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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혁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장칭을 봐야 한다
"문화대혁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장칭을 봐야 한다" 내용보기
# 0 725쪽. 게다가 판형도 일반 단행본 크기보다 더 크다. 정가 32,000원. 교양인에서 나온 '문제적 인간' 시리즈는 늘 이렇게 사이즈에서부터 독자를 압도한다. 『장칭』이라는 책의 존재를 알게 된 건 『기타잇키』을 읽으면서부터였다. 『기타잇키』도 대단한 평전인데, 덕분에 '문제적 인간' 시리즈를 웬만하면 다 읽고 죽자, 고 결심해버렸다. 그리고 두 번째로 택한 사람이 장칭. #
"문화대혁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장칭을 봐야 한다" 내용보기

# 0 

725쪽. 게다가 판형도 일반 단행본 크기보다 더 크다. 정가 32,000원. 교양인에서 나온 '문제적 인간' 시리즈는 늘 이렇게 사이즈에서부터 독자를 압도한다. 『장칭』이라는 책의 존재를 알게 된 건 『기타잇키』을 읽으면서부터였다. 『기타잇키』도 대단한 평전인데, 덕분에 '문제적 인간' 시리즈를 웬만하면 다 읽고 죽자, 고 결심해버렸다. 그리고 두 번째로 택한 사람이 장칭. 


# 1

'장칭'이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이 꽤 많을 테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녀가 마오쩌둥의 네 번째 부인이라는 사실, 문화혁명의 주역이었다는 점, 마오 사후 덩샤오핑이 권력을 잡으며 이른바 4인방의 주역으로 숙청된 것 중 어느 하나 알지 못했다. 아, 4인방이라는 용어는 취업 준비하며 상식 문제집 풀 때 얼핏 스쳤던 기억이 나긴 한다. 아니 어떻게 인문대생이 마오와 장칭을 모를 수 있지, 하고 물으신다면 굳이 변명하자면 이렇다. 학부 때 그나마 조금이라도 관심 있었던 부분이 유럽 사회주의와 중국 고대 사상이었다. 아시아 사회주의나 중국 근현대사 및 사상은 관심사가 아니라 덜 공부했다. 반성한다.


이어지는 맥락으로 '문화혁명'에 관해서도 무지하다. 마오가 대약진 운동 등 야심차게 추진한 현대 중국 만들기가 잘 안 되자, 어느날 갑자기 문화가 문제야! 하면서 님, 주자파, 하면 홍위병이 우르르 몰려와 죽을 만큼 패는 부조리극으로 기억했다. 세계 역사에서 벌어진 혁명 중 가장 기괴했다는 점 정도가 내가 알던 전부. 그 배후에 장칭이 있었다는 사실도 몰랐음.   


# 2

혁명을 다루던 어떤 책이었는데, 정확히 어떤 책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지금은 절판인 페터 벤데 편 『혁명의 역사』일 테다. 세계 역사상 일어난 혁명 중 대체 문화대혁명망큼 기괴한 혁명이 있었나, 이게 혁명인지 반동인지도 모르겠고, 왜 일어났는지도 모르겠고, 여하튼 이성으로 결코 이해할 수 없다고 고백한 대목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어쩌면 서구인으로 봤을 때 비서구 혁명이 대부분 그러하듯, 그들의 편견이 일부 작용한 탓도 있겠지만 문화대학명이라는 존재는 참 골 때리는 사건이긴 하다. 이성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럴 때 손쉬운 해석 방법은 이러하다. 한 인물을 사건의 처음이자 끝으로 꼽는 방법. 제2차세계대전과 히틀러, 문화대혁명과 마오쩌둥, 대충 이런 식. 대충 내가 알기론, 중국의 주류 역사 인식은 문화대혁명을 마오쩌둥이 좋은 의도로 시작했으나 장칭이라는 괴물적 존재가 망쳐버린 사건 - 완전히 망하진 않았고, 시대적 상황 속에 어쩔 수 없는 선택 - 으로 본다. 반면 '문제적 인간' 시리즈의 『장칭』은 수세에 몰린 마오와, 권력욕은 대단하나 다소 어리석었던 장칭의 결합 때문에 벌어진 비극으로 본다. 


