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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가 녹아내릴 듯이 힘든 시간을 보낼때 너무나 그리워지는 것이 어린 시절 엄마가 차려주시던 옛날 밥상이다. 지금처럼 가게나 식당이 많지 않던 시절 엄마가 해주신 음식이 먹을거리의 전부였으니 국수, 수제비, 도너츠, 카스테라까지 뚝딱 만들어주시던 엄마의 부엌이 마술가게 처럼 신기해보였었다. 가족 몇 명이 먹는 가정식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도 갖은 식재료로 여러가지 조리법을 사용하는데 수백명을 위한 파티음식을 준비하거나 식당을 경영하는 일은 '요리는 즐거워'라는 말로는 다 설명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피와 뼈 그리고 버터》라는 책의 제목은 식당을 경영하는 쉐프이자 작가인 개브리엘 해밀턴의 피튀기는 삶을 소개하는 핵심단어들이다.
발레리나였던 어머니, 무대장치를 만들었던 아버지의 이혼으로 방치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절도와 마약에 찌들고 레즈비언으로 살던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서 식당의 뒷설거지,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요리를 배운다.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나고 현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멋진 음식을 만나고 그 부엌들을 순례하다 결국 자신의 식당 '푸룬'을 일으킨 자전적 이야기다. 부담스러운 고급 식당이 아니라 단골 손님들이 와인이나 음식을 싸 들고 와서 사는 이야기를 허물없이 나눌 수 있는 엄마의 부엌같이 푸근하고 아늑한 식당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녀의 인생은 그녀가 내놓는 음식같이 맛있고 따뜻한 것이 아니라 닭의 목을 치고, 토끼의 가죽을 벗기는 부엌 뒷 마당의 현실처럼 치열하기만 하다. 레즈비언이면서도 영주권을 받으려는 이탈리아 의사와 결혼해준 그녀의 생활은 쉐프로서, 작가로서 성취하고 싶은 욕구와 가족 공동체에 소속되어 사랑받고 싶은 여성으로서의 갈망 사이에서 찢겨나간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부엌에서 자신이 주인이다. 명절에 며느리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는 자신의 부엌이 아니라 다른 여성이 주인인 부엌에서 노동해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자신의 부엌에서는 무엇을 만들지 스스로 계획하고 주방의 모든 것이 늘 자신이 정해놓은 위치에 정렬되어 있지만 다른 사람의 부엌에서는 무엇을 만들 계획인지 물어가며 향신료는 어디에 놓여 있는지 찾아가며 갑절은 피곤해진다. 저자가 이탈리아인과 결혼해서 매해 여름휴가를 이탈리아에서 보내는 에피소드는 그녀가 이탈리아를 동경하고, 이탈리아 시어머니를 사랑하면서도 가족속에 온전히 녹아들지 못하는 그녀의 소외감을 아슬아슬하게 표현하고 있다. 남자들은 이제 식사준비를 할 수 없게 된 노쇠한 어머니를 대신해 가족의 식탁을 책임지려는 저자를 고마와하면서도 어머니의 주방을 개조하려는 것은 못마땅해 하며 그 부엌의 주인은 자신의 어머니라고 주장한다. 남편들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는 자신들의 어머니임을 공표하는 순간이다.
이 책은 세 단원으로 나뉘어 <피>에는 닭의 목을 손도끼로 내려치며 방황하던 청년기를 끝내기까지, <뼈>에는 주방의 보조와 케이터링 업체에서 일하면서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배우던 힘든 시절을, <버터>에는 그녀의 식당은 성공적이지만 결혼 생활은 파국을 향해가는 상황에 대하여 쓰고 있다. 여러 나라의 다양한 식재료와 조리법, 술과 음료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쉐프로서의 경력을 가진 그녀에게는 신나는 일이고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나는 요리 이야기보다 그녀의 인생 이야기에 더 끌린다. 영어와 속어를 사용한 언어의 유희는 우리 말로 번역되면서 그 맛을 느끼긴 어렵지만 부족한대로 영어를 병기해서 이해를 돕고 있다. 스타 쉐프이자 작가로서의 벅찬 인생, 아내에게 일체의 배려도 없는 이탈리아인 남편과 어린 두 아들 사이에서 그녀의 삶이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지 자못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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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요리(사) 이야기라기에, 솔깃했다. 나는 그런 인간이다. 먹는 문제라면 신경이 발딱 선다. 그것이 ‘살아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펼치면서, 다른 사전 정보 따윈 거의 없었다. 약간 유명한 셰프가 음식이야기를 펼친다는 정도?
그래서 어떤 먹을거리의 향연이 펼쳐지면서, 나를 사유하게 만들까. 식품에 대한 어떤 세계와 철학이 펼쳐질까. 궁금했다. 책 두께(528페이지)도 만만치 않지만(심지어 사진 한 장도 없다!), 먹을거리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그 정돈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읽을수록 아뿔싸! 내가 잘못 생각했었다. 식품이 아니었다. 요리가 아니었다. 거기엔 구체적인 개별의 인간이 있었다. 개브리엘 해밀턴. 뉴욕 이스트빌리지 프룬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 한 인간이 세계와 긴장을 이루면서 살아낸 삶이 팔팔 끓고 있었다. 앗, 뜨거 뜨거!!!
