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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踏査)는 특정한 장소을 돌아보면서 그곳에 살던 사람들과 그들이 엮어낸 내력들을 살피는 일이다. 그래서 특정 장소를 잠시 들러보고 가는 관광(觀光)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기자인 저자가 중국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 베이징의 유명 관광지인 후통 지역을 답사하고, 그곳을 기반으로 살거나 스쳐갔던 살던 사람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베이징의 중심에 위치하다 보니,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내력은 그대로 중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나로서도 이 책을 읽으면서, 중국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에 대해 자세히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에는 ‘조선의 독립운동가부터 중국의 혁명가까지’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일제강점기 해외에서 활동해야 했던 조선 사람들은 가장 가까운 중국을 많이 찾았고, 그곳을 기반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도 독립운동의 주무대가 될 수밖에 없었고, 그곳에서 중국의 유력 인물들과의 교류를 진행하고 후원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책의 곳곳에서는 중국의 근현대사를 논하면서, 그에 얽힌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정 지역의 내력이 그대로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아우르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모두 6장으로 구성된 목차에서, 제1장은 ‘독립운동가의 숨결이 깃든 거리’라는 제목으로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활동들을 소개하고 있다. 신채호와 이회영, 그리고 김원봉과 이육사 등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이름들이 등장하고 있다. 언젠가 베이징을 방문하게 된다면, 이 책을 들고서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장은 ‘후통에서 피어난 문화의 향기’라는 제목으로 중국의 역사와 주요 인물들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각종 문방구와 서적들을 판매하는 후통의 유리창 거리는 조선시대 사신단이 중국에 가면 꼭 들르던 곳이었다. 이밖에도 2장에서는 그곳에 자리 잡은 다양한 문화 시설들과 그들의 내력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골목길에서 마주친 소중화, 조선’이라는 제목의 3장은, 성리학을 신봉하던 조선의 지식인들이 많이 언급하던 곳을 소개하고 있다. 예컨대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 다루어지던 곳이 적지 않은데, 특히 조선 사신들이 즐겨 찾았던 곳에 관한 각종 정보가 다루어지고 있다. 4장은 중국 혁명기의 주요 인물들과 활동을 다룬 내용이 ‘뜨겁게 타오른 중국의 붉은 별들’이란 제목이다. 중국 공산당의 초기 인물들이었던 이대조와 진독수, 그리고 손문과 모순 등 중국 현대사의 굵직한 인물들이 주로 소개되고 있다. 노신의 전기를 통해서 그의 베이징 생활을 알고 있었지만, 동시대에 이곳에서 수많은 인물들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만주족 제국의 부귀와 쇠락’이라는 제목의 5장에서는, 마지막 황제라 불리는 부의의 주변 인물들의 베이징 생활과 그들이 살던 곳을 다루고 있다. 비운의 황제라고 치부되는 부의를 통해서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청나라의 마지막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6장은 ‘후퉁에서 쓰러진 아시아의 병자’라는 제목으로, 외국인 전용 주거지였던 조계지에 얽힌 중국의 씁쓸한 역사적 현장들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항목에서 진보적 논조의 신문 ‘경보’를 발행했던 현장을 찾아, 기자로서의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고 있다. 전체적으로 넓은 후통 거리를 세세하게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는데, 부록으로라도 후통의 지도를 제공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지도가 있었더라면, 저자의 소개를 보다 입체적으로 생각하며 읽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차니)
*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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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을 중심에 두고 동서남북으로 10킬로미터 내에 보물 같은 후통들이 밀집해 있다고 보면 된다. 권력과 부가 집중됐던 이곳에는 정말 중화민국 초기 대륙의 운명을 좌우했던 권세가들, 공산주의 혁명가들, 베이징에서 독립운동을 벌였던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 p. 9 中에서 - '후통(胡同)'은 베이징의 전통 뒷골목을 일컫는다. 천년 고도 베이징에서 저자는 수많은 볼거리 중에서 왜 후통에 주목하고 있는 것일까? 오늘날 눈부신 현대화의 상징인 고층이 즐비한 마천루와는 전혀 다른 후통에는 어떠한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일까? [베이징 후통의 중국사]라는 이 책의 제목을 보면 저자는 그 안에서 다양한 역사의 흔적을 찾은 듯하다. 심지어 그 공간 안에는 중국의 혼란스러운 근현대사와 더불어 한국의 독립운동의 숨결마저 녹아있으니 후통이라는 그 낯선 공간이 결코 이질적인 것만은 아님을 느끼게 된다.
