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38)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39%
  • 리뷰 총점8 45%
  • 리뷰 총점6 16%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8.0
  • 40대 8.0
  • 50대 8.0

포토/동영상 (7)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페터 한트케]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페터 한트케]" 내용보기
나는 이 책을 겨우 읽었다. 글의 좋고 나쁨과 상관없이, 나름 심리적인 안정을 얻고 난 후, 또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많이 접하다보니, 아무래도 이런 류의 소설 속 이야기들에 깊게 몰입이 힘들고 공감이 어렵기까지 하다.특히, 워낙 잘 읽히지 않아서 안읽던 해석까지 보다보니, 치유소설이고, 성장 소설이랜다. 나이가 어느 정도 먹다보면...사실, 성장 보다는 마무리에 대해서 더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페터 한트케]" 내용보기

나는 이 책을 겨우 읽었다. 


글의 좋고 나쁨과 상관없이, 나름 심리적인 안정을 얻고 난 후, 또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많이 접하다보니, 아무래도 이런 류의 소설 속 이야기들에 깊게 몰입이 힘들고 공감이 어렵기까지 하다.

특히, 워낙 잘 읽히지 않아서 안읽던 해석까지 보다보니, 치유소설이고, 성장 소설이랜다. 


나이가 어느 정도 먹다보면...사실, 성장 보다는 마무리에 대해서 더 관심이 가기도 하고, 

뭘하면 더 재미나게 살 수 있을까, 나중에는 뭘 해먹고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이 생기지...

'이별' 정도는 지금까지의 쌓아놓은 사회적 경험치를 바탕으로 그냥 무난히 넘길 수 있게 된다. 

홀딱 깨는 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법륜스님 식으로 말하면

"지금까지의 인연에 감사하고, 앞으로 잘 사세요" 하면 되는거지...

이별에 대해서 여행을 가고, 위축이 되고, 깨달음을 얻고...지금 이 나이에 읽으려니 진부하고 질척거리기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별'이 쉽고 간단하다는 뜻은 아니다. 

내 생에 가장 밀접하고 익숙한 것과의 헤어짐은 언제나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세 번...반복되는 만남과 이별 속에서 그 감정이 적당히 무뎌지기도 한다.  


책 마지막 부분의 'We'와 'I'에 대한 부분은 특히 더 와닿지 않는다. 

나는 '우리'가 지긋 지긋해서 외롭더라도 '나'를 지향하는 사람. 

그런데, 미국도 그러지 않았나? 30여년전에 '위아더 월드할때'나 '우리'를 찾았지, 그 후론 전부 지들만 잘 살겠다고 설쳐대던 꼴이 잊혀지지 않는데. 흥!! 


노벨 문학상을 받아서 작가는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노벨문학상의 광고에 낚여버린 셈이라서...귀중한 시간과 돈을 쓴 셈이된다. 

아마, 내일 아침...아니, 오늘 저녁만 되더라도 뭘 읽었는지 기억도 안날 것 같다. 


YES마니아 : 로얄 c******m 2019.11.03. 신고 공감 5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나와 당신, 이제 그 자욱한 안개 속으로 까무록.
"나와 당신, 이제 그 자욱한 안개 속으로 까무록." 내용보기
나와 당신, 인간이란 모름지기 약한 존재다. 강한 척 하며 낑낑거리며 몸부림치지만 약한 존재인 것은 틀림없다. 노벨상을 받은 작품을 굳이 읽지 않더라도 이것을 깨닫는 일은 어렵지 않다. 다른 이를 둘러볼 필요도 없다. 가만히 이부자리에 누워, 아니면 소파에 멍하지 앉아, 혹은 신호 대기하고 있는 차 안에서 문득 깨닫게 되는 일이다. 겨우 일어나 눈곱을 떼어 내고 대충 씻은 후
"나와 당신, 이제 그 자욱한 안개 속으로 까무록." 내용보기

나와 당신, 인간이란 모름지기 약한 존재다.

강한 척 하며 낑낑거리며 몸부림치지만 약한 존재인 것은 틀림없다. 노벨상을 받은 작품을 굳이 읽지 않더라도 이것을 깨닫는 일은 어렵지 않다. 다른 이를 둘러볼 필요도 없다. 가만히 이부자리에 누워, 아니면 소파에 멍하지 앉아, 혹은 신호 대기하고 있는 차 안에서 문득 깨닫게 되는 일이다. 겨우 일어나 눈곱을 떼어 내고 대충 씻은 후 출근하기 위해 현관을 나서는 일련의 루틴처럼 일상적인 것이다. 특별한 존재일 필요도 없는 것이다.

 나는 성선설이나 성악설 따위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딴 것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이 책을 읽기 전에도 나는 나의 눅진한 일상 속에서 종종 알아채던 바다.

 



“다음 날 오리건에서는 비가 내렸다. 금지된 행동이기 했지만 나는 밀짚모자를 쓰고는 포틀랜드 공항의 출구 쪽에 서서 에스터케이더로가는 차를 얻어 타려고 애를 썼다. 웨스턴 항공의 비행기를 타고 솔트레이크 시티를 경유해서 이곳으로 왔다.” (p.179)

 


 아내에게 우스개로 하는 말이 있다.

“로또 되면 나 팔도유람 하면서 떠돌아다니게 해줘.”

귀찮다는 듯 아내는 매번 같은 대답을 한다.

“팔도? 세계 유람하게 해 줄게. 되기나 해.”

