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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선도부대 기독교의 이성적 맹목성에 대해서
"제국주의 선도부대 기독교의 이성적 맹목성에 대해서" 내용보기
삼신할미의 사당이 마을을 내려다보는 중국의 한 촌락에 십자가의 첨탑을 높이 세운 성당의 오만한 계몽의 침략이란 상징적 충돌을 통해 20세기 전후 중국사회와 중국인들의 삶을 투영하고 있다. 그것은 종교를 앞세운 서구제국주의의 근대화의 민얼굴과 여기에 대처하는 중국인들의 양가적인 양태들 속에서 부글거리는 선망과 질시와 좌절과 분노의 본질에 대한 탐색이라 할 것이다. 여
"제국주의 선도부대 기독교의 이성적 맹목성에 대해서" 내용보기

삼신할미의 사당이 마을을 내려다보는 중국의 한 촌락에 십자가의 첨탑을 높이 세운 성당의 오만한 계몽의 침략이란 상징적 충돌을 통해 20세기 전후 중국사회와 중국인들의 삶을 투영하고 있다. 그것은 종교를 앞세운 서구제국주의의 근대화의 민얼굴과 여기에 대처하는 중국인들의 양가적인 양태들 속에서 부글거리는 선망과 질시와 좌절과 분노의 본질에 대한 탐색이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 한국문학들이 카톨릭이라는 서양 종교의 박해라고 말하며 종교적 자유를 억압했다는 식의 편협한 관점에서 근대화,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인간의 삶 전반에 미치는 성찰이라는 역사 인식으로 확장되어야 함을 각성케 된다.

 

‘장마딩’이란, 선교를 위해 중국으로 건너온‘지오반니’라는 수사(사제)의 중국식 이름이고, 그의 신앙적 아버지인‘꼬르’주교의 애정의 산물이랄 수 있다. 이들에게 토속신앙으로 삼신할미를 모시는 중국인들은 한낱 우매한 이교도일 뿐이고, 그들의 사당은 하느님의 성전인 성당과 공존할 수 없는 우상에 불과한 것이다. 반면 소박한 동양인들은 서구의 물질문명에 휘둥그레진 눈으로 경외와 선망, 경계와 질시의 시선을 갖는다. 욕망을 자극하지만 선뜻 다가가기엔 왠지 불온한 무엇인 것이다.

 

소설은 이 두 경계가 부딪쳐 마침내 피와 죽음을 촉발하는 사건의 중심에 장마딩을 세운다. 그가 이교도들의 뭇매에 사망하지만 부활하는 것이다. 부활이란 의학적 생체의 회복에 불과하지만 주검과 동일한 몇 일간의 실신은 이교도의 핵심을 무너뜨리기에 더할 수 없는 명분이 된다. 이로 인해 마을 이교도의 핵심 인물이 참수되고, 그의 아들을 낳지 못한 여인 왕석류(장왕)의 자기 속박은 집착과 광기, 그리고 원한과 복수라는 분노를 낳는다. 주교는 장마딩의 부활을 숨긴 채 토착신앙 말살 도모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남편을 잃은 여인의 광기는 삼신할미의 현영(現影)이 된다.

 

이것은‘의화단 사건’이라 불리는 1899년 중국 화북지역으로부터 확산된 반제국주의, 반기독교 농민투쟁이라는 무력적 배외(排外)운동이 왜 촉발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스냅사진들이 되어 그 단면들로 이어진다. 내쳐진 장마딩의 고난의 일정들, 의화단 일파들이 벌이는 강간과 폭력, 성당을 에워싼 분노한 농민들, 성당 마당에 누운 즐비한 사체들, 등등이 그러할 것이다. 기독교의 종교적 폭력, 분노한 농민의 저항으로서의 폭력이 충돌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과 서, 토착신앙과 기독교의 화해가 왕석류와 장마딩의 조우로 상징화된다.

 

진실의 속죄를 위해 찾아든 삼신할미 사당, 죽은 남편의 씨를 잉태하여야 한다는 여인의 광기어린 집착은 장마딩에게 참수된 남편의 환영을 덧씌운다. 그리곤 소설은 슬그머니 인간의 몸을 빌려 동서의 물질적 결합을 통한 융합을 그려낸다. 그러나 서양의 유일신 숭배 종교인 기독교는 결코 또 다른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그런 관용의 신앙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장면은 꽤나 이상적(理想的)이고 가능치 않은 낭만적 지점에 멈추었다는 인상을 준다. 게다가 장마딩이 죽음에 이르러 남긴 표제인‘여덟째 날’이 기독교의 신이 7일간 세상을 창조하고 난 다음의 날이라는 뜻에서 신의 손아귀를 벗어난 새로운 세계, 삶의 새로운 의미를 상징하고 있는데, 이것이 인간의 삶과 죽음이라는 현상에 대한 엄숙한 승인으로서 근대화라는 이성의 맹목성을 거부하는 몸짓인지 끝내 해독하지 못하고 말았다.

 

또한 장마딩의 죽음에 덧씌운 인간의 절망이니 구원이니 하는 임의적인 환상이나, 후에 태어난 혼혈아들이 거룩한 화합이나 되는 냥, 무언가 숭고한 삶의 가치를 말하는 냥 하는 것은 어떤 유치함마저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서구 제국주의의 선도부대로서의 기독교의 폭력성과 비굴할 수밖에 없었던 당대 동양의 현실을 수려한 문장으로 지펴낸 작품임에 이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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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충돌이 파괴하는 인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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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충돌이 파괴하는 인간성 침탈의 근현대를 겪은 나라들이 겪는 대부분의 현상은 고유의 문화를 만들어왔던 나라들의 사람들에게 대단한 혼란을 안겨주었다. 특히, 사양의 제국주의가 날로 그 맹위를 떨치던 19세기의 아시아는 격동의 시간을 보냈다. 강한 물리력을 기반으로 한 서양 제국주의자들이 문명이나 종교의 탈을 쓰고 아시아의 나라들을 침략해 수천 년 이어온 문화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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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충돌이 파괴하는 인간성

