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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런 소설은 처음 봅니다. 아니, 예전에 이와 비슷한 모양을 한 소설을 몇 편 읽었던 적이 있지만 이만큼 진짜의 모습을 하고 있는 소설은 처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인지 아닌지, 진짜인지 아닌지 여전히 추측뿐인 말입니다.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괜찮은 소설이길래 이토록 애매모호한 표현을 써가며 칭찬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말을 늘어놓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솔직히 괜찮은 소설은 아닙니다. 아니 그러니까, 괜찮은지 아닌지 그걸 정확히 잘 모르겠다는 겁니다. 이 소설을 풀어낼 열쇠를 아직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보물 상자는 겉모양만 봐도 그 안에 어떤 어마어마한 보물이 담고 있을까 감이 옵니다. 굳이 열어보지 않더라도 지레 짐작으로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쾨쾨한 냄새, 잔뜩 낀 이끼. 육중하고 단단한 모양을 한 경첩. 굉장히 정교해 보이는 열쇠 구멍.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절대 열리지 않으며 굳게 입을 닫아 안에 담긴 무언가를 지키는 보물 상자. 결국 그 상자를 열 수 있는 방법은 세상에 단 하나만 존재하는 열쇠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면 우리는 그 열쇠를 직접 만들어야 합니다.
엔조 도의 소설집 《어릿광대의 나비》는 「어릿광대의 나비」와 「마쓰노에의 기록」이라는 기묘한 소설 두 편이 실려 있습니다.
《어릿광대의 나비》는 일종의 암호입니다. 그리고 그 암호 해독법이 소설 속 이야기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물론 제가 직접 그것을 풀이해낸 건 아닙니다. 문장의 첫 단어들을 모아서 하나의 문장으로 나열해 보니 결국 답이 되었다, 하는 식의 단순한 암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글로 쓰인 쿤데라의 소설을 읽습니다. 프랑스어 소설의 번역본을 읽는 것입니다. 하지만 쿤데라가 처음 썼던 소설은 체코어로 되어 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광복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온 서양의 소설은 일본을 통해 번역의 번역을 거친 것입니다. 아무튼 이런 방식으로 우리가 전혀 모르는 언어, 완전히 다른 기원을 갖는 언어들을 사용하여 여러 번의 번역 작업을 거치다보면 간혹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어떤 언어에는 특정 단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그래서 무의미한 의미들이 사라진 하나의 문장으로……. 그것은 마치 큰 돌 덩어리 같아 보이는 글이 무수히 많은 번역을 통해 다듬어져 원석의 느낌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깎이다가 마침내 고유의 색을 띠고 빛을 내며 살아남은 단 한 줄의 문장과 같은 느낌입니다. 그리고 그 문장이 바로 이 소설을 열 수 있는 열쇠이자 보석입니다.
그렇다고 그 열쇠가 어떤 물질로 구성되어 있는 건 아닙니다. 《어릿광대의 나비》를 읽다보면 평소에 우리가 잘 쓰지 않는 머릿속 어딘가가 개방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머릿속 어딘가에 오랜만에 드리워진 따뜻한 빛에 잠깐 동안 눈부심을 느끼고 약간의 적응 시간을 가진 후 입을 오므려 그동안 쌓여 있었던 먼지를 조금씩 후후 불어내고 간질이며 자극하는 말랑말랑한 느낌…, 책을 읽는 행위가 이토록 신비로운 경험인지 그동안은 미처 몰랐습니다. 줄거리 요약, 함축적 의미해석, 공감대 형성 등과 전혀 무관한, 완전히 다른 형태의 새로운 기쁨… 이런 느낌이 혹시 미래의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란 것일까요.
《어릿광대의 나비》는 분명 낭만적이고 매력적인 느낌의 공상을 그린 소설이지만, 이를 부정하는 요소도 많을 거라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물 상자 속에 든 보물의 진위여부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상자 속에 든 보물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런 소설을 읽는 동안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기분에 휩싸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보물 상자에 맞는 열쇠를 만들기 위해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신비로운 감각들이 소중한 것입니다. 소설의 표면적 의미를 쫓기 위해 어릿광대처럼 포충망을 휘두르며 착상의 나비를 잡으려 노력할 것이 아니라, 팔이 셋 달린 사람이 수예로 정교하게 짠 이 소설의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야 할 것입니다.
