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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게으름 예찬 - 로버트 디세이 저
"게으름 예찬 - 로버트 디세이 저" 내용보기
리뷰도 책 제목 따라 가나? 게으름에 쫓겨 허겁지겁이다.8월달부터 조금씩 책 읽는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확 몰입해서 단번에 읽을 수 있는 소설 빼고는 끝까지 읽기가 힘들다. 이 책도 받은 지 2주가 넘은 것 같아 읽다가 부랴부랴 허겁지겁 리뷰를 올린다. 현대 사회에서는 게으름은 나태의 상징, 잘못 살고 있다는 경고의 대상이다.뭔가 더 열심히 살아야 정상이고 끊임없이 그 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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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도 책 제목 따라 가나? 게으름에 쫓겨 허겁지겁이다.

8월달부터 조금씩 책 읽는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확 몰입해서 단번에 읽을 수 있는 소설 빼고는 끝까지 읽기가 힘들다. 이 책도 받은 지 2주가 넘은 것 같아 읽다가 부랴부랴 허겁지겁 리뷰를 올린다.

 

현대 사회에서는 게으름은 나태의 상징, 잘못 살고 있다는 경고의 대상이다.

뭔가 더 열심히 살아야 정상이고 끊임없이 그 열심을 증명해내야 잘 산다고 한다.

은퇴 이후의 편안함 을 위해 평생 죽도록 일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과연 그럴까?

 

우리는 더 많은 재산, 더 큰 집, 어 많은 자동차, 더 새로운 기술, 더 많은 사물들..., 우리는 만족을 모를 만큼 사물에 중독되어 있고,.... 지쳐 쓰러질 때까지 일한다. 물론 사물은 즐거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나치게 열광한다.... 우리는 사치품을 사기 위해 우리의 편안함을 팔아버렸다.... 우리는 갤리선의 노예처럼 미친 듯이 노를 젓고, 마침내 은퇴에 이르러 채찍질에서 벗어나고 나면, 어느덧 세상의 모든 시간 대신 끝없는 무를 바라보는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뉴질랜드 작가 재닛 프레임이 언제가 잔인하게 썼듯 "습관의 구속은 종종 마음의 영원한 구속이 된다"

 

 요즘 우리는 바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니 참으로 미련하기 짝이 없다! 바쁘다는 말은 사실 자신이 노예상태에 있음을 광고하는 거이다. "바쁜 사람이 사는 것만큼 덜 바쁜 사람은 없다." 2천 년 전 세테카의 말이다. 세네카는 자녀를 위해서든 미래 세대를 위해서든 일하느라 바쁘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의 말에 공감하지 않았다. 그는 이것을 "다른 사람을 위한 낭비"라고 보았다. 그런 사람은 다음엔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낭비될 것이다.

 

일이 아무리 즐겁고 유용하거나 필요할지라도, 본질적으로는 일종의 노예상태다. 그렇기에 여가의 첮째이자 으뜸가는 목표는 우리를 우리 시간의 주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일 할 때는 결코 시간의 주인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때로는 빈둥거리며 옆을 곁눈질하며 여가를 누려야 한다고 말한다.

 

 정신없이 바쁜 세상을 살아가는 당신에게는 휴식을 위한 시간을 마련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당신은 이런 시간을 낼 여력이 없다. 당신을 비롯한 현대인들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오랜 시간을 일하는 데에 쓰고 있다. 과학 기술은 일과 살의 균형을 더욱 갉아먹고, 사람들은 점점 일에서만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시간이 돈인 세상에서 목적없이 걷고, 인맥에 상관없이 사람과 어울리고, 노트북을 펼칠 시간에 거실 소파에 누워 가만이 휴식을 취하는 일이 가치있을까? 저자는 진정한 휴식이 어떻게 우리를 자유롭게 만드는 지 들려주며 우리를 균형 잡힌 삶으로 이끄는 휴식을 기술을 제시한다. 훌륭한 휴식을 통해 비로소 가장 치열하고 유쾌하게 인간다울 수 있다고 말이다.

 

여가란, 결코 물질적 이익을 바라지 않고 (설사 그것이 결국엔 우리는 물론 타인에게 실질적 도움이 된다고 해도) 순전히 그 즐거움을 위해서 자유로이 선택한 것, 빈둥거리고, 깃들이고, 단장하고 취미활동을 하는 등 광범위한 영역을 두루 아우를 때 쓰는 단어다. 여가를 누릴 때에는 가치보다 기교가 훨씬 중요하다. 현명하게 선택한 여가는 아무리 짧은 삶에도 깊이를 준다. 느긋하게 있을 때 우리는 가장 치열하고 유쾌하게 인간다울 수 있다.

 

그가 제시한 '빈둥거림' '깃들이기'와 '단장하기' '놀이의 발견'에 빠져들다 보면 삶에 대한 태도와 방식이 바뀌어 갈 것도 같다. 지금처럼 각박한 세상에 여가란 돈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가질 수 있고 즐길 수 있다는 비판이 있을 수는 있지만 꼭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중 잠깐이라도 다른 생각을 가지는 것, 한발 뒤로 물러서기도 해야 한다는 것, 잠깐 멈춤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책은 읽는 자의 몫이니!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k*****7 2019.09.20. 신고 공감 14 댓글 26
리뷰 총점 종이책
『게으름 예찬』게으름을 피우기 위해서 행복해야 한다!
"『게으름 예찬』게으름을 피우기 위해서 행복해야 한다!" 내용보기
얼마전까지만 해도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삶의 커다란 행복인 것처럼 말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떠나는가 하면, 남성들도 육아휴직을 써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 한다. 우리나라의 휴가제도 또한 초임자에 한해서는 추가 발생 휴가를 줘 좀더 여유있는 삶을 권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누군가는 힘들어 여행을 떠나지 못한다고 해도
"『게으름 예찬』게으름을 피우기 위해서 행복해야 한다!" 내용보기

얼마전까지만 해도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삶의 커다란 행복인 것처럼 말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떠나는가 하면, 남성들도 육아휴직을 써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 한다. 우리나라의 휴가제도 또한 초임자에 한해서는 추가 발생 휴가를 줘 좀더 여유있는 삶을 권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누군가는 힘들어 여행을 떠나지 못한다고 해도 늘 시간에 쫓기는 직장인들의 바람은 휴가를 가는 것이다. 집에서 쉬든 어딘가로 여행을 가든 쉬는 게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여가에 대해서 말한다. 우리가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게을러야 한다. 이는 많은 사람의 바람이지만 실제로는 몇몇 사람에게만 주어질 뿐이지만 말이다. 저자는 우리가 누려야 할 여가에 관해서 많은 문학 작품들을 거론하며 말한다. 일단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책 『리플리』 속 톰 리플리를 말하는데 꿈꾸었던 삶의 많은 것이 바로 거기에 있지 않았나 싶다. 디키 그린리프를 죽이고서라도 그의 여유로운 삶을 훔치고 싶었던, 그래서 마침내  유유자적한 삶을 보내는 리플리였다.

 

나에게 주어진 여가시간을 어떻게 즐길 것인가. 저자가 말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낮잠, 책 읽기, 바라보기, 대화, 걷기, 빈둥거림, 깃들이기, 그루밍, 놀이, 외국어 공부하기, 쇼핑, 여행 등이다.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을 오죽하면 불금이라고 표현했을까. 직장인 만이 가지는 귀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주말 오전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책을 읽다가 졸다가 음악을 듣는 시간은 무척 귀하다.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거나 하면 그 시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여행지에서도 즐길 수 있지만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와 놓치기 십상이다.

 

 

 

바야흐로 음식이 화두인 시대다. TV를 틀면 어딘가의 방송은 항상 음식을 먹고 있다. 외국을 여행하며 혹은 셰프가 만들어주는 음식 또는 캠핑을 다니면 만들어 먹는 음식이다. 또한 방송인이 아닌 일반인 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에서도 음식은 필수적이다. 산에서 채취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는 모습.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건 많은 것을 함께하는 일이다.

 

 

음식에 관련된 방송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인지 저자도 그 말을 언급하며 그에 앞서 정원을 가꾸던 이야기를 한다. 바라보기 위해 만드는 정원은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정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안해지지 않나. 그래서 제주의 어떤 곳이나 태국의 치앙마이 어떤 곳은 정원을 바라보며 차와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인기다.