그러니까, 결론부터 말하자. 나는 이 여자, 아니 사람, 여자사람에 반했다. 책만 놓고 보면 그렇다. 직접 만나면 무서울 것 같다. 섣불리 범접하지 못할 카리스마에 나는 찍소리 못하고, 음식만 먹을 것이다. 아마도. 먼발치에서 그녀를 힐긋 바라보면서. 흠모의 마음을 품고. 저런 멋진 셰프 작가를 눈앞에서 보다니, 오오.
《피와 뼈 그리고 버터》는, 유기농, 친환경, 자연산 등의 수식어 따윈 저버리고, 그저 자신의 마당에서 막 자란 채소와 근처 농장에서 갓 잡아와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소고기를 적당히 구워 자신이 만든 소스를 버무려 만든, 개성 뚝뚝 떨어지는 개브리엘표 요리다.
글은 생생하게 팔딱거리며, 자신만의 생명을 갖고 움직인다. 스트레이트로 쭉쭉 뻗어나가는데다 한 번씩 날리는 잽은 맞으면 기분이 좋다. 내 눈앞에서 ‘쌩’으로 살아 움직이는 사람을 만난 기분이랄까. 그만큼 현장감 있고, 돌직구처럼 달려든다. 번역한 사람도 꽤나 공을 들인 것 같다. 어지간하면 이런 생각 들지 않는데, 원서로 읽고 싶어졌다. 아마 평생을 가도 다 읽진 못하겠지만.ㅋ
책은 뒤로 갈수록 흥미진진하다. 자주 웃었고, 종종 뭉클했으며, 가끔 눈물이 찔끔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든 생각은, 이 책, 식품이나 요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외로웠던 한 사람의 ‘가족 예찬사’다. 평소의 나 같으면, 부정적인 의미로 이를 다뤘겠지만, 이 책, 다르다. 어린 시절부터 복선처럼 깔린 그녀의 분투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요리에 대한 멋지고 풍성한 이야기도 있지만, 이 책을 지배하는 기조는 ‘가족’이다. 특히 가족(시월드), 그중에서도 저자가 시어머니와 함께 요리를 하고 그것을 나누는 장면, 압권이다. 그 장면만으로도 그림이 나온다.
그러니까 그녀, 어릴 때부터 어른이었다. 세상엔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돼야하는 아이들이 있다. 개브리엘이 그랬다. 부모의 이혼이 계기였고, 십대의 나이, 주급 74달러 11센트의 주급이 쥐어진 순간부터 그녀, 어른이 됐다. ‘나를 책임지는 사람은 나 말고 또 누가 있는가.’ 그녀를 지켜줄 혹은 옭아맬 신념이 아로새겨졌다. “내가 몸소 벌어서 살아간다면, 나는 내 맘대로 살 거야.”(p.71)
열세 살, 초보 요리사가 된 그녀, 공장노동이나 다름없는 케이터링 업체의 요리기계를 거치고, 작가의 길로 잠시 들어섰다가 우연찮게 오너 셰프로 레스토랑을 꾸려간다. 지지고 볶고 고달프게 버텨나가는 그 전쟁 같은 요리사 생활 가운데서도 그녀가 간절하게 원하는 것은 시종일관 가족이다. 스쳐지나갈지라도 따뜻하게 던져진 말 한마디, 남자보다 욕을 잘 하는 그녀지만 그 안에 있는 소녀를 단 한 순간이라도 보듬어줄 수 있는 손길 하나. 그녀는 꽤나 많이 터프하고 와일드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녀를 관통하는 건 소녀다. 가족을 배경으로 둔 소녀. 채워질 수 없는 소녀의 아픔이나 외로움이 그 터프함을 뚫고 나온다.
