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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태일은 바보회를 만들었을까? -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58
"왜 전태일은 바보회를 만들었을까? -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58" 내용보기
2011년에 '천만 노동자의 어머니'라 불리시던 '이소선 여사'가 소천하셨다. 40년간 민주화. 노동운동에 헌신하셨던 이소선 여사의 소천은 많은 것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전태일이다.  스물두살의 젊은 청년이 '근로기준법'이라는 책한권을 들고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를 외치며 분신을 했다.  이 짧은 기억들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영화
"왜 전태일은 바보회를 만들었을까? -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58" 내용보기

 2011년에 '천만 노동자의 어머니'라 불리시던 '이소선 여사'가 소천하셨다. 40년간 민주화. 노동운동에 헌신하셨던 이소선 여사의 소천은 많은 것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전태일이다.  스물두살의 젊은 청년이 '근로기준법'이라는 책한권을 들고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를 외치며 분신을 했다.  이 짧은 기억들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영화속에서 만난 기억이다.  분신을 한 청년을 알고는 있고, 그의 어머니도 알고 있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단편적일 뿐이다.  1960년대를 나는 살아 본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에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한다. 그 짧은 삶을 말이다.

 

 

 

 196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경제는 세계 최하위 수준이었다. 경제 발전을 힘써 추진한 박정희 정부는 장기 집권을 했고, 우리 나라는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룩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시기를 흔히 '산업화 시대'라고 하고, 다른 이들은 '개발 독재의 시기'라고도 부른다.  같은 시기를 두고도 역사관이나 사상에 따라 부르게 부르는 경우는 상당히 많다.  농촌이 붕괴되고 대도시 곳곳에 빈민촌이 만들어 지면서 그 시기에 '달동네'와 '빨리빨리'라는 말이 나왔다.  농촌에서 올라와 산중턱이나 정상 쪽에 판잣집을 짓고 살면서 달을 보며 집을 나와 달을 보면서 귀가를 했다는 뜻에서 '달동네'라는 말이 생겼고, 공장장이나 사장의 '목표량을 빨리빨리 채우라'는 다그침에 '빨리빨리'라는 말이 생겨났다.

 

 

 

 전태일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시절은 그시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듯 유복하지 않았다.  재봉일을 하시던 아버지를 보고 자랐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는 가족을 풍지박살나게 만들었고, 먹고 살기 위해서 산업화 시대에 밑바닥을 떠돌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온 그는 평화시장의 미싱사가 되어 하루 14시간 이상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던 어린 동료들을 보며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전태일은 우리나라에도 근로 기준법이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에게 듣게된다.   제대로 학교를 나오지 않았던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읽기 위해 노력했고, 사업주와 관리들이 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근로기준법은 1953년에 제정된 후 모두 11차례 개정되었고, 1997년에는 그때까지의 법률을 모두 폐지한 뒤 새로 제정해 2010년까지 모두 22차례 개정되었다.  전태일이 활동하던 때와 오늘날의 근로 기준법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전태일은 어떤 사업주나 노동자들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근로 기준법을 수없이 읽으면서 각각의 조항과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실상을 비교하게 된다. 그당시 평화시장 노동자들은 1일 평균 13~16시간, 1주일에 78시간~96시간을 일을 했다. 유해 위험 작업에 대한 규정은 모두 무시되어서 대부분 신경성 소화불량, 만성 위장병, 류머티즘, 폐병을 앓았고, 작업장에 환기 장치가 없고 휴식 시간인 오후 1~2시에도 햇빛을 받을 장소가 없었으며, 평화시장 400여 공장 중 상수도가 나오는 곳은 고작 3곳이었다고 하니 노동여건이 얼마나 열악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주위 노동자들에게 근로 기준법을 알려 주던 전태일은 업주들로부터 위험 인물로 낙인 찍혀 직장에서 해고당하게 된다. 그가 만든 '바보회'는 자신들의 요구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상징적인 뜻으로 붙인 이름이었다. 이 바보회는 후에 평화시장,동화시장,통일상가에서 일하는 재단사들의 모임이라는 뜻에 '삼동친목회'로 거듭나게 된다.  그곳을 통해서 '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 근로 개선 진정서'를 만들어 1970년 경향신문에 기사가 실리게된다.  경향신문에 실리면서 제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박정희로 인해 노동청과 업주들은 한동안 궁지에 몰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눈가리고 아옹처럼 그 시기가 지나도 근로조건이 개선되어지지는 않았다. 