침탈의 근현대를 겪은 나라들이 겪는 대부분의 현상은 고유의 문화를 만들어왔던 나라들의 사람들에게 대단한 혼란을 안겨주었다. 특히, 사양의 제국주의가 날로 그 맹위를 떨치던 19세기의 아시아는 격동의 시간을 보냈다. 강한 물리력을 기반으로 한 서양 제국주의자들이 문명이나 종교의 탈을 쓰고 아시아의 나라들을 침략해 수천 년 이어온 문화와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데 앞장선 것이다. 이러한 혼란은 나라마다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중국을 비롯한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양상으로 벌어진 것이다. 조선 정조 왕 이후 천주교에 대한 박해로 시작된 인간성에 대한 파괴는 어쩌면 문화의 충돌이 가져온 어쩔 수 없는 역사의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종교라는 외피를 쓰고 자국의 이해요구를 관철시켜왔던 침략의 역사는 십자군전쟁처럼 종교의 이념을 넘어선 현실의 이해요구와 직결되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나라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어오며 침략과 때론 문화적 강요를 서슴치 않았던 중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1900년의 의화단 사건 전 후 근대 중국이 세계와 맞닥뜨리는 과정은 그야말로 광적이며 중화사상에 빠져있었던 중국에게는 굴욕적인 시기였다. 문학은 이런 시대적 경험을 놓치지 않고 무대로 끌어 들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각을 달리하는 두 부류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민족적 시각에서 외래문화를 바라보는 것과 이와는 반대로 외래문화에 보다 적극적인 수용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 그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의 관점보다는 자신이 살아온 곳과 살아갈 곳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바른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 아닌가 싶다.

 

‘서구 중심담론이나 그 문예이론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는 것이 중국인과 중국어의 정체성을 스스로 버리는 행위라고 여기고 중국 문학의 토속성과 전통성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작가 리루이의 ‘장마딩의 여덟째 날’를 통해 그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리루이의 ‘장마딩의 여덟째 날’은 1900 전후 시기 의화단 사건이 일어나던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인류문명의 발전과정에서 외래종교외 토속신앙이 충돌하고 동화될 때 신성함과 뒤엉키게 되는 폭력, 그 폭력을 행사하는 인간의 욕망’을 중심 주제로 삼고 있다. 선교를 위해 가톨릭의 주교와 이를 따라온 수사는 중국에 온 이들은 하늘바윗골이라는 고장에서 강한 토속신앙의 저항에 부딪힌다. 이를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주교는 무리수를 두게 되고 이 과정에서 폭력이 발생하여 사람이 죽게 된다. 장마딩은 젊은 수사의 중국이름이다. 종교적 맹목성이 불러온 파장은 그에 한 장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의 파괴에까지 이르게 된다.

 

문화적 충돌이라는 상황에서 피할 수 없이 겪게 되는 인간들의 혼란이 인간들의 삶을 파괴하기에 이른다. 맹목적인 종교의 횡포, 정체성에 대한 도전에 대항하는 사람들의 혼란과 인간의 욕망이 불러온 파국 등 이런 총체적 난국에 직면한 인간은 어떤 미래를 기대해야 하는 걸까? 한과 슬픔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미래는 무엇일까? 작가 리루이는 여자 주인공을 나무대아를 타고 강을 따라 흘러 보내고 있다. 불안한 나무대아와 어디로 갈지 모른 강에 홀로선 인간의 모습은 ‘나의 세계는 여덟째 날부터 시작된 것이다’라는 장마딩의 묘지명의 그것과 연결된 것이 아닌가 싶다.



m*****8 2013.01.20.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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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장마딩의 여덟쨰 날
"[서평]장마딩의 여덟쨰 날" 내용보기
이책은 첫느낌은 뭐랄까? 뭔가 슬픔을 간직하고 잇는 듯한 느낌을 받은 책이라 생각이든다. 뭔가 사연이 많을거 같고 고달픈 인생을 살아가는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표지를 보면 아리따운 얼굴 속에 숨겨진 눈물겨운 슬픈이야기들이 한가득 실려잇을 듯한........ 간만에 읽으면서 울겟구나 라는 생각이 잴먼저 들엇다. 리루이 작가님의 책이라? 처음 접하는 거라 설렘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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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첫느낌은 뭐랄까? 뭔가 슬픔을 간직하고 잇는 듯한 느낌을 받은 책이라 생각이든다.

뭔가 사연이 많을거 같고 고달픈 인생을 살아가는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표지를 보면 아리따운 얼굴 속에 숨겨진 눈물겨운 슬픈이야기들이 한가득 실려잇을 듯한........ 간만에 읽으면서 울겟구나 라는 생각이 잴먼저 들엇다. 리루이 작가님의 책이라? 처음 접하는 거라 설렘반 으로 읽어내려갔다.

서양문화가 중국에 들어오면서 일어나는 종교문화의 변화들을 설명해놓은 듯한 책이라는 느낌을 받앗다.

중국에 서양의 기독교가 들어오게 되면서 시작하면서 서민들의 일상과 그 시대의 이야기를 잘 풀어놓은 이야기라고 할수 있다. 이책에서는 자신의 이익과 인권으로  장씨가문과 여러가문과의 싸움이 일어나면서 가뭄로 심하엿던 데다가 굼주림과 자신들이 살기위해서 투쟁을 하게되고 삼신할멈을 모시고 잇던 사당과 성당의 종교전쟁으로 일을 커져 버린다고 한다. 나도 이런상황이 온다면 그렇게 행동 햇을지 싶다. 제일 참기 어려운것이 추위와 배고픔인데.... 나같아도 눈이 뒤집어 지지 싶다. 이책을 보면 그시대에 일어낫던 일이면 한줄한줄 자세히 잘설명되어 있어 마치 그시대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같은 느낌도 받앗다.  여기에서도 힘없는자는 한없이 사람대접도 못받고 힘들엇을거 같은 느낌이 팍팍들엇다.

역시 돈.권력이 잇어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인듯싶다 .지금이시대와 별다를게 없다고 생각이 든다.

정말 읽는 내내 안타깝다는 느낌을 너무 받앗다.

