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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위로와 응원이 필요한 시간_080 (참 괜찮은 눈이 온다)
"12월, 위로와 응원이 필요한 시간_080 (참 괜찮은 눈이 온다)" 내용보기
작년 겨울이 시작될 즈음엔가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우연한 기회에 책 표지를 보게 되었다. 소복히 하얀 눈이 쌓인, 조용히 눈이 내리는 어느 골목의 전경과 ‘참 괜찮은 눈이 온다’라는 제목 아래 작은 글씨로 ‘나의 살던 골목에는’이라 적힌 책 표지였다. 겨울이 오면, 나풀나풀 함박눈이 나릴 때 읽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는데, 어쩌
"12월, 위로와 응원이 필요한 시간_080 (참 괜찮은 눈이 온다)" 내용보기

작년 겨울이 시작될 즈음엔가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우연한 기회에 책 표지를 보게 되었다. 소복히 하얀 눈이 쌓인, 조용히 눈이 내리는 어느 골목의 전경과 참 괜찮은 눈이 온다라는 제목 아래 작은 글씨로 나의 살던 골목에는이라 적힌 책 표지였다. 겨울이 오면, 나풀나풀 함박눈이 나릴 때 읽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는데, 어쩌다보니 한 해가 훌쩍 지나버렸다.

 

책을 펼치며 처음 제목에서 느꼈던 하얀 눈과 골목의 정겨움을 예상했지만, 글이 전해주는 느낌은 다소 다르게 다가왔다. 오히려 서늘한 겨울 바람 느낌이랄까? 저자의 글 하나, 하나가 마음을 콕콕 찌르며 다가온다. 그런데 그 안에 힘이 있다. 무조건 따뜻하게, 다 잘될거라 하는 위로라기 보다는 현실의 녹록치 않음 속에서 오늘을 견뎌낸 이에게 보내는 동료의 응원 같다.

 

이 책에는 53편의 짧은 산문들이 실려 있다. 그 이야기에는 작은 방에 여섯식구가 살던 저자의 어린시절이, 아프게 떠나보낸 부모님에 대한 애틋함이, 작가로서의 고충과 사회이슈들에 대한 개인의 생각이 오롯이 담겨있다. 그중 내 마음에 닿은, 곱씹고 싶은 글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

 

#1. 참 괜찮은 눈이 온다

   내리는 눈을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미당의 시 한 대목이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로 시작하는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라는 시. 미당은 그게 눈이 내리는 소리라고 했다. 그렇게 내리는 눈 소리를 나도 들은 적이 있다. p.57

 

글을 읽고, 저자가 언급한 미당 서정주의 시를 찾아 읽었다(인터넷에서 찾아 적다보니, 시의 연과 행의 구분이 다소 부정확할 수도 있다).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 (서정주)

 

   괜, , , ……

   괜, , , ……

   괜, , , ……

   괜, , , ……

   수부룩이 내려오는 눈발 속에서는

   까투리 메추래기 새끼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

   폭으은히 내려오는 눈발 속에서는

   낯이 붉은 처녀 아이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

 

   울고

   웃고

   수구리고

   새파라니 얼어서

   운명들이 모두 다 안끼어 드는 소리. ……

 

   큰놈에겐 큰 눈물 자죽, 작은놈에겐 작은 웃음 흔적,

   큰 이얘기 작은 이얘기들이 오부록이 도란그리며 안끼어 오는 소리. ……

 

   괜찬타, ……

   괜찬타, ……

   괜찬타, ……

   괜찬타, ……

 

   끊임없이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

   산도 산도 청산도 안기어 드는 소리......

 

눈 내리는 소리가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그렇게 들렸다는 저자의 말에 조용조용 날리는 눈발을 떠올린다. 그러고보니 어깨에 내려앉던 그 눈송이들은 나를 토닥이며 위로를 전해주려 한걸지도 모르겠다. 올해 눈이 내리면 나 역시 함박함박 떨어지는 눈송이 아래 가만히 서서 귀 기울여 보고 싶다.

 

   그날 함박함박 떨어지던 눈이 내 귓가에서 그렇게 말했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정말 모든 게 다 괜찮아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세상 모든 게 다 안온하고 안전하게 여겨졌다. p.60

 

# 2. 나는 너를 모른다

조금 차갑게 다가오는 제목인가? 그럴 수도 있다. 나 역시 이 제목을 접한 순간 누군가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하지만 저자의 글을 읽고 나니 우리가 누군가를 잘 안다 생각하는 것이 오만이 아닌가 싶어졌다. 특히, 내가 당신을 알고 있다는 생각에 섣불리 타인을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독선적인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람은 저마다 개별적인 존재이다. 모든 환경과 경험도 개별적일 수밖에 없다. 비슷한 경험은 있지만 똑같은 경험은 없다. 그러므로 나도 너와 똑같이 경험해봤다는 말이나 한 발 더 나아가 해봐서 안다는 말은 매우 신중히 해야 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 많은 인생을 자처하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시련에 혹독하거나 냉정하기 쉽다. p.46

 

나의 사춘기를, 대학시절을 그리고 신입사원으로 종종 거리며 뛰어다니던 시간들을 떠올려봤다. 그때 내게 조언을 건네준 선배들 중 그때는 원래 그런거라며 나의 고민을 가벼이 언급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그들이 내 생각의 무게를 덜어주기 위해 부러 더 그랬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솔직히 나의 고민을 다 안다는 듯 말하는 선배보다 공감의 끄덕임으로 조용히 나의 하소연을 들어주던 사람들이 더 고마웠음을 고백해야겠다.

 

   경험이 누군가의 삶을 풍부하게 해주고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해 준다면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의 삶이지 타인의 삶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누군가를 위해 고민하고 있다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첫마디는 나는 너를 모른다여야 할 것이다. p.46

 

이제 그 시간을 지나 후배들을 대하며, 내가 그들을 잘 모른다는 것을, 나의 경험과 비슷하다 해도 결국 우리가 겪은 시간은 다른 것이었음을 인정하는 자세를 잊지 말아야 겠다.

 

# 3. 누구에게나 빛나는 한 가지

저자는 문예지 신인상 심사를 보며 모든 작품을 다 읽는다고 한다. 언젠가는 사과 상자로 일곱 상자는 족히 되는 분량의 소설을 앞에 두고 그 엄청난 분량에 겁이 나기도 했지만 다 읽었다고 한다. 저자는 그것을 한 편의 글을 마무리 지은 사람들의 노력에 대한 예의라 말하는데, 그 대목을 읽다가 괜히 나의 수고를 인정받은 듯 눈가가 뜨끈해졌다.

 

   사람도 그렇고 사물도 그렇고 작품도 그렇고 좋고 빼어난 것은 흔하지 않다. 신인의 것이든 기성의 것이든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원고지 백 장, 천 장을 채운다는 건 도깨비 방망이로 금 만들듯 맘만 먹으면 뚝딱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중략)..그 시간과 노력에 헌신한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 그 예의는 단 하나, 그들의 수고가 담긴 작품을 끝까지 읽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p.48

 

서로 예의를 갖춰야 할 대상은 무릇 원고지를 채운 글에만 적용될 일은 아닐 것이다. 나는 어떠한가? 몇 마디의 말로, 몇 번의 마주침으로 그 사람이 공들인 시간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을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어서인지, 한 사람, 한 사람 수고를 다해 지나온 올 한해의 시간에 예의를 다해 대하고 싶다.

 

   그렇게 읽다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작품 같은데, 보석 같은 문장이 한두 문장쯤 툭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런 문장을 만나는 순간이 나는 너무 좋다. 그런 문장은 마치 처음부터 끝까지 형편없는 삶은 없다는 증명 같기도 하고, 누구에게나 빛나는 한 가지는 있다는 외침 같기도 하다. p.48

 

# 그리고 안 돌려도 터닝

마지막으로 얼마전 블로그에 제 자리에서 뛰어도라는 제목으로 포스팅했던 글을 소개하고 싶다. 방향 바꿔 달리지 않아도, 지금 내가 있는, 가끔은 멈춘 것만 같은 이 자리에서 높이 뛰어 한 계단 껑충 오르면 된다는, 그것 역시 우리에게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저자의 글에 얼마나 위로를 받았는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방향 바꿔 달리는 것만 변화는 아니지 싶다. 가던 길 쭉 가도 저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지는 게 삶이다. 터닝 포인트, 말 그대로 전환점이다. 그러나 그 전환이 보다 발전적으로 향하지 못한다면 그건 단순한 변덕이거나 포기일 수도 있다. 아니다 싶을 때 과감히 돌아서는 용기도 중요하지만, 아니다 자신 없을 때는 한 발 더 내디뎌보는 용기도 필요할 것이다. p.97

 

지금 걷고 있는 방향을, 내가 하고 있는 것을 과감히 떨치고 일어나는 것만이 용기라 생각했다. 익숙한 장소에서 아등바등 매일을 보내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나의 용기없음에, 방향을 틀어 돌아서지 못하는 내 모습에 속상해 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감히 돌아서는 용기 못지 않게, 한 발 더 내디뎌 보는 것 역시 용기라는 말에 위안을 얻는다.

 

   삶의 소망은 문을 열었다고 해서 이룬 것이 아니라 그 문을 연 이후에 또 한참을 더 가야 하는 범. 어찌 방향을 바꾸는 것만 터닝 포인트일까. 한 단계 깊어지는 것은 변화가 아닌가. 삶이 제자리뛰기라고 투덜거리지 말자. 잘만 뛰면 제자리에서 뛰어도 한 계단 위니까. p.97

 

누군가는 비겁한 위안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획기적으로 방향을 틀 만큼 마음을 끄는 것을 아직 만나지 못한 보통사람인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폴짝 뛰어 한 계단 올라서는 것을 목표로 해야 겠다.

 

이렇듯 마음에 닿는 글들을 읽으며 왜 진즉 이 책을 처음 알게된 2019년 겨울에 읽지 못했던가, 아쉬워했다. 하지만 다 읽고나니 사회적으로 코로나19로 우울하고 위축한 상황에서,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조금은 어수선하고 마음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보낸 2020년에 만나 더욱 잔향이 오래 남았던 것 같다. 책을 만나는 것에도 인연이 있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마지막으로 책의 마지막 산문에 적힌 글과 저자가 적어둔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장을 소개하며 저자의 위로와 응원을 함께 나누고픈 12월이다.