그가 남긴 문장에서는 격조도 어조도 마구잡이로 섞인 잡다한 웅성거림으로 시작해, 서서히 하나의 목소리로 정리되어 가는 모습이 보이곤 한다. 처음에는 그저 연쇄된 소리를 들리는 대로 옮긴 것으로 보이던 것이 맞춤법이 애매한 문장으로 자라나서, 서서히 비유 표현을 갖추고 오탈자를 줄여 문장의 모습을 이루어 가는 모습은 이상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효과가 있다. (어릿광대의 나비, 36쪽)
말을 배우는 과정이 수예의 진보와 함께 이루어지는 이상, 내 어휘는 수예 용어와 요리 용어를 중심으로 한다. 거기서부터 부족한 게 더해져서 내 말은 짜이고 익는다. 요리 책을 쓰겠다고 나설 만큼은 미각이 발달하지 않았다. (어릿광대의 나비, 54쪽)
그렇게 해서 나는 떠올린다. 내가 잊는 것은 기억 그 자체가 아니라 기억이 담기는 장소의 주소이다. (어릿광대의 나비, 56쪽)
그 나날에는 서로가 서로의 도구에 가까웠다는 기분이 희미하게나마 든다. 인간이 아닌 도구라고 한다면 언제든 누군가에게 수집되어, 혹은 스스로의 의사로 언젠가는 이곳에 오게 될 것이다. 그게 대체 누구였는지 나는 더 이상 기억하지 못 하겠지만. 아마 얼굴을 봐도 모르겠지. 실제로 대면해도서도 모를 것이다. 되풀이되는 이름은 호소다. 같은 일을 계속하려고 했지만 줄곧 다른 일이 일어나면서, 내 손을 거친 것들에, 내가 아닌 것들이 섞여 들어온다. (어릿광대의 나비, 84쪽)
다시 말해 닮았다는 뜻이다. 남들과 다른 방식이 닮았다는 뜻. 왠지 우울해졌다. 고독이라는 개념은 개념으로 존재한 시점에서 고독과 멀어지고 만다. (마쓰노에의 기록, 107쪽)
이야기의 내용은 그 정도이지만, 그렇게 된 것은 마쓰노에의 번역 때문이었다. 마쓰노에는 얼굴 가죽을 쭉쭉 벗긴다는 게 오죽 마음에 들었는지 묘사를 대폭적으로 늘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그럭저럭 정상적인 결말을 삭제해서 계속 가죽만 쭉쭉 벗기는 이야기로 만들었다. 나로서도 역시 그건 좀 그렇다 싶었는데, 읽다 보니 줄거리고 뭐고 상관없이 그냥 계속 가죽만 쭉쭉 벗기는 묘사가 굉장히 재미있게 느껴지면서 이대로도 괜찮겠다는 기분이 되었다. (마쓰노에의 기록, 144쪽)
당신들은 진실만을 쓰는 게 아니잖아요. 진실만을 쓰는 게 아닌데, 진실조차 다 쓰지 못하죠. (마쓰노에의 기록, 146쪽)
생각은 해도 뭘 하면 되는지는 아직 모르겠어. 바뀐 것은 내 인식이지 이 세상이 아니니까 말이야. 실제로 내가 일으킬 수 있는 행동은 무엇 하나 변한 게 없어. 앞으로 변할 가능성도 거의 없고. 내가 쓰는 내용은 변해 가겠지. 하지만 글자가 변하는 건 아니야. 변함없이 괴상한 이야기를 쓰게 될 뿐이야. 거기에 대해서는 포기하고 있어. 자네 역시 이런 경험을 했다고 해서 지금까지와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고.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바라고 있는 걸까. 나는 나의 바람을 자네가 나를 대신해서 이해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어. (마쓰노에의 기록, 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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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동안밖에 읽을 수 없는 책이 있으면 좋겠다.
읽을 책을 결정함에 있어서 꼭 빠트리지 않는 것이 바로 인터넷으로 제공되는 미리보기다. 그러나 그때는 미처 몰랐다.
그 일은 도쿄-시애틀 사이를 잇는 비행기 안에서 일어났다고 했다.
