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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사물이 사람에게 건네는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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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독특한 책 한 권을 만났다. 사물에 이야기를 입혀 사람과 사람사이에 생긴 틈이 메워지길 바라는 그런 책이다. 4부로 나누어진 책의 구성을  소개해본다. 1부는 움직이는 조각 인형이 잘 표현된 장이라고 생각한다. 움직이는 조각 인형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짧지만 절실하다. 뱀과 아이가 서로를 무서워하는데 그 이유는 서로가 다르게 생겼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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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 독특한 책 한 권을 만났다. 사물에 이야기를 입혀 사람과 사람사이에 생긴 틈이 메워지길 바라는 그런 책이다. 4부로 나누어진 책의 구성을  소개해본다.


1부는 움직이는 조각 인형이 잘 표현된 장이라고 생각한다. 움직이는 조각 인형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짧지만 절실하다. 뱀과 아이가 서로를 무서워하는데 그 이유는 서로가 다르게 생겼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움직이는 인형은 작가의 정교한 장치에 의해 이루어졌다. 아랫부분은 인형들을 움직이게 하는 장치가 시계 뒷면처럼 정밀하게 만들어져있고 윗부분은 상황을 묘사하는 조각인형이 있다.

 

 

움직이는 인형의 구조는 언어의 기표와 기의처럼 발현되면서 인간의 삶을 재구성하고 있다. 작가는 부유하고 있는 생각의 입자를 잡아내고 싶다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를 작동시키라고 말한다. 현실을 작동시키는 원리를 뒤집지 않으면 상상의 공간이 열리지 않는다. 이 모든 작동하는 인형을 보는 일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작가의 발상을 보는 일이라서 즐겁다.

 

2부에서는 보다 작은 것에 눈을 돌려 그 사물의 눈을 통해 본 세상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합리적인 생각과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더 이상 만들어낼 새로운 세상은 없다고 작가는 말한다. 예를 들면 치즈를 훔쳐 먹는 쥐의 인형을 올려놓고 쥐의 입장에서 보면 애초에 소유의 개념이 없으니 훔친다는 것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식이다. 물건에 갇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인간의 삶에서 보자면 너무나 부러운 발상이다. 함석철사로 만든 ‘죽음과 악수하기“를 통해서는 스스로 죽음과 악수해 본 느낌이 너무나 좋지 않아서 다시는 먼저 죽음에게 손 내밀지 않겠다는 다짐을 담았다. 민달팽이 인형을 통해서 집 없는 설움을 적절히 표현해낸다.

 

 

 

3부에서는 목수로 살아온 저자가 목수의 시간은 상상의 영역을 밀쳐버렸고 상상의 자유로움을 경험의 차원으로 끌어내렸던 시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자연은 가장 상투적이지만 자연 그 자체가 지니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가 있어서 자연은 사람에게 영원히 스승이 된다고 말한다.

 

 

가장 흥미로운 장은 4장인 개와 의자의 이야기였다. 개처럼 뛰어다니고 싶었던 의자는 자신을 흔들다가 발바닥에 바퀴를 달았다. 인간은 그 변화를 즐거워했기 때문에 의자와 개는 인간과 더불어 진화의 과정을 거쳤고 어느 틈엔가 개는 의자의 진화 속도를 따라 잡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새롭고 재미있었다. 장 그노스 박사의 말을 빌어 의자가 개에게 자신의 진화가 개와 인간을 뛰어넘어 인간을 지배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말한다. 개는 다시 의자에게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의자가 아니라 인간의 상상과 미래, 희망 같은 거라고 말하며 의자나 개와 사람은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해있기 때문에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모든 이야기는 작가가 만든 조각 인형과 함께 시작된다. 사물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 속에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흥미롭고 재미있게 다가오는 즐거운 책이다.   


 

 