장마딩.. 그녀는진실,,믿음만이 하나님을 섬기고 하는 거라며 진실을 밝히게 되지만 화가 많이난 민중들이 서로서로 죽고 죽이는 그런상황까지 오게 된다고 한다.

 정말 끔찍하고도 끔찍한. 이해가가면서도 한편은로는 안타깝다 정말. 눈물이 날 정도엿으니 말이다. 중국이란 나라에 대해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엇다. 중국이란 나라도 아픔과 고통을 껶엇엇구나~ 라는.

이제는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앗음 하는 작은 소망으로 이책을 마무리 해서 읽엇다. 장마딩의 여덟쨰 날.

이책도 내맘을 울리는 참.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를 가진 책인 듯 싶다.

이책을 아직 읽어보지 못한사람이 있다면 꼭 추천해주고 싶은 정도로 좋은 책인 듯 싶다.

이제 책 표지의 여인의 마음을 좀더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그저 아련하고 슬픈얼굴을 하고 있엇던

표지의 그 여인.. 정말 .. 와닿는다.  표지에 반해서 읽기 시작은 하엿으나.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잇으려고는 생각을 하지 못해서 인지 정말 와닿는 부분이 많앗다. 꼭 조선시대나 그런 시대의 이야기를 보는듯햇다.

시간이 주어진다면 커피한잔을 마시며 다시 차근차근 읽어봐야겟다는 생각을 하엿다. 정말 좋은책중 하나이다. 베스트셀러가 댈듯한.. 느낌이 팍든다.

친구에게도 추천을 해주어야 겟다. 리루이작가님의 작품

처음접하지만 다음 작품도 기대가 무지된다. 기다려진다 .

 

 

 

 

 

b*****1 2013.01.0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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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딩의 여덟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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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루이 <장마딩의 여덟째 날> 삼화      이 책을 읽게 된 사연은 참 거창하면서도 단순하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시선을 오로지 내가 속한 곳만 바라보고 살았다는 사실을 요즘 깨닫기 시작할 때 <26년>이라는 막 개봉된 영화를 보고 들어오면서 내가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그런 무관심은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이 책을 만나게 되었을 때, 중국의 역사속에 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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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루이 <장마딩의 여덟째 날> 삼화 

 

 

이 책을 읽게 된 사연은 참 거창하면서도 단순하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시선을 오로지 내가 속한 곳만 바라보고 살았다는 사실을 요즘 깨닫기 시작할 때 <26년>이라는 막 개봉된 영화를 보고 들어오면서 내가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그런 무관심은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이 책을 만나게 되었을 때, 중국의 역사속에 신음하는 민중의 소리 더 나아가 문학작품속에서는 '나'까지도 들여다 볼 수 있는 두 가지를 노렸다고 해야할까. 그런데 그것은 신중한 선택이었는지 읽어가면서 의문이 들었다. 전반적인 지식도 없이 이야기의 흐름이 손에 잡힐까?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함께 수록된 옮긴이 후기와 중국어판 서평까지 읽으며 작품 해석에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리루이. 자유로운 문예 창작활동을 통제하는 정치적인 검열과 어용담론에 반대하며 오로지 작품으로만 외로운 싸움을 하는 몇 안되는 중국 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한다.  

 

장마딩. 그는 고아원에서부터 수도원에 갈때까지 줄곧 바랄로에 살았다. 5년 전 레 꼬르비노 신부를 따라 중국에 왔고, 스승과 같은 선교사가 되는 게 그의 꿈이었다. 꼬르주교는 자신을 따라 나선 지오반니 수사에게 중국식으로 이름을 붙여 준다. 장마딩. 그런 장마딩이 스스로 성당을 떠나 낯선 이국 땅에서 나뒹굴고 있다.

광서 25년. 꼬박 1년 동안 가뭄 끝에 찾아온 1989년의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고 사람 죽이는 가뭄이 계속 되고 있다. 레 꼬르비노 신부는 중국으로 건너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오랜 세월을 보냈고, 이제는 이 행로가 자신의 육신까지 중국에서 끝나리라는 그런 마음의 다짐을 가지고 중국땅을 다시 밟게 된다. 그러나 하늘어미 강 교구의 하늘바윗골 삼신할미사당은 자신이 넘을 수 없는 커다란 산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차에 챠오, 친, 가오 라는 성씨를 가진 예순다섯 명이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다. 거기에 성당을 지으라고 자신들의 땅 2천 평방미터를 헌납하겠다는 약속까지 하게 된다.

 

이 제안을 털컥 물었던 꼬르 주교는 나중에서야 사건의 중심에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삼신할미사당의 대표적인 장텐츠와 시비가 붙고 그 시비끝에 장마딩이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하여 이 사건은 장텐츠의 참수로 이야기는 마무리 되는듯 싶었다. 그러나 장마딩이 깨어났고, 피를 부른 이 사건은 계속되는 복수로 치닫고 만다.

 

"이게 모두 가뭄 때문입니다. 만약 가뭄의 재난이 아니었다면 그런 기우 같은 집회를 하겠습니까? 굶주린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생기지도 않았을 거고, 아마 그런 충돌도 없었을 겁니다...."

 

"지오반니, 네 말은 잘못됐구나. 그것은 가뭄의 재난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속에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p.170

 

이 가련한 여인은, 자기 때문에 억울하게 남편을 잃은 이 여인은, 꽁꽁 얼어서 뻣뻣하게 굳어 버린 원수를 기적처럼 자신의 몸으로 살려 주었다. p.230

 

서양 세력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중국 사람들의 모습과 무력으로 그들을 무너뜨리려는 서양세력 그것도 역사에서 기독교가 그런 일을 많이 했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으나 그렇게 간단히 말하기에는 참 어려움이 따른다.  성경에서는 신에 의해 7일간 천지창조가 이루어진다. 작가의 의도는 아닐지 모르겠으나 7일간의 날은 신의 영역이라면 나머지 그러니까 이 책의 제목처럼 여덟째날부터는 무엇인가? 거기서부터는 인간에 의한 날이라고 딱 구분하여 말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자유의지'를 통해 각 개인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 가는 각자의 몫에 달려있지 않나 생각하게 한다.

