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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교회를 다니는 동생의 추천으로 읽어보려고 구매했습니다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동생의 강력한 추천 덕분에 아주 기대가 되는 책 입니다 얼른 이 책을 읽고 같은 저자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벌써부터 앞서네요 성경책과 더불어 이 책을 가까이 하며 얼른 시간을 내어서 책을 열심히 완벽하게 읽어보고 추가적인 소감도 남겨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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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저 인사이트’ 시리즈 기도입니다. 에이든 토저의 다른 저술이나 설교들 내용 중에서 기도와 관련된 내용을 추려서 정리한 내용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체적인 논리가 없지 않습니다. 3개의 영역으로 구분해서 논리적 흐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 좋은 것은 토저의 글 이후에 제시된 글에 대한 정리와 탐색하는 부분, 그리고 ‘생각하고 적용하기’라는 실제 적용할 수 있는 부분까지 기록되어 있어 소그룹으로 독서모임을 하기에 좋게 만들어져있다. 전체 스물 여덟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 챕터가 길지 않아 한 챕터씩 토론하기에도 적당한 분량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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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저가 쓴 저작들 중에서 기도와 관련된 부분을 모아 편집한 책으로 총 스물 여덟 챕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전체적인 내용이 기도에만 국한되지 않고 기도와 관련되어 더 폭넓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각 챕터마다 독립적인 내용의 흐름이 있기도하고, 전후 챕터가 주제의 흐름을 이어가기도 합니다. 단순한 기도가 무엇인지, 어떻게 기도해야하는지를 알려주는 입문서라기보다 더 깊이 있는 기도를 배워가기에 적합한 도서라 여겨집니다. 토저 목사님은 '이 시대의 선지자'라는 명성에 걸맞게 약하고 아픈 부분을 꼭꼭 집어 내어 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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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습관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거룩한 영역과 세속적인 영역에서 온전히 벗어나려면 지적인 생각과 경건의 기도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평범한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일상적인 노동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예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선뜻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던 성과 속의 대립이 종종 그의 머릿속에 떠올라 마음의 평안을 방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마귀는 차 안이나 책상 앞, 또는 밭에서 나타나 그리스도인들이 하루의 더 좋은 부분을 이 세상의 일들에 쓰고, 극히 일부분의 시간만 종교적인 임무에 할애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킬 것이다. 우리가 각별히 주의하지 않으면 이것은 우리에게 혼란을 일으키고, 우리를 낙심하게 할 것이다. 우리는 오직 적극적인 믿음을 발휘함으로써만 이에 성공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행위를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그분이 그것들을 받으신다고 믿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루의 모든 시간에 행하는 모든 일들이 이에 포함된다는 입장을 확고히 고수하며 계속 주장하라. 개인적인 기도 시간에 우리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계속 하나님께 말씀드리라. 그리고 생업에 힘쓸 때에도 생각 속의 기도로 그 시간들을 보충하라. 삶의 모든 일을 제사장의 사역으로 만드는 훌륭한 기술을 연마하자. 하나님이 우리의 단순한 행위들 속에 계심을 믿고, 거기서 그분을 발견하는 법을 배우자.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오류에는 ‘장소’에 적용되는 성과 속의 대립도 있다. 신약성경을 읽고 있는 우리마저 여전히 어떤 장소에 내재된 성스러움을 믿는다는 건 놀랄 만한 일이다. 이 오류는 너무나 넓게 퍼져 있어서 그것과 싸우려는 사람은 외로움을 느낄 지경이다. 이 문제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이렇다. 400년 동안 이집트에 거주하며 어리석은 우상숭배에 둘러싸여 있던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손에 이끌려 이집트에서 나와 약속의 땅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거룩함의 개념 자체가 사라지고 없었다.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 하나님은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셨다. 