현재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정치적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이 한국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심지어 일제 치하의 국내에서 활동하기 어려운 애국지사들이 활동한 공간이 바로 중국이었으니 베이징의 자금성 주변인 후통 역시 거기에서 예외일 수 없다. 저자는 직접 중국에 거주하면서 후통 곳곳을 누비며 그곳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찾으며 오롯이 한국 독립운동의 역사를 재현하고 있다.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이 우당 이회영(1867~1932), 심산 김창숙(1879~1962)과 함께 '베이징 3걸' 또는 '베이징의 세 불꽃'으로 불렸다. 언뜻 중국에서 펼쳐진 한국의 독립운동과 관련하여 상하이를 떠올릴 수 있지만, 이들이 이승만의 외교독립노선에 반발하여 아나키즘을 바탕으로 한 무장독립투쟁 노선을 견지한 채 베이징에서의 독립운동의 한 축을 구성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별칭이 생겼으며, 이러한 이유로 베이징의 후통에서 그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허우구러우위안(고루 뒤쪽에 있는 후통)'이라는 낯선 명칭마저도 그곳이 이회영 선생이 베이징에서 여러번 거처를 옮기다가 마지막에 머무른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막대한 재산을 처분하여 중국의 독립운동가들을 넓은 가슴으로 품었던 우당의 기운을 우리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후통을 직접 가보지 못하였다면 그곳은 낯선 장소로만 보여질 수 있다. 그러나, 독립운동이라는 우리의 역사와 연관지어 바라보면 이곳은 충분히 의미있는 곳임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진스팡제' 후통은 신채호 선생과 박자혜 여사가 결혼을 하여 신혼 생활을 한 곳이고, '차오더우' 후통은 이들이 마지막을 중국에서 보낸 곳이기도 하다. 생활고로 인하여 아들을 데리고 박자혜 여사는 서울 인사동으로 떠나게 되는데, 그곳에서 훗날 나석주 의사의 거사를 돕기도 한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놓고 본다면 '진스팡제'와 '차오더우', 서울의 인사동이 하나로 이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청포도], [광야]라는 시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육사 시인의 흔적 역시 바로 후통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이육사는 의열단장인 김원봉이 세운 군관학교에서 정식으로 교육을 받았으며, 이후 항일 투쟁에 적극적으로 임한 인물이다. 권총을 다루는 데 있어 능숙하였으며, 의열단이었을 가능성이 컸던 그 역시 중국에서 활동하던 독립투사였던 것이다. '둥창(동창)' 후통에서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 1944년 1월 16일 이곳에 있던 일본 총영사관 부속 헌병대 감옥에서 순국을 하셨기 때문이다. '둥창' 후통은 사실 명나라 시기에도 그 유명한 '동창'이라는 감찰 기관이 있던 곳이었는데, 이곳에 일본의 감옥이 존재하였고 지금은 '동북공정'을 주도하는 중국의 '근대사연구소'가 있으니 이곳은 우리에게 만감이 교차하는 장소로 다가오게 된다.