 

수천 년 동안 일부 사상가들과 작가들은 '게으름'이 어떤 형태로든 삶의 최고 형태라고 여겨왔다. 일이 아무리 즐겁고 보람 있을지언정, 그들에게 일이란 노예제의 다른 이름이다. 반면에 여가는 자유다. 더러 빈둥거림이란 가능한 한 적게 일하는 것을 뜻한다고 이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힘들게 일하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 들에 핀 백합처럼 말이다. (22페이지)

 

진정한 의미의 한량과 빈둥거리는 사람들이 모두 그렇다. 이는 매우 중요한 점이다. 빈둥거리는 사람은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시간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명심할 점은, 부르주아 게급 혹은 지주나 고용주는 자기 여가를 일정한 '생산 네트워크'에 통합시키길 원치 않는 사람에게 '나태하다'는 꼬리표를 붙이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42페이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삶을 즐기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욕심을 내어 투어상품을 예약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하루를 보냈더니 몸이 무너진 것 같았다. 하루만 타이트하게 보냈을 뿐 다음 날부터는 여유롭게 보냈는데도 평소보다 피로가 쌓여 마지막 날엔 장에 탈이 나고 말았다.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반성이다. 게으름을 피웠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평소보다 더 부지런을 떨었던 탓이다.

 

 

 

당신은 게으름을 피우기 위해서 행복해야 한다. 행복하기 위해 게으름을 피워야 하는 게 아니다. (143페이지)

 

 

순간을 산다는 것은 죽음에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물론 당신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지는 않으리라. 그건 미친 짓이니까. 그러나 창조적인 놀이는 순간순간을 몇 시간, 몇 달, 몇백 년으로 만들어준다. (244페이지)

 

좀더 게으름을 피우는 시간을 갖고 싶다. 그게 여유고 진정한 여가가 아니겠는가. 내가 하는 책 읽기, 좋아하는 여행, 친구와 함께 정원의 나무 혹은 숲을 바라보는 즐거움. 함께 차를 음미할 수 있는 여유. 진정한 삶이 주인이 되는 게 아닌가.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9.09.03. 신고 공감 11 댓글 12
리뷰 총점 종이책
소원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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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제 퇴직 이후의 삶을 준비할 시기가 되었다. 몇몇 친구들은 이미 명예퇴직을 했거나 준비 중에 있는 것으로 안다. 이제 다들 그럴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며 남은 삶을 살아갈지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계획하고 준비한 친구는 많지 않은 듯 보인다. 많지 않은 게 아니라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함이 지금 내 나이대에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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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제 퇴직 이후의 삶을 준비할 시기가 되었다. 몇몇 친구들은 이미 명예퇴직을 했거나 준비 중에 있는 것으로 안다. 이제 다들 그럴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며 남은 삶을 살아갈지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계획하고 준비한 친구는 많지 않은 듯 보인다. 많지 않은 게 아니라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함이 지금 내 나이대에 있는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인 듯하다. 일에 묻혀 살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던 과거에는 마음껏 여행을 하고 싶다거나, 골프나 등산 등 누리지 못했던 여가 생활을 원 없이 누려보고 싶다거나, 아무도 없는 산골에 터를 잡고서 유유자적 한가한 삶을 살아보고 싶다거나 하는 등 하고 싶은 일도, 바라는 것도 참 많았지만 막상 내 나이가 되고 보니 원하던 삶을 살아보겠다는 생각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눈앞에 펼쳐질 무한대의 시간을 도대체 뭘 하면서 채워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귀농을 했던 몇몇 친구들은 1년도 되지 않아 도시로 복귀를 했고, 허구한 날 골프를 치던 친구도 이제는 그마저도 지겨웠는지 집 밖 출입이 뜸해졌고, 장사를 시작했던 친구들도 수월찮은 돈만 까먹고 폐업 절차에 접어들었으니 어느 것 하나 마음 놓고 선택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일과 여가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한 채 노후를 설계하겠다는 젊어서의 꿈은 한낱 꿈으로 그칠 공산이 커진 셈이다. 무작정 일만 쫓으면서 살았던 우리는 그 세월 동안 점차 노는 법을 까먹으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노는 법을 까맣게 잊은 우리가 정작 노는 시간이 눈앞에 놓이자 허둥지둥 당황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지금 이해하기로 여가란, 결코 물리적 이익을 바라지 않고 (설사 그것이 결국엔 우리는 물론 타인에게 실질적 도움이 된다고 해도) 순전히 그 즐거움을 위해서 자유로이 선택한 것, 빈둥거리고, 깃들이고, 단장하고, 취미 활동을 하는 등 광범위한 영역을 두루 아우를 때 쓰는 단어다. 여가를 누릴 때에는 가치보다는 기교가 훨씬 중요하다. 현명하게 선택한 여가는 아무리 짧은 삶에도 깊이를 준다."  (p.29 '들어가는 말' 중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문학가 로버트 디세이가 쓴 <게으름 예찬>은 게으름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인 시각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는다. 우리가 자신의 삶 속에서 즐겁게 뛰노는 법을 배움으로써 한가로이 삶을 즐기는 과정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삶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바쁘다는 것은 결국 일에 매몰되어 자신의 존재를 잊고 살아가는 것이기에 타인과의 관계와 삶의 의미, 왜 사는가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깊은 성찰을 유도하지 못한다.

 

"노는 것은 당신 시간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키케로와 세네카는 그것으로 열변을 토했고, 중국부터 유럽의 가장 끄트머리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들은 그 통찰을 이야기했다. 특정 장소에서 특정 기간 동안 특정의 규칙을 관찰하면서, 당신은 당신의 시간이 주는 즐거움을 위해 어떻게 시간을 쓸지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다. 노는 것에 그 이상의 목표는 없다. 몇백 년 동안 지배계급이 성직자들과 군대와 함께, 노동은 신성하다고 주장해왔던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p.274)

 

저자는 '일해야 할 의무가 대체 무엇이 "성스럽다"는 말이냐'며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는 고전문학 작품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요시다 겐코의 『쓰레즈레구사』, 시트콤 <핍 쇼>와 다큐멘터리 <스시 장인: 지로의 꿈> 그리고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불러온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진정한 휴식'이 무엇인지 희미하게 인식할 수 있다.

 

"이런 세계를 상상할 수는 없을까? 거의 모든 사람이 일주일에 사나흘 정도 신체에 무리 없이 창의적으로 일하고, 휴가는 길어서 매년 수백, 심지어 수천 시간을 빈둥거리고 깃들이고 마음껏 놀며, 근사하게 비옥한 여가를 마음껏 즐기는 세계 말이다."  (p.282)

 

멀리 중동의 사막에서는 월드컵 열기가 뜨겁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월드컵 참가국의 국민들은 자국 선수들의 선전을 기대하며 밤잠을 잊은 채 텔레비전 중계를 시청한다. 또는 그 각본 없는 드라마에 울고 웃고 탄식하며 정신없이 빠져드는 것이다. 놀이는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언제 이만큼 시간이 흘렀는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그렇게 지인들과 웃고 떠들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에 찾아오는 나른한 피로감에 까무룩 잠이 드는 것, 내일 아침 만나는 사람들과 어제 있었던 일을 주고받으며 하루의 일과를 무리 없이 해치우는 것. 우리의 삶이 죽음 직전까지 그렇게 활기찬 하루하루로 채워질 수만 있다면...