그런 그녀에게 ‘알다’는 유사 어머니이자 가족이다. 남편이라는 것을 소유하게 된 그녀가 덩달아 만나게 된 사람, 시월드에서 만난 놀라운 인물. 알다와 그녀는 다른 나라 사람이지만, 알다의 아들이자 개브리엘의 남편을 매개로 하지 않고, ‘요리’라는 언어를 매개로 맺어진다. 그것이 인상적이다. 개브리엘은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그녀의 요리는 워낙 단순하고 순식간에 끝나서 조리법을 말하고 자시고 할 건더기도 없을 정도다. 그녀에게서 조리법을 알아내는 것은 교육적이라기보다 시적인 경험이다.”(p.302) 레즈비언이었으나 어쩌다 이탈리아 출신 의사이자 박사 남편을 소유하게 된 그녀.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은 결혼생활이지만,(책 곳곳에 그녀는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녀는 진정 ‘멘탈갑’이다. 괴롭고 힘들고 슬프고 외롭고 지치지만, 그녀는 그것을 이야기함으로써 견뎌낸다. 부모와의 불화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오해를 털어내는 장면, 오빠의 죽음, 남편과의 심난한 결혼생활. 요리 덕분에 견딘 것도 같지만, 일찍 어른이 된 그녀의 멘탈은 충분히 단련이 된 듯하다. 죽음(자살) 대신 또 다른 죽음이라며 ‘실종’을 선택하고 여행을 떠난 나이가 열아홉이었다. 그 이후로도 그녀는 세계와 긴장을 놓지 않으면서 삶이라는 치명적인 질병을 견뎌냈다. 개브리엘의 이야기를 통해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이자크 디네센의 말을 자연스레 떠올린 이유다.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7월의 이탈리아 휴가길, 이젠 더 이상 시월드와 관계를 맺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예감 앞에 그녀는 시월드 별장의 가지를 치고 바다를 바라본다. 시어머니 알다와 함께. 그 장면, 시적이다. 이후 그녀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으나, 불안하지 않다. 다만, 가족. 그토록 갈망하던 가족이라는 배후. 7월의 이탈리아 3주 여행. 그녀는 지금도 시월드를 방문하면서 알다와 요리를 하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까. 살짝 궁금하다. “올리브나무로 둘러싸인 저녁 식탁에 모여 앉아 있는 이탈리아 대가족의 그림은 정말 매력적이고 유혹적이다. 그러나 그건 내 가족이 아니고, 나는 그들의 가족이 아니다. 아무리 많이 아들을 낳아주고, 저녁을 차려주고, 낙엽을 치워주고, 정원을 가꿔주고, 비행기 요금을 대주어도 그것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p.511)
(책만 보고 단정해버렸지만) 개브리엘 같은 이 멋진 여자사람을 만난다면, 나는 그녀만을 위해 요리를 해주는 남자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미켈레(개브리엘의 남편) 같은 남자는 아니고 싶다. 슬픔 품은 이토록 매력적인 여자를 외롭게 만들다니. 끙. 개브리엘이 완벽한 식당의 본보기로 여긴다는 그리스 키클라데스 제도의 작은 섬 세리포스의 작은 식당으로 데리고 가야지.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고, 그물로 무엇을 얼마나 잡든 그것이 저녁 요리로 나오는. 오후 8시에라도 물고기가 떨어지면 그걸로 요리는 끝인 식당. 손님이 양고기를 원하면 양념만 해서 아무런 야채도 없이 달랑 양고기만 내주고, 콩과 감자를 원하면 따로 주문해야 하는. 그곳에.
대부분 사람은 그렇다. ‘일이 잘 안 풀리는 날은 많고, 조화로운 날은 좀처럼 없다. 누구나 기대에 못 미치는 일이 생기고, 누구나 상처를 받고’ 그래도, 개브리엘에게도 그렇고, 우리에겐 그렇다. 요리가 있다. 2013년 신년 첫 책 덕분에, 나는 실컷 웃고 뭉클했으며 찔끔했다. 요리도 잘하고(먹어보진 못하였으나), 글도 잘 쓰는 이 사람. 부럽다. 나는 커피라도 잘 내렸으면 좋겠다. 오직 한 사람에게만. 내 커피는, 내 요리는, 오직 당신만을 위한 것이다. 밤9시, 문을 열고 들어오시라. 당신만을 위한 만찬의 시간이다. 개브리엘, 라 브라바(La Brava). “요리는 나로 하여금 이 땅에 발붙이고 살게 하는 것이고, 내게 기쁨을 안겨주는 것이다.”(p.500)
참, 이 책 영화화된단다. 기네스 팰트로가 영화 제작도 하고, 개브리엘 역할로 출연도 하기로 했단다. 개봉하면 바로 간다. 같이 갈 사람?! 영화, 내가 보여준다. 큰별이 만나러 뉴욕에 가면, 프룬 레스토랑(Prune Restauruant), 꼭 들러야지. 주소는 54 East 1st Street, New York, NY 10003(between 1st Ave. & 2nd Ave.).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작성됐다. 그러나 그런 사실에 영향을 받지 않고, 내가 느끼는 바 그대로를 긁적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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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로 승부하라,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등의 도서가 출간된 것처럼 요즘 기업들은 이력서에서 그 사람의 스토리를 주목한다. 기업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대할때도 그 사람의 스펙보다 스토리에 끌리는 경우가 많다. 올림픽 영웅 양학선 선수의 경우도 우리가 그의 금메달에 더욱 열광하는건 그의 스토리때문일것이다. 사실 요리에 관해서는 잘 몰라서 개브리엘 해밀턴이란 요리사를 '피와 뼈 그리고 버터'란 도서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음식이란걸 생각해보면 그저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먹는 것이라 생각하기도 쉬운데, 이 책을 통해서 만드는 사람의 스토리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그녀의 음식 스펙을 잘 모른다. 사실 음식을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스펙에 관심도 없다. 그저 그녀의 스토리에 감동 받았고, 그 스토리가 담긴 음식을 먹고 싶을 뿐이다.
