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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버나드 쇼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로선 19세기와 20세기를 살았던 이 아일랜드 태생의 영국 극작가는 익숙지 않다. 그렇지만, 엉뚱하게도 이 작가는 자신의 작품보다 묘비명으로 더 유명해졌다. "우물쭈물 하다 내 이럴줄 알았지" 이 단출한 문장만으로도 우린 쇼의 번득이는 유머와 철학을 맛보게 된다. 1856년생으로 94세까지 장수하면서, 그는 화려한 경력을 쌓는다. 그는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의 공동 설립자였고, H.G 웰스, 버트란트 러셀과 온건 사회주의자들의 모임인 페이비언협회를 창립해 일평생 활동했다.
극작가로서 그의 명성은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이어진다. 1964년 개봉한 오드리 헵번 주연의 <마이 페어 레이디>의 원작 희곡 <피그말리온>을 지은 이가 그다. 평생 60여 편에 이른 희곡을 발표하며, 세익스피어에 비견되는 극작가로 이름이 높았다. 그는 음악과 미술 스포츠 등에도 관심이 많았다. 피아노 연주와 권투, 서핑 등 못하는게 없는 팔방 미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몰락한 귀족집안 출신으로 어린 시절 가난과 싸워야 했다. 15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아일랜드 국립박물관과 런던 대영박물관의 도서관에서 독학하며, 훗날 작가로 성장할 토대를 닦는다. 일평생 채식주의자였고 해진 옷을 입을 정도로 극도의 검소한 삶을 살았다. 남긴 작품으로서가 아닌 그의 삶을 통해서도 배울점이 있다.
만년에 이르러서까지 그는 열정적으로 창작활동을 했다. 88세의 고령에 집필한 작품 <쇼에게 세상을 묻다>의 원제는 "Everybody's Political What's What? 모르면 당하는 정치적인 모든 것" 이다. 일평생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비평 작업을 해왔던 작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사회와 정치' 비평의 정수를 남겨 놓았다. 그의 순수한 의도는 7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이 책 속 `마치는 글'속에 담겨 있다.
"이 책은 `어린이를 위한 정치 안내서'쯤 된다. 나의 정치적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요즘에는 누구나 정치에 관한 한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굴지만 사실 대부분은 아주 기초적인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중략) 그들은 정치를 삶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정치가 사회생활의 과학이 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일 뿐이다." 645쪽, 조지 버나드쇼 <쇼에게 세상을 묻다>
넓게 보아 그가 논한 것은 정치 사회 현상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그는 세상의 거의 모든 일에 관여하는 꼼꼼함을 보여준다. 정치와 사회를 비롯한 교육과 종교, 전쟁과 군인, 지방자치와 의료, 총파업과 사형제도 등을 논했다. 주제들이 논하기에 쉽지 않고, 독자들이 일독하기에 만만한 것도 아니다. 지난 2세기에 걸친 시대상은 아무래도 현재와 동떨어지기 마련이고, 유럽의 역사와 문화에 바탕을 둔 서술은 지루하기도 해서 상당한 인내를 요한다. 하지만, 쇼의 문장은 유머와 위트가 넘치고 풍자와 해학이 살아 숨쉰다. 그의 문장은 그 유명한 묘비명이 괜히 나온게 아님을 보여주는 듯 하다.
그가 이 책에서 논하고자 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자본주의 사회가 계급을 형성하고 분화하면서 맞게 되는 파국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루소가 <사회계약론>을 통해 모든 모든 인간은 자유로울 권리를 갖고 태어난다고 주장할 걸 갖고, 쇼는 `멀쩡한 사람 입에서 나온 최악의 거짓말'이라며 특유의 과장된 논법으로 성토한다. 왜 그런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부모의 보호아래 무기력한 존재로 태어나며 커서는 노동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노동자에게 합당한 일자리를 찾아주지 못할 때 인간은 자유가 아닌 `빈민과 노예'로 전락한다. 쇼가 루소의 자유권의 개념을 논박한 이유이자, 온건 사회주의자로서 정치적 정체성을 획득한 사유다.