t******e 2013.01.02. 신고 공감 10 댓글 22
리뷰 총점 종이책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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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논술 수업을 시작할 때 제일 먼저 했던 수업이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유아용 그림책(글이 없는 그림만 있는 책이었다)의 그림을 보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뿐 아니라 ‘행복하게 잘 살았다’로 끝나는 동화의 뒷이야기를 상상하는데 아주 유용했다. 하지만 아이들과 수업을 하다보면 싫어하는 게 한 두 개씩 존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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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논술 수업을 시작할 때 제일 먼저 했던 수업이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유아용 그림책(글이 없는 그림만 있는 책이었다)의 그림을 보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뿐 아니라 ‘행복하게 잘 살았다’로 끝나는 동화의 뒷이야기를 상상하는데 아주 유용했다. 하지만 아이들과 수업을 하다보면 싫어하는 게 한 두 개씩 존재하는데, 그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생각하는 것이다. 책을 읽고 나의 생각을 말하기, 책의 뒷부분을 상상해서 써보기, 신문기사의 한 면을 보여주고 지금 읽은 책과 연관해서 나의 생각 써보기 등. 이런 주제를 가지고 수업을 하다보면 아이들은 멘붕에 빠지게 된다. 심지어 왜 자꾸만 생각을 강요 하냐고 따지는 친구들도 있다. 그럼 평소에 생각 같은 것 하지 않냐고 물어보면 아이들 하는 말이 정말 과관 이다. 생각할 시간도 없고, 생각할 틈도 없고, 엄마가 하라는 대로 보내다 보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고 한다. 멍 때리고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 사색할 시간을 주는 것 자체를 시간 낭비라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처음 이 책을 블로그에서 봤을 때 호기심이 일었던 이유는 딱 하나다. 이 책을 가지고 논술 수업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어떻게 활용하면 아이들이 재미있게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이야기를 짓는 것 말고도 어떻게 접근하면 자신의 생각을 보다 활발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 호기심으로 접근했고 그래서 읽었다. 이 책을 다 읽고 아이들에게 마음에 드는 조각 작품이나 이야기로 만들 수 있는 작품은 어떤 것이 있을지 꼽아 보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작품을 선택했다. 물론 아이들이 말하는 것을 이야기로 만들자면 많이 다듬어야겠지만, 참신하고 재미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생각을 했다. 나도 한때 음...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 정도 였을 것 같은데... 그때 나는 한창 상상에 빠져 있었다. 중학교 추천 도서 중 소설만을 엄선해 열심히 읽었고, 순정만화라 칭하는 예쁜 사랑에 빠져서 살았으니까. 잠자기 전, 불 꺼진 천정을 바라보며 그 위에 그림을 그렸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괴물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사랑이야기로 끝을 맺는 혼자만의 상상. 그 이야기들이 예술로 승화(?) 되지 못한 이유는 지나치게 사랑에 집착(?) 했던 것일까? 망망대해를 건너 나를 구하러 온 왕자부터 시작해, 가난한 실수투성이 말괄량이 아가씨가 혼자의 힘으로 멋진 남자를 쟁취하고 그와 사랑을 이루는 이야기,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지만 용기를 잃지 않는 청순가련형 여인의 이야기,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이루고자 하는 꿈을 쟁취한 멋진 현대 여성의 이야기 까지 잠자리에서의 나의 이야기는 시대와 상황에 맞게 각색되어 갔다. 하지만 그들과 나의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구체적으로 쓰지 못했고 마음속에서만 이야기가 자리했다면, 그들은 눈에 보이게 작업을 했고 글을 썼다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공상과 상상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예전에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었고 어떻게 상상을 했지? 짧은 장면이지만 에피소드들은 어떻게 구성했지? 조각 작품을 보고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이야기 일 수 있지만 작품과 이야기를 함께 보고 읽으니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아...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 수 있구나.. 아. 이런 의미로 이런 작품이 탄생했구나...

 

인간이 인간일 수 있고,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야기를 만드는 힘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많은 재료들이 사용되고, 그 재료를 잇는 다양한 시도와 톱니와 부품들이 복잡하게 엉켜 있어도 그 모든 구조는 결국 이야기 안에서 풀려 나갈 수 있다. 매끄러운 이야기 속에서 복잡한 시선들과 엉킴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끊어지고 다시 이어진다.

 

이 책의 공모전이 있음을 안다. 조각 작품 하나를 나만의 이야기로 만드는 것. 지금도 사실 좀... 망설이고 있다.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있지만, 아직은 그 어떤 주제나 테마로 구성할지 몰라 리뷰로만 인사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공모전과는 별개로 이런 구성으로, 이런 테마로 책을 만들 수 있고 그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몇 개 아이들이 선택해준 작품은 실제 논술 수업에 적용해 보려한다. 나에게는 어려웠을 이야기 만들기가 아이들에게는 좀 쉽고 재미있는 과제(?)였으면 하는 바램으로.. ^^

 

ps. 마지막 의자와 인간의 관계를 이야기 하는 부분은 참 좋았다. 인간이란 어떻게 진화되고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리고 그 안의 심리들까지... 나를 다시 생각하게 된 좋은 기회라고나 할까?



YES마니아 : 로얄 k*****3 2013.01.06. 신고 공감 7 댓글 18
리뷰 총점 종이책
남자와 의자, 그리고 개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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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는 기억한다. 사람과 달리 전생을 기억할 수 있는 의자는 전생에 남자의 여인이었다. 의자와 달리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는 의자가 자기가 그토록 사랑하던 여인인 줄 모른 채 의자에 앉아있다.   여인은 바다를 늘 그리워했다. 남자는 사랑하는 여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한 번만이라도 물고기가 되어 사랑하는 여인에게 바다를 구경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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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는 기억한다. 사람과 달리 전생을 기억할 수 있는 의자는 전생에 남자의 여인이었다. 의자와 달리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는 의자가 자기가 그토록 사랑하던 여인인 줄 모른 채 의자에 앉아있다.

 

여인은 바다를 늘 그리워했다. 남자는 사랑하는 여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한 번만이라도 물고기가 되어 사랑하는 여인에게 바다를 구경시켜 주고 싶다고 기도하였다. 포세이돈은 처음에는 남자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지만 매일같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남자가 귀찮아 물고기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 물고기로 변신하고 나면 기억을 잃게 되는 부작용은 알려주지 않았다. 남자는 물고기로 변신하여 매일 밤 여인과 바다를 부유해 다녔고 행복한 날들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물고기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자 여인은 초조해져 갔다. 처음에는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웠으나 점점 시간이 흐르자, 자신이 물고기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결국 물고기를 찾아 여인은 먼 길을 떠나게 되고 늘 그 여인을 바라보던 떠돌이 개도 여인을 따라간다. 개는 기억한다. 사람과 달리 전생을 기억하는 개는 여자가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이었다는 것을 안다.

 

 

여인은 갈증이 났다, 밤하늘 아래 잔잔한 개울로 다가가 차가운 물이 앞발에 닿자 땅 위에 옆으로 드러누웠다. 개는 목이 전혀 마르지 않은데도 어쩔 수 없이 물을 들이켰다. 어둑어둑한 조각 구름이 여인과 개 위로 천천히 이동하면서 어슴푸레한 빛을 길게 내뻗자, 개와 여인의 눈이 마주쳤다. 그 찰나의 순간, 개는 사랑하는 여인의 눈동자를 기억해내고는 눈물이 맺히고 여인은 눈물 맺힌 개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암흑의 신 페트롤리무스가 여인을 낚아채어 날아갔다.

