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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활, 역사인가 믿음인가' 책을 읽게 된 동기> 인생의 목표를 정하는데 가장 상위에는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적었다. 근데 거기서 항상 막히는 거다.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 같고. 그러나 일상생활을 하면서 성경에 투자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늘 뒤로 미루던 성경 읽기. 20년을 교회에 왔다 갔다 하면서도 제대로 알아가 본 적이 없었다. 나의 믿음이 한없이 부족함을 느꼈다. 그런 갈급함으로 롤 모델을 찾다가 옥한흠 목사님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옥한흠 목사님에 관한 책을 찾아읽다가 옥성호작가님이 쓴 '아버지 옥한흠'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러면서 옥성호작가님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러다 읽게 된 책이 얼마 전 출간된 '부활, 역사인가 믿음인가.'라는 책이다. 읽다가 나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니 이건 뭐지? 한평생을 영혼 구원을 위해 바치신 옥한흠 목사님. 그런데 그 아들이 쓴 책은 성경을 모순된 이야기, 신화라고 하다니... 책을 읽고 충격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너무 혼란스러웠다. 논리정연하게 쓰인 글들은 차츰 내 마음의 유리벽을 깨고 있었다. 내가 20년 동안 그렇게 찾고 싶었던 진리는 무엇이었을까? =============================================== < 2. 책 속에서> 변증 학자에게 빈 무덤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가장 먼저 쓰인 마가복음이 빈 무덤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p105 마리아는 예수와 함께 지내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다.(마가복음 16:10) 그러나 이 내용은 마가복음이 쓰이고 거의 200,300년이 지나서야 추가되었다. p107 예수는 분명하게 너희가 볼 것이라고, 너희가 죽기 전에 네 눈으로 내가 누구인지 똑똑히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마가복음 14장 61절~63절) 대제사장, 본디오빌라도,아리마대 요셉 누구도 만나지 않고 40일이라는 기간 내내 극비리에 제자들만 만났을 뿐이다. 세상은 그의 부활을 전혀 알지 못했다. p135~140 그런데 율법 교사로서, 온 백성에게서 존경을 받는 가말리엘이라는 바리새파 사람이.(사도행전 5장 34절) "그냥 놔두자. 하나님이 시작한 거면 우리가 막는다고 막힐 리 없고, 하나님이 시작한 일이 아니라면 알아서 사라질 것.." 시간의 흐름으로 볼 때 베드로와 그 일행이 예수를 전파하다 잡힌 것은 예수가 죽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 그렇다면 사람들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지 않을까?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이... 그 과정에 여러 기적이 발생했다. 하늘이 찢어지고 성전의 휘장이 둘로 갈라졌다. 3일 사이 지진도 두 번이나... 무덤에서 사람들이 살아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활보했다. 몇백 명의 사람이 예수가 승천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러나 가말리엘의 말과 태도는 부활은 말할 것도 없고 예수라는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의 태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실은 무엇인가? 예수는 철저하게 최측근 외에는 누구에게도 나타나지 않았다. 오로지 확인 불가한 '익명'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p141~142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기록을 판단하는 기준 중 특히 선입관이 배제된 기록과는 특히나 동떨어져있다. p143 부활을 확신하고 믿은 이유는....'환상', 인지부조화 사람은 자기합리화만으로도 얼마든지 인생 전체를 바칠 수 있으니까. p160 예수의 제자들이 정말로 순교했을까? 아무도 모른다... 사도들의 순교와 관련한 가장 큰 문제는 순교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전설이라는 데 있다. p164 =============================================== < 3. '부활, 역사인가 믿음인가'를 읽고 난후 > 성경을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게 된 건 방언을 받고 나서였다. 영적인 체험이었다. 그 후로 성경에 쓰인 일이 나에게 일어났으니 성경은 무오류 진리라고 믿게 되었다. 그런데 '부활, 역사인가 믿음인가'책을 읽으며 성경이 틀린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특히나 기독교의 핵심인 부활에 관해 허상을 깨뜨렸다. 내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답을 알려주던 성경. 그런데 기독교의 핵심인 부활이 그저 신화에 불과하다면 우린 왜 태어났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부활이 없으니 나쁜 짓 해도 상관없이 나만 잘 먹고 잘살다 가면 되는 걸까? 양심이 아니라고 소리친다. 그렇게 살면 인류 전체가 곧 멸망할 것이라고. 나는 종교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천국의 상급을 바라고 본인이 복받기 위해 억지스럽게 했던 봉사라고 해도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사랑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도 힘없고 외로운 사람들이 찾아가 위로받을 수 있는 곳이고 꼭 필요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목사님들 중에서도 존경스러운 분들이 있다. 삶으로 진정한 예수 정신(사랑)을 실천하신 분들이다. 이웃을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헌신하는 모습. 실수도 있고 약함도 있지만 처절하게 하나님만 보고 걸어가고자 했던 선함이 존경스럽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교리를 믿던 믿지 않던 올바르다고 믿는 것을 실천하는 삶. 이것이 길이고 인생의 참 진리 아닐까? 인생의 진리를 찾아서 옥한흠 목사님의 흔적을 따라가다 옥성호 작가님의 책을 만났다. 잘 찾아간 것 같다. 요즘같이 목회를 세습하는 일이 공공연한 이 시대에 수천억이 넘는 교회를 생판 남에게 물려주신 옥한흠 목사님. 진정으로 예수 정신을 실천하며 살아가셨던 분이고 믿으려면 저렇게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아들은 과연 어떤 분이길래 수천억의 교회와 안정된 자리를 욕심내지 않았던 것일까? 그 아드님도 대단한 분이다. 이런 옥성호 작가님에 대한 믿음이 쌓여있는 상태에서 '부활, 역사인가 믿음인가' 책을 읽었다. 아마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 다른 분이 똑같은 내용이 책을 썼다면 난 20년 동안 믿어왔던 기독교 교리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부활은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부활이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 이제 판을 흔들어 뒤집었고 더 이상은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다. 성경의 틀안에 가두지 않겠다. 고정관념과 관습의 틀 또한 벗어버리겠다. 한 명의 존엄한 존재로서 자유함에 따르는 책임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옥한흠 목사님과 옥성호작가님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양심을 따라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진정으로 인류를 사랑하는 길을. 두 분을 보면 공통적으로 드는 생각이 있다. 나도 온 힘을 다해 아름다운 그 길을 따라가고 싶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