주인공은 유리하며 유디트를 찾아다니고, 또 피해 다닌다. 짧은 편지를 쓴 후 긴 이별의 이유를 책의 중후반부터 소거해 나가는 플롯이지만 나는 그러한 일반적인 감상과 평가에도 공감이 가지 않았다. 주인공이 돌아다닌 발자국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어떻게 저렇게 돌아다닐 수 있지?’ 싶었다. 비행기를 타고, 버스를 타고, 히치하이킹으로, 두 발로 북아메리카 전역을 떠돈다. 그의 발자국을 따라다니다 보니 애초의 목적은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런데 유디트는 어디 있어? 연극평론가가 휴대용 구급약품 상자에서 꺼낸 알약을 삼키면서 느닷없이 물었다.” (p.155)

“실은 나도 유디트가 어디 있는지 몰라. 우리 헤어졌거든.” (p.156)

 


 유디트를 쫓아 대륙을 넘어 날아와 떠돌아다니면서 그녀를 찾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찾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렵게 그녀의 흔적을 발견하지만 이내 잊어버린다. 일부러 잃어버리는 것 일지도. 처음엔 헷갈렸다. ‘이 사람 뭘 하고 있는 거야. 귀한 돈, 시간 써가면서 아내를 찾겠다는 거야 뭐야.’ 싶었다. 그런데, 문득 알게 되었다.

아!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구나!

 



 “오늘 난 미국에서의 두 번째 날을 맞는 거야.”

나는 말하면서 인도에서 도로로 내려가 걷다가 곧 다시 인도로 올라갔다.

“내가 좀 변하긴 한 걸까?” (p.20)

 


 종종 내가 아내에게 던지는 농담 반, 진담 반의 팔도유람 타령은 사실 지긋지긋한 일상을 벗어나기 위한 변명이다. 그렇게라도 한 번 질러보고 싶은 것이니까. 팔도유람을 한다고 해서 뭐 대단한 소설을 한편 쓴다거나 팔도에 흩어진 맛집유랑기를 쓴다거나 팔도에 숨겨진 특산물을 유통해 돈을 번다거나 하는 따위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인공에게 나를 투영하니 그의 발자국의 이면이 보였다. 기껏 날아온 대륙의 호텔 구석에서 자위를 하고 난 다음 날 길거리를 걸으며 “내가 좀 변하긴 한 걸까?”라는 자기긍정을 늘어놓는 것은 계속된 자위행위에 불과하다. 어딘가로 도망가고, 어딘가로 떠돌고 싶다는 마음은 일상의 숨 막힘의 이면이다. 회사 내 친한 동료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방에서도 금요일이 되면 매주 같은 내용의 카톡을 올리는 형님이 있다.

“다음 주 월요일 출근 안 하면 알지? 퇴직금은 1/N로 나눠 가져라.”

다를 그렇게 피하고 싶은 것이다. 도무지 엎어버리지 못하는 일상의 버거움과 개인이 가진 나약함을 잠깐의 시답잖은 운에 기대 게워내려 하는 것이다.

 



 “세인트루이스에서 클레어에게 유디트와 지내면서 겪었던 일들을 말해주었다. 나는 그녀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p.129)

 


 거짓말이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를 두려워하고 있다. 그 두려움의 무게를 도무지 해결하지 못한 채 던지는 농이다. 회사 형님이 시답잖은 로또 운에 주말을 맡기는 것처럼, 함께 시간을 보내도 시답잖은 한 발자국조차 내딛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클레어와의 시간을 놓치기 싫은 것이다. 클레어라는 잠깐의 도피처 안에서 괜히 강한 척, 괜찮은 척 하고 싶은 거다. 가소롭기 짝이 없어 쓴웃음을 짓다가 클레어 앞에 선 그에게서 내 모습을 또 한 번 발견하게 된다. 내가 발가벗겨진 것은 아닌 가 흠칫 놀랐다. 등과 가슴, 팔다리에 요란한 그림을 그린 채 어깨를 떡 벌리고 사우나에 들어서는 아저씨들을 피해 다니기 위해 어깨를 잔뜩 움츠린 쪼그라든 내 모습 같았다.

  일하기 싫으면 언제든 사표 가져오라는 사장의 추궁은 회의 때마다 나오는 단골 메뉴다. 그 메뉴는 늘 넘칠 정도로 충분해 소화가 되지 않는다. 더부룩한 속을 부여잡고 몇몇이 모여 연기 굴뚝을 만들어 낸다.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당장 사표를 내던질 것처럼 하지만 아무도 실행하지는 않는다. 당장 이번 달 빠져나갈 카드 값에 대출금에 생활비에……. 호기는 담배연기와 함께 금세 흩어진다.

 



 “앞으로 내딛는 발은 날아갈 듯 가벼운 데 반해 뒤처지는 발은 납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지는 묘한 기분으로 나는 호텔의 짐꾼을 따라갔다.” (p.60)

 


 내딛을 때는 신난다. 뒤처지는 발을 끌어당기는 것이 숙제다. 누군가, 어떤 동력이 뒤에서 밀어준다면 발걸음을 한결 가볍고 발자국은 깊게 패이지 않을 텐데. 요행을 바라는 것은 토요일 밤 로또 추첨 시간 직전까지다.

