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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학부 때 읽었는데, 젊은 혈기 때문이었겠지만 읽다가 분노가 일어 정말로 책을 던져버린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 당시 군부독재 통치자가 행하는 모든 압박의 이론적 근거가 그 책에 그대로 다들어 있었다. 군주론의 핵심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고 확대하는 일이라면 모든 종교적, 윤리 도덕적, 논리적 가치 이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악해져야 한다는 거다. 한마디로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고 밀어붙이라는 건데, 이게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물론 혼잡한 당대 이탈리아의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그의 주장이 분명 타당성을 가질지 몰라도, 이런 비민주적인 책이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다는 것은 이해도 안될 뿐만 아니라 인류의 수치라 생각 했다. 민주와 인권은 오간 데 없고 폭압적 정치행위가 무슨 사상이란 말인가. 어쨌거나 이런 통치의 지침은 우리 시대의 독재자에게 그대로 투영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래의 두 문장을 보면 이 무슨 조폭의 발상인지 그 저급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전쟁에서 어느 쪽이 승리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때는 군주가 한 나라를 지지하는 데 더욱 신중해야 한다. 그렇게 한 쪽을 돕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하면 구할 수도 있는 반대쪽을 멸망시키기 때문이다. 지원을 받은 편이 적국을 물리쳤다고 하더라도 도움 없이는 승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군주를 따르게 된다. (군주론 21장)
○ 미움을 받는 일은 타인에게 떠넘기고 인기를 얻는 일은 자신이 친히 해야 한다. 군주는 귀족을 존중하는 한편 대중들의 미움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군주론 19장) ○ 타인에 의존하는 경우는 항상 실패한다. 자력으로 추진할 때에는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그래서 무장한 예언자는 승리할 수 있으나, 말뿐인 예언자는 멸망하게 마련이다. (군주론 6장)
곧 대선으로 새로운 지도자를 우리는 맞이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대선 후보군에서 군주론이 어울릴만한 분은 없어 보인다. 모두 민주적이며 자기 몸을 희생해 구국의 결단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군주론에 의거하여 건질만한 조언들은 몇몇이 있다. 서구의 속담에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고 했던가. 복지 포퓰리즘에 무너지고 있는 유럽의 몇몇 나라를 보면 약자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선의(善意)가 정말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이 되고 말았다. 표심을 잡기 위해 남발하는 대중영합주의 공약은 공동체 전체를 회복불능으로 만들 수 있다. 책 속에 나오는 내용 두 가지만 인용하면서 마무리를 해야겠다.
○ 마키아벨리는 리더가 관대한 정신을 가지는 것은 바람직하나, 물질을 베풀어 관대하다는 평판을 얻으려는 것은 파멸의 전주곡이라고 지적했다. 대중의 인기를 끄는 것으로 충분한 연예인이과는 달리, 리더는 인색하다는 평가를 감수하더라도 공동체의 기초체력을 키우고 장기적 관점에서 발전시켜야 하는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리더는 진정으로 관대해지기 위해서는 인색하다는 악평을 감수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리더란 대중의 인기에 울고 웃는 연예인이 아니라 올바르게 인정받는 리더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171쪽) ○ 마을에서 유부녀가 바람났을 때 모두가 아는데 단 한사람만 모르고 있다. 그 사람은 남편이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리더도 마찬가지다. 리더가 정작 중요한 정보에서는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지위가 높을수록 생생한 정보에서는 멀어지는 역설이 생겨난다. 리더는 물론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이 없으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착각한다. (190쪽)
어찌어찌하여 출판사로부터 이 책의 초벌 가제본을 미리 읽는 영광(?)이 있었다. 그 가본은 도저히 좋은 평가를 줄 수 없는 거칠고 직설적인 문장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막상 책이 나오고 읽어보니 깜짝 놀랄 정도였다. 어떻게 문장과 구성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지... 이 출판사의 기획‧편집 역량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책의 완성도가 참으로 놀라웠다. 가제본을 안봤더라면 전혀 알 수 없었던 일. 뒤에서 이 책을 가다듬은 이 출판사의 편집부 직원들에게 '당신들 대단하구먼…….' 하고 칭찬 해주고 싶다. 이런 글 덧붙이는 것도 처음이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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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뛰어넘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
『지금 마흔이라면 군주론』은, 동서고금의 국가와 기업, 조직들의 다양한 사례들을 마키아벨리의 《군자론》에 맞춰 여러 각도에서 녹여낸 고도의 전략이 담긴 에센스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이것이 이 책에 담긴 핵심이다. 생명체의 본능이 생존과 번식이고 후대의 번성을 도모하는 것이 기본 목표이듯 조직의 생존과 발전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국가나 기업, 개인의 삶의 기본 목표가 된다. 이것은 전략, 혁신, 리더십으로 나타난다. 무엇을 할 것인지 찾아 실천을 전제로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최상의 성과를 이끌어낸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기술적 측면은 변해도 이천 년 전 기록된 역사적 교훈이나 기본 개념은 달라지지 않았으니 마키아벨리의 《군자론》을 읽는 이유이다. 정치철학자 최장집 교수가 지적한 마키아벨리의 ‘현실 정치철학’에 정치의 본질이 있고, 허황된 명분론 대신 우리 사회에 가장 취약한 실질적 현실론이 담겨있다.