 

 크게 좌절한 전태일은 1970년 11월 13일 시위에서 있으나마나 한 근로 기준법을 불태워 버리자고 제안한 후 동료들의 눈을 피해 자기 몸에 기름을 붓고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자살을 하기에 이르른다.  그의 극단적인 선택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옳다고 할수는 없다. 하지만 그와 같은 절박한 처지를 호소한 행위임에 틀림이 없다.  그 뒤 노동 운동과 인권 운동에 매우 큰 영향을 주어 대중들을 일깨우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재야 운동가 장기표가 쓴 글 '가장 인간적인 사람들의 가장 비범한 삶'중에 전태일에 관한 글이 있다.  "전태일은 학교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어도 사물을 정확하게 통찰하는 명석함을 지녔을 뿐 아니라 그의 사상과 행적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문장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인간의 명석함이란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기보다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얻어지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인간에 대한 사랑, 동료에 대한 사랑이 아직도 우리가 전태일을 기억해야만하는 이유일 것이다.



d****2 2013.01.20. 신고 공감 3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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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의 노동운동 / 경제개발이냐, 인권존중이야냐,
"전태일의 노동운동 / 경제개발이냐, 인권존중이야냐," 내용보기
전태일의 노동운동 / 경제개발이냐, 인권존중이냐 ?       산업혁명이후 고도의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노동자와 자본가는 첨예한 대립을 하게된다 싼임금의 고소득 창출이냐,  일한만큼의 정당한 댓가와 인권 보호이냐....   세계 최초로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영국에서도 겪었던 일이고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친 후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기위해 발버둥쳤던 196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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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의 노동운동 / 경제개발이냐, 인권존중이냐 ?

 

 

 

산업혁명이후 고도의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노동자와 자본가는 첨예한 대립을 하게된다

싼임금의 고소득 창출이냐,  일한만큼의 정당한 댓가와 인권 보호이냐....

 

세계 최초로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영국에서도 겪었던 일이고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친 후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기위해 발버둥쳤던 1960년대 ,7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졌던 일들로 그건 민주화가 정착된  현재까지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자본주의 문제점이 되고 있다

 

 

 

 

 

 

자음과 모음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58권, 왜 전태일은 바보회를 만들었을까 ? 에서는

청계천 봉제공장  재단사였던 전태일의 모습을 통해 경제개발 과정에서 희생해야만 했던

노동자들의 실체를 보여줌으로써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역사를 살펴게된다

 

 

1945년 8.15 해방과 동시에 미군정 시작 , 그 후 제주도 43사건과  6 25 전쟁을 겪으며

대한민국은 더욱 피폐해질 수 밖에 없었다. 하여 1953년 휴전이후부터 우리나라는 고픈 배를

채워야만 했기에 모든것에 우선하여 경제개발이 최우선 과제가 될 수 밖에없었더,

 

이승만정권과  잠시 들어섰던 민주화정권에서도 추진되었던 경제개발 계획은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제3공화국에 들어서며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그렇게 1962년부터 1981년까지20년에 걸쳐 진행이되면서 

한강의 기적이라 일컫는 경제성장을 이룩하기에 이르지만 또한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있는  정권유착과  근로자의 인권파괴의 시초가 되기도 했다.

 

 
 

 

 

평화시장이 들어선 청계천의 역사는 ?

 

청계천은 서울의 서쪽에 동쪽으로 흘러 한강과 연결되는 약 11km의 하천이었다.

조선시대엔 개울물이 하르는 냇가라는 뜻으로 개천으로 불리웟다가 일제 강점기부터

청계천이라 불리우기 시작했다라고 한다.

 

조선의 역사를 들춰보면  수표교를 비롯한 정비작업을 살펴볼 수 가 있는데

6,25전쟁 후 북에서 이주해온 실향민들과 먹고 살길을 찾아 각지에서 상경한

사람들이 몰려들며 판잣집과 천막촌이 형성되기에 이른다.

 

오염이 심한 청계천을 덮으며 새로이 생겨난 공터에 들어선것이 평화시장이었다.

  

 

 

 

1948년에 출생한 전태일은 왜 노동운등을 하게되었을까 ?

 

전국 의류시장의 90%를 차지할만큼 성장한 평화시장은 의류의 메카로 자리잡기에 이른다.

그렇게 나라도 자본가도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던 시절, 누군가는 희생해야만 했으니

그들이 바로 봉제공장의 미싱사와 재단사들이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진실을 모르고,  알고 있던 사람들은 외면하고 있는 사이

햇빛조차 들지 않고 허리조차 펼수없는 다락방에서 하루 16시간씩 미싱을 돌리지만

고작 손에쥐는 월급이라고는 교통비와 용돈수준이었던 사람들....

 

책은 그렇게 청계천과 평화시장의 역사와 더불어 왜 노동운동을 해야만 했는지에

대한 당시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들려주고 있다.  


 

 

 

 

 

바보회를 만들고, 자본가와의 대화를 요청하고 언론사를 통해 사실을 알리었지만

경제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국가주의에 밀려 노동청과 자본가들로부터 번번히 베신을

당하던  1970년11월 13일 전태일은 결국 분신자살이라는 극단의 방법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그런 그의 죽음은 수많은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기틀이 되었으니

고귀한 희생이라 말할 수 있겠다.