후통은 베이징이 원나라의 쿠빌라이 칸에 의하여 '대도'라는 이름으로 건설되면서 점차 그 틀을 만들어 갔으며, 명과 청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물론 이곳도 현대화를 위한 개발 및 정비를 거치면서 과거의 영화를 찾기란 쉽지 않지만, 그곳에서 피어난 문화의 향기를 느끼기에는 결코 부족하지 않다. 중국에서 100년 이상 된 상점을 뜻하는 '라오즈하오(노자호)'가 여전히 다수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후통에 있는 이곳들을 통하여 오랜 문화의 전통을 만끽할 수 있다. '류리창(琉璃廠)'이라 불리우는 후통은 이제 베이징에서 문화의 거리라는 이름으로 자리매김하였는데, 특히 청나라 건륭제 시절에 '사고전서'라는 대형 총서가 제작되면서 자연스럽게 책 시장이 형성이 되었고, 이후 문방사우 가게와 골동품점, 표구점을 끌어들임으로써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는 점은 정말 대단한 전통이 아닌가 싶다. 이는 '후통'이라는 뒷골목이 '모이는 의미'로서 작동하여 그 모여진 것들을 고이 간직한 곳으로 보기에 충분함을 알 수 있게 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에서 '강남'과 '강북'이 단순히 한강을 경계로 지형적인 개념으로만 한정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주스커우(주시구)' 사거리의 동서대로가 바로 문화의 경계를 나누는 기준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자금성을 포함한 '다오얼베이(도로 북쪽)'은 우아함을 상징하고, '다오얼난(도로 남쪽)'은 가난과 저속함의 문화가 녹아져 있는데, 이는 청의 통치 체제와 질서에 따라 굳어진 것이었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는 것을 성공한 것으로 인식할 정도로 명확한 차이가 있었으니 그곳에 꽃피운 문화 역시 구분될 수밖에 없다. 또한 예전의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는 후통의 의미는 '빠다(팔대)' 후통에서도 잘 나타난다. 8개의 후통을 묶어서 부르는 이곳은 과거 홍등가로 유명세를 떨친 지역이다. 지금은 과거와의 영화와는 다르지만, 이곳이 단순한 홍등가가 아닌 시와 노래가 끊이지 않던 풍류의 골목임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너무나 비좁은 길로 되어 있어서 존재감을 찾을 수 없는 '첸스' 후통은 과거 청나라 시기에 월스트리트와 같은 금융가였다는 사실은 후통이 격동의 시간 속에서도 힘겹게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뉴제(우가)' 후통은 중국에서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종교에 따른 특정한 구역이 있다는 점은 놀랍지만, 사실 이곳은 그 역사가 꽤 오래된 곳이다. 원나라 시절 몽고족이 중국을 통치하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우대한 이들이 색목인이었는데, 그 색목인이 대부분 이슬람을 믿던 사람들이었다. 이후 이들은 명나라 교체기에도 성공적으로 정착하면서 중국 사회에서 일정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 역사가 꽤 길기 때문에 그들의 이슬람 문화는 중국의 토착 문화와 자연스럽게 결합하게 되는데, 이곳의 대표적인 이슬람 사원인 '칭전쓰(청진사)'만 보더라도 중동의 이슬람 사원과는 확연히 다른 중국식 건물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그러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앞서 독립운동과 연관지어 우리와 인연이 있는 후통을 살펴보았는데, 조선 시대의 역사와 관련이 있는 곳들도 다수 존재한다. '류리창'은 책과 문방사우로 유명한 곳이기에 이곳 역시 조선인들이 중국을 방문하면 꼭 들르는 곳이었지만, '원청상(문승상)' 후통은 조선의 선비들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었다. 이곳은 바로 송나라의 마지막 충신이라 할 수 있는 '문천상'을 모시는 사당이 있기 때문에 '원청상'이라는 호칭이 붙는데, 문천상은 몽고의 공격으로 인하여 송나라가 멸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은 강직한 인물이었다. 쿠빌라이마저 그의 재능이 아까워서 오랜 기간 가둬놓고 회유를 하였지만, 끝내 죽음을 선택한 그의 존재는 '소중화'를 자처한 조선에서는 공자에 버금가는 인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청나라가 들어섰음에도 여전히 '소중화'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이곳을 방문한 조선의 선비들을 지금에서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요즈음 베이징의 곳곳을 누비는 한국인들에게 '원청상' 후통이 생소하다는 점으로 대답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베이징이 오랜 기간 중국의 수도였기에 후통 역시 중국의 역사를 고이 간직한 곳이다. 특히 이전의 역사를 보다 생생하게 간직한 곳이기에 이 책에서는 주로 중국의 근현대사와 관련된 부분들을 함께 다루고 있다. '젠간' 후통은 정치가이자 사상가인 천두슈의 옛집이 있는 곳인데, 그는 공산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일체의 중국 전통과 유교사상을 부정했다가 훗날 공산당의 무장 혁명 노선을 부정하다가 당에서 제명됐다. 