그분은 자신을 구름과 불 가운데 두셨고, 나중에 성막이 지어졌을 때는 지성소 안의 불같은 현상 속에 거하셨다. 하나님은 수많은 특징들로 이스라엘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차이점을 가르쳐주셨다. 그들에게는 거룩한 날, 거룩한 그릇, 거룩한 옷들이 있었고, 여러 종류의 씻음, 제사, 제물들이 있었다. 이런 장치들을 통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라는 것을 배웠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가르쳐주신 것은 어떤 사물이나 장소의 거룩함이 아니라 바로 이것이었다. 여호와의 거룩하심은 그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교훈이었다. 그 후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는 중요한 날이 왔다. 그리고 구약성경의 교육은 끝났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실 때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 지성소의 문이 믿음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열렸다. 얼마 후 바울이 자유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는 모든 고기는 깨끗하며, 모든 날은 거룩하고, 모든 장소는 신성하며, 모든 행동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시간과 장소의 신성함, 인류의 교육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겼던 흐릿한 빛이 영적 예배의 충분한 햇빛 앞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런데 교회가 가지고 있던 이런 예배의 영성이 세월이 지나면서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리고 타락한 인간들의 마음에 있던 자연적인 율법주의가 예전에 구별했던 것들을 재도입하기 시작했다. 교회는 날과 절기와 시간들을 다시 지키게 되었다. 특정한 장소들이 특별히 거룩한 곳으로 표시되었고, 특정한 날이나 장소, 사람에 차이가 생겼다. 처음에 두 가지였던 성례는 서너 가지로 늘어나더니 로마 가톨릭이 승리하면서 일곱 가지로 정해졌다. 종교개혁가들과 청교도들, 신비주의자들은 우리를 이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려고 노력해왔다. 그런데 오늘날의 보수적인 그룹들은 그 속박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한다.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나는 그동안 찬성해온 교훈, 즉 일상생활의 성스러움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설명하려 한다. 이를 위해 그것의 명확한 의미와 대조해서 그것이 의미하지 않는 몇 가지를 지적하겠다. 우선 그것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똑같이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떤 사람의 어떤 행위는 그 중요도 면에서 다른 행위와 확연히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바울에게는 장막을 짓는 일이 로마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는 일과 같지 않았다. 그러나 둘 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고, 둘 다 참된 예배의 행위였다. 한 영혼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일은 정원을 가꾸는 일보다 분명 더 중요하다. 그러나 정원 손질도 영혼을 전도하는 것만큼 거룩한 행위가 될 수 있다. 평신도는 자신의 변변찮은 일을 목회자의 일보다 열등한 것으로 여길 필요가 없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부름 받은 사명 안에 거하게 하자. 그러면 그의 일은 사역자의 일만큼 성스러울 것이다. 어떤 사람의 일이 성스러운 것인지 세속적인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일을 하는 이유이다. 동기가 가장 중요하다. 어떤 사람이 마음으로 주 하나님을 믿으며 나아갈 때 그의 행동은 이전처럼 평범한 행동이 아닐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가 하는 모든 일이 선하고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런 사람에게는 삶 자체가 제사장의 직무가 될 것이다. 그가 결코 단순하지 않은 삶의 임무들을 수행할 때 이런 천사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 6:3).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의 중심이 되시고, 모든 행위를 그분께 내어드릴 때, 하나님은 그것을 받으신다. 우리의 이 땅에서 생업을 위해 종사하는 시간, 공부하는 시간, 개인 기도 시간 등 모두를 포함해서 말이다.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을 분리하는 성속 이원론적인 사고의 틀에 갇혀 있는 우리의 생각을 주께 모아 새롭게 변혁되어져야 한다. 지금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 되도록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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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마 26:41) 라는 말씀의 바로 전과 후에 나오는 내용은 세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의 기록이다 (마 26:31-41) 그것이 인류 역사상 다른 어떤 사건들보다 더 강한 역사적 의미가 있고 더 큰 인간의 비애를 담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류의 구속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들의 손에 배신을 당하기 직전이다(마 26:31-41) 그분은 거룩한 영혼을 내어주고, 온 인류의 축적된 부패와 도덕적인 오물을 그 영혼에 쏟아부으려 하셨다. 