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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근태평전 유신정권의 그늘을 낱낱이 공개한 실록
군대시절 고려대에서 운동권하다 재적당했다 복학한 수수하게 생긴 동기가 있었다.
말은 거창하다 어느날 내가 말했다 "장군이 다 전두환같지 않다 나라를 위하는 군인도 있다."
한마디하자 발끈하며 지독하게 왕따시킨다.
말도참 많고 의욕도 대단하다 그런데 고참에게 지독히도 아부한다 말한마디 못한다.
막나가는 고참도 개중엔 많다 그 고참이 없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큰소리로 이야기한다.
막상 그 고참이 나타나면 조용하다.
오상훈이란 고려대 사학과 다니다 입대한 후임이 하나있었다.
사람이 인상이 수수하다
의협심이 있고 적극적이다 어느날 고대 이공대 잔디밭에서 셋이 술을 마실기회가 있었다.
운동권동기가 김만철씨등 고려대 비리와 군사정권비리를 이야기하며 후임보고 회유한다.
내가 한마디했다. "형은 말은 많은데 한건 아무것도 없어"했더니 갑자기 조용하다.
고대근처에 자취를하고있어 가끔 놀려갔는데 어느날 후배들이 사상교육을 받으러왔나보다
어느 후배가 나더러 그런다 "공장다니세요?"
그런데 그 동기 갑자기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그후론 형이란말 빼고 야자했다.
나갈때 하는말 내가말야 군대제대할때 중대중위한테 들은 이야긴데 안기부에서 나 잘지내냐고 가끔 묻고
가더란다.
내가 그런사람이야 많이 그런사람해라...
페이지85 남시욱씨의 한국보수세력 읽어보세요
페이지79 장준하평전, 미완의 파시즘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일본천황직속 대본영에서 세운겁니다.
페이지89 디스맨,소설 태백산맥을 찾아서
페이지84 호치민평전,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 독일은 아프리카에 대해선 1달러도 배상안했습니다.
세권만 추천드린다면
황병태씨의 박정희패러다임
김재익평전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제발 이 책 좀 읽어보세요 이철 같은 사람들 사귀지마시고
페이지161 김대중과의 접전 지역감정자극 - 이거 참여정부에서 더했다 김형욱씨가 쓴 '혁명과 우상5'
에서도 자세히 나오지만 그동안 지난 세월이 얼마인가 참여정부에서 지역감정 부추기기만했지
고치려고 노력 한 번 해보았던가..
만주사변의 원인은 고대부터 아이많이 낳는것 예를들자면 흥부의 자식은 12명 빌리그레헴목사님은 19남매중 18번째 지금도 필리핀등지에선 12명 아프리카는 낳을때까지 낳자
아랍 특히 사우디에서는 국가정책으로 지정 - 진화의 종말 1만년전 지구인구1천만 지금67억 670배증가
이걸 박정희대통령은 꿰뚫어보았기에 아들딸 구별말고 둘만낳아 잘기르자.
페이지251 일본군국주의의 주입식교육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이런것만은 아닙니다.
페이지270 최규하대통령에대한글 어느 외교관이 쓴 '자네출세했네',동아일보기자가 쓴 '5.18광주'에서
최규하대통령의 모습도 비추었으면 한다.
당한 것과 흘려듣는 것과는 말도못하게 차이가 난다.
책 한권 읽었다고 김근태시와 그의 동료들이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선사할때까지 겪은 고초를 어떻게 다
알겠는가 하지만 정권을잡고 참여정부도 똑같은 방법으로 그들과 싸웠다 포용은 어디갔을까 지도자라면 포용의 덕을 베풀어야하지 않을까 참여정부엔 용장은있어도 덕장은 없었다.
페이지326 이철은 민청학련사건으로 김병곤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었다.
KTX- 그대들을 희망의 이름으로 기억하리라 페이지156 이것좀 읽어보십시오
아주 훌륭한 길을 걸으신 분이지만열린우리당 동지들의 치부에 대해선
일언반구 말이 없으시다 책을 쓴 의도는 알겠는데
자신을 먼저 반성하고 남을 비판해야 맞는것 아닐까
제목: 어느 운전사의 실수.