 

 

책은 그렇게 산업화 과정에서 경제개발에 가려 희생해야만 했던 노동자의 인권존중에 대해

구체적이면서도 신랄하게 다가감으로써  우리나라 근대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있었다,



 



d****0 2013.01.1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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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태일은 바보회를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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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태일은 바보회를 만들었을까? 우리는 지하철을 타면서 그냥 무심코 지났던 지하철역이 있었다. 그러나 그곳이 어느새부터 구로디지털단지라는 역명으로 변환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속에서 묵묵히 쪽방같은 곳에서 아침에 눈뜨고 공장으로 출근을 해지면 쫍은 곳으로 퇴근을 기계처럼 살다 간 사람들의 장소가 퇴색이 되어 멀티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서 노동자들이 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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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태일은 바보회를 만들었을까?

우리는 지하철을 타면서 그냥 무심코 지났던 지하철역이 있었다. 그러나 그곳이 어느새부터 구로디지털단지라는 역명으로 변환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속에서 묵묵히 쪽방같은 곳에서 아침에 눈뜨고 공장으로 출근을 해지면 쫍은 곳으로 퇴근을 기계처럼 살다 간 사람들의 장소가 퇴색이 되어 멀티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서 노동자들이 세운 대한민국을 그렇게 잊어갔다.

청계천 다리를 지나가다보면 청년 전태일 흉상이 있는데 그분의 정신이 이책에서 살아난다.

노동자의 인권을 조명하면서 1960년대 수출 주도형 경제 성장을 추진하여 대한민국은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 등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던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가 자행되고 있었는데 평화시장 재단사였던 전태일은 근로 기준법을 지켜 달라고 정부와 자본가들에게 요구했지만 철저히 무시당했고, 최후의 수단으로 분신자살을 통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던 사건을 계기로 1970년대에만 2,500여 개에 달하는 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오늘날까지 한국 노동운동의 진정한 출발점으로 인식되고 있을 정도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한동안 잊고 쌍용자통차 사건등을 통해 잊었던 생각을 다시금 정리하는 책이다.

왜 전태일은 바보회를 만들었을까?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과 노동 운동의 발달에 대해서 알아보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을 기계처럼 부리고 22세 꽃다운 청년을 불속으로 뛰어들게 만들었던 이름없는 노동자들과 주변의 자본가들의 대립을 보면서 그들이 외첬던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현재보면 당연한 것들을 그당시는 그것이 그들의 권리를 무시하는 권력들을 사용한것을 보면 아직 우리나라의 발전은 힘들었던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사의 뒤편에 있는 근현사속에 전태일의 이야기는 어찌 보여주는지를 구석구석 설명을 해주면서 교과서 속과 연관을 짓고 마지막으로 자본과와 전태일의 판결을 보면 자본가가 패소하면서 피고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것을 도적적 윤리적잘못이라고 하면서 노동운동과 인권운동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대중을 일깨주고 몇해전 전태일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기사를 접한것이 생각나서 더욱더 근현대사를 슬플게 읽었다.

j********1 2013.01.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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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태일은 바보회를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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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태일은 바보회를 만들었을까? 이정범 글 / 이일선 그림 (주)자음과 모음 펴냄 1960년대 4.19 혁명이 일어나고 나서 우리 나라는 정부의 독재와 부정부패에 반대하는 등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해주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면서 경제 발전에 신경을 쓰게되고 국민들 모두는 잘살고 싶은 미래를 꿈꾸면서 더욱 열심히 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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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태일은 바보회를 만들었을까?

이정범 글 / 이일선 그림

(주)자음과 모음 펴냄

1960년대 4.19 혁명이 일어나고 나서 우리 나라는 정부의 독재와 부정부패에

반대하는 등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해주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면서 경제 발전에 신경을 쓰게되고

국민들 모두는 잘살고 싶은 미래를 꿈꾸면서 더욱 열심히 일합니다.

그런데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던 전태일은 같이 일하던 동료들을 보면서

깜짝 놀랩니다. 하루 14시간 이상 혹독한 노동을 하고 코피까지 쏟아가면서

일하는 그들에게 우리 나라에 근로기준법이 있다는 사실과 사업주나 관리들이

그 법대로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근로 기준법을 지켜달라면서 자본가들에게

요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습니다.

그당시 박정희 대통령도 헌법을 고쳐서 다시 대통령이 되려고 했기 때문에

이런 사건들이 신경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전태일은 언론에도 알리고 여기저기 호소 했지만 그 당시 우리 나라에서는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저 널리 알려지는 것으로 끝나버렸지요

전태일은 스물두살의 나이에 근로기준법과 함께 분신 자살을 했습니다.

아이들과 청계천에서 전태일 동상과 전태일 다리를 걸으면서

역사 시간에 배운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는데요 이 책을 보니 다시

그때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 아이들이라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요?

전태일의 용기때문에 그 뒤로 경제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지금의 우리가 이렇게 나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도 그때 전태일이

해주지 않았다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공화국 한국사 법정 시리즈..

