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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상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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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건 상대적으로 자신의 죽음만큼은 아직 저만치 멀기만 하다는 강한 믿음이 있기 때문일 터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나 막상 자신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말할라치면 사정은 180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두려운 것이다. 아무리 담담한 척해본들 결코 무덤덤해질 리 없다. 그렇게 된 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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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건 상대적으로 자신의 죽음만큼은 아직 저만치 멀기만 하다는 강한 믿음이 있기 때문일 터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나 막상 자신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말할라치면 사정은 180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두려운 것이다. 아무리 담담한 척해본들 결코 무덤덤해질 리 없다. 그렇게 된 데에는 삶과 죽음이 철저히 분리된 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죽음과 삶이 한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던 과거와는 달리 현대인의 죽음은 병원이라는 한정된 공간 내에서 삶과 분리된 채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늘 있는 일이고 자신도 언젠가는 겪을 일이지만 현대인에게 죽음은 익숙하지도, 그렇다고 가깝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또 의식이 없는 환자를 대신하여 가족들이 '사전 동의서'라는 형식으로 내리는 의사결정은 어떤 결론이건 가족이나 의료진에게 후회와 죄의식을 남겼다. 연명치료를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나 이미 시작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도, 연명치료를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에 비해 중간에 멈추는 걸 용납하기가 훨씬 어려워지는 등 사전의사결정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 기준도 모호했다." (p.6)

 

의학의 발달과 의학에 대한 과도한 믿음으로 인해 현대인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와 의미를 까맣게 잊어버리곤 한다. 그러므로 나이를 먹고 노화가 진행될수록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죽음의 실체는 과거 우리의 선조들에 비해 훨씬 큰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차가운 의료장비와 낯선 의료진들만 가득한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맞는다는 건...

 

19년 동안 신경외과 중환자실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던 경험을 책으로 엮은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의 저자 김형숙은 우리에게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첫 직장인 대학병원 중환자실이 '의외로 나에게 잘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는 저자는 세월이 흐를수록 고통스러웠고, 결국 병원을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뇌·척추 질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그들의 팔다리에 통증을 가하는 일'이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가 어려서부터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키워왔던 건 아니다. 1장 자연스러웠던 죽음을 추억하다'에서 저자는 산골 출신인 저자가 무덤가에서 놀며 위로받고,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던 자신의 어릴 적 추억을 회상한다. 2장 '중환자가 된다는 것, 나에 대한 결정에서 배제되는 것'에서 저자는 중환자실에 들어간다는 것을 '고립·소외·침묵·분노·공포·배제'로 요약한다. 그리고 3장 '중환자실에서 죽는다는 것, 이별하기 어렵다는 것'에서 환자가 과도한 연명치료와 사랑하는 가족으로부터 격리된 생활로 인해 스스로의 죽음에서 '배제'되고 아름답게 죽을 권리를 박탈당하는 현실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드러낸다. 어쩌면 우리는 끊을 수 없는 미련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더 큰 고통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건 아닌지...

 