쇼는 `모두가 정치적으로 박식하다는 가정 하에서 누구나 투표권을 갖는' 보통 선거권에 우려를 표한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성취라 할 수 있는 보통 선거권을 쇼는 왜 부정했을까? 대중의 무지와 편견, 판단력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쇼는 모든 프롤레타리아가 생존경쟁과 장시간 노동에 치여 정치나 종교에 신경쓸 여유가 없고, 부유층은 향락을 즐기느라 논쟁을 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역설을 고발한다. 즉, 여가의 결핍과 과잉이 사람들의 머리를 굳게 하고 있다고 질타한다. 그 비근한 예를 쇼는 다음과 같이 든다.
"농민들 딴에는 잘 해보려고 그러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모든 사회적 가치와 명예를 옹호한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실제 투표장에서는 게으름, 낭비, 사치, 비굴함, 가난, 노동착취 등 이기적인 자본이 만들어낸 모든 악덕에 표를 보탠다" 12쪽
이러한 문장들을 만날때마다 독자들은 현대사회의 익숙한 정치,사회 풍경을 보게 된다. 오늘날 자신의 계급에 상반되는 투표 행위는 일상적이다. 예술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여가를 향략으로 소비하고 인생을 낭비하는 악습을 막아준다. 그런데 왜 대중은 예술과 미학으로부터 멀어지게 됐는가? 이 책은 이렇게 답한다. "특정 계급이 토지를 전용하면서 임금노동자 계급이 생겨났고, 이들이 먹고 살기 급급해" 문화와 여가는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으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소에 가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밥벌이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전혀 이상하거나 안타깝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어떻게보면, 하루 밥벌이보다 자신의 사회정치적 미래를 결정할 하루의 투표가 더 중요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쇼가 700페이지에 가깝게 논하는 그 다양한 주제를 모두 소개하는 것은 독자로서 벅찬일이다. 쇼가 살았던 시대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정치,사회적으로 많은게 바뀌었을 것 같지만, 놀랍게도 전혀 바뀐게 없다. 1,2차 세계 대전을 모두 겪은 쇼는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 이성의 황폐함에 치를 떨었다. 더불어 `의무복무제도를 문명화된 인류가 알고 있는 가장 완벽한 노예제'라고 비판한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정치,종교,문화,인종을 이유로 들어 전쟁이 계속되고 살육이 멈추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투표일이 다가오면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국민을 위한 정책들을 내놓지만, 일단 당선되고 나면 말을 바꾸고 공약을 수정한다. 예나 지금이나 인류는 어리석고 정치인은 간악하다.
버나드 쇼는 역사를 학교에서 배운게 아니라, 고전 문학 속에서 배웠고 15세에 학교를 자발적으로 나와, 도서관에서 살며 당대의 지성으로 우뚝섰다. 우리는 쇼를 통해 꾸준한 독서가 교양인과 위대한 지성의 산실임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의 논의를 달리 요약하면, 대중이 어떻게 교양시민으로 성장할 것인가? 일 게다. 교양시민이 왜 필요한가? 올바른 정치와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다. 과중한 노동과 가벼운 유희에 빠져든 대중은 독서할 시간과 멀어지니 정치인들만 좋을 일이다. 정치인이 가장 좋아하는 유권자는 정치에 무관심하고, 사회 정학에 무지한 사람들이다. 정의와 민의가 왜곡된 대표가 정치를 맡게 될 때, 사회는 표류하고 정치는 격랑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 밑바탕엔 무지하고 게으른 유권자가 버티고 있다.
정치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일까? 쇼는 거창한 것을 말하지 않는다. 세계 평화? 유토피아? 아니다. 모든 인간이 적당히 일하고, 적당한 여가를 갖게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여가'야 말로 인간이 이 지상에서 실현시켜야 할 유토피아의 일부라고 쇼는 말한다. 그 여가를 통해, 지성을 계발하고, 미적 취향을 즐기며, 시와 음악과 그림과 책을 감상하며 건강한 문화적 삶을 소비할 줄 아는 시민을 양산해 내야 인류에게 미래가 있다. `폭음과 폭식, 성적탐익'외에는 어떠한 즐거움도 모르는 성인들이 정치인들을 제대로 감시하고, 올바른 정치인을 대표로 뽑을 수 있을까?