정말 많은 생각과 다른 생각을 안겨주는 그런 책인것 같아서 늘 기대만땅입니다.

 

YES마니아 : 로얄 y*****0 2013.01.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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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VS전태일, 우리나라 노동 운동에 불씨가 되어 준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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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상영이 끝난 후 모든 관객이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그 중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1995년 상영되었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상영된 극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면서 [근로 기준법] 책과 함께 분신자살로 스물두 살의 짧은 생애를 마친 전태일의 삶을 다루었던 이 영화는 그 시기의 젊은 대중들을 일깨워주었다. <<왜 전태일은 바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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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상영이 끝난 후 모든 관객이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그 중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1995년 상영되었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상영된 극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면서 [근로 기준법] 책과 함께 분신자살로 스물두 살의 짧은 생애를 마친 전태일의 삶을 다루었던 이 영화는 그 시기의 젊은 대중들을 일깨워주었다.

<<왜 전태일은 바보회를 만들었을까?>>를 읽는 동안 오랜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를 통해 받았던 벅찬 감동이 다시 되살아났다.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은 교과서 역사적 사건 속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경쟁구조의 인물을 원고와 피고로 법정에 세워 서로의 주장을 들어보는 독특한 형식의 역사책이다. 이 구성은 역사를 다양한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넓혀줄 뿐만 아니라, 역사를 바라보는 주체적인 세계관을 길러 준다.

이 시리즈는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통해 초,중,고 사회 및 역사 교과서의 주제별 분석에 따른 핵심 내용을 정리하여 교과서 속 역사 지식은 물론, 주요 역사 사건의 논리적 서술을 통한 역사 논술에 대비할 수 있는 구성으로 역사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주는데 도움을 준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독자는 58번째 이야기 <<왜 전태일은 바보회를 만들었을까?>>를 통해 1960년대 후반을 시작으로 1970년대 경제 성장과 노동 운동에 대해서 알아보게 된다. 눈부신 경제 발전으로 '산업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개발 독재의 시기'라는 또다른 이름을 남겼다. 5.16 군사 정변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이 위기를 맞이했던 그 시절, 경제 성장 속에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했던 경제 성장의 또 다른 모습이 전태일과 자본가의 법정 공방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동대문 시장에서 의류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사업을 했던 원고 자본가는 전태일이 공장의 직원들을 선동하여 시위를 벌이고 자신과 같은 사업가들을 천하의 나쁜 사람으로 몰아간 것에 대해 정신적, 경제적인 손실을 보상받고자 소송을 제기하게 된다.

이에 재판 첫째 날은 평화시장 노동자였던 전태일의 성장 과정과 불우한 환경 그리고 평화시장의 보조로 취직할 때까지의 과정을 통해서 경제 발전의 이면에 드리워진 서민들의 삶을 전태일과 그 외 증인들을 통해서 알아본다.

둘째 날은 전태일이 노동 운동을 하게 된 경위를 살펴보면서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실상을 엿본다. 평화시장이 들어선 뒤로 전국 규모의 의류 시장으로 성장하게 된 동대문과 청게천 주변의 봉제 공장 업주들은 큰 부자가 되었으나, 여공들은 좁은 공간에서 허리를 펴고 걸어다닐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열악한 환경 속에서 눈병, 기관지염, 빈혈, 신경통, 위장병 등에 시달리며 주문이 많을 때는 잠 안 오는 약을 강제로 먹어가며 비참하고 끔찍한 생활을 했다.

피고 전태일은 평화시장에서 약 2년 동안 일하면서 여공들이 매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후 아버지로부터 근로 기준법이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되면서 바보회를 결성하게 된다. 이 과정 속에 노동자들의 힘겨운 삶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된다. 이어 셋째 날은 전태일이 근로 기준법을 불태울 수 밖에 없었던 그 시대상을 살펴 볼 수 있다.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다가 그 자리에 쓰려졌습니다. 근로 기준법 화형식과 함께 스스로 노동 운동의 불씨가 되었던 것입니다. (본문 130p)

 

<<왜 전태일은 바보회를 만들었을까?>>는 경제 발전 속 자본가와 노동자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경제 발전 정책을 충실하게 실천하고,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근로자들과 그 가족들의 생계를 도왔다는 자본가와 근로 기준법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했던 자본가, 정부의 관료들, 노동환경에 무심했던 언론을 상대로 노동 현장에서 고생하며 일한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웠다는 전태일 두 사람의 법정 싸움에서 자본주의가 만든 노예계급, 자본주의의 병폐 등을 생각하며 과연 경제 발전을 이룩해야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노동자의 죽음은 이름이 없다. 그러나 전태일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였고 평생을 주린 창자가 차도록 밥 한 끼 포식해 본 일이 드물었으며 죽을 때까지도 무허가 판자촌에서 살았지만, 비록 그를 아무도 알아 주지 아니하고 누구에게도 존경을 받아 보지 못하고 이름 없이 살아온 핫빠지 인생이었지만,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외치며 죽어간 그의 죽음만은 세상에 알려졌고, 세상에 충격을 주었고, 마침내 얼음처럼 시리고 차디찬 현실을 뚫는 불꽃이 되어 하나의 사건으로,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독되게 되었다. 그의 죽음이 세상에 던진 충격, 그의 죽음이 우리 민중의 역사에 끼친 영향은 오늘 이 시점까지도 충분히 측량할 수가 없다." (본문 145,146p)

