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콜카타(Kolkata)는 인도 동부의 도시. 십 여년 전에 캘커타(Calcutta)라는 도시명을 현재의 이름으로 개명했지만, 지금도 캘커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영화 '시티 오브 조이'의 촬영 장소이자 배경이 되기도 했던 이 곳은 상공업이 발달한 도시이지만, 척박하고 고달픈 하루를 살아가는 빈곤층이 지금도 매우 많다. 거적 한 장만을 깔고 거리에서 노숙하는 사람들, 굶주림과 이름 모를 병으로 생명의 빛이 점점 꺼져가는 이들. 이렇듯 아무도 돌보아주지 않는 불쌍한 이들을 돌보는 일이 고(故)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삶이었다.
우리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이웃과 눈을 마주치기도 쉽지 않은데, 처절하리만큼 절망으로 가득한 이들마저 사랑으로 감싸 안는 그녀의 삶은 우리와 과연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녀의 사랑과 헌신은 가까운 이웃을 향한 것이 아닌, 우리 인류를 한없이 넓은 가슴으로 보듬는 것. 그녀의 삶은 부유하거나 가난한 사람, 지위가 높거나 낮은 사람들이 모두 귀중한 생명으로 승화되는, 무한한 베풂과 나눔이어서 메마른 우리의 마음도 그 무한한 사랑의 바다에 젖어든다.
마더 데레사는 바로 이곳, 콜카타에 자리한 사랑의 선교 수녀회 총원 '마더 하우스'에서 1997년 9월 어느 날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다. 이 책은 그분의 숭고한 영혼을 기리며, 우리에게 희망과 위로를 안겨주는 책이다. 111장의 사진 한 장마다 수필가, 시인, 의료인 등 여러분의 글과 시가 담겨 있다. 그 사진들의 구석구석에 마더 데레사의 발자취가 남지 않은 곳이 없으리라. 책 한 권에 담긴 사진과 글로 마주하는 마더 데레사의 이웃 사랑은 그 어느 시집보다 감동적이며, 그 어떤 사진전보다 위대하다. 다만, 이 책을 읽고도 이웃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성큼 내 안에 자리 잡지 못하는 나 자신이 오히려 애처로울 따름이다. 그래, 이 책은 나를 위해서 내게 온 책이다. 다른 이가 아닌, 바로 나를 치유하고 위로하는 샘이 바로 마더 데레사 111展 이다.
<p.93 칼리가트 임종의 집 병실 풍경>
무슬림의 죽음의 여신 칼리의 신전이 있던 곳에 지은 '임종의 집' 칼리가트. 대표적 빈민가이자 사창가인 곳이다. 이 곳에서 죽기 직전의 환자를 목욕시키고 돌보아준 데레사 수녀는 '임종의 집' 을 세우고, 죽어가는 이들을 살려내는 한편, 가는 길이 편안하도록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약 10만 명 이상의 환자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고 한다.
<p.79 칼리가트 임종의 집 거리 풍경>
<p.249 하우라 뚝방촌(City of joy)>
이 외에도 데레사 수녀님의 노력으로 일구어진 터전들이 많이 있다. '시슈 브하반' 은 때 묻지 않은 어린이들의 집이란 뜻으로, 장애아동을 보호하고 고아원을 운영하는 곳이다. '사랑의 선교' 수녀회와 수사회는 아동보호소 및 학교 그리고 경증 환자들, 에이즈, 한센인 등 중증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티타가르' 는 평화의 마을이라는 뜻. 이 마을에서 한센병 환자들은 자급자족하며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룬다. 국가에서 제공한 쓰레기 매립장에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가며 만든 마을이다. '프렘 단' 은 사랑의 선물이라는 뜻으로 중증장애환자들을 수용하고 있는 장기 요양소다. 모든 시설은 자원봉사자들의 피땀어린 노동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이 곳 역시 종교 분쟁이 끊이지 않는 콜카타의 대표적 빈민가이다. 종교적 갈등으로 복잡한 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치료받지 못한 채 유명을 달리했을까.