 

   아프고 괴롭고 불안하고 막막한가.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의 삶이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도망치지 마라. 원래 희망은 아프다. 그래서 꽃이 피는 것이다. p.280

 

   나는 언제나 실패에서 출발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것이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음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시간의 힘을 믿는다. 생존이란, 삶이란 순간이 아니라 영속성을 가진 시간을 가리키는 거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당신들, 살아갈 당신들이 저마다의 힘으로 끝내 버티기를. 나는 가늘고 길게 쥔 펜으로 앞으로도 계속 당신들을 쓰고, 나를 쓰고, 이 삶을 기록해볼 작정이다. p.283

 

 

*기억에 남는 문장

소리가 많기로야 겨울철을 따를 수 없다. 겨울밤 소리의 으뜸으로 치는 메밀묵 장수의 '사려엇~' 소리는 분명 듣고 자기를 불러달라고 내는 소리일 텐데, 창문을 열어 내다보면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소리만 혼자 살아 비좁은 골목을 굽이굽이 돌고 있는 것이다. p.39

 

떡잎이 새잎을 낳고, 그 잎이 또다른 잎을 낳는 꼴이라고나 할까. 그러는 동안 떡잎은 아무도 모르게 시들어서 툭 떨어진다. 식물도 세대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린 자식 튼튼하게 맨 위로 밀어놀려놓고 소리 없이 시들어 떨어진 아버지 얼굴이 어른거린다. p.70

 

꿈은 분명 이룰 수 있을 때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지만 나는 꿈을 목적이나 성공, 성취와는 좀 구별하고 싶다. 어차피 삶은 모든 꿈의 성취를 허락하지 않는다..(중략)..실패한 꿈을 대하는 자세, 그 태도가 내 삶의 색깔을 결정하리라. p.85

 

무언가에 취해 있을 때, 무언가를 향해 달려갈 때 성취 여부와 상관없이 꿈을 꿈 자체로 견딜 수 있을 때 나는, 내 삶은 가장 아름다웠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어쩌면 인생의 풍요로움은 꿈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르겠다. p.86

 

어떤 삶이든 소중한 무언가가 있고, 그러므로 어떤 삶도 함부로 생략하거나 건너뛰어서는 안된다는 내 믿음에 대한 증표 같아 나는 비효율적인 읽기를 멈출 수 없다. p.100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말하고 싶어하면서 네가 누구인지도 내가 규정하고 싶어하는 이기심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울까. p.153

 

삶이란 게 참 묘하다. 눈을 뜨면 날마다 새로운 날이지만 실상 삶의 관성은 어제를 포함한 기억 속에 있다. 살아봤던 시간의 습관으로 살아보지 않은 시간을 더듬어가는 것, 현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과거인 그런 게 삶이라는 생각도 든다. p.159

 

아하, 여기가 또다른 시작이 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보면 끝은 참으로 다중적인 의미다. 막장이 될 수도 있고, 쉼터가 기다리는 종착역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 집은 세상의 끝이 되어야만 한다. 그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고, 막차에서 내리듯 충분히 쉴 수 있을 때 집은 집으로서 의미를 가질 것이다. p.178

 

사람의 삶이라는 게 제멋대로 움직이는 동물의 삶 같지만, 실은 한자리에 꽂혀 한자리에서 늙어가는 식물의 삶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 수명 다한 식물을 뽑아내다보면 흙 위에서 어떤 꽃을 피웠고 어떻게 시들었든 한결같이 넓고 깊은 흙을 움켜쥐고 있다. 바닥을 치고 딛는 힘이 강할수록 꽃도 열매도 실하다. 사는 게 어려울 때, 마음이 정체될 때, 옴짝달싹할 수 없게 이것이 내 삶의 바닥이다 싶을 때, 섣불리 솟구치지 않고 그 바닥까지도 기어이 내 것으로 움켜쥐는 힘, 낮고 낮은 삶 사는 우리에게 부디 그런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p.182

 

가족은 지겹고 무겁지만, 그 하중으로 나를 지그시 눌러주는 어떤 안온함도 있는 것이다. 가족이기 때문에 견딜 수 없는 많은 일들이 가족이기 때문에 견뎌지기도 하는 것이다. p.189

 

세상 어딘가에 학대가 있고, 세상 어딘가에 장애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연민과 연대가 가능할 수는 없을까. 얼마나 아픈지 묻지 않고 돕는 사람들의 연대 같은 걸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p.235

 

가난해도 공부만 잘하면 다 용서되는 학력주의자와 공부를 잘해도 가난하면 용서가 안 되는 계층주의자 중 누가 더 나쁜 사람일까 가끔 농담처럼 생각해보곤 한다. p.253

 

연말에는 주로 좋은 마무리를 위한 몇 가지 방법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는다. 그때마다 나는 첫 번째로 용서하거나 화해하려 애쓰지 말자고 쓴다. 세월이 지났으니, 한 해가 끝나가니, 혹은 나이를 먹었으니 하는 이유로 마음이 아물지도 않았는데, 용서하려 애를 써봐야 애쓰는 마음만 다칠 뿐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화해도 그렇다. 상대는 아직 마음을 열지 못했는데, 내 미안함이나 덜자고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도 폭력이다. 마음이 충분히 아물어, 상처에 앉은 딱지를 건드려도 곪지 않을 때, 그리하여 그가 비로소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를 기다리는 게 옳다. p.260

 

Joy.2017(아마도) 눈 내리는 밤

 

YES마니아 : 로얄 w*****y 2020.12.12. 신고 공감 14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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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눈이 온다』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참 괜찮은 눈이 온다』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내용보기
바야흐로 눈을 기다리는 계절에 들어섰다. 추위를 많이 타 겨울이 싫다고 하지만 눈이 오는 날은 좋다. 첫눈 오는 날 누군가를 꼭 만나지 않더라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설렘이 찾아온다. 어렸을적엔 눈이 많이 내렸었다. 소복소복 내리는 눈이 좋아 강아지처럼 뛰어다니곤 했다. 내 발자국을 남기며 걷는 게 좋았다. 지금도 눈이 내리는 건 좋다. 걷기에도, 바라보기에도 좋은. 그럼
"『참 괜찮은 눈이 온다』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내용보기

바야흐로 눈을 기다리는 계절에 들어섰다. 추위를 많이 타 겨울이 싫다고 하지만 눈이 오는 날은 좋다. 첫눈 오는 날 누군가를 꼭 만나지 않더라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설렘이 찾아온다. 어렸을적엔 눈이 많이 내렸었다. 소복소복 내리는 눈이 좋아 강아지처럼 뛰어다니곤 했다. 내 발자국을 남기며 걷는 게 좋았다. 지금도 눈이 내리는 건 좋다. 걷기에도, 바라보기에도 좋은. 그럼에도 가난한 사람에게는 뼛속까지 들어오는 바람을 피해야 하고, 겨울이 두렵게 여겨질 수도 있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정말 모든 게 괜찮아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세상 모든 게 안온하고 안전하게 여겨졌다. (중략)

춥고 흐린 날, 그게 창밖의 날씨든 내가 처한 인생이든 마음을 낮추면 세상 모든 만물은, 그 안에 깃든 마음은 다 괜찮아질 수 있다. 나는 우선 그것만으로도 고맙다. (60~61페이지) 

 

누군가 내게 건네는 듯한 말 한 마디. 다른 무엇도 아닌 위로의 한마디를 듣고 싶을때, 내 마음의 소리에서 나온 말들. 이런 것들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다시 마음을 추스릴 수 있다. 힘들었던 일들도, 고통스러웠던 일들도 다 괜찮아질 듯한 느낌을 받는다. 스스로에게 하는 위로가 다른 사람까지 전염시킬 수 있다. 그저 제목이 좋아서, 그저 표지가 좋아 읽게 된 산문이 내 마음에까지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속삭이는 것 같았다.

 

 

한지혜 작가를 잘 알지 못했다. 소설 한 편 제대로 읽지 않았었다. 그의 산문을 읽는데 어쩐지 나와 같은 삶을 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개천에서 살았다는 문장에서부터, 가난하고 고단한 삶들을 그대로 드러냈다. 한 겨울에 쌀독에 쌀이 떨어졌던 일, 온 가족이 모여 집이 아닌 방에 모여 살았던 일화들을 말했다. 우리 또한 그렇게 살았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아버지의 가계부를 말한 거다. 하루에 들어간 얼마의 생활비, 간결하게 적어놓은 가계부에서 아버지가 하고 싶었던 일, 못했던 일들을 생각하며 그리움을 말한 내용이었다. 때로는 숨기고 싶었을 일들을 이렇게 드러낸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자신의 많은 것을 드러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글쓰기가 되는 건가. 갑자기 쓰러졌던 아버지를 2 년 동안 집에서 병간호를 하며 느꼈던 감정들을 덤덤하게 말했다. 

 

무엇보다 나를 울컥하게 만든 것은 임신으로 입덧이 심해 다 게워내다가 먹고 싶은 음식을 말했던 부분이었다. 뻥튀기를 먹고, 지금은 먹을 수 없는 칼국수를 먹고 싶었던 그 마음을. 칼국수는 아버지가 해주신 것으로 작가와 아버지만 둘이서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었다. 입덧은 과거에 누군가와 함께 먹었던 음식인 것 같다. 추억의 음식이라고 해도 좋겠다. 임신 중 모든 걸 게워내다가 한가지 먹었던 게 시원한 물냉면이었었다. 누군가와 특별히 연관된 기억이 없는데, 물냉면이 간절했었다. 작가 또한 아버지가 해주시던 칼국수를 먹고 싶었던 것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돌아가신, 엄마의 음식이 간절해질 때가 있다. 아마 그것 때문에 나도 모르게 한참을 눈물을 흘렸었던 것 같다. 작가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했던 것 처럼 나 또한 엄마가 많이 보고싶어서였다.

 

 

가족은 지겹고 무겁지만, 그 하중으로 나를 지그시 눌러주는 어떤 안온함도 있는 것이다. 가족이기 때문에 견딜 수 없는 많은 일들이 가족이기 때문에 견뎌지기도 하는 것이다. (189페이지)

 

가족이 무조건 좋지만은 않다. 때로는 가족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던 적도 있지만, 또 가족때문에 살아지기도 한다. 타인들에게 하지 못하는 말들을 가족이기에 할 수 있는 것처럼. 견딜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 또한 가족의 힘이다.

 

가족에 관한 이야기와 세상의 부조리함, 또는 가지지 못한 자들의 이야기를 말했다. 바깥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게 아닌 안에서 느껴지는 마음들을 담았다. 직접 경험한 것과 상상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 경험에서 우러나는 것은 감정의 깊이가 다르다. 삶의 애환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경험의 산물 아니겠는가.