내 무릎 위에는 매점에서 산 <팔이 셋 달린 사람에게 털어놓는 이야기>가 놓여 있었다.
비행기 안. 에이브럼스씨.
아, 책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을때,
오묘하고 기묘한이라고 표현하기에도 부족한, 독자들에게 '나잡아봐라'하며 장난 혹은 게임을 걸어오는 듯한, 그래서 따라잡고 싶어지는, 그러다가 순간 욱~하고 오기가 발동하게 되는 그런 책이 바로 <어릿광대의 나비>였다. 생각하기도 했으나, 두번째 중편 <마쓰노에의 기록>을 통해 앗~ 당했구나하며 나는 폭소를 터뜨렸다.
나는 그의 번역자이고 그는 나의 번역자이다.
전위문학이라해도 친절한 구석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되면서, 그간 짙게 드리웠던 혼돈의 안개들이 어느정도는 걷히는 느낌이었다. 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아닐까 그 모습을 상상해 보게 된다. 사뿐사뿐 그 곁을 날고 있을 나비도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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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결말이 궁금해지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도 전혀 예측 불가능한 소설, 읽고나서 한참을 멍한 상태가 되게 하는 소설, 한마디로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가 바로 이 소설 <어릿광대의 나비>일 것이다. 이야기 속의 또다른 이야기에 빠져 길을 잃고 허우적 거리다 겨우 벗어난듯 싶으면 또다른 미궁에 빠져들게 만드는 이 기묘한 이야기를 어떻게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책은 과거와 현재, 환상과 현실,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무색하게 이 모두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함께 언어의 유희가 흥미롭게 펼쳐 진다.
다소 난해한 이 이야기는 작가’ 도모유키 도모유키와 부유한 사업가 A. A. 에이브럼스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이 만남 부터가 심상치 않다. 여행 중에는 책이 잘 읽히지 않기 때문에 여행하는 중에만 읽을 수 있는 책을 꿈꾼다. '여행하는 동안에도 읽을 수 있는 책 같은 건 재미없다. 어떤 일에나 적절한 때와 장소가 있을 것이며,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것 따위는 결국 어중간한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다'.(p.9~10) 제법 인기를 끌게 되자 부를 얻게 된다.
한참 이야기에 집중하여 읽다보면 느닷없이 그 모든 이야기는 또다른 소설속의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만다. 앞선 이야기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거나 이미 사라져 버린 언어등 가장 다양한 언어로 글을 쓴 작가 도모유키 도모유키의 소설 '고양이 아래에서만 읽을 것'의 번역 원고였음이 드러나고 . 이후 소설에 대한 소설 이야기와 그 소설을 쓴 인기 작가' 도모유키 도모유키'의 행방을 추적하고자 고용한 사람들과 모로코의 고도 페즈의 뒷골목,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카페, 가공의 나비가 날아다니는 기묘한 숲 속까지 세계 곳곳을 누비며 그를 좆는 과정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신비스러운 이야기와 더불어 또다른 작가의 인상이 겹치게 되면서 얽히고 설킨 이야기의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게 된다. <어릿광대의 나비>는 말하자면 ‘하나의 상황에 특화된 이야기’라는 작가의 기막힌 발상에서 시작된 미래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부엌과 사전은 닮았다. 하루의 요리를 마친 뒤 그날 한 요리를 돌이켜 보고, 뭐가 남았는지 생각하면서 사다 놓아야 할 것들을 떠올린다는 점이 그렇다. 늘 뭔가가 모자라서 손에 닿는 것을 대신 쓰게 되는 점도 닮았다. 조합에 정답이 없는 점이나 손질을 좀 하기만 하면 어떻게 당장은 넘길 수 있다는 점도..... 차례차례 단어가 떠올라 목까지 오는데, 머리까지는 결국 오지 않는다. 오기는 하는데 그건 이미 다른 언어로 치환된 뒤이다. (p.43~44)
굳이 말하자면 사는 건 상관없어도 여행은 싫어하는 편이다. 이동하는 게 싫은 것이 아니라 지나쳐 버리는 것이 거북하다. 관광지에는 흥미가 없고 그 주위에 사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 건 재미있다. 요일이나 시간대에 따라 사람들의 흐름이 변화해 가는 것을 익혀 가는 게 즐거운데 잠깐 동안에는 그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 ( p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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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가는 오늘도 새로운 꿈을 상상한다. 그것이 영화 감독이라면 우리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우리 눈 앞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워쇼스키 형제(물론 지금은 남매이지만)의 매트릭스로 관객들의 눈이 휘둥그레 졌다면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는 3D의 세계로 우리들을 이끌었다. 스티브 잡스의 전화가 하나가 세상 모든 사람들을 그 전화기 속으로 끌어들였고 동물잡이?에 혈안이 되게 만들었다. 일본 미스터리 작가들의 상상은 우리를 수많은 추리와 긴장감을 부여잡은채 책 앞에 붙들어 놓고 있다.