 

자신의 마지막 길에 이교도들을 없애고자 밀어붙인 레 꼬르비노 신부, 이 모든 것이 거짓임을 밝히고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장마딩, 자신이 믿는 삼신할미를 위해 참수를 당한 장텐츠, 그리고 그의 씨를 전파시키고자하는 왕석류. 역자의 말처럼 이들의 모습은 종교적인 맹목성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 자신의 문제는 아니었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그리하여 역사속에서 행해진 참극들은 7일간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의도와 달리 전달되고 행해졌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미움으로 치닫고 마음의 빗장을 굳게 닫은 채 말이다.  

 

 

쎄쎄쎄! (손뼉을 치며) 높은 산에 올라,

말을 타고 싶지만 안장이 없어요.

쎄쎄쎄! (손뼉을 치며) 큰 강을 건너,

다리를 건너고 싶지만 수레바퀴가 없어요.

쎄쎄쎄! (손뼉을 치며) 밤이 깊으니,

등불을 켜고 싶지만 바람이 불어요.

쎄쎄쎄! (손뼉을 치며) 달이 밝으니,

놀러 나간 아이는 집에 갈 생각이 나요.

-북방동요-

 

등장하는 아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한 마당의 놀이처럼, 그저 전쟁놀이처럼 보일지 모르나 실제 현장에서 어른들은 목숨을 부지하고 살기 어려운 세상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들의 삶이 그러하다. 어릴 때 꿈꿨던 어른의 세상이 지금에 이르러서는 하루하루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세상을 어른들이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실망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사는가는 나에게 주어진, 남겨진 몫이리라.
 

YES마니아 : 로얄 g*******s 2013.01.1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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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시작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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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믿음의 글들과 폭력, 죽음에 관한 책들을 연이어 읽었습니다. 이 소설은 이 키워드들이 그대로 녹아 들어있습니다. 리루이라는 대단한 작가를 만나게 된 것도 큰 행운입니다. 아마 종종 이 분의 책을 찾게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무언가 가슴을 꽉 채워나가는 느낌이 들었지요. 아마도 살아가며 생각할 부분들을 많이 남겨 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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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믿음의 글들과 폭력, 죽음에 관한 책들을 연이어 읽었습니다. 이 소설은 이 키워드들이 그대로 녹아 들어있습니다. 리루이라는 대단한 작가를 만나게 된 것도 큰 행운입니다. 아마 종종 이 분의 책을 찾게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무언가 가슴을 꽉 채워나가는 느낌이 들었지요. 아마도 살아가며 생각할 부분들을 많이 남겨 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의 독자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최근 1,2백 년 동안에, 지구촌의 대다수 나라와 사람들은 너도나도 ‘현대화되는’역사를 살았습니다. 다른 문화와 민족, 다른 가치와 전통, 다른 지리적 공간에 따라 천차만별로 살아가는데도 불구하고 너나없이 ‘현대화되는’ 과정에서 많은 비슷비슷한 경험과 기억을 갖게 된 것입니다.”

 

기억의 공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공감이 가는 부분입니다. 시대적인 흐름은 어느 바다 한 가운데서 만들어지는 태풍처럼 또는 이념의 지각 변동을 통해 지구 이끝에서 저끝으로 이동합니다. 이 소설의 배경은 1900년의 중국입니다. 1900년 전후 시기는 근대 중국이 세계와 맞닥뜨려서 가장 광적이었고 가장 굴욕적인 때였다고 합니다. 어쩌면 저자 리루이는 이 아픈 상처를 들어내서 지나온 길을 잊지 않게 해주려는 숨은 의도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를 알면 현재를 이해할 수 있고, 현재를 알면 미래를 바라보는 안목이 생기지요.

 

믿음(신앙)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인간에게 종교는 일부일 수도 있고, 전부일 수도 있습니다. 전부라는 것은 목숨조차도 아깝지 않게 내어 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축복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소설의 중심인물 장마딩은 누구인가. 원래 이름은 지오반니 마틴입니다. 그 뒤에는 가톨릭 사제인 꼬르 주교가 있습니다. 가톨릭은 당대, 원대에 중국에 전파되었고, 명대 말기에 재차 권토중래하면서 많은 지도자급 인사들이 입교, 세례를 받게 됩니다. 가톨릭을 비롯한 서양 종교가 확산되는 만큼 거센 반발이 야기됩니다. 1900년 의화단운동은 중국의 토속 신앙과 서양 종교가 벌이는 전쟁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중심세력인 의화단[義和團]은 백련교(白蓮敎) 일파로 불리는 종교적 비밀결사로서, 당사의 사회모순, 기독교 포교, 독일의 진출 등에 반감을 품고, <부청멸양(扶淸滅洋)>을 부르짖으며 무력적 배외운동을 전개했습니다. 1899년 산동 서부에서 폭동을 일으키고, 외국인 특히 기독교도를 박해했으며, 청조에서도 이를 선동해 폭동이 확대되었습니다. 엄청난 선교사와 신도들이 피살되고, 파괴된 성당, 병원과 민가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 끔찍한 참상은 세계를 놀라게 할 정도였습니다. 이 역사적 기록을 더듬어 가다보니 청나라 말기의 40여년 독재 권력자인 서태후(西太后)가 연결됩니다. 의화단이 원래는 반청(反淸)단체였는데, 서태후가 이들을 회유해서 열강 8국( (러시아, 일본, 영국, 프랑스, 미국,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과 대항하게 했습니다. 좀 무모했지요. 아니 많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국내 사정은 얼마나 심각했겠습니까. 치안부재 상태였지요.

 

이런 참혹한 신앙의 대립 사건이 일어나기 전 15년 동안 꼬르 주교는 중국에서 하느님을 전도하면서 얻은 성과에 만족해서 이탈리아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다시 중국에 갈 꿈과 사명감에 불탑니다. 꼬르 주교는 각지를 다니면서 선교 후원을 호소하는 한편, 마땅한 조수 한 명을 중국으로 데리고 가고 싶어 합니다. 그 대상에 지오반니 마틴 수사가 선택됩니다. 그리고 그에게 중국 이름 '장마딩(張馬丁)'을 지어줍니다.