"영웅 정치에는 희망이 없다. 우상화된 개인이 통치하는 나라에서는 성숙한 시민사회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현재로서 가장 안전한 정치체제는 자격이 검증된 시민들로 의회를 구성하고 그들이 엄격한 감시와 교체, 해임에 주기적으로 노출되게 하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도 정치는 그렇게 자격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고, 정치인의 자격을 검증할 때 살펴야 할 항목들을 제안하기 위해서다." 603쪽
빈부격차와 양극화, 자본가들의 횡포와 전쟁의 공포, 정치인들의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 시절을 버나드 쇼는 살아왔다. 자신이 무덤속에 잠들기 전, 버나드 쇼는 한 시대의 지성으로서 깊은 책임과 의무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 책의 절절한 울림은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 유효하다. 여전히 왜곡된 사회정의가 정치를 병들게 하고, 다시 사회 구성원들을 위기로 내모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세계 곳곳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빈곤의 현상들이 사라지지 않은 채, 인류를 괴롭히는 이 때 인생을 걸고 습득한 정치,사회적 지혜를 독자들에게 전수하려 열변을 토해내는 쇼의 노력이 눈물겹다.
2013년 3월 23일 토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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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두껍다. 그리고 읽기에 편한 내용만은 아니다. 헨리 조지와 마르크스 그리고 볼테르를 미리 읽었다면 훨씬 더 재미있게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만일 헨리 조지와 마르크스를 읽으며 쾌감을 느낀다면, 그 사람은 요한계시록이나 반야심경, 프린키피아에서도 쾌감을 느낄 수 있을테니 말이다. 물론 나도 위에 언급한 인물이나 책을 읽지는 않았음. 시도만 해봤다. 운전면허를 따기 전에 범퍼카를 탄 격이랄까. 그래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만 한 책임에는 분명하다. 평소 신문을 골고루 보거나, 학창시절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은 뒤 화장실 변기에 앉아 대한민국 교육에 대해 곱씹으며 교육부 장관 면상을 변기 닦는 솔로 마구 문지르며 '대한민국 학교 족구하라그래.' 라는 명대사를 날리고 싶었던 경험이 있거나, 국회의원이 목청 높여 선거운동하는 일 말고는 도대체 할 줄 아는게 무엇인지, (혹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이고 그 기원은 어디서 왔는지) 모든 병사가 전쟁을 반대하고 거부하는데도 마치 장염 걸린 항문마냥 전쟁을 발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니 월급 빼고 다 오릅니다.' -> 이 유행어가 왜 진짜인지, 그리고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처럼 왜 자꾸 내 월급 빼고 위로 올라가기만 하는건지, 그렇게 계속해서 올리는 놈은 누구인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거나 지금 이 글을 읽으며 물음표가 왼쪽 관자놀이를 눌러 고개를 갸웃하신 분이라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길 권합니다. 여러 분야로 큰 틀을 나눠놨고 그 안에서도 짧은 이야기들을 엮어놨기에 조금씩 읽어가다 보면 어느새 꽤나 진도를 나갔을 겁니다. 이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남은 진도를 확인하며 절망하지 않는 것. 한 번 끝까지 읽고나면 스스로 대견해져서 괜히 어께와 목에 힘이 들어가는 책. 두 번 읽고 나면 세상을 보는 시각과 방식이 달라져서 남 일에 조금씩 힘을 쓰게 되는 책. 가치관을 바꾸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옛 시골 5일장 콩나물 할머니 인심만큼 넘치는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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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조지 버나드 쇼를 알게 된다면 그의 매력과 박식함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다. 원래 희곡을 무척 좋아했고, 영문학 공부하던 시절 'Candida'와 'Major Barbara'를 읽으면서 꽤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Pygmalion (자신의 영혼과 자존감을 가진 피그말리온이라면 괜찮을 듯)'을 읽으면서 조금 더 반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버나드 쇼 - 지성의 연대기 (비극을 사소하게 만들 수 있어도 사소함을 비극으로 만들지않는다 )]를 통해 완전히 빠져버렸다. 헤스케드 피어슨의 책에선 버나드 쇼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할아버지인지를 깨닫게 되고, 자신의 말년 (1950년에 사망하기전 1944년에 썼다)에 쓴 이 책을 통해 그가 얼마나 열정적이며 박식하며 존경스러운지 (+수다스러운지)를 꺠닫게 된다.