 

 

<<왜 전태일은 바보회를 만들었을까?>>를 통해 60,70년대 경제 발전 속 사회적, 정치적 상황과 노동 운동에 대해 알아볼 수 있었으며, 아울러 원고 자본가와 피고 전태일의 법정 공방을 통해 역사를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넓힐 수 있었다.

또한 [열려라, 자식 창고][휴정 인터뷰][역사 유물 돋보기][떠나자, 체험 탐방] 등을 통해 흥미롭고 폭넓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으며, [한 걸음 더! 역사 논술]은 논술 대비에 도움을 주는 구성이다. 흥미진진한 법정 공방을 통해 역사를 알아가는 <역사공화국 한국사 법정> 이야기, 역사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주는데 탁월한 구성을 가진 작품이었다.

 

(사진출처: '왜 전태일은 바보회를 만들었을까?' 본문에서 발췌)



s*****2 2013.01.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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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은 바보회를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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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전태일에 대해서 그저 그 시대에 일어난 일..로 기억했어요. 제가 학교에서 전태일을 배울때는 그냥 지나쳤던거 같아요. 시대별로 조금은 다르게 와닿았을..전태일에 대해서 배워볼 수 있는 시간 이였구 솔직히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전태일에 대한 이야길 바로 일어볼 수 있는 시간도 가지고, 이제는 시각도 가지게 되었던거 같아요.   한국사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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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전태일에 대해서 그저 그 시대에 일어난 일..로 기억했어요.

제가 학교에서 전태일을 배울때는 그냥 지나쳤던거 같아요.

시대별로 조금은 다르게 와닿았을..전태일에 대해서 배워볼 수 있는 시간 이였구

솔직히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전태일에 대한 이야길 바로 일어볼 수 있는 시간도 가지고, 이제는 시각도 가지게 되었던거 같아요.

 

한국사 법정은 아이들에게 피고와 원고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고,

요즘은 논술 시대가 아닌 토론 시대여서

이 책을 읽으면서 좀 더 다른 시각에서 바라 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지게 되고,

알게되는거 같아요.

요즘도 노동자의 삶은 정말 힘이 들지요.

전태일이 있었던 1960년대의 노동자의 삶을 들여다 보고,

왜 그가 그런 자살을 할 수 뿐이 없었는지..(분신)

그가 이야기 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도 볼 수 있었답니다.

 

22살의 나이..

어떻게 보면 정말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꽃같은 나이이테고요.

그리고,

그런 나이에 죽음을 선택할 수  뿐이 없었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는데요.

물론 그 시대는 지금과 다른 화폐기준이 있었겠지만 하루에 14시간 이상 일을 해서 50원을 받았다고 하니..

그리고, 노동자의 삶은 일요일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고 합니다.

노동자는 월급을 받고 일을 하고,

기업가는 기업을 만들어 일거리를 제공하지요. 물론 그 시대는 우리가 알다싶이 먹고 살기가 정말 힘든 시기였고,

그랬기 때문에 힘이 들었지만, 그러나 그들에게도 인권이 있었는데 이게 철저히 무시 되었으니 그들의 삶은 정말 고단하였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바로 몇십년전의 일이라고 생각하니 마음도 아프더라고요.

 

이 책을 통해서 원고,피고의 이야기를 읽어보고,

법정에서 진술하듯 쓰여있는 내용 속에서 그 시대를 알고, 진실을 규명하는데 함께 한 듯 했습니다.

 

 

y***s 2013.01.2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왜 전태일은 바보회를 만들었을까? : 자본가 VS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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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태일은 바보회를 만들었을까? : 자본가 VS 전태일 * 저 : 이정범* 그림 : 이일선* 출판사 : 자음과모음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이의 마음은 어떨까요?얼마나 간절하기에 이토록 아까운 나이에 죽음을 선택했을까요?보는 사람도 또 당사자도 얼마나 힘들었을지...여기 약 50여년 전에 20대 초 꽃다운 나이에 분신자살을 선택한 청년 전태일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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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태일은 바보회를 만들었을까? : 자본가 VS 전태일


* 저 : 이정범
* 그림 : 이일선
* 출판사 : 자음과모음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이의 마음은 어떨까요?
얼마나 간절하기에 이토록 아까운 나이에 죽음을 선택했을까요?
보는 사람도 또 당사자도 얼마나 힘들었을지...
여기 약 50여년 전에 20대 초 꽃다운 나이에 분신자살을 선택한 청년 전태일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마 모르는 사람은 없을거에요.
하지만 정확히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지 그 배경이나 사회의 모습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따로 공부하지 않은 이상은 많지 않을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저도 학교 다닐때 배운 내용이 거의 다니까요.
노동자의 삶을 위해서, 인권을 위해서 선택을 했던 전태일.
그 속사정을 한국사 법정을 통해서 낱낱히 알아볼 수 있을거에요.