그리고 그것을 십자가로 가져가, 거기에서 고통 가운데 피 흘리며 돌아가실 것이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한 분이 등장하셨는데, 그분은 이 위기를 예상하고 준비하신 분이다 당연히 그분은 예수님이셨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에 알려진 가장 효과적인 준비로 이에 대비하셨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로 말이다 어떤 사람들이 그렇듯이, 우리 주님을 동정하지 말자 그분이 처음 그 위기를 보시고는 능력의 장소이자 에너지의 근원으로 가서 그 사건에 대비해 자신을 준비시키셨던 것에 대해 감사하자 그날 밤 동산에서 이 모든 짐이 하나님의 아들의 어깨에 지워졌다 그분은 해 아래 알려진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이것을 준비하셨다 바로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신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제자들은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아무것도 예상치 못한 채 그 위기에 다가갔다 그들은 한편으론 몰랐고, 한편으론 관심이 없었다 한편으론 너무 세상적이어서 관심이 없었고, 또 한편으론 졸음이 왔다 따라서 그들은 부주의하고, 기도하지 않고, 졸면서 시간의 바퀴가 굴러가는 대로 이끌려가 그토록 중요한 위기를 맞았다 이는 세상에 일어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 일어나지 않을 중대하고 엄청난 위기였다 그들이 예측하지 못한 결과, 어떤 사람은 주님을 배신했고, 어떤 사람은 주님을 부인했으며, 모두가 주님을 버리고 도망쳤다 그리스도는 그 제자들에게, 그리고 오늘날의 제자들에게 커다란 반지에 박힌 작은 다이아몬드같은 말씀을 주셨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예수님이 그날 밤 동산에서 하신 이 기도는 미리 예상하고 대비하는 기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다가오고 있는 일을 예상하고 기도하셨으며, 그에 대비하셨다 내가 당신의 양심에 새겨두기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싸움을 싸우기도 전에 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는 기도를 연습해야 한다 그것은 겟세마네 동산에 있던 제자들에게도 해당되었다 그들은 그중 한 명이 저주하며 자기는 제자가 아니라고 말했던 날 아침에 패배하지 않았다 예수님을 사랑했던 요한도 주님을 버리고 도망가고 모든 제자들이 슬그머니 떠나 어두운 밤 속으로 사라졌을 때, 그때 멸망이 찾아오지 않았다 멸망은 전날 밤 3명의 제자들이 지치고 피곤하여 구세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깨어 기도하는 대신 누워서 잠들었을 때 시작되었다 만약 그들이 깨어서 주님과 함께 기도하고 그분의 신음 소리를 듣고 피같은 땀을 흘리시는 것을 보았다면 세계의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것은 틀림없이 그들의 역사를 바꾸었을 것이다 전쟁은 싸우기 전에 패배할 뿐만 아니라 또한 싸우기 전에 이기는 것이기도 하다 20년이 지난 후 화가 나서 그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형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던 야곱을 보라 그는 그동안 형을 보지 않고 지냈다 그가 도망쳤기 때문에 에서가 그를 죽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야곱이 돌아오고 있었다 하나님은 다음날 두 형제가 얍복강 너머 평원에서 만날 거라는 사실을 알려주셨다 다음날, 그들은 평원에서 만났다 그들은 서로 부둥켜안았다 에서는 야곱을 용서했고, 야곱은 형의 분노와 살의를 물리쳤다 야곱은 언제 그 일을 했을까? 그 아침에 형을 만나기 위해 강을 건널 때였을까? 아니다! 그는 전날 밤 홀로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그 일을 해냈다 그때 그는 에서를 이길 준비를 갖추었던 것이다 에서는 부루퉁하고 근엄했으며, 야곱을 만나면 죽이겠다고 맹세한 후 진지하게 엄포를 놓았던 숲 속의 털보였다 그런 그가 어떻게 그 맹세를 취소했을까? 어떻게 그 분노에 찬 맹세를 어길 수 있었을까? 야곱이 강가에서 홀로 씨름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서 그것을 제거해주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야곱은 전날 밤 에서를 이겼다 그들이 만났을 때가 아니라 만나기 전 날 밤에 그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엘리야도 마찬가지였다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과 바알의 모든 선지자들을 이겼고 이스라엘에 승리와 회복을 가져다주었다 (왕상 18장) 그는 언제 그렇게 했는가? 갈멜산에 있던 그날이었는가? 바알의 선지자들은 하루 종일 기도하고 제단 주위를 뛰어다니며 피가 나도록 자해했다 그 후 저녁 제사를 드릴 시간에 엘리야가 걸어 올라갔다 엘리야는 걸으며 짧은 기도를 드렸다 그것은 우리가 때로 기도회에서 하듯이 20분간 기도하고 멈추는 그런 기도였을까? 길고 유창한 기도였을까? 