1914년 6월 28일 오전11시 화창한 여름날 아침이었다.
승객 두사람이 탄 자동차가 길을 잘못드는 바람에 비좁은 통로를 지나 막다른 골목을 만났다.
그런데 이날 이 자동차 운전사가 저지른 실수는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세계사의 진로를 바꿔놓았다.
이 자동차는 불행하게도 열아홉살의 세르비아계 보스니아 학생 가브릴로 프린시프앞에 멈춰섰고, 세르비
아 테러조직 '검은 손' 에 소속되어 있던 프린시스는 눈앞에 다가온 행운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작은 권총을 꺼내 방아쇠를 두 번 당겼고, 차 안에 있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프
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소피 대공비가 30분만에 숨졌다. 오스트리아는 이 암살사건을 세르비아 침공의
빌미로 삼았고 독일이 오스트리아편에 서자 세르비아의 보호를 공언하고 있던 러시아도 가만 있을 수 없
게 되었다.
단 30일만에 국가들 사이에 실타래처럼 얽힌 위협과 동맹의 연쇄 반응으로 거대한 군대가 동원되었다. 그
리고 오스트리아,러시아,독일,프랑스,영국,터키는 엉켜버렸다. 이것이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이유이
며 5년뒤 1,000만명의 목숨이 사라진 뒤에야 이 전쟁은 끝이 났다.
나폴레옹전쟁 이후 심심해하던 유럽역사에서 1914년 이전은 길고 평화로운 오후 같은 시대였음을 상기
할 필요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그 시대의 역사가들에게는 마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설
명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폭풍우가 몰아닥친 듯한 사건이었다.
전쟁에서 영국은 미국을 끌어들이고 프랑스와는 기존의 두나라의 식민지로 있던 아랍땅을 나누자는 사이
크스-피코협정을 체결하고 유대인에게는 독립국을 세워준다는 영국수상 벨푸어선언을 해 군자금을 조달하고 불리
한 전세를 만회하기 위해 아랍의 하심왕조와는 전쟁후 팔레스타인을 주는 조건으로 후세인-맥마흔서한
을 각각 체결하게 된다.
하나의 땅을 놓고 책임질 수 없는 세가지 약속을 해 오늘날 중동사태의 발발 원인을 제공한다.
연합국편을 들던 소련이 1917년 공산화되고 전쟁에서 빠지자 공산혁명주체세력중에 유대인이 많다고 잘
못판단한 영국은 유대인에게 잘보이기위해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정착을 적극지원한다.
형제국 터키를 배신할 수 없지만 결국엔 터키에 총을 겨눈 하심왕가에 의해 중동에서 겨우 승기를 잡은
연합국은 승리하게되고 발칸의 산악지대에 각각 독립국으로 흩어진 소국들을 달래기 위해 미국의 윌슨대
통령은 '민족자결주의'를 선언하는데 대한민국의 선각자들은 이걸 잘못해석해 발칸반도에 국한된 선언을
우리에게도 해당되는걸로 알아 3.1운동이 촉발되고 이에 영향을 받아 두달후 중국에선 5.4운동이 그후 인
도에선 비폭력저항운동이 간디에 의해 일어난다.
연합국이 독일에 전쟁배상금을 요구할때 정부의 간섭을 극대화해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학설을 주장한 경
제학자 케인스가 만일 그렇게되면 인플레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고 다른 독재자가 등장해 세계는 혼란
스러워질거라 예견했으나 이를 무시당한다.
1933년 정당한 방법으로 집권한 히틀러는 세계대전을 일으켜 3,000만명의 희생자를 냈고 연합군에 항복
한다. 미국은 태평양전쟁에 몰두해있어 관동군에 정보가 거의 없는관계로 관동군의 전력을 너무 과대평가해 소련의 참전을 유도했고 천황직속군사령부인 대본영이 그은'38선'에 의해 그 북쪽은 소련군이 무장해제 시키고 남쪽은 미군이 무장해제 시키는 선으로 그은 것이 영구고착화된다.