저자는 이 책의 4장 '죽음 이후, 당신이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을 때 생길 수 있는 일'을 꼼꼼히 되짚으며 5장 '다른 가능성들'을 제시한다. 그것은 결국 '사전 의료 지시서' 제도로 이어진다. 병원에서의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서면으로나마 연명 치료 여부를 미리 결정하고, 심폐소생술 여부, 시신 처리 방법 등에 관한 구체적인 의사를 남겨 우리가 응급상황에 처했을 때 의료진과 가족에게 전달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전 의료 지시서' 제도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아직 이 제도의 법적 효력이 없다. 사전 의료 지시서를 작성했다고 하더라도 현실에서는 보호자의 의사, 의료진의 의사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연명치료나 소생술을 시행하지 않는 것은 환자를 포기하고 죽음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환자의 치료를 중단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면서 가능한 한 환자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마지막에는 환자 내부의 힘, 혹은 하늘의 뜻에 맡기며 기다렸다. 그때까지 유지하던 치료를 지속할지 중단할지 결단하지 않고도 남은 날들이 환자나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 결과 환자가 스스로 회복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p.245)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의 책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의 자기 보존을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로봇기계이며, 유전적 본성에 따라 먹고, 살고, 사랑하면서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존재라고 썼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하찮은 존재로 이 세상에 왔다 가는 건 결코 아니라고 믿는다. 그와 같은 믿음을 지켜주는 것,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는 것은 순전히 한 인간의 마지막 모습이 아름다운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 있지 않을까. '당신은 오늘 죽음을 상상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만이 당신이 마지막까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s*****l 2018.11.11.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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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 간호사가 지켜본 수많은 삶의 마지막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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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소리]에서 ‘죽음’을 주제로 한 책을 잇달아 소개하는 것이 마음에 쓰이기는 합니다. 책읽기에도 우연이란 것이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제가 ‘죽음’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은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들어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버리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는 있습니다. 그래도 ‘죽음’처럼 오랫동안 입에 올리기를 꺼려하는 금기어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주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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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소리]에서 ‘죽음’을 주제로 한 책을 잇달아 소개하는 것이 마음에 쓰이기는 합니다. 책읽기에도 우연이란 것이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제가 ‘죽음’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은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들어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버리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는 있습니다. 그래도 ‘죽음’처럼 오랫동안 입에 올리기를 꺼려하는 금기어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주 소개하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지난주에 소개한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http://blog.yes24.com/document/8791706>이, 작가 자신의 가족과 지인들, 그리고 그가 알고 있는 예술가들의 죽음에 관한 일화를 통하여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한 사색을 담았다고 한다면, 이번 주에 소개하는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은 병원, 특히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의료인이 경험한 죽음들에 얽힌 사연과 그 죽음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병원은 도시에서 대표적으로 죽음이 일어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을 쓴 저자는 저와는 띠동갑이라는 것과 어쩌면 같은 병원에서 잠시 스치듯 일했을지도 모르는 공통점이 있는 듯합니다.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자는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만났던 옛날 방식의 죽음과 사뭇 달라진 요즈음의 죽음을 같이 경험한 특별한 분이라고 하겠습니다. 70년대 말에 의과대학을 졸업한 저 역시 응급실 근무를 하면서 적지 않은 죽음을 만났습니다. 대부분 병원에서 운명하지 않고 죽음에 임박해서는 댁으로 모셔가곤 했습니다. 객사한 주검은 집으로 들이지 않는다는 우리네 전통 때문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병원의 장례식장에서 초상을 치른다는 것이 부담스러우면서도 체면이 서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장례식은 한 집안의 문제가 아니라 온 동네가 나서야 해결되는 마을의 큰 행사였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을 부대끼며 정을 나눠온 이웃을 작별하는 의례일 뿐만 아니라 아무리 대가족이라고 해도 장례절차는 힘에 부치는 일이었기 때문에 서로 도와주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훨씬 많아서 이웃의 힘든 일에 힘을 보태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생각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파트라는 것이 돌아가신 분을 모시고, 문상 온 분들을 대접하고, 출상하는 과정이 불가능한 구조로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이웃에 주검이 누워있다는 사실을 주민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세태의 변화에 맞추어 장례절차를 대행해주는 장례식장 사업이 발전하고, 장례절차를 안내하는 장례지도사라는 전문직종이 생겨나기까지 했습니다. 더욱이 병원에 딸린 장례식장은 예약이 안될 뿐더러, 병원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공간을 내기도 어려워 임종을 앞둔 환자를 병원으로 모시는 해괴한 현상이 생긴 것입니다.