 

 

 

 

암흑의 신 페트롤리무스는 계속된 신들과의 전쟁으로 깨끗하고 순수한 여인의 피가 필요했다. 가능한 한 멀리 날아간 페트롤리무스는 계곡 위에서 여인의 피를 마시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데 개 짖는 소리에 다시 고개를 젖혔다. 페트롤리무스의 계곡은 신의 영역으로 자연의 영역이 침범할 수 없는 마법의 계곡이었다. 개는 신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게 되자 마법의 힘으로 자신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페트롤리무스는 개의 현신이 바로 켄타우로스라는 사실에 놀라고 싸울 생각도 할 틈이 없이 허둥지둥 도망쳤다. 수천 년 동안 여인을 맴돌았던 켄타우로스는 기절해 있는 여인에게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빛을 보며 미소지었다. 빛은 점점 강렬해져 세상을 비추고 , 그 빛으로 켄타우로스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 데메테르라는 것을 알아보게 된 것이다. 켄타우로스는 말의 네 다리를 조화롭게 흔들고 두 팔에는 여인을 안고 돌 하나 흩트리지 않고 가파른 산등성이를 성큼성큼 내려갔다. 자신의 기묘한 그림자를 밟으며 여인이 처음 발을 담그었던 그 개울가에 다시 눕혀놓았다.

 

 

정신을 차린 순간, 여인은 무시무시한 암흑의 신에게 납치된 꿈을 꾸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꿈이라는 것에 안도하고 여인은 물고기를 찾아 다시 길을 나선다. 길을 나서는 동안 개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태양이 산꼭대기에 서 있을 때, 우연히 만난 한 남자에게 물고기를 본 적이 있냐고 하자, 남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지구 몇 바퀴를 돌아도 물고기를 찾을 수 없던 여인은 슬픔에 사로잡혀 그 자리에서 나무가 되었고 (데메테르가 대지의 여신이기에) 남자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자신이 무언가를 잃고 사는 상실감에 빠져 살았다. 어느 날 우연히 스쳐가며 물고기를 물었던 여인을 만난 자리에 나무가 자라있는 것을 보고 나무를 깍아 의자로 만들었다. 남자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상실감에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고 그 옆을 늘 개가 지키고 있다.

 

 

   

의자는 기억한다. 사람과 달리 전생을 기억할 수 있는 의자는 전생에 남자의 여인이었다. 의자와 달리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는 의자가 자기가 그토록 사랑하던 여인인 줄 모른 채 의자에 앉아있다.

 

인간은 의자에게 그랬던 것과 똑같이 개에게 의존하는 일이 많아졌다. 개가 인간에게 충성할수록 그리고 인간이 개에게 의존할수록 어찌된 일인지 개의 자유는 점점 줄어들었다. 개는 그걸 사랑이라 믿었고 불만은 없었다. 인간은 늑대의 후손을 자신의 입맛대로 바꾸어 친구라고 부르는 대시 원래 자신과 똑같은 특성을 지닌 늑대에게는 악마의 탈을 씌워 박멸해버렸다. 인간은 그런 식으로 친구를 만든다.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 공모전에 참여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봤습니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저자 김진송은 누군가의 시간을 얇게 저며낸 순간들을 모아 하나의 동작으로 재조립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이야기는 누군가의 삶을 재구성한 것이구요. 책에 실려 있는 사진을 보며 만든 이야기라 미흡하긴 하지만, 제가 만들어낸 이야기속의 주인공들이 마치 살아있는 또 하나의 생명체가 되는 기분은 난생 처음 느껴보는 기분입니다 . 

 잘 쓴 글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참 재미있는 경험을 했습니다 .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찾는 파랑새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

 

YES마니아 : 로얄 k********2 2013.01.08. 신고 공감 6 댓글 10
리뷰 총점 종이책
두꺼비와 아줌마와 기계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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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꺼비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국내 최대 두꺼비 산란지인 망월지는 대구시 수성구 욱수동에 위치해 있다. 매년 2월 두꺼비의 서식지인 인근 욱수골에서 산란지인 망월지로 이동하는 두꺼비들의 장관부터 5월에서 6월 사이 부화된 새끼 두꺼비 수백만 마리가 서식지인 욱수골로 이동하는 장관이 펼쳐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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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꺼비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국내 최대 두꺼비 산란지인 망월지는 대구시 수성구 욱수동에 위치해 있다. 매년 2월 두꺼비의 서식지인 인근 욱수골에서 산란지인 망월지로 이동하는 두꺼비들의 장관부터 5월에서 6월 사이 부화된 새끼 두꺼비 수백만 마리가 서식지인 욱수골로 이동하는 장관이 펼쳐지는 곳이다. 이곳은 그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꼭 지켜야 할 자연유산’으로 선정되고 해당 지자체가 두꺼비들의 이동이 원활하고 안전하게 하기 위해 펜스를 설치하기도 하며 망월지에 서식하는 외래어종 블루길과 배스 잡기 대회를 펼치기도 한다. 도심 속에 국내 최대 두꺼비 산란지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이야깃거리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어린 시절 흙이 있는 놀이터나 모래사장에서 친구들 혹은 가족들과 함께 불렀던 노래다. 누구나 한 번은 불러봤음 직 한 노래다. 모래 속에 한 손을 집어넣고 그 위로 흙은 보듬어 덮으며 부르는 노래. 그런데 왜 두꺼비에게 헌 집을 줄 테니 새 집을 달라고 하며 우악스러운 노래를 부르는 것일까?