그의 옛집은 아예 누군가의 민가로 바뀌면서 별다른 기념비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은 채 그곳에는 표지석만 남아 있다. 반면 천두슈와는 달리 초반에는 공산주의와 중국의 사상을 융합하려는 시도를 하다가 거꾸로 공산당의 무장 폭동을 줄기차게 주도하다가 장쭤린(장작림)에게 암살당한 리다지오는 공산당을 지킨 인물로 기록되면서 '원화' 후통에 그의 기념관이 세워졌다. 초기 중국의 공산주의를 받아들인 공통점이 있지만, 향후 진행 과정에서 판이한 길로 향한 그들의 운명 역시 오늘날 그들과 관련된 각각의 후통에서 극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뒷골목 느낌의 후통과는 달리 '궁왕푸(공왕부)'는 청나라의 황혼과 더불어 권력의 거리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이다. 현존하는 왕푸(왕부) 중에서 보존이 가장 잘돼 있는데, 조선의 경복궁과 비슷한 규모라고 한다. '궁왕푸'의 주인들을 살펴보면 청나라 시기의 권력자의 역사를 그대로 살펴볼 수 있는데, 원래 주인인 '허션(화신)'은 건륭제의 총애를 받는 신하였다. 워낙에 탐욕적이어서 황제에게 바치는 공물마저도 빼돌려서 막대한 부를 쌓았으나, 건륭제의 죽음과 더불어 그 역시 모든 재산을 가경제에게 빼앗기고 주살된다. 이후 '허션'의 저택은 '왕푸'의 지위를 누리다가 함풍제가 자신의 동생인 공친왕 혁흔에게 하사함으로써 오늘날의 '궁왕푸(공왕부)'라는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결국 이곳은 청나라 황실 또는 권력의 최상층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이기에 이를 통한 청나라의 말기 상황에 대한 자취 역시 충분히 느껴볼 수 있다.
개발과 정비라는 이름으로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중국의 후통은 곳곳에서 역사와 문화, 상업과 같은 다양한 방면의 흔적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돌아보면 우리의 뒷골목은 개발을 통하여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설령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채, 보존은 고사하고 소멸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베이징 후통의 역사]는 저자가 단순히 후통을 통한 중국의 역사를 다루기 위하여 쓰여진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의 사라지거나 또한 간신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뒷골목 역시 충분히 의미를 부여하면서 보존할 가치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뒷골목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 각 개인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이러한 골목은 역사가 곧 사람들의 삶을 모아놓은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의 골목 역시 중국의 후통과 마찬가지로 그 나름의 역사는 물론 예전의 문화와 전통이 서려있는 곳임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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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도시를 새롭게 돌아보는 일은 몇 년을 살아봤거나 이곳저곳을 헤집고 누비며 다닌 결과이겠다. 서울신문 이창구 기자가 이에 딱 들어맞는 케이스다. 그는 2년 여 베이징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쉬는 날이면 자전거를 타고 베이징의 뒷골목을 돌아다녔다.
이 책은 베이징의 여행기 자체로서도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 값진 것은 베이징의 후통을 둘러싼 숨가쁜 역사의 격동기를 살펴보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도 꽤 훌륭하다. 사진을 훑어보는 것도 만만치 않은 공부가 된다. 이제 베이징 뒷골목을 통해 새롭게 역사 이야기를 들춰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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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로 2시간 거리의 중국의 베이징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만한 도시가 아니었다. 중국을 평생도록 연구한 사람도 중국을 아직 모르겠다고하거나 아직 다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현을 쓸정도로 폭넓은 역사를 가진 나라로 오래전 고려, 조선, 장사꾼, 민초들이 수없이 드나들었고, 일제강점기에는 많은 독립투사들이 발자취를 남긴 터전이었다. 특히 이 도시의 이야기를 찾기위해 책에서는 베이징의 전통 뒷골목인 후통에서 찾고 있었고 권력과 부가 집중했던 이곳에서 권세가들과 공산주의 혁명가들, 독립운동을하던 우리의 선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몇가지를 떠올려보자면 후통의 역사에서 신재호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는것이었다. 