모든 생물의 이기심은 기본적 본능이고, 이익이라는 속성에 따라 움직이며, 이기심을 추구하면서 이타심의 여백을 살아가는 것이다. 본능적 이기심이 구성원 모두에게 혜택을 주는 강력한 동력은 인센티브 원리에 있다. 또한, 속임수로 이익을 얻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상대방의 속임수를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죄수의 딜레마 원리를 활용한 시장 감시 정책, 리니언시는 좋은 사례다. 생존에 필요한 핵심 영역은, 타인에게 의존하면 종속되거나 결별하게 되므로, 독립성의 힘으로 지켜야 한다. 무력 없는 군주, 고객 없는 기업, 일하지 않는 가장은 모두 존중받지 못하고 경멸당하기 때문이다. 영세중립국 스위스의 평화는 강력한 군대에 있었다. 감정을 합리화하기 위해 논리가 동원되지만, 사람을 지배하는 것은 감정이다. 지식인은 논리를 만들지만 리더는 사람을 움직인다. 리더의 임무는 공동체를 안전하게 유지하고 번영으로 이끄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열고 공동체를 발전시켰다면 ‘혁명’이고, 개인과 당파 이익에 매몰 되었다면 ‘정변’이다. 서수민 PD의 엄정한 규율, 건전한 경쟁, 창의적 협력이 개그콘서트의 웃음을 12년 넘게 이끄는 성공에 있었다. 리더는 여우의 지략과 사자의 용맹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아야 한다. ‘썩은 사과 증후군’은, 조직 내 썩은 사과가 조직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우수한 사람들에게 열패감을 주는 조직 전체를 오염시킨다는 원리다. 개전의 여지가 없는 썩은 사과는 서둘러 제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리더가 사랑을 받는 것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 하찮게 보이는 순간 리더로서 생명력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인센티브는 사람을 움직이는 핵심동력이다. 타인의 능력을 활용하려면 필요조건인 물질적 이해관계와 충분조건인 정신적 공감대가 일치되어야 한다. 리더의 헤픈 관대함보다는 전략적 인색함이 공동체를 부강하게 만든다. 어설픈 타협이 아닌 분명한 원칙으로 승리해야 한다. 주변의 조언을 들어서 부족함을 보완하고 자신을 되돌아보아 독단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당 태종 치세의 핵심이었던 위징의 명석한 두뇌와 냉정한 판단력은 중국 역사의 황금시대로 불리게 했다. 위기를 맞은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가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위기대응 체제를 구축하는 일이다(도미노 피자, 이마트, 쿠쿠). 개혁은 힘이 뒷받침 되어야만 가능하며, 강한 자에게는 운명조차 고개를 숙인다. 위험이란 미리 알면 대처할 수 있지만, 코앞에 닥치면 불치병이 된다.
정복 군주는 약소국가들의 맹주가 되어 보호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그 지역의 강력한 국가를 약화시키도록 노력하며, 외부의 강대한 국가가 개입하지 않도록 만반의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P222 빈천은 근검을 낳고, 근검은 부귀를 낳고, 부귀는 교사(교만과 사치)를 낳고, 교사는 음일(방종과 나태)을 낳고, 음일은 다시 빈천을 낳는다. 『귀심요람』 -P259
서양에서 정치는 곧 윤리였지만, 마키아벨리는 윤리에서 정치를 분리시켰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대의 대변자였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한 마키아벨리는, ‘악마의 이름’이라는 비난과 적대감을 받게 되었고, 그의 모든 저작물은 금서 목록이 되고 만다. 그러나 그러한 금서 조치에도 불구하고 당대 지식인들에게 오히려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고, 표면적으로는 비난을 받지만 내면으로는 공감하고 추종하는 이중성을 갖게 되면서 5백여 년이 된 오늘날까지도 고전의 반열에 올라 읽히고 있다. 왜 마흔인가? 이해와 공감, 현실경험에서 오는 연륜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젊은 시절의 이상과, 현실로 맞이한 경험의 간극 뒤에는 한 뼘씩 자라난 사고와 공감능력으로 현상의 본질을 파악하고 이해하게 된다. 불과 5년 전만 거슬러 올라가도 지금의 이해능력을 갖추고 있었을지는 스스로도 의문이다. 냉혹한 현실을 이해하고 조직의 갈등을 해소하고 싶다면, 생존공간을 확보하고 발전을 모색한다면, 당신은 이 책을 읽어야 할 시점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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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다.
군주의 덕목, 군주의 치세, 군주의 생존 전략 등. 길고도 어려웠던 독서의 시간을 끝내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 책은 ‘생존’에 관한 책이라는 것이다 흔히들 마키아벨리를 부정적인 의미로 떠올리곤 한다. 서구에서 말하는 마키아벨리즘, 마키아벨리스트, 마키아벨리적 방식 등은 대략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교활하고 무자비한 권모술수‘ 정도의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고 하니, 그의 이미지가 어떠한지 짐작이 된다. 난 아직 군주론을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다. 이 책 또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극히 일부만 보여 주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은 마키아벨리를 이해하고, 그의 역작 《군주론》을 읽기 위한 워밍업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듯 하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에서 태어나 피렌체에서 외교관으로 오랜 세월 생활했다. 르네상스 시대 ‘바람 앞의 등불’ 같았던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마키아벨리는 주변국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군주의 역할에 대하여 고민하고, 성찰하였던 것 같다. 당시엔 군주 한 사람의 잘못된 인식과 아집으로 인하여 나라가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었다. 《군주론》은 군주를 일깨워 나라를 구하려는 애민정신의 발로라 할 수도 있겠다. 이 책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군주론》의 실체는 과거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나 직설적이고, 과감하여 불편함을 주었을 것 같다. 실제로 교황과 교회는 오랜 동안 《군주론》을 금서로 지정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500 여년의 시간동안 고전의 반열에 오르고, 나폴레옹, 맑스 레닌, 피델 카스트로 등이 군주론을 탐독하고 그의 사상에 공감했다는 것은 앞에서는 그를 비난하여도, 마음으로는 그를 동경하고 《군주론》에 공감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 준다. 확실히 이 책을 읽고 나니, 적어도 20대에서 30대 초중반의 나이로는 군주론의 진가를 온전히 깨닫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지적 능력이 뒤쳐져서가 아니라, 30대 후반에서 40대 사이에 겪게 되는 시간의 힘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20~30대에겐 현실경험이 충분히 축적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2030 세대가 열심히 발에 땀이 나도록 앞만 보고 달리는 세대라면, 40대 즈음해서는 자기의 길을 돌아보고, 다음 시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혜안과 여유를 갖게 된다. 물론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책은 크게 6장으로 구성된다. 1장에서 3장이 미시적 관점에서 군주 및 리더의 실행 능력과 방법을 견고히 하는 법을 알려 준다면, 4장에서 6장은 좀 더 광범위하고 거시적 관점에서 국가(회사)를 통치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군주의 제 1덕목은 지배당하지 않는 것이다. 한글을 창제한 위대한 임금 세종대왕을 우리는 온건한 문화적 군왕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세종은 조선의 왕 중에서 무력으로 영토를 넓힌 유일한 왕이기도 하다. 세종은 즉위 후 북방개척을 과감히 추진하여 김종서로 하여금 북방 영토를 확장토록 하였다. 