유디트의 행방을 좇는 그의 뒤처지는 발의 걸음이 유독 무겁고, 그 걸음이 딛는 발자국이 유독 깊게 패는 이유는 나와 당신들 또한 동일하게 경험하는 일상이다. 그렇게 나와 당신들은 그냥 ‘존버’하며 순간을 밀어내는 것이다. 그것 말고 다른 신통한 방법이나 요행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번은 길거리에서 서로 목을 조른 적이 있어.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씻었지. 그런 일이 있고 나서 한참 만에 다시 만났지. 처음에는 옛날의 다정함이 되살아나더군. 하지만 채 몇 분이 지나기도 전에” (p.130)

 


 미워하고 사랑하고, 즐거워하고 슬퍼하며 그렇게 순간을 살아내는 것이다. 그렇게 순간을 밀어내며 하루를 버티다 불현듯 나의 클레어를 찾아 잠시 쉬게 되고, 나의 연극평론가를 만나 뻔 한 거짓말을 내뱉기도 하며, 나의 영화감독을 만나 그가 늘어놓는 휘황찬란한 인생 이야기를 듣기도 하는 것이다.

출발은 유디트를 찾아 나선 주인공보다 내가 더 약한 존재일수 있다는 자각이다. 

 그 자각은 환각을 미연에 방지한다. 문란한 자기계발서 따위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야기하는 비현실의 환각 말이다. 그래서 주인공처럼 애초에 어디로 가는지 조차, 누구를 찾는지 조차 잊어버린 채 도망 다니거나 쫓아다니는 존재가 기꺼이 되는 것이다.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순간을 밀어내며 하루를 버티다보면 불현듯 클레어를 만나 잠시 쉴 수도 있을지 모른다. 존 포드를 만나 그의 장황한 이야기 안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기대하지 않은 순간이 주는 쉼과 위안은 나약한 나와 당신의 뒤처진 발을 밀어주는 용기가 될 지도 모른다.

 


 안개 같은 일상의 반복일 테지만 어쩔 수 있나, 벗어날 수 없는 것을. 

 그렇다면 

 나와 당신, 이제 그 자욱한 안개 속으로 까무룩.

 

 

 

 

 

 

 

 

 

 

 

 

 

 

 

 

 

 

 

 

 

 

 

l****h 2020.02.15.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eBook 구매
페터 한트케의 회상 치유술 - 페터 한트케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페터 한트케의 회상 치유술 - 페터 한트케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내용보기
우리가 인간이라는 점은 기적이면서도 같은 이유로 불행 같다. 우리는 서로를 비추고 사랑하면서도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경계와 이해할 수 없음으로 인한 벽도 나눠가진다. 1972년 발표한 『소망 없는 불행』(어머니의 자살로 인해 쓰게 된 「소망 없는 불행」과 아내의 가출로 인해 홀로 아이를 키우는 과정을 담은 「아이 이야기」)과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는 여러모로
"페터 한트케의 회상 치유술 - 페터 한트케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내용보기

 

 

 

우리가 인간이라는 점은 기적이면서도 같은 이유로 불행 같다. 우리는 서로를 비추고 사랑하면서도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경계와 이해할 수 없음으로 인한 벽도 나눠가진다. 1972년 발표한 『소망 없는 불행』(어머니의 자살로 인해 쓰게 된 「소망 없는 불행」과 아내의 가출로 인해 홀로 아이를 키우는 과정을 담은 「아이 이야기」)과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는 여러모로 한 쌍을 이룬다. 그의 어머니는 자살하기 전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가 편지를 보게 된 건 어머니가 사망한 뒤였다. 두 작품집이 동시에 쓰였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내의 이별 편지를 받고 그녀를 찾아 나서는 페트케의 심정ㅡ"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지금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지만 나의 체계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누군가의 자살뿐이다."(※페이지 표시는 종이책 기준, 129쪽)ㅡ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벌써 접한 듯한 상황이 느껴져서다. 소설로 쓰기 전 긴 회상 시기를 가지는 그의 작법 스타일로 봐서 가능한 얘기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에서 어머니는 아직 살아 있다. 한트케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어머니가 자살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의 심리 상태는 “누가 전화를 받든 괜찮아.”(34쪽)였기도 했다. 아내의 이별 편지를 받고 그녀가 있을 만한 곳에 전화를 걸어보면서도 그는 클레어와 시간을 보내며 아내를 적극적으로 찾지 않는다. “욕실로 들어가 나 자신보다 거울을 더 들여보”(14쪽)고 혼잣말을 반창고로 여기며 “제대로 전화하는 법을 배우는 날이 오기는 올까”(35쪽) 말하는 한트케의 ‘존재 불안과 소통 불능’ 딜레마는 『페널티킥 앞에선 골키퍼의 불안』에서도 강하게 드러났었다. 이것은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가 클레어와 보내는 시간은 아내와 전혀 달랐다.

 

「그녀는 자신에 대해서는 일절 이야기하지도 않았으며 나 또한 사람들이 그녀를 화제로 삼으리라고는 추호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생기 찬 모습은 별도의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강한 존재감을 주었다. 그래서 그녀와 나는 주로 나 자신 아니면 창밖의 사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것이 우리가 애정을 드러내는 유일한 방식이었다.(62쪽)」

 

 

그와 아내 유디트가 함께 할 때는 서로를 적수로 여기고 비난과 조롱을 일삼으며 서로를 배제하는 괴물이 되었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르는 것 투성이라 다른 사람과 춤을 추고 사랑하는 데도 서툴지만 “적절한 순간에 적당한 거리를 둔 채 꺼내는 이별의 몸짓”(127쪽)도 어렵다.

