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랜시스 톰슨이라는 시인의 저 유명한 시 <하늘의 사냥개>는 그 자체로도 감동이 있는 작품이지만, 나 같은 일반적인 독자는 수많은 작가들의 인용으로 더 많이 접했을 작품이다. 온세상이 아니라 ‘나’ 라는 한 영혼을 끝까지 추적하시는 사냥개의 이미지는 하나님의 펄떡이는 감정과 끝없는 사랑에 대한 좋은 비유이고, 기독교 작가를 포함한 많은 작가들이 여기에 영감을 받았다. 켄 가이어의 이 책도 톰슨의 시를 변주한 많은 책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톰슨의 시에 대한 해석을 포함하는 다른 책들과, 이 책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사실 이 질문에 난 딱히 다른 차이점을 모르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책의 첫 챕터인 ‘집을 떠나다’와 마지막 챕터인 ‘집에 오다’의 구성으로 책 전체가 여정인 것처럼 구성하려고 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 과정에서 저자의 생활과 마음의 변화 과정이 읽기 쉽게 서술되어 있지만, 그 이상의 무엇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특징으로는 인용문이 상당히 많다는 것인데, 책에서 인상깊은 구절 대부분이 다른 작가의 인용문이라는 사실이 좀 허탈했다. 하지만 소소하게나마 이 책에서 받은 유익을 정리해보면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사냥개로 묘사된 추적자의 대상인 ‘아웃사이더’가 단순히 잃어버린 한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고, 그 한 사람의 어떤 잃어버린 부분까지 의미한다고 정의한 점이다. “물론 그 잃어버린 부분은 여러분이나 나의 전부가 아니다. 하지만 결코 방치해 둘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17p_집을 떠나다) 또 이 책의 주제는 결국 예수님의 죽으심이 그러한 아웃사이더를 위해서였음을 말하는 데 있다. 그것을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의 ‘성문 밖’ – 쓰레기 처리와 부정한 것들의 소각과 시체 유기 등으로 이용되었던 장소 – 과 연결하여 설명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예수님은 마구간에서 태어나셔서 성문 밖에서 돌아가셨다. 그것이 아웃사이더와 잃어버린 부분을 추적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강력한 증거라고 말하고 있다. 이 외에 유익으로는 프랜시스 톰슨의 <하늘의 사냥개> 시 전문을 실어놓았다는 점 정도가 있겠다. 그리고 인용하는 글들이 좋은 것이 많은데 앤 라모트나, 브르네 브라운 같은 작가를 알 수 있는 것은 행운이었다. 챕터 끝마다 있는 적용과 토론은 크게 도움이 안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인상이 깊었던 내용을 발췌해봤다. “예수에 대해 생각했다. 그분께서 얼마나 많은 방해를 받으셨는지, 가던 길 멈추시고 방해하는 이들에게 시간을 내어주심으로써 얼마나 많고 놀라운 사건들이 일어났는지 생각했다.” (126p_바깥에 있는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준비) “결국 내가 받은 모든 교육과 훈련, 나의 모든 인생 경험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냥 친구가 되는’ 법을 알지 못했다.” (176p_안에 있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 “세상의 눈에는 나사로가 인생을 낭비한 자였다. 하나님의 눈에는 부자가 그랬다. …… 우리 중 누구에게 과연 우리의 인생 이야기 전체를 한눈에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어서 날마다 부딪히는 작은 사건들 하나하나를 판결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의 이름으로 건넨 물 한 잔의 결과를 누가 과연 그 순간에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192p_되찾은 나의 일부) “세상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지 말라. 당신을 살아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그것을 실천하라. 세상에 필요한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다.” (193p_되찾은 나의 일부)
|
|
우리를 끝까지 추적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마음을 찾아내셔셔 두 팔에 안아 들고 집으로 데려오는 하나님의 모습을 그려보자. 이 책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의미 있는 삶을 추구했던 사람들이 결국은 추적자 되신 하나님께 돌아온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아일랜드 태생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C.S 루이스)의 이야기, 성경의 아웃사이더(다말, 라합, 밧세바, 마리아)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 주고 있다. 특히 노숙자이며 마약 중독자였던 시인 프랜시스 톰슨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추적의 손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음을 알려준다. 지금도 그의 시 '하늘의 사냥개'는 최고의 시로 찬사를 받고 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삶의 궁극적 의미는 없다라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지속적인 만족은 없다고 시는 말한다. 결국 하나님은 사냥감을 쫓는 맹견의 추적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를 향한 연인의 추적이라고 마무리 한다. 