<도심에서 죽는다는 것>은 모두 다섯 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자연스러웠던 죽음을 추억한다’라는 제목의 첫 번째 장에서는 저자가 중환자실 간호사가 되기까지의 삶을 요약하였습니다. 그리고 스물세개의 사연을 각각 ‘중환자가 된다는 것, 나에 대한 결정에서 배제된다는 것’, ‘중환자실에서 죽는다는 것, 이별이 어렵다는 것’, ‘죽음 이후, 당신이 아무 것도 결정하지 않았을 때 생길 수 있는 일’, ‘다른 가능성’ 등의 제목으로 구분하여 중환자실에서 맞는 죽음에 얽힌 문제를 짚고 있습니다.


제1장에서 저자는 자라면서 겪은 죽음들을 되돌아보면서 지금은 우리가 일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죽음들보다 그때의 죽음이 훨씬 인간적이었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그 산마을에서는 어린아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예감하면서 다음을 준비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 그리 이상스런 일만도 아니었다.(22쪽)”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예전의 시골에서는 집안 어른이 죽음을 맞는 과정에 어린아이들을 동참시키지 않는 것이 관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죽음은 언제나 갑자기 통보되고, 엄숙하고 황망한 가운데 치루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죽음이란 특별하지 않았을 뿐더러 일상적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할아버지 그리고 할머니께서 죽음을 준비하신 과정은 저에게도 큰 울림이 되었습니다.


단지 중환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치매 혹은 암과 같이 치명적인 진단이 결정된 경우, 대부분의 의료진과 가족들은 이 사실을 환자에게 알릴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하게 될 것입니다. 병명을 알리지 않는다고 해도 눈치가 빠른 환자들은 치료과정에서 자신의 병명을 유추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는 오히려 환자가 자신이 병명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기에 급급한 웃지 못 할 상황도 생기는 것입니다. 저는 환자에 따라서는 병명을 감추는 것이 옳은 선택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모든 환자들이 스스로 왜 죽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알리는 과정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일단 알리게 되면 치료과정에서 환자의 적극적 참여가 가능해지고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하는 결정도 환자 스스로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제2장 ‘중환자가 된다는 것, 나에 대한 결정에서 배제된다는 것’에서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환자가 고립되고, 소외되고, 배제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공포에 빠지거나, 침묵하거나, 심지어는 분노를 표출하는 경우도 있어 의료진을 힘들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온 가족과 죽음의 과정을 함께 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여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생각에 크게 공감합니다. 공교롭게도 저의 부모님께서는 모두 돌아가시기 전에 뇌졸중으로 입원하셨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뇌출혈로, 어머님께서는 뇌경색으로 각각 입원하셨는데 불행하게도 고비를 넘기지 못하셨습니다. 신경외과를 하는 막내 동생이 주치의를 맡았고, 서울에 살고 있는 나머지 3형제들은 주말마다 내려가 한 주일 동안의 병세도 알아보고 시간을 같이 보냈습니다. 이런 시간들이 그만 이별여행이 되고 말았습니다만, 두 분 모두 퇴원이 힘들 수도 있다고 예감하셨던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는 희망을 불어넣어드리려고 힘을 썼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예감대로 되고 말았던 것 입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늘 죽음 자체보다는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고통이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홀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인사도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게 되는 상황을 더 두려워한다.(34쪽)”라고 적은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였습니다. 지난 해에는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셨는데, 오랜 투병 끝에 임종에 가까워지면서 중환자실 입실을 권유받았습니다. 그때 가족들은 의논 끝에 차라리 1인실로 옮기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평소 비싼 입원료 때문에 1인실 이용을 거부하셨던 장인어른께서도 마지막에는 참 잘했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은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중환자실보다는 시간이 되는대로 찾아온 가족들과 함께 지내시면서 죽음을 준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환자실에 입원해서는 이와 같은 이별이 어렵다는 사례들은 제3장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죽음이 일상처럼 일어나는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면서 안타까운 죽음을 많이 지켜본 탓인지 저자는 자연스럽게 호스피스간호에 관심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과 맞서 싸우는 곳이 중환자실이라고 한다면 호스피스는 그야말로 평안한 가운데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입니다. “호스피스란 죽음을 앞둔 말기환자와 그 가족을 사랑으로 돌보는 행위로서, 환자가 남은 여생 동안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삶의 나머지 순간을 평안하게 맞이하도록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영적으로 도우며 사별가족의 고통과 슬픔을 경감시키기 위한 총체적인 돌봄(126쪽)”이라고 정의합니다.


