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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 들어가 앉았다. 나의 뒷자리에는 아저씨 셋이 앉아 점심부터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을 입시. 자신의 딸이 공부를 잘 해서 **대(여기서 **대는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으로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알 만한 유수의 학교였다.)에 합격했는데, 돈이 없어서 그냥 취업 하라고 그랬다며 그 중 한 명이 신세한탄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다른 이들이 다 떨어졌는데 괜히 민망하니까 그런 거 아니냐, 합격을 실제 한 거라면 나 같으면 빚을 내서라도 일단 등록은 시켜줬을 거라며 핀잔을 놓았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공부를 무척이나 못하는 아이가 합격 가능성이 전혀 없는 서울대에 원서를 넣고는 나중에 자신이 서울대에 원서를 넣었을 정도로 공부를 잘 했다는 식의 허세를 부렸다는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느 부모가 제 자녀의 앞길을 가로막고 싶겠는가. 개천에서 용 나는 시절은 지나갔다. 학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서울대에 강남 출신, 특목고 출신 학생들이 몰린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들은 다른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배경을 타고 났으며, 성장 과정에서 그로 인해 풍족한 기회를 부여 받았다. 학습과 연관이 있는 수업은 물론 각종 고급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등록해 다녔을 것이며, 방학이면 국내 여행은 시시하다며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수도 있다. 돈이 많다 하여 무조건 공부를 잘 하는 건 물론 아니다. 일례로 내 주변의 강남 출신들은 이상하게도(?) 하나같이 공부를 못해 수도권 2년제 대학까지 모조리 떨어지는 기적(!)을 연출하기도 했으니까. 그렇지만 돈 걱정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 그것이 공부가 되었건 운동이 되었건, 을 할 수 있다는 건 분명 축복이다. 미국은 다인종이 모여 더불어 살아가는 공간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불어’라는 말은 잘못된 표현일 수도 있다. 대개가 같은 피부색을 가진 이들끼리 모여서 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끼리끼리’ 어울리는 현상이 보편화되어 있다. 어떤 학교에는 백인들만이 다니고, 다른 학교에서는 흑인만을 볼 수 있다. 양자 간에 어울리는 게 불법은 아니고, 실제로 아무런 문제없이 어울리는 경우도 적진 않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부지기수다. 저자는 다양한 계층에 속한 가족들을 만나 그들의 생활을 관찰하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하얀 피부를 가진 이들 중에도 사회보장제도의 수혜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고, 검은 피부를 가진 이들 중에도 중산층의 삶을 사는 이들이 있다. 그렇다고 인종이라는 변수를 완벽히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에 대한 고려가 여러 부분에서 묻어났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부모가 사회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자녀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어떤 부모도 그렇게까지 완벽한 의도를 가지고 자녀에게 말을 걸고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의 행동, 말투 등이 자녀의 현 모습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무지했다. 윌리엄스 부부는 아들 알렉산더의 쾌활하면서도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자신들이 가정에서, 의사나 교사 등을 대하면서 보여준 태도의 영향을 받은 것임을 알지 못했고, 드라이버 부인 역시 웬디의 뒤쳐진 언어 능력이 교사들 앞에서 한없이 온순한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영향 받았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전혀 의식치 않는 듯했다. 제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동일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어떤 부모는 다른 부모에 비해 부모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치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명하고, 심지어 아이를 허리띠로 때리는 것을 올바른 훈육이라 여기는 경우까지 있었으니, 그런 환경 하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오로지 고분고분할 뿐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말하고 대화를 주도하는 경우는 드물 터였다. 짐작 가능하듯 경제적으로 부유한 측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의사소통 면에 있어서 뛰어났다. 그렇지만 그들이 모든 면에서 우수했던 건 아니었다. 저자가 살펴본 아이들의 생활 패턴은,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의 경우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돈된 형태를 보였다. 