 

날씨가 추워져 곧 눈이 내릴 것 같다. 가만가만히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마음의 위로를 얻고자 한다. 눈 내리는 소리가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하며 속삭이는 소리처럼 들릴지 귀기울여 봐야겠다. 위로의 문장들이 가득해 나도 몰래 가슴을 쓸어 안았다. 이처럼 우리는 아름다운 문장들을 기다린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9.11.25. 신고 공감 10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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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글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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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 하는 고통을 직면하는 일은 쉽지 않다. 당장의 궁핍과 절망은 닿지 않는 이상과 꿈을 더욱 멀어지게 할 뿐이다. 달달한 사탕발림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기계발은 유혹조차 되지 않는 것이 다반사다. 어쩌면 미디어와 SNS를 통해 전파되는 고통을 이겨내고 극복하는 후기와 사연은 뜬구름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자각이 당장의 고통을 직면하는 가장 현명한 길일 수 있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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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재 하는 고통을 직면하는 일은 쉽지 않다. 당장의 궁핍과 절망은 닿지 않는 이상과 꿈을 더욱 멀어지게 할 뿐이다. 달달한 사탕발림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기계발은 유혹조차 되지 않는 것이 다반사다. 어쩌면 미디어와 SNS를 통해 전파되는 고통을 이겨내고 극복하는 후기와 사연은 뜬구름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자각이 당장의 고통을 직면하는 가장 현명한 길일 수 있다.

 



“내가 책에 빠져 있는 건 아빠에게도 자랑이었지만 엄마에게도 그랬다. 나는 책을 통해 현실에서 도피했는데, 엄마와 아빠는 책을 좋아하는 나를 통해 미래로 도망가고 싶어 했다.” (p.28)

 


 가장 가깝다고 인식되는 가족 간에도 생각의 차이는 크고 깊을 수 있다. 어쩌면 생면부지의 어떤 대상보다 더 가혹할 수 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는 간극은 분명 존재한다. 실재하는 고통이다.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내재적 고통은 고스란히 당사자의 몫이 된다. 주변에서는 이러쿵저러쿵 훈수를 두기도 하고 위로입네 떠들어 대기도 하지만 1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다.

 



 “하루하루 죽음 준비하고, 하루하루 소생을 기대하면서 우리는 집단 자폐의 시간에 빠져들었다……. 우리는 좁은 공간에 갇힌 쥐들이 그러하듯 서로를 할퀴고 상처 냈다. 그게 시간을 버티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p.129)


 

 이 부분을 읽으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겪었던 고통의 경험을 남의 글에서 확인하는 것은 결코 흔하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나의 고통이지만 도무지 내 말이나 내 글로 표현할 수 없었던 황망함과 거북스러움을 다른 이의 글에서 확인하다니, 정말 놀랐다.

내 아버지는 10년간의 암투병 끝에 작년 1월 돌아가셨다. 10년의 암투병은 곧 10년의 간병을 의미한다. 실제 암투병을 겪는 이의 가족이 아닌 이상 알 수 없는 일이다. 10년간의 간병은 병을 겪는 가족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이 오롯이 겪는 고통이다.

‘좁은 공간에 갇힌 쥐들이 그러하듯 서로를 할퀴고 상처 냈다.’라는 표현은 실제 그 고통을 겪은 사람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이고 표현이다. 이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해 읽으며 위로를 받았다. 친지와 가까운 사람들이 건네는 인사치레와는 차원이 다른 위로였다.

말 그대로 진짜 위로였다.

 



 “그 아이는 끝내 구구단을 외우지 못했고, 나는 그 아이의 냄새에서 놓여나지 못했고, 끝나지 않은 구원에 진저리치면서 나는 내 행동이, 내 마음이 결코 선한 것이 아니었음을, 그 바탕에 놓인 건 오만과 치기뿐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날 이후, 나는 누구도 함부로 연민하지 않는다.” (p.9)

 


 작가의 산문을 읽는 매력을 이 책을 통해 또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일부러 꾸며낸 자학이 아닌 날 것 그대로의 고백을 확인하는 것은 매번 나의 그 고통의 경험을 마주하는 끔찍함이지만,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의 기억을 복기하는 것은 예기치 않은 위로가 된다. 어디까지나 나는 내 기준에서 책을 본다. 작가의 말대로 그 누가 다른 이의 고통과 결핍에 쉽게 대일밴드를 붙여댈 수 있나. 절대 그럴 수 없다.

에세이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내게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되는 김현진 작가와 손홍규 작가에 이어 한지혜라는 이름을 리스트에 올려놓게 되었다. 그들의 에세이를 읽으며 나는 그들과 동화되고 그들의 글과 문장에서 표현되는 나의 고통에 다시 한 번 직면한다. 그것이 분명 나 자신에게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그만큼 이기적이다.

 



 “경험이 누군가의 삶을 풍부하게 해주고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해 준다면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의 삶이지 타인의 삶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누군가를 위해 고민하고 있다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첫마디는 ‘나는 너를 모른다’여야 할 것이다.” (p.46)

 


 맞다. 우리는, 아니 나는 너무 쉽게 위로 하려 든다. 너무 쉽게 가르치려 한다. 가만히 돌이켜 돌아보지 않으면 결코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얼마 전 입사한 회사의 후배는 나보다 열네 살이나 어리다. 덩치는 나보다 훨씬 크고 그가 가진 젊음의 기회는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지만 선배입네 하며 떠들어 댔다. 요즘 20대는 나의 20대 때와는 확연히 달라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거나 군에 입대하는 순간부터 미래를 걱정하고 고민하며 진로를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을 들으며 놀라지만 그때뿐이다.

‘에헴, 그건 말이지……. 그럴 때는 말이지……. 그런 경우는 말이지…….’하며 꼰대 질을 늘어놓았던 것을 생각하면 쥐구멍에 숨고 싶다.

 


 ‘맞아, 나는 너를 몰라.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

라는 말을 했어야 했다. 과거형으로 앞의 문장을 갈음하는 것은 부정의 의미다.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시간에 전화를 걸어 ‘00야, 내가 말이야 생각해 보니까 너한테 되지도 않는 꼰대 질을 한 것 같아. 미안하다 야, 내일부터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라고 하면 ‘이거 뭐야, 미친놈인가?’하겠지만, 휴대폰 주소록을 열어 당장 통화를 하고 싶은 심정이다.

참자, 참고 혼자서 부끄러워하자. 반복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자. 내가 할 수 있는 지금이 최선이다.

 



“직장에 다니면서 몇 번의 성추행을 더 경험했다. 자신을 아빠처럼 오빠처럼 대하라면서, 아빠이고 오빠라면 근친상간의 범주에 들어간 짓을 다정과 격려로 포장하는 남자들의 권력을 잡은 나라에서 여자들은 성추행, 성희롱을 일상처럼 경험한다.” (p.163)

 


 여혐, 남혐이 이렇게 극단으로 치닫는 사회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 사회가 이토록 퇴보할 줄 몰랐다. 따지고 들어야 할 이슈가 아님에도 자극적인 미디어의 장난질에 넘어가는 성(性)분리에 의한 갈등은 불필요한 힘의 낭비다. 성(性)의 구분을 넘어 함께 사회를 지탱하고 어깨를 걸어 살아가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는 작금의 현실이 답답하다.

결혼을 하고 가지게 된 친구들 가정과의 모임에서 꽤나 놀란 사실이 있다. 친구들의 아내, 후배의 아내들이 털어 놓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아침 출근길에 잡아 탄 택시 안에서 겪은 성희롱,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직장 동료와 상사에게 겪은 성차별, 그리고 자신이 여성이라고 인식하는 순간부터 직면해야 했던 일상에서의 성폭력에 대한 노출. 나는 단지 그들과 다른 성(性)이라서 단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 봇물 터지듯 얘기하는 여성들을 보며 정말 놀랐다. 뉴스와 드라마, 영화의 극적 상황보다 더 리얼하고 소름끼치는 것들이었다. 하얀 책 위에 까맣게 인쇄된 작가의 단어와 문장에서 재차 확인 하는 일은 버겁다. 딸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더 눈이 가고 마음이 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너를 모른다.’라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한다면, 힘의 낭비에 불과한 젠더 갈등은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당연히 여성이 아니기에 잘 모를 수밖에 없고, 나는 당연히 남성이 아니기에 잘 모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출발점이다. 거창한 논리와 치밀한 설명은 불필요하다. 100분 토론을 보지 말고 이 책을 먼저 봤으면 좋겠다.

 



“이제 이 글이 어디까지 어떻게 닿을지 모르겠다. 많은 곳에 닿았으면 좋겠다.” (p.283)

“생존이란, 삶이란 순간이 아니라 영속성을 가진 시간을 가리키는 거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당신들, 살아갈 당신들이 저마다의 힘으로 끝내 버티기를. 나는 가늘고 길게 쥔 펜으로 앞으로도 계속 당신들을 쓰고, 나를 쓰고, 이 삶을 기록해볼 작정이다.” (p.283)

 


 이 책을 읽는 내내 느낀 작가의 겸손함은 그의 글의 힘을 배가 한다. 조심스럽게 기대한 글의 거리가 적어도 내게는 닿았음을 작가가 꼭 알았으면 좋겠다. 바쁘시지 않다면 부족한 리뷰지만 이 리뷰를 꼭 읽었으면 한다. 그리고 꼭 내 마지막 문장은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당신이 그렇게 끝내 버티는 만큼 나도 그 어딘가에서 순간을 버티고 일상을 밀어내며 살아갈 거라고, 당신의 글이 누군가에게는 꼭 닿고야 만다는 것을, 그리고 그곳에서 또 어딘가로 위로와 고백이 퍼져나갈 것이라는 것을.