자신의 몸 하나 추스리기 힘든 곳에서, 모든 사람들의 반대와 반목에도 꿋꿋이 자신의 소명이라 여기는 일을 소중히 여기고 오로지 한 길만을 간 마더 데레사. 그분의 숭고한 뜻을 이어 세계 각지에서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분의 넋을 기리며, 나도 그분의 사랑으로 치유와 위로를 받았다. 내가 나누어줄 사랑은 어디 있을까. 지금까지 나를 돌아보고 나를 찾아 방황하는 시간이 이처럼 부끄럽게 느껴진 적이 있었던가 싶다. 자신을 돌보기보다 이웃을 돌보는 것을 유일한 삶으로 여겼던 마더 데레사. 나의 투박한 글이 그분의 숭고한 희생과 사랑에 짐이 되지 않기를, 그리고 나에게 작은 희망과 사랑의 불씨를 지펴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
오래전 [몽당 연필]을 읽어 본 후, 그후 얼마가 지난 뒤 [위로의 샘-마더데레사 111展]을 만났다.
貧者와 앓는 이들의 위로자 이신 분, 나는 이 분을 "평화의 어머니"라고 굳이 말하고 싶다. 가난은 소외계층이기에 돌봐 주는 손이 극히 적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그리고 극빈자들이 병을 앓고 있다면 지상에서 제일 격리된 이들이라고 그들은 느낄 것이며 바라보는 우리도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살면서 느낀 점이지만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헌신한다는 것은 그의 삶 전체가 늘 열려진 긍정의 생각이어야 한다. 그러한 생애란 자타의 존중을 받아 마땅 하기도 하거니와 오늘을 살아 가는 우리들 역시 그렇게 살기를 소원 해야 옳을 것이다.
인도라는 지리적 위치는 종교적 사상이 안겨준 오래된 계급제도로 인간의 급이 이미 태어나면서 정해진 국가라는 것은 불가촉 천민계급과 일반적으로 노예라 일컷는 인권에 관한 이 신분은 가난과 절대적인 관계이기도 하다.
테레사 수녀님은 인도의 캘커타 도시에서 가난 속에 피어나는 생명의 꽃을 피운 기적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열정의 마음 하나로 소외 계층을 끌어 안은 [평화의 모후]이며 [위로의 샘]이다. 꺼져 가는 빛을 캄캄한 어둠 속에서 소생을 시킨 사랑의 기적들, 갠지스 강줄기에 속한 후글리강을 따라 후즐근한 가난의 줄기에서 풍요의 생을 일구었다. 인도의 뒷골목 어둑어둑한 곳, 지쳐서 쓰러진 잔등 위로 비추어진 사진을 통하여 마더테레사 수녀님의 열화같은 사랑의 삶을 읽을 수 있고 그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12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세모에 더욱 간절히 나눔이 필요한 계절에 [마더 테레사 111전]을 통해 잠시 우리들 삶 깊숙히 나뭄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돌아 볼 여지를 일깨우는 감동의 책을 마주 한다.
우리들 주변에도 있을 위로 받아여 할 이들을 돌아 보는 크리스마스가 되어보기를 갈망 해 본다. |
|
마더테레사 111전은 그야말로 모든것을 함축하고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와 자연을 더불어사는사람들 그들의 삶속에 녹아든 눈물 고통 애환,뿐만이 아니자연 인간애 종교 숭고한 희생 희락등이 고스란히묻어난 뿐만이 아니라, 국내의 유명 작가 수필가,교수 의사 종교인 사업인등 전 직업 세계를 망라한 필진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그야말로 역작이다,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러한 정신 가운데 피어나는 꽃일것이다, 이작품은 서가에서 영원히 감동을 선물하고도 나을줄 믿는다 수고하신 김경상자가님 필진 님들께 감사를전한다,
|
|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1910년 당시 알바니아에 속해 있던 스코페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신앙심이 돈독했던 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늘 남을 배려하는 어른스러운 소녀였다. 그녀는 1931년 로레토 성모 수녀회에서 청빈, 정결, 순명을 서약하고 수녀가 되었고, 1948년 교황청으로부터 수도원 밖 거주를 허가받았다. 이후 1997년 87세의 나이로 선종하실 때까지 수많은 이들에게 사랑과 헌신을 실천하셨고, 평화롭게 죽음을 예비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다.
|
|
인도 콜카타의 빈민가에서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돌보며 평생을 바치신 마더 데레사 수녀의 발자취를 찾아 나섰다. 데레사 수녀는 지금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녀가 남긴 크나큰 사랑은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고 하셨던 말씀을 늘 마음에 새기며, 길에 누워 신음하고 있는 자에게 다가가 씻기고 편안하게 마지막 생을 맞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녀는 자신을 하느님 손에 쥐어진 몽당연필이라고 말한다. 오로지 하느님의 도구로 쓰여지길 원했고, 자신을 한없이 낮추어 그 분이 바라는 세상을 만들고 그리기 위한 몽당연필이 되겠다 했다. 쓰고, 또 쓰다가 닳아서 없어질지도 모를 몽당연필이 되겠다니....희생과 봉사, 사랑을 평생동안 실천하신 고귀한 분이다.