이달의 사락 s*****l 2022.11.23. 신고 공감 8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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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보된 행복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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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에는 지독한 일 중독자이거나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많다. 물론 내 주변만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말이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성인 대부분이 그럴지도 모른다. 모처럼 여가 시간이 주어져도 도무지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없는 사람들. 그래서인지 노는 것보다 일하는 게 편하다는 말을 거침없이 하기도 하고, 일할 때가 좋을 때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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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에는 지독한 일 중독자이거나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많다. 물론 내 주변만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말이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성인 대부분이 그럴지도 모른다. 모처럼 여가 시간이 주어져도 도무지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없는 사람들. 그래서인지 노는 것보다 일하는 게 편하다는 말을 거침없이 하기도 하고, 일할 때가 좋을 때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기도 한다. 게다가 자신들의 말을 증명이나 하려는 듯 휴일이면 뒹굴뒹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보내도 될 것을 마치 누군가로부터 쫓기는 사람처럼 안절부절 갈피를 못 잡거나 맨정신으로는 불안한 마음을 도무지 진정시킬 수 없다는 듯 서둘러 술에 취하려 드는 경우가 많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러시아 문학 연구자이자 TV 프로그램 진행자, 소설가, 에세이스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버트 디세이는 자신의 책 <게으름 예찬>에서 '바쁘다는 말은 자신이 노예 상태에 있음을 광고하는 것'이라고 쓰고 있다. 평소에 우리가 자랑처럼 또는 습관처럼 떠벌리는 '바쁘다'는 말이 결코 자랑이 아니라는 얘기다. 자신의 일이 아무리 즐겁고 유용하거나 필요해도, 일할 때 우리는 시간의 주인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시간만큼은 분명 누군가의 노예로 보내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오랜 세월 동안 지배계급이 주장해 온 '노동은 신성하다'는 말은 순전히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자신들의 여가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지배계급을 제외한 모두가 뼈가 부서져라 일하도록 그런 논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최근에 일(Work)과 삶(Life)에 있어서 균형(Balance)을 유지하려는 추세가 확산되고는 있지만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게으름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그러나 '워라밸' 문화의 확산 추세로 인해 일과 여가를 분리하려는 직장인들의 수가 증가하였고, 기업의 입장에서도 근로자에게 충분한 휴식을 제공함으로써 일의 능률과 생산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일과 여가를 분리하는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일밖에 몰랐던 과거 베이비붐 시대의 관성은 목적이나 결과 없이 게으름을 피우는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도록 하는 게 사실이다. 휴식을 통해 자신의 삶과 존재 가치를 깨닫는 게 아니라 일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는 얘기다.

 

"빈둥거리기는 재미있고 깃들이기는 뿌듯한 만족감을 주지만, 놀이야말로 최고의 여가 활동이다. 그것이 주는 즐거움 때문에 자유롭게 선택되었다는 전제만 있다면, 놀이는 가장 훌륭한 여가이며, 무엇에도 뒤지지 않을 좋은 삶이다." (p.202)

 

저자가 생각하는 게으름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아니라 '어떤 것이든 할 자유'이다. 말하자면 게으름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여분의 어떤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적극적으로 계획하고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유용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빈둥거림, 독서, 걷기, 여행, 놀이, 낮잠, 섹스, 목욕, 청소, 요리, 세탁, 아무것도 하지 않기 등 익숙했던 게으름의 방식을 주도적으로 선택하라는 것이다. 꼼짝하지 않은 채 모험을 하는 독서의 방식이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무언가를 한다는 느낌의 무작정 걷기의 방식이든 우리가 선택하는 게으름의 방식이 무뎌졌던 감각을 깨우고, 각자에게 삶을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게으름을 현명하게 활용하면 할수록 삶에 깊이가 생기고 행복에 한 발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슬프게도 좋은 놀이(초월적인 가벼움)는 우리 대부분의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조금씩 멀어지고, 그러다 어느새 우리는 편안히 놀지 못할 만큼 늙어버린다. 밖에 나가기에는 눈이 침침하고 숨은 너무 금세 가빠오며 관절은 시큰거리고 동작은 굼뜨다. 뭐가 뭔지 헷갈리고 썩 내키지도 않는다. 대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놀이하는 것을 텔레비전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때쯤 되면 그것조차 좀처럼 하지 않는다." (p.202)

 

우리는 대개 좋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 이를테면 휴식이나 여행, 외식, 문화체험 등 자신의 삶을 깊이 있게 하는 것들을 '다음에'라는 말로 일축하거나 반복하여 유보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 당장'이라는 말은 일에서나 통용될 뿐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일에는 인색하다. '그리고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말로 변명한다. 우리는 이렇듯 자신의 삶을 외면하거나 천대한다. 물웅덩이처럼 다양한 모양의 시간을 옮겨 다니며 순간순간을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사용해보라고 저자는 권한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을 희생한다는 생각, 다음으로 유보되었던 행복, 바쁘다는 이유로 나를 되돌아보지 않는 삶은 결국 크나큰 후회를 우리에게 선물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을 희생하면서 평생 희생의 이유와 명목만 찾았던 게 우리 부모 세대의 삶이었다면 우리는 진정 다른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이달의 사락 s*****l 2019.09.01.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로버트 디세이, 『게으름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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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르게 사는 삶은 정말로 가능한가 - 로버트 디세이, 『게으름 예찬』       자본에 묶인 근대인     박태원이 지은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는 근대 도시를 산책하듯 떠도는 인물이 나온다. 제목에 나오는 ‘소설가 구보 씨’다. 그는 요즘 사람들처럼 운동 삼아 산책을 하는 게 아니다. 소설을 쓰려는 목적으로 그는 도시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그래서일까, 그는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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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르게 사는 삶은 정말로 가능한가 

- 로버트 디세이, 『게으름 예찬』

 

 

 

자본에 묶인 근대인

 

 

박태원이 지은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는 근대 도시를 산책하듯 떠도는 인물이 나온다. 제목에 나오는 소설가 구보 씨. 그는 요즘 사람들처럼 운동 삼아 산책을 하는 게 아니다. 소설을 쓰려는 목적으로 그는 도시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그래서일까, 그는 늘 피곤하다. 거리를 걸어 다니는 일이 피곤하고, 찻집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피곤하다.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들 또한 한없이 몸을 지치게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 이렇게 해야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할 일 없는 한량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구보 씨는 정말로 열심히 소설에 담을 만한 이야기를 도시를 산책하며 찾고 있는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한 산책이니 얼마나 행복할 것이냐고? 그것은 글을 써보지 않은 사람들이 내뱉는 속 모르는 소리이다.

 

구보 씨는 게으름뱅이가 아니다. 그는 계획대로 움직인다. 근대 도시의 풍경을 살필 수 있는 장소를 따라 움직이며 그는 소설 언어에 담을 내용을 공책에 기록한다. 공책에 쓴 내용이 풍부해질수록 소설 또한 양질 면에서 좋아질 수 있다. 요컨대 구보 씨는 일을 하기 위해 산책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좀만 걸어도 피곤하다. 일만 하고 쉬려고는 하지 않는 근대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근대인은 왜 쉬려고 하지 않을까? 잠시라도 쉬면 속도에서 뒤처지기 때문이다. 속도에서 뒤처진다는 건 곧 경쟁에서 밀린다는 걸 의미한다. 무한 경쟁이 외쳐지는 세상에서 경쟁에서 밀리면 어떻게 될까? 근대인은 그래서 휴식도 더 나은 성과를 얻기 위한 시간으로 치부한다. 더 열심히 일하려면 더 열심히 놀아야 한다. 이때 놀이는 물론 자본이 만든 광장 속에서 이루어진다. 일을 할 때도, 휴식을 할 때도 근대인은 자본에 묶여 있는 것이다.

    

요즘 우리는 바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니 참으로 미련하기 짝이 없다! 바쁘다는 말은 사실 자신이 노예상태에 있음을 광고하는 것이다. “바쁜 사람이 사는 것만큼 덜 바쁜 삶은 없다.” 2천 년 전 세네카Seneca의 말이다. 세네카는 자녀를 위해서든 미래 세대를 위해서든 일하느라 바쁘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의 말에 별로 공감하지 않았다. 그는 이것을 다른 사람을 위한 낭비라고 보았다. 그런 사람은 다음엔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낭비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 무한히 이어질 것이다. 영국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은 학교에서든 대학에서든, 교회에서든 시장에서든 굉장히 바쁘다는 것은 활력 부족 증후군이라고 여겼다. (19~20)

    

바쁘다는 말이 곧 행복을 과시하는 말이 되는 사회를 우리는 살고 있다. 바쁘다는 건 할 일이 많다는 것이고, 할 일이 많다는 건 그만큼 돈을 얻을 수단이 많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바빠야 돈을 벌 수 있다. 돈을 벌면 명예는 자연 따른다. 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사회가 아닌가. 지은이는 이렇게 바쁜 현대인을 향해 요즘 우리는 바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니 참으로 미련하기 짝이 없다!”고 서슴없이 외친다. 그는 바쁘다는 건 그만큼 사회에 얽매여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바쁜 사람은 자유를 마음껏 즐기지 못한다. 자유를 즐기지 못하는 삶을 상상해 보라. 아무리 돈을 많아도 자유가 없는 사람이 어떻게 그 돈을 쓸 것인가? 2천 년 전의 세네카는 바쁜 사람이 사는 것만큼 덜 바쁜 삶은 없다.”고 단언했다. 시간적인 차이는 있을지라도, 지은이 또한 루이스 스티븐슨을 따라 세네카와 같은 이야기를 한다. 바쁘게 움직일수록 그 사람은 그만큼 활력이 부족하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이 활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무언가 이상하다. 활력이 부족한데 어떻게 바삐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역사적으로 특혜를 받은 계급은 늘 빈둥거리는 사람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빈둥거리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만큼 자신들과 같은 계급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예전 귀족들은 일상과 관련된 일을 모두 하인들에게 맡겼다. 자신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물론 돈(당시에는 땅)이 있어서 가능했다. 실컷 빈둥거리면서도 그들은 정작 돈이 없는 사람들이 빈둥거리는 것을 그냥 두려고 하지 않았다. 땅이 없는 사람들이 일을 해야 귀족들의 재산이 는다. 재산이 늘어야 귀족들은 마음껏 빈둥거릴 수 있다. 하층민은 열심히 일을 하고, 특수층은 일을 하지 않는 사회는 예전부터 이념처럼 군림하고 있었던 셈이다.