사회의 변혁과 인류사의 흐름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는 나이가 되자 동시대의 훌륭한 사람과 훌륭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구별하는 눈이 생겼다. 마키아벨리에 의하면 군주는 여러 가지 훌륭한 기질을 모두 갖출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훌륭하게 보이도록 믿게 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책에서는 나폴레옹을 일례로 들고 있다. 나폴레옹이 영웅의 이미지로 남은 것은 자크 다비드의 그림 《생 베르나르 협곡을 넘는 나폴레옹》 영향이 컸다. 그림에서 앞 발을 치켜 든 말 위에서 천하를 호령하는 듯한 나폴레옹은 투철한 의지를 가진 불멸의 영웅으로 표현되었지만, 실제로는 농부가 끄는 노새를 타고 힘겹게 산맥을 넘었다고 한다. 사람은 사실이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기 때문에 믿는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세 가지 요소로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를 들고 있다. 에토스는 연사의 인격과 매력으로 설득에 미치는 영향이 60% 이다. 파토스는 청중의 심리상태로 설득에 미치는 영향은 30% 정도이다. 주장에 대한 논리적 근거는 10%에 불과하다. 즉, 사람들은 논리에 설득되어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동화하여 추종하는 것이다.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이 리더십을 확보하는 자산이 된다는 관점이다. 완벽한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들 속에서 파멸하기 쉽다. 리더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악할 필요는 없다. 다만 ‘착한 사람’과 ‘역량 있는 리더’는 완전히 별개의 개념임을 숙지해야 한다. 군주가 스스로 남들보다 총명하다고 생각해서 멋대로 군다면 부하들은 틀림없이 그의 비위를 맞추려 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군주는 나라를 잃고 부하들도 목숨을 보전할 수 없게 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라면 선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분명히 전제한다. 단 군주가 선함을 유지하려면 악함을 이해하고 때로는 이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보통의 선악 개념을 초월해야 한다고 통찰한다. 《군주론》은 500년 전 군주들, 현재를 살아가는 리더들과 정상들이 꼭 읽어야 할 고전이며 치세의 바이블이라 할 만하다. 이 책 곳곳에서 리더의 덕목을 《군주론》의 내용에 입각하여 상세한 해설과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이 리더를 위한 책이기에 나에게는 맞지 않다고 말한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난 리더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나는 평범한 삶 속에서 나의 나아갈 길과 삶 속에서 내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하게 해 내려 한다. 나의 성향과 나의 이성 및 감성은 리더의 그것과는 많은 부분 차이가 있다. 리더는 때론 악랄해야 하고, 정적을 없애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하며, 승리를 위해서라면 상대방이 일어서지 못할 만큼 짓밟아야 한다. 리더의 행위는 오로지 승리로 귀결되어야 한다. 성숙한 리더가 없는 나라나 회사, 단체는 분명 불행하다. 리더가 너무 많은 것도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이 책이 훌륭한 이유는 리더에게는 진정한 성숙한 리더의 길을 제시한 것이고, 나처럼 리더의 길과는 동떨어진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진정한 리더를 알아 볼 수 있는 안목을 제공 하는데 있다. 모든 이가 리더가 될 필요는 없다. 나는 리더가 되어서 오직 승리만을 위해, 이익만을 위해 타인의 마음과 내 마음을 찢고 싶지 않다. 리더는 그래도 된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고 마키아벨리는 말한다. 리더에게 손해란 그 나라, 그 기업의 손실로 이어지기에 용납될 수 없는 말이다. 하지만, 소시민인 나는 조금 손해 보면서 살련다. 조그만 이익에 취하여 더 큰 것을 잃고 싶지는 않다. 가진 것에 만족하고, 흙먼지 날리는 땅 위에 두 발로 설 수 있으며, 두 눈으로 푸른 하늘과 코발트 빛 바다를 볼 수 있고, 내 손으로 밥 먹는 것의 커다란 기쁨을 알기에 더 크게 바라는 것은 욕심일 뿐이다. 리더든 리더가 아니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꼭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군주론》에 앞서 이 책 『지금 마흔이라면 군주론』 을 읽는 것도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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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적령기
[군주론]은 제목이나 분위기가 주는 중압감에 비해 사실 어려운 책은 아니다. 지레 겁먹고 한 페이지도 펼쳐보지 않았다면 혹시 모를까, 한 장이라도 읽었다면 하루도 못돼서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길지도 않고 크게 어렵지도 않은 책이다. 하지만 그 메시지가 강렬하고 파격적이기 때문에 지금도 수없이 되읽히면서 논란거리가 되고있다. 그런데 왜 저자는 하필 마흔이라면 군주론을 읽으라 했을까? 내가 군주론을 처음 본 것은 중학교 도서관에서 학습 만화로였다. 사실 그 당시에 그 책이 유명한 지도 몰랐고 읽는 내내 고전이라 그런지 꽤 비현실적이라고만 생각했다. “악행은 한꺼번에, 선행은 조금씩” 이런 말들이 써 있는 책을 보면서 그래도 세상의 때가 묻지 않았던 탓인지 조금 거부감이 들었었다. "이런.. 딱 따돌림 당하기 좋은 책이네" 라는 생각이 그때 내 맘이었다. 대학교 때 한번 더 읽었을 땐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맞는 부분이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아직 마흔은 아니지만 서른을 훌쩍 넘긴 이 때 다시 군주론을 읽으니 이제 그 뜻을 알 것도 같다.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저자도 이런 책을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현실의 경험이 바탕이 되지 않는 인문학은 위험하지만, 특히 군주론은 더 위험하다. 같은 책을 읽고 어떤 이는 독재의 정당성을 얻었고, 어떤 이는 민주주의의 완성을 읽어내기 때문이다. 내가 사회적 경험이 부족했을 때는 이 책이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경험은 있으나 개인적 성찰이 부족했을 때는 이 책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어느 정도의 경험과 지식이 쌓이자 이 책은 어쩌면 그 이상의 것을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
고전은 책들과의 싸움에서 살아 남은 승리자들 서문에서 나오는 저자의 말처럼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 하는 자는 비난받는다'는 말이 마키아벨리를 한 마디로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것 같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마키아벨리는 항상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비록 군주론이 메디치가에 다시 중용되기 위해 쓰여지기는 했지만, 또 한 쪽에서는 군주의 악행을 민중에게 알리는 일을 해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유야 어찌됐건 그가 책에 담은 내용은 너무도 솔직해서 '불편한 진실'임에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책을 버리지는 못하지만 안고 가지도 못한 채 여태껏 고전으로 간직하는 것이다. 고전의 가치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꾸준히 읽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되지만, 그 기본 원리에는 인간이 생물이라는 평범한 이유가 숨겨 있다. 생물의 일차 목표는 ‘생존'이고, 2차 목표는 ‘번식'이다. 이를 사회구성체에 적용하면 번식 대신 ‘확장'이라는 개념이 치환될 뿐 큰 뿌리는 같다. 사마천의 ‘사기'가 2500년이 읽히는 이유도, ‘군주론'이 500년이 지나도 유효한 이유도, 이들이 모두 같은 목표를 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설사 마음 속에 남을 향한 칼을 숨기고 있더라도 그 칼을 보여서는 안되며, 남들이 나를 공격했다 하더라도 짐짓 점잖을 빼며 포용력 있는 척 이해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마키아벨리를 인정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이미 비난을 감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다. 이 책에서는 그 논란이 되는 문장들을 끄집어 내서 지금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적용 되는가 이야기 하고 있다. 책에 실린 유명한 일화나 사회 저명인사의 이야기는 군주론이 어떻게 현실에 적용되는 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또 맘에 드는 것은 동양의 마키아벨리라 불리는 ‘한비'의 이야기나 사기의 고사가 적절하게 배치돼 있다는 점이다.