원제는 'Everybody is political what's what'으로 '어린이를 위한 정치 안내서'라고 그는 에필로그 즈음에서 말했지만, 글쎄, 수준은 청소년 이상이다.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중간에 교육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에서 일정수준과 범위의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 것과, 번역서의 부제가 쇼의 주장을 꿰뚫어 '모르면 당하는 정치적인 것들'이라고 했듯, 태어나 국가제도안에서 살아가려면 정치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러기 위해 기본적으로 알아야만 하는 것들을 그가 너무나도 알려주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악행으로 가득한 난장이 아니라 모두를 현혹하고 착각하게 만드는 유토피아이다.... 선한 사람이 선한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해 바로 알고 현실을 바탕으로 추론해야 한다. 우리가 현실문제를 다루는 정치과학을 통해 인간에 대해 진실과 교훈을 배운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다....p.3~4
.. 나의 정치적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요즘에는 누구나 정치에 관한 한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굴지만, 사실 대부분은 아주 기초적인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P.643
나도 꽤 동감하는 것이, 어릴적부터 정치경제와 윤리는 반드시 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또한 쇼가 언급했던 개인간의 경쟁을 부추키는 교육은 도움이 되지않는다고 공감하기 때문.
경제환경에 따라서의 인간의 심리를 꿰뚫으며 토지에서 자본, 농경에서 상업과 공업으로 변모하는 사회, 왕정과 민주주의, 중앙정부와 지방자치제, 정치, 교육, 미학, 과학, 보험, 종교 등 정말 다양하면서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에 대해 깜짝 놀랄만큼의 해박함으로 설명한다.
그러니까, 자기가 어설프게 외워서 하는거랑 머리속으로 완전히 이해하고 파악하고 관련부분을 다 알고 난뒤에 설명하는 것은 다른데, 금융부분에선 정말 그 하버드교수의 EBS 다큐멘터리의 요약인지라 와우~ 이 책이 나온 시점이 영국에서 여성참정권을 겨우 획득했던 이후인지라 어떤 부분에서는 지금의 실정이랑 안맞는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근본과 변화를 꿰뚫는 파악은 현재에도 많은 비젼을 준다.
..의회는 억울하고 분한 누군가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마음껏 성토하고 비판하고 고발하고 요구하고 제안하고 직접적인 정보를 제공하거나 논의하고 결의안을 제출하거나 표결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의회는 정부가 여론을 지속적으로 수렴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p.50
...나는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서는 나보다 더 잘아는 사람들의 귄위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우호적인 관계에서 그들의 설명을 들을 권리도 있다고 주장한다. .. 대중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은 나 자신의 권리를 옹호하는 셈이다....p.51
..자질과 책임, 의견조율...p.59
..이해력과 실행력은 별개의 문제이다...p.79