  

  

빈둥거림의 미학

  

  

당신이 만약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빈둥거리며 논다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반응할 것 같은가? 빈둥거리며 논다는 것은 돈 벌 일을 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물론 빈둥거리며 놀면서 돈을 벌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는 말이 알려주는바 그대로, 사람들은 일=노동을 해서 먹고 사는 게 정직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초기 자본주의가 왜 청교도 정신과 연결되었겠는가? 청교도 정신은 무엇보다 근면을 중시한다. 근면한 사람만이 신이 준 직분을 이 세상에서 실천할 수 있다. 빈둥거리며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은 신의 명령을 거스른 사람이다. 그러고 보면 예수가 말한 가난한 사람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부자들은 열심히 일하지도 않으면서 잘 먹고 잘 산다. 고리대금을 직업으로 삼은 이들을 예수가 싫어한 이유이기도 하겠다.

 

자본주의 사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잘 살려면 태어날 때부터 부자로 태어나야 한다. 그러지 않은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모아야 한다. 돈을 모으면 성공한 삶이고, 돈을 모으지 못하면 실패한 삶이다. 트랙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경주마처럼 사람들은 늘 긴장상태가 되어 사회생활을 한다. 토끼처럼 아무리 빨라도 긴장하지 않으면 다른 토끼들에게 밀린다. 토끼를 앞지른 거북이는 이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다. 거북이가 앞지를 만큼 토끼가 잠도 자지 않으려니와, 설사 그게 가능하더라도 자는 토끼를 대체할 빠른 토끼는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성공으로 가는 길은 한없이 좁다. 피라미드를 생각하면 어떨까? 올라갈수록 좁아진다. 올라가더라도 언제 아래로 고꾸라질지 모른다. 어떻게든 그 자리에서 버티려면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한다

  

소셜 미디어의 맹공이 있기 전, 인도 사람들은 차 한 잔을 곁들여 대화를 나누었다. 그 풍습은 서벵골 지역에서 겨우 명맥을 잇고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보다는 무언가를 하는(그러나 많이 하지는 않는) 식의 대화, 이른바 아다Adda를 완성했다. 아다를 진정으로 즐기는 사람, 곧 아다바지Addabaj라면 보통 차와 커피를 놓고 친구들과 함께 중요한 일에 관해 느긋하게 대화를 나눈다. 이런 대화는 공적인 장소에서 그러나 매우 사적인 방식으로 벌어진다. 그러므로 그 논의는 사적이면서도 바깥세상의 것이 된다. 대화에 가담하는 사람들은 뒷담화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 살롱에서 프랑스인들이 하던 것처럼 서로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또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무언가를 사고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관점을 교환하고, 배우고, 논쟁하고, 적극적으로 알고 싶어서 모인다. 그것은 경쟁이 아니며 선술집에서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싸우는 것도 아니다. (105)

    

일에 치인 사람은 빈둥거릴 줄 모른다. 인용문에 나타나듯, 지은이가 말하는 빈둥거림은 아일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그는 무엇보다 모든 시간을 성과를 내는 일에 투자하는 근대인들의 망상을 깨뜨리려고 한다.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된다고 자본주의는 선전한다. 이를 따르면 피라미드의 아래에 사는 사람들보다 피라미드의 위에 사는 사람들이 부지런하다. 부자가 되려면 부지런해지라는 선전을 함으로써, 자본주의는 더 많은 생산력을 이끌어내려 한다. 사람들이 만약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린다면 자본주의는 망할 것이다. 현행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생산하고 끊임없이 소비하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체제에 맞추어 움직이고 있다. 생산을 하려면 사람들이 일을 해야 하고, 일을 해야 사람들은 물건을 소비하는 데 돈을 쓸 수 있다. 자본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줌으로써 자본을 증식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기적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사회는 정지 상태가 되어버린다. 정지 상태의 사회가 되지 않으려면 사람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소비를 해야 한다. 일을 하는 것도 크게 보면 소비의 일종이다. 돈을 벌면 돈을 써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해 움직여야 하고, 돈을 소비하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게으름을 피운다고? 말도 안 된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도 사람들은 돈을 들고 밖으로 나와 소비를 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돌아가고, 자본가의 재산이 증식된다. 자본가는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을 싫어한다.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은 자꾸만 자본의 바깥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자본은 자본의 안쪽에서만 증식을 한다. 바깥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만큼 자본이 증식하는 속도는 늦어진다. 일을 할 때도 에서 해야 하고, 소비를 할 때도 에서 해야 한다.

 

이라는 장소는 자본이 만든 광장을 가리킨다. 자본의 광장에서 일을 한 사람들은 자본이 세운 놀이터로 가 여가를 즐긴다. 자본은 놀이터를 만들어 인건비로 나간 돈을 회수한다. 위 인용문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자본은 극도로 싫어한다. 자본 회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은 스스로 멈출 수 없는 운동을 하고 있다. 운동을 멈추는 순간 자본주의라는 체제 자체가 무너진다. 돈이 돈을 먹는 사회가 아닌가. 사적인 장소에 머무르려는 사람들을 자본은 어떻게든 사람들이 많은 광장으로 끌어내려고 한다. 혼자 놀아도 밖에 나와서 놀아야 한다. 집안에 처박혀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자본은 조장한다고나 할까? 밖으로 나가기를 끊임없이 유혹하는 텔레비전 광고를 보라. 수많은 광고들이 상품을 선전하고, 놀이를 선전한다. 유혹을 당하지 않으려면 텔레비전을 꺼야 하지만, 세이렌의 소리는 이미 사람들의 뇌를 장악하고 있다.

 

지은이가 얘기하는 빈둥거림은 어찌 보면 이러한 자본의 유혹을 물리치려는 하나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소셜 미디어에서 이루어지는 형식적인 대화가 아니라 서로가 무언가를 배우고 논쟁하는 대화를 원한다. 그러려면 빈둥거릴 시간이 있어야 한다. 모든 시간을 일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날마다 빈둥거릴 시간이 없다고 울먹이듯 외친다. 그들은 정말로 시간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이 없다는 환상에 빠진 것일까? 지은이는 후자라고 명확히 밝힌다. 바쁘다는 말이나, 시간이 없다는 말은 자본이 퍼뜨리는 환상에 불과하다. 자본은 사람들을 그냥 놔두려고 하지 않는다. 일을 할 때는 일만 하라고 하고, 여가를 즐길 때는 여가만 즐기라고 한다. 일과 여가는 물론 자본이 만든 광장을 벗어나면 안 된다. 돌려 말하면 자본의 광장에서 벗어나면 빈둥거릴 시간이 나온다는 얘기가 된다. 지은이 말마따나 책을 읽는 일만 해도 꼼짝하지 않은 채 모험하는 일이 될 수 있지 않은가.

  

  

깃들이기와 단장하기

 

 

자본이 만든 광장은 사적인 영역을 애써 무시하려고 한다. 사적인 자리가 들어설 자리를 자본이 자꾸만 침범해 들어온다. 지식을 얻으려면 인터넷을 켜면 된다고 자본은 유혹한다. 책을 읽고 정보를 얻는 시간보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는 시간이 더 짧다고 자본은 강조한다. 수많은 정보를 담은 스마트폰을 보는 게 더 유익하다고 자본은 또한 선전한다. 현대인들은 분명 사적인 일을 할 때도 무언가 공적인 일, 정확히는 자본이 만든 일과 자꾸만 얽힌다. 인터넷상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면 자본이 만든 광고가 끊임없이 떠오른다. 하나를 지우면 다른 하나가 나타난다. 방안에 홀로 있으면서도 홀로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인터넷을 끄지 않으면, 텔레비전을 끄지 않으면 자본은 어디서나 우리 삶에 개입한다. 한 곳에 편안히 깃들이기가 그만큼 힘든 것이다.