'군주' 대신 '나'를 집어 넣고 읽어보자 저자는 크게 여섯 장으로 군주론을 분류하고 관련 문구를 인용했다. 1장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가’에서는 사람들이 얼마나 현실적인지를 알려주며, 그를 위해서는 군주가 그만큼의 실력을 갖거나 그렇게 보여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신뢰만이 최고의 가치라는 기존의 생각의 헛점을 알려주고자 했던 마키아벨리의 생각에 부응하며 들려주는 록펠러나 노량의 이야기가 참 가슴에 와닿는다. “군주가 자신의 약속을 지키며 기만책을 쓰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산다는 것은 얼마나 칭찬받을 만한 일인가를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나 경험에 따르면 우리 시대에 위대한 업적을 성취한 군주는 자신의 약속을 별로 중시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을 혼동시키는 데에 능숙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신의에만 입각한 군주들을 압도해왔다.”[군주론 18장] 2장 ‘리더를 리더답게 하는 것들’에서는 군주가 선만을 추구할 때 어떻게 파멸할 수 있는 지, 또 사사로운 정에 이끌리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이야기 한다. “완벽한 선을 추구하지 말고 악해지는 법도 배워야 한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들 속에서 파멸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지키려는 군주는 악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군주론 15장] 3장 ‘사람을 내 뜻대로 움직이는 법’에서는 사랑을 받는 것보다 두려움을 받는 것이 더 유효하다고 말하고 있다. 두려움과 인센티브가 사람을 움직이는 현실적인 동력이라는 사실은 냉정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군주는 잔인하다기보다는 인자하다는 평판을 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런 온정도 역시 서투르게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체사레 보르자는 잔인한 인간으로 알려졌지만, 그의 잔인함은 로마냐의 질서를 회복하고 그 지방을 통일하여 평화와 충성을 지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군주론 17장] 4장 ‘위기를 사전에 차단하는 법’에서는 지나치게 관대하기만한 군주가 위험에 처한다고 말하고 있다. 어중간하게 승리하기 보단 확실하게 기선을 잡아야 하는 것은 어느 시기 어느 위치에서든 적용되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장의 내용이 가장 잔인하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들로 구성돼있다고 생각된다.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안아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고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도 못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려면 복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예 크게 입혀야 한다.”[군주론 3장] 5장 ‘경쟁에서 이기는 법’은 이제 무엇이 현실인 줄 알았으니 그것을 상대에게 적용하면서 싸움에서 이기는 법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상대를 깔보고 짓밟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상대의 전력을 미리 알고 싸움에 대처해야만 한다. 자신의 능력을 뛰어 넘는 싸움은 이겨도 남는 것은 상처 뿐이다. “영토를 확장하고자 하는 욕구란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욕망이다. 따라서 능력 있는 자가 이를 수행할 때 그는 칭찬을 받으면 받았지 비난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능력도 없는 자가 어떤 희생을 치르고라도 그것을 손에 넣으려 한다면 이는 잘못된 일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군주론 3장] 마지막 장은 변화를 주도하는 법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법을 말하고 있다. '창업이 수성난'이란 말도 있듯이 새로운 과업을 이루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것을 지켜 내는 것이다. "현명한 군주란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일만이 아니고 먼 장래에 있을 분쟁까지도 배려 해야 하며, 모든 노력을 기울여 이에 대처해야한다. 위험이란 미리 알면 쉽게 대책을 세울 수 있지만 코앞에 닥쳐올 때까지 그냥 보고만 있으면 그병은 악화되어 불치병이 된다."[군주론 3장] ‘군주론’에서 ‘군주’라는 말 대신 ‘나’를 집어 넣고 ‘백성, 신하’라는 부분에 ‘남’을 집어 넣고 읽어보면 왜 이 책이 이렇게 오랜 기간 많이 읽히는 지 이유를 알 수 있다. 세상은 분명히 더 잔인해졌고, 경쟁은 더 치열해졌으며, 약자에게 더 차가워졌다. 이 책은 군주론을 읽지 않았더라도 먼저 읽기에도 충분히 괜찮은 책이며, 군주론을 읽고 나서 읽는다면 응용 문제를 보여주는 참고서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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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30대 이전에는 꿈과 이상, 욕심과 가능성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다들 그렇지 않았을까? 그때의 나는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고 외쳤던 나폴레옹 황제의 패기로 넘쳐났었다. 그런 인식으로 세상을 보았으니 냉철한 현실인식으로 무장한 40대 이후의 중장년은 패기도 없고 용기도 없는 '퇴물'처럼 느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못 가진 자의 허세는 지나친 용기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지금 마흔이라면 군주론>을 읽었다. 학창시절에 뜻도 모른 채 읽었던 <군주론>. 마키아벨리는 내게 속물의 전형으로 각인되었다. 작은 것 보다는 큰 것이 먼저 눈에 띄었고, 세밀한 계획 보다는 커다란 꿈이 먼저였던 돈키호테의 시기에 마키아벨리의 냉철한 사고가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세상살이가 다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젊은이의 이상과 현실의 격차가 크면 클수록 그 결과는 참담한 법이다. 내게는 절대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참담한 결과를 몇 번 겪으면 그제사 어른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국가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이자 정치이론가이며 저술가였던 니콜로 마키아벨리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그럼에도 500여 년이라는 시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꾸준히 읽혀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마키아벨리에 대한 나의 생각은 어떤 정치가나 평론가 혹은 리더십 이론가의 견해와는 사뭇 다르다. <군주론>은 나약한 소국의 힘없는 외교관으로서, 또는 선량하고 고결한 시민이자 좋은 아버지로서 그가 살았던 삶에 대한 자기성찰이자, 자신의 영혼보다 사랑했던 모국 피렌체의 부국강병에 대한 염원을 담은 기도서였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을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젊은 시절의 나는 나와 타인의 구별에만 집착했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선량한 양심의 소유자이고, 법과 규칙을 준수하는 신의와 성실의 표본이며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자라고 생각했다. 젊은 시절에 누구나가 선망하는 이상적인 인간형. 그것이 '나'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살고자 노력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환상에 사로잡힌 삶에서 타인은 오직 나와 구별되는(탐욕과 이기심 그리고 비열함과 권모술수로 무장한) 악의 화신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다. 내 양심의 이면에 존재하는(일상을 지배하는) 보편적 인간의 공통분모를 생각하지 못할 때, 공동체에 속한 개개인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때, 공동체의 통합이나 조직의 목표를 향한 자기 희생은 기대하기 어렵다. 오직 갈등과 분열 속에서 각자의 주장만 난무할 뿐이다.