 

「“그런 식으로라도 계속 살아갈 수는 있었을 거야.” 내가 말했다. “그 감정은 엽기적이면서도 달콤한 소외감이었지. 증오할 때는 그녀를 사물로 여기다가도, 긴장이 해소되면 존재라고 여기는 그런 적당한 거리감 같은 거. 나는 유디트도 나처럼 생각하리라 믿었어. 하지만 그녀는 그저 무관심했음을 곧 알아챘지.…(중략)…나는 그녀를 도와줄 수가 없었어. 증오심과 비열함에 짓눌린 탓에 감각이 마비되어 누워 있기 일쑤였으니까. 나는 더 이상 여자와 함께 있는 것조차 바라지 않았어.…(중략)… 한 번은 그녀가 몇 년 전에 궁색하게나마 조립한 서가를 보다가 그만 소스라치게 놀랐어. 서가가 어디 한군데 망가지지도 않고 옛 모습 그대로 놓여 있었기 때문이지. 그 순간 내가 그동안 유디트를 아무런 쓸모도 없는 존재로 여겨왔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 그녀의 얼굴은 점점 사려 깊게 변해갔지만 정작 나는 사려 깊음을 읽어내지 못했던 거야. 그러니 이제 알겠지,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지를.”(135~137쪽)」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것을 상대에게 행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상대는 이미 떠나고 없을 때가 많다. 우리 삶이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의 미궁으로 빠지는 이유 중 하나다. 이 소설에는 페터 한트케가 동질감을 느끼는 두 자전 소설이 계속 등장한다. 고트프리트 켈러 『녹색의 하인리히』, 칼 필립 모리츠 『안톤 라이저』에서 일인칭 서술자가 회상하는 형식과 성장 소설의 특징은 페터 한트케의 소설과 유사하다. 자전소설은 노란빛을 띤 회상과 문장을 통해 이 세계에 등장한다. 페터 한트케는 “글을 쓸 때는 난 반드시 옛날에 대해, 적어도 쓰고 있는 시간 동안은 지나가버린 일에 대해 쓴다. 늘 그렇듯이 난 문학적으로 대상에 몰두하며 나 자신을 회상하고, 문장을 만드는 기계로 피상화시키고 객관화시킨다”라고 『소망 없는 불행』에서 밝힌 바 있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에서 ‘회상’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여러 차례 거론된다.

 

「하늘만 칠했던 여자의 손은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남자의 손은 색이 없는 어둠 속에도 노란 빛깔을 드러냈다. “사람들이 금방 기억해낼 수 있는 색깔이 바로 노란색이죠.” 남자가 말했다. “노란색은 오래 들여다보면 볼수록 기억할 수 없는 먼 옛날까지 떠오르게 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계기가 됩니다. 사람들이 그 앞에 서서 꿈을 꾸는 것이죠.” “바로 황금의 시절을 말이에요.”하고 갑자기 여자가 끼어들었다. 방 안의 불은 꺼졌지만 그대로 눈부시게 남아 있는 잔상을 우리는 바라보았다.(145쪽)」

「유디트에 대한 첫인상, 그것을 왜 나는 더 이상 회상할 수 없는 것일까? 나는 그것을 떠올려보려고 갖은 애를 다 썼다. 나를 들뜨게 하면서 새털처럼 가볍게 만들어주던 그것이야말로 서로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절대적인 척도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나는 그것을 잊어버렸다. 그런 다음부터 우리는 늘 찡그린 얼굴로 서로를 뜯어볼 수밖에 없었다.(191쪽)」

                                       

「“나 자신에 대해 무슨 말을 하라고 할 때면 난 왠지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존 포드가 대답했다. “나만의 경험이라고 해봐야 아직은 회상할 만큼 오래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차라리 사람들이 내가 보는 앞에서 겪었던 일들을 말하길 좋아합니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대를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것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입니다. 나는 내가 직접 경험했던 일보다는 내가 할 수 없었던 일이나 미처 가보지 못했던 곳에 대한 향수가 큽니다.(197쪽)」

 

 

회상은 의식의 흐름 성질을 가지고 있어 인과율로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의 내면이나 그 표현도 “본모습을 숨기려는 강박관념”(21쪽) 속에서 비유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나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페터 한트케의 회상은 다르다. 페터 한트케의 회상은 존 포드가 말하는 회상(“내가 직접 경험했던 일보다는 내가 할 수 없었던 일이나 미처 가보지 못했던 곳에 대한 향수”)에 가깝다. 한트케는 데뷔 때부터 전통적 소설 방식을 완강히 거부해왔다. 『관객 모독』은 전통적 희곡 양식을 철저히 배제해 전위성을 극대화했다. 이후 소설에서 전통적 서사 방식을 가져오면서도 기대에 부응하려 하지 않았다. 살인자 블로흐의 부조리한 내면 심리극 같았던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전기(傳記)와 에세이, 소설이 혼합된 『소망 없는 불행』도 전통적 플롯 구성의 소설과 달랐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도 사실과 허구가 묘하게 섞여 있다. 이 부분을 이야기하자면 다른 얘기를 좀 해야겠다.