저자는 특히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해온 것 같습니다. 갑작스럽게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를 상정하여 평소에 자신의 입장을 밝혀둔다면 가족들은 물론 의료진도 진료방향을 결정하기가 쉬워질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말기환자에서 심폐소생술을 비롯하여 의미가 없는 고가의 적극적 치료제를 투입하는 것은 짧은 생명의 연장 이외에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의미 없는 연명치료는 하지 않도록 사전에 의사를 분명하게 밝혀둘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다양한 항암치료제가 개발되어 임종에 이를 때까지 항암제를 투여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생에 대한 환자의 욕망과 가족들의 의무감, 그리고 의료진의 안타까움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심평원에서 준비하고 있는 사망률평가에서 말기암환자에서 적극적 치료를 하지 않은 기간을 설정하는데도 이견이 많은 것은 이런 상황 때문인 것입니다.


특히 제4장에서는 장기기증과 관련한 뇌사자의 사례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뇌사판정을 받은 환자에게 장기기증을 적극적으로 권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보라매사건 이후로 뇌사자라 할지라도 연명수단을 인위적으로 제거할 수 없게 되었지만, 생명이 유지되는 동안에 장기적출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특수성 때문에 뇌사자라고 하더라도 장기기증 의사를 밝히게 되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정이 힘든 가정에서 뇌종양에 걸린 동생이 뇌사상태에 빠지자 신부전으로 고통 받는 형이 동생의 신장을 이식받기를 희망하지만, 노모는 치료비를 걱정할 수밖에 없던 사례에서 결국은 동생의 정신질환의 증상이 문제가 되어 이식을 논할 필요가 없게 된 사례를 두고 저자는 만약 동생이 사정을 알게 되었다면 장기이식에 동의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기도 합니다.


의료현장은 같은 상황을 두고서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장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해진 답이 있을 수 없다는 열린 생각으로 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어지는 마지막 장 ‘다른 가능성들’에서는 열린 생각으로 상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새삼 되짚어보고 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응급수술을 중단시킨 할머니가 자기 고민의 시간을 거친 뒤에 수술을 받아들이게 된 사연에서는 분초를 다투어야 할 상황에서 환자에게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잘못과 함께 환자의 의사결정권이 재삼 강조됩니다. 분초를 다투는 수술이라면 더더욱 불필요한 갈등으로 시간을 지연하는 불상사를 피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임종을 맞는 어머니에게 병원의 금기를 깨고 어린 아이에게 면회를 허용한 것은 죽음을 맞이하는 어머니로서도 눈을 감지 못할 일이며, 아들 역시 오랫동안 정신적 상처로 남을 수도 있는 생이별을 막은 참 잘한 일 같습니다. 우리는 때로 규정에 매몰되어 인간을 상실하는 우를 범하기도 합니다.


<도심에서 죽는다는 것>을 읽고서 이 책을 읽은 분 가운데 병원의 중환자실에 대하여 오해를 하실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는 말씀을 사족처럼 덧붙입니다. 예를 들면 중환자실이 수술을 준비하는 장소, 혹은 수술 후 회복을 위한 장소로 오해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임종을 앞둔 환자가 죽음을 준비하는 장소라고 오해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당연히 중환자실은 말 그대로 중환자들이 집중치료를 받는 곳입니다. 당연히 중환자가 많기 때문에 죽음을 맞는 환자도 많습니다만, 고비를 잘 넘겨 일반병실로 옮겨가는 환자가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다만 저자는 중환자실에서 불행하게도 고비를 넘기지 못했던 환자들에 더 마음이 쓰였던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죽음을 되돌아보면서 당시의 자신의 역할에서 아쉬움은 없었는지를 짚어보았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중환자실이 그야말로 중환자를 위한 시설로 운영되고 있고, 그에 대한 특별한 수가가 지불되기 때문에 그저 수술을 준비하거나 수술 후 회복을 기다리는 곳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합니다.