철저하게 외면 받다가도 어느 한 순간 혁명처럼 다가오는 꿈 같은 이야기들이 있다. 영화속에 잠깐 등장했던 사과회사?의 xx패드는 현실이 되어 우리의 일상을 바꾸었고, 디지털 시계에 자리를 내주었던 오래된 시계들은 엔틱이란 이름을 달고 다시금 자신의 위치를 찾는다. 전자책의 인기속에서도 종이의 내음을 잊지 못하는 독자들이 있는 것처럼, 상상은 상상을 초월하기도 하지만 미래의 상상을 벗어던져 버리기도 서슴지 않는다.
'그 일은 도쿄 - 시애틀 사이를 잇는 비행기 안에서 일어났다.'
두서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떠들게 된다. 바로 책 한 권이 이런저런 두서없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어릿광대의 나비>, 엔도 조의 작품인 이 예쁜 제목을 한 책이 그랬다. 일본의 권위있는 신인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다는 이 작품은 정말 독특하다. 독특해도 너~~무 독특하다. A.A 에이브럼스, 기발한 경영방침으로 다양한 회사를 팔아 많은 돈을 번 재산가, 그리고 다언어 작가라는 도모유키 도모유키와 비행기, 나비, 여행, 수수께끼의 작품... 이런 단어의 나열이 아마도 <어릿광대의 나비> 이 독특한 작품을 설명 할 수 있는 전부가 아닐까 싶다.
'이것도 인연일 텐데 둘 중 하나를 드리지요. 어릿광대 나비건 어릿광대를 잡는 망이건 둘 중 하나를.' 망에서 나비를 빼낸 노인이 그 둘을 오른손과 왼손으로 저울질하며 대답을 기다렸다.' - P. 95 -
물론 A.A 에이브럼스와 도모유키 도모유키라는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 누구 하나를 주인공이라고 섣불리 말하기가 쉽지 않다. 비행기속 여행, '고양이 아래엣만 읽을 것'이라는 작품, 상상의 나비... 등 다양한 소재들이 있지만 어느것 하나 작품의 주된 소재가 되었다고 단정하기가 쉽지 않다. <어릿광대의 나비>, 그리고 엔조 도 라는 작가는 또 한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바로 '이상(李箱)'과 그의 작품 '오감도'이다. 천재 작가라 불리는 이상, 그리고 난해하기 그지 없는 작품 오감도... 쉽게 이해하기 힘든 작품, 그리고 그것을 만든 주인공들...
13인의 아해가 도로를 질주하오. ... 제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2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 13인의 아해는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와 그렇게뿐이 모였소 ...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소... - 이상의 오감도 中에서 -
이상이 오감도속에서 13이라는 숫자속에 식민지 조국을, 예수와 12제자를, 불길한 숫자 13을, 무서움과 불안이라는 다양한 의미를 담았듯, 엔조 도 역시 '나비'라는 것을 통해 다양한 색깔의 의미와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유로운 연상과 상상, 다양한 문학적 실험이 예쁜 제목 때문에라도 가볍게 선택했던 이 책에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 든다.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했던 나비의 날개짓이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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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저펜 독자 서평에 이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읽는 그림일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영상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나비가 한 마리 등장하지만 그것은 실제 현존하는 나비가 아니라 상상속의 나비였다. 모자를 뚫고 지나가기도 한다. 무엇이 현존하는 것이고 무엇이 상상 속에 있는 것인지 그 경계가 모호한 데서부터 이야기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재미나게도 저자 프로필에는 물리학과를 졸업하였다는 이력이 보인다. 그 후 문화연구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고 한다. 중간에 간단한 함수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부분도 한 부분 나왔다.