아마 젊은 시절의 마키아벨리도 그러했으리라. 기본적으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공통분모(일상적인 탐욕과 이기심, 권력에 대한 집착과 공포)를 스스로 밝히고 반성하는 것은 나이가 든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타인에 대한 사랑이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헌신은 나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부끄러운 면모를 고백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남과 다르지 않다는 인식,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비열한 속성을 이해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이스라엘 민족에서 보듯 '선민의식'에 가득찬 호전적 인간군상으로 남게 마련이다.
국가든 기업이든 조직원의 통합이 전제되지 않는 한, 조직의 목표를 위해 조직원이 헌신하지 않는 한 그 공동체의 미래는 없다.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은 다양한 인간 군상의 공통된 인성을 솔직하고 세밀하게 노정함으로써 리더의 통치를 돕고자 했을 뿐이다. 인간의 속성이 악의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의 모습은 너무나 다양하여 그 공통점을 추출하기 어려운데 반해 조직에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하지만 악의 모습은 그 양태가 비슷하여 분류하기 쉽고 이것이 성하였을 때 공동체의 생존을 위협하게 되므로 리더는 오직 인간의 악한 면을 어떻게 다스릴까?하는 문제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인간에게는 오직 '악'의 근원만 존재한다가 아니라 공동체의 단합과 발전을 위해 '악'의 속성을 다루는 리더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더불어 리더 자신 또한 한 명의 인간 개체로서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와 다를 바 없는 같은 속성을 갖고 있음을 인정할 때에야 비로소 자신이 이끄는 공동체의 구성원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는 법이다.
"현명한 군주란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일만이 아니고 먼 장래에 있을 분쟁까지도 배려해야 하며, 모든 노력을 기울여 이에 대처해야 한다. 위험이란 미리 알면 쉽게 대책을 세울 수 있지만 코앞에 닥쳐올 때까지 그냥 보고만 있으면 그 병은 악화되어 불치병이 된다. " (P.2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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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에 대해서는 익히 들은 바도 많았고 내 책장에 꽂혀있는 책이기도 하나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 아주 유명한 책의 경우 오히려 읽는 시기가 늦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나의 경우 군주론이 그랬다. 이 책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많은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고 정말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책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았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처음에 환영받지 못하는 책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책이 얼마나 현실성을 갖추고 필요한 책인지에 대해 느끼게 되는 책이 된 것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동안 군주론이 왜 이렇게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꼭 읽어야 하는 책으로 분류되었는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너무 현실적고 또 현실적이다. 리더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어떤체제나 사상이나 현성은 이론가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갈등하는 현실속에 실제로 행동하는 사람의 손에서 나온다. 목적과 수단은 별개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다. 목적이 정당하다고 효과적인 수단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며 효과적인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시키지도 못한다. -본문 중- 이 책은 한번 손에 쥐면 놓기가 힘들다. 어떤 책보다도 정독하게 되고 집중하게 되는 것은 읽어야 한다라는 목표 때문이 아니라 읽을수 밖에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군주론이 한때 불편한 진실이 되었는지도 이해할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기까지 왜 수많은 독자들 사이에서 스터디 셀러가 되었는지도 이해할수 있었다. 이 책은 너무 현실적이다 못해 역사와 함께 그리고 현재에 까지 이어져가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사람의 성향을 파악할수 있게 만들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책이다. 할수 있는 일과 할수 없는 일을 구분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최상의 성과를 낼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고귀한 이상을 추구하려면 냉혹한 현실을 다룰줄 알아야 한다, 뱀이 땅군에게 반가운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이다,밥을 얻어 육체를 보전하는 것은 삶의 필요조건이고 밥을 해결한 후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삶의 충분조건이다, 할수 있는 일과 할수 없는 일을 구분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최상의 성과를 낼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순진한 인간은 시가꾼에게 속게 마련이고 평범한 사기꾼은 비범한 사기꾼에게 속는 것이 세상이다. 남을 속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책략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힘없는 사람을 동정은 해도 존경하지는 않는다, 겸손이란 강자의 특권이다 등을 읽으면서 내가 진작 읽었어야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오히려 어떠한 것을 승화시키려고 노력하거나 미사여구로 꾸며지지 않은 진실들이 모여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정말 좋았다. 특히 사람들에게 이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해주었다고나 할까? 결국 이익만큼 강력한 하게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없는 듯하다.