해당 두꺼비는 그저 제 어미의 어미가, 그 어미의 어미가, 그 그 어미의 어미가, 그 그 그 어미의 어미가 그랬던 것처럼 흙길을, 신작로를, 아스팔트를 건너 알을 낳고 그렇게 어미가 한 대로 다시 산으로 올라가는 일을 했을 뿐인데. 그들은 그냥 거기에 있었을 뿐이다.

두꺼비에게는 애초에 집이라는 개념조차 없었을 텐데 말이다. 웃기는 일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고양이가 시크하게 내뱉는 인간에 대한 말과 이 책에 등장하는 개와 의자가 나누던 대화와 같은 인식 정도가 두꺼비들에게도 있지 않을까 싶다.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헌 집, 새 집을 논할 자격이 있는지 말이다.

 

 

 

2. 이야기

 

“작년에 아주 작은 몸으로 겨우 망월지를 헤엄쳐 나와 추적추적 비가 오는 밤 친구들과 함께 엄마가 가르쳐 주었던 옆 집 아줌마와 아저씨가 이야기 해주었던 그곳으로 올라갔었다. 앞도 보이지 않고 낯선 공기와 무시로 들리는 벌레와 곤충이 내는 소리들은 무서웠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많은 친구들이 있어 안심이 된다. 희미하게 코끝으로 전해오는 나무와 돌, 계곡물의 냄새가 점점 가까워오기 때문이다. 그래. 엄마가 들려주던 그 이야기 그대로다. 그 냄새가 맞아. 우리는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긴 이야기 속으로 걸어들어 갔다.”

                                                                                                              「작은 두꺼비 이야기」

 

어디엔가 부유하고 있는 생각의 입자를 잡아내고 싶다면 우리는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아니면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를 작동시키든 해야 할 것이다.” (p.25)

 

붐비는 스타벅스 안에서 1시간만 앉아 있어 보라. 애써 관심 없는 척 이어폰을 꽂고 있어도 이어폰 패드와 귀 구멍 사이로 들어오는 저 수많은 소리들. 지난여름 어렵게 얻은 월차를 방구석에서 썩히기 싫어 책과 노트북을 들고 스타벅스로 갔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아무리 사용해도 뭐라 하지 않는 콘센트가 즐비한 그곳으로. 그러나 37도의 폭염보다 더 무서운 아줌마들의 뒷담화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으니.

일부러 들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1미터 남짓한 옆 테이블에 앉은 내가 잘못이었다. 시월드, 남편, 자식, 집값, 핸드백, 홈쇼핑, 누구누구집 시월드, 누구누구집 남편, 누구누구집 자식, 누구누구집 집값, 누구누구 핸드백……. 아~ 도저히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아줌뫼비우스의 뒷담화띠여!!!!

 

이야기는 부유해 다닌다. 하지만 이야기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람은 따로 있기 마련이다. 몇 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해도 상관없이 그 곳에는 이야기의 주도권을 쥔 사람이 분명이 있다. 부유해 다니는 생각의 입자, 이야깃거리를 센스 있게 잡아 채 내 것으로 소화해 풀어내는 것은 능력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스타벅스가 떠나갈 듯, 볼륨을 아무리 높여도 내 이어폰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고주파의 아줌마 목소리들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끝도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사람일까? 기계일까?

 

“이야기의 시간을 이미지의 시간으로 바꾸는 일, 그게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를 만드는 일이다.” (p.11)

 

망월지에서 욱수골로의 여정은 죽음의 여정이었다. 흙길이 신작로가 되고 신작로가 아스팔트가 되고 냄새나고 미끄러운 아스팔트에는 욱수골 바위덩이 보다 훨씬 큰 괴물 같은 것들도 요란한 빛을 내뿜고 굉음을 내지르며 질주한다. 많이들 죽었다. 언제부터인가 이상한 것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상한 망같은 것들을 만들어 그곳으로만 갈 수 있게 하기도 하고 낚시꾼들을 불러 모아 우리를 한 입에 잡아먹는 커다란 물고기를 잡아가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사진을 찍기도 하고 그 사진을 찍는 인간의 새끼로 보이는 인간은 밝게 웃으며 안녕 인사하기도 했다. 무서웠다.

우리는 그저 엄마가 전해주는 이야기대로 그렇게 했을 뿐이다. 나 또한 그렇게 할 것이고 내 새끼 또한 자신의 새끼에게 그렇게 해 줄 것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두꺼비다.

 

 

 

3. 기계

 

“논리적이고 수학적인 계산은 감으로 바꿔버리고, 감각적 섬세함은 물리적 기능으로 대체하며, 상상의 자유로움을 경험의 차원으로 끌어내리려는 몸에 밴 버릇은 도무지 벗어버릴 수가 없었다.” (p.203)

 

 

나는 기계치다. 아니! 기계와 친하지 않다. 아니! 기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기계는 나를 싫어한다.

컴팩 프리사리오 시리즈 구형 노트북을 9년 째 쓰고 있다. 아이폰 5를 사고, 아이맥을 사고, 미니 아이패드를 샀다고 자랑하는 친구놈 면전에서 “그 돈이면 내가 사고 싶은 책을 몇 권을 살 수 있으며.. 블라블라...”