3차원의 시야로 읽어서는 도통 헷갈려서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말 것 같은 이야기이다. 무척 추상적이면서도 공감되는 이야기, 시공간을 초월하는 것을 봐서는 4차원 뿐 아니라 5차원, 6차원까지도 바라볼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할 것 같은 이야기라는 인상이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흔히 스쳐지나갈 수 있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보는 것, 그 부분이 무척 신선하면서도 공감이 되었다.
굳이 말하자면 사는 건 상관없어도 여행은 싫어하는 편이다. 이동하는 게 싫은 것이 아니라 지나쳐 버리는 것이 거북하다. 관광지에는 흥미가 없고 그 주위에 사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 건 재미있다. 요일이나 시간대에 따라 사람들의 흐름이 변화해 가는 것을 익혀 가는 게 즐거운데 잠깐 동안에는 그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 p63
수학여행 때 버스에서는 줄창 자다가 관광지에 내려다주면 사진이나 찍어대며 슬쩍 지나치고 다시 버스타고 자던 기억이 떠오른다. 관광명소라고 하니까 한 번 그곳을 밟아보는 것, 그것도 나름의 의미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나 역시 관광지의 유명한 맛집보다는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낯선 골목 한 켠에 있는 식당을 발견하고 그 지역 구수한 말로 말씀하시는 분의 손길로 만든 음식을 먹는 것이 더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반지는 반지, 보석은 보석이면 족하지 않을까. 인간을 장식한다는 목적에서 벗어나 보면, 보다 아름다운 커팅 방식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한다. p66
내 몸에 붙이고 달고 있어야만 하는 것. 그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까. 물론 보석이든 반지가 없어서 이런 부분에 끌렸는지도 모른다.
소설은 하나의 철학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경험을 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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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상 심사평이 "아쿠타가와 상에 선정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 자체가 힘든 소설"이라는데... 직접 읽어보니 100% 동의한다. 이 소설에 대해 뭐라고, 어떻게 말해야 할까 참 난감하다.
아주 얇은 책이고 분량도 많지 않은 두 편의 중편 소설 [어릿광대의 나비]와 [마쓰노에의 기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3번을 읽고서야 어느정도 맥락을 이해하게 되었다. 처음 읽고난 뒤엔 이게 뭐지? 시공간이나 시점을 무시한(?) 전개나 독특한 상상력은 그렇다치고, 문장 자체가 막 어려운 건 아닌데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두번째 읽었을 땐 조금 나아졌고 이야~ 대단한데? 싶었고. 세번째 읽었는데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나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것도, 엔딩을 이해하지 못하겠단 말이다!!!)
좀 더 읽으면 이해할 수 있을까? 정말 평범한 독자로서는 뭐라 형용하기조차 어려운 소설이다.
문장 자체로는 크게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는데, 사건의 순서가 과거와 미래에서 뒤바뀌고 누가 누구인지 짐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저 대단히 이색적인 맛을 느낀 외국 음식이랄까? 그런 기분이다.
언어를 희롱하는 작가? 이것도 문학의 진보라면 진보일 것이다. 웬만한 예술은 인류 역사를 되짚어보면 나올만큼 나왔다고 하지만, 아직도 이렇게 종잡을 수 없는 언어 유희가 새로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은.
언어(외국어) 학습과 번역에 관한, 또 기억과 착상에 관한 난해한 이야기이다.
결국 모두가 다 도모유키 도모유키인가? 도모유키 도모유키의 참모습은 무엇인가? 도모유키가 나비인가?
뭔가 속시원하게 풀어내지지 않는 것은 내 사고의 깊이가 얕아서인가 아니면 독자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것인가.