이후 중국대륙을 거의 지배한 국공내전의 승자 장개석에게 소련은 1946년 1월5일 '중,소우호동맹조약'이
체결됨과 동시에 중국에 압력을 넣어 중국은 정식으로 몽골의 독립을 인정하게 되었다.
사실 중국공산당은 1933년 10월부터 국민당 정부군에 쫓겨 중국대륙을 남쪽으로 반바퀴돌면서 1만km를
걷는 이른바 대장정에 나서기도 했다.
1946년 6월 국민당정부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동북지역 남부권까지 밀린 중국공산당세력은 북한지역으로
까지 후퇴해야했다.
국민당정부 세력에 의해 최악의 순간까지 밀렸던 중국공산당 세력에겐 두가지 행운이 있었으니 하나는
조선인들의 목숨을 마다않고 전투에 임하는 적극적인 태도와 북한이 후방기지로서 역할해준데 힘입어
1947년 7월부터 대반격을 취할 수 있었고 이 시기를 틈타 소련군에 의해 군사훈련도 더불어받아 강병으
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다.
2차대전후 공업시설이 하나도 상하지 않은 미국의 제일 큰 걱정은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 것이었는데
공산주의가 생겨난 가장 큰 배경은 '잘살아보세' 스칸디나비아반도는 추워서 확산이 어려울 것이고 발칸
은 산악지대라 확산이 어려울 것이고 동서독 국경이 가장 위험한 지역인데 여길 막는 길은 마샬플랜으로
이름지어진 막대한 경제원조를 서독에 하는 것뿐인데 그렇게되면 독일에 감정이 상할대로 상한 우방국
프랑스가 등을 돌리게 되니 프랑스가 침략해 식민지로 삼은 베트남에서 디엔 비엔 푸 전투이후 고전하고
있던 프랑스대신 베트남독립군(월맹)을 이끄는 호치민과 전투하는 길 밖에 없어 월남전을 개시하게되고
여기에 한국도 참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은 경제발전을 가속화할 수 있었고 미국이 한국을 예쁘게 봐주어 토목기술이 전
수되고 중동특수를 누리게 되었고 미국에 의해 카이스트도 설립하게 되었다.
1949년 10월 중국의 국공내전이 공산당의 승리로 돌아간후 중국은 8로군에 편입되었던 조선의용군을 대
륙평정후 북한으로 돌려보내 6.25전쟁을 수행한 중요한 병력이 되게한다. 북한군의 전투력이 0.5라면 조
선족의 전투력은 1.5였다고 한다.
이승만정권은 북한이 비밀리에 남침준비를 하는 위기상황에서 좌익 지창수의 선동으로 일어난 14연대 반
란사건등 좌익에 의한 국가전복음모가 끊이지 않자 1948년 11월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당 그 전신
인 김구,서재필,송진우선생과 독립운동가들이 주축이 된 한민당과 협의를 거쳐 국가보안법을 제정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처벌문제가 흐지부지된 것도 이승만정부로서는 공산당에 대한 수사경험이 풍부한 일제 고등계 출신을 다시 쓰지않으면 나라전체가 공산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갈 위급한 상황이라 김구선생님의 한민당과 협의하여 활용하는 것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 당시에는 좌익에 대한 걸름장치가 없어 사상에 관계없이 아무나 군대에 입대시킨 것이 현실이었다. 6.25발발이전 북한의 주력부대에 배치된 조선족은 무려 6만5천여명에 이른다. 이 수치는 전쟁발발 당시
약20만명의 북한군 병력중 30%에 가까운 것이었다.
전쟁후 새로수립된 일본정부는국민들에게 제대로된 역사교육과 민주교육을 시켰으나 일본이 최후방어선
이라 여긴 미국은 일본내에서 군,정에 경험이 많은 전쟁범죄자들인 우익세력을 재등용하게 되고 오늘
날 자민당차원에서 야스쿠니신사참배를 하게되는 우경화의 길로 빠져들게 된 것이다.