신재호선생이 베이징에 머물당시 그가 논설과 사설을 신문에 기고하면 판매부수가 30%이상 늘었다는 이야기와, 이승만에 대해 쓴소리를 한 이야기, 여성독립운동가인 부인 박자애님과의 인연에 대한이야기도 흥미로웠고, 특히 셰허병원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던것 같다. 이외에도 이육사선생이 순국한곳인 둥창 후통28호 이야기라던지, 중국의 문화거리로 조성된 류리창 후통 거리의 옛모습에 대한 이야기로 상상한것과 현재의 사진과의 갭, 사고전서에 관한 이야기들, 조선의 사신들이 황제를 알현하고 가장 가고 싶어했다던 공자의 위패가 모셔진 원천상 후통이야기, 베이징에서 가장 유명한 먹거리 골목이자, 인민극장과 밀집한 관계가 있는 대표배우 메이란팡에 대한 이야기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가득 담긴 책이었다. 베이징 뒷 골목 곳곳에서 중국의 역사와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던 책이어서 중국 여행을 다녀온 기분으로 재미있게 읽었던것 같다. 자금성을 중심으로한 3천여개의 후통을 다 가볼 수 없었지만 가보고 싶게 만든 책이었기에 소중했고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해준 책이어서 고마웠던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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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우리의 역사는 가슴아프고 슬펐다. 제대로 된 민낯을 보기 싫다는 가슴 깊숙이에서 올라오는 거부감이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한국사 공부를 더 안했던 것 같다. 대신 세계 강대국의 역사를 공부했다. 그럼 슬프더라도 끝은 해피엔딩이었으니까. 한국사를 거부하다보니 당연히 일본 역사와 중국의 역사도 멀리하게 되었다. 이제 어른이 되어 우리의 삶도 많이 나아졌고 주변에 딱히 대의를 위해서는 아니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나라를 위해 애쓰는 여러 사람들을 보면서 언제까지 이 땅의 진실에 고개돌리고 있을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만난 베이징 후통의 중국사. 제목만 보고 후통이 중국 지배계급의 한 자리를 의미하는 줄 알았다. 우리나라말로 하면 국무장관, 비서실장 뭐 이런... 그 계급 사람들을 통해 보는 중국사... 뭐 이렇게 이해했었다. 그런데 후통이란 베이징의 전통 뒷골목을 의미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대중없이 뻗어 걷다보면 막다른 길이 나오는 그런 골목이 아니라 원나라때부터 계획적으로 조성된, 일직선으로 쫙 뻗은 뒷골목이 후통이다. 이 책을 통해 중국이란 땅이 가지고 있는 여러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거만하게도 중국을 무시하고 있었는데... 약간 겸손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중국을 무시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 _ -;;) 그리고 海자가 호수에 붙을 때도 있는데, 호수를 바다로 칭하는 중국인의 오만함이 아니라 원나라때부터 그렇게 쓰여 왔던 전통이라는 것도 알았다.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읽다보니 후통에 살았던 우리나라의 위대한 독립운동가도 만날 수 있었고, 이승만의 이중성도 알게 되었으며 중국 서민들의 삶과 애환, 부와 권력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몰랐었던 새로운 지식들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잘 이해가 안간다는 생각이 들때마다 등장하는 사진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중국식 발음으로 된 단어가 약간 생소하고 어렵다고 느껴졌지만 그건 책의 잘못이 아니라 내 두뇌의 문제이니... (중국어는 왜이리 어려운건지 ㅠㅠ) 이 책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중국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새롭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작가가 최대한 재밌고 쉽게 쓰려고 노력한 티가 나는 좋은 책이다. 그리고 책을 덮을때 다 읽었다는 왠지 모를 뿌듯함도 느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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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역사 속의~한국과 중국
베이징 후통의 중국사( 이창구 지음 / 생각의길 펴냄 )는 제목 그대로 중국의 역사에 대해 알려준다. 베이징 후통이라는 제목을 보고, 사실 사람인줄 알았다. ‘후통이라는 사람이 중국의 역사에 대해 말해주는구나~~’라는 것이 이 책에 대한 나의 첫 느낌이었다. 하지만 책 소개를 다시 보고, 책을 읽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베이징 후통“, 여기서 후통은 뒷골목, 골목이라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다.
![]() “베이징은 보는 곳이 아니라 듣는 곳이다.”