저자가 중환자실에서 드물지 않게 생기는 죽음을 모아 살펴본 것은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가 고통스러운 처치를 받으면서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맞아야 하는가 고민해보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만약 당신이라면 가족들과 떨어져 다가오는 죽음을 맞고 싶으시겠습니까?

y*****2 2016.07.18.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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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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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온지 꽤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든 상황이 비슷하지 않을까. '도시에서 죽는다'라기 보다 병원에서 죽는 것에 대한 내용이다. 요즘은 병원이 아닌 곳에서 죽으면 절차가 복잡해, 마지막엔 병원으로 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모두의 마지막 장소는 이제 병원이다. 나의 마지막은 어떨까. 부모님은 어떤 것을 원하시나. 꺼내기 쉽지 않은 주제이다. 책에 반복해서 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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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온지 꽤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든 상황이 비슷하지 않을까.
'도시에서 죽는다'라기 보다 병원에서 죽는 것에 대한 내용이다.
요즘은 병원이 아닌 곳에서 죽으면 절차가 복잡해, 마지막엔 병원으로 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모두의 마지막 장소는 이제 병원이다.
나의 마지막은 어떨까. 부모님은 어떤 것을 원하시나.
꺼내기 쉽지 않은 주제이다.
책에 반복해서 나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미리 등록해 두면 좋을 것같다.
작가가 경험한 다양한 환자 이야기는 남일같지 않다.
책에 나오는 그런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할까, 어떨까.
잘 알지못해 불안하고, 확신할 수 없는 결정에 무섭고 답답할 것 같다.
맺음말에 있는 작가의 중환자실 경험은 모두 알아야 할 얘기다. 상상한 것과 크게 다르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땐 좀 쉬었다 읽었다.
마음이 무거워지고 우울하다.

y*****s 2023.05.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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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가 된다는 것, 나에 대한 결정에 배제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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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과 선택을 대신했던 우리는 불행한 결과 앞에서 각자 슬픔과 책임감에 짓눌려 환자를 제대로 '보호'하거나 대변활 경황이 없었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지만 '누가 대신할 수 없는 죽음'을 그렇게 홀로 감당할 수 밖에 없는 것.중환자가 된다는 건 어쩌면 고립되고 소외된 상태에서 자신의 병과 죽음에 대해 제3자가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우리들 곁에 '어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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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과 선택을 대신했던 우리는 불행한 결과 앞에서 각자 슬픔과 책임감에 짓눌려 환자를 제대로 '보호'하거나 대변활 경황이 없었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지만 '누가 대신할 수 없는 죽음'을 그렇게 홀로 감당할 수 밖에 없는 것.

중환자가 된다는 건 어쩌면 고립되고 소외된 상태에서 자신의 병과 죽음에 대해 제3자가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들 곁에 '어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죽음이나 세상의 온갖 불운 앞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어른이 있어 '이 사람들아, 서운한 마음도 있겠지만 가족들을 좀 이해하고 위로해주게. 가장을 잃은 사람들 아닌가.' 나무라주고, '이보게, 황망하고 억울하겠지만 잘해보려다 이리 된 것 아닌가. 어서 정신을 차리고 사람을 잘 보내드리는게 먼제일세.'하고 위로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옛날 고향마을 우리 할아버지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삼십대의 의사, 간호사들이 일하고 있는 중환자실에는 그런 어른이 없었다.

