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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를 대표하는 대석학이자 관료, 간만에 썰 좀 풀다
"당대를 대표하는 대석학이자 관료, 간만에 썰 좀 풀다" 내용보기
이참에 그얘기를 다시 한번 꺼내고 싶다. 일부 남탓 근성이 몸에 밴 인간들 중에는, 자신의 무지와 낙오를 전적으로 제도권 교육의 실패에 귀인하며 얼토당토 않는 푸념을 늘어 놓는 그 근성이 아주 골수에 밴 유형이 있다는 점은 내가 누차 이야기한 대로이다. 학습에의 의욕이 없고, 새로운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모르는 죽은 정신에 대해서는, 제도권 교육의 혁신이라기보다는
"당대를 대표하는 대석학이자 관료, 간만에 썰 좀 풀다" 내용보기

이참에 그얘기를 다시 한번 꺼내고 싶다. 일부 남탓 근성이 몸에 밴 인간들 중에는, 자신의 무지와 낙오를 전적으로 제도권 교육의 실패에 귀인하며 얼토당토 않는 푸념을 늘어 놓는 그 근성이 아주 골수에 밴 유형이 있다는 점은 내가 누차 이야기한 대로이다. 학습에의 의욕이 없고, 새로운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모르는 죽은 정신에 대해서는, 제도권 교육의 혁신이라기보다는 학습 지진아를 위한 특수 시설의 완비가 정책적으로 더 시급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잘 모른다 싶으면, 깊이 있는 참고자료를 찾아서 읽어야 하며, 그럴 여력이 안 되면 '저자의 말이 과연 무슨 의미일까' 하는 겸허한 사고의 바탕 위에 생각이라도 곰삭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생각하기 싫고, 발품 팔기 싫은 게으른 인생이 대체 누구를 탓할 자격이 있다는 건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이 '역옹패설'은 아마, '익재난고'와 더불어 국사 시간, 혹은 국문학사 시간에 귀가 따갑도록 들어 온 책 제목일 줄 안다. 만약 사항의 암기를 싫어하는 체질의 학생이라고 해도,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자습서라면 이 책의 대략적인 내용이 무엇이며, 제목이 왜 그리 붙었는지에 대한 설명 정도는 웬만한 책에서 다들 제공하고 있다. 시력에 특별한 장애가 있지 않은 이상에는, 눈길을 한 번 돌려 박스 안의 내용에 찬찬한 주의를 기울임이 큰 수고도 아닐 줄 아는데, 고작 그걸 하기 싫은 것이다. 그런 사람이 과연 성장해서 제 직장에서나마 받는 봉급의 값어치를 해 낼 수 있을까? 창의적이지 못하고 게으른 자가 메리트를 획득하는 교육 시스템이라면, 아마 미래 세대 모두를 멸망으로 이끌고 가기에나 적합한 특급의 스페이스 셔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줄 안다. 그런 자들은 한창 일해야 할 시간에 독서라는 허울 좋은 핑계로 현실 도피를 일삼으며, 막상 책을 집중적으로 팠어야 할 학창 시절에는 부질없는 유희로 그 금쪽 같은 시간을 허송했을 가능성이 크다. 공부해야 할 시간에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가장 생산성을 발휘해야 할 중장년의 시간에 비생산적 불평의 틀에 박인 담론 양산 외에는 어디서 재주를 발휘할 데가 없는 것이다. 


요즘 국사학을 소재로 한 대중서나 픽션물 간행 풍토를 보면, 학창 시절을 제법 알찬 밀도로 보낸 내공 외에도, 어디서 별도로 이런 디테일을 확보했을까 싶은 생생한 묘사에 고개가 끄덕여질 때가 많다. 만약 그 저작이 주제를 고려사 쪽으로 잡았다면, 이 '역옹패설'은 거의 필독의 아이템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 책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았고, 서브의 리더로도 제법 많은 내용을 접했지만, 원본이 이처럼 풍부하고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을 줄이야 몰랐다.


우선 첫장을 보면, 대체 고려 태조의 직계 선조 3대가 왜 그런 이름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아주 자연스러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마땅한 성이 없는 대신, 이름의 끝음절이 공통적으로 '~건'인 데 대한 나름의 논증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이제현 역시 신라 이래의 '마립간' 따위의 호칭에서 그 연원을 찾고 있다. 물론 그 어의에 대해서는, 그저 '신라인 간에 서로를 높이는 호칭' 정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흐릿한 규정을 하는 정도이나, 여튼 '마립간'의 '간'을 '작제건'의 '건'에 연결하는 그 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khan' 이야기는 여기서 하지 않겠다). 사실 이 대목에서 그가 전개하는 논변이란, 민간 어원설과 소박한 종실존숭주의에서 크게 벗어나는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이 당시의 엘리트 서클에서 이런 논의가 전혀 격식 있는 대접을 받을 성격이 아니었을 텐데도, 그의 창의적이고 생동감 있는 정신 작용이 이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다는 점, 바로 그것에 주목해야 한다. 발화자가 이제현이 아니었다면, 이런 논의들(지금에 와서야 너무도 흥미롭고, 때로는 역사학 본연의 소명으로까지 격상되는 과제들)이 당시로선 거의 무시되다시피 소홀한 대접을 받고 지나치는 게 당연한 운명인데, 그가 잡록에 가까운 이런 저술들을 소중히 정리해 두고(물론 이런 사소한 주제를 정제된 한문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그 능력의 과시에도 큰 목적이 있다). 이후 조선 연간에도 정성을 들여 재출판한 까닭에, 우리 후손들이 지금 이처럼 안정적인 포맷으로 그 내용을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최대 특장은 바로 풍부한 역주에 있다. 좀 아쉬운 점은, 단순한 사항 해설은 요즘처럼 레퍼런스 소스가 인터넷 따위를 통해 풍부히 제공되는 시대에, 굳이 아까운 지면을 할애하여 등재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정도인데, 그나마 일일이 찾아 읽기 귀찮아하는 독자들에게는 대단한 서비스로 봐 줄 수 있다. 또한 항목 해설에 단순히 팩트만 정리한 게 아니고, 저자의 주관적 평가라든가 크로스 참조 사항도 상당히 담겨 있기 때문에, 지적 호기심으로 충만한 독자에게는 그저 고마운 크리스마스 선물로 다가온다. 양당진한주 할 때 그 후진의 태조 석경당이와 친했던(?) 거란의 아율덕광이를, 비꼬는 의미로 '제파(帝羓)'라고 불렀다는 걸, 이런 상세한 역주 아니고서야 어디서 편한 포맷으로 접할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오타가 좀 많은 편이다, 수재를 많이 배출한 경남 고성을 고향으로 둔 저자의 능력에는 의심이 없으나(ㅋㅋ), 미스프린트는 언제나 책의 근본 신뢰 문제와 직결됨이 당연하다. 몇 개만 지적하자면,


p87 밑 6째 줄

깍은 → 깎은


p144:5

잰체하는→ 젠체하는


p40  밑에서 셋째줄

석량→ 석랑

s****o 2013.12.31.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