..교양교육은 대개 성인교육이며 남을 통해서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 능동적으로 사고하려는 사람에게는 평생에 걸쳐 일어난다...교조적인 가르침은 교양수단으로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어떤 문제를 논쟁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시민은 그 문제에 정치적으로 참견하지 말아야 한다....p.114
..가난에는 질릴 수 있지만 풍요는 만족하는 법이 없다...p.246
...진보란 생각의 변화를 의미한다. 새로운 생각이 처음에는 농담이나 공상처럼 보이는 경우가 종종있다. 그러다가 신성모독 내지는 반역적인 것으로 보이게 되고 차츰 논쟁의 여지가 있는 문제로 여겨지다가 결국에는 진실로 확립되는 것이다....p.266
..내가 문제를 검토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우선 그 문제에서 양극다늘 설정한다. 그리고 실행불가능한 양극단 사이에 여러 단계를 설정한 다음, 그 단계중 어느 지점이 실행에 옮겼을때 최적인지 결정하는 것이다...p.288~289
..정치인은 철저한 자유무역주의를 주장해도 안되고 완강한 보호무역주의를 고수해서도 안된다. 사실상 다른 어떤 종류의 주의로 고수하지 않아야 하고...과학적 인본주의자 여야만 한다....p.290
..미학적 교육을 받지못한 사람들이 누리는 여가는 재앙이나 다름없다...p.310
..교육은 유년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나는 올해로 미수 (88세)에 접어들었지만 내가 가진 미약한 능력으로도 아직 배워야할 것들이 많다...p.315
..예술과 과학, 종교는 토대가 같아서 서로 뗴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p.335
... 얼간이는 항상 멍청한 짓만 하고 거짓말쟁이는 항상 거짓말을 한다고 단정짓는 사람들이야 말로 정치적 진상들이다....p.340
..실험실이라는 제단에서 개를 그렇게 무의미하게 희생시키는 것은 과학이라고 할 수 없다...p.363
..개인이 아무리 높은 도덕성을 지녀고 그것이 공적인 도덕성으로 연결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그들은 의식적으로 비리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올바름 에 관해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을 뿐이다...P.491
..진짜 착한 사람은 본인이 착하고 싶어 착한 사람이다. 그의 착한 삶은 자기 부정이 아닌 자기 만족 에서 우러난다...P.573
...인간본성은 가지가지이다. 이 말은 인간 개개인이 다 다르고 온갖 종류의 인간이 모여 하나의 세계를 구성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우리들 각자가 제 안에 하나가 아닌 여러개의 인격을 갖고있다는 뜻이기도 하다....P.588
..보통 사람들은 자신들이 강하게 찬성하고 있는 어떤 문제에 대해 누군가 동의하지않으면 그 반대자를 마음껏 공격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P.638
이 책을 읽고나면 조금 시야가 트이거나 겸손해(음, 좀 열등감을..) 지게 되며, 어떤 문제에 대해 섯불리 의견을 개진하기전에 좀 더 찾아보고 다른 이의 말을 들어보게 된다고 할까 (음, 읽던 와중에 정말 마음에 들지않던 추리물 여주에 대해 후반부에선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문학 열풍에서 최근에 사람들이 헌법을 읽고 보다 더 정치과 법에 대해 알아가려고 하는 흐름이 바람직하듯, 이 책은 추천사처럼 새로운 신약선서까지는 되지못할 지라도 세상을 보다 넓게 깊게 바라보는 비젼을 제시해준다.
그리고, 내 머리를 띵하며 친 그의 말.
..현명함은 경험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받아들이는 능력에 비례한다.
P.S : 1) 두껍지만 괜찮다. 장마다 주제가 구분되어 (내 생각에는) 눈에 들어온 챕터부터 읽어도 될 것 같다. 그나저나 88세에 이 책을 쓰신 버나드 쇼에게 진심 감탄 존경을 느낀다.
뛰어난 시적아름다움에 스며있는 재기발랄한 풍자로 이상주의와 인도주의 사이에 위치한 그의 작품을 기리며...라고 1925년 스웨덴 한림원이 밝힌 노벨문학상 수여사유인데, 너무 동의하는데 버나드 쇼에겐 좀 부족한 찬사인듯.