그녀의 가장 큰 업적은 인도 콜카타에 있는 마더 하우스 <사랑의 선교회>의 건립이 아닐까 한다. 지금도 그녀의 유해가 간직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며, 데레사 수녀처럼 수많은 수녀들이 그녀의 뒤를 이어 아름다운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곳곳에 데레사 수녀의 동상과 사진이 걸려있고, 손길과 사랑이 묻어나는 마더 하우스. 주름진 얼굴과 손이 너무 아름답고 존경스럽다. 나병과 에이즈 환자, 노숙자, 임종환자를 온 정성을 다해 보살폈던 귀한 몸과 손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선교회>뿐만 아니라, 칼리가트(임종의 집)를 '니르말 흐리다이(Nirmal Hriday, 순결한 마음의 장소)'라 부르며 임종환자들을 귀히 여기고 보살폈으며, 늘 기도하고 감사하기를 잊지 않았다.
우리가 데레사 수녀를 마더라 부르는 이유는,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에게 어머니와 같은 사랑을 주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어머니라는 존재는 끝없는 '사랑과 믿음'이고, 또 '그리움'이다. 아무런 조건도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 그것이 어머니의 사랑과 같아서이다. 엄마의 품처럼 따뜻하고 향기로웠던 마더 데레사 수녀의 삶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
지난번 읽었던『달라이 라마 111展』의 시리즈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책이다. 그런데 이번엔 성녀 마더 데레사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종교를 떠나서 존경받아 마땅한 분의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마더 데레사 111展이라는 제목만 보고선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사진을 많이 보게 될 것이란 생각을 하고서 이 책을 펼친다면 그점에서는 실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는 마더 데레사 수녀님과 관련된 사진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때로는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사진과 그림을 볼수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그녀의 삶이 보여준 희생과 사랑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진과 어울어진 많은 이들의 시는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하느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실천하신 모습을 이렇듯 글로써 그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으니 말이다.
때로는 말없이 보여주는 사진 한장에서도 수많은 것들을 스스로 발견하게 될수도 있다. 특히 이 책에서 인상적이였던 사진들은 '순결한 마음의 장소(Place of Pure Heart)로 불리기도 한다는 '죽어가는 사람의 집(Home for Sick and Destitutes)의 사람들을 담은 사진이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한 곳이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 장소라든가 칼리가트 임종의 집에서 찍은 사진들은 자연스레 엄숙해지기도 한다.
진정한 사랑의 실천이 무엇인지,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이루고 갔던 일들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 의미를 다시금 깨닫는 것 같다. 또한 수줍은듯 경계하듯 바라보는 세 아이의 얼굴에서 미소가 함께하기를 마음속으로 바래보기도 한다.
이 책을 읽는다면 누군가에겐 위로와 안식처가 되었을 마더 데레사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 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진 곳곳에서 아직까지도 그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어서 덩달아 위로의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
|
푹신푹신한 양장본, 강한 끌림이 있는 사진, 한 장 한 장 아끼는 마음으로 넘기게 되는 책이다. 예전에 <달라이 라마 111전>을 시작으로 이번에는 <마더 데레사 111전>을 읽게 되었다. 사진을 담은 책은 포장도 정말 중요하다. 사진의 강렬한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려면 이 정도의 인쇄물로 독자에게 전해야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물론 책의 가격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한참 전 인도 여행을 하면서 콜카타를 가는 김에 마더 데레사가 있는 죽음을 기다리는 집에도 들러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콜카타에 도착하고 보니,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기 이전에 나 자신이 너무 혼란스러워지는 곳이었다. 여기에 더 있다가는 내가 어떻게 될 것 같아서 바로 발길을 돌려 샨티니케탄으로 향하고 말았다. 어쩌면 지금 다시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나의 선택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보면 마더 데레사의 마음과 봉사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는 나의 심정은 복잡했다. 왜 그런지 마음이 불편한 느낌이었는데, 마음을 여는 열쇠 (-허금행) 부분을 보다보니 내 마음 상태가 어느 정도 짐작이 되었다. 나는 이 사진을 며칠 동안 계속 바라다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느낌도 생기지 않았다. 어떤 충동이 일어나서 겉핥기식의 자비심이라도 생기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차갑게 식어져서 그런 따스함 같은 것이 말끔히 소멸된 도시의 연약한 쥐새끼가 된 듯했다. (70쪽) 이 책을 읽는 나의 마음도 그런 감정들이 교차되며 묘한 심정으로 얼룩져 있었다. 책 속의 사진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그 안에서 미소가 없었다면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아 죽음만을 바라보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을 보며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사치스런 삶의 투정을 부리고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쉽게 담기 힘든 장면들을 사진에 담아 독자에게 감동을 전해주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 책 <마더 데레사 111전>도 <달라이 라마 111전>처럼 역시 소장하고 아껴두었다가 잊을 만한 때에 한 번씩 펼쳐들고 싶어진다. 눈에 보이는 사진은 마음을 흔들고, 마음으로 보는 글은 생각에 잠기게 하기 때문이다. 책을 보며 영혼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는다. |
|
![]()
1.