그렇다고 집안에서 풀려진 나사를 조이거나 철마다 커튼을 바꿔 달거나 전등과 형광등을 교체한다 거나 자동차 보닛을 열어 엔진오일 양을 체크하거나 워셔액 보충쯤은 거뜬히 해낸다.

하지만 저자가 사용하는 장비로 추정되는 위 사진을 보면서 나는 ‘이쁘다’라는 생각보다 ‘무섭다’라는 생각이 앞섰다. 그렇다. 나는 기계와 친하지 않고 그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고로 기계가 나를 좋아해 줄 리도 만무하다.

 

 

이 책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는 꽤 흥미로운 책이었다. 미술평론가이자 목수이도 하고 국문학을 전공한 그의 글은 깊었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그의 작업실로 보이는 곳의 사진은 노출을 최소화 한 듯 밝음보다는 어두움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의 글이 더 깊어 보였다.

문명의 이기(利器)의 첨단을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이야기조차 기계가 대신한다고 생각하면 개인적으로 나는 슬프다. 스타벅스의 아줌마들과 망월지의 두꺼비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보다 더 편리하고 인간에게, 그리고 자연에게 이로울 수 있는 문명은 과연 이기(利器)일까? 이야기조차 아줌마와 두꺼비를 대신하는 기계는 이기(利器)가 아니라 이기(利己)다.

저자는 아줌마와 두꺼비와 기계를 잇는다. 삼각 다리를 놓는 작업 과정과 결과물을 담담하게 책에 담았다. 단순히 나무만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단순히 작품 평론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단순히 책보고 글만 쓰는 사람이 아니라 세 가지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 작품도, 글도, 사진도 깊다.

 

[짐을 잔뜩 진 노새]와 [하늘에 갇힌 새]라는 작품은 제목과 작품의 사진만으로 수백 페이지 책을 갈무리하고도 남는다. 문명의 이기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과 공존해야 하는 두꺼비들 사이를 잇는다. 저자의 깊은 노력이 마음에 와 닿는다.

 

해야 할 이야기가 있고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다. 하루를 가만히 돌이켜 보면 ‘왜 그때 그 말을 했을까’ 후회할 때가 있다. 그렇다. 사람은 안 해도 되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해야만 하는 이야기. 불편한 이야기.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중요한 이야기를 무시하지 않는 것이 작가의 삶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직업 작가는 물론이고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한 서평을 쓰는 사람들도 작가다. 이야기를 창조해내는 사람은 작가다. 작가는 시대를 부유하는 이야기를 잡아내야 하기 때문에 시대의 그늘과 생채기에서 눈을 돌리면 안 된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것도 즐거울 수 있지만 기타를 만드는 일도 즐거울 수 있습니다……. 단지, 딱 일한 만큼의 한 달 치 월급이 꼬박꼬박 나올 수 있다면 말입니다. 사장이 돈 떼먹고 도망가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멀쩡한 회사를 닫아걸고 저 멀리 도망쳐 새 공장을 짓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p.217)

 

[기타 만드는 사람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콜트 노동자인 것 같았다. 그들이 열악하고 불합리한 환경에서 만들어 내는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들만 즐겁다면 세상은, 문명의 이기는 너무 이기적이다. 밥벌이를 넘어서는 즐거움이 동반될 수 있다면 기타 만드는 이야기는 그들의 자식과 자식들에게 이어져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만들어 낸 제도와 법률은 사람을 이롭게 해야 한다. 문명도 이롭게 해야 하고 두꺼비들에게도 이로워야 한다.

 

 

 

4.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결론은 사람이다. 두꺼비에게 새 집을 달라는 우악스런 요구를 하는 것도 사람이다. 첨단의 첨단을 넘어 도저히 그 끝을 알 수 없는 문명을 창조해 내는 것도 사람이다. 기계를 만들어 내는 것도 사람이다.

사람과 두꺼비와 기계 사이의 단절을 막고자 다리를 이으려고 하는 것도 사람이다.

결국은 사람이다.

두꺼비와 스타벅스 아줌마와 기계와 나를 이어주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까?

사람의 몫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또한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다.

사람의 몫이다.

이제 우악스런 손짓은 주머니에 집어 넣자.




l****h 2013.01.04.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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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공모전] 비밀의 집
"[이야기 공모전] 비밀의 집" 내용보기
<비밀의 집> _ p.58           “윌리엄, 누군가 올라오기 시작한 것 같아!”  “어디?”  “저기 보여? 큰 상수리나무 아래!”       정말 사피의 말대로 커다란 나뭇가지 사이, 레이스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보였다. 빼빼마른 두 다리와 흘러내릴 것처럼 흰 피부가 언덕 빛깔과 무척 어울렸다. 그러나 그것보다 우리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 건 단연코 그 여인의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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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집> _ p.58

 

 

 

 


  “윌리엄, 누군가 올라오기 시작한 것 같아!”
  “어디?”
  “저기 보여? 큰 상수리나무 아래!”

 

 

  정말 사피의 말대로 커다란 나뭇가지 사이, 레이스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보였다. 빼빼마른 두 다리와 흘러내릴 것처럼 흰 피부가 언덕 빛깔과 무척 어울렸다. 그러나 그것보다 우리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 건 단연코 그 여인의 갈색 머리였다. 정말이지, 멀리서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바로 그 색이었다.

 

 

  “예뻐. 정말 예쁜 갈색 머리야, 사피.”