 

그들의 선교지인 하늘어미 강 하늘바위 읍에서 서로의 믿음(신앙)을 지키려는 어쩔 수 없는 충돌이 일어납니다. 의화단의 분위기가 서서히 열기가 더해지고 있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목숨 걸고 하늘어미 사당을 지키려는 영신회 우두머리 장톈츠가 폭력을 행사하자 장마딩은 꼬르 주교를 보호하려다가 맞아 죽습니다. 이 사건이 정치와 종교 분쟁의 발단이 될 조짐을 보이자 현령 쑨푸천은 지체없이 장톈츠를 잡아들여 참수하고 조리돌림 하는 것으로 사건을 매듭짓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해서 나오듯 장마딩이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가사 상태 였던 것입니다.  다행히 장마딩을 아들 처럼 돌보던 마리아 수녀가 곧 사제가 될 그에게 입혀 주려했던 옷을 마무리해서 수의로 해주겠다는 바람에 장례를 늦춘것이지요.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인들에게 부활신앙의 기점이 되지만, 장마딩의 부활은 매우 복잡한 상황이 되고 맙니다. 죽은 줄 알았던 사람에 대한 죄값으로 이미 참수당한 사람은 어찌 하나요.  꼬르 주교는 대단한 결정을 내립니다. 그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 자체를 은폐하려합니다. 그리고 장마딩에겐 그의 관을 보여주며 '죽은 셈'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일단 성당에 숨겨서 몸을 회복시킨 다음 로마로 보낼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장마딩은 바깥 세상에 본인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아니 그의 믿음이지요. 


이럴 때 꼭 이말이 제격입니다. 자의반 타의반 성당을 떠납니다. 성당 밖을 나서면 어찌 되리라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나, 장마딩의 마음은 한결 같습니다. '진정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잘못된 길을 선택하고 만 것일까? .....하느님은 아시겠지. 진정 내가 아무도 속이지 않고, 진정 내가 가장 성실한 결정을 한 것 뿐이라는 걸.....'


이후의 장마딩의 주변에 많은 사건이 생깁니다.  그 중 하이라이트는 장마딩과 장마딩이 죽은 줄 알고 그 죗값으로 참수 당했던 장톈츠의 아내 장왕씨와의 만남입니다. 사실 장왕씨는 그녀의 남편이 참수당하는 모습을 한 순간도 안 놓치고 보았기 때문에, 정신줄이 놓여진 상태였습니다. 아주 놓여진 것은 아니고, 당겼다 풀렸다 하긴 합니다만..잠시 신내림까지 와서 삼신 할미 대접을 받는 상황에 장마딩이 그 사당을 찾아 온 것 입니다. 추운 밤길을 헤매던 장마딩이 어슴푸레한 불빛을 보고 사당에 달려 들자 마자 쓰러집니다. 장왕씨는 그녀의 남편이 환생한 것으로 믿고 있군요. 아니 그렇게 믿고 싶은 모양입니다. 그렇게 죽은 남편을 다시 만난 듯 지극 정성으로 그를 살려내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 그의 흔적과 에너지가 이 땅에 남아 있도록 일을 계획합니다.


그 사이 꼬르 주교와 신도들은 의화단에 의해 희생됩니다. 성당도 파괴됩니다. 거의 초토화됩니다. 의화단의 기세는 사그러질 줄 모릅니다. 하늘어미 사당을 지키는 마을 사람들은 장마딩을 찾아서 복수를 하겠다고 온 마을을 다 헤집고 다니고, 삼신 할미 역할을 맡고 있는 장왕씨 덕분에 위해를 당하진 않지만, 동상후유증인 패혈증으로 결국 숨을 거둡니다. 숨을 거두기 직전, 마리아 수녀가 찾아올 것이라는 예감에 혼신을 다해 글을 남깁니다. 그의 묘비명입니다.  


      진실한 사람 장마딩의 무덤


여러분의 세계는 일곱 날 안에 머물지만, 

나의 세계는 여덟째 날부터 시작된 것이다.


"여덟째 날"..전혀 다른 스토리이긴 합니다만, 1996년에 벨기에, 프랑스에서 제작된 "제8요일"이라는 영화가 생각납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바쁘셨습니다. 일주일 동안 매일 분주하셨지요...여섯째 날엔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덟째 날엔 무엇을 하셨을까요? 다음날인 8일은 8요일의 창조, 즉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하는 날이라는 해석을 내리기도 합니다. 여덟째 날은 억제되었던 인간성의 재생을 의미하는 요일이기도 하답니다. 과연 그랬을까요? 장마딩에게 '여덟째 날'이 주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좀 더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어쩌면 나에게도 주고 싶은 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자 리루이는 중국 문단에서 대표적인 반서구지향적인 작가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당대 중국 문단에서 가장 존중받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 소설의 구성은 탄탄합니다. 표지 그림인 '슬프도록 아름다운' 한 여인의 초상을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많은 생각을 하면서 책을 덮습니다. 초두에 언급해드린 것처럼 믿음에 대해, 인간 내면에 두텁게 깔려 있는 폭력성에 대해, 나눔과 화합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자는 그 혼돈의 시기를 차분하게 그려나가면서 결국은 화합만이 인류가 살아갈 희망이라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장마딩이 숨을 거두면서 장왕씨에게 남긴 말입니다. "나중에 내가 죽으면 내가 가지고 온 초에 불을 붙여서 내 정수리 앞에 놓고, 그런 다음에 한 마디만 해 주십시오!.....한 마디만... 그냥 '할렐루야'라고...."


이 뜻을 모르는 장왕. 삼신 할미는 그가 남긴 말을 잊지 않습니다. 심한 가뭄이 이어지던 땅에 장마딩이 숨을 거둔 후 이젠 노아의 홍수처럼 비가 내립니다. 온 마을이 물에 잠기고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한 하늘 어미 사당이 있는 하늘바위에 호흡있는 자들이 모두 모여듭니다.  이제 그곳도 넘실거리는 큰물이 덮칠 지경이 됩니다. 