선과 악이 세상의 두가지 측면이라고 할때 선만으로 상대를 대결하는 것은 무기의 절반만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성숙한 사람의 에저지가 불안한 사람의 에너지를 상승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대의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과 같다. 썩은 사과 한명은 다섯명의 새로운 썩은 사과를 만들수 있다. -본문 중- 이 책에 나오는 썩은 사과하나가 전체를 오염시킨다는 나도 조직에서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썩은 사과 한사람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오염을 시킬수 있는지에 대해 익히 경험한 바가 있다. 그때는 내가 옳기에 그사람이 변할줄 알았다. 하지만 그 사람은 절대로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썩은 사과의 부위만 더 넓어질 뿐이었다. 오히려 그것에 오염이 되어버려 오염된 부위를 도려내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건 나였다. 나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을 믿는다. 선한 의지를 갖되 악을 이해하고 활용하라는 조언도 공감이 갔다. 내가 우유부단함이 있다면 배려라는 측면에서 남들이 여기서 내가 이해를 안해주면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것 때문에 썩은 사과를 도려내지 못한 적이 많이 있었다. 사람뿐만 아니라 부분적인 살에서도 반복적으로 그랬다. 향우는 용맹함을 지녔으나 결국 유방을 죽일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책에 향우의 목표는 천하를 지배하고 권력을 잡는 것이었음에도 결정적인 순간에 허울 좋은 명예와 겉치레의 평판에 사로잡혀 자신의 본분을 망각했다라는 글이 나온다. 사마천은 그에 대해 사사로운 지혜만 앞에서 과거를 교훈으로 삼지 않았다고 말한다. 나는 이 책에서 개인의 이익, 천제의 이익, 서수민 피디의 이야기에서 모든 권한을 행사하지만 소유권은 없다, 야노프스키의 이야기에서 지독히 연습해라! 미친듯이 악보를 파고들어라, 실제무대는 그보다 더 독하다, 훈련은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고 전쟁은 피를 흘리는 훈련이다라는 부분도 내게 많은 교훈을 남겼으며 개인적 윤리와 리더의 덕목은 구분돼야 한다에서 향우의 이야기가 떠올랐고 미덕이 나의 의지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도 미덕이 될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 마음만 미덕이고 그 미덕이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면 그것은 리더로써 미덕이 아닌 개인의 감정에 빠져 전체를 흐트려놓고 권력이 자기 소유가 아님에도 마치 내 소유인냥 남용하는 것이 되어버릴수 있다는것을 명심하게 해주었다. 이 책은 아주 내마음에 쏙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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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여러가지 종류의 기쁨들이 있다. 특히, 우연히 접하게 된 기쁨들에 대해서야 말할 필요도 없이 더 큰 즐거움과 깊은 여운을 남겨준다. 여행지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평생 안듯한 그런 느낌을 안게 된 것, 이리 저리 돌린 라디오에서 예전, 몹시 좋아했으나 잊었던 곡들이 흘러 나올 때, 그리고- 나와 파장이 겹치는 책을 만나게 되는 소소하지만 강렬한 순간. 이런 것들이 우연히 손에 넣은 큰 기쁨들인 것이다, 나에게는. 특히나- 책을 좋아한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본인이다보니.....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정신없이 읽다보니 지하철 내릴 곳을 놓치게 만들며- 점점 읽을 부분이 적어지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책을 만나게 되면....순간순간 느끼는 희열이 참으로 형용하게 어려울 지경이다. 지금까지- 이어령 선생님, 고 장영희 교수님, 와타나베 쇼이치상, 미우라 아야코 상, 이종인 선생님의 저서들과 몇몇 책들이 그러한 범주에 속해왔다. 그리고 언급한 이 책들 중에는 평생 두고 읽어야 할 책들을 정해 나름의 목록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이 목록에 드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데- 간만에 이 목록에 들어갈 책 한 권을 넣게 되어 흐뭇한 마음이다. "지금 마흔이라면 군주론" - 이 책이 바로 그러한 책이다. 너무 좋은 책은- 서평을 쓰는 일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읽는 한 줄 한 줄 모두가 참으로 주옥같은 것이다 보니...서평을 쓰기보다는 책 전체를 통째로 외워서 온 몸에- 온 마음에 새기고 싶은 강렬한 열망만이 오롯이 남게 되는 법. - 필시, 어디 감히 서평을...이라는 마음이 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 그렇지 않으면..느낀 것이 너무 많다보니...표현하기를 포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 권의 책을 두고 대하는 사람마다 느낌은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정말 좋은 책은 분명- 널리 사랑받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이며..이 책 또한, 분명 그러한 책이 되리라는 생각이다. .......................................... 망설임끝에.. 책에 대한 언급을 조금 해 보자면... 이 책의 저자인 김경준 대표이사는 말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통해 현실에 눈을 뜨고 당신의 인생을 당신 스스로 이끌어가는 리더가 되어라!"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정하며 부도덕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마키아벨리의..이와 같은 편견을 깨고 그의 진가를 독자들로 하여금 분명히 이해하며 그의 훌륭한 조언을 따를 수 밖에 없도록 만든 이 책의 힘이 멋지다. 본인은- 마흔의 나이도 아니고,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나이와 성별, 직업에 상관없이- 근거없는 막연한 희망에 사로잡혀 있으면서..그 희망과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왜 않되지..?'를 습관적으로 내뱉는 사람이라면 꼭 이 책 한 권을 손에 쥐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현실을 직시하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그것이 삶을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를 분명히 보여줌과 동시에 당신으로 하여금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켜 줄 것이다. ............................................... 형광색으로 그은 부분들이 너무 많다보니- 그 모든 부분을 옮기다가는 자칫 책을 통째로 베끼는 형국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마음에 담고 싶은 부분 몇 개만 남겨 놓아야겠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는 존재할 수 있지만, 밥 굶는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현실의 인간이 밥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곧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이다. .....