채널A란 채널에서 착한 식당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 식당에 소개된 주인들을 보면 저마다 음식에 담긴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고 철학이 있다. 어린 자녀가 아토피로 고생을 해서 인공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주인이 있는가 하면 천연 재료와 천연 조리법을 고집하기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고 밭농사, 논농사까지 짓는 사람도 있다. 음식 한그릇을 먹을때 주인의 정성을 그대로 먹는다고 생각하면 국물 한그릇 버릴 수 없을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좀 더 요리사가 만든 요리에 대한 감사함이 생겼다랄까? 한명의 요리사가 탄생하기위해 어떠한 과정을 거치고 그 과정이 고스란히 요리 철학과 비법으로 남는다. 어쩌면 음식 한그릇이 탄생하는데 10분, 2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 걸리는게 아니라 혹은 현재의 그 요리사만이 요리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을 만든 요리사가 살아온 인생의 스토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고, 그 역사를 이어온 유아기,청년기,성년의 요리사가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이든다. 그러니까 내가 오늘 먹은 음식이 내게 오기 위해 몇십년이 걸린거라 생각하니..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좀 불우한 환경에서 청년기를 겪는다. 하지만 그 불우한 환경 마저도 그녀의 요리 한 부분으로 남긴것을 보면 참 부럽단 생각이든다. 모든 음식의 버터에 그녀의 피와 뼈가 녹아 있듯 우리도 우리만의 스토리를 만든다면 지금의 어려움도 인생의 한부분이 되어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또한 그녀의 요리처럼 나만의 스토리가 깃든 인생 요리를 맛있게 해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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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 발레리나 출신의 프랑스인 어머니를 둔 일급 요리사 개브리엘 해밀턴..‘피와 뼈 그리고 버터’는 그의 회고록으로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갖가지 요리가 중심에 놓였던 해밀턴의 어린 시절과 프룬이라는 식당을 성공 궤도에 올려놓기까지 해밀턴이 걸은 길 등이다. 그가 운영하는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인 프룬(Prune)은 그를 부르는 어머니만의 애칭에서 유래했다. 알다시피 피와 뼈는 고기의 부산물이다. 그런데 버터는 무엇을 의미할까? 피 묻은 작업복을 걸치고 싶었다는 그의 회고는 무엇을 의미할까? 피란 일용할 양식을 마련하기 위해 쏟아부은 노력을 상징한다. 그런가 하면 잉걸불 속으로 떨어져 내리며 최면을 걸듯 율동적으로 시익, 치익거리는 소리를 내는 양고기의 피로 상징되는 어린 시절의 열망과 추억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편 해밀턴의 아버지는 뼉대The Bone로 불렸다. 아버지가 싫어한 햄본이라는 별명 대신 무대장치 작업장의 목수들 중 누군가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bone이 들어간 이 단어는 수많은 파생어를 낳으며 화제를 낳는다. 이 책에는 갖가지 고급 요리 재료들이 등장한다. 미각을 돋우는 것이기도 하고 추억 속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원유(原乳)를 통에 담을 때 맡을 수 밖에 없는 거름 냄새를 지금도 좋아한다고 해밀턴은 말한다. 이 책에는 고기와 관련된 추억 말고도 봄날 숲 속에서 제비꽃, 천남성, 고사리, 고비, 민들레를 자르거나 캐며 나누었던 시간이 배경처럼 등장한다.
해밀턴의 삶에 영향을 끼친 분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그에게 산 교본이자 스승 같은 존재였다. 동물의 정강이나 목까지 알뜰하게 먹는 방법, 칼 쓰는 방법, 무쇠 냄비 길들이는 방법, 각종 풀과 민달팽이를 먹는 방법 등을 가르친 어머니. 열세 살 무렵 부모의 이혼으로 맞게 된 방랑과 일을 찾아야 했던 어려움을 해밀턴은 리얼하게 그려낸다.(해밀턴이 일을 하게 된 곳은 식당이다.) 해밀턴은 아빠에 대한 막심한 분노를 자신들(해밀턴은 다섯 남매의 막내이다.)에게 전가한 어머니와 거리를 두게 된다. 해밀턴이 론스타 카페에서 웨이트리스 일을 하던 열일곱 살 무렵의 일이었다. 해밀턴은 미시간 대학에서 같은 학과의 학생들이 선보인 고도의 학문적 내공에 쓰라림을 느낀다. 이 일은 해밀턴으로 하여금 식당일에 정을 붙이게 했다.