현대에서 ‘아내 상실’은 주목되는 메타포다. 빔 벤더스는 페터 한트케와 1987년 《베를린 천사의 시》 대본을 공동 작업하고 영화를 만들기도 했는데, 그전 작품인 샘 셰퍼드 각본으로 《파리, 텍사스(Paris, Texas)》를 찍어 1984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트레비스는 기억을 잃고 실어증까지 걸린 상황에서도 가출한 아내를 찾아 사막을 방황하며 악전고투했다. 트래비스는 환락가에서 아내를 발견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직접 대면할 수 없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장편소설 『태엽 감는 새』(1994~95년)도 아내의 가출이 소설을 끌고 가는 주요 사건이었다. 와타나베 도오루는 현실에서는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하루키는 판타지적 시공간을 통과한 뒤에야 서로를 성찰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구성했다. 2010년 크리스토퍼 놀란 《인셉션》에서도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아내 맬(마리오 코티아르)을 꿈의 공간 림보로 인해 잃으면서 모든 상황이 꼬였다. 인 가구 시대가 점점 늘어나는 세태에서 보면 '아내 상실'은 가장 가까운 이와도 소통할 수 없는 인간 고독의 딜레마가 강하게 드러나는 모티프다. 예전에는 결과를 바꾸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 여행 모티프를 많이 썼다면 최근 동향은 앞서 소개한 작품들처럼 공간을 아예 바꾸는 추세가 많다. 페터 한트케의 이 소설 2부 시작에는 이런 제사(題詞)가 붙어 있다.

 

「장소 하나 바꾸는 것이, 우리가 사실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마치 꿈을 잊는 것처럼 깨끗이 잊어버리게 만드는 데 그렇게 많은 기여를 한다면, 그거야말로 놀라운 일이 아니겠는가?

ㅡ 칼 필립 모리츠 『안톤 라이저』(111쪽)」

 

한트케는 존 포드라는 실제 인물을 픽션에 등장시켰다. 작가는 “자기만의 독특함”(196쪽)을 강조하는 ‘나’ 중심의 유럽이 아니라 ‘우리’ 중심의 미국을 성찰의 장소로 설정했다. '팍스 아메리카나' , '반지성주의' 등등 많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는데 미국을 과연 그런 희망적인 공간으로 볼 수 있나 싶지만 한트케에게는 미국이 무언가 바꿀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미국에 오면서 그는 “불안과 동경이 다시 도지고”(99쪽) 자신의 오래된 결핍과 과잉들을 되돌아봐야 했지만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미국인과 인디언의 추격전이 펼쳐지는 존 포드의 서부극처럼 자신과 유디트에게 서로를 추적하는 역할극을 주었다. 유디트가 그가 어디에 있든 엽서를 보내고, 전기 충격기가 든 소포를 보내며, 소년 갱단을 시켜 그가 강도 당하도록 모의하고, 호텔 수도꼭지에 산 성분을 몰래 설치해 테러를 가하려 했으며, 총을 들고 그를 죽이려 했다는 이야기 모두를 당신은 사실이라고 믿는가. 유디트가 연극배우이긴 하지만 FBI 첩보요원은 아니다. 한트케와 유디트가 존 포드의 저택으로 가 인터뷰를 하고 서로의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당신은 사실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세세한 미국 관찰기, 자신의 트라우마와 고백, 다양한 인물들과 실측백나무를 통해 얻는 깨달음 등은 상당수 사실이지만 나는 유디트와의 저 스토리는 거의 픽션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한트케의 미국행은 아내와 이혼 후였다. ‘사실’과 ‘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서사 기법으로 한트케는 파괴적인 이별이 아니라 아름다운 화해를 도모하고 싶었던 것 같다. 서른에 완성한 이 소설은 그가 직접 밝혔다시피 “한 인간의 발전 가능성과 그 희망을 서술하려” 한 노력이었다.

 

「“예전에는 단지 고통스러운 기억만 떠올렸지만 이제야 활력이 넘치는 추억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어.” 내가 말했다. “기억을 되살려서 경험 전체를 반복하려는 것은 아니고 다만 내가 느꼈던 최초의 작은 희망을 다시 몽상 같은 것으로 폄하하고 싶지 않을 뿐이야. 가령 아잇적에 나는 물건들을 묻어서 감추어놓고는 나중에 다시 파보았을 때 그것들이 보물로 변해 있기를 바라곤 했지. 지금 나는 그런 일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곤 했던 예전과는 달라. 그런 일을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유치한 장난으로 여기지 않아. 오히려 일부러라도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려고 하는 편이지. 사물을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없고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 결코 타고난 내 본성 때문이 아니라, 단지 상황에 따라 일시적으로 감각이 둔감해진 탓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 순간 마음이 내키지 않았기 때문임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야. 마술사인 척하고 놀았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를 기억해보면 더욱더 그런 생각이 들어. 그 당시 나는 무에서 유를 만든다든가,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 변화시키기를 원했다기보다는 마법으로나 스스로를 변신시키기를 원했지. 그래서 나는 고리를 돌리는가 하면 이불을 뒤집어쓴 채 쪼그리고 앉아서 나 자신이 사라지거나 둔갑하도록 주문을 외워대곤 했어. 물론 이불을 걷어냈을 때 원래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남아 있는 모습을 보면 우습기야 하지. 하지만 기억을 떠올릴 때 더 중요한 건 실제로 그곳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고 믿었던 짧디짧은 한순간이지. 그리고 지금 나는 그런 감정을 단순히 사라지고 싶은 욕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미래에 대한 기쁨으로 해석하고자 해. 그 미래 속에서 나는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나와는 다른 누군가가 될 수도 있어. 매일같이 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 단 하루일지언정 얼른 더 나이가 들어서 사람들이 내 얼굴을 보고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이야. 난 정말이지 시간이 흘러 얼른 나이가 들었으면 좋겠어.” (80~81쪽)」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별은 만남이 필연적으로 가지는 사실일까, 환상의 도취가 끝나고 우리가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일까. 편지는 진실을 말하는 허구의 기호일까, 환상을 겨우 전달하는 현실의 기호일까. 한트케에게 현실과 환상의 요소들은 ‘나’에서 ‘우리’로 넘어갈 정도로 치유와 극복의 재료들로 날로 바뀌어가는 것 같다.