오늘 입에 들어갈 밥 한 그릇을 얻어 육신을 보전해야, 내일의 고귀한 이상을 추구할 수 있다. P 28 독자성은 삶의 핵심조건을 자신이 만드는 데서 출발한다. P60 겸손은 강한 자의 특권이다. "논어의 위령공 편에 "군자는 자신의 무능함을 근심하지, 남들이 자신을 알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지 않는다."는 구절이 있다. 백 번 맞는 말이다. 자신이 무능하면 남들도 무시한다. 자신이 유능하면 가만히 있어도 남들에게 인정받는다. .... 자신의 무력함을 근심하라. 이런 점에서 겸손은 강한 자의 특권이다. P63 두려움과 인센티브는 사람을 움직이는 핵심동력이다. 군주가 경멸을 당하는 일이나 미움을 사는 일은 피해야 한다.....인간이란 재산과 명예만 빼앗지 않는다면 그럭저럭 만족하고 살아가는 존재다. P148 지식인은 논리로 말하고 리더는 결과로 말한다.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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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기심을 부정하는 것은 개인의 관념적 자유지만, 개인의 관념과는 무관하게 이기심은 자연법칙으로 존재한다. (39쪽) 선하고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사람으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며 남에게 헤를 입히지 않기를 바라는 삶을 살기를 배워오며 그 것이 절대 선임을 강조하는 사회에게 그렇게 교육을 받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친구를 만들고 평생 우정을 나누어야 할 학교에서는 점수와 등수로 사람을 평가하고 진학 혹은 취업률이 그 내면적 평가의 기준이 되고 있다. 사람은 어쩌면 이타적이기를 교육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 현장에서 우리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을 스스로를 위하여 터득하며 살고 있다. 아이러니한 현장에서 말이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으며 이기적인 사람을 비난하며 조롱하지만 그 속에서 최대한 남에게 이기적이지 않게 보이면서 이타적인 모습으로 남을 도우면서 나의 이득을 찾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군주론은 그 부분에 있어서 탄생부터 많은 비난을 면하지 못하였다. 세인들이 말하는 비열함 혹은 냉혹함을 유지하기를 권하는 이야기이며 때로는 거짓과 강제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그런 방법도 서슴없이 제안하기 때문이다. 첫 문장의 인용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질문인 것 같다. 인간으로서의 관념적 자유를 따를 것인가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살 것 인가? 마치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유전자의 생존을 위한 모든 행위는 자신을 위한 행위이다. 다른 유전자의 번성을 막고 현재의 자신의 유전자가 생존 성장하기 위한 모든 방법을 찾아가는 유전자의 자연적 습성과 법칙을 위배하고 위대한 인간으로서의 관념을 따라 그 행위를 버리고 이타적인 관념으로 살아가며 스스로 위안을 삼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40에 군주론을 선택한 것을 보면 마흔이라는 나이에 대한 관념의 변화 혹은 성공이라는 기준에 대한 절박함을 알기에 따온 제목이 아닐까 한다. 20대 세상에 대한 정의를 따라 살고 그 정의가 사회에 실현되기를 바라며 마음껏 자신의 이상을 필 것 같았던 나이 그렇게 서른의 열정적인 삶을 살고 그 속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가정을 꾸리며 세상을 좀 더 알게 되는 시기 때로는 좌절을 때로는 오만을 부리면 살던 시기 마흔은 나머지 인생을 결정하는 시기 이 시기에 군주론이라니 너무 각박하지 않느냐고? 그렇게 질문하면서도 이 책을 들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조금씩 알게 되었고 그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하던 일이 아니라 리더가 되어서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해야 하고 한 사람의 독립된 영역이 아니라 리더로서 자리 잡고 성장하고 커나가며 때론 경영자의 길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에 군주론은 그 역할을 충분히 받아들이기에 충분하다. 무서울 만큼 철저하게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하며 그 속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제시하기 때문이다. 기업, 개인을 포함해 어떠한 집단도 생존을 위해 구사하는 책략과 속임수는 본능적이다. (50쪽) 일단 승부가 벌어지면 승리 아니면 패배가 있을 뿐이다. 무승부는 승부를 잠시 미루는 것일 뿐 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180쪽) 어떤 방법을 쓰든 생존을 최우선의 원칙으로 선택하라. 군주론이 일반인에게 거부감을 들게 만든 이유, 그리고 마키아벨리가 비난을 받으면서도 남기고 싶었던 이야기 속에는 세상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습득하고 배운 것들이 남아있다. 다만 그는 그 것을 정리하였을 뿐이다. 남들이 도덕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배척했던 영역을 말이다. 마흔의 나이 생존을 위한 선택을 해야 하는 나이,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우리를 발전시키고 내가 속한 집단을 발전시킬 것인가 그 해답이 혹시 마키아벨리의 말 속에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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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 꼭 마흔이 아니라도 사회생활에 지쳐 힘들때, 진행되는 상황들이 마음에 안들어 불평 불만이 쏟아질때 읽는다면 어느 정도 자신과 사회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여러 종류의 자기 계발서도 읽어보았고, 동의하는 부분이 대부분이었으나 옛것과 중세, 근대의 사회 상황에 맞추어 설명해준 저자의 마음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군주론이라면 군주가 행해야 할 덕목을 조목조목 알려주는 지침서라고 생각되는데 마키아벨리가 생존하고 책을 서술했던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책이라는것이 잘 이해가 안되기도 했다. 사람은 진정성과 성실성, 결단력과 판단력에 의해 행하는 일을 끝까지 완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마키아벨리 시대에는 그런 솔직하고 당연히 군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에 대해 저술하였으면서도 왜 인정받지 못했을까? 그 시대에는 오히려 독재적인 권력을 쥐고 마음대로 흔들어 국민들을 더 힘들게 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외국과의 외교력에 있어서도 갖추어야 할 덕목을 외교관이라는 직책에서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고 그 당시의 경험을 저술로서 남겨 후세에 알리고자 했던 마키아벨리의 마음을 왜 이해하지 못하고 좋지 않은 책으로 남아야 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오히려 현재의 우리의 상황과 더 잘 맞는 고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대학에 입학하여 책을 많이 읽고 싶었지만 책도 마음의 준비와 어느정도의 지식을 겸비한 상태에서 읽어야 더 이해가 잘되고 쉽게 전하는 바를 캐치하여 나의 것으로 만들수 있다는 생각을 머리속에 가득하다. 