장왕씨는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리며 큰 소리로 외칩니다.

"할렐루야!"  "삼신할미, 보우하사!"

그러자, 사당 안팎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순간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습니다. 아무도 사당에서 이러한 기도를 들을 것이라곤 생각지 못햇지요. 그러나, 결국 모두 한 목소리로 따라합니다. 

전체적인 글의 흐름을 모르고 문자해석만으론 오해의 소지가 있겠지요. 이 부분은 저자의 간접적인 기원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P.S : 이 책의 역자인 배도임 교수의 번역이 매우 맛깔스럽습니다. 생동감이 있습니다. 육두문자가 툭툭 튀어나오지만, 전혀 생경스럽지가 않습니다. 아마 이 책의 텍스트보다도 더 감칠맛 나는 표현이 많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s******5 2013.01.1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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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망,양심,삶을 느기게 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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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작가의 책은 두 번째이다. 첫 번째 작가의 책은 독특한 필체가 느껴지는 작품 이였는데 이번 책은 독특한 필체라기보다는 작가가 추구하는 독특한 작가관이 느껴지는 책 이였던 것 같다. 작가를 이해하는 데에 옮긴이 후기와 중국판 서평이 도움이 되었다. 그는 중국 문단에서도 ‘합창을 거부'하고 자신의 창작 경향을 지키는 작가라고 한다. 초기에는 개인의 욕망, 고통,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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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작가의 책은 두 번째이다. 첫 번째 작가의 책은 독특한 필체가 느껴지는 작품 이였는데 이번 책은 독특한 필체라기보다는 작가가 추구하는 독특한 작가관이 느껴지는 책 이였던 것 같다.

작가를 이해하는 데에 옮긴이 후기와 중국판 서평이 도움이 되었다. 그는 중국 문단에서도 ‘합창을 거부'하고 자신의 창작 경향을 지키는 작가라고 한다. 초기에는 개인의 욕망, 고통, 운명과 죽음을 탐구하다가 나아가 집단의 역사, 정치, 권력, 혁명과 폭력에 대해 탐색하고 무겁고 치열하고 진지해서 너무도 중국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옮긴이의 후기처럼 중국인만의 시대적인 문제가 아닌 인간 내면의 갈등을 다루고 있는 인류보편의 이야기라서 공감대가 잘 형성되었고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장마딩의 여덟 째 날

주인공 지오반니의 이름을 중국식으로 바꾸면 장마딩이다.

장마딩은 묘지에 이렇게 적어달라고 남겼다.

 <진실한 사람 장마딩의 무덤>-여러분의 세계는 일곱 날 안에 머물지만, 나의 세계는 여덟째 날부터 시작된 것이다.


지오반니는 레 꼬르비노 신부를 따라 중국 선교사의 길을 떠난다. 자신의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하고 시작하지만 하늘어미 강 하늘바윗골의 삼신할미사당은 넘을 수 없는 커다란 산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하늘바윗골 아랫마을의 사람들은 하늘바윗골 장씨네 집안한테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기 위해 계획적으로 꼬르 주교에게 땅을 헌납하고 입교를 했다. 그곳에 지은 성당이 침수되면서 그들의 의도를 알아차리게 되지만 과오를 애써 바로잡으려고 하는 그의 욕심은 과욕을 불러일으키고 진실도 성심도 외면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는 기어코 삼신할미당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성당을 짓기 위해 음모를 꾸미게 된다. 성난 하늘바윗골 사람들의 돌팔매질에 장마딩이 맞아서 목숨을 잃는다. 아들과도 같은 그를 대신해 목숨에는 목숨으로 갚으라고 요구하며 하늘바윗골 영신회의 왕초면서 기우제를 주관한 장텐츠의 목숨을 내놓으라고 한다. 삼신할미당을 지키기 위해 장텐츠는 기꺼이 목숨을 내놓았다. 죽기 전 아들이 없던 장왕(아내)와 감옥에서 합방을 하지만 그마저도 허사로 돌아간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장마딩은 다시 깨어난다. 마리아 수녀와 매튜 의사는 부활이라며 성스러워했지만 정작 본인은 그저 기절했다가 깨어난 것 이였다. 이미 그를 대신해 한 목숨이 사라진 뒤의 부활은 장마딩에게 살아있는 일곱 날 보다 죽은 날의 첫날인 여덟째 날에 큰 뜻을 새겨야 함을 예고한다.


무엇이든 순리대로 해야 한다. 흐르는 물길을 돌리고 시간을 되돌리려 하는 것은 더 큰 화를 입게 마련이지만 사람의 욕심은 그 순리를 외면하게 한다.

 내 것이 최고라는 아집은 배타적인 이기심을 낳게 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마저도 숭고한 희생으로 미화하려는 아전인수 격의 해석은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불행이다.

굶주림에 지친 인간은 윤리의 굴레에서 벗어나 동물적 본능만이 남고 생지옥의 아비규환을 만든다.

감동적인 장면은 역시 마지막 엔딩 부분 이였다. 억지로 하늘바윗골 아랫사람들과 윗사람들을 교화시켜 하나로 맺으려 했던 꼬르 주교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자연의 무력앞에서 사람들은 하나가 되었다. 삼신할미 보우하사, 할레루야~


웃어야 할 멘트인데 너무나 감동적인 멘트가 되어버렸다.


장마딩이 알려주고 싶었던 진실과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 모두 함께 하기를 바랐던 그의 성심이 잘 녹아든 결론을 보면서 조마조마 했던 짐을 내려놓는 기분 이였다.


인간의 절망과 구원을 얘기한 진정한 휴머니스트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멋진 이야기였다.


