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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정리하며, 도저히 틈이 나지 않아 미루던 세종평전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이라하는데, 업적과 말처럼 쉽지않은,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현한 표상적인 인품정도였는데, 자세히 읽다보니, 그당시로서는 감탄사가 나올정도로 넓고 깊게 정책을 위해 노력했던것같다. 물로 아버지 태종이 군사,정치적으로 독제적? 기강을잡아 놓았기 때문에 펼칠 수 있었을 테지만, 집현전, 의정부서사세, 공법(전분6등,연분9등)-의견수렴을 위한 17만명의 여론조사, 부민고소금지법의 사실상 페지(처벌가능하도록) 오랑캐였던 명나라와 일본 사신에 대한 유화 외교, 노비지위향상과 양인화-노비해방, 육아휴직, 농사직설, 아악정리, 또한 백성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자 농사에 편리함을 주고자, 칠정산 내외편, 측우기,양부일구, 의학서적 편찬<향약집성방> 범죄가 늘어나 삼강행실도, 억울한 일을 호소하지 못하는 백성을 염려하여 훈민정을 창제- 초기에는 신하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기획, 감옥시설 개선까지 염려하여<삼한법> 등 그러한 과정중의 대내외적 과로와 부인, 자녀들의 상실로 인한 불경간행 강행 등의 개인적 난관도 있었지만, 중립적으로 토론과 여론존중, 국적을 초월한 인재 발탁, 사회적약지의 인권을 높인 복지정책, 경학과 역사학에 통달한 인문학의 달인, 법학,교육 농학, 의약 10학 을 젊은이에게 배우도록 제도화 하는등의 수많은 이로운 업적들을 남겼다. 해동의 요순이라 불릴정도로 권력투쟁이 한건도 없을 정도이며, 반역으로 죽은 신하가 없었다. 현재의 문명이 훨씬 발전된 시대에도 이루지 못한일을 일찍부터 구상하고 이루었다는것이 믿기힘들만큼 대단하다. 문자의 문화는 보수중의 보수이지만 , 이로전달된 세세한 일대기는 사극을 보는듯도 하고, 여러정책들이 이런 과정과 생각을 거쳐 나올수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300년을 주기로 바뀐다는 역사가 이렇게 돌아가고 사멸한다는 그러나 좋은 문화는 살아남고, 그것을 통해 발전해나가며, 또한 지금보다 당시가 더 선진적이고 인간답다는 생각이 드는 것들도 있었다. 이렇게 가정이든 기업이든 정치든 이끌어 나간다면, 사람들이 덜 걱정하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시대의 전환기에 ,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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