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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의 보한집은 이른바 여대(麗代) 패관문학의 대표격인 고전이다. 앞서 리뷰를 쓴 '역옹패설' 역시 비슷한 성격인데, 다만 이들 저술이 과연 좁은 의미의, 픽션으로서의 '문학'이냐면 물론 그렇지야 않다. '패관(문학)'이란 기본적으로 내러티브의 소재적 '채록' 과정을 그 본질로 삼는데, 이런 책들이 그 체제상 전체적인 민담 채록 형식을 취하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당시 문벌 귀족, 사대부의 정격적 관행에서 벗어나긴 하였으나, 대체로 진솔한 취향을 그대로 반영한 문집의 성격을 벗어나지는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영구 불멸, 확정으로 정해진 문학사적 도그마란 존재할 수가 없으므로, 편의상 정해진 이와 같은 '패관 문학'이라는 카테고리의 타당성에 언젠가는 진지한 의문이 제기될 필요도 있을 줄 안다. '역옹패설'이 비교적 가벼운 분량이라면, 이 '보한집'은 제법 큰 볼륨을 지니고 있다. 또한, 역옹패설에 비해 보다 정제되고 단아하며, 개인의 주관이 덜 채색된 문장을 구사하고 잇다는 게 특징이다. 이는 집필자인 최자(무섭게 생긴 그 힙합 뮤직션을 떠올리는 무식한 발상 하기 없기) 자신의 개성에서 비롯한 바 큰데, 일생을 두고 무리수 없는 교묘한 처세의 행로를 밟으며 부귀와 영달을 고루 누린 영민한 선택의 연속이었던 그의 행적이, 이 문집에 고스란히 비치는 듯하다. 도학보다는(아직 본격 도학이라 칭할 만한 주자학의 전래 이전에 주된 활동 시기를 잡은 인물이니, 이 최자가 얼마나 오래 전의 존재인지 감이 올 것이다) 주로 시문의 문예적 미학 완결성에 주안을 둔 그의 글들은, 당대 주류의 경향에 대체로 순응하는 어조의 논변이 대종을 이루며, 몽침의 서슬 퍼런 칼날에 전 국토가 전란을 피할 날이 없었던 시련의 시대를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학이란 태평 성대를 구가한 귀족의 한량풍에서 벗어나는 핉치가 거의 없다. 하기는 성당 말엽 안사의 난이라는 모진 국란을 겪고도 시선의 태평을 유지했던 이백이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도전으로 중원을 유린했던 이민족(거란, 여진)의 말발굽 아래서도 음풍 영월의 풍취에 탐닉했던 소식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소중화의 허영, 가식의 구현은 이미 이 시기부터 지배층의 병통으로 자리하고 있었으나, 다만 그 남긴 문헌과 자취는 그들의 의식 구조, 나아가 그들의 피와 살을 무의식과 함께 계승한 오늘의 우리에까지 지대한 시사를 남기는 바이다. 어찌 소홀할 수 있으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