# 3

장칭의 생애는 위키 등 다른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겠지만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그 시절, 많은 중국인이 그러하듯 그다지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나, 배우의 꿈을 품고 상하이로 간다. 배우로서 삶은 성공했다고, 실패했다고도 하기 모호했다. 이 평전에서는 장칭의 외모는 괜찮았으나, 연기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다고 기술한다. 결혼과 이혼을 두 차례 거치고, 상하이를 떠나 옌안에서 마오쩌둥을 만난다. 이전 상하이 시절의 정치적 성향, 결혼 경력 등등이 발목을 잡았지만 마오의 강력한 의지로 결혼에 성공. 하지만, 정치에 나서지 않는 조건으로 이뤄진 결혼이라 장칭은 오랫동안 권력으로부터는 거리가 멀었다. 권력욕이 강했던 그녀는 이 시기, 잦은 병치레로 중국과 소련을 오갔다. 한편 마오는 국민당을 제압하고 중국을 통일한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이후 중국을 부국강국으로 이끌어가지는 못했다. 대약진 운동이 실패하고, 좀처럼 중국이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기미가 안 보이자 입지가 줄어든다. 이때 문화대혁명은 정적을 제거하는 데 유용한 도구였다. 그리고 장칭은 문화대혁명 시기 제2인자로 우뚝 선다. 마오 이후 1인자 자리를 놓고 저우언라이와 경쟁할 정도로 입지가 두터워진 그녀를 막을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돌연 저우언라이가 먼저 죽어버린다. 저우언라이 사후 정국이 묘하게 돌아간다. 장칭에게는 불리하게, 실각했던 덩샤오핑에게는 유리해진다. 그리고 곧 마오도 유명을 달리한다. 이때 중국은 마오를 신격화하기 위해 장칭 등 4인방을 희생양으로 잡는다. 장칭은 정치 지도자들, 지식인들, 인민을 탄압했으며 당과 국가 권력 찬탈을 기도했다는 죄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물론 장칭은 기소 내용 일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종신형으로 감형되었으나, 옥 생활을 하다 병원에서 목을 매 자살한다.


# 4

로스 테릴이 장칭을 보는 시선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그럴수밖에. 문화대혁명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당했나. 여하튼, 저자에 따르면 장칭은 정치 지도자가 될 만한 역량이 전혀 없었으나, 젊은 시절 미모로 마오를 유혹해서 말년에 중국을 쥐고 폈다고 서술한다. 에이 설마. 그래도 중국이 얼마나 큰데, 그래도 최고 권력자에 오를 정도면 장칭의 장점이 하나라도 있었겠지? 라고 의심한다면, 생각해보라. 대한민국도 탄핵된 전 대통령의 경우, 뭔가는 하나 있을 줄 알았다....  오늘 읽은 박상 선생님의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에서 읽은 문장과 겹친다. "왜 정치와 종교는 과학의 눈부신 발전과 상관없이 절대 발전을 안 하는 거람."(229쪽)


# 5

이 시기 살았던 정치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스펙타클한 삶을 살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대표적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 좌든 우든 이데올로기에 투신(그것이 신념이든 기회주의적 행동이었든간)은 기본이고 전쟁도 겪고 죽을 고비도 숱하게 넘기다가 죽음의 방식도 범상치 않은 경우가 많다. 문제적 인간 시리즈에서 다룬 기타 잇키도 그러하고. 