d**********r 2015.06.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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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리고 가족의 마지막을 내가 결정하게 될 수도 있다면 미리 읽어두는 게 좋은, 중환자실 에세이집
"나, 그리고 가족의 마지막을 내가 결정하게 될 수도 있다면 미리 읽어두는 게 좋은, 중환자실 에세이집" 내용보기
저는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이라는 제목에 깊은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저자가 간호사로 오래 근무한 분이라는 것. 제목의 인상과 저자의 직업만 가지고 내용을 대강 예측한 뒤 책을 구매했습니다. 이 에세이집은 이야기의 공간적 범위가 저자의 일터, 즉 '중환자실'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저는 제목에만 빠져, 이야기의 배경이 '도시 전체'일 줄 알았습니다. 책의 제목이 그런 착
"나, 그리고 가족의 마지막을 내가 결정하게 될 수도 있다면 미리 읽어두는 게 좋은, 중환자실 에세이집" 내용보기

  저는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이라는 제목에 깊은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저자가 간호사로 오래 근무한 분이라는 것. 제목의 인상과 저자의 직업만 가지고 내용을 대강 예측한 뒤 책을 구매했습니다. 이 에세이집은 이야기의 공간적 범위가 저자의 일터, 즉 '중환자실'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저는 제목에만 빠져, 이야기의 배경이 '도시 전체'일 줄 알았습니다. 책의 제목이 그런 착각을 제게 주긴 했지만, 책의 내용은 정직했고 내실이 있었습니다. 이 책은 에세이집인데, 저는 에세이를 읽는 재미와 함께 어떤 '유용성'들을 크게 느꼈습니다.

 

  * * *

 

  우선,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은 정말 과연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제게도 있었습니다. 저자는 오랫동안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중환자실 (아마도 리더 급의) 간호사로 근무한 분이었고 그런 저자의 눈에는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은 곧 '중환자실에서의 사망' 혹은 '중환자실을 거쳐간 사망'이었습니다. 비약이 없지 않으나, 매우 현실적인 정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느낀 유용성은 이렇습니다. 전직 중환자실 간호사의 에세이인 이 책에는 노소를 불문하고 중환자실에 당도해야 했던 다양한 환자들과 그 보호자들(대부분 가족들)이 만들어 낸 장면이 여럿 담겨 있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제게 죽음에 대한, 그리고 보호자로서의 생활에 대한 간접체험이 되었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중환자실을 거치겠지요. 환자복을 입고 혹은 보호자로서 말이에요. 아마도 두 가지 경험을 모두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이 책을 독서하며 가장 유용하게 느낀 것은, 의사와 간호사의 독특한 생각구도와 업무패턴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제 주변에는 간호사니 의사니 하는 직업을 가진 지인들이 있는데도, 그들이 그들의 회사에서(병원에서) 어떤 논리로 어떤 가치를 일상적으로 저울질하며 근무하는지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직종이 다른 친구에게 직장에서의 고충이나 일상을 늘어놓는 것은 제대로 이해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에 그렇겠지요. 속옷까지 아는 친구래도 그 친구의 메모나 일기장을 엿보게 되면 또 다른 면모를 느끼게 되는데요, 그와 비슷한 걸 이 책에서 느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 가면 의사와 간호사들의 손길이나 눈길이 거칠고 고압적이고, 때로 쌀쌀맞은 것인지에 대해서도 좀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의학용어이지만 병원에 들어가는 순간 일상어로 알아들을 줄 알아야만 하는, DNR이니 hopeless discharge가 일반인과 의료인에게 어떻게 다르게 소통되어 오해를 빚을 수 있는지도 잘 나와 있어 유용합니다. 잊고 싶지 않아 인터넷을 뒤져 정보를 더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삽관'이라는 처치를 받으면 환자는 말을 전혀 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제 부모나 동생의 주 보호자가 되었을 때,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처치에 OK 사인을 내 버릴 것을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 * *

 