 

 

 

 

 

g******i 2019.11.1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피터 한트케의 자전 소설...
"피터 한트케의 자전 소설..." 내용보기
관객모독은 읽기 쉽지 않은 희곡이다. 그냥 연극을 보는 것이 정말 더 쉽다. 보통 연극보다 희곡 읽기가 훨씬 더 어렵기는 하지만 관객모독은 그 정도가 더 하다. 그런데 이 소설은 관객모도보다 더 읽기가 쉽지 않았다. 작가의 내면, 그가 찾고자 하는 새로운 자아를 계속 구체화하는 것이 왜 독자가 해야할 일이지를 생각하면서 꾸역꾸역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제는 각각의 책을
"피터 한트케의 자전 소설..." 내용보기

관객모독은 읽기 쉽지 않은 희곡이다. 그냥 연극을 보는 것이 정말 더 쉽다. 보통 연극보다 희곡 읽기가 훨씬 더 어렵기는 하지만 관객모독은 그 정도가 더 하다. 그런데 이 소설은 관객모도보다 더 읽기가 쉽지 않았다. 작가의 내면, 그가 찾고자 하는 새로운 자아를 계속 구체화하는 것이 왜 독자가 해야할 일이지를 생각하면서 꾸역꾸역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제는 각각의 책을 그냥 읽어야겠다. 

k*****1 2020.04.26.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일단 상 받아서,
"일단 상 받아서," 내용보기
글쎄, 페터 한트케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대해서는 두 가지 감정, 의견이 존재한다. 뭐 문학적으로만 봐서 한트케는 젊어서부터 기존의 고인물 문학을 신랄하게 까내리고 여러 새로운 시도를 서슴치 않았으며 참 당돌했다. 근데 문학을 ‘문학’으로만 볼 수 있는가, 혹은 그래도 되는가. 그렇게 된다면 나는 문학이 문학으로서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전에 수상이 취
"일단 상 받아서," 내용보기
글쎄, 페터 한트케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대해서는 두 가지 감정, 의견이 존재한다. 뭐 문학적으로만 봐서 한트케는 젊어서부터 기존의 고인물 문학을 신랄하게 까내리고 여러 새로운 시도를 서슴치 않았으며 참 당돌했다. 근데 문학을 ‘문학’으로만 볼 수 있는가, 혹은 그래도 되는가. 그렇게 된다면 나는 문학이 문학으로서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전에 수상이 취소된 적도 있었고 굳이굳이 한트케에게 노벨상을 줘야 했을까. 평화상도 주는 상에서.
솔직하게 말하면 작년 미투 파문을 포함해 노벨 문학상은 예전만큼의 가치나 위엄이 사라지고, 사실상 자멸하고 있다고 보인다.
d*********5 2019.12.18.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긴" 내용보기
상대가 이미 죽어 있는 상태를 보길 원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직접 없애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희생자를 학대하고 비방함으로써 마침내 희생자가 자신이 얼마나 무가치한 존재인지를 느끼게끔 만드는 치정 살인의 경우와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본문 중에서... 읽기가 쉬운 책은 아니다. 분명 책장도 잘 안 넘어가고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계속 읽다보면 작가의 의도를 조금은
"긴" 내용보기

 상대가 이미 죽어 있는 상태를 보길 원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직접 없애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희생자를 학대하고 비방함으로써 마침내 희생자가 자신이 얼마나 무가치한 존재인지를 느끼게끔 만드는 치정 살인의 경우와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본문 중에서... 읽기가 쉬운 책은 아니다. 분명 책장도 잘 안 넘어가고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계속 읽다보면 작가의 의도를 조금은 알게 되는 거 같다.

i*******l 2020.09.3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eBook 구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내용보기
자전적 성장소설 중에서는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제일 좋아하는데 이 작품도 좋았습니다. 그러고보니 같은 독일문학계 작가네요. 단순 재미로 따지면 뭐 그럭저럭이지만 재미만 따질 거면 다른 종류의 책을 봐야겠죠. 내용은 사실 별 거 없는데 생각할 거리를 꽤 안겨주고, 배경이 계속 변하다보니 함께 여행하는 느낌도 들고 그래요. 노벨상 받은 이유는 있는 것 같습니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내용보기

자전적 성장소설 중에서는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제일 좋아하는데 이 작품도 좋았습니다. 그러고보니 같은 독일문학계 작가네요. 단순 재미로 따지면 뭐 그럭저럭이지만 재미만 따질 거면 다른 종류의 책을 봐야겠죠. 내용은 사실 별 거 없는데 생각할 거리를 꽤 안겨주고, 배경이 계속 변하다보니 함께 여행하는 느낌도 들고 그래요. 노벨상 받은 이유는 있는 것 같습니다.

r********a 2020.04.0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내용보기
쓰여진지 수십년이 이미 지났음에도 그동안 덜 알려져 있던 작품인데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서 시대를 뛰어넘어 갑자기 세상 유명세는 다 얻은 것처럼 서점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는 책이다.물론 나 역시 이 작품은 이제서야 접하게 된 이유도 노벨문학상이라는 재미보다는 가치를 우선시하는 상타이틀을 거머쥔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그다지 두껍지 않은 책을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내용보기

쓰여진지 수십년이 이미 지났음에도 그동안 덜 알려져 있던 작품인데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서 시대를 뛰어넘어 갑자기 세상 유명세는 다 얻은 것처럼 서점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는 책이다.