2) 유명한 그의 묘비명, 알려진 번역문구보다 이 글이 맞는듯.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18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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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드 쇼의 현대 사회 적응 지침서
『쇼에게 세상을 묻다』는 셰익스피어 이래 최고의 극작가로 평가받는 버나드 쇼가 88세가 되던 1944년에 자신의 세계관을 집대성한 말년작이다. 쇼는 저술의 목적을 “무지한 노인네가 그 동안 공부하고 일평생 세상사람들과 부딪히고 냉엄한 현실을 겪으면서 가까스로 알게 된 기초적인 사회정학을 그것조차 모르는 더 무지한 사람들과 나누려는 시도”라고 밝히고 있다. 버나드 쇼의 모든 철학을 녹여 낸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2014년을 맞을 준비를 해보는 건 어떨까
악마는 노동을 게을리 하는 자에게 해코지한다
버나드 쇼는 이 책에서 인류문명을 크게 경제, 정치, 과학, 교육, 종교로 나누고 평생 쌓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 사회의 모든 것을 밝히고 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특징지어는 일종의 ‘현대사회 적응지침서’인 셈이다. 쇼는 교육, 직업, 예술, 건축, 전쟁 등에 대한 화제를 종횡무진 늘어 놓는다.
이런 다양한 화제 중에 여기서는 버나드 쇼의 교육관과 직업관을 한번 엿보자. 쇼는 우리에게 현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평가답게 그가 독자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 선택한 것은 따뜻한 충고가 아닌 다소 냉소적인 독설이다. 아래 문장은 본문에서 조금 다른 범주의 사람들을 의미하나 고등교육을 마치고도 구직을 하지 않는 현시대 ‘취업포기자들’을 포함하여 일침을 가하는 듯 하다.
‘어중간하게 배운 사람들’ 대부분은 부자가 될 만큼 비범한 돈벌이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노동 계급에 속하지 않고 그렇다고 유한 계급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모습 그대로 가난하고 과시적이며 조직되지 못한 상태로 남는다. 따라서 그들의 혼인 기회는 몹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배움도 어중간하고 혈통도 어중간한 사람들이다.
그는 경제생활과 동떨어진 지나친 교육이 노동자로서, 나아가 인간으로서 자기 완성을 방해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쇼의 생각은 “‘악마는 노동을 게을리 하는 자에게 해코지한다’는 격언은 ‘자질이나 재능을 썩히고 있는 자’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 될 것이다”라는 문장에서도 잘 드러난다.
또한 쇼는 라 로슈푸코만큼이나 인간 본성에 대한 풍자도 서슴지 않는다. 블루칼라 직업을 기피하는 풍조는 20세기 중반 영국이나 21세기 초 한국이나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쇼는 자기 자식에게 화이트칼라 직업만 고수하는 부모들의 태도를 다음과 같이 비꼰다.
런던에서 사무원이 주당 15실링을 벌 때 숙련된 기술자는 2파운드의 수입을 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식을 석공, 목수, 설비기술자 대신에 사무원으로 키우려고 했다. 검은 코트, 풀 먹인 옷깃, 펜이 두껍고 질긴 작업복, 코듀로이 바지, 끌, 톱, 해머보다 더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그러나 쇼가 독자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해학만을 선택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책의 서두에서 “모든 염세주의와 비관주의는 인류의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잘못된 결론을 내린 데서 생겨난 망상”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로 글을 전개해 나간다. 그는 맹목적인 긍정적 사고보다는 현실적인 비판적 사고가 변화와 행복을 이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잠언의 주인공도 다름아닌 버나드 쇼다.
책은 다소 작은 듯 하나 만만한 두께는 아니다. 더욱이 번역이 어려워 출간 후 70년이 다 되어서야 국내에 소개된 사실은 내용의 복잡함을 방증해준다. 다행히 ‘친절한 버나드 쇼씨’는 <40장 비평가들에게>를 시작으로 33페이지에 걸쳐 경제, 정치, 종교에 관한 요약본을 제공한다. <44장 글을 마치며>까지 읽어 감을 잡고 책의 처음으로 가보자. 한 장씩 넘기다 보면 볼드체로 강조된 문장들이 보인다. 우선 이 문장들만 훑어 보아도 책에 관한 개괄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그 다음부터는 책의 구성과 무관하게 관심사에 따라 읽어도 상관 없을 것 같다. 2013년 마지막달, 쇼에게 세상을 한번 물어보자.
201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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