이거 번역도 참 난감했을 것 같다. 상당히 대단한 작품임에는 틀림없고, 읽는 동안의 지적 유희도 꽤 즐거웠지만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굉장히 비현실적이지만 나름 재미가 있다. 엔조 도,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 이쯤되면 논란의 여지도 있었을테고 문학계를 술렁이게 하고도 남았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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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릿광대의 나비 :::서평::: 어릿광대의 나비/ 제146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글쓴이 : 엔조 도 옮긴이 : 김수현 출판사 : 민음사 장르 : 소설 발매일 : 2012.11.01 가격 : 12,000\
일본 문학계를 뒤흔들었다는 2012년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어릿광대의 나비>. <어릿광대의 나비> 를 쓴 '엔조 도'에 대해서 약간의 검색을 해보니, 72년생으로 젊은 문학파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기존의 작품들도 줄줄이 문학상을 수상할정도로 일본에서 신예작가로 입소문이 난 인물인데, 그의 작품 제목들속에서 약간 특이한 제목의 책을 찾았다. '이것은 펜 입니다.' 지금 서평을 할 책인 <어릿광대의 나비> 만 보아도 독특한 성향을가진 작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전작 제목을 보니 '아.. 이사람 특이한 생각을 가지고 글을 쓰는게 분명하군.' 이란 생각이 기정사실화되었다.
사진속에 보이는 책의 라벨에도 이미 이 책에 대해 대부분의 평이 적혀있는데 그건 바로 '정체불명 / 형용불가, 일본 문학계를 뒤흔든 최대의 문제작' 이라는것이다. 책을 읽다보니 이런 책이라면 일본문학계뿐만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최대의 문제작으로 손꼽힐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한페이지 한페이지 모두 정체불명이고 이해불가이다.
<어릿광대의 나비> 는 절대로 유쾌하고 재밌는 소설은 아니다. 독자가 몇번이고 이해하며 읽어야 조금은 이해가 갈듯한, 요상한 언어와 문장들이 반복되는 이게 소설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정도로 복잡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어릿광대의 나비>는 처음엔 '도모유키 도모유키' 의 고양이 아래에서만 읽을것. 이라는 소설의 전체 번역본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음부터 스토리의 전개를 생각하고 집중해 책을 읽던 나로써는 기가 찰 노릇이다. 소설을 쓴 소설가 말고도, 소설속의 또다른 작가와 또다른 소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다른 작가와 다른 소설에대한 잔뜩 얽혀 풀어지지도않는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독자로써는 나도모르게 이야기를 받아들이기위해서 이 복잡한 이야기를 풀어낼 실마리를 찾게되는것이다. 그리고 또 이야기를 읽어나가지만 이내 또 의문점을 갖게되고, 등장인물에대한 의심을 하게된다. 요상한 단어들과 5차원적인 발상이 그야말로 이 책에 가득 담겨 이야기로 풀어져있다.
이 오묘하고도 이상한 소설속에도 충격받을만한 구절이 곳곳에 많이 숨겨져있다. 이런책을보고 받는 충격이라함은, 이 기묘한 이야기들때문인것인가 또는 미친듯 얽혀있는 스토리들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독자로하여금 등장인물 한사람한사람에게 의심을하게 하기 때문인것인가 라는 생각을 줄곧 갖고 읽어나가다가 몇몇 구절에서 '아 이런 독특한사람-....' 이라는 탄식이 나올정도로 마음에 쏙 드는 구절들을 찾아내는 충격도 있었다.
예를들어... 위에 사진에 찍어낸 구절이라던지.
p.96 뭔가 떠올리거나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 이 몸에 그런 기능은 없다. 그런 기능을 쓰기 위해서는 뭔가의 머리를 빌려야 한다. 나는 남자의 머릿속에 알을 하나 낳았다. 알에서 부화한 그녀는 말을 먹고 자란다. 이렇게 나는 사고를 이어 간다.
1부 어릿광대의 나비 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는 구절들이다. 읽는자의 재미를 위하여 길게 구절을 모두 작성하지는 않았지만, 이 책의 매력을 조금은 맛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노골적으로 누군가를 지목하지않지만, 책을 읽으며 페이지를 넘기며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게만드는 하지만 그 생각들을 또 지우고 다른자를 의심하게만드는 기묘한 책이다.