물론 나 역시 이 작품은 이제서야 접하게 된 이유도 노벨문학상이라는 재미보다는 가치를 우선시하는 상타이틀을 거머쥔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다지 두껍지 않은 책을 손에 들고서 부담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잇겟지 하고 생각했다가 된통 당했다. 


그저 보이는대로 읽히는대로라면 이 책 정말 별 거 아니고 어려울 것도 없으며 때론 꽤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읽을수록 뭔가 답답해 오고 어딘가 헤매고 있는 내 모습이 작품 속에 투영되는 내 과거 지나온 기억들때문만이 아니라는 걸 아는데도 한참 걸렸다.


독일어라고는 고등학교때 배운 것이 전부이고 그나마잘 기억도 나지 않는 수준이니 작품의 번역에 대해 뭐라고 할 자격은 안된다. 다만 좀더 작품 본연의 느낌에 충실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겨서 그나마 외국어 중에서는 익숙하다는 영문판을 구해서 다시 읽고 있는 중이다.


u*****i 2019.12.0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내용보기
작가의 필력이 정말 놀랍다.번역이 이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긴 호흡으로 덤덤하고 잔잔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그렇다면 사람들이 나를 제대로 인식하도록 나 자신을 좀더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한단 말인가?"..."한 걸음 한 걸음 단계를 밟아가며 그 때 마다 늘 새로운 행동방식을 고안해내야 하는가? 그러면 사람들이 나를 수많은 행동들 중에서 번번이 겨우 한 가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내용보기

작가의 필력이 정말 놀랍다.

번역이 이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긴 호흡으로 덤덤하고 잔잔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나를 제대로 인식하도록 나 자신을 좀더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한단 말인가?"


...


"한 걸음 한 걸음 단계를 밟아가며 그 때 마다 늘 새로운 행동방식을 고안해내야 하는가? 그러면 사람들이 나를 수많은 행동들 중에서 번번이 겨우 한 가지만을 선택하는 인간으로 보지는 않을까? 아마도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있을 수 있는 온갖 견해들에 모두 동의한다고 믿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의 주인공 역시 작가라 그런지 상당히 사색하는 상황이 많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아내 유디트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회상들이 많이 나온다.


사실 페터 한트케를 처음 접한 건 "소망 없는 불행" 이었다.

그 글 역시도 매우 인상적이었고, 이후로 다른 책을 읽어봐야 겠다 싶어 접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자칫 다른 책들에 비해 얇아보일 순 있으나, 주인공의 긴 여정과 많은 사색을 통해 나 역시 이것저것 생각해보는게 많다 보니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인 것은 분명하다.


이 작품 역시도 인상적이고, 많은 여운을 남기는 책이다.

o********e 2017.11.2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책 이야기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책 이야기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내용보기
책의 마지막에 존 포드 감독과의 대화가 나오는데, 나는 존 포드 감독의 영화를 한 편도 보지 못했지만 그에 관한 인상적인 에피소드 하나를 영화에서 본 적이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파벨만스』라는 영화에서다. 주인공은 영화 감독이 되고 싶어하는 젊은이인데 우연한 계기로 포드 감독의 사무실을 방문하게 된다. 자기가 누구인지 소개하려는 젊은이의 말을 가로막으며 포드
"책 이야기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내용보기