 

 

 

 

 

 

 

 

 

 

 

 

 

 

 

 

 

 

 

 

 

 

 

 

 

 

 

 

 

 

 

 

 

 

 

l****h 2020.02.15. 신고 공감 5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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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하면서도 다정한 글이 주는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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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기다리는 계절이 다가온다. 어딘가에는 첫눈이 내렸겠지만 지금 내 눈앞에는 단풍이 남았다. 가을을 살면서 눈을 기다린다는 건 좀 이상한가. 뭔가 빨리 끝내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면 잘 할 수 있다는 그런 우매한 다짐일지도 모른다. 하루하루가 다르지 않은 시간으로 채워진다는 것에 대한 만족이 아니라 불만과 불안이라고 할까. 나는 나를 잘 다스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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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기다리는 계절이 다가온다. 어딘가에는 첫눈이 내렸겠지만 지금 내 눈앞에는 단풍이 남았다. 가을을 살면서 눈을 기다린다는 건 좀 이상한가. 뭔가 빨리 끝내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면 잘 할 수 있다는 그런 우매한 다짐일지도 모른다. 하루하루가 다르지 않은 시간으로 채워진다는 것에 대한 만족이 아니라 불만과 불안이라고 할까. 나는 나를 잘 다스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거울을 보면서 나에게 잘 하고 있다고 말을 건네는 일도 언젠가부터 멈춰 있었다. 이런 마음 때문일까. 조곤조곤하면서도 단호한 태도로 일관하는 한지혜의 산문 『참 괜찮은 눈이 온다』읽고 나는 다시 거울을 바라보며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라고 가만히 말할 수 있었다.

 

자신의 삶에 대해 담담하게 말할 수 있다는 건 그동안의 시간을 부정하는 일도 긍정하는 일도 아니다.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를 인정하는 일이다.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한지혜의 글이 주는 힘은 그런 것이었다. 어쭙잖은 위로나 조언이 아닌 그냥 나의 생각을 이야기를 하고 가만히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할까. 우리는 안다. 거기, 그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기운이 전해진다는걸. 이 산문의 글에서 나만이 그것을 보았고 느꼈을까. 아니다, 좋은 글은 어디서든 그 빛을 발하고 누구에게나 선명하게 박힌다.

 

집이 아닌 작은방에서 살았다는 글을 시작으로 한지혜가 들려주는 삶이 고스란히 내게로 스며들었다. 작은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의 그 시절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도시 속 개천, 단칸방, 철거민, 임대 아파트와는 다른 풍경이지만 내가 느꼈던 감성은 다르지 않았다. 형제가 많아 항상 옷을 물려 입고 한방에서 하나의 이불을 끌어당기며 화를 내던 시절. 엄마가 밀가루에 콩만 넣고 쪄서 만들어준 간식거리, 김치 냄새 풍기던 도시락통, 그리고 그 안에서 뭔가 다른 세상을 꿈꿨던 내가 거기 있었다. 동화책이나 세계문학전집은 조금 먼 이야기였지만 가난을 온몸으로 체감하며 자란 그때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닮았다. 작은 소읍을 떠나 내가 접한 도시의 풍경도 다르지 않았다. 하나의 대문을 사용하지만 작은 마당을 둘러싼 작은방으로 이어지던 시간, 옆집의 벽이 보이던 창문, 김치며 밥을 나누던 공간이었다. 나와 확연하게 다른 건 그녀의 태도다. 언제부턴가 나는 먼저 해 본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자꾸만 묻기 전에 알려주려 하고 뭔가 도와주려는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그것이 권력으로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똑같은 경험은 없다 당연한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사람은 저마다 개별적인 존재이다. 모든 환경과 경험도 개별적일 수밖에 없다. 비슷한 경험은 있지만 똑같은 경험은 없다. 그러므로 나도 너와 똑같이 경험해봤다는 말이나 한 발 더 나아가 해봐서 안다는 말은 매우 신중히 해야 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 많은 인생을 자처하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시련에 혹독하거나 냉정하기 쉽다. (46쪽)

 

식물인간으로 긴 시간을 힘들게 보내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가계부에 대한 이야기와 그렇게 돌아가신 아버지를 지켜보았기에 암으로 투병하신 엄마의 마지막을 편하게 보내드리고 싶었던 자식들을 향한 의료계의 불편한 시선을 읽으면서 나는 내 아버지와 엄마 같았던 큰언니의 죽음을 떠올리게 되었다. 평생의 삶을 빠짐없이 가계부에 기록한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는 같을 수 없지만 삶과 죽음에 대해 느꼈을 허무감 말이다. 검사나 받자 보자며 입원하신 아버지에게 찾아온 심정지, 다시 의식이 돌아왔지만 아버지의 시간은 3일이 전부였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짐을 정리하면서 아버지가 살았던 작은방에 속한 게 너무도 조악하고 비루한 것들이라서 서글펐던 기억. 환자인 어머니 본인과 가족들이 연명치료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음에도 그런 자식을 비난하는 의사의 말은 얼마나 큰 대못이 되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골목에 대한 추억과 이야기라 이름 붙였지만 그곳은 우리가 살아온 지난 시간이 있었고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에 대한 사유가 있었다. 나의 작은 사연으로 시작해 우리의 일상으로 연결하는 일은 쉬운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이 산문집은 그런 과정을 보여준다. 한지혜 개인으로 시작해 우리가 사는 사회로 이어진다. 그래서 더 남다르고 의미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 개인인 한지혜와 같은 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신춘문예 응모작을 심사하는 이야기도 다르지 않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할 뿐이었지만 그것은 문학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아주 중요하고 대단한 일이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글의 도입부만 읽어도 끝을 예상할 수 있겠지만 그녀는 작품을 끝까지 꼼꼼하게 읽는다고 한다. 보내온 이들의 간절한 마음을 알기에 허투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분야의 모든 사람들에게 합당한 마음일 텐데, 우리 사회에서 그런 믿음은 사라진지 오래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된다는 메시지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세상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개천의 존재까지 무시당하는 사회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정직(貞直)과 정도(程度)가 통하는 세상을 우리는 꿈꿔도 좋을까.

 

미래를 향하여 혹은 다른 삶을 향하여 한 번 더 발걸음을 내딛는 것, 그 의지가 바로 삶의 가장 궁극적인 순간이 아닐까 싶다. 그러하니 모든 생은 멈추지 않는 순간 행복을 향해 다가선다. 수시로 구렁에 빠지겠지만 끝내는 실패할 수 있지만 적어도 목표를 향해 걷고 있다면 우리의 삶은 끝나도 다 끝난 것이 아니다. (90~91쪽)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단순하게 실패와 성공으로 구분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참으로 기껍고 고맙다. 삶의 기준과 행복은 저마다 다르다는 것, 그러니 내가 행복한 순간은 내가 만들고 내가 만끽하는 것은 아닐까. 입덧으로 힘들었을 때 불량식품을 먹으면서 견딜 수 있었고 작은 텃밭에서 식물을 기르면서 느꼈던 작은 감동, 돌아가신 엄마의 레시피를 생각하며 만드는 김치, 일상의 사소한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삶을 이룬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나의 삶과 당신의 삶도 그보다 특별하지 않다는 걸 새삼 느끼는 순간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삶을 흔드는 일이 비일비재한 세상이다.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송별회를 하는 순간 그녀가 노래를 부르며 후련했던 마음과 그날 내린 눈에게 받은 위로를 이야기하는 이런 문장은 오늘을 사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기에 한결 친근하고 깊은 위로를 안겨준다. 우울과 좌절로 끄적거린 블로그의 글에 비밀글로 남긴 누군가의 살가운 속내처럼, 지친 일상의 무게에 위축된 마음을 일으켜 세운다.

 

내 마음은 어느 때보다도 가벼웠다. 더한 눈이 쌓여도, 더 먼 길을 걷는다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랬다. 그날 함박 함박 떨어지던 눈이 내 귓가에서 그렇게 말했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60쪽)

 

좋은 일도 아주 좋지는 않았고, 나쁜 일도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크게 좋았고, 당시에는 처절하게 비참했던 일도 세월이 지나고서 보니 그저 그런 일들이다. 그리그 그것들을 그저 그런 일로 만든 건 결국 그 시절 내가 가지고 있던 내 삶의 태도였다. 좋은 일을 아주 좋은 일로 만들지 못한 이도 나였고, 나쁜 일을 아주 나쁜 일로 치닫게 하지 않는 이도 나였다. (64쪽)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우울한 나에게 일상을 움직이는 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게 무엇이든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걸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이다. 울어도 괜찮고, 화를 내도 괜찮고 속상해해도 괜찮다는 걸 말이다. 보통의 나, 보통 이하의 나여도 괜찮다고 고백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달려드는 불안을 껴앉을 수 있을 것 같다. 단호하면서도 다정한 글이 주는 위안이 당신에게도 전해질 것이다. 

 

 

 

 

r*********s 2019.11.12. 신고 공감 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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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눈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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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 책을 읽기 시작하면 주위의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는 것도 그즈음 생긴 버릇 같다. 귓구녕이 처먹었느냐, 바로 옆에서 부르는 소리를 어찌 못 듣느냐 책을 읽다 말고 난데없이 등짝을 맞기 시작한 것도 그 집에서부터 일어난 일이지 싶다. 일부러 그런 적은 없었다. 정말로 들리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빚쟁이 목소리도, 엄마의 잔소리도, 화가 난 아빠가 밥상을 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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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

책을 읽기 시작하면 주위의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는 것도 그즈음 생긴 버릇 같다. 귓구녕이 처먹었느냐, 바로 옆에서 부르는 소리를 어찌 못 듣느냐 책을 읽다 말고 난데없이 등짝을 맞기 시작한 것도 그 집에서부터 일어난 일이지 싶다. 일부러 그런 적은 없었다. 정말로 들리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빚쟁이 목소리도, 엄마의 잔소리도, 화가 난 아빠가 밥상을 엎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고요가 좋아서, 모두가 있는 세상에서 아무도 없는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나는 하루종일 책만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p.52

모임 장소는 선배가 운영하는 바(Bar). 탁자 너덧 개가 빠듯하게 들어가는 좁디좁은 공간으로 철거 예정 지역인 홍대 거리의 이층 하나를 세 얻어 만든 곳이었다. 생활을 꾸리기 위한 근간이자 잡지를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준비, 사람을 만나고, 기획을 하고, 기본 자금을 마련하는 모든 일이 그곳에서 이루어졌다. 축하하러 온 사람이 제법 많았는데, 그 사람들의 면면이 참 뭉클했다. 그간 선배의 인간관계는 함께 잡지를 만들고 싶은 사람과의 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좋은 사진작가, 글쟁이 그리고 디자이너까지. 언제 뭉쳐서 맘에 맞는 잡지 하나 같이 만들자는 말, 그곳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듣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새로 시작한 잡지의 콘텐츠와 디자인과 영업에 동참해주었다. 각자 업계 최고의 대우를 받을 만한 실력가들이었지만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았다. 따끈따끈한 잡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사십대 중반이 되도록 변치 않는 한 남자의 꿈과 그 꿈에 아무런 대가 없이 동참해준 우정을 보자니 마음이 뭉클했다. 세월은 가고 사람은 늙지만 꿈은 남는구나.