원고가 전태일일줄 알았으나 피고였다는 사실부터 반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960년대의 시대 상황.
어린 친구들을 값싸게 임금을 주고 하루종일 일을 시키는 것도 모자라 잠을 못자게하면서까지 일을 시켰던 공장들.
지금도 달동네라 부르는 명칭이 이때 시작되었고 동대문 평화시장이 예전엔 이랬구나~ 많은 생각이 났습니다.
가난한 삶 때문에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부산도 살아보고 서울에서도 살게 되었드랬죠.
집도 떠나보고 어린 나이에 많은 고생을 하고 결국 서울에 정착, 미싱 보조사부터 해서 미싱사, 재단 보조사, 재단사가 됩니다.
그 덕분에 가족이 모여살게 되는 계기도 되죠.
하지만 공장에서 일하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게 됩니다.
아버지에 의해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 알게 되었거든요.
그리고 이전의 삶과 다른 또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바보회를 만들고 삼동회를 만듭니다.
덕분에 회사에서 쫒겨나고 주변의 자본가들에게는 일명 찍히게 되죠.
하지만 노동자의 인권 개선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갑니다.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이 말은 그가 자신의 몸을 불태우면서 끝까지 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22살의 어린 나이에 그는 이렇게 싸우다 갔습니다.



책 속에는 교과내용과 어떻게 본문이 연결되는지 아래처럼 설명이 되어 나와요.
중고등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내용들이지요.



하루 16시간...
하루는 24시간인데 잠도 자야 하는데 이렇게 일을 하면 거의... 몸이 못 버팁니다.
어린 친구들이 이런 긴 시간과 고강도의 일을 하니 피를 토하고 폐렴에 걸리고 그리고 쫒겨나는 상황들이 이어지던 것입니다.
졸려하는 몸을 억지로 자지 않게 하여 일을 하게 한 주인들.
아무리 산업 발전이 우선이라고 하지만 사람이 우선인 시대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책 속의 열려라, 지식 창고를 통해서 예전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 볼수 있습니다.
청계천 이야기 외에도 이 책에 많은 지식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요.



시대의 흐름 속에 이렇게 경제발전이 이루어지는 시기.
많은 사람들의 희생들이 있었습니다.
저희 엄마도 제가 어릴때 미싱일을 해서 책 속의 몇가지 상황들은 눈에 그려졌습니다.
좁디 좁은 곳에서 하루 종일 쭈구리고 일을 하는게 많이 힘들거든요.
자본가의 입장에서와 노동자의 입장이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던 공방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리고 자신을 희생한 사람으로 인해서 그 후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게 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합니다.
취업난 때문에 값싸게 노동력을 이용하려는 나쁜 주인들도 있더라구요.



노동자로서 노동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인권을 위해 싸운 전태일.
그를 비롯한 많은 분들 덕분에 근로자의 한 사람으로 저도 많은 권리를 누리며 생활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판결은,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대로 흘러갔음을 알려드립니다^^

 

r*****8 2013.01.2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1960년대 사회상을 알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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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화국 / 왜 전태일은 바보회를 만들었을까? / 근로기준법    1960대를 대표하는 사건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전태일 사건이 아닐까 합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의 죽음은 남아 있는 이들에게 숙제를 남겼고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기에 우리는 실질적인 근로기준법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기도 하고요.   근로기준법.. 사실 근로기준법이 만들어지기는 오래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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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화국 / 왜 전태일은 바보회를 만들었을까? / 근로기준법 

 

1960대를 대표하는 사건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전태일 사건이 아닐까 합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의 죽음은 남아 있는 이들에게 숙제를 남겼고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기에 우리는 실질적인 근로기준법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기도 하고요.

 

근로기준법..

사실 근로기준법이 만들어지기는 오래 되었지만

1960대 근로자들은 이것에 대해 알지도 못했고 이를 지키려는 자본가들도 없었답니다.

때문에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에 의해 고된 노동을 강요받았고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고통을 받아야 했지요.

 

피고 전태일은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을 했고

가난으로 인해 가족과 떨어지는 아픔도 여러 차례 겪어야했습니다.

재단사가 되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을 했고

노력 끝에 평화시장 재단사가 되었지요.

 

하지만 그의 눈에 들어 온 것은 자신과 함께 일하는 여공들의 모습이었는데요,

13-16시간 일을 하고, 허리조차 펼 수 없는 환경과

때로는 잠을 쫒는 약까지 먹어가며 노동을 강요당했습니다.

이렇게 일한 이들은 각종 질병에 걸렸고,

결국은 평화시장에서 쫓겨나거나 그동안 번 돈으로 병을 치료해야 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해야했지요.

