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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때 기독교 동아리에서 총학이 주관하는 기성회비 투쟁에 힘을 싣지 않는 모습을 보고 왜 기독교는 정치적인 투쟁에 가담하는 행동을 주저하는지 궁금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가 정치에 참여하는 일은 복잡하며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민주화 시대를 거쳐온 신앙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알게 되었다. 요즘에는 주변 일부 기독교인들이 카톡이나 인터넷을 통해 뿌리는 '동성애 차별 금지법이 통과되려고 하니 반대하자'와 같은 메시지를 보며 당혹스럽고 부끄럽곤 했다(물론 여자와 남자를 구분한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게 성경적이고,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하므로 낙태를 반대하는 게 성경적인 건 맞다. 그러나 문제를 단순화 해서 편을 가르고 지저분한 방법을 사용해 싸우는 모습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좋은 시민의 모습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미국적인 기독교 우파의 모습을 배워온 극동방송이나 국민일보의 입장을 그대로 말씀하시는 설교를 듣고 있다가 마음이 답답해 그대로 교회를 뛰쳐나오고 싶을 때가 종종 있었다. 저자도 이 책에서 이야기한다. 현대 미국 교회가 기독교 우파와 다른 입장을 가진 젊은이들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말이다. 어느 새인가 동성애와 낙태 찬반 여부가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바로미터가 되고 있다. "도덕, 정치를 말하다" http://minihp.cyworld.com/20966544/284370641 를 읽으면서 기독교인이지만 보수에 속하고 싶지는 않은 나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정치적인 입장은 흑백논리로 항상 명확하게 네 편과 내 편을 나눌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스펙트럼과 같은 것이며, 각 정책에 따라 입장을 달리할 수 있는 좀 더 복잡한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기독교 세계관 공부를 하다가 알게 된 이 책을 올해 국제 도서전에서 다시 만나 읽고 싶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집에 와서 주문해두었는데 방학이 되어서야 읽을 여유가 생겼다. 이 재미있고 잘 읽어지는 책을 왜 이제야 읽게 되었는지. 기독교인이 진보-보수 싸움 속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하는지 좀 더 명확하게 정리가 되었다. 특히 영국인이지만 미국으로 '이민'간 기독교 역사학자인 저자가 바라보는 현재 미국의 기독교 우파가 가진 입장의 모순들을 논리적으로 파헤쳐 주어 속이 시원했다.
이 책이 재미있었던 이유는 저자가 한국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싶을 정도로 미국과 한국 기독교의 정치적 성향이 비슷해보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독교 우파의 정치적 성향이 '보수'인 척 하지만 사실은 극히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실용주의에 물들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갖는 모순을 정치적으로는 기독교를 등에 업은 보수주의적 언론(미국은 개척 초기부터 개신교를 기반으로 했기에 역사적으로 특이한 점이 있다, 미국에서 '개신교=애국' 도식이 성립할 수 있는 이유이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미덕으로 여기게 된 기독교와 교회(특히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기독교를 세속화하는데 얼마나 기여했는지 신랄하게 비판한다)을 통해 드러낸다. 이러한 모순은 미국과 역사적 기반이 다른 대한민국으로 넘어오면서 더욱 우스꽝스럽게 드러난다. 거짓말과 비난을 일삼는 폭스 채널 뉴스만을 시청하며 철썩 같이 믿는 사람들과 극동방송만 듣고 국민일보만 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미국과 한국의 대형 교회들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계발과 경제적 성공을 섬기는 이머징 교회의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본다.
아무 생각 없이 봤던 애니메이션 "심슨네 가족들"이 사실은 폭스 채널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프로그램이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폭스는 저녁 식사 시간에 그 프로그램을 방영함으로써 가족간 대화를 가로막는 매우 비 성경적인 행위를 하면서도, 방송국의 기본 입장은 기독교에 기반을 두고 있는 듯 행동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심슨..."의 비꼬는 유머야 유명하지만 특히 등장인물 중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우스꽝스럽게 그리는 내용 역시 유명하다. 유명한 학자가 쓴 책이라 신뢰감이 높았던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에도 기독교를 왜곡한 부분이 있다는 점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뜨끔했던 부분은 '포드가 현대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바꿔놓았다'는 부분이었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마치 마트를 선택하듯 마음에 드는 교회를 선택하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거나 귀찮은 부분이 생기면 차를 몰고 교회에서 도망나온단다.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면서 교회라는 공동체를 우리에게 남겨주셨는데 확실히 지금의 교회는 초대 교회에 비해 공동체의 고리가 많이 약해져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쓴 저자의 의도는 정치적 성향의 차이로 인해 젊은이들을 교회에서 떠나보내거나 교회 안에서 적대시하며 싸우지 말고, 정치를 좀 더 복잡한 문제로 여기며 편 가르기가 아니라 지혜롭게 정책 하나 하나에 대한 입장을 갖자는데 있는 듯하다.