 

p.58

그날의 주인공은 나였다. 그러니까 내가 바로 해고대상자였다. 구조조정을 당하기에 좋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래도 나는 좀 심했다. 시간이 남는다고 놀아줄 애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틈틈이 여행도 다니고, 책도 좀 읽으면서 머리를 식힐 만큼 모아놓은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서 빨리 재취업 전선에 나서자니 전문가도 아니고, 자격증도 없이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는 본격적으로 어정쩡해지는, 여자 나이 서른이 된 참이었다. 남아 있는 방법이라고는 천천히 앞일을 도모하기 위해 일 년 넘게 깨어나지 않는 식물인간 아버지가 기다리는 집에 백수로 돌아가야 하는 그런 날이었다. 그렇게 사연이 많은데 주인공이 아니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술도 안주도 대화 소재도 모두 내 취향에 맞게 준비되었다.

 

p.90

영화 인터스텔라의 주인공 매튜 맥커너히는 오스카상 수상 당시 십대 때부터 변하지 않던 자신의 영웅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바로 매 순간으로부터 십 년 뒤의 자기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매일, 매주, 매월 그리고 매년. 제 영웅은 항상 저로부터 십 년이나 멀어져 있습니다. 아마 전 절대로 그 영웅이 되지 못할 겁니다. 갖기도 못하겠죠. 못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괜찮아요. 내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해주니까요.”

 

p.97

터닝 포인트, 말 그대로 전환점이다. 그러나 그 전환이 보다 발전적으로 향하지 못한다면 그건 단순한 변덕이거나 포기일 수도 있다. 아니다 싶을 때 과감히 돌아서는 용기도 중요하지만, 아니다 자신 없을 때는 한 발 더 내디뎌보는 용기도 필요할 것이다. 삶의 소망은 문을 열었다고 해서 이룬 것이 아니라 그 문을 연 이후에 또 한참을 더 가야 하는 법. 어찌 방향을 바꾸는 것만 터닝 포인트일까. 한 단계 깊어지는 것은 변화가 아닌가. 삶이 제자리뛰기라고 투덜거리지 말자. 잘만 뛰면 제자리에서 뛰어도 한 계단 위니까.

 

p.119

돼지고기 수육은 참으로 간단한 조리법인데 아빠가 직접 하지 않으면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언니도 첫애의 입덧이 끝날 무렵 그 수육을 찾았던 것 같다. 그때 아빠는 그게 뭐 어려운 거냐 하면서 오랜만에 직접 솜씨를 선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걸 해달랄 수 없었다. 해달라고 조를 아빠가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먹고 싶다는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쏟아져서 누구한테도 말 꺼내지 못했다. 새삼 언니가 부럽기도 했다. 그렇게 식구들이 좋아하던 별식인데, 왜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 우리는 한 번도 그걸 해 먹자는 말을 한 적이 없을까.

입덧을 하는 동안 나는 잊고 있던 그리움을 먹느라 수시로 마음이 뻑뻑해졌다. 그 시절은 다 어디로 갔을까. 불량식품을 한 개씩 까먹을 때마다 나는 너무 멀리 와버린 나를 만났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너무 쉽게 잊은 나 때문에 목이 멨다. 그래서였을까. 한여름에 시작한 입덧은 가을이 깊어가도 끝나지 않았다. 아마도 잊은 것이, 그리운 것이, 추억해야 할 것이 내게 많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p.122

한참을 헤매니 이정표처럼 짐 모리슨의 무덤이 나타났다. 황량해 보이는 무덤이었다. 그 앞에서 잠시 먹먹하게 서 있다 다시 출발했다. 조금 더 걸으니 깊고 어두운 나무 그림자가 비로소 사라졌다. 그다음부터는 그야말로 공원이었다. 꽃다발과 햇빛, 살아서 어떠했든 죽어서는 축복처럼 기억되는 유명한 죽음들이 정갈하게 누워 있었다. 햇빛이 가장 환하게 빛나던 피아프의 무덤 앞에 서자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죽음 속에서 길을 잃고, 죽음 속에서 길을 찾다니. 길고 짧은 생을 혼자서 돌아나온 기분이었다. 어디로든 어떻게든 혼자서도 잘 걸어갈 수 있을 듯했다.

 

p.140

누군가 내게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열네댓 살 무렵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처럼 자신만만하고 솔직하고 내가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해 완전한 믿음을 가졌던 때가 없지 싶다. 지금에야 가장 싫어하는 격언 가운데 하나가 하면 된다이지만 그때는 정말 하기만 하면 조국 통일도 내 손으로 이뤄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 얼토당토않은 자기 확신이 가능했던 것은 그만큼 나를 믿어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받은 자 사랑할 줄 알고, 신뢰받은 자 강해진다는 건 그 시절에 배운 깨달음이기도 하다.

 

p.182

사람의 삶이라는 게 제멋대로 움직이는 동물의 삶 같지만, 실은 한자리에 꽂혀 한자리에서 늙어가는 식물의 삶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 수명 다한 식물을 뽑아내다보면 흙 위에서 어떤 꽃을 피웠고 어떻게 시들었든 한결같이 넓고 깊은 흙을 움켜쥐고 있다. 바닥을 치고 딛는 힘이 강할수록 꽃도 열매도 실하다. 사는 게 어려울 때, 마음이 정체될 때, 옴짝달싹할 수 없는 게 이것이 내 삶의 바닥이다 싶을 때, 섣불리 솟구치지 않고 그 바닥까지도 기어이 내 것으로 움켜쥐는 힘, 낮고 낮은 삶 사는 우리에게 부디 그런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리뷰 작성 중입니다.^;;

 

YES마니아 : 로얄 j*******7 2021.01.10.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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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불화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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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살았던 마지막 집 뒤쪽으로는 기차가 지나갔다. 드라마를 보고 있을 때 정말 중요한 대사가 나올 때 기차는 지나갔다. 잠깐 배우의 입모양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기차가 지나가는 순간은 세계가 일시 정지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옥상에 올라가면 기차를 볼 수 있었다. 서울에서 출발한 기차는 드문드문 불빛을 안고 종착역인 이곳으로 달려왔다. 철제 대문을 밀면 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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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살았던 마지막 집 뒤쪽으로는 기차가 지나갔다. 드라마를 보고 있을 때 정말 중요한 대사가 나올 때 기차는 지나갔다. 잠깐 배우의 입모양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기차가 지나가는 순간은 세계가 일시 정지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옥상에 올라가면 기차를 볼 수 있었다. 서울에서 출발한 기차는 드문드문 불빛을 안고 종착역인 이곳으로 달려왔다. 철제 대문을 밀면 왼쪽으로는 주인이 사는 커다란 기와집이 있고 오른쪽은 다른 세입자가 사는 집이 있었다. 중앙으로 걸어가면 작고 단단한 양옥집이 우리 집이었다. 아직 연탄을 넣어서 쓰는 그 집에서 우리는 일 년도 채 못 살았다.

엄마가 떠나고 연탄을 갈지 못해 냉방이 된 새벽에 눈을 뜨고 한참을 누워 있었다. 부엌에서 세탁기를 돌리는 소리 도마에 칼질을 하는 소리들이 그리웠다. 그런 소리들이 들리고 나면 엄마가 일어나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방바닥의 온기와 소리가 없는 아침은 서러웠다. 늦게까지 골목에서 놀고 있어도 저녁 먹으라고 부르는 엄마의 외침이 없는 겨울을 지나 봄이 왔다. 나중에야 들었는데 그 집의 보증금이 600만 원이었단다. 엄마가 집을 나가고 아빠는 주인집에 가서 월세로 돌리겠다면서 그 돈을 빼서 전부 써 버렸단다. 잠깐 화해를 했던 건가 엄마가 돌아오기도 했는데 다시 떠나버렸다.

어떤 기억은 시간이라는 망각의 힘을 빌려 추억이 된다고도 하는데 내겐 그 집에 살았던 기억은 결코 추억이 되지 못했다. 그리움조차도. 어느 날 학교에 갔는데 똑같은 옷만 입고 온다며 놀리고 엄마 없는 애라고 애들이 놀아주지 않던 기억을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을까. 수학여행비가 없다고 하자 아빠는 자신의 친구 집에 가보라고 했다. 밤이 되도록 기다렸는데 결국은 받지 못했다. 유년을 지배했던 기억의 배경에는 허름한 옷을 입은 가난이라는 아이와 함께였다. 동생이 간식을 받았다고 빵을 주었는데 좀 더 달라고 하자 자신도 배가 고프다고 했던 찰나의 기억.

한지혜의 산문집 『참 괜찮은 눈이 온다』를 읽으며 기찻길과 연탄, 보증금 600만 원, 동생의 울먹거림, 엄마가 떠올랐다. 시간이라는 힘에 밀려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또다시 가을이고 나는 지나간 것들을 환기해 보는 것으로 책장을 넘긴다. 집이 아닌 방에서 방으로 이동한 아이는 책을 읽으며 문학이라는 희망을 가진다. 소설가 한지혜는 자신의 유년을 꺼내 보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여섯 식구가 살던 곳은 집이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한 곳이었다. 이사를 가자고 해서 가보면 그곳은 대문이 없는 비탈 위에 간신히 세워진 방이었다. 그 방에서 아이는 책을 읽는다.

아이어도 안다. 아이니까 더 잘 민감하게 느낀다. 자신의 집이 다른 집과는 다르다는 것을. 원하는 건 다 가질 수 없으며 무언갈 사달라고 조르는 것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는 걸. 「숨어 있기 좋은 책」으로 『참 괜찮은 눈이 온다』는 시작한다. 현실과 동화는 다를 것이라고 믿었던 아이는 책으로써 자신만의 환상을 부풀린다. 책 많이 읽는 아이라는 뿌듯함을 가난한 부모는 대견해했다. 없는 형편에도 아빠는 책을 한 권씩 사 오고 동네 아주머니들 있는대서 보란 듯이 월부 책 장사한테 책을 주문해주는 엄마. 그들이 있어서 아이는 낭만을 꿈꾼다. 동화의 세계는 이곳과 다른 것을 꿈꾸게 했다. 『못나도 울 엄마』를 읽기 전까지는 그랬다.

