 엄마는 서류들을 흔들면서 11년 전부터 카페의 소유권을 갖고 있음을 이야기했지만 소용없었다. 만약 이전 소유주와의 관계에서 소송을 시작할 경우 많은 비용과 긴 소송 기간을 감수해야할 처지였다. 엄마는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퍼붓고, 눈물 쏟았다. 이를 보면서 주인공은 엄마가 슬퍼하지 않기를 바랐는데, 오히려 슬퍼하는 모습이 건강한 인간의 모습임을 훗날 깨닫게 된다. 엄마가 더 이상 울지 않고, 더 이상 소리치지 않고, 더 이상 세상을 향해 욕을 퍼붓지 않게 된 순간 슬펐던 장면이 오히려 그리운 과거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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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서
이 후 엄마에게는 강박증과 편집증이 생겨났다. 손님들이 의자에 앉아 있다가 잠깐씩 자리를 비우는 횟수까지 기록했고 특히 청소를 너무도 꼼꼼히 했다. 심지어는 은행에서 돈을 모두 찾아 집 곳곳에 숨겼다. 공공기관을 정직하다고 믿는 것은 위험하다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중 가까운 이웃인 촘베 씨가 갑작스레 쓰러졌는데, 그의 바로 옆에 있던 어머니는 촘베 씨의 죽음을 자신의 책임이라 여기며 큰 충격을 받더니 이후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말이 없어졌고, 반짝이던 호기심이 사라졌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에너지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몸은 어두운 밤처럼 활기를 잃었고, 각막은 흐릿해졌으며, 피부는 윤기를 잃었다. 놀란 주인공 소년은 삼촌을 불렀다. 삼촌 말에 따르면 ‘엄마는 죽었다’. 엄마를 예전으로 되살리기 위해 삼촌과 소년은 주술사를 찾아다녔지만 소용이 없었다. 딱 한 번 엄마의 눈빛이 되살아난 순간이 있었는데 한 무리의 남자가 가게를 사겠다고 들어오던 때였다. 웬일인지 엄마는 가게를 팔지 않겠다고 하면서 오히려 약 탄 커피를 그들에게 주어 정신을 잃게 만들었다.
엄마가 고소당할 위기에 처하자 삼촌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대신 10여년 이상 소식이 없던 아빠가 그들 앞에 나타나 상황을 전해 듣고는 엄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파투는 자신의 모든 뿌리와 단절했어요. 그래서 뿌리 없이 떠다녀야 했죠. 그녀는 자신의 과거, 자신의 근원을 모두 제거하고 싶어 했던 겁니다. 하지만 인간은 과거가 없으면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기 마련이죠……. 그녀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야 합니다. 다시 태어나려면, 그녀가 태어났던 바로 그 땅이어야만 해요.”(131∼132쪽)
둘은 고향인 아프리카로 건너갔고, 주인공 소년은 점차 회복되는 엄마의 입을 통해 과거를 듣게 된다. 엄마가 15살이었던 어느 날 정부 간 충돌로 가족들이 몰살당하고 홀로 살아남았는데 그때 삼촌이 엄마를 구해 파리까지 가도록 비행기를 태웠다는 것이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로 인해 엄마는 가족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아프리카 주술사로부터 의식을 받고서는 가족들이 죽은 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엄마는 대초원과 정글을 보던 그 눈으로 파리를 본다. 아프리카 주술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아프리카는 대지에 대한 상상력이란다. 반면에 유럽은 대지에 대한 이성이지. 넌 어떤 것의 본질을 다른 것 안에 들여올 때, 그때만 비로소 행복을 알게 될 거다.”(198쪽)
책 속 주인공 카페를 찾는 단골손님들은 하나같이 사회에서 잊힌 자들, 숨고 싶은 자들, 존재감 없는 자들이었다. 엄마 역시 자신을 거부한 서구 사회를 탈색하여 지워버리고자 한 인물이었다. 주인공 소년 펠릭스는 이들을 보면서 진정 보아야 할 것은 보이는 것 너머의 무엇임을 깨닫게 한다. 성장 소설이면서 동시에 희극 소설이기도 하지만 무한한 철학이 담긴 인문서와도 같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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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전공인 작가, 영계 장르의 사이클 시리즈물을 연작으로 내는 특별한 분의 책입니다. 이 분은 이미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 선불교, 유교, 음악의 세계에 대한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우리가 토템이라고 알고 있는 정령숭배에 관한 내용입니다. 저자가 쓴 책들의 내용을 망라해 보니, 우리가 종교라고 부르는 모든 것들이 다 포함된 듯합니다.
우리는 흔히 기독교, 불교, 유교, 이슬람교라는 4대 종교를 4대 종교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취급하고 있는 토템과 샤마니즘과 같은 무속신앙은 낮은 단계의 저급한 종교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토템을 하나의 종교로 인정하고, 이 책을 낸 것이니, 저자의 영계는 우리의 인식이나 지적인 한계를 뛰어 넘는 범신론적인 차원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라틴어로 ‘행복’이라는 뜻을 가진 ‘펠릭스’입니다.
이 책은 우울증에 든 엄마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우울증에 걸린 엄마는 사리분별을 못하게 되는데, 이런 엄마를 삼촌은 죽은 사람 정도로 인정해 버립니다. 쉬운 예를 들면, 생물학적인 생명은 있으나, 한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이미 상실했다는 관점입니다.
그런, 엄마에게 12년 만에 생부라고 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저자는 생부라는 사람이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불가피한 사정에 휘말려서 생부를 따라, 엄마의 우울증 치료를 위해서 주술사를 찾아 나섭니다.
처음에는 실패했으나, 그 생부는 포기하지 않고, 엄마가 어렸을 때에 자라난 곳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그 때의 기억들을 소환해 줌으로서 우울증이 치료된다는 해피엔딩의 줄거리입니다.
이와 같은 줄거리의 이야기를 읽으며, 작가의 글의 힘을 느낍니다. 토템이라는 어려운 분야의 이야기를 엄마라는 가장 친숙한 존재의 질병을 치료하는 과정, 즉 잊고 있었던 어릴 적의 잠재된 기억으로 치유시킨다는 내용이 아주 설득력을 줍니다.
이 책을 읽기 전, 정령숭배를 그렸다는 내용이라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선입견을 가졌으나,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은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야기가 얼마나 사실적인지 나도 모르게 페이지가 넘어갔습니다.
삼촌이라는 사람이, 생명의 은인임이 밝혀지면서, 엄마의 돈에 관한 오해도 풀리고, 생부의 부재가 생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회복되는 가정이 카타르시스의 쾌감을 주기도 합니다. 역량 있는 작가의 저력을 확인함은 물론, 미래가 한 없이 기대되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