아니다 그것은 영어로 62개 단어로 된(히브리어로는 그보다 더 적을 거라 추정한다) 솔직하고 간결한 기도였다 그 기도는 불을 내려주었는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그렇다고 한 이유는, 만일 그 기도를 드리지 않았다면 불이 붙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라고 한 이유는, 만일 엘리야가 예전부터 오랫동안 하나님을 알아오지 않았고 갈멜산에 오르기 전에 몇 년, 몇 달, 며칠 동안 하나님 앞에 서 있지 않았더라면 그 기도는 그 자체의 무게 때문에 무너졌을 것이며 그들은 엘리야를 난도질해서 죽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알이 패한 것은 갈멜산에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길르앗 산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엘리야가 길르앗에서 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털이 많고 텁수룩한 사람이 농부들의 단순하고 소박한 옷차림을 하고 내려왔다 그는 대담하게 똑바로 앞을 쳐다보았고, 궁전의 예절을 갖추지 않았다 또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는 산과 들의 냄새를 풍기며 똑바로 걸어 들어가 겁 많은 공처가인 아합 왕 앞에 서서 말했다 “저는 엘리야입니다 저는 여호와 앞에 서 있습니다 제가 여기 온 것은 앞으로 제가 말할 때까지 비가 내리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말씀드리기 위함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참으로 극적이고, 두렵고, 놀라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여호와 앞에 서 있었던 긴 세월이 있었다 엘리야는 자신이 아합의 궁전으로 보냄을 받게 될 거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오래 기도하고 기다리며 묵상함으로써 그것을 기대해왔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큰 오해 중 하나가 기도 자체가 어떠한 능력을 지녔다고 여긴다든지, 기도를 마치 주문처럼 여긴다는데 있다 기도는 가장 무력함을 인정할 때 할 수 있다 나 외에 다른 전능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의탁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토저는 기도의 본질과 능력 근원을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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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며 씨름하는 것은 언제나 좋은 것이라는 사상이 널리 퍼져 있지만,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단지 우리가 원하는 걸 얻는 것보다 더 높은 동기가 없이 극단적인 종교 활동들을 경험할 수도 있다. 기도의 영적 특성은 강도가 아니라 기원에 의해 결정된다. 기도를 평가할 때 우리는 그 기도를 누가 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즉 우리의 단호한 마음인가, 성령인가? 기도가 성령에게서 비롯된다면 그 씨름은 아름답고 놀라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의 과열된 열망의 희생자라면, 우리의 기도는 다른 행위와 마찬가지로 육적인 것일 수 있다. 구약성경에 야곱과 바알 선지자들의 두 예가 나온다. 야곱의 씨름은 실제적인 체험이었고, 처음에 그것은 야곱이 한 일이 아니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창 32:24). 분명 먼저 공격한 사람은 그 ‘사람’이었지 야곱이 아니었다. 그러나 야곱은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 32:26)라고 부르짖었다. 그 씨름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고, 그로 인한 복된 결과들은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또 다른 예는 결과가 좋지 않다. 즉 바알 선지자들도 씨름을 했다. 야곱보다 훨씬 더 맹렬히 싸웠다. 그러나 그들은 육신으로 싸웠다. 그들의 몸부림은 무지와 미신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들의 열정, 육신을 괴롭히는 기도, 결심, 그 모든 것이 잘못이었다. 그들의 열정적인 기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잘못되었다. 오직 성령만이 효과적으로 기도하실 수 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A.W. 토저 중 발췌
기도는 예배의 행위처럼 인간이라면 누구나 종교가 있건 없건간에 상관없이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난다. 그렇기에 기도만큼 가장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주제가 또 있을까 싶다. 일종의 기도를 무기화해서 신적 존재를 움직이기 위한 주문 내지는 거래를 하고자 하는 명세표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토저는 그러한 인간의 타락한 내면의 악성과 그로 인해 유발되어지는 바르지 못한 기도를 성경을 중심으로 제고해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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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특별한 은사와 혜택들을 구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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