    

나는 순전한 쾌락을 위해 육욕에 탐닉하는 것이 더 높은 의식 수준의 문턱으로 걸음을 재촉하는 이상적인 방법은 아닐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 솔직히 말해 재미를 위한 섹스는 엄격한 성직자적 관점에서 특히 더, 깨달음의 길을 가로막을 수 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카주라호에서 세속적 공간과 신성한 공간 사이의 수많은 문턱은 서로 껴안은 커플 부조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런 한편 더욱 외설스럽고 훨씬 덜 금욕적이며 실제로 이 사원들을 지은 인도인들이 알고 있었다시피, 우리를 우리이게 만드는 모든 것들과 접촉하는 데는 좋은 섹스만 한 것이 없다. 우리의 욕구, 우리의 장난기, 우리의 수많은 어리석음, 우리의 다정함, 탐욕, 그리고 누군가의 그것을 캐내는 것에 관해 우리가 평생 배워온 것들. 누군가의 그것을 영혼이라고 말할 뻔했지만 가장 깊은 내면이라고만 말해 두자. (176)

    

지은이가 말하는 깃들이기는 영혼, 다른 말로 하면 가장 깊은 내면과 만나는 과정을 나타낸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우리는 영혼을 느낄 수 없다. 인터넷을 하면서도 우리는 영혼을 느낄 수 없다. 스마트폰이라고 다를까. 온통 문명의 이기에 정신을 빼앗긴 채 우리는 살고 있다. 기기는 인간을 생각하지 않는 동물로 만들려고 한다. 게임을 하는 아이들은 오로지 게임 속 적을 죽이는 데 몰두한다.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사람들은 그저 두 눈으로 화면에 나오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자본은 스펙터클한 장면을 번갈아가며 화면으로 내보낸다. 보기만 하면 되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만 있고 공()은 없는 세상이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색만 있는 세상은 화려하다. 감각적이다. 감각은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게임을 하면서 몸이 들뜨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깃들이기의 한 형식으로 지은이는 섹스를 이야기한다. 그는 종교적 차원으로 억제되는 섹스는 온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깨달음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감각에 탐닉하는 섹스를 물리쳐야 할 적으로 생각한다. 맞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섹스만큼 아름다운 접촉 또한 없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섹스를 통해 사람들은 단순히 쾌감만 얻으려고 하는 게 아니다. 섹스를 하려면 우선 서로 간에 신뢰가 있어야 한다. 신뢰가 없이도 섹스를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순간적인 쾌락을 얻는 데 불과한 행위다. 서로를 향한 신뢰가 있어야 서로를 깊이 받아들이게 된다고 지은이는 재삼 강조한다. 섹스는 몸과 몸이 만나는 일이면서도 동시에 정신과 정신이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색을 통해 공에 이르는 기술이라고나 할까? 자본은 이러한 섹스를 산업화해서 자본을 증식하는 도구로 만들었다. 날이 갈수록 번창하는 섹스 산업을 보라.

 

섹스는 상대 몸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제 몸을 알아가는 과정을 내포하고 있다. 상대 몸을 모르고 어떻게 상대를 즐겁게 할 수 있으며, 제 몸을 모르고 어떻게 섹스를 하는 쾌감에 이를 수 있을까? 지은이는 섹스에 스며든 깃들이기를 목욕 문화에서도 발견한다. 목욕을 하며 일을 사람은 거의 없다. 일과는 거리를 둔 자리에서 사람들은 알몸이 되어 목욕을 한다. 따뜻한 물이 온몸을 감싼다. 피곤이 단번에 가시는 느낌이 든다. 섹스가 더불어 느끼는 감각이라면, 목욕은 홀로 느끼는 편안한 감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빈둥거림과는 다른 차원의 느낌을 깃들이기는 준다고나 할까? 지은이가 말하는 게으름이 단지 일을 놓는 게 아니라, 삶 자체를 즐기며 사는 것이라고 점을 새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노동은 적게, 놀이는 길게

 

 

당연한 말이지만, 게으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려면 그만큼 노동을 적게 해야 한다. 노동을 적게 하면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을까? 사실 이 책을 읽으며 뇌리를 떠나지 않은 질문이다. 세네카가 게으르게 살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일을 대신 해주는 하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그는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귀족이었다는 얘기다. 노동을 적게 하고 놀이를 길게 하려면 돈이 나오는 길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 아쉽게도 지은이는 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이것은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사회 문제다. 가난 문제를 국가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가난 문제는 여전히 국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복지 국가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복지 국가는 국가가 가난을 해결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노는 것은 당신이 시간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키케로와 세네카는 그것을 열변을 토했고, 중국부터 유럽의 가장 끄트머리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들은 그 통찰을 이야기했다. 특정 장소에서 특정 기간 동안 특정의 규칙을 관찰하면서, 당신은 당신의 시간이 주는 즐거움을 위해 어떻게 시간을 쓸지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다. 노는 것에 그 이상의 목표는 없다. 몇 백 년 동안 지배계급이 성직자들과 군대와 함께, 노동은 신성하다고 주장해왔던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부자를 포함해 나머지 모든 사람이 뼈가 부서져라 일할 때, 그들은 자유롭게, 종종 목숨을 걸어가며 그들의 게임을 하며 놀 수 있었으니까. 일해야 할 의무가 대체 무엇이 성스럽다는 말인가? 이는 이제 우리가 드러내놓고 콧방귀를 뀌어야 할 허튼소리다. (274)

    

노는 것은 당신이 시간의 주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지은이의 말은 옳다. 시간의 주인이 되지 않으면 자본이 만든 시간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몇 백 년 동안 지배계급은 노동을 신성시하여 엄청난 이익을 취했다는 말도 옳다. 하층민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버리고 죽어갈 때, 지배계급은 안전한 후방에서 전리품을 챙겼다. 지배계급의 그런 속성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지금 이 사회에서도 하층에 있는 사람들은 뼈가 녹을 정도로 일을 하고, 상층에 있는 사람들은 골프를 즐기며 일을 한다. 성공한 1퍼센트는 결코 건강에 무리가 되는 일을 벌이지 않는다. 그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만이 무리를 한다. 하층민은 무리를 해야 하루하루 먹고 살 수 있고, 상층으로 올라가려는 사람들은 무리를 해야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다. 최상층에 있는 사람들은 하늘 위에서 이런 사람들을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내려다본다.

 

노동이 성스럽다는 지배계급의 말을 걷어찬다고 가난한 사람들이 잘 놀게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콧방귀를 뀌며 허튼소리 하지 말라는 말을 한 바로 그 시간에도 하층민은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게으르게 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자연인이 되는 게 좋다는 말처럼 무책임하다. 이 책에는 숨 가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품격 있는 휴식법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누구나 품격 있게 살고 싶다. 한여름에 근사한 휴양지에 놀러가 비싼 음식을 먹으며 마음껏 쉬고 싶다. 그게 안 되면 집에 깃들어 책을 읽으며 빈둥거리고 싶다. 그렇게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할 수 없어서 못하는 것이다. 왜냐고? 자본이 만든 사회가 굳건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균형 잡힌 삶을 살려면 균형 잡힌 사회가 필요하다. 그것이 안 된 상태에서 균형을 이야기하면 결국은 개인의 능력 차이로 이 문제를 처리할 수밖에 없다. 이것만큼 자본에 충실한 방법이 어디에 있을까 

    

o*****s 2019.08.28.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행복해야 게으를 수 있다[게으름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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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은 나쁘게 받아들여졌다.바쁘게 살아야 하고 바지런하게 움직여야 하고 늘 뭔가 하고 있어야 했다.그래서 가만히 있는 시간이 무척이나 아까웠었다.게으르다고 늘 입에 달고 살았지만 실제론 늘 뭔갈 하고 있었고 움직였다.그래서 늘 바빴다. 그러다 보니 결국엔 탈이 났다. 그래서 올핸 게으름을 제대로 느껴야 한다는 것을 깨다는 중이었다. 휴일에 늦잠을 자거나 빈둥대고 있으
"행복해야 게으를 수 있다[게으름 예찬]" 내용보기

게으름은 나쁘게 받아들여졌다.