베이징토박이를 뜻하는 라오베이징들은 천년 고도의 베이징을 이렇게 설명한다고 한다. 보통 외국인들이 베이징을 방문할 때, 천안문 광장, 자금성, 경산공원, 북해공원, 이화원, 만리장성, 왕푸징 등을 하루나 이틀 둘러보고 베이징을 다 보았다고 한다고. 하지만 진정한 베이징, 중국을 알고자 한다면 후통을 둘러보라고 말한다. 베이징 후통은 멀게는 원나라 건국 시기인 800년 전부터, 가깝게는 청나라 건국 이후인 400년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된 거리라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구불구불한 뒷골목이 아닌 계획적인 거리이다. 지금은 재계발의 광풍 속에서 많이 사라졌지만, 계획된 골목이기에 길의 방향과 형태는 유지하면서 계발한다고 한다.
![]() 이 책은 지금까지 보는 역사서와는 많이 달랐다. 후통을 따라 그 거리에 살았던 사람 과, 역사적 사실들을 말해준다. 그래서 그런지 눈에 쏙쏙 들어왔다. 조선의 독립 운동가부터, 중국의 공산당 인물들까지 많은 사람들과 역사적 사실은,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이다. 조금은 어렵기도 했고, 신선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중국의 새로운 것에 대해 알게 되어 기쁘기까지 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한국의 독립 운동사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에 대해, 또 중국이 궁금하다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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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몇 번의 큰 전란과 위기도 있었지만 500여년 동안 이어져 왔는데 결국 멸망합니다. 유럽 열강들도 침략을 하였고, 일본은 우리나라를 강제로 병합하였는데 서울은 그 혼란의 중심에 있었네요. 학교에서 배우면서 병원이나 교회, 대사관 등 많은 곳들을 알게 되었는데 한번 직접 가보자는 생각으로 답사여행의 길잡이라는 책을 사서 주말에 시간이 될때마다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상당히 많은 곳들이 사라지면서 이 곳이 어떤 곳이었다는 안내 표지석 정도만 남아있는 경우도 많네요. 자세히 읽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데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 외롭게 서 있습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일본도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면서 사회가 크게 바뀌었고, 5,000여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중국도 다른 나라의 침략 뿐만 아니라 국민당과 공산당이 서로 싸우는 내전을 겪기도 했습니다. 베이징에도 많은 유적들이 남아있는데 '베이징 후통의 중국사' 에서는 후통을 통해 역사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후통은 오랜 역사를 지닌 베이징의 전통 뒷골목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베이징은 중국의 옛 수도 8곳 하나로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의 수도이기도 했으며, 청나라와 오늘날 중국의 수도입니다. 권력의 중심지였던 만큼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집이 생기고 길이 생기다보니 3,000여개의 후통이 형성되었다고 하네요. 동향 사람들끼리 모이기도 하고 좁은 곳에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한 독특한 건물도 생겨나다보니 후통만의 독특한 문화가 만들어 졌습니다. 후통에는 중국의 근현대사에 이름을 남긴 마오쩌둥, 리다자오, 루쉰 등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갔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각자의 분야에서 치열하게 살면서 오늘날의 중국을 만드는데 기여하였는데 이제는 그 흔적조차 찾기 쉽지 않네요. 하지만 이들이 이 거리를 걸었고 여기에 있는 집에서 살았다고 하니 남다르게 느껴지는데 후통은 과거의 영화를 뒤로 하고 개발 논리에 밀려 점점 사라지고 있다니 안타깝습니다. 후통은 중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도 깊은 인연이 있네요. 일본의 지배를 받으면서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임시정부가 있었던 곳은 상해였지만 베이징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신채호와 이회영도 후통에 살았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낯선 타국에서 오직 우리나라의 독립만을 위해 외교전을 펼치거나 주요 요인을 암살하는데 평생을 바쳤다고 하니 숙연함이 느껴지네요. 우리나라의 많은 곳이 그렇듯 중국의 후통도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습니다. 다행히 최근에는 후통의 역사적인 중요성과 가치가 부각되면서 보존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하네요. 베이징하면 자금성이나 이화원, 만리장성이 먼저 떠오르지만 후통에 대해 읽어보니 단순히 오래된 골목길이 아니라 역사가 켜켜이 쌓인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백년 동안 사람들이 살면서 역사를 만들어 왔는데 다음에 베이징으로 여행을 가게 된다면 꼭한번 가보고 싶네요. *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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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은 한국과 가까워서 여행지로 쉽게 선택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 우리 선조들에게도 그랬나보다. 