해밀턴은 진짜 죽음이 아닌 기발한 방식의 죽음을 계획했다. 멀리 길을 떠나 사라져버린 뒤 가끔 엽서나 한 장 보내면서 온갖 번민을 훌훌 털어버리기로 한 것이다. 사업 구상을 위한 그 계획은 유럽 일주 배낭여행으로 구체화 한다. 이 여행을 통해 해밀턴은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운다. 1인 다역을 해야 하는 프룬 경영은 해밀턴을 이런 저런 증세에 시달리게 했다. 프룬 식당은 1년에 2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린다. 서른 개의 좌석에 89달러가 넘는 와인이 없는 동네 식당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요리는 해밀턴으로 하여금 이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게 하는 것이고 기쁨을 안겨주는 것이다. 그리고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요리는 가족과의 관계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어머니로부터 요리에 대한 많은 부분을 전수받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애증의 관계라 할 수는 없고 부침을 겪었다고 해야 할 본문에서의 가족 관계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잘 나가던 월스트리트의 외환 딜러로 한 투자 은행의 간부가 되기까지 한 해밀턴의 오빠인 토드의 죽음은 아니 요리와는 거리가 먼 외환 딜러라는 직업은 예상치 못한 인생의 복병 같게 여겨지기만 한다. 본문에는 치즈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버터의 의미는 뭘까, 란 궁금증을 갖게 하는데...치즈와 버터는 우유와 관계된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차이는 엄연하다. 그 차이는 레비스트로스가 정식화한 날 것과 구운 것의 차이만큼 근본적이지는 않다. blood, bone & butter에서 butter는 어두(語頭)를 일치시키기 위한 의도에 따라 선택된 것이 아닐까 싶다. 요리와 여행, 가족 등에 대해 사색하도록 이끄는‘피와 뼈 그리고 버터’는 소설로 치면 장편에 해당한다. 아름다운 해밀턴 planet chef라고 말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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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책에 대해 읽기 전에는 어느 정도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저자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기도 했었고 그 전에 헬스 키친의 '고든 램지'의 책도 읽었기에 선입견을 가지고 읽은 건 당연하겠지만 이토록 어긋날 줄은 몰랐다. 책 띠에 그려진 나이 들고 마른 금발의 여성은 요리사라는 직업도 있고 해서 여성적이고 아마도 가정적인 요리를 주로 하지 않을까 상상하게 만들기 충분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선입견은 책을 읽어나감에 따라 완전히 박살나고 말았다.
보통 이런류의 책에는 어릴 적 추억에 요즘같은 현대적인 식재료(깨끗하긴 하지만 인공적인) 대신 옛날 방법으로 손이 많이 가고 힘들지만 정겨운 요리들, 통째로 구운 새끼 양고기나 가공하지 않은 우유 등이 가족들(가난하지만 사이좋은)과의 추억과 함께 소개된다. 이 책 역시 앞부분은 그런 내용으로 시작되었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따뜻하게 감동받으며 먹고 싶다 어떤 맛일까 궁금해하고 있던 와중에 갑자기 부모닙의 부부싸움이!
그리고 나서 그 뒤로는 흔히 말하는 막장(?)인생이 시작된다. 그것도 13살 부터. 물건 훔치고 약하고 돈 훔치고.. 우리나라라면 부모나 형제가 나서서 말릴 텐데 역시 미국이라 그런가 그런 부분이 없다. 부모도 이혼은 했지만 분명 있고 언니도 있고 오빠들도 많은데 너는 니 인생을 살아라, 나는 내 인생을 살련다하는 식이다. 아무리 그래도 13살인데 보살펴주는 사람이 없다니. 도움이라곤 16살 때(16살이 술집에서 웨이트레스...) 직장에서 돈을 횡령했을 때 변호사 고용할 때 정도? 그리고 지은이도 약 한데에 대해서 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같다. 그런 부분에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대학 졸업하고 돈 벌려 시작했던 접시닦기에서 요리사 길로 나아가는데 이 부분도 결코 화려하지 않다. 전문 요리사 교육학교를 다니면서 고상하게 요리를 배우는 대신 몸으로 때우면서 배우는 것이다. 누군가 그녀를 스카우트했다던가 하는 신데렐라 성공 스토리도 없다. 그야말로 처절한 고생기만 있을 뿐. 그리고 그건 식당을 열었을 때도 결혼을 했을 때도 계속된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등장한 바다 풍경은 어떤 삶의 교훈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고생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 가장 단순한 진리지만 가장 잊기 쉬운 걸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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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살아가는 지금의 세상에서, 그리고 항상 다이어트를 염두에 두어야하는 상황이 되고보면 '먹는다'라는 행위는 그저 배고픔을 해소하는 기계적인 일상이 되고말 뿐이다. 먹는 행위와 배설 행위를 크게 구분지어야 할 마땅한 이유조차도 떠오르지 않는 처참한 현실인 것이다. 하지만 개브리엘 해밀턴의 [피와 뼈 그리고 버터]를 읽게 된다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먹는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행위의 결과물을 섭취하는 것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오늘 내가 먹었던 돼지 국밥에는 돼지가 살아왔던 모든 날, 돼지의 마지막을 함께 했던 푸주한, 그리고 돼지고기를 삶아 내던 요리사의 인생사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피와 뼈 그리고 버터]는 개브리엘 해밀턴이라는 요리사의 인생 회고록이다. 그녀가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아왔는지, 책을 읽는 나마저도 힘에 부칠 지경이었다. 그녀의 넘치는 에너지는 나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케터링 업체에서 30분 쪽잠을 자고 나머지 23시간을 내리 요리를 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식당의 오너가 된 이후에도 누구보다도 빨리 주방에 나와서 오븐을 가열시키고, 식당 밖 골목에 취객이 남긴 인분과 심지어 죽은 쥐까지 처리하는 억척스러움, 6개의 화로에서 뿜어내는 열기를 피부가 부풀어 오르고 눈이 충혈될 때까지 견디며 요리하는 강인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임신한 몸으로도, 아이를 낳은 후에는 수유를 하면서도 그 치열한 현장에서 요리를 한다는 것에 두 손 두 발 다 들어 버렸다. 그녀가 뉴욕에서 이름 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여성' 주방장이 된 이유는 단 하나, 남자보다 더 열심히 일한 덕분 이었다.