바쁘게 살아야 하고 바지런하게 움직여야 하고 늘 뭔가 하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가만히 있는 시간이 무척이나 아까웠었다.

게으르다고 늘 입에 달고 살았지만 실제론 늘 뭔갈 하고 있었고 움직였다.

그래서 늘 바빴다. 그러다 보니 결국엔 탈이 났다. 그래서 올핸 게으름을 제대로 느껴야 한다는 것을 깨다는 중이었다. 



휴일에 늦잠을 자거나 빈둥대고 있으면 예전엔 핀잔을 들었다. 왜 이렇게 게으르냐는 말과 함께...
그래서 일요일이나 휴일에도 새벽부터 일어나 움직이곤 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니 아차 싶었다. 일주일 중 유일하게 휴일이었던 일요일에 조금 빈둥거린게 뭐가 문제였나 싶은 거다. 물론 책을 읽기 전에도 그런 날들은 분명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 늘 찜찜했다고 해야하나...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말끔이 살아지는 순간이었다.


게으름은 행복해야 누릴 수 있는 특권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 게으름에서 여가라는 것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지금 이해하기로 여가란, 결코 물질적 이익을 바라지 않고(설사 그것이 결국엔 우리는 물론 타인에게 실질적 도움이 된다고 해도) 순전히 그 즐거움을 위해서 자유로이 선택한 것, 빈둥거리고, 깃들이고, 단장하고, 취미 활동을 하는 등 광범위한 영역을 두루 아우를 때 쓰는 단어다."(p29)
그러고 보니 여가란 것이 거창한 것이 아님도 알았다. 꼭 여행을 떠나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그냥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빈둥거리기) 여가를 즐기고 있었음을 말이다.
물론 가만히 있는 시간도 난 무언갈 하긴 했다. 책을 읽고 손을 부지런히 움직였으니까... 



시간이 돈이 되는 세상에 정말 가만히 있어도 되는건지에 대한 의문은 계속 생기리라...
헌데 올해 들어 빈둥거리는 시간을 늘리려는 난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다.
왜냐면 그 빈둥거림으로 건강이 회복되어야 어떤 일이든 열정적으로 덤벼들 수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체력이 떨어지고 몸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휴식이 절실했음을 뼈져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설프게 게으름을 실천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게으름을 피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도 마음도 건강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행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게으름에 대한 예찬이 담겨 있다. 

빈둥거림의 미학, 깃들이기와 단정하기, 놀이의 발견을 통해서 진정한 게으름을 만날 수 있다.

머리를 비운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매력을 느끼고(p55), 내가 내 시간의 주인이 되어 깃들이기를 하고(p150), 여가를 채우는 취미는 우리의 시간 경험에 어느 정도의 깊이를 더해주는 것(p230)을 알게 된다.

빈둥거리고 나를 깃들이고 치장하고 거기에 취미라는 것으로 여가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 

이런 것들은 한층 더 유쾌하고 치열한 인간으로 사는데 필요한 것이란다. 



문득 "게으름도 생각보다 쉽지 않은게 아닐까?"란 의문이 생겼다.

빈둥거리는 것도 해본 사림이 하고 여가도 누려본 사람들이 더 잘 누린다는 것이 보였기 때문에...

하지만 게으름이 내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니 게으름 너무 비웃지 말고 무시하지도 말자. '필요할 땐 꼭 여유를 가질 수 있길~'


k********y 2019.09.1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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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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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로버트 디세이 (Robert Dessaix)오스트레일리아의 러시아 문학 연구자이자 TV 프로그램 진행자, 소설가, 에세이스트. 여행기 『사랑의 황혼(Twilight of Love): 투르게네프와 함께 하는 여행』으로 2005년 빅토리아 프리미어 문필가상을 수상했다.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학교와 뉴사우스웨일스에서 다년간 러시아어와 러시아 문학을 가르쳤으며 ABC 라디오 프로그램 <책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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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로버트 디세이 (Robert Dessaix)

오스트레일리아의 러시아 문학 연구자이자 TV 프로그램 진행자, 소설가, 에세이스트. 여행기 『사랑의 황혼(Twilight of Love): 투르게네프와 함께 하는 여행』으로 2005년 빅토리아 프리미어 문필가상을 수상했다.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학교와 뉴사우스웨일스에서 다년간 러시아어와 러시아 문학을 가르쳤으며 ABC 라디오 프로그램 <책과 글쓰기(Books and Writing)>에 10년 동안 출연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자서전 『어느 어머니의 수치(A Mother’s Disgrace)』, 소설 『밤 편지(Night Letters)』와 『코르푸(Corfu)』, 명상록 『나날의 목적(What Days Are For)』 등이 있으며 유럽 여러 국가에서 출간되어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게으름 예찬이라! 이 책을 요약하자면 오스트레일리아 최대 문학상 "빅토리아 프리미어 문필가상" 수상자 로버트 디세이가 제안하는 품격 있는 휴식법이라고 적혀있다. 내용은 재미로 읽기엔 약간 지루한 감이 있으나 나는 다 읽고 다시 한 번 더 훑어볼 때가 더 흥미진진하게 느껴졌다. 재미를 찾기보다는 마음으로 이해하고 느낄 때 좋은 글로 마음에 와닿는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저자의 말처럼 행복하기 위해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 아닌 게으름을 피우기 위해 행복해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쿵, 하고 다가왔다.

 

 

나는 게으름에 대한 예찬까지는 아니라도 게으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특히 요즘처럼 빨리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정보화시대에는 더욱 게으름이 적절히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게으름이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게 주는 쉼 같은 것이다. 쉬는 것도 여가이며 무엇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숨 가쁜 세상을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달려온 몸과 마음은 어느 날 문득 지쳐서 고장이 난다.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쉬게 되는 경우조차도 온전한 쉼을 즐기지 못하고 걱정과 죄스러움과 불안한 마음으로 무의미하게 보낼 뿐이다. 몸도 마음도 추스르지 못한 상태로 또다시 생활의 톱니바퀴가 되어 돌아간다. 자기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세월에, 환경에 좇아가느라 왜 사는지에 대한 물음을 할 사이도 없이 다른 이들의 뒷그림자를 따라 걸어가기에 급급하다.

 

 

 

 

나는 부지런한 꿀벌이었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조금 더 과감하게 살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랭보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엄밀히 말하면 시구라기보다는 객기 어린 한탄이지만, "자질구레한 걱정 탓으로 나는 내 인생을 망쳐버렸다." 사실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baud)는 조심스럽거나 소심한 면이 전혀 없었고 인생을 낭비하지도 않았지만, 이 구절은 내 마음을 울린다. ㅡ p.17

 

 

 

 

 

게으름은 나태함과 동일시하며 우리는 일찍이 성실과 근면과 착함의 반대편에서 나쁘다, 악하다, 무용하다는 교육을 받아왔다. 게으름이 때론 적절히 필요한 것임을 모르고 살아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리라. 잘 쉬는 것, 잘 노는 것이 얼마나 필요하고 능률적인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느리게 살아가는 것,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걷고,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가끔 멍 때리기도 하여 머리를 비워야 하고 느리게 주위를 살피며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필요하다.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 친구, 연인들과 여행도 떠나고 자주 대화하고 어울리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스트레스도 적고 생활을 행복하게 이어갈 힘을 얻는다.