# 6

관뚜껑이 닫히기 전까지 그 사람 인생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 말하지 말자. 장칭의 스펙타클한 삶을 보자면, 현재 찌질하게 산다고 너무 좌절할 필요도 없고, 잘 나간다고 자만할 필요 없다. 야구보다 더 모르는 게 인생이다. 한편, 사적 영역인 마오와 장칭의 부부생활을 보자면, 이들은 위기도 많이 맞았지만 여하튼 끝까지 결혼 관계를 지켰다. 물론 이들의 결합이 중국인 대부분에게는 불행이었지만... 여하튼 이 책은 한편으로는 난 이렇게 읽었다. 성적 매력으로 결합이 유지되던 시기가 지났을 때 부부 관계는 어때야 하는가, 아이를 다 키운 뒤에는 어떻게 함께 해야 하는가, 이런 화두를 받았다. 화제를 급작스럽게 전환해서, 『장칭』의 삶에서도 눈물을 쥐어짜게 만드는 대목이 있는데, 마지막 감옥에서 그녀의 친딸과 만나는 장면. 어떤 대화를 주고 받았는지는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으나, 그냥 감옥에서 친딸과 재회한다는 장면 자체가 너무나 슬펐다.

# 7

『장칭』을 읽었다고 해서 현대 중국사회를 약간이나 이해할 단초를 얻...은 건 맞으려나. 김동춘 교수님은 『전쟁과 사회』를 비롯하여 여러 저작에서 한국전쟁을 한국사회를 읽을 수 있는 핵심 사건으로 본다. 에이, 전쟁에 참여한 세대 많이 돌아가셨는데, 무슨 소리, 라고 한다면. 일본 만주군과 태평양전쟁이 한국전쟁의 경험으로 이어지고, 전시 상황이 전후 사회도 규정하는데 하필 군인 출신 대통령이 수십 년을 통치하다 보니 기업이고 국가고 시민사회고 모두 군사주의적 이데올로기로 돌아가지 않더냐. 그 이데올로기에 맞는 사람들이 실권을 잡다 보니, 상명하복은 여전하다. 야근도 하고, 야자도 하고, 기타 등등. 중국도 마오가 수십 년을 다스렸고, 그중에 문화대혁명이라는 비일상적 사건이 1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나는 중국인, 중국사회를 접해 본 적이 없지만, 중국인/중국사회만의 독특한 점이 있다면 아마도 『장칭』에서 기술한 몇몇 대목에서 이해하는 데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8

잘 쓰여진 평전은 그 어떤 소설, 인문학, 사회과학보다 더 뛰어나다. 그 자체에 이야기와 학문, 그리고 역사가 담겨 있는 덕택이다. 어린 시절 50권, 100권 위인전 세트 책장에 박아놓고 읽어야만 했던 안 좋은 기억 때문에 평전이라면 핵노잼, 안 읽어, 하는 사람이라면 교양인 시리즈의 '문제적 인간' 시리즈를 추천한다. 평전이란 장르의 매력을 알 수 있을 테다. 이 시리즈 한 권만 읽어도 1년은 버틸 수 있다.


# 9

이 책은 압도적인 분량만큼이나, 독서 시간도 길었고, 다 읽은 뒤로부터 리뷰 작성 시점도 오래 걸렸는데. 그만큼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한 마디로 망...


# 10

결론은 권력욕 있는 멍청이는 참 위험하다. 


# 11
저자가 쓴 『마오쩌둥』도 읽고 싶은데 절판이네... 그러고 보니, 『장칭』도 절판이다. 역시 망설이는 순간 절판되는 게 바로 이 바닥 책 아니겠나. 읽고 싶은 책 있으면 사자. 할부로 지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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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허의 내면에는 독립심과 더불어 맞서 싸우지 않으면 짓밟힌다는 믿음이 자라났다. (중략) 그녀는 자신이 정의나 미래에 대한 확실성을 보장받을 수 없는 무너진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64쪽)

옌안의 남녀 문제에서 '당이 침싱르 통제한다'와 '남자가 여자를 통제한다'는 두 가지 근본 원칙이 마오쩌둥과 란핑의 결혼을 계기로 당 최고 기간에 의해 뚜렷하게 확인되었다. 
타협안이 도출되는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중국 인민들이었다. 타협안에 포함된 조건 두 가지는 중국 정치 시스템에 장치된 시한폭탁같은 요소였기 때문이다. 란핑은 이 조건에 불타는 증오심을 품었으며 때가 되면 당이 에워싸고 있는 인형의 집에서 탈출하여 자신을 감금하려 했던 자들에게 복수하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1960년대 초에 마오쩌둥이 무리한 정치적 야심을 드러냄녀서 징처직 난관에 부딪히게 되자 이 시한폭탄은 30년 만에 문화혁명을 통해 폭발한다. 문화혁명은 란핑이 정치 무대에 올린 공연이자, 란핑 인생의 두 번째 장이 펼쳐진 것이었으며, 란핑의 복수였다. (234쪽)