많은 인도관련 책들을 소개하며, 제가 인도에 다녀왔던 부끄러운 이야기를 끄적이곤 했습니다. 이번 책에서도 책 자체의 이야기보다는, 책을 읽으며 생각난 그때의 추억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마더 테레사 하우스'가 위치한 콜카타는 인도내에서도 가장 빈부격차가 심하며, 많은 이들이 가난에 헐덕이고 있는 도시입니다. 처음 그곳을 찾았을때 시각보다는 후각이 먼저 반응을 했습니다. 무언가 썩어가는 듯한 시궁창 냄새와 향신료 냄새는 인도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느끼게 했지요. 그리고 적선을 요구하는 수많은 아이들과, 거리의 사람들은 두려움과 동시에 내가 이곳에 왜 왔을까라는 후회까지 남겼습니다. 제게 콜카타의 첫 인상은 그렇게 거칠었습니다. 나와는 맞지 않는 도시라고 생각했지요.
그렇지만 한국으로 돌아갈수도 없는일. 그렇게 저는 그곳 콜카타의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이 채 안되는 짧은 기간이였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그 때. 제가 배정을 받은 곳은 '사랑의 선물'이라는 뜻의 '프렘 단' 이였죠. 빨래를 하고, 노인분들의 자리를 청소하고, 크리스마스 장식을 도우며 열심히 일을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불편하고 짜증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잠시 앉아 쉬고있을때, 한 할아버지가 말을 걸습니다. 자신을 바브라고 소개한 할아버지는 다짜고짜 서툰 영어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뱅갈어와 영어가 뒤섞인 문장속에 간신히 알아낸 건, 자신이 기독교 신자기 때문에 전통적인 힌두사회의 가족 구성원에게 배척당했다는것과, 그것을 후회하진 않지만 가끔 무척이나 슬프다는 내용이였습니다. 타국에서 온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으니까요. 저 역시 저의 고민을 함께 이야기 했습니다. 내 꿈과 이런저런 문제들에 대해서 말이죠. 그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우린 친한 친구가 되었고, 숙소로 돌아가는 나에게 바브는 "You're present is present" 라는 다소 상투적인 말로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저는 숙소 근처 제과점에서 바브에게 줄 작은 컵케익을 하나 샀습니다. 무척이나 예쁘게 포장된 빵은 콜카타의 풍경과는 무척이나 대조적이였지만, 새로운 친구 바브를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잠이 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프렘 단을 찾았을때, 조금은 낯선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흰색에 천에덮혀 건물 밖으로 옮겨지는 무언가가 보였습니다. 담당 수녀님은 밤새 기온이 많이 낮아져, 체력이 많이 떨어진 노인들 몇 분이 세상을 떠났다고 말씀해 주시더군요.
2.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을 살아왔지만 여행에서는 항상 영화와 같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믿기지 않았지만 그 하얀천에 덮여있던 시신들 중 한구는 바로 내 친구 바브였습니다. 전날까지 나에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며 후회하지 않는다 말하던 내 친구 바브요.
특별히 춥다고 느낄수도 없었던 밤이였습니다. 평소처럼 나는 반팔을 입고 잠이 들었는데, 나는 깨어났고 그는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불공평한 일이죠. 하긴 공평한 삶이였다면. 내가 바브를 그곳에서 만날 수도 없었겠네요.