다소 길지만 저자가 미국 기독교 우파를 보며 답답했던 부분을 토로하는 결론이므로 그대로 옮겨와본다. "이러한 쟁점들에 대해서 강력한 정치적 입장들을 취하거나 더욱 안좋게는 정치적 파당을 형성하는 일은, 교회가 궁극적으로 복음을 진실되게 믿는 것을 근거로 교회 안에 포함시켜야 할 사람들을 배제해 버리는 위험을 초래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총기 규제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 맹렬하게 의견을 달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원한다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그러한 쟁점들에 대해 서로 반대되는 시위대의 앞줄에 서 있으십시오. 그러나 주일이 되면 공동의 신앙으로 연합된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로서 함께 주의 만찬을 들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강력하게 견지하는 정책이 다르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훌륭한 시민이 되어야 하며, 시민으로서의 책임들을 진지하게 여기고, 우리 위에 임명된 관리들을 존경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세상이 폭스 뉴스(또는 MSNBC)의 해설자들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임명한 지도자들을 범죄자로 그려 놓은 그림이나 사진을 들고 다니거나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향해 심한 욕을 해 대는 사람들의 부적절한 행위에 절대 가담해서는 안 됩니다. 현재 기독교는 정치에 관하여 너무나 쉽게 큰 소리로 공격하곤 합니다. 그러나 각종 쟁점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정확히 알고 가담해야 하며,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적합하게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문화가 변해야 합니다. 우리는 더 폭넓게 읽고 살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에 대해 비판하듯이, 우리가 좋아하는 해설가들과 이야기들에 대해서도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세계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회들에 대하여 훌륭한 청지기들이 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그 실천적인 본질의 측면에서, 기독교를 너무나 보수적인 정치와 일치시키는 것을 전혀 견제하지 않고 비판 없이 그대로 둔다면, 빈민 구제와 환경문제와 외교정책이라는 쟁점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세대를 교회 밖으로 내몰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나의 신념입니다. 오늘날 우파가 사회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더욱더 뚜겻이 자유방임적인 방향으로 움직여 가고 있으며, 낙태와 같은 쟁점들에 대해서도 선거철과 선거 이후에 말이 바뀌는 식으로 실용적으로 이용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이 드러나면서, 종교적 우파가 주류 정당 정치 마당에서 점점 더 환멸을 느끼고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다가 결국 종교적 우파는 한쪽으로 밀려나 목소리만 크지 아무런 영향력도 미치지 못하는 집단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의 목소리를 이런 식으로 주변으로 밀어내 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의 한계와 그리스도인들의 정당성을 인식하고, 수많은 실제 정책들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사려 깊고도 신중히 정치에 참여한다는 명성을 얻어야 합니다. 결국 교회 밖에서 좋은 명성을 얻는 것이 바로 교회의 지도력과 관련하여 신약성경이 요구하는 바입니다. 바로 그러한 일반 원칙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어디에 있든지 있는 그 자리에서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실로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정치 과정에 참여할 때 지루한 상투어나 인신공격, 마니교적인 악평이 아니라, 지성과 정중함이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그날을 기대합니다." (187-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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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보수 기독교인] 이라는 책의 제목만 가지고는 이 책의 저자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무엇인지를 가늠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 속에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분명히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쉽게 오해하는 것과 같이, 어떤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구현하는 절대적 행동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진보 보수 기독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그 어떤 정치 세력도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온전하게 대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칼 투루먼은 미국 이민자의 시선으로 미국 정치의 참혹한 현실을 분석하며, 보수와 진보 진영을 막론하고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허술한 논리와 얄팍한 전략들을 고발합니다. 이 책은 보수보다 진보가 낫다 혹은 진보 보다는 보수가 성경적이다 라는 저자 나름의 정답을 제공하는 책이 아닙니다. 이 책의 진가는 우리가 정치세계를 너무 단순하게 받아들이며, 우리가 보는 미디어를 너무나 쉽게 믿어버리고, 더 나아가 이분법적으로 서로를 적대시하는 문화에 대해서 탁월하게 고발한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겸손하게 자신은 자본주의 사회속에서 구현되고 있는 오늘날의 대의민주정치제도 보다 더 나은 대안을 알지 못한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을 읽는 내내, 책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의 건전한 정치관, 세계관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좋은 시민이 되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기도하고, 자세히 심사숙고 하여 보다 나은 투표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때때로, 우리 조국 교회의 현실은 정치적 이념 다툼으로 인해 완전히 둘로 쪼개진 것처럼 보입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쉽게 판단하고, 쉽게 미워하고, 쉽게 상대방을 저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치와 연결되는 그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성전으로 지어져가는 한 몸임을 잊어버립니다. 이 책의 제목처럼 진보 보수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든 이 책을 통해서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저자의 탁월한 상황 분석과 건전한 정치 진단 속에서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길에 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을 읽고, 칼 트루먼의 모든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