 

이런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전태일에게 아버지는 ‘근로기준법’에 대해 알려줍니다.

전태일은 어려운 한자로 되어 있는 근로기준법을 공부하면서

자신들이 얼마나 자본가들에 의해 혹사당하고 있는지 알게 되고

이것을 알리기 위해 ‘바보회’와 ‘삼동친목회’를 만들어

자본가, 노동청관리, 언론에 알리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이들의 회유와 배신...

 

반복되는 좌절을 통해 전태일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처음부터 노동자의 요구를 들어 줄 생각이 없었던 정부를 상태로

전태일은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되는데요

시위를 앞 둔 평화시장 3층에서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부처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쓰러지지요.

 

시대적 상황을 보면 1960년대는 수출 주도형 경제성장을 추진하고 있었고

산업화를 위해 노동자들의 인권이나 복지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자본가와 정치는 밀착되어 있었고, 거기에 노동자가 설 자리는 없었지요.

 

산업화의 주된 노동을 제공했던 노동자들은 최하의 대접과 생활을 하며 노동을 강요당했지만

이것을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고

그래서 청년 전태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알리려고 해 보았고

그것이 실패하자 분신자살이라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태일 사건으로 인해 많은 경제적 피해를 보았다는 자본가와 전태일과의 법정 공방은

전태일을 상대로 한 자본가의 소송을 기각하는 것으로 끝이 났는데요,

이러한 법정 싸움을 통해 우리는 1960대 사회상과 노동자들의 근무형태는 물론

그로 인해 우리의 노동시장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h******2 2013.01.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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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태일은 바보회를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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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일을 함에 있어서 근로 기준법에 근거해서 노동의 댓가를 받아야 함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힘들게 일하는 분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옛날에는 어떠했을까요? 근로 기준법을 알지도 못했을 뿐더러 근로 기준법을 가지고 도움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4.19 혁명으로 민주주의를 맡보게 되기는 했지만 다시 5.16 군사 정변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은 다시 위기를 맞았습니다.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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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일을 함에 있어서 근로 기준법에 근거해서 노동의 댓가를 받아야 함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힘들게 일하는 분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옛날에는 어떠했을까요? 근로 기준법을 알지도 못했을 뿐더러 근로 기준법을 가지고 도움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4.19 혁명으로 민주주의를 맡보게 되기는 했지만 다시 5.16 군사 정변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은 다시 위기를 맞았습니다. 세계 최하위의 한국 경제속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 내기도 했지만 당시 노동자들은 하루 종일 공장에 틀어박혀 열심히 일만 해야 했습니다.

 

 

대구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전태일은 아버지에게 배운 재봉 기술로 청계천 평화시장의 피복점 보조로 일하게 되었고, 재단사가 되기까지 하루 14시간 이상 노동에 시달리던 동료들을 보면서 최소한의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는 노동자의 현실에 분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근로 기준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바보회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사업주나 관리들이 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충격을 받았으며, 근로 기준법을 지켜달라고 요구했지만 그의 말은 무시당하고 말았습니다. 얼마전 전태일의 어머니께서 먼곳에 있는 전태일을 만나기 위해서 눈을 감으셨습니다. 잊혀지지 않는 전태일의 죽음은 노동자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을 것입니다. 근로 기준법 책과 함께 분신자살해 스물두 살의 삶을 스스로 마감했던 그의 짧은 생에 대해서 알아 보기로 합니다. '왜 전태일은 바보회를 만들었을까?'를 통해서 전태일 뿐만 아니라 그 시대에 노동자들의 상황을 들여다 볼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았습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교과서의 주제별 분석을 보여주고 있고, 핵심 내용을 정리하고 있어서 아이들이 이해하기에 충분한것 같습니다. 역사 지식을 넓힐 수 있고,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다양한 증인들로 부터 듣게 되면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변화를 줄것 같네요. '왜 전태일은 바보회를 만들었을까?'를 보면서 경제 성장 뒤에 아픈 현실을 느끼면서 아이들의 가슴도, 저의 가슴도 시리게 만드는것 같습니다.

 

k*****7 2013.01.1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왜 전태일은 바보회를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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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부탁합니다. 만화 전태일 책을 좀 빌려다 달라고. 그래서 학교에서 만화 전태일 책을 빌려다 줬습니다. 전에도 읽었었는데... 이번에 읽더니 아이가 노트 한 권에다 근로기준법 사전이라는 제목을 써서 붙여놨습니다. '근로기준법'이라면 말 그대로 법인데 아이가 왜 법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공책에 들어 있는 내용이 자못 궁금했습니다. 살짝 열어보니 부지런할 근, 일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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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부탁합니다. 만화 전태일 책을 좀 빌려다 달라고.