그들은 학교 외에도 많은 활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그 활동들은 대개가 부모, 특히 어머니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아이가 그 활동을 진심으로 즐기더라도 그랬다. 너무 많은 활동에 치이다 보니 아이들은 잦은 피로감을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한 아이의 여가활동을 위해 가정 내 다른 아이들이 희생을 인내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었으니, 제 형의 운동 경기를 자주 지켜봐야만 하는 동생 스펜서의 입장에서는 짜증이 날 만도 해 보였다. 반면 노동자 계층의 아이들은 자유분방하게 뛰어놀 자유를 누렸다. 그들은 부모의 계획 아닌 놀이의 과정에서 또래와 만나고 사귀었다.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과 달리 그들은 쉼 없이 뛰어놀아도 지치지 않는 아이다운 모습을 보였다. 어느 쪽이 더 낫다는 말은 못 하겠다. 그러나 너무 틀에 얽매이는 것과 아이의 생활을 붙들어 맬 수 있는 어떠한 계획도 존재하지 않는 것 모두 바람직하지는 않아 보인다. ‘지금까지 소개했듯이 우리가 관찰한 모든 가족은 여러 세부적인 측면에서 계층에 기반을 둔 큰 차이점을 드러냈다. 하지만 몇 차례의 방문을 거치면서 우리 모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즉 그들은 모두 서로에게 안락함과 안정감을 제공하는, 특별할 것 없는 진짜 가족이었다.’ 결함이 있을지라도 가족은 가족이다. 가족 구성원 상호간에 이루어지는 역기능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의지가 필요한데, 특히 경제적, 사회적 계층/계급에 따른 정형적인 패턴이 존재한다면 이는 개인적인 차원의 노력으로는 바로잡기 힘들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개인주의다. 사회 시스템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보다 개개인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해석을 주로 한다. 우리 역시 그러한 미국의 시스템을 점점 더 본받고 있다. 하지만 노력이 가미되어도 해소할 수 없는 ‘불평등한 어린시절’의 문제만큼은 정부의 의지 없이 해결이 불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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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한 내용정리 빈곤층은 부모가 먹고 사는데 바빠 대체적으로 학교 교사의 권위에 복종하며, 아이들은 부모의 개입없이 모든것을 스스로 깨달아야하지만, 형제자매 친척들과 우애가 좋다는것을 강조 했고, 중산층의 부모는 아이들 교육에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아이들에게 계획된 사교육을 제공하고, 적극적으로 선생님과 유대관계를 맺기때문에 아이들 권위자에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법을 배우기 쉽다.
중산층의 교육방식이든 빈곤층의 교육방식이든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으며, 학교의 목표가 집중양육 방식을 수용하니 ,. 부모의 보호와 간섭을 받는 중산층 아이들에게 좀더 유리하다고 본문에서 밝혔다.
나의 생각
장기적으로 본다면 빈곤층 노동계층 부모의 아이들이 더 유리하다고 본다. 성인이 될수록 부모가 개입할수 있는 부분은 줄어들고, 본인 스스로 선택해서 해야할 일들이 늘어난다. 결국 부모님이 짜준 스케줄대로 움직이는 아이들 중에 몇명이나 상위 1% 에 들수 있을까? 기계도 아니고 사람인 이상..... 한계점이 올수 밖에 없다. 캥거루 처럼 부모님의 품속에 있을때는 성적으로 평가하는게 통하지만 , 사회생활에서는 본인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 지는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좋은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위해서다 빈곤층 아이들이 친척과의 유대관계, 형제 자매의 우애를 통해 배우는 예의범절이나 사회성이 형제자매를 경쟁관계로 생각하고, 친척과의 유대관계가 소홀한 중산층 아이들보다 더 유리하지 않을가? (중산층 아이들이 오히려 친척과 유대관계가 돈독하고, 형제자매와 우애가 깊은 경우도 많다)
사회생활은 똑똑한 사람보다 도전정신을 갖춘 사람, 원만한 인간관계를 갖춘 사람에게 유리 할수 밖에 없다. 학교에서는 경쟁이 아닌 협력을 가르쳐야하고, 나와 다른 사람을 수용할줄 아는 사람을 만드는 것을 교육의 목표를 세워야한다. 각박해 가는 현대 사회에서 공동체를 만들어 타인과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도록 다같이 노력했음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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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루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통해 독자들에게 사회적 불평등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린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그가 겪은 어려움과 제한을 통해 독자들은 불평등이 어린이들의 자아 개발, 교육, 사회적 관계 등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를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그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