 

 

  내가 들뜬 두 눈으로 사피에게 속삭이자, 사피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 해낼 수 있을까, 내가 묻기도 전에 사피는 ‘그 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문 뒤쪽에 처리해두었던 토막 난 시체 몇 덩이를 마루 중앙으로 꺼내왔다. 그 시체는 이백오십구 년 전에 우리 집에 침입했던 도둑의 것으로 그 도둑은 멍청하게 믹서를 잘못 사용해서 죽었다. 우리 집 믹서는 정말 사납다. 모르는 사람이 자기를 만지면 칼날로 물어뜯어 버리곤 하니까. 나는 도둑의 토막 난 팔을 멍하게 바라보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비로소 떠올렸다.

 

 

  “일어나, 앙리.”

 

 

  반질반질한 나무 관을 노크하자 한숨소리 같은 것이 언뜻 들려왔다. 지금도 언덕을 오르고 있을 여인을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져, 관 뚜껑을 세차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막 열 번의 노크를 채우려 할 무렵이었다. 관 뚜껑이 어마어마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건 마치, 단단하게 봉인된 딸기잼 뚜껑이 열리는 소리 같았다.

 

 

  “젠장!”
  “쉿-!”

 

 

  우리는 동시에 그에게 조용할 것을 명령했다. 그는 다시 한 번 고함을 치기 직전이었으므로, 대신 재채기를 해야만 했다. 거센 재채기 바람에 그의 몸 구석구석에 눌어붙었던 뼛가루가 날렸다. 우리 셋은 동시에 콜록거렸다. 앙리가 투덜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두 손가락이 끼익 거리는 소리를 내며 눈알 구멍 속을 청소했다.

 

 

  “앙리, 이제 우리 엄마를 살릴 수 있어! 저번에 말했던 역할을 담당해줘.”
  “뭐야, 이 엄살은. 이 동네에 갈색 머리가 나타나기라도 한 거야?”
  “진짜로 그래. 원한다면 프랑켄을 통해서 봐도 좋아.”

 

 

 앙리는 입을 삐죽거리더니 프랑켄과의 교신을 시도했다.

  프랑켄은 우리 집 옥상에 늘 앉아있는 앙리의 ‘몸’이다. 우리는 프랑켄을 통해 살아있을 당시의 앙리를 짐작할 수 있다. 프랑켄은 굉장히 건장한 모습으로, 지금의 앙리와는 딴 판이다. 특히, 프랑켄은 언제나 점잖고 듬직하다는 점에서.

  앙리는 뼈다귀로 살아가는 것이 완벽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한다고 종종 주장했다. (확실히 앙리는 수백 파운드 정도 가벼워졌다.) 피와 살에 약간의 영혼을 나누면 프랑켄과 같은 존재를 만들 수 있다고 하는데, 아차, 지금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마침 앙리가 프랑켄과의 교신을 마치고 날 바라봤다.

  확실히 놀란 얼굴이었다.

 

 

  “완벽한 갈색머리!”

 

 

  우리는 공중에서 손바닥을 마주쳤다. 뼈다귀와 하이파이브를 하는 건 좀 아팠다.
  앙리는 계속해서 프랑켄을 통해 여인의 위치를 알려주기로 했다. 동시에 그는 여인을 두려움에 떨게 할 준비도 마쳤다. 사피 역시 여인이 밟고 넘어질 고깃덩어리의 전시를 마쳤다. 이백년 이상이 지난 까닭에 건조된 시체는 좀 덜 징그러웠다. 아쉬웠다.
  이제 내 차례였다. 나는 엄마의 영혼을 깨우기 시작했다. 흰 색 비단 천 아래 아름답게 누워있는 엄마의 영혼.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갈색 머리 여인, 대문으로부터 서른 걸음 전이다, 오버!”
 
  앙리가 무전 흉내를 내며 외쳤다. 나는 작은 소리로 살아있을 적 엄마가 불러주었던 노래를 주문처럼 불렀다. (그건 사피와 내가 만든 영혼을 부르는 의식 중의 하나였다. 우린 그걸 배우기 위해 원수들의 마을에 잠입까지 했다. 우린 완벽한 스파이였다. 늑대마을 족장은 우릴 친구로 여겼다.)

  노래의 한 소절이 끝날 무렵, 엄마의 굳은 영혼에 생기가 돌아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두 손에서 식은땀이 났다. 엄마의 몸을 감싸고 있는 비단이 펄럭였다. 이제 잿빛으로 변한 머리카락만이 굳어있을 뿐 영혼의 모든 것이 활기를 되찾고 있었다.

 

  “갈색 머리 여인, 대문으로부터 열 걸음 전이다, 오버!”

 

 

  사피가 침을 꼴깍 삼키며 오른쪽 문에 자리를 잡았다. 그 때 엄마의 영혼이 두 눈을 번쩍, 하고 떴다. 번화가의 홍보용 풍선이 부풀어 오르듯 벌떡 일어난 영혼은 엄청나게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마루 위를 회전했다. 거대한 위성이 우리 주위를 공전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엄청나게 시끄럽고, 엄청나게 빨랐다.

 

 

  “이러다 갈색머리를 놓치겠어! 너무 시끄러워!”
  “윌리엄, 엄마를 말릴 순 없어.”
  “갈색 머리 여인, 대문으로부터 두 걸음 전이다, 오버!”

 

 

  앙리의 다급한 보고와 사피의 단호한 경고 때문에 엄마의 영혼을 포기해야만 했다. 나는 도둑의 시체를 넘어 왼쪽 문 앞에 엎드렸다. 엄마의 영혼이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코끼리보다 더 시끄럽게 노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밀이지만- 내 심장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두려웠다. 사피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녀의 한 쪽 종아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목 뒤로 소름이 돋았다.