그래서 학교에서 만화 전태일 책을 빌려다 줬습니다. 전에도 읽었었는데... 이번에 읽더니 아이가 노트 한 권에다 근로기준법 사전이라는 제목을 써서 붙여놨습니다. '근로기준법'이라면 말 그대로 법인데 아이가 왜 법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공책에 들어 있는 내용이 자못 궁금했습니다.

살짝 열어보니 부지런할 근, 일할 로, 사물의 기본이 되는 기준,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규칙, 법 법 등 한자어와 하루 최대 8시간, 사업주는 근로자를 맘대로 해고할 수 없다는 내용을 적어 놓았습니다.

 

이번에 자음과 모음에서 <왜 전태일은 바보회를 만들었을까?>가 나와 아이와 나는 다시 한번 근로기준법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읽어보았습니다.

 

이 책은 한국사를 다루는 방식이 독특해서 참 흥미롭습니다.

역사를 법의 심판대에 올려 다시금 조명해 봅니다. 이번에 법정에 서게 된 역사적 내용은 사업주를 대표하는 자본가와 근로자를 대표하는 전태일, 근로기준법, 그리고 경제 발전에 혹사당했던 많은 누나들, 6~70년대 우리나라 상황들입니다.

 

원고 자본가는 전태일을 고발합니다. 소장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우리 자본가들은 근로자들의 생계를 위해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주었으며, 국가 경제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한 죄밖에 없는데 전태일 등은 우리를 악덕 업주, 악덕 자본가라고 손가락질했으며 끝내 분신자살을 하여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에 따라 나는 당시의 자본가들을 대표하여 전태일로부터 입었던 정신적·경제적인 손실을 보상하고자 소송을 제기합니다.'

 

6~70년대는 우리나라가 전쟁의 폐허속에서 경제적으로 성장해보자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산업사회로의 도약을 선결과제로 추구하던 때였습니다. 당시 중소기업은 노동집약적인 섬유, 가발, 봉제등이 성하였습니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서, 동생들의 학비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누이들이 어린 나이에 학업도 포기한 채, 산업 현장에서 일을 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상황이 열악했을 줄은 몰랐습니다. 당시 전태일이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에서 근로 환경을 고발한 내용에 의하면, 2만 명이 넘는 직원의 90% 이상인 봉제공의 평균 나이가 18세이며 하루 근무시간은 15시간이고, 시다공의 평균 연령은 15세이며 하루 16시간을 일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보니 어린 나이에 안질, 신경통, 위장병, 폐결핵등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전태일은 우연히 '근로기준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중퇴였던 실력으로 이 책을 읽기란 버거웠지만, 그는 이 책을 통해 근로자들에게도 권리가 있으며 이는 법으로 보장이 되어 있고, 마땅히 누려야 함을 알았습니다. 전태일은 이 열악한 근로 환경을 개선해 보고자 했습니다. 법에 나와 있는대로 시정되기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어디에서고 마땅히, 당연히 지켜져야 할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입니다. 자본가들도, 그들을 감시해야 할 관리들도 상호간에 묵인해버렸습니다. 그 사이에서 나이어린 근로자들만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태일은 모든 것이 요구대로 개선되지 않자, '바보회', '삼동친목회'를 조직하고 근로조건개선 시위를 도모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근로기준법이 있으나 형식적이며, 감독기관도 전혀 이를 지키려 하지 않자, 더욱 비애를 느끼고 죽음을 택하였습니다. 그는 22세의 젊은 나이에 사회의 비정함과 무관심, 미래가 없는 삶에 대한 회의를 느끼며, 이 사회에서 형식에 불과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갖고 자신도 그 불에 함께 타들어가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가 귀에 들리는 듯 합니다. 정말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경제 개발과 산업 발전이라는 명목 뒤에서 묵살되었던 인권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전태일 사건'은 1970년대의 노동 운동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조영래가 쓴 '전태일 평전'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노동자의 죽음은 이름이 없다. 그러나 전태일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였고 평생을 주린 창자가 차도록 밥 한 끼 포식해 본 일이 드물었으며 죽을 때까지도 무허가 판자촌에서 살았지만, 비록 그를 아무도 알아 주지 아니하고 누구에게도 존경을 받아 보지 못하고 이름없이 살아온 핫빠리 인생이었지만,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외치며 죽어간 그의 죽음만은 세상에 알려졌고, 세상에 충격을 주었고, 마침내 얼음처럼 시리고 차디찬 현실을 뚫는 불꽃이 되어 하나의 사건으로,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되게 되었다. 그의 죽음이 세상에 던진 충격, 그의 죽음이 우리 민중의 역사에 끼친 영향은 오늘 이 시점까지도 충분히 측량할 수가 없다.'(145, 146쪽)

 

이번 판결은 원고의 주장을 기각하는 걸로 내려졌습니다. 경제성장, 나라 발전도 인간의 권리보다 우선하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는 판결이였습니다.

 

아이 데리고 이번 방학이 가기 전에 청계천에 있는 전태일 다리, 동상을 한번 보러 가야겠습니다.

l*****2 2013.01.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