이처럼 요식업계에서 성공하고, 이탈리아인 의사 남편과 두 아들을 둔 가정을 꾸린 개브리엘이지만 그녀의 삶이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다. 유년시절 어머니의 맛있는 요리를 마음껏 먹고, 아버지가 기획한 화려한 파티에서 손님들을 접대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느끼던 시절도 있었지만 열 두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겪게되는 부모의 이혼과 방치는 그녀의 10대를 망쳐버렸다. 10여년이 넘는 기간동안 케이터링 업체에서 기계적으로 요리를 하다가 요리사가 아닌 다른 삶을 찾고자 대학원에 진학해 예술학을 배우지만, 결국 자신이 위안을 얻는 일은 요리임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될 뿐이었다. 대학원을 마친 후 뉴욕에서 글쓰는 일을 하면서 계약직으로 임시 쉐프를 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2년동안 방치되어 있던 식당을 인수하여 '프룬'을 개업한다. 이처럼 요리와 자신의 일에 남다른 애착을 가진 개브리엘은 남편과 결혼한 후 두 아이을 낳고도 결혼한지 7년째가 되어서야 남편과의 동거를 시작할 정도 였다. 두 자녀에게는 꼭 모유를 고집하고, 모유를 먹인 후에도 20분동안 아이를 품에서 놓지 않는 엄마이면서도 남편과의 관계는 그저 필요에 의한, 마라톤을 함께 하는 동료 정도의 감정이라는 것이 쉬이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일 년중 3주의 여름휴가를 남편의 본가인 이탈리아로 가서 보내는 것, 시어머니의 요리와 그녀의 성품에 깊이 반해서 결혼생활을 계속하는 것임을 내비치기도 한다. 이탈리아에서의 생활 - 특히 대가족이 함께하는 식사 시간은 그녀가 꿈꾸던 가족의 완전한 모습이기도 하지만 그녀는 그 속에서도 외부인으로서 고독감을 느끼고 만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들과 함께 하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 함께 요리하고, 5년이 넘게 참다가 비로소 시어머니의 찬장을 정리하고, 부엌구조를 바꾸고, 시어머니를 위해 발코니에서 바다가 보이도록 몇 일에 걸쳐 정원수의 가지치기를 해내는 것으로 말이다.
개브리엘은 [피와 뼈 그리고 버터]라는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10대 시절, 마약에 취해 있거나 물건 훔치기를 예사로 여기던 소녀가 돈을 벌기 위해 요리를 시작하게 되고, 결국은 그 요리 때문에 위안을 얻게 되고 타인과의 소통할 수 있었음을 담담하게 고백하고 있다. 그녀에게 있어 요리는 자신의 직업인 동시에, 살아가는 신념이며 가족을 이어주는 하나의 끈이기도 하다. 10대 시절 이혼한 부모님에 대한 미움으로 20년이 넘게 어머니와 연락도 하지 않은채 지냈지만 어머니에게서 배운 요리와 아버지가 열었던 파티는 그녀에게 그대로 남아 에너지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녀가 좋든 싫든 그녀에게는 부모님의 피가 흐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참혹했던 청소년기, 죽음 대신 선택한 실종이라는 이름의 여행에서 그녀는 따뜻한 끼니 하나로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다. 더 나아가 '요리' 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삶에서 목적을 찾게되니 그녀에게 있어서 요리란 그녀를 지탱해주는 뼈와 다름없지 않을까. 그리고 그녀가 만든 가족 - 남편 미켈레와 두 아들 그리고 남편의 어머니와 형제들은 (서양)요리에서 빠질 수 없는 버터와 같은 존재이다. 그녀는 남편 미켈레에게 혐오스럽다는 표현도 거리낌없이 사용하지만, 그녀의 까다로운 입맛에 딱 맞는 음식점을 찾아내는 미켈레는 다른 누구보다도 그녀를 이해하는 남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녀의 피와 뼈 그리고 버터는 마냥 아름답거나 달콤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증오에 부글부글 끓을 때도 있고, 너무나 짠 맛에 인상이 찡그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기때문에 그녀의 피와 뼈 그리고 버터들에게 그 존재만으로도 감사하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서 고백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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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감동이 있다. 여태껏 이 맛있는 글만으로 나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책은 없었다. 오감을 만족시키는 음식이 탄생되기 까지 인고의 시간을 견디는 것이 오로지 요리하는 사람뿐이랴!! 요리에 쓰이는 식자재들 또한 그 시간들을 함께 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가볍게 읽혀지면서도 깊이있고, 담백하면서도 오묘한 맛이 나는... 마치 바다에서 금방 건져올린 싱싱한 생선이 도마위에서 펄떡거리는 한 사람의 인생을 접시위에 담아 놓은 듯 하다. 이 책은 재미있다. 그리고 넘치는 생동감과 진실하고 정직한 글로, 건조해진 상상력에 간지럼을 태워 깨워준 고마운 책이기도 하다. |