장칭에게 '공산주의'는 권력을 의미했으며, '계급 투쟁'은 복수를 의미했다. 바로 여기에 1949년부터 1951년까지 장칭이 예술계의 구습 타파에 나선 이유의 핵심이 있다. (303쪽)

장칭의 정신 세계에 종교가 설 자리는 없었고, 이는 순수한 인간 의지가 중심 위치를 차지했다는 뜻이다. (중략) 장칭의 인생은 장칭이 규정했다. (331쪽)

1940년대 마오와 장칭의 결혼 생화릉 성적 매력으로 맺어졌다. 1949년 이후 육체 관계의 비중이 축소되었고, 1950년대는 일종의 전환기로 서로 소원해졌으며 장칭에게는 마음 둘 곳이 어디에도 없는 시기였다. 1960년대에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다시 살아났다. 서로에게 느끼는 성적 매력이 되살아났다기보다 아이들을 다 키워 떠나 보낸 뒤 성숙한 부부로서 협력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400쪽)

장칭이 정치적으로 무지하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알았고 별로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첫째, 마오와 맺은 인간 관게를 중심으로 이뤄진 장칭의 인간관계 네트워크, 둘째., 장칭 안에서 그녀를 괴롭히면서 오랜 기간 억압되어 온 욕망, 셋쨰, 여성적 매력, 연극적 소질, 신이 나면 끝없이 샘솟는 에너지, 여러 사람들 가운데 힘의 균형을 조정하는 본능 등 장칭의 타고난 능력. 이런 것들이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들이다.
문화혁명은 장칭에게 지극히 개인적 차원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다. 자기 힘으로 홀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자립 정신, 힘든 투쟁을 마다하지 않는 의지력, 강한 복수심, 이런 것들이 모두 한데 모여 터져 나오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장칭의 특징들은 어린 시절부터 형성되어 온 것이다. (464쪽)

정치적 개념들이 미리 만들어져 잘 짜맞추어진 모습인 <인민일보>를 읽어보면, 개인적 취향이나 욕망, 희망, 공포 등은 중국 정치의 최고 지도부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듯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바로 그런 개인적 감정이 거의 모든 것을 결정했다. 남성의 경우보다 여성이 더 심했는데, 그 이유는 여성의 지위가 더 불안했기 때문이다. (497쪽)

개인의 도덕적 최고 권위를 인정하는 공산당은 하나도 없다. 진리는 항상 변한다. 하지만 진리의 원천(즉 당을 말한다)은 변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당이 자기 자신을 공식적으로 비난했을 때 만일 유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그는 혹은 그녀는 더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논리다. (중략)
하지만 장칭은 자백하지 않았다. 역사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자들에게 장칭은 자신의 판단력을 내맡기지 않았다. 장칭은 한 개인으로서 도덕적 최고 권위를 보유하고 있음을 끝까지 고집했다. (616쪽)

일생을 통해 주부 역학을 뛰어넘으로 애썼던 장칭은 결국 주부 입장에서 재판을 받았다. 여성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을 뛰어넘었기에 남편을 잘못된 길로 인도했다는 비난을 받았던 것이다.
재판정에서 많은 사람이 '자본주의'를 입에 올렸지만 모든 사람이 실제 신경을 썼던 것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봉건주의였다. 장칭은 잘못된 사상('반혁명') 떄문에 벌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었고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아 벌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626쪽)