책에서 소개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를 더할 수 없이 사랑하시는 이를 피해 달아나는 인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위 책의 저자 켄 가이어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추적을 당했다고 고백한다. "나의 나의 정체성을 깨달았고, 글쓰기의 재능이 무엇인지 알았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말을 부리는 재주나 활발한 상상력으로 인해 한 작가가 탄생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을 보는 독특한 관점 역시 작가를 만들어 내는 요인은 아니라고 본다. 나는 무엇인가를 느끼는 방식이야말로 작가의 근본 자질이라고 본다" 왜 하나님의 추적을 피하는가? 하나님의 추적으로부터 계속 도망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저자는 수치심과 분노를 예로 들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심지어 우리 자신에게조차 숨기고 싶은 것들. 예수님은 수치심과 분노로 가득한 세상의 아웃사이더를 찾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장사판이 벌어진 성전을 정화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장사꾼과 환전상들 때문에 밀려나 성전에 들어오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들을 위해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다. 우리도 크고 작은 실패의 이야기들을 간직하며 산다. 메타-내러티브(meta-narrative). 죄의식과 수치심이 내 인생을 낭비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큰 이야기 전체를 알고, 우리가 실패한 것들이 그 큰 그림 속에 어떻게 들어가 자리 잡는지 알기 전에는 누구도 우리 삶의 작은 실패들을 판단할 수 없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구원의 큰 그림 속에서 우리들이 살면서 경험하는 죄 짓고 수치스러운 일들이 결코 인생을 낭비하는 요소가 아님을 강조한다. 작은 실패을 겪는 우리를 끝까지 추적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한다면. 우리가 아무리 많이 실패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아시고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며, 연인이 연인을 뒤쫓듯 단호히 우리를 추적하신다. C.S 루이스를 추적한 것처럼. |
|
하나님께 끈질기게 추적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캔 가이어 개인의 추적사도 그려진다 그의 정서가 내 정서와 너무 닮아 있어서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어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작가의 마음이 내 마음에까지 뻗쳐왔다 하나님께 추적당한 내 자신의 얘기도 써 보고자 하는 이상한 갈망을 처음으로 느끼게 한 책이다! 그 갈망을 풀어낼 수 있을 지,없을 지는 내게 남겨진숙제다. |
|
아마도 우리 안에 중풍 들린 어떤 부분이, 귀신 들린 어떤 부분이 있다. 굴욕적인 어떤 부분이, 격리된 어떤 부분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들은 우리의 나머지, 곧 건강하고 온전한 모든 부분과 재결합 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 95p
하나님께서는 나의 인생에 관심이 많으시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보이는 모습 뿐 아니라 수치감 때문에 숨겨 놓은 그 부분까지 하나님께서는 나의 모든 존재에 관심을 기울이신다. 우리에겐 하나님 앞에 내어 놓지 않은 숨겨 놓은 부분이 있다. 하나님은 그 부분을 치료하시기 원하신다. 한결같이 나를 따라오시며 잃어버린 나의 일부를 회복시키려 하신다.
나는 이 책을 펼치면서부터 다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감동에 휩싸이는 것을 경험했다. 저자가 설명하는 인생의 고민들이 내 마음 속에서도 계속 일어나고 있었던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포기해버린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 나만의 노력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개입하심 가운데이 점차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니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느낌을 받았다. 하나님이 나를 여전히 찾고 계셨다는 것. 내가 하나님 앞에 있었고 내가 하나님을 음성을 듣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나를 찾고 계셨다는 사실 이 사실은 나도 나의 모습을 찾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 같다. 하나님께 발견될 때에 나는 온전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온전케 하실 그때에 나는 진정한 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안 나는 온전해지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교만한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앞으로 살아가는 삶 속에서 나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다려야겠다. 하나님께서 기꺼이 나를 변화 시키시도록 나의 마음을 열어드려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