  저자는 과거 예전 농경사회의 모습을 채 벗지 못했을 당시, 그러니까 약 40년 전만 해도 일상적으로 여겨지던 '(집에서 맞는) 자연스러운 죽음'의 인간성을 지향합니다.  하지만 소위 '보라매 사건'이라 불리는 법적공방 이후 병원에서는 연명치료만이 남은 환자들도 절대 퇴원시켜 주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집에서 가까운 작은 병원으로 '전원(병원을 바꿈.)' 하는 것 밖에는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다더군요. 그것에 대한 깊은 아쉬움을 가감없이 표현한 저자는 해당 사례에 대한 새로운 판례가 나오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습니다. 사람으로서 누구나 자신의 죽음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맞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저자는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저도 제 죽음의 장소는 제가 정하기를 바랍니다. 병원은 아닐 거예요.

 

  책 전체의 저변에는 '자신의 마지막을 결정하는 것은 제 자신이어야 한다.'라는 저자의 확고한 소신이 깔려 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동안 저자는, 환자가 의식이 불분명해서, 연세가 너무 높아서, 혹은 보호자의 정신적 폭력(?)으로 인해 환자가 자신에게 가해도 되는 처치와, 받고 싶지 않은 처치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심지어 수술까지도). 그래서 저자는 누구나 판단이나 결정이 어려운 몸상태에 불시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와 같은 것을 '미리' 작성해 둘 것을 넌지시 권합니다. 미리 그런 것을 작성해 두면, 제가 교통사고로 급작스럽게 의식불명이 되었을 때, 몸에 큰 무리가 가는 고통스럽고 값비싼 치료를 가해 며칠이라도 더 생명의 끈을 부여잡아 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런 치료는 제발 하지 말고 나와 남은 사람들이 편할 수 있게 그저 보내 달라는 부탁을 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본인의 의향서가 없다면, 의사나 보호자는 단 며칠 숨을 연장시킬 뿐인 치료라도 그것을 안 받게 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저도 작성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 *

 

  260쪽 정도의 길지 않은 에세이집으로,

개인차는 있겠지만 네 시간 정도에 일독할 수 있습니다.

 

  존엄한 죽음에 관심을 가진 분,

  병원이라는 장소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분,

  앞으로 부모님을 간호해야 할지도 모르는 30-40대 성인들,

  병환을 지닌 지인이 있는 분,

  주변에 의사나 간호사 지인이 있는 분,

 

께서 읽으시면 독서한 네 시간여가 아깝지는 않을 책이라고 감히 추천드립니다.

 

 

 

 

 

 

b******s 2016.03.1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eBook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 내용보기
전문 작가도 아니고, 병원 현업의 현장에 20여년 가까지 있던 사람으로서 글은 사뭇 투박하기 그지없다.심지어 중환자실에서만 오래도록 있었던 사람의 경험담이라니 하나같이 무거움과 슬픔으로 일관된 에피소드뿐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급작스런 또는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할 때 독자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번이라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경우도 있고, 저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 내용보기

전문 작가도 아니고, 병원 현업의 현장에 20여년 가까지 있던 사람으로서 글은 사뭇 투박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중환자실에서만 오래도록 있었던 사람의 경험담이라니 하나같이 무거움과 슬픔으로 일관된 에피소드뿐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급작스런 또는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할 때 독자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번이라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경우도 있고, 저러한 경우도 있다는 것을 간접 체험하며 자신이 그와 비슷한 경우에 처했을 때 어떻게 미리 준비하는 것이, 그리고 직접 그 상황에서 어떻게 임기응변으로 자신의 마지막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인가를 현업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보고 들은 사람의 조언과 함께 전달 받을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삶에서 본인의 의지가 많이 투영된 만큼 죽음에 있어서도 그러고자 한다면, 삶에서 본인의 삶을 제대로 영위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만큼이나 죽음도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웰빙만큼이나 웰다잉도 다시 한번 회자되어야 한다.

c******m 2015.01.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