여행일수도 있고, 피난일수도 있고, 독립운동을 위한 길일수도 있었다. 이 책을 보면 그길에서중국 북경의 한 골목집에서 살았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가면 평범하다 못해 지저분하고 허름하다고 느껴질 골목길, 후통. 이 책은 그런 평범함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 같다. 유명하다는 후통을 찾아봐도 '왜 유명한지 유래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면 의미없지 않을까? 아는만큼 보인다고 한다. 이 책을 들고 길을 나서 볼 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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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최악과 최고만을 강조해 사회적 괴리감을 조장한다는 비판속에서도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던 것에 대해 알게 하는 사실의 발견과 진실의 규명에 대한 능력일 것이다 그런 능력이 뜻밖의 예능프로그램에서 발견되었을때 파장은 실로 놀랍기만했다 조선의 독립운동가들, 일제의 핍박과 감시에 쫒기고 쫒겨 활동 영역을 중국 본토로 옮겨야 했던 , 아시아전역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야했던 그 혼란속에서 우리의 독립투사들은 어떠했을까?? 나라를 빼앗겼을때는 찾겠다는 일념하나로 뭉쳤을, 조선의 독립과 완전한 해방을 위해 활약했으며 그누구보다 뜨겁게 타오르다 산화했으나 내 나라, 내 조국의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져간 사람들... 그 흔적이 켜켜이 내려앉은 날의 수만큼이나 많은 먼지 위로 남아 있는 곳 . 그 곳이 바로 「후통」이다 신채호부부의 젊은 생활이 담겨 있던 진스팡체 21호는 여전히 베이징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담고 있었고 베이징에 있는동안 6번이나 거주지를 옮겨야 했던 이회영, 의열단 김원봉 그리고 이육사의 청포도까지 글을 따라 가는 내 시선이 마치 피범벅된 그들의 주검을 확인하는 것처럼 무겁게 내려앉았다 중국에 다녀온 사람들 -유학 또는 관광으로-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동안 알고 있던 중국과 사뭇 다른 느낌이라는건 어쩔 수 없다 매번 많은 시간 차를 타야하고 걸어야하고 희한한 음식들, 사람들이야기였던것같은데 ... 익숙치않은 발음에 콧소리,된소리의 중국식 지명과 **호로 불리는 후통의 주거지가 마치 감옥의 죄수를 부르는 것같아 자꾸 심장을 후비는 느낌이 든다는 것을 빼면 아는 내용인데 살짝 비켜가거나 가려진 부분들을 현재의 시점에서 조명해준 내용은 여간 매력적인게 아니다 내가 중국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가장 먼저 이 책을 들고 베이징 후통 탐방에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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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심은 많았었지만 요즘 들어 더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서 베이징 후통의 중국사라는 제목만으로도 얼른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것 같다. 800년 전통의 베이징 후통에서의 중국사를 만날수 있다니 호기심이 생겼다. 어떤 역사 이야기를 들려줄지....
후통이 뭘까? 후통은 800년 역사를 가진 베이징의 전통 뒷골목을 말한다. 그럼 베이징 전통 뒷골목에 대한 역사를 말하는 걸까? 더 궁금증이 생겼다.
자금성을 중심으로 3천여 개 후통이 실핏즐처럼 뻗어 있다니, 그 많은 후통속에는 참 많은 이야기들이 잠들어 있을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현직 기자인 저자가 후통에서 만난 중국의 권세가들, 혁명가들, 그리고 조선을 위해 목숨을 바친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담았다.
" 1944년 1월 16일 이육사 선생이 순국한 곳은 둥창 후통 28호다. 이곳은 당시 베이징을 점령한 일본의 총영사관 부속 헌병대 감옥이었다. 이육사는 지하 감방에서 숨을 거뒀다. 28호 맞은편에 위치한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경내에는 옛 일본 총 영사관 건물 한 채가 여전히 남아 있다. " (p62)
책을 읽으면서 역사에 관심이 있고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정말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베이징, 그것도 베이징의 후통에서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둥지를 틀었고 그곳에서 일본의 탄압에 맞서 싸웠으며 참 많은 일들을 이겨낸 곳이기도 하다는 것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들의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수 있었던것도 좋았다. 그 많은 역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후통, 언젠가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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