책의 마지막에 존 포드 감독과의 대화가 나오는데, 나는 존 포드 감독의 영화를 한 편도 보지 못했지만 그에 관한 인상적인 에피소드 하나를 영화에서 본 적이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파벨만스』라는 영화에서다. 주인공은 영화 감독이 되고 싶어하는 젊은이인데 우연한 계기로 포드 감독의 사무실을 방문하게 된다. 자기가 누구인지 소개하려는 젊은이의 말을 가로막으며 포드 감독은 말한다. “지평선이 낮은 곳에 있으면 흥미롭고 높은 곳에 있어도 흥미롭다. 그러나 중간에 있으면 지루하다”. 그 말을 들을 때는 지평선이 왜 중간에 있으면 지루한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카메라는 주인공이 감독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여주다가 별안간 고도를 낮춰 지평선을 낮은 곳으로 끌어내린다. 그러자 스튜디오가 가리고 있던 젊은이의 머리 위로 끝도 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이 보였다. 지평선이 중간에 있으면 왜 지루한지 나는 그제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괴팍하기 짝이 없던 영화에서의 모습과는 다르게 이 소설의 존 포드 감독은 의외로 상냥하고 말이 많다. 이 소설에서도 그는 흥미로운 말을 남긴다. 개인적인 의견을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어에 자꾸 ‘나’가 아닌 ‘우리’를 붙이는 이유를 유디트가 묻자 존 포드 감독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건 비록 한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라고 해도 실제로는 공동의 일부이기 때문이라고. 우리가 글을 쓸 때 ‘나’ 대신 ‘우리’라는 주어를 사용하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글을 쓸 때’와 ‘우리가 글을 쓸 때’의 차이는 주어가 아니라 목적어에 있다. 전자의 글은 한 사람의 글이다. 나만 쓸 수 있고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나만의 것이다. 반대로 후자의 글은 누구나 쓰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다. 내용이나 형식은 쓰는 사람마다 달라도 그것이 공동의 자산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말하자면 우리란 내가 특별한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뜻이다. 거기에는 이 글을 쓰는 나와 이 글을 읽는 네가 다르지 않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자기가 쓰는 글은 다른 사람들이 쓰는 글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누군가의 글을 읽고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마치 내가 동의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우리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기분이 나빠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라는 건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제각기 다른 개인이지만 모두 사람이다. 그건 우리가 똑같이 생겼거나 똑같은 생각을 하기 때문이 아니다. 다른 부분이 많아도 정말로 중요한 부분은 공유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다르지 않다는 건 그런 의미다. 요컨대 글을 쓸 때 주어의 자리에 우리를 넣는다는 건 ‘이 의견은 당신의 의견과 다를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서로 다른 부분이 아니라 공유하고 있는 부분에 의거해서 이 글을 썼습니다’ 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부부도 어떻게 보면 이 나와 우리 사이와 비슷한 건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사람이지만 그들은 중요한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다. 유디트가 찾지 말라는 편지를 남긴 후에도 계속 주인공의 곁을 맴도는 것이나 이제 잊었다고 말하면서도 자기가 어디 있는지를 계속 알려주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 그들은 원심력과 구심력처럼 하나의 중심을 가운데에 놓고 멀어지고 다가가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두 사람의 여행은 서로를 잊기 위한 행보라기보다 오히려 어디까지 멀어질 수 있는지, 서로를 연결해놓은 보이지 않는 끈의 탄성력을 확인하려는 것 같기도 하다. 주인공은 여행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에게서 유디트의 흔적을 찾아낸다. 말하자면 끈이 잡아당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꼭 그리움만인 것은 아니다. 아내와 자신을 묶은 끈이 자기를 잡아당길 때 주인공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는 동시에 포박된 자기 자신, 이른바 부자연스러운 스스로의 모습도 느낀다. 거기에는 자연스러움을 회복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다.


주인공이 클레어와 주고받았던 이야기 중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었다. 어렸을 때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기가 사라지거나 다른 존재로 변신하는 주문을 외웠다는 이야기다. 우리도 그런 적이 있다. 다락에 좋아하는 것들을 가득 쌓아두거나 이불 속에 장난감을 가지고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 등 혼자만의 세계를 만들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 여기서 사라진다는 것과 다른 존재로 변신한다는 것은 같은 뜻이다. 사라진다는 건 현재의 자기 자신을 소멸시키고 다른 존재로 재생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불을 뒤집어쓰거나 문을 잠근 이유는 스스로를 혼자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요컨대 우리는 아주 어릴 적부터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혼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착오다. 혼자가 되어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이 가리키는 것은 삶을 만드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관계라는 것이다. 삶이 나를 둘러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일단 기존의 관계를 모두 끊고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혼자가 되어 스스로를 변혁하려는 시도는, 자기 자신을 개선해야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자기가 어떻게 변하고 또 어떤 새로운 관계를 맺을지를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가 세워져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허구이다. 삶은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의 협의로 형성된다. 그러므로 나는 삶을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수는 있으나 삶 전체를 통제할 수는 없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내와 쉽게 만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그러지 않고 먼 길을 우회한다. 그건 아내에게 화가 나서가 아니라 아내와의 관계로 인해 부자연스러워진 나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바꾸고 싶다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나 혹은 본질적인 나란 어딘가에 숨겨진 원본 같은 것이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나다. 말하자면 그것은 본래의 나가 아니라 어릴 적 이불을 뒤집어쓰고 주문을 외우면서 빌었던 새로운 나인 것이다. 그때 방문을 잠구듯 주인공은 아내에게로 돌아가는 길을 우회함으로써 혼자만의 시간을 연장시킨다. 그러나 아무리 오랫동안 혼자가 되어도 새로운 내가 되지는 않는다. 앞서 말한대로 삶은 혼자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 하나의 추정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의식적으로 자각하지는 못해도 무엇이 진짜 중요한 것인지 몸은 알고 있는 것이다. 방문을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썼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고 해서 어린 날의 우리는 체념하지 않았다. 그건 꽤 중요한 문제이긴 했으나 정말로 중요한 건 이불 속에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 누군가의 존재 여부나 개인의 의지나 희망 같은 단일한 사유로 우리의 삶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삶은 아주 복잡하고 또 이상하다. 주인공의 여정은 새로운 자기 자신을 찾는 모험이 아니라 그 복잡함과 이상함을 곱씹는 반추의 시간이었다. 물론 그걸 돌아본다고 해서 역시 뭔가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걸어간다. 맞닥뜨리는 일은 맞닥뜨리고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남겨두면서. 짧은 편지로는 확실히 설명할 수 없다. 산다는 것은 말하자면 긴 이별이고 긴 이별을 위해서는 긴 편지가 필요하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므로 우리에게는 쓸 말이 남아 있다. 주인공이 알게 된 것도 그러한 것이 아니었을까.



2025년 8월 14일부터 2025년 8월 15일까지


읽고

생각하고

쓰다

YES마니아 : 로얄 g*******1 2025.08.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