그 결과 한.중.일 삼자구도와 중국의 남중국해로의 영해확장문제가 진행돼 2016년까지 다투게 되는데 여
기 산호섬은 수많은 생물의 서식처로 세계적 생태보고인데 여기다 군비행장까지 건설하고 지금 미국과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제목 : 박정희생가,김일성생가,의자왕생가
학교다닐때 귀가 아프게 듣던 말 '부석사 무량수전'
고려시대 사찰의 착취가 극심했다고 알고 있다.
부석사의 승려들도 예외는 아닐것이다.
만일 누가 원한을 품고 이 사찰에 불을 질렀다면 우린 지금
건물은 커녕 부석사란 단어 자체를 못들어보았을것이다
어느 등산객에게서 들은이야기다. 약수터에 자주 오는 사람들끼리 계를했는데
계주가 날랐다며 열받은 어는 계원이 폐유를 약수터에 부어 그 약수터를 못쓰게 했다고한다.
아니 그 약수터가 무슨 죄가 있다고
박정희대통령에겐 치적도 있지만 어두운 그늘도 있다.
어찌 원한이 있는 사람이 없을 수 있겠는가
생가에 화염병을 던진다.
마포구에 기념관이 생기자 민주당 정청래의원과 반대하는 사람들이
'난지도쓰레기매립장외에는 마포구와 인연이 없는 사람'이라며 철거하란다.
100년후 문화재가될 수원 방화수류정현판과 광화문친필 현판을 떼어낸다고 난리다.
우리는 열만 받으면 무조건 부수고 태워 분풀이를 한다.
만일 누가 분풀이로 무량수전을 태웠다면그 사람을 칭찬해야할까
하지만 지금 사회분위기는 칭찬하는 분위기다.
화염병 던진 사람, 현판 떼어낸 사람에 대한 우상화작업
그 시대의 문화를 반증할 수 있는 역사적유물을 없애는 게 그렇게 행복한일일까.
마포구와 왜 인연이 없는가 반대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 그 섬유산업의 씨를 누가 뿌렸는가
정청래의원이 손에 든 마이크와 흉상에 스프레이뿌린 스프레이를 만든 공업입국의 씨를 누가 뿌렸는가
마포구에 다니는 자동차, 지하철의 씨를 누가 뿌렸는가 왜 마포구와 인연이 없다고 하는가
그 분의 생가는 그 시대를 보여주는 소중한 유산으로 풍수가들에게도 '금오탁시형'의
대통령이 두분 태어날 명당터라하여 유명한 곳인데 정권은 조용할까
익산의 미륵사석탑이 있다 백제문화의 대표성을 가진 구조물 탑을한바퀴 돈 적이 있다.
뒤를 보자 시멘트 범벅이다.
그 시절 백제문화에 대해 화염병 던지고 싶은 사람이 오죽이 많았겠는가 남아 있는 백제문화재는
땅속에서 꺼낸 것 빼놓고 어디있는가 없다 문화대국 대한민국.
의자왕이 집요하게 신라를 괴롭혔다 신라사람들 얼마나 이를 갈았겠는가
백제가 망한 후 백제 어는 곳에 의자왕의 생가가 있었다고치자
그곳에 도착한 신라군이 의자왕생가에 불을 지르고 환호하며 분풀이를 한다.
그 당시엔 모르겠지만 1,300년후 그것을 지켜보던 생가주변 주민들과 불지른 신라군 후손들은
그 신라군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할까
견훤이 경주를 잠시 점령했을때 분풀이로 첨성대를 부수었다면 우린 무얼보며 그 시대를
느낄 수 있을까.
김일성생가에 북한 사람들이 의무적으로 들러 참배한다.
동구공산권이 붕괴되었을때 차우세스쿠등 많은 사람들이 처형되었고
여러 곳들이 파괴되었다. 1,300년후를 생각해보자
지금 당장은 분이날지라도 의자왕생가와 김일성생가를 대조해보면 어떨까. 돈이란 다시 돌아올수 있으나 그때의 공간과 시간은 결코 다시 되돌아 올 수 없다.
우리의 문화수준을 조금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박정희대통령생가 방화사건에서 찾을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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