눈을 뜨면 날마다 새로운 날이지만 실상 삶의 관성은 어제를 포함한 기억 속에 있다. 살아봤던 시간의 습관으로 살아보지 않은 시간을 더듬어 가는 것, 현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과거인 그런 게 삶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지혜, 『참 괜찮은 눈이 온다』中에서)

꿈을 꾸고 싶어서 책을 읽었지만 그 안에서 마주한 건 허구 역시 현실에 기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날카로운 진실이었다. 아이는 이제 다른 의미로 책을 읽고 세상의 비의를 알아간다. 자신이 상상한 다락방이 아닌 곳으로의 이사. 대문이 없는 집에 사는 것이 부끄러워 선생님이 데려다준다고 해도 한사코 거절. 신춘문예에 당선이 돼 놓고도 상금을 혼자 쓰고 싶어서 가족을 시상식에 초대하지 않은 놀랍고도 솔직한 일화. 기혼 여성 소설가로서 '아이는 어쩌고?'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구하기. 아빠가 쓰러지고 이 년 동안 병간호를 하며 경험해야 했던 절망의 시간.

『참 괜찮은 눈이 온다』에는 꺼내 보이고 싶지 않던 순간을 기꺼이 내 보이며 삶이 주는 고통에 당신이 굴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응원이 담겨 있다. 글이라는 게 참 좋은 게 부끄럽고 한심했던 과거의 이야기도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쓰는 순간을 거치면 그럼에도 빛나는 기억으로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날이라고 생각하며 어제를 지운 듯이 살아갔다. 세련되어 보이고 싶은 마음에 허세를 부리며 내가 아닌 척 꾸며 보았지만 과거는 악착같이 나를 따라왔다. 한지혜는 자신이 살았던 골목의 기억을 들려주는 것으로 과거를 부정하며 살아간 나의 시간을 되돌려 놓았다.

이 책을 읽고서 나는 주어진 현재를 사랑하고 과거를 긍정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너를 이해한다는 충고가 아닌 네가 살아온 과거는 절대 부끄럽고 나약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아주는 포옹을 선물 받았다. 이리 와, 힘껏 껴안아 주는 것으로 생이 가져다준 불안과 미움, 어리석음을 외면하지 않고 바로 볼 수 있었다. 한지혜는 엄마가 미웠다고 썼다. '너무 미워해서 후회할 염치도 없을 만큼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싸웠'다고. 그다음 문장은 이것이다. '그랬더니 남는 게 후회가 아니라 두려움이다.'

나와 동생을 두고 한 번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엄마. 다시 돌아왔지만 끝내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어 다시 떠난 엄마. 이제는 돌아올 수도 없이 떠난 엄마. 『참 괜찮은 눈이 온다』에서 내가 그토록 쓰고 싶었던 문장인 엄마가 미웠다를 읽으며 오늘은 '엄마 그때 화내고 성질내서 미안해요'를 연필로 꾹꾹 눌러 써본다. 미움의 다른 이름은 미안해라는 것을 겨우 깨닫는다. 눈이 드문 남쪽 나라에 사는 나는 습관처럼 찾아온 아침을 맞이한다. 창가에 비스듬히 꽂힌 햇빛 한 줌은 괜찮아, 괜찮아라고 속삭이는 것 같아서 웃어 본다. 『참 괜찮은 눈이 온다』는 삶과 불화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소중한 책이다. 



s*****m 2019.10.30.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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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의 생각들... 『참 괜찮은 눈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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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고 괴롭고 불안하고 막막한가.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의 삶이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도망치지 마라. 원래 희망은 아프다. 그래서 꽃이 피는 것이다. (280페이지)  어김없이 입시한파가 찾아왔다. 이상하다, 이 계절은. 겨울이라고 하기에는 포근하다고 느끼는 어떤 날들이었다가, 갑자기 입시와 함께 겨울의 추위를 뽐낸다. 겨울에 밀리기 싫어서 버티고 있던 가을은, 오늘을 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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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고 괴롭고 불안하고 막막한가.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의 삶이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도망치지 마라. 원래 희망은 아프다. 그래서 꽃이 피는 것이다. (280페이지)

 

 

어김없이 입시한파가 찾아왔다. 이상하다, 이 계절은. 겨울이라고 하기에는 포근하다고 느끼는 어떤 날들이었다가, 갑자기 입시와 함께 겨울의 추위를 뽐낸다. 겨울에 밀리기 싫어서 버티고 있던 가을은, 오늘을 기점으로 그 계절의 힘을 잃고 이후의 시간을 겨울에 양도한 것 같다. 평화적인 약속처럼 보인다. 한편으로는 입시의 전쟁을 치르고 나면 이제 겨울 따위는 지나가버린 계절이 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어려운 고비가 한번 넘어갔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힘든 시간이 와도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나 다짐 같은 게 굳어지지 않을까. 오래 전, 어렵고 힘들고 가슴 아팠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이제는 평범한 일상처럼 꺼내놓는 저자의 마음이 그랬을 것 같다. 슬픔을 마주했던 어떤 순간 건너왔으니, 이제는 이 이야기를 제법 담담하게 말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여기는 건지도 모른다. 그게 스스로 보내는, 비슷한 슬픔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보내는 고요한, 참 괜찮은 위로라고.

 

이 책을 읽으면서 찾아보니 전작들이 있었지만, 나는 이 글로 작가를 처음 만난 게 됐다. 첫 페이지 첫 문장부터 작가가 걸어온 시간을 생각하게 된다. 개천, 용, 식당에 딸린 단칸방. 어떤 환경의 성장이었는지 가늠해보면서, 가난이 옷처럼 피부를 덮고 있었을 어린 시절의 기억을 꺼낸다. 집이 아닌 방에서 살았던 가족들, 이 방 저 방 옮겨 다니고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면서도 정해진 시간표처럼 저자는 성장했다. 성공을 꿈꾸지만, 실패가 어깨를 짓누르던 시절도 버텨냈다. 아니, 그렇게 흘러갔다고 해야 더 맞으려나? 평생을 따라다닐 것 같은 가난도 버리고 싶고, 가진 것 없이 가족을 건사하는 부모님이 부끄러웠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모든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저자는 그 이해를 넘어설 수 없을 때 그 가족과 다른 일상을 꿈꾸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한때 나에게 간절했다가 버려진 생각이었기에, 저자의 글에서 느끼는 그대로를 나도 모르게 대입하면서 읽고 있었다.

 

좋았던 것보다 나빴던 것들이 많은 기억이다. 성공보다 실패가 많았던 인생의 순간들이었다. 그런 시간을 통과한 저자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비관이 가득한 삶일까, 아니면 무한 긍정으로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에너지일까? 이 글을 읽다 보면 저절로 느껴지는 게 있다. 인제 와서 그 시절의 슬픔이나 기쁨을 복기하지 않는다. 다만 그때의 감정들이 남긴 현실을 바라본다. 슬픔은 저자가 버텨온 흔적이고, 기쁨은 그 이면의 슬픔을 보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지나고 보면 그래도 괜찮았던 기억이 자리하고, 그 정도면 몹시 나쁜 것은 아니었다는 기억이 새롭게 새겨진다. 하지만 그때 그 자리로 돌아갈 마음은 없다고 말한다. 슬픔이 뒤에 가려진 기쁨을 생각하는 것보다, 그 시절에 겪었던 슬픔의 각인이 더 크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잘 버텨왔다고 토닥거리면서도, 다시 그 시간을 버텨야 하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이다.

 

저자의 문장들 속에서 겹치는 많은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감정이 요동쳤다. 같은 그림이지만 다르게 해석할 수밖에 없는, 서로 다른 기억과 경험의 흔적들이었다. 여섯 식구가 한방에서 자다 보니 키가 큰 저자는 다른 식구들의 발밑에서 잤다. 다섯 가족과 직각이 된 저자의 누운 모습을 상상해본다.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난다. 그 비슷한 기억이 소환되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우리 집도 저자의 가족 잠자리와 비슷했다. 한 방에 여섯 명 이상이 저자의 가족과 같은 구도로 잠을 잤었다. 다행히 방은 아주 비좁지 않았지만, 모든 가족이 한방에서 자는 일은 편하지 않았다. 겨울의 어느 날이었던가. 추우니까 이불 속으로 파고들며 다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상하게 그날 현관문을 잠그지 않았던가 보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도둑이 들었고, 도둑은 우리 집의 어디선가 훔쳐 갈 물건을 찾고 있었을 테지. 그런데 아마 도둑은 그 방에서 식구들이 그런 구도로 잠을 자는 줄 몰랐을 것이다. 살금살금 걸어가서 집안을 뒤져야 하는데, 여기저기 튀어나온 머리와 발을 밟느라 깬 가족들의 비명에, 도둑은 제대로 털지도 못하고 도망갔다. 도망가다가 넘어진 도둑을 잡겠다고 어린 나는 내복 바람으로 도둑을 쫓으며 뛰어갔는데, 결국은 놓쳤다. 오소소 소름이 돋고 무서웠는데도, 그때만 생각하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방 한 칸에 콩나물시루처럼 꽉 차 있던 가족들 때문에 도둑이 그냥 도망가게 된 거니까. 하긴, 도둑은 그날 그대로 우리 집을 뒤졌어도 가져갈 게 하나도 없어서 허탕을 쳤을 것이다.

 

저자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발견한 가계부에서 아버지의 일상을 읽는다. 검소한 가격으로 커피 한잔을 마셨겠지. '임대'로 마련한 집을 정성껏 손보는 기쁨도 누리셨을 것이다. 아버지의 그 모든 행동이 저자의 기억에 있다. 방에서 방으로 이사하면서 처음으로 마련한 집에 온 가족이 들뜨지는 않았을까. 가난 때문에 힘들고 단칸방 생활이 여섯 식구에게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저자 아버지의 소박한 가계부를 보고 부러웠다. 가난에 힘들었겠지만, 그 슬픔을 가리는 기쁨이 바로 아버지의 기록 아니었을까 싶다. 나 역시도 저자의 성장 환경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세월을 지나왔다. 가난했고, 육 남매를 키우는 엄마의 일상은 힘들고 찡그린 표정으로 굳어졌다. 엄마가 한밤중에 옆집에 가서 돈을 빌리는 것도 일상이었다. 내 기억에는 없지만 한밤중이나 이른 새벽에 야반도주하듯 이사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런 생활을 내가 기억하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열권이 넘는 노트를 보고 참 허무했다.