![]() <겨울엔 노릇노릇한 백열등 밑에서 책읽기~^^> 책을 덮고 ‘이세상에 맛있는 음식의 수는 어머니의 수와 같다.’ 라는 글을 『식객』에서 본 기억이 났다. 그 글귀는 자연스레 우리 엄마의 음식을
떠 올리게 했다. 글을 곱씹으며 우리 엄마의 음식이 다른 모든 사람에게 맛있을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우리 엄마의 음식은 못 생겼다. 레시피 없이 반죽을 쿵덕쿵덕 치대서
만든 칼국수는 면의 굵기가 제 멋대로인데다 호박과 멸치가 아무렇게나 둥둥 떠 있어서 맛집의 사진과 비교라도 했다가는 엄마한테 미안할만큼 폄하된다. 못생긴 것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못난 아들이 한 마디라도 할 때면
"주는대로 드셔!!"라며 멋진 말을 못 박는다. 가족 셰프의 자부심이 느껴진달까? 그래서 그 못생김은 변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못생기고 맛도 없을 그 음식을 나는 30년 가까이 먹으며
자랐고 아직도 그 손맛에 군침을 흘리며 식탁에 앉는다. 최근에는 자신에게, 엄마에게 미안하게도 밖에서 먹는 음식에 식성이 맞춰져서 엄마의 음식이 밋밋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도 개브리엘 해밀턴처럼 배가 고프다는 두루뭉술한 욕구가 아니라 짭짤한, 매콤한, 걸쭉한, 차진, 기름진, 아삭한, 촉촉한 음식을 먹고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열망이 짜고, 맵고, 밍밍하고, 자극적인 식당의 맛에 길들여져 내 입맛은 혼란스러워졌다. 배를 채우려고사람이 가득찬 식당에 앉아 점심시간을 보내며 공허한 포만감을 얻고식당을 나서던 내게 『피와뼈와 그리고 버터』는 음식에 대해, 엄마에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개브리엘 해밀턴이 운영하는 프룬 식당의 음식은 개브리엘의 유년시절의
어머니와 여행에서의 배고픔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일곱식구를 먹이기 위해 억척스럽게 먹거리를
만드시는 어머니, 프랑스인으로서 음식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어머니, 자신만의 애칭으로 개브리엘을 프룬(자두)이라고 부르는 어머니는 추억으로서의 음식을 프룬에 전하고 있다. 20세 여행에서의 배고픔은 음식으로서의 포만감과 정감으로서의 맛을 배우게 했고 그 배고픔을 통해 배운 인생이
프룬의 음식에 담긴다. 식당 운영에 꼭 필요한 가게에 대한 체크와 손익에 대한 계산보다 자신이 느낀
음식의 따뜻한 정감, 구체적인 맛의 전달, 서빙을 받을 때의
만족감을 고민하는 페이지는 그녀가 무엇을 음식에 담으려고 하는 지 잘 보여준다.
"먹어보고 싶다." 사진으로전해지는 익숙치 않은 화려한 미각의 맛집이 아니라 정감어린 맛과 포만감을 줄 것 같은 프룬의 음식을 먹어 보고 싶다. 한국에서 흔히 사용하지 않는 재료로, 혀에 익숙하지 않은 조리법일 것이 분명하지만 기대가 된다. 개브리엘 해밀턴은 인류 공통의 맛이 아닌 인류 공통의 포만감과 정감을 문장을 통해, 문단을 통해 맛보고 싶어 안달이 나게 만들었다. 죽음 대신 실종을 택한 예의바른 그녀의 젊음이, 레즈비언이었지만 이성과 결혼해 두 아들을 낳은 그녀의 생활이, 시어머니와 음식을 통해 대화하는 그녀의 대화법이 고스란히 음식에 정감어린 맛으로 담겨 있을 것 같다. 파란만장했던 부엌에서 부엌으로의 인생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감미로운 맛으로 전해져 군침이 돈다.
이 책은 내가 기대했던 셰프의 음식철학이 담긴 책은 아니었다. 대신 한 셰프의 현재까지의 인생여정이 담긴 책이었다. 어린시절, 가족, 여행, 지인, 남편, 아이들, 시댁의
이야기가 모두 담긴 인생 여정이다. 인생 여정을 추억으로 담은 식당이 프룬이고 그 추억을 음식으로 만드는
사람이 개브리엘이었다. 책은 셰프라는 그녀의 직업에 의해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하게 했지만 그 보다
더 큰 삶이 담겨 있었다. 지금은 음식과 정감에 취해 엄마와 식당이라는 짧은 감상에 멈춰 소화가 더딘 것
같다. 조만간 한 여성의 인생을 통해 내 인생에 대한 깊은 감상에 다시 빠져 완전히 소화를 시켜야겠다.
(개브리엘의 글이 소설처럼, 시처럼, 일기처럼 생생하게 느껴질만큼 번역자분들의 노고가 느껴진다. 다른
에세이보다 감상과 비유가 많아 글을 읽는 맛이 있었다.)