그야말로 요상하고 기묘하고 충격적이라고밖에 표현할수가 없다. 거듭 말하지만, <어릿광대의 나비> 는 유쾌하고 재미있는.. 또는 달달한 로맨스 소설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충격들을 나도 한번 겪어보고싶다 라는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싶다. 일반적인 잔잔한 소설들에 지루해져있는 당신들에게 <어릿광대의 나비>는 충격을 선물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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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았을 때, 일본의 대부분의 책처럼 아담하고, 얇아서 금방 읽을 수 있겠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표지가 하얀색이고, 동그란 회색 무늬가 입체적이어서 굉장히 오묘하면서, 신비한 느낌을 주는 표지였어요. 그리고 빨간색의 얇은 커버 위에는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이라고 써져 있어서 "어떤 책이길래, 이런 상을 받았을까?"하는 궁금증도 생겼어요. 책을 읽는데, 저는 하나의 소설로 이루어진 책일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구요. 읽다 보니 두개의 작품으로 나뉘어진 책이었어요. 어릿광대의나비라는 작품과, 마쓰노에의 기록이라는 작품이었어요. 두 작품 모두 흥미롭고, 재미있는 작품이었어요. 그런데 용어가 새로워서 설명이 없었으면 이해를 못할 뻔 했네요. 다행히도 작가님께서 설명을 잘 해주셔서 이해가 쉬웠습니다. ^^ 책을 읽으면서 제가 느낀 느낌으로는 작가님께서 설명하듯이 책을 쓰신 느낌을 받았어요. "독백으로.", "걸까."이런 문장이 많았어요. 뭐랄까. 툭 내뱉듯이 쓰는 느낌이랄까요? 자유롭고, 편한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글씨 한자 한자 단어가 굉장히 선택을 잘 한 세련된 느낌도 있어서 "상을 받을 만 하구나"하고 느꼈던 책이예요. 아쉬웠던 점은 한국과 일본의 정서는 역시 다르구나! 하고 다시 한번 느꼈다는 거예요. 저는 읽긴 읽는데, 공감을 크게 하지 못한 점? 그게 조금 아쉬웠던 것 같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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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읽는 내내, 감히 아주 아름답게 가공된 문장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수 많은 작가들과 번역자들이 책을 내면서 가장 불편한 부분은 아마도 '내 글이 어떻게 읽힐까?'가 아닐까 싶다.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다보면 처음에 작가 자신, 번역자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 표현하고자 했던 말들은 흔들릴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어릿광대의 나비"는 그 서술방식과 짜임새가 작가의 자유로운 사고를 마음껏 나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잘 짜여진 '망'처럼 구성이 되어있지만 그 무엇도 구속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날아 다니는 나비처럼 너무도 자유롭게 이곳, 저곳을 날아다닌다.
내가 익숙한 언어로 쓴 글을, 그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번역하고, 그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번역한 글을 그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내가 읽는다. 동일한 그 무엇이 전혀 다른 그 무엇이 되는 그 과정에서 때로 진정 내가 하고자 하던 그 무엇을 찾을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하는 듯하다.
활자를 읽으면서 무엇이가를 '분석하고자 하는 노력' 보다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그 동기 자체에 집중하게 되는 책이다. 낯선 구성과 낯선 서술. 깔끔하게 읽히는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수많은 우연들이 우연이 아니고, 어쩌다 얻어진 결과들이 마냥 나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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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릿 광대의 나비'와 '마쓰노에의 기록'이라는 두 편의 중편 소설을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되어 있는 소설 모음집이고 이중 한 편을 책의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한 편의 분량은 산술적으로 대략 100쪽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읽어 갈수록, 여러가지면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글자를 읽는 것이나 문장, 짧은 단락 그 자체로는 이해가 어렵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이 책에서 전달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책을 읽었지만, 이런 결과적인 난해함 때문에 다시 한 번 더 읽을 수 밖에 없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의도나 메시지는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상당히 혼란스럽고 어려웠습니다. 지금의 저로서는 혼란스럽고 답답함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듭니다. 별 생각없이 넘어갔던 앞표지를 보다보니 일본의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하는데요 이런 내용의 책이 번역된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뭔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문학상을 수상한 것을 보니 저 스스로의 이해도에 대해 많은 아쉬움을 느낄수 밖에 없지만, 나중에 다시 읽어보고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제 스스로가 얻은 해답입니다.
더 나은 결과를 얻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새롭고 혼란스러운 소설을 경험해 보고 싶은 분들에게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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