 

  이제 마법에 걸린 엄마의 영혼을 구해낼 수 있을까? 
  늑대인간 무리가 뺏어갔던 엄마의 갈색머리를 찾아줄 수 있을까?
  돌아온 엄마가 우리와 앙리를 무서워하진 않을까?
  저 풍성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갈색 머리를 태우면 정말,
  정말로,

  엄마가 돌아올까?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

 

 

  그 때였다.

 

 

  “똑똑”

 

 

 사피와 나는 온 힘을 다해 문을 열어젖혔다.

 

 

 

 

 

 

 

*등장인물은 모두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차용하였습니다.

k****e 2013.01.10.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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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읽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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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받아들고 책장을  펼쳤을 때,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녀석이 나보다 더 좋아하며 반겼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해맑던지...  아들이 이 책에 관심을 보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감동과 교훈, 혹은 멋진 표현이나 기발한 아이디어를 위주로 독서를 하는 나와는 달리 아들은 이 책에 실린 멋진 목공예 작품과 작가가 직접 그린 듯한 밑그림들에 홀딱 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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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받아들고 책장을  펼쳤을 때,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녀석이 나보다 더 좋아하며 반겼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해맑던지...  아들이 이 책에 관심을 보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감동과 교훈, 혹은 멋진 표현이나 기발한 아이디어를 위주로 독서를 하는 나와는 달리 아들은 이 책에 실린 멋진 목공예 작품과 작가가 직접 그린 듯한 밑그림들에 홀딱 반한 듯했다.  어려서는 종이접기에,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레고에 중독되다시피 한 아들녀석의 취미를 생각할 때, 기계와 같이 정밀한 작가의 멋진 작품에 반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들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목공예 작품과 밑그림만 보고도 책의 내용을 충분히 짐작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성격의 책도 아니었다.  답답함을 참지 못하던 아들은 끝내 나보다 먼저 책을 다 읽고는 내가 어디까지 읽었는지 확인하며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내게 묻곤 했다.  사실 이 책을 쓴 작가의 의도는 명확해 보였다.  자신의 목공예 작품을 보면서 작가 자신이 상상했던 짧은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그 이야기와 작품에 저마다의 상상력을 더하여 책을 읽는 재미와 조각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를 함께 누리도록 하자는 취지인 듯했다.

 

"이야기의 시간을 이미지의 시간으로 바꾸는 일, 그게 '이야기를만드는 기계'를 만드는 일이다.  반복적이고 단순한 동작이라도 거기에는 미세한 시간들이 옴짝달싹도 못하도록 달라붙어 있다.  시간이 없다면 움직임은 사라지고 시간이 없다면 이야기는 흐르지 않는다.  도대체 시간이 없어진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이야기가 흐르지 않는 세상은 살아 있는 세계가 아니다.  이야기가 길건 짧건 서사의 구조가 복잡하건 단순하건 이를 물리적으로 실현하는 일은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말을 엮어 이야기를 만드는 것과 톱니바퀴를 물려 기계를 만드는 것은 부분 혹은 부품들을 논리적인 절차와 구조를 통해 하나의 전체를 이루어내는 동일한 과정을 거치는 것처럼 보인다."    (11쪽)

 

잘 알려진 이야기처럼 '백년 동안의 고독'을 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 '잠자는 미녀'를 읽고 영감을 얻어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쓰게 됐다고 하지 않던가.  마르케스는 '이것이 내가 쓰고 싶은 바로 그 소설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좋은 책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책을 읽은 독자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책은 좋은 책의 범주에 속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책을 읽는 동안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책이라면 그 또한 좋은 책이 아니겠는가.

 

언젠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상상력 사전'을 읽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베르베르가 열네 살 때부터 자신의 상상, 자신의 흥미를 끄는 새로운 사실들, 발상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역설적인 지식들을 기록한 노트가 바탕이 되었다는 이 책은 어떤 주제나 교훈을 기대하는 것 없이 자신이 읽고 싶은 부분만 가려서 읽을 수 있어서 좋았었다.  이 책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에 등장하는 작품의 갯수만 하더라도 70여 개에 달한다.  생명이 없는 나무조각을 깎고 다듬어 형체를 만들고 톱니를 맞물려 움직이는 인형으로 만들기까지 작가는 아마도 많은 시행착오와 함께 자신이 상상한 이야기들을 몇 번이고 수정하며 또 덧붙였을 것이다.

 

기계치에 가까운 나는 작가처럼 나무를 깎아 형태를 만들고 움직임을 창조하는 일은 할 수 없다.  아니 엄두도 낼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만든 작품을 보며 몇 번이고 감탄할 수는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와는 다르게 제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녀석의 상상력도 이 책을 같이 읽은 덕분에 이전보다 한 뼘쯤 더 자라나지 않았을까? 