책을
읽으며 들은 음악
나윤선-Pancake 음식에 대한 음악을 들으면서 읽으려고 선곡했는데 가벼운 음악이라 선곡 미스인듯. 나윤선-My name is carnival 피와 뼈를 상상하면 인간의
그것이 상상되는 것은 정신적인 문제가 좀 있는듯...;; 그럼에도 분위기는 좀 맞는 선곡이라고 생각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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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브리엘 해밀턴은 다섯형제의 막내로 귀여움을 받으며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하지만 13세에 부모님의 이혼으로 그녀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어진다. 사춘기가 되어 부모님께 반항을 하고 싶어도 받아줄 부모가 없어 방황하는 개브리엘을 보자 너무 슬펐다. 아무 꺼리김없이 빈집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고, 정비소에 맡겨진 자동차를 훔쳐 달리기도 하고, 마약과 술, 대마초에 찌들어 살고, 일하는 가게에서 공금횡령 비슷한것을 해서 감옥에 갈뻔 했고, 2번의 대학중태 등 어디하나 마음 둘 곳 없던 힘든 시기를 보낸 개브리엘 이 시기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어렸을 때 엄마요리에 대한 추억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혼 후 엄마와는 20년 넘게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다. 그러다 지금은 마음의 안정을 주었던 엄마요리에 처럼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성공한 세프로 지내고 있다.
이야기는 크게 어린시절 행복했던 바베큐파티 , 그 후 부모님이혼으로 힘들었던 부분, 그 다음이 식당을 운영하게 되는 과정,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 나오는데 어떤 개기로 인해 요리사가 되었는지는 나오지 않아 무언가 붕 뜬 다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개브리엘 해밀턴에 대해 모르는 나로써는 개인에 대한 이야기보다 요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 다소 실망했다. 하지만 파란만장한 개브리엘의 삶은 한편의 소설을 읽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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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저자는 형제들에 둘러싸인 어린 시절을 보내지만 어느 날 두 분의 이혼으로 형제들은 뿔뿔히 흩어지게 되고, 자신은 13살 부터 나이를 속이고 현실적인 삶의 현장에 몸으로 처절하게 고통을 느끼면서 삶을 살아간다.
당장 먹고 살고 집세를 내야했던 그녀의 어린시절의 고통은 마약과 힘든 케이터링의 일을 하면서 몸에 밴 말과 행동을 그간 중퇴했다 다시 들어간 학교에서의 학생들과 비교해 너무도 다른 자신의 생활상에 대한 충격을 받은 일, 삶의 목적도 없이 유럽 배낭을 떠나면서 겪은 일, 우연찮게 인수하게 된 식당을 계기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있는 일과 더불어서 어린 시절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고 즐겨먹길 했던 엄마가 한 요리의 아련한 향수를 벗 삼아 셰프의 길을 들어서게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남편과 아이를 출산하고 말이 안통하는 (귀가 먹어서 안들리기도 하는 시어머니)시어머니와의 사이의 교류는 훈훈한 정을 느끼게 해 주는 과정이 잔잔히 그려진다.
우리나라 방송에서도 파스타란 드라마가 있었다. 물론 그 외에도 식객이나 요리를 다룬 드라마가 간간이 나오곤 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왜 파스타였을까? 생각해보니 그 곳엔 저자의 삶과는 다르지만 요리란 공통점 속엔 저자가 생각하는 음식을 하는 과정이나 생각 자체가 아마도 드라마 남자 주인공이 생각하는 일면의 한 단면을 닮았단 생각이 들었나보다.
20여 년간의 지독한 청춘의 방황과 알바를 시작할 때 주문서를 이용해 돈을 가로챈 것이 탄로나 중절도죄로 기소되는 우여곡절을 겪은 저자의 삶의 고난을 통해서 저자는 비로소 내가 가장 잘 할 수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이르렀고, 그 결과가 셰프라는 자리를 갖게 된 점이다.
누구나 인생의 기로에 있어서 평생의 직장이라고 할 수있는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과정을 저자는 풍비박산난 가정의 해체로 인한 인생의 쓰라린 경험을 통해서 아마도 자신이 가장 원했던 따뜻한 가족과 맛있는 음식이 차려진 식탁, 그리고 그 안에서 이뤄지는 대화를 셰프라는 직업을 가짐으로서 자신이 원한대로 이뤄나간 과정이 따스하게 그려졌다.
제목이 의미하듯이 그 자신의 뼈와 피, 그리고 버터가 가미된 인생의 다양한 맛을 체험해보고 느낀 저자의 솔직한 고백서이자 요리에 입문하게 된 자신이 원하는 인생대로 이뤄나가는 과정이 그려져 있기에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 앞에선 조금은 도움을 줄 수있겠단 생각이 든다.
각 요리의 과정, 요리하는 사람들만이 통하는 대화, 각종 음식을 이용해서 완성이 되는 음식 과정이 들어있고, 솔직한 자신의 고백이 담긴 에세이기에 셰프라는 전문직을 가진 사람으로서 독자들이 느낄 수있는 감정을 같이 공유하게 하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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