 

 

w*****1 2013.01.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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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딩의 여덟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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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딩의 여덟째 날'을 상당히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건 나에게 있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인데, 나는 종교적인 색채가 들어갔다는 점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평을 먼저 내려두는 일이 더 잦기 때문이다. 모든 이를 이해하고 사랑하라는 종교의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의 이해와 사랑의 문제에 있어서 너무나 예민해질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에, 그런 요소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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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딩의 여덟째 날'을 상당히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건 나에게 있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인데, 나는 종교적인 색채가 들어갔다는 점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평을 먼저 내려두는 일이 더 잦기 때문이다. 모든 이를 이해하고 사랑하라는 종교의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의 이해와 사랑의 문제에 있어서 너무나 예민해질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에, 그런 요소로 인해 작품 외적인 부분으로 주의가 옮아가는 일이 생길까봐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특정 종교에 대한 언급이 있으면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가, 비종교인의 이해가 어려운 면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 꺼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얼마간은 실망스러운 마음이 생기기도 했으나, 이 소설이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더 크고 넓은 곳에 시선을 주고 있다는 점 때문에 더욱 흥미가 생기기도 했다. 중국발 소설들을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조금 접했는데, 한권 한권 새로 읽게 될수록 괜찮은 느낌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작년 초에 고향 하늘 아래 노란 꽃이란 책을 읽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분량이 상당했는데, 한 마을 안에서 대를 이어 일어나는 일들을 담아놓은 책이라 재미는 있었지만 읽으며 지쳤던 것 같다. 그러다 최근에 실연 33일을 읽고 장마딩의 여덟째 날까지 연이어 읽게 됐는데, 독서 목록이 매우 빈약하지만 갈수록 좋은 느낌을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역사의 흐름을 따른 시대의 변화가 개인의 삶에서 어떤 모습으로 체감되는지 인간의 맨얼굴을 드러내듯이 나타내었다. 새로운 문화와 기존 문화가 충돌하며 생기는 첨예한 갈등의 날섬, 서로 다른 종교에서 같은 근원을 찾아내는 통찰, 엄혹한 생의 고통에서 비롯된 치열하고 잔혹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 특히 사람의 삶을 좀 더 본능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 날것으로 표현하려 했다는 점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조롱박이와 롄얼의 이야기가 순수한 아름다움을 처연히 남기고 끝난 것처럼, 남편의 아이를 갖기 위해 칼을 찬 남편의 곁으로 찾아든 장왕씨가 결국은 눈앞에서 붉은 피를 보게 된 것처럼, 진실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고 오로진 진실 하나만을 품은 채 죽어야 했던 장마딩처럼.

 

각자 자신이 가진 베이스에서 이 소설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여지를, 궁금함으로 남겨두는 책을 또 만나 즐거웠다.



 

m******j 2013.01.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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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딩의 여덟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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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마딩의 여덟째날     첫표지를 보면 여성이 보인다 어딘가 슬픔을 간직한채 석류꽃을 꼽고 있는 모습 아름다운 얼굴에서 묻어나오는 슬픔이란 무엇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책을 보게 되었다   이책은 서양문화가 중국에 들어오면서 중국의 문화의 변화를 말하고 있다 서양문화가 들어왔다는 것은 종교문화를 말한다 중국이 가지고 있던 삼신할매와 서양의 기독교와 카톨릭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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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마딩의 여덟째날

 

 

첫표지를 보면 여성이 보인다 어딘가 슬픔을 간직한채 석류꽃을 꼽고 있는 모습 아름다운 얼굴에서 묻어나오는 슬픔이란 무엇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책을 보게 되었다

 

이책은 서양문화가 중국에 들어오면서 중국의 문화의 변화를 말하고 있다 서양문화가 들어왔다는 것은 종교문화를 말한다 중국이 가지고 있던 삼신할매와 서양의 기독교와 카톨릭이 들어오면서 시작되는 서민들의 이야기와 중국의 시대상 그리고 의화단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우리도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을때 카톨릭이 들어오면서 힘있는 자들이나 가진자들이 자신의 힘이 분산되는것을 막거나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종교를 이용하여 탄압하였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선교사들은 죽었고 그것을 알게된 서양세력들은 우리를 침약하고 약탈하였다 이 것은 역사가 알고 있다 이책에서는 자신의 이권과 이익으로 장씨가문과 다른가문의 싸움에서 발달이 되어서 삼신할멈을 모시는 사당과 성당의 종교전쟁까지 치달았다 그 이유는 가뭄으로 인한 배고픔과 그속에서 벌어지는 살기위한 투쟁으로 인하였다 그리고 그 시대를 잘반영하고 있다 힘이 있는 자와 없는자는 사람이 아닐수도 있고 사람일수도 있으며 짐승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지남편을 읽은 석류씨의 아픔과 행동들 그리고 장수사 잠아딩은 자신은 진실로 믿음만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며 진실을 밣히게 되고 그속에서 성난 민중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안타깝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책을 읽으면서 시대에 따른 안타까움과 중국이라는 나라의 아픔과 그 속에 살았을 우리의 조상들도 많은 혼란을 격었으리라 생각하고 현재와 미래에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는 슬프고 아련함을 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글 349p "여러분의 세계는 일곱 날 안에 머물지만 나의 세계는 여덟째 날부터 시작될 것이다" 라는 글을 보면서 장마딩 장수사가 어떤 생각으로 했는지 잘 알수는 없지만 이 글을 읽고 멍하게 한참 그글을 보았을 정도로 이 책의 제목인 여덟째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글이었다

 