가끔 저는 생각합니다. You're present is present"라 말했던 바브의 '사랑의 선물'을요. 나는 봉사란 이름으로 그들에게 대단한 것을 해준다 생각했지만, 오히려 더 큰 선물을 받은건 저였습니다. 현재라는 소중한 선물을 바브에게 받았으니까 말이죠.
3.
익숙한 풍경들이 많이 보여서인지 달라이 라마전을 읽을때보다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때 느꼈던 소중한 감정들이 사진 하나 하나를 보며 떠올라서 참 오랜시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 군대에서 군종병으로 일했지만, 웃기게도 뚜렷한 종교를 가지지도, 믿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종교에 대한 막연한 거부반응이 있다면 있을까요. 하지만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믿습니다.
저의 짧은 봉사활동 경험으로 감히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왜 마더테레사 수녀님이 자신의 평생을 바쳐 가난한 이들을 섬겼는지 알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봉사라는건 누군가에게 준다는 것보다, 내가 받는것이 더 큰 것이라는걸 바브를 통해 배웠기 때문일 겁니다.
4.
인간이 모두 똑같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가난하고, 아프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신이라는 존재가 그렇게 공평하게 세상을 만들어 놓지는 않았나 봅니다. 어쩌면 그래서 사람은 서로가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고 여러가지 감정을 나눌수 있는걸지도 모르겠네요.
마더테레사 수녀님의 사진들을 보면 그 주름조차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를 도우며 살수 있다는건, 그 자신을 돕는 일로 치환할 수 있을겁니다. 그걸 알고있는 당신이기에 그 미소가 더욱 아름다운 건 아닐까요. 한장 한장의 사진속에서 많은 생각을 떠올리고 배웠습니다. 무척이나 소중한 책 <마더테레사 111展 : 위로의 샘> 이였습니다.
|
|
![]() 달라이 라마 111展의 부제가 히말라야의 꿈이였다면, 마더 데레사 111展의 부제는 위로의 샘이다. “우리는 큰 일을 하지 않고 단지 조그만한 일을 큰 사랑을 가지고 할 뿐입니다”라고 말했던 마더 데레사의 마음이 책장을 넘길때마다 느껴지는 듯 했다. 그래서 이 책이 위로의 샘이 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
|
1910년 마케도니아 스코페에서 알바니아계 부모에게서 태어난 테레사 수녀, 1997년 87세를 일기로 타계했지만 평생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위한 구호, 봉사와 희생의 삶을 살아 여전히 전세계에서 '빈자의 성녀'로 추앙받고 있는 분으로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가고 싶은 나라 중의 하나인 인도를 방문하면 꼭 마더 데레사의 숨결을 느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가슴 속을 떠나지 않는 분이다. 그렇게 그리워하는 그 분의 흔적을 << 마더 데레사 111展 위로의 샘> 이 책을 통해 만나게 되었다. 이제는 메스컴에서라도 만날 수 없는 故 김수환 추기경 님의 추천사 ( “살아 계신 동안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주님을 모시듯 지극한 마음으로 섬기고 사랑하셨던 수녀님…”)으로 시작되기에 더욱 더 따뜻한 마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마더 데레사 111전 위로의 샘』 사랑을 실천하는 소명감으로 위험을 무릅쓰는 현장에 30여 년을 몸담아 온 다큐멘터리 사진가와 더불어 신부님,목사님,스님,수녀님,비구니,교수님,의사선생님 그리고 나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선생님 등 우리의 이웃들이 모두 그 분을 생각하며 가슴에 담아 두었던 말을 쏟아 내며 그 분이 행하셨던 일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솔직하게 거리의 노숙자를 만나면 못볼 것을 본 사람마냥 눈길조차 주지 못하고 그 자리를 서둘러 지나가기에 급급했던 나이기에 부끄러움을 가득 안고 이 책을 만날 수 밖에 없었다.
무슬림의 죽음의 여신 칼리의 신전이 있던 곳에 지은 '임종의 집' 칼리가트. 대표적 빈민가이자 사창가인 이 곳에서 죽기 직전의 환자를 목욕시키고 돌보아준 데레사 수녀는 '임종의 집' 을 세우고, 죽어가는 이들을 살려내는 한편, 가는 길이 편안하도록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약 10만 명 이상의 환자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고 한다. 이렇게 미소와 주름이 가득한 마더 데레사님의 인자한 얼굴을 생각하며 111장의 사진 한장 한장을 넘기다 보면 나의 마음 속에 가득한 욕심의 한자락이라도 내려 놓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