YES마니아 : 플래티넘 l****i 2017.09.12.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마오쩌둥의 연인 장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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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악녀의 대명사가 누군지 아는가? 바로 무측천과 장칭이다. 중국 역사상 가장 야심만만했던 여성 정치인이 바로 두 사람일 것이다. 측천무후는 중국 당나라 고종의 황후로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제이다. 그리고 장칭도 마오 사후 여제라는 권력몽을 꾸었다. "처음에는 성이 흥미를 끈다. 하지만 오랫동안 흥미를 지속시키는 것은 권력이다." 장칭은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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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악녀의 대명사가 누군지 아는가? 바로 무측천과 장칭이다. 중국 역사상 가장 야심만만했던 여성 정치인이 바로 두 사람일 것이다. 측천무후는 중국 당나라 고종의 황후로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제이다. 그리고 장칭도 마오 사후 여제라는 권력몽을 꾸었다. "처음에는 성이 흥미를 끈다. 하지만 오랫동안 흥미를 지속시키는 것은 권력이다." 장칭은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역사를 보면 배우 출신의 여성이 권좌의 핵심에 오른 경우를 볼 수 있다.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라는 노래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에바 페론이 대표적이다. 마오쩌둥의 네 번째 아내이자 ‘4인방’의 핵심이었던 장칭도 그러하다. 연극 무대와 정치 무대는 한가지다. 배우가 카메라 앞에서 하는 말을 믿는 것이나 정치인이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하는 말을 믿는 것이나 어리석은 짓일 수 있다. 장칭은 마오 사후에 배신자, 요녀, 살인자, 창녀, 백골정이라는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
 
장칭은 모두 네 번 결혼했다. 앞선 세 번의 결혼은 오래 가지 못했다. 부유한 상인 집안의 아들 페이밍룬과의 첫번째 결혼은 불과 몇 달 정도였다. 명문가 출신의 좌익 운동가 위치웨이와도 몇 달간의 동거로 끝났다. 상하이 예술계의 유명인사인 평론가 탕나와의 세 번째 결혼도 일년을 겨우 넘겼을 뿐이다. 그러나 마지막 마오쩌둥과의 결혼은 30년이나 넘게 오래 지속되었다. 장칭은 마오보다 21살이나 어렸다.

 

장칭은 이름이 여러 개다. 본명은 리칭윈(李靑雲). 아들을 바란 아버지는 장칭에게 남자아이 이름을 지어주었다. 어릴 때 아명은 수멍이었다. 한편, 내가 본 다큐물에서는 '리진하이'라는 이름이 본명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어머니는 첩의 신분이었고 남편과는 무려 30살 가량 차이가 났다. 어머니는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는데 얼굴이 반반한 까닭에 남의집살이를 하면서 매춘에도 종사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섯 살 무렵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해 어머니와 함께 집을 나가는데 1920년대 중반 산둥성 지난에 있는 외가로 들어간다. 소학교에 다니면서 외할아버지가 장칭에게 윈허(雲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다. 1930년대 상하이에서 연극 배우를 시작할 때 '푸른 사과'라는 뜻의 예명 란핑(藍蘋)으로 개명하고, 1937년 연안에서 생활할 때 비로소 우리에게 친숙한 '장칭'으로 바꾸었다.

 

여러 개의 이름이 혹시 정체성의 분열을 가져오진 않았을까? 여러 이름만큼이나 장칭의 성격도 그만큼 복잡했다. 장칭은 어려서부터 자기 주장이 센 고집불통이었고, 여배우답게 신경질적인 구석도 없지 않았다. 아무래도 유년시절 어머니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장칭은 언제나 남자의 조력자로 머물기를 거부하고 혼자의 힘으로, 그것이 정신이 되었던 육체가 되었던, 스스로 일어서려고 분발했다.

 

"란핑은 '강한 자'가 자신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 환경에 좌지우지되는 나약한 사람이 되지 않는 것, 한 인간으로서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원했다. 조직이라든가 사상이라든가 인간관계라든가 하는 것들은 모두 자의식 강한 란핑의 내적 갈등과 투쟁이 펼쳐지는 무대에 불과했다."(169쪽)

 

 

z***a 2013.08.17. 신고 공감 1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