 

 

 

 

『일이 아무리 즐겁고 유용하거나 필요할지라도, 본질적으로는 일종의 노예 상태다. 그렇기에 여가의 첫째이자 으뜸가는 목표는 우리를 우리 시간의 주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일할 때는 결코 시간의 주인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가가 무엇일까? 먼저, 나는 여가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빈둥거림에 관해 두 가지 생각으로 망설이고 있었다. 빈둥거림은 덕목인가 아니면 악덕인가?』 ㅡ p.20

 

 

 

혹자는,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부른 소리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게으름은 천성이 정말 게을러서 일을 싫어하거나 빈둥거리는 백수건달의 적성쯤으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게으름이라는 것은 열심히 열정적으로 일하는 시간과 휴식의 시간을 균형 있게 배분해서 즐길 수 있는 생의 또 다른 즐거움의 시간이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몸에 보상을 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복이라는 의미와 즐기는 방법을 배워야 하고 게으르게 천천히 노는 법도 알아야 한다. 시간과 경제적인 여유가 안되어 못 한다는 핑계를 대겠지만, 똑같은 시간과 환경이 주어져도 바쁘게 자신을 채찍질하기에만 급급해서 옆도 뒤도 보지 못하고 앞으로만 내달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 위대한 통찰이 담긴 그의 말에 따르면, 빈둥거리는 능력에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확실한 인식이 따라와야 한다. 사실 좋은 여가란 모두가 알다시피 빈둥거림의 성격을 띠며,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가장 뚜렷하게 느꼈던 그 모습을 재연해 보이는 것이다. 즉, 우리는 여가를 통해서 날것 그대로의 우리 본성과 요리된 본성 두 가지를 모두 발견한다. 그 둘 다 우리이며 우리 문명의 뿌리다.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 게 아니라, 그와 반대로 "지배계급의 교조적 공식으로는 인정되지 않는 많은 것들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스티븐슨에게 제대로 이해된 빈둥거림이란 그 자체로 하나의 근면함이다.』 ㅡ p.27

 

 

 

당신이 제대로 못 쉬고 있다는 신호 몇 가지

 

 

 

나는 위 물음에 해당되는 것이 한 가지도 없다.

2017년 12월 31일에 직장을 그만두고 2018년 1월 17일 아무런 계획도 없이 훌쩍 이삿짐을 꾸려 제주도로 갔다. 체중이 늘고 혈압 수치가 높아지고 성격이 예민해지고 짜증이 나기 시작하자 나는 직장을 그만두기로 작정했다. 5년 정도 일하면 반드시 1년 정도는 쉬어야 몸도 마음도 충전이 되어 다음에 또 열심히 뛸 수 있었다. 

 

 

 

『내가 지금 이해하기로 한 여가란, 결코 물질적 이익을 바라지 않고 (설사 그것이 결국엔 우리는 물론 타인에게 실질적 도움이 된다고 해도) 순전히 그 즐거움을 위해서 자유로이 선택하는 것, 빈둥거리고, 깃들이 고, 단장하고, 취미활동을 하는 등 광범위한 영역을 두루 아우를 때 쓰는 단어다. 여가를 누릴 때에는 가치보다는 기교가 훨씬 중요하다. 현명하게 선택한 여가는 아무리 짧은 삶에도 깊이를 준다. 느긋하게 있을 때 우리는 가장 유쾌하게 인간다울 수 있다.』 ㅡ p.29

 

 

그렇게 가서 제주도에서 10개월을 놀다가 돌아왔다. 애초에는 그곳에서 적응이 잘 되고 살만해지면 제주도에 붙박여 살아도 좋겠다 싶었는데 예상은 어긋났다. 여행지와 휴양지로는 좋은데 생활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다. 직장을 구하기도 어렵고 물가도 비싸고 날씨도 너무 변화무상했다. 육지인에게는 물건을 구하기도 힘들고 뿌리내리기엔 부동산 가격도 너무 비쌌다. 소소한 여러 면에서 불편한 점도 많았다. 자연이 좋은 만큼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부분인 것이다. 그런 것은 뿌리내리고 살 것이라면 감내하고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고, 아니라면 휴가를 최대한 즐겁게 보내다 돌아오는 것이 옳았다.

 

 

 

『이제 드디어 놀 시간이다. 여가가 없다면 문명화된 삶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야만에 빠져버린다. 매우 흥미롭게도 '문명의 희미한 빛'은 무슈 귀스타브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자신과 직원들이 "정숙하고 겸손하게, 사소한 것까지... (한숨)...... 오, 제기랄" 해가며 제공한다고 믿었던 바로 그것이지, 단지 빈둥거리는 좋은 시간이 아니다. 문명화된 삶은 도축장이 되어버린 이 세계 안에서 '인간성'의 흔적이었다 사제와 현인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문명화된 삶을 살기 위한 유일하고 올바른 방법 같은 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가가 없다면, 에이미 로웰(Amy Lowell)이 말한 선택된 게으름이 주는 이른바 "조용하고 넘치는 활력"이 없다면, 뿌리 깊은 깃들이기와 비옥한 놀이가 없다면, 우리에게는 노예 같은 삶이 남는다. 그것은 문명이 아니다. 누가 그런 삶을 원하겠는가?』 ㅡ p.279~280

 

 

 

 

 

 

그런데 앞만 보고 달리던 나의 생활습관은 처음에 적응을 하지 못해서 몇 달 동안은 이렇게 마냥 빈둥거리며 놀아도 되나? 재산도 없는 내가 있는 돈 바닥날 때까지 쓰며 백수로 지내도 되나 싶어 불안하기도 했다. 반백년을 일만 하고 달려온 내게는 휴가가 휴식이 아니고 죄스러움이나 사치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것이 현대인의 문제점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2시 이전에 자지 않는 하루 4~5시간 수면과 몸이 피곤에 절도록 열심히 일만 해왔던 일상이 습관이 된 나로서는 마냥 한가로운 휴식이 불안으로 다가왔다. 재산이나 넉넉했으면 안 그랬을까? 그 잣대로 재자면 부자는 행복하기만 해야 한다는 말이 되니 그것은 아니다. 부자가 될수록 더 고되게 일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시간이 적어진다.

바닷가 펜션을 임대해서 넓은 창으로 바다가 보이고 해가 뜨고 지는 것과 한라산에 구름이 걸리고 지나가는 것도 보았다. 먹고 싶을 때 밥을 먹었고 가고 싶을 때 어디든 갔다. 늦잠도 충분히 자고 가고 싶은 곳을 찾아다니며 오래 걸어 다니며 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그 냄새에 취해 지냈다. 나는 천천히 걷는 것을 좋아해서 10개월 동안 멍 때리고 빈둥거리고 느리게 걸으며 자연 속에서 자유를 즐기고 게으름에 적응해서 안정되어 갔다. 바닷가 베란다에서 스파게티와 와인을 놓고 노을을 즐기기도 하고, 아침에 커피 한 잔을 들고 일출의 장엄함을 매일 보기도 하며 바다를 보며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치유가 되어 갔다.

 

그렇게 도시로 다시 돌아와서 나는 지금도 백수다. 그래도 즐겁게 잘 살아가고 있다. 잘 놀고 느릿느릿 돌아다니고 자유롭게 먹고 자고 논다. 백수로 게으르게 살아도 불안하지 않고 초라하지 않고 남에게 피해 안 주고 나름대로 잘 살아간다. 나를 위해서 공부도 하고 여행도 하며 느리게 살아간다. 좀 더 우아하게 멋진 백수가 되어봐야지 하는 생각도 한다. 이러다가 훌쩍 또 일을 시작할지도 모르지만, 아니면 이대로 백수로 늙어갈지도 모르지만, 어떻게 살든지 행복하게 만족하게 살면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행복하다. 나는 게으름을 잘 즐기고 있다.

 

『시간은 사실 그 안에서 행복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 웅덩이에서 한가롭게 지낸 뒤 저 웅덩이에서 느긋하게. 시간은 그 안에서 당신의 인간성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요, 그 안에서 당신 존재의 무한성을 즐기기 위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로 끝을 맺는다면, 한마디로 그 안에서 에우다이모니아(eudaemonia), 즉 행복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에 다른 좋은 이유는 없다. 』 ㅡ p.295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l*****o 2019.09.3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게으름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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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예찬 / 로버트 디세이 지음 / 다산북스 말할 필요도 없지만, 당신은 게으름을 피우기 위해서 행복해야 한다. 행복하기 위해 게으름을 피워야 하는 게 아니다. 143쪽 로버트 디세이의 <게으름 예찬>은 위의 발췌문을 먼저 언급하고 리뷰를 적어야 할 것 같다. 책을 굳이 펼치지 않더라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게으름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죽이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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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예찬 / 로버트 디세이 지음 / 다산북스