 

정확히 언제부터 적었는지는 모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겨진 것들을 정리하면서 찾아보니 열권이 넘는 노트가 있었다는 것만 안다. 저자의 아버지처럼 나의 아버지도 그날그날 당신의 지출과 이야기를 적었다.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먹었고, 얼마를 지출했고, 병원에 갔고, 약을 샀고... 노트에 기록된 건 특별할 게 없었다. 일기와 가계부의 중간쯤 되는 이야기였다. 간략한 일정과 사용한 돈의 기록이 전부였다. 이상한 건, 아버지의 노트를 보고서도 아버지의 하루를 지켜본 애틋함 같은 건 없었다는 거다. 오롯이 아버지만의 하루였고, 지출이었고, 기록이었다. 아버지 자신 외의 가족에게 사용한 건 시간도 돈도,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아버지 살아계실 때도 가까웠던 적이 없는 부녀 사이였는데, 돌아가시고 나서도 그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 자기만 생각하는 건 참 한결같으시구나. 그런 아버지에게 한 가지 고마운 건, 아버지가 투병하시던 3~4년의 시간 동안 내가 경험한 일들이다. 병원 생활, 건강보험공단에 관련된 것이나 그 외의 아버지가 벌여놓은 일을 처리하고 서류를 만들면서 바쁘게 돌아다니던 시간, 알아봐야 할 것도 많아서 계속 전화와 발품을 팔아야 했던 일들, 그리고 여러 가지. 그 많은 일을 처리하느라 몸도 마음도 지쳤지만, 그때 알게 된 것들이 요즘에는 나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준다. 이런 아이러니라니. 그래도 나쁘지 않다. 알아두어서 좋은 게 더 많았으니까. 그렇게 알게 된 것들을 앞으로 사용하게 될 일이 더 많을 테니까 말이다.

 

아프기만 한 기억을 뒤로하면 저자의 오늘이 있게 한 '책'의 시작이 있다. 두려움을 이기려고, 빚쟁이들의 고음을 듣지 않으려고 파고든 책에서 저자의 작가로의 인생이 시작된 건 아니었을까. 누구에게나 그런 거 곳 하나쯤은 있어도 좋지 않은가. 자기만의 방처럼, 너덜너덜한 마음 기워줄 수 있게 숨어들 수 있는 곳. 저자에게 자기만의 방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대신 '책'이 그녀만의 방이 되어 위로해주고 꿈을 키우게 했다. 누가 불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집중해서 책을 읽는 아이의 모습을 그려본다. 처음에는 두려움을 이기려 고개를 숙이고 글자만을 보고 있지 않았을까 싶으면서도, 점점 그 글자 속으로, 문장에 빠져드는 표정을 상상하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괜히 흐뭇해진다. 꿈을 꾸다가도 바뀌고 어긋나고 노선을 변경할 수도 있지만, 책에 빠져든 어린 소녀는 지금 작가가 되어 그 시절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흐뭇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어려운 시간 잘 견뎠다고, 잘 커 주었다고, 다행이라고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오지랖 넓은 동네 아줌마의 마음이 된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정말 모든 게 괜찮아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세상 모든 게 안온하고 안전하게 여겨졌다. (60페이지)

 

저자의 가족 이야기뿐만 아니라, 일상을 지내면서 보이는 사회적 이슈도 빼놓지 않는다. 엄마와 아내로 동시에 작가로 살아가는 일의 고충, 작가라는 이름에 맞는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갈등하고 힘들어지는 마음, 문단 내 성폭력과 미투, 사회적 계급이 만든 현실의 고통 등을 언급하면서 자기의 목소리를 낸다. 저자가 부딪히고 겪어온 풍경들을 보여주면서, 세상의 차별과 빈부격차가 만들어낸 슬픔에 공감을 얹는다. 슬픈데도 마음껏 울 수도 없고, 누군가의 위로가 아닌 혐오의 말을 들어야 하는 일들. 살면서 겪는 많은 아픔에 주눅 들고 좌절할 수는 있지만, 그걸로 자기 실패를 고정화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 각자의 경험이 감히 타인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글에서 느끼는 '안다'는 의미를 되새길 수는 있다.

 

당신의 슬픔을 안다고, 실패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험한 세상의 불합리와 그 세계의 한 사람으로 존재하는 불편함을 겪고 있다고. 조곤조곤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저자는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아픔의 틈 속으로 들어온다. '나도 잘 알아' 이런 말은 꺼내지 않는다. 힘내라고 섣불리 위로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기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저자의 가족 이야기와 사회생활, 더 크게는 세상을 겪고 바라보는 이야기를 꺼내놓기만 했다. 저자가 걸어온 시간이 문장이 되어 다가온 게 전부다. 묵묵히 그 문장들을 지켜보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이야기에 공감하거나 자기 기억을 보태거나 하는 건 독자의 몫이다. 그 이후에 다가올 또 다른 위로나 희망 같은 건 즐겁게 받으면 될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어쩌면 위로는 찾아다닐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굳이 찾아야 할 이유도 없을 것 같다. 그저 어느 순간, 이렇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거나 어느 노래 가사 하나를 흥얼거리거나, 책 속의 한 문장, 드라마나 영화의 대사 하나에 내 안에서 뭔가가 터진다면, 그게 위로가 아닐까? 우리는 타인을 다 이해할 수 없고, 그들의 슬픔에 위로하는 방법을 다 알고 있지 않으니까.

 

사람의 삶이라는 게 제멋대로 움직이는 동물의 삶 같지만, 실은 한자리에 꽂혀 한자리에서 늙어가는 식물의 삶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 수명 다한 식물을 뽑아내다 보면 흙 위에서 어떤 꽃을 피웠고 어떻게 시들었든 한결같이 넓고 깊은 흙을 움켜쥐고 있다. 바닥을 치고 딛는 힘이 강할수록 꽃도 열매도 실하다. 사는 게 어려울 때, 마음이 정체될 때, 옴짝달싹할 수 없게 이것이 내 삶의 바닥이다 싶을 때, 섣불리 솟구치지 않고 그 바닥까지도 기어이 내 것으로 움켜쥐는 힘, 낮고 낮은 삶 사는 우리에게 부디 그런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182페이지)

 

어떤 글이 좋은 글일까.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하게 되는 의문이었다. 잘 짜인 구성과 스토리로 독자의 모든 감각을 빨아들이는 소설. 어떤 생각과 고민의 답을 찾아가게 하는 인문학 강의. 누군가의 일기를 엿보듯 듣게 하는 일상의 소박한 이야기들. 상황과 시간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은 산문으로 다가오는 저자의 글이 충분히 좋은 글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왜냐고 묻는다면, 하고 싶은 말 대부분을 삼키려고 애쓰기만 했던 내가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계속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부끄러워서 담아두었던 말들, 화가 나고 고통스러워서 꺼내기 싫은 말들, 불안한 내일이 더 힘들어질까 봐 감히 입방정 떨고 싶지 않은 말들이 자꾸만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고만 한다. 저자의 문장 하나하나에 내 기억과 생각을 꺼내면서 수다쟁이가 되고 싶어진다. 슬픔을 꺼내놓는 방법 하나를, 위로의 의미를 제대로 찾은 거 같다. 참 괜찮은 글이 왔다.

 

n******i 2019.12.12.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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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눈이 온다】 다독여주는 것 같았던 소복한 문장들, 함께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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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살림살이, 또래 연령의 아이들이 유난히 많았던 골목. ~야 놀자~. 한마디면 우르르 몰려나와 놀이터로 학교 운동장으로 뛰어다녔고, 조금 멀리는 개천으로 몰려가 놀기도 했던 시절. 계*사 영업사원 아저씨가 돌아다니며 책을 팔던 시절이었는데 어느 집에서 어떤 전집을 샀다더라~라는 소문이 들리면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들였던 시절. 풍족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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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살림살이, 또래 연령의 아이들이 유난히 많았던 골목. ~야 놀자~. 한마디면 우르르 몰려나와 놀이터로 학교 운동장으로 뛰어다녔고, 조금 멀리는 개천으로 몰려가 놀기도 했던 시절. 계*사 영업사원 아저씨가 돌아다니며 책을 팔던 시절이었는데 어느 집에서 어떤 전집을 샀다더라~라는 소문이 들리면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들였던 시절. 풍족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먹고, 책 구입하는 데는 어느 집보다 빨랐던 집이었다. 아이가 넷이니 누가 읽어도 읽을 테고, 생각해 보면 늘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이 집에 계시지 않을 때면 책을 읽고, 카세트테이프로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전래동화를 들으며 놀았던 그 시절..

 

70년대 생이라면 폭풍공감할 문장들이 참으로 많... ^^ 그 시절을 살아온 이들에게 안녕을 묻는듯했던 포근하고 다정하며, 그 시절을 지켜준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책이다. 눈이 오면 읽어야지, 하며 구입해두고 1년을 묵혔다가 읽은 「참 괜찮은 눈이 온다」는 시절의 시간들이 몽글몽글 떠올라 시절을 함께 성장하며 읽는 기분이 들었던 문장이 많았다. 과거의 나를, 잊고 싶었던 시간을 지나온 나를,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나를 다독여주는 것 같았던 소복한 문장들. 조금씩 아껴 읽다가, 발췌해둔 문장들을 한 번씩 더 읽다가, 노트에 옮기며 다시 천천히 읽으며 책장을 덮었던 한지혜 작가님의 산문. 눈 내리는 날이면 생각나는 책이 될 것 같다.

 

더한 눈이 쌓여도, 더 먼 길을 걷는다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랬다. 그날 함박 함박 떨어지던 눈이 내 귓가에서 그렇게 말했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 (중략)... 어렸을 때는 눈이 내리면 마냥 신나고 즐겁더니 나이를 먹으면서는 마음이 애틋해진다. 그게 "괜찮다"소리를 듣고 난 이후부터 생긴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소리와 함께 내 서른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누구도 듣지 못하는 소리를 비로소 들으면서, 내 삶도 한결 깊어졌다. 춥고 흐린 날, 그게 창밖의 날씨든 내가 처한 인생이든 마음을 낮추면 세상 모든 만물은, 그 안에 깃든 마음은 다 괜찮아질 수 있다. _60~61p.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_셰익스피어 <리어왕>

내 얼굴은 내가 책임져야 하고, 내 정체성과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내가 스스로 서야 한다는 모범답안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가끔은 나보다 타인의 정체성과 존엄성을 강요하고 통제하는 일에 더 많은 힘을 쏟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_152~153p.