f******l 2013.01.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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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딩의 여덟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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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에서 천주교(서학)에 탄압이 정조와 순조,고종대에 이르기까지 기록으로는 네 번의 천주박해가 있었다.국가의 근간인 국체를 뒤흔드는 행위이고 국가의 질서를 문란케 했던 것으로 왕권에 대한 도전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사상과 이념이 가득했던 것이기에,그 탄압은 무시무시할 정도였다고 보인다.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비단 조선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닌 중국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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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에서 천주교(서학)에 탄압이 정조와 순조,고종대에 이르기까지 기록으로는 네 번의 천주박해가 있었다.국가의 근간인 국체를 뒤흔드는 행위이고 국가의 질서를 문란케 했던 것으로 왕권에 대한 도전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사상과 이념이 가득했던 것이기에,그 탄압은 무시무시할 정도였다고 보인다.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비단 조선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닌 중국 청말에서도 있었다는 것이 이 글을 통해 그 실상이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19세기 말 청은 주자학과 공자 사상과 이념이 민본의 바탕이 되고 무능한 황권과 탐관오리의 부정부패가 당시의 중국 사회의 근간이 되었던 것인데,절망과 도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잉탈리아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꼬르 주교와 사제 지오반니는 중국 둥허 하늘마을에 안착하여 포교활동을 벌이려 하는데,당시 중국 사회는 민간 신앙인 삼신할미를 모신 삼신할미 사당이 중심이 되어 모든 문제해결은 삼신할미를 통해 해결책을 구하려 했기에 천주교에 대한 거부감과 탄압은 클 수밖에 없었고 삼신할미당과 천주교 간의 격돌은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하늘마을에는 윗마을과 아랫 마을이 있었는데 윗마을은 영신회의 장톈츠(張天賜)와 아랫마을에 안착한 꼬르 주교와의 종교적 싸움이 벌어졌던 것이다.꼬르 주교는 인간을 구원한다는 명목하에 돈과 물질로 사람들을 매수하고 장텐츠는 천주교의 포교활동과 성당 건립에 결사 반대를 한다.그러는 와중에 장톈츠가 던진 돌멩이에 지오반니(이하 장마딩)가 머리에 맞아 중상을 입게 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장례식까지 준비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장마딩은 기사회생을 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반전의 물결을 탄다.

 

 반면 장톈츠는 사람을 죽인 죄로 교수형에 처해지는데,남존여비 사상이 짙었던 사회 분위기에 비추어 장톈츠는 아들을 얻기 위해 민간요법을 쓰지만 아들을 얻지 못한다.남은 유족인 아내는 시동생에게 자식들을 맡기고 정처를 찾아 남편의 한이 된 아들을 얻기 위해 삼신할미당에 가서 기복을 한다.아울러 장마딩은 죽을 고비로부터 마리아 수녀의 헌신적인 간호와 보살핌으로 살아나게 되는데,꼬르 주교와 함께 했던 성당을 빠져 나와 삼신할미당으로 가면서 장톈츠의 부인 장왕을 만나게 된다.장왕은 장마딩을 보고 남편이 환생한 것으로 착각을 하면서 아들을 이으려 방사를 치르게 되며 장마딩은 장왕의 애달픈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그의 묘비에는 "여러분의 세계는 일곱 날 안에 머물지만,나의 세계는 여덟 째 날부터 시작된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당시 청말의 사회 분위기,사상과 이념,분열과 갈등이 하늘 마을을 중심으로 퍼져 가는데,그것은 주자학과 공자 사상과 천주학이라는 외래 사상이 맞붙은 한 판 대결이 종교적 양심과 진실,종교적 정의와 이기적인 헌신,전통의 옹호와 희생,그리고 '대 잇기'와 정절 사이에서 긴장과 서스펜스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조선후기 천주교 탄압과 관련하여 크로스적으로 읽는 것도 흥미롭기도 하고 인간의 본성은 과연 무엇인가를 깨우쳐 주기에 족한 작품이었다.

 



j******6 2013.01.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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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딩의 여덟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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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님들 안녕하세요. 오늘 루루공주 서하맘이 소개해드릴 책은 중국 서적입니다.     책 제목은 <장마딩의 여덟째 날>이구요. 저자는 '리루이'라는 중국 작가입니다. 중국 당대문단과의 합창을 거부하고 자신의 창작경향을 지킴으로써 예술성과 진정성을 인정받는 작가분이라고 합니다.     중국문학의 전통과 현대를 해부하며 인간의 절망과 구원을 말하다.이 시대의 진정한 휴머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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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님들 안녕하세요.

오늘 루루공주 서하맘이 소개해드릴 책은 중국 서적입니다.

 

 

책 제목은 <장마딩의 여덟째 날>이구요. 저자는 '리루이'라는 중국 작가입니다.

중국 당대문단과의 합창을 거부하고 자신의 창작경향을 지킴으로써

예술성과 진정성을 인정받는 작가분이라고 합니다.

 

 

중국문학의 전통과 현대를 해부하며 인간의 절망과 구원을 말하다.
이 시대의 진정한 휴머니스트로서 세계인이 주목하는 작가 리루이!

“여러분의 세계는 일곱 날 안에 머물지만,
나의 세계는 여덟째 날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럼 책소개 잠깐 할께요.

 

 

19세기 말 의화단운동이 일어나던 중국.
이탈리아 출신의 지오반니 바랄로는 먼 나라 중국에서 중국이름

‘장마딩’으로서 선교 활동을 벌입니다.

전통적으로 ‘하늘어미 여와’라는 삼신할미를 신봉하는 작은 마을인데,

주민은 가뭄이 들자 전통 방식으로 해결하려하고, 천주교 성당과 충돌합니다.


이 와중에 장마딩은 치명적인 중상을 입고, 주교는 그가 죽은 것처럼 마을 주민을 속여

그 댓가로 마을 의화단 우두머리인 ‘장텐츠’가 죽게 되죠.

하지만 기적처럼 살아난 장마딩. 그는 자책감을 느끼며 억울하게 참수당한

장텐츠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히기로 합니다.

결국 주교의 성당에서 쫓겨난 장마딩은 분노한 민중 앞에 서게 되는데...

서구 열강의 위협 아래 봉건 체제가 몰락하던 중국사회의 격동을 그린

‘장마딩의 여덟째 날’은 비이성적인 광기에 벌어진 피의 학살 속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한 인간의 삶을 그려냅니다.


중국 당대 문단에서 진정한 휴머니스트로서 중국인의 ‘혼’을 부르는

리루이의 작품을 통해서 독창을 고집하는 지성인의 고뇌와

‘이성 없는 역사’에 대한 참회의식을 읽을 수 있을듯요.

 

 

19세기 말 서세동점의 광풍 앞에서 중국 의화단 운동을 배경으로 민중의 분노,

선교사와의 충돌, 절망 속에서 고뇌하는 주인공 장마딩을 통해

인간 존재와 구원을 묻는 '장마딩의 여덟째날'

중국문학에 관심있는 이웃님들에게 권해드립니다.

 

h*****k 2013.01.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