말할 필요도 없지만, 당신은 게으름을 피우기 위해서 행복해야 한다. 행복하기 위해 게으름을 피워야 하는 게 아니다. 143쪽


로버트 디세이의 <게으름 예찬>은 위의 발췌문을 먼저 언급하고 리뷰를 적어야 할 것 같다. 책을 굳이 펼치지 않더라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게으름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죽이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행복과 게으름의 관계에 대해서도 자신의 뜻을 분명하게 밝힌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자신이 생각하는 게으름, 놀이 진정한 휴식과 관련해 의견이 다를 수도 있음을 미리 언급하고 싶다. 또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휴식 이나 유희방법에 대해서 그다지 부드럽게 돌려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사실도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TV가 집에 없는데다가 특별히 예능을 챙겨보려고 노력하지 않는 내게는 사실 저자의 이야기가 저자의 이야기가 담백하면서 편안하게 들렸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보고, 또 그렇기 때문에 안보는 것이 뒤쳐지는 것, 휴식으로 즐기는 TV시청이 또 다른 '노동'이 되어버리는 지금 이보다 솔직하게 게으름을 얘기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먹는 행위 자체를 여가의 한 형태로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는, 먹는 행위가 가진 평범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날마다 먹어야 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163쪽


사실 먹방보는 것을 즐기는 내게 먹는 행위자체가 여가의 한 형태로 받아들여지지도 심지어 음식을 먹고 한 번도 사교댄스를 출 때 느꼈던 것과 같은 희열을 느껴본적이 없다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가 반갑게 들리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실제로 먹방이 왜 화제가 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나역시도 맛있는 음식, 쉽게 먹어보기 어려운 이국의 맛집을 찾아가는 컨텐츠는 흥미롭지만 지나치게 많은 양을 빠른 시간안에 먹으면서 괴로워하거나 성공했다고 다함께 기뻐하는 내용의 컨텐츠는 그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별로이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한 때는 나이든 중년남성만의 취미활동으로 여겨졌던 낚시가 최근에는 나이와 성별상관없이 긍정적인 활동으로 보여지고 있는데 이 또한 저자에게는 그다지 반가운 게임은 아니다.


그러나 물고기 죽이기는 인간이 시간이 있고 물가에 있을 때마다 즐기는 여가 활동이다. 그것은 세련되어 보일 수 있지만 세련된 게임은 아니다. 망망대해에서 힘 좋은 순항선을 타고 부유한 낚시꾼들이 즐기는 게임 낚시는, 비록 조금은 온화하고 노골적으로 경쟁적인 색채가 덜할 수는 있어도, 말할 수 없을 만큼 잔인한 오락이다. 212쪽


낚시가 잔인하다면 생명과 관련된 모든 것이 잔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신체적 능력의 무한한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올림픽 또한 누군가에게는 무모한 도전으로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이 책을 읽다보면 단순히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여가법, 게으름에 대한 사고에 대해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행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해왔던 취미활동 혹은 못마땅하게 여겼던 여가등을 떠올려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저자에게 격하게 공감하는 부분, 가령 게으름 자체가 지나치게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삶의 한 형태라는 것만 봐도 그렇다. 무언가를 예찬하고 싶어질 때 주변의 시선이 신경쓰인다면 아마도 이 책이 떠오를 것 같다. 게으름마저 예찬하는 저자의 당당함에 용기가 생긴다.

YES마니아 : 로얄 i********g 2019.09.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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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의 정수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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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을 부리고 싶어 집어든 책#게으름예찬빈둥거리는 능력에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확실한 인식이 따라와야 한다.사실 좋은 여가란 모두가 알다시피 빈둥거림의 성격을 띠며,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가장 뚜렷하게 느꼈던 그 모습을 재연해 보이는 것이다.빈둥거리다 깃들이고 단장도 해본 뒤놀이의 단계까지 가면 알게 된다.#결국나다움이답 #다산북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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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을 부리고 싶어 집어든 책
#게으름예찬
빈둥거리는 능력에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확실한 인식이 따라와야 한다.

사실 좋은 여가란 모두가 알다시피 빈둥거림의 성격을 띠며,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가장 뚜렷하게 느꼈던 그 모습을 재연해 보이는 것이다.

빈둥거리다 깃들이고 단장도 해본 뒤
놀이의 단계까지 가면 알게 된다.
#결국나다움이답 #다산북스 ?



d********p 2019.09.1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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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이 필요하다. 멍때리기, 걷기 ,빈둥거리기 삼종세트 !!!
"게으름이 필요하다. 멍때리기, 걷기 ,빈둥거리기 삼종세트 !!!" 내용보기
어느 모임에 가방에 든 이책을 본 지인은 나에게 이런말을 했다. " 언니 한테 꼭 필요한 책이네 " 라며, 자신을 너무 채찍질하면서 산다고 조금 내려 놓는 법을 배우겠네 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 지인의 말과 달리 나는 내자신이 참 게으르고 나태하다고 생각하면서 산다. 매일 어느 한순간도 " 나 정말 최선을 다해 살고 있나?" 라는 물음을 끊임없이 하고 살았다. 성공한 사람들
"게으름이 필요하다. 멍때리기, 걷기 ,빈둥거리기 삼종세트 !!!" 내용보기

 

 

 

어느 모임에 가방에 든 이책을 본 지인은 나에게 이런말을 했다. " 언니 한테 꼭 필요한 책이네 "

라며, 자신을 너무 채찍질하면서 산다고 조금 내려 놓는 법을 배우겠네 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 지인의 말과 달리 나는 내자신이 참 게으르고 나태하다고 생각하면서 산다.

매일 어느 한순간도 " 나 정말 최선을 다해 살고 있나?" 라는 물음을 끊임없이 하고 살았다.

성공한 사람들의 책을 읽으면 , 한결같이 부지런하고 자신의 미래를 착착 설계하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여서..

 

이책은 그냥 게으름이 좋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게으름에 대한 나쁜 편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왜 ? 인간은 조금이라도 나태하거나 멍을 때리는 것이 죄악시 되는가? 를 묻고 있다.

모두 모두 바쁘고 힘든것이 삶의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달려가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 왜 모두 행복하지 않고 불행한가? 인간이 그토록 죄악시 하는 나태함과 게으름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데 , 우리는 왜 점점 불행하고 점점 더 알수 없는 범죄와 정신병에 시달리고 있는 것일까? 의 물음 같은 책이다.

무엇보다도, 빈 시간이 왜 그렇게 적은 걸까? 지금쯤 우리에게는 그런 시간이 넘쳐야 한다. 과학 기술과 진보 정책은 한 세기가 넘도록, 우리를 고된 일에서 해방시켜 자유를 주겠노라고 늘 약속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놀랍게도 그런 자유의 시간은 우리네 할아버지 시절보다 더욱 줄어들었다. 역설적이게도 부자가 될수록 더 고되게 일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시간이 적어진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p.11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모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때도 무언가를 소비를 해야만 확실한 행복이 주어진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일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저자가 말하는 진정한 행복과 여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에 찾아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간은 사실 그 안에서 행복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 웅덩이에서 한가롭게 지낸 뒤 저 웅덩이에서 느긋하게. 시간은 그 안에서 당신의 인간성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요, 그 안에서 당신 존재의 무한성을 즐기기 위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로 끝을 맺는다면, 한마디로 그 안에서 에우다이모니아eudaemonia, 즉 행복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에 다른 좋은 이유는 없다.

--- p.295

 

저자는 책속에서 랭보, 곤차로프(오블로모프)의 소설 , 영화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 등의 주인공을 통해 게으름에 대한 비유를 아주 쉽고 재미있게 정의하고 있다.

게으름을 당당하고 즐겁게 하는 법, 게으름이 죄가 아닌 하나의 행복의 수단이라는 것을..

읽으면서 웬지 위로 받는 느낌이 드는 책이다.

게으르지 않는 것이 바보같이 사는 삶이라는 것, 운동,만들기, 요리하기 하는 육체를 움직이는 모든 과정이 진정한 여가가 될수 없다는 사실.

단 ,걷기, 빈둥거리기는 나쁜 게으름이 아닌 행복한 게으름이 될 수 있음을 이책을 통해 배운다.

어렵고 매마른 철학서이기 보다는 쉽고 친절한 해설서 같은 느낌과 함께 다양한 문학 예술 작가들의 이야기를 위트있고 재치있게 풀어져 있다.

읽다보면 어느새 게으름에 빠지고 싶은 열망이 든다.

나의 게으름을 어떤식으로 펼쳐볼까 하면 고민하게 만든다.

당신은 게으름을 피우기위해 행복해야 합니다.

행복하기 위해 게으름을 피워야 하는게 아닙니다.

저자 로버트 디세이말중에서 .

 

 

70세 어른 말 들어서 나쁜 것 없어 !!! 한번 들어보자구

m******6 2019.09.15. 신고 공감 1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