 

미워했든 사랑했든 어릴 적 나는 가족이 완전한 결합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은 조금 생각이 다르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그러니까 나 스스로 하나의 가족을 생성하면서 나는 아주 당연한 소규모 공동체라고 생각했던 가족이 사실은 매우 특이하고 불안정한 결합체의 단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투적인 문장 그대로 결혼이란 가족과 가족 간의 만남이었지만, 그렇게 만나서 모두가 가족이 되지는 않는다. 공유된 기억과 서사가 없는 가족도 가족일 수 있을까. 반문하다 보면 공유한 기억과 서사의 함량이 가장 딸리는 건 나와 남편 그리고 우리 둘의 아이, 세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족이 아닐 수는 없지 않은가, 하는 쳇바퀴 도는 질문에 봉착하고 만다. _190p.

 

마음은 중앙으로 향하고, 욕망은 상단에서 춤을 추다 곤두박질치면 위로는 늘 내가 돌아보지 않던 자리에서 찾아온다. _227p.

 

#참괜찮은눈이온다 #한지혜 #에세이 #산문집 #교유서가 #동아펜 #Q3 #동아Q3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함께읽어요 #나만알고싶은책 하지만 #모두에게권하고싶은책

d******7 2021.01.18.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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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나의, 우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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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어린시절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나의 모습을 더듬어 보게 되었다. 천천히 소리내어 읽게 된다.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내가 살던 지하방에서 느꼈던 그 감정을 그녀는 개천 옆의 방에서 느꼈을까?? 비록 용이 되진 못했지만, 나름 잘 살고 있는 내가 대견하기도 하고, 지나고 나의 모습을 뒤돌아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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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어린시절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나의 모습을 더듬어 보게 되었다. 천천히 소리내어 읽게 된다.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내가 살던 지하방에서 느꼈던 그 감정을 그녀는 개천 옆의 방에서 느꼈을까?? 비록 용이 되진 못했지만, 나름 잘 살고 있는 내가 대견하기도 하고, 지나고 나의 모습을 뒤돌아 보게 한다.
아껴가며 읽고 싶다. 언제든 다시 읽고 싶다.
m****n 2021.02.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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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멈추지 않고 삶의 길을 걸어나간 시간의 흔적들
"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멈추지 않고 삶의 길을 걸어나간 시간의 흔적들" 내용보기
쌓여가는 시간이 지나간 길 위의 발자국에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삶의 얼굴들이 존재한다. 길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들과 뒤엉켜 그리움과 사랑, 후회와 상처의 기억들을 만나게 하는 장소이다. 어린 시절 상상했던 세계와 조우할 수 없지만, 걸어온 길 위의 시간이 쌓여서 우리는 삶의 모순과 부조리를 마주하며 삶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운다.<참 괜찮은 눈이 온다>는 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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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여가는 시간이 지나간 길 위의 발자국에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삶의 얼굴들이 존재한다. 길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들과 뒤엉켜 그리움과 사랑, 후회와 상처의 기억들을 만나게 하는 장소이다. 어린 시절 상상했던 세계와 조우할 수 없지만, 걸어온 길 위의 시간이 쌓여서 우리는 삶의 모순과 부조리를 마주하며 삶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운다.


<참 괜찮은 눈이 온다>는 한지혜 작가가 지나온 시간들에 대해 세상의 풍경을 바라본 기록을 담은 에세이로 흥미롭다. 그녀는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 버텨온 흔적과 기쁨이 남은 자리에 돌아보지 못한 다른 슬픔을 기억하며, 눈부신 태양처럼 찬란한 삶의 길이 아닌, 골목길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 조용히 독자를 생생한 삶의 길목으로 안내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참 괜찮은 눈이 온다'는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로 시작하는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라는 미당의 시 한 대목에서 따온 것이다. 해고대상자였던 과거에 한지혜 작가는 퍼붓는 눈 속에서 친구와 함께 길을 걸어간 시간을 기억해낸다. 함박눈이 떨어지는 폭설 위에서 그녀가 걸었던 길은 우울한 상흔을 남기는 대신 삶의 무게를 덜어낸 자의 희망을 보여준다. '참 괜찮은 눈이 온다'라는 미당의 시 구절을 이 책의 제목으로 선택한 이유는 삶을 포용하는 태도를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어렸을 때는 눈이 내리면 마냥 신나고 즐겁더니 나이를 먹으면서는 마음이 애틋해진다. 그게 "괜찮다" 소리를 듣고 난 이후부터 생긴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소리와 함께 내 서른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누구도 듣지 못하는 소리를 비로소 들으면서, 내 삶도 한결 깊어졌다. 춥고 흐린 날, 그게 창밖의 날씨든 내가 처한 인생이든 마음을 낮추면 세상 모든 만물은 그 안에 깃든 마음은 다 괜찮아질 수 있다. 나는 우선 그것만으로도 고맙다."


한지혜 작가는 가난했지만 온 가족이 함께 살며 추억을 쌓았던, 지금은 사라져버린 어린 시절 좁은 골목길의 기억을 떠올린다. 돌아가신 부모님과의 복잡한 감정들이 뒤얽힌 일상, 옹기종기 모여있는 골목길에서 놀던 친구와의 추억, 무한한 미래의 가능성을 상상하던 과거의 시간들이 깊은 그리움으로 몰려와 눈물이 날 것만 같다는 그녀의 글을 읽으며 지금의 나를 만든, 지나온 길의 시간들과 마주한다. 더 커다란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나, 작은 키로 나만의 우주 안에서 생의 기쁨과 고통을 일찍 알아버린 나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회상하며 그녀처럼 울어버렸다.


"이제 그 길은 없다. 나는 여전히 그 길 위에 살고 있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길은 거미줄처럼 얽히고 꼬인 길을 툭 터서 하나로 만든 길이다. 한 사람도 지나가기 어려웠던 길을 이제는 자가용 두어 대가 나란히 달리기도 한다. 공중변소 앞에서 다리를 꼬고 줄을 설 필요도 없다. 칸칸이 늘어선 방들이 모두 층층이 올라가 아파트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미로 같은 골목에서 길 한 번 잃지 않고 살았던 나는 눈 한 번 휘두르는 끝이 보이는 넓은 길에서 오히려 막막하다. 꿈마다 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 좁아 담벼락이 어깨를 스치는 바로 그 길이다. 걸을 때마다 길 위에서 길이 그리워 나는 더러 눈물이 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미래를 향하여 혹은 다른 삶을 향하여 한번 더 발걸음을 내딘 것, 그 의지가 바로 삶의 가장 긍정적인 순간이라는 한지혜 작가의 글에 공감했다. 그녀가 여성 작가로 글을 쓰며 살아가는 원동력은 성공하기 위한 욕망이 아닌, 주어진 생을 받아들이며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모든 생을 멈추지 않았을때 행복은 우리의 주변을 향해 다가오며, 삶의 다양한 도전의 결과를 실패와 성공으로 가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만이 행복이라는 선물을 움켜쥘 자격이 있다는 삶의 지혜를 전한다.


"청춘 시절 내가 생각했던 성공의 단계는 겪어보니 그저 사회가 만들어놓은 욕망의 신기루였을 뿐이다. 갈 곳 없고 바라볼 곳 없는 시간 속에서 나는 오랜만에 글을 썼다. 그리고 그 글로 작가가 되었다. 여전히 변두리의 시간을 살지만 태풍의 한 가운데 같던 그 폐허는 지나왔다. 생의 다음 순간, 다음 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 그건 참으로 소중한 것 같다. 그 장소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다음 문제다."

한지혜 작가가 삶의 지나온 시간 속에서 생생한 삶의 흔적 뿐만 아니라 죽음이라는 경험을 독자에게 이야기하여 눈길을 끈다. 그녀는 식물인간이 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파리의 유명한 공원 묘역인 페르 라셰즈에서 길을 잃어버린 후 짐 모리슨의 무덤을 발견하며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건낸다. 그녀는 길도 사람도 보이지 않던 방황의 시간에서 죽은 자로 가득한 무덤 앞에서 길고 짧은 생을 혼자서 돌아다니며 한참 동안 찾아 헤맨 문을 발견한다. 이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경험한 자가 애도하며 새로운 인생의 길을 시작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한지혜 작가는 여성 작가라는 삶의 길을 걸어오며 부딪혔던 다양한 사회적 시선들의 문제와 삶의 부조리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출산을 앞두고 강제적으로 회사를 그만두었던 일, 생리대 기본권과 관련된 저소득층 아이들의 자존에 대한 절실한 고민 등 그녀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이 담긴 글은 그녀가 살아온 삶의 길이 개인적인 서사를 넘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된다. 멀미 하던 어린 자신에게 손수건으로 부채를 부쳐주던 버스 안내양, 임산부라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 순간에 자신의 건강을 염려했던 음료를 배달해주던 아주머니의 편지, 아이의 유치원 재등록을 하지 않았을 때 서운함 가득한 표정으로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오던 유치원 버스 기사님을 보며 기득권이 중심인 세상에서 자신과 무관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받은 순간들을 전하는 한지혜 작가의 글은 갑이 아닌 을의 연대가 버티며 살아갈 힘을 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음은 중앙으로 향하고, 욕망은 상단에서 춤을 추다 곤두박질치면 위로는 늘 내가 돌아보지 않던 자리에서 찾아온다. 일상에서 나랑 무관하다고 지나쳤던 사람들에게, 내게 그 자리를 떠날 때 내내 함께였다고 믿은 누구도 건네지 않는, 누구보다 따뜻한 인사를 받게 될 때마다 나는 부끄럽다. 그들을 보지 않았던 게 미안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들과 다른 사람인 것처럼 나도 모르게 부린 허세를 들키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삶이라는 발자국을 지나온 자리마다 약하지만 꺼지지 않는 불빛이 있었기에, 길은 다양한 색채의 빛깔을 발휘한다. 한지혜 작가는 <참 괜찮은 눈이 온다>를 통해 하얀 눈이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기보다 눈 위에 발자국을 내딛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진실과 함께 나다운 삶의 얼굴로 살아가기 위한 각자의 답을 독자에게 질문한다.


"이제 이 글이 어디까지 어떻게 닿을지 모르겠다. 많은 곳에 닿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와 같았던 마음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혹여 다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러나 나는 언제나 실패에서 출발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것이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음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시간의 힘을 믿는다. 생존이란, 삶이란 순간이 아니라 영속성을 가진 시간을 가리키는 거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당신들, 살아갈 당신들이 저마다의 힘으로 끝내 버티기를. 나는 가늘고 길게 쥔 펜으로 앞으로도 계속 당신들을 쓰고, 나를 쓰고, 이 삶을 기록해볼 작정이다."


YES마니아 : 로얄 s*****0 2019.11.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