예전에 손자병법을 읽어보고자 도선관에서 책을 빌려 읽은적이 있는데 역시 번역서에 불과하고 상황들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이 부족하여 도중에 그만 둔 적이 있었던 기억이 새롭다. 80년대에는 사상전집이라는 것이 있어 대학생들의 교양을 위해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권유에 빠져 구입한 사람들이 많았다. 책을 가지고만 다녀도 뭔가 있어보였던 그때....그러나 아직 경험이나 사상가들이 전해주는 단어의 난해함으로 도중에 그만둔 책들이 엄청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맹자, 공자, 중용의 동양철학이나 사상은 말할것도 없고 제목만 들어도 누구의 책인지는 알면서도 그 내용이 난해하여 읽기가 어려웠던 서양의 사상에 관한 책들도 많았다. 이제와서는 독서에 의해 많은 간접적 경험과 사회 생활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의 조합ㅇ에 의해 어느정도의 내용은 이해할 수 있는 시기가 되어 이해력은 많이 배가 된듯하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자기 계발서가 있어 읽고, 마음속에 간직한다고 해도 상황 상황에 맞춰 적용하는것은 더욱 어려운것 같다. 이제는 이해의 수준에 머물러 버리는것은 아닌지 나 자신도 그런 걱정을 하게 된다. 책만 많이 읽고 실천이 부족한 나의 현실을 다시 한번 되돌아본다.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독서력이 부족한것 같다. "지금 마흔이라면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세계사에서 접했던 사상가이자 외교관이어서 상식의 기억으로 머릿속에 남아있지만 저자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한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김경준이라는 저자가 너무나도 생소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장기 전략 수립 과 사업 재구축을 통한 기업 경쟁력 회복이 주요 분야였기에 자주 접하지 못했던것은 아닐런지? 19가지의 군주, 기업가, 조직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 알려주는 덕목은 언제나 되새김질 해야 할 소중한 재산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록 마흔이 아니더라도 더 빨리 접하고 마음에 새길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기억에 남는 인생을 영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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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돌고 돈다. 과거의 모습이 현재에도 보여지고 미래에도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한 눈 뜨고 꿈꾸는 사람이다. 뜬 눈으로는 현실을 보고, 감은 눈으로는 이상을 꿈꾸라'는 격언이 와 닿는 이유일 것이다. 돌고 도는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 우리는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계속 굴러간다. 그 속에서 강인함을 지녔던 때도 있었고 고통의 시간을 가지고 있을 떄도 있었다. 승자도 존재했고 패자도 존재했다. 힘이 강한 자도 있었지만 힘이 약한 자도 있었고, 머리가 좋았던 사람이나 평범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만든 집단이 점점 커지면서 나라가 되었다. 나라들 마다 살아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평화로운 시기도 있었고 절대절명한 위개의 순간도 있었다. 그틈새에서 유지하고 살아남는다는 것은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아마도 우리의 역사가 그러했을 것이다.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지만, 모두를 위해 힘을 합칠 줄 아는 원동력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는 볼 수 없다.
사람들은 이타적인 삶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잘 먹고 잘 살고 싶어한다. 그것은 세계 누구나 똑같다. 살아가면서 불만족하고 불평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리더는 그런 마음을 어떻게 모으고 변화시키는냐에 따라 주변 사람들. 국민들의 마음가짐이 달라지게 한다. 전 세계적으로 대공항을 겪었을 때 일이다. 루즈벨트는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말로 미국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했으며 위기를 극복햇던 경험과 믿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아리안 민족의 위대함을 강조하면서 바이마르공화국의 무능을 비난했고, 위기의 책임을 유대인과 집시 등 소수 인종들에게 돌렸다. 이로 인해 독일 국민을 매료시켜 집단 광기로 폭발시켰던 것이다. 과거사 인식의 차이는 지도자 개인은 물론 그가 소속된 공동체와 세계의 운명을 결정했다.
현재 우리는 어떤 상태인가? 일본은 36년간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반성하지도 않고 있다. 그저 '통념의 한'이라는 말로 마무리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반성하지도 않았고 자신들의 잘못된 역사를 기술하지 않았다. 그저 반복해서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할 뿐이다.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아도 일본은 일본 내의 불안정한 상황이 있으면 우리나라를 물고늘어졌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곤 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필요하다고 통상을 하게 해 달라고 한다. 이처럼 그들은 한 번도 반성한 적이 없다. 반성하는 척 할 뿐이다. 단지 자신들이 필요할 때만 인정해 주는 나라가 일본이 아닐까? 그렇다고 감정적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미국 노예해방운동가 프레더릭 더글라스의 말에 의하면 "인간 본성이라는 게 원래 힘없는 사람을 동정은 해도 존경하지는 못하게 만들어져 있다. 게다가 그 사람에게 힘이 있다는 낌새마저 없으면 그러한 동정마저 오래가지 않는다."고 했다.
《군주론》13장에서는 '생각이 얕은 사람은 처음 단맛에 속아, 속에 숨어 있는 해독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일을 시작해버린다. 이것은 앞서 말한 소모성 열병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군주의 자리에 있는 자가 재난이 눈앞에 닥칠 때까지 모르고 있다면 이는 현명한 군주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통찰력을 지난 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고 했다. 생각없이 행동을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함은 당연하지만, 앞에서 보이는 것만 보지 않고 상대방의 속 마음을 알아차리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를 든, 기업이든 단체이든 경영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역사는 돌고 돌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다시 재현되어진다는 것이다. 다만 등장인물만 다르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