 

"나무의 물리에 쏠려 있는 목수가 도달하지 못하는 수많은 영역들이 있다.  모든 직업과 마찬가지로 한 가지 직업이 쌓은 세월은 깊이가 아니라 협소함으로 드러난다.  목수의 시간은 상상의 영역을 저만치 밀어버렸고 기능과 쓰임에 충실한 나머지 그밖의 모든 쓰임들은 장식적이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전락시켰다.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인 절차, 이를테면 치밀한 계산과 구조에 대한 기계적 이해, 원리에 대한 과학적 접근 역시 몸에 밴 경험의 범주에 가두어버렸다.  기능의 쓸모를 버리고 유희의 쓸모 혹은 미학적 쓸모를 찾는 동안 여기저기 뚫린 구멍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203쪽)

 

우리나라의 교육에 있어서도 상상이나 유희의 영역은 이제 아주 먼 옛날 이야기처럼 쓸모가 없는 것쯤으로 치부되고 있다.  아들과 이 책을 읽으며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는데 말이다.  우리 각자는 좋아하고 맘에 들어하는 작품도 달랐고, 좋아하는 이야기도 달랐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을 가졌었다.  그 짧았던 시간이 우리에게 주었던 행복한 느낌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경쟁을 위한 공부의 세계로 아들을 내몰아야 한다는 현실이 못내 안타까울 뿐이다. 

s*****l 2013.02.23.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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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를 보는 기분,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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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직접 만들어낸 태엽으로 움직이는 목공예 작품과 함께 짧은 단편이 어우러져 있는 책이다. 이 책을 보면서 이 책을 미술작품 사진이 담겨 있으니 예술로 분류해야 할지,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소설로 분류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책 설명을 보면 볼수록 더 아리송하다.   특히 전작인 상상목공소 2탄이라는 얘기에 더 혼란에 빠졌다. 상상목공소는 철학으로 분류되어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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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직접 만들어낸 태엽으로 움직이는 목공예 작품과 함께 짧은 단편이 어우러져 있는 책이다. 이 책을 보면서 이 책을 미술작품 사진이 담겨 있으니 예술로 분류해야 할지,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소설로 분류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책 설명을 보면 볼수록 더 아리송하다.

 

특히 전작인 상상목공소 2탄이라는 얘기에 더 혼란에 빠졌다. 상상목공소는 철학으로 분류되어 있으니 말이다... 결국 '이야기'에 더 중점을 둬서 현대소설로 분류해두긴 했는데, 다른 도서관에서 어떻게 생각할지는 또 모를 일이다. 예스24에서는 에세이 분야에 뒀던데...아.. 모르겠다. 분류의 신비여...

 

그런데 이런 혼란이 책 속에서도 그대로 느껴져서 흥미로운 책이었다. 예술은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를 유추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그런데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 지침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달아놓았다.

 

그런데 이 이야기도 아리송하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싶기도 하고, '이건 말도 안 돼.' 싶기도 하고. 빨리 읽자면 앉은 자리에서 후딱 읽을 수 있는 책이고, 오래 두고 읽자면 두고두고 봐도 왜 이런가 싶은 책이기도 하다. 여하튼, 독특한 시도와 상상력, 그리고 나무를 깎아 이야기를 전개하는 인고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책이다.



a***a 2013.01.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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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만드는 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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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하는 것을 똑같이 따라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새로운 것을 창작해내는 것이다. 요즘 특히 그림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러다보니 그런 생각이 더 강화되었다. 특히 <명화 속 비밀 이야기>를 읽으며,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표현해내는 작가들의 예술 세계에 감탄했다. 책 속에서 들려주는 이야기에 대한 상상은 사실 책을 읽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각자 다른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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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들이 하는 것을 똑같이 따라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새로운 것을 창작해내는 것이다. 요즘 특히 그림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러다보니 그런 생각이 더 강화되었다. 특히 <명화 속 비밀 이야기>를 읽으며,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표현해내는 작가들의 예술 세계에 감탄했다. 책 속에서 들려주는 이야기에 대한 상상은 사실 책을 읽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각자 다른 이미지로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을 표현해내는 사람들의 작품은 기가 막히다. 조금만 시선처리가 다르게 되어도 작품 내용은 180도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그것이 정말 다양하고 흥미롭다.

 

이 책의 작가는 1997년부터 나무작업을 해왔다고 한다. 여덟 차례나 <목수 김씨>전을 열었다는데, 역시나 내 관심분야가 아니었던 것이 맞나보다.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면 관심도 없었던 생소한 분야의 책을 왜 읽으려고 했나를 먼저 밝혀야겠다. 그것은 '이야기'라는 단어에 끌렸기 때문이다. 작품 자체보다 작품 해설을,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어서 이 책을 읽은 것이다.

 

 이 책을 접하고 나서야 깨닫는다. '창의적'이라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사실을. 누군가의 책을 보고 평가하는 것은 쉽지만, 그렇게 써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뼈를 깎는 고통과 두려움이 병행된다. 글을 쓰는 사람은 새로운 글을 쓸 때 창작의 고통이 뒤따르고, 마찬가지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이야기와 혼을 불어넣어야하기 때문에 새로운 탄생을 앞두고 방황하게 된다. 나에게는 다소 생소한 분야였던 깎고 다듬고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는 목수의 작품과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보게 된다.

 

 표지에 '김진송 깎고 쓰다'라고 저자 이름을 밝힌 것처럼, 저자는 목공예와 함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예술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책읽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새로운 교두보가 된 셈이다. 덕분에 눈돌리지 못했던 분야에 대한 감상으로 발을 내딛게 되었다. 작품을 보며 이야기도 듣고, 관심도 가져본다. 예술은 쉽고 어려움의 문제가 아니라, 같이 교감하고 마음을 흔들어 놓는 '느낌'이라는 생각이다.

 

 가장 나의 시선을 끌어들인 작품은 역시 책과 관련된 것, '책의 바다에 빠져들다'이다. 그 작품을 구상하고, 나무를 깎고, 형체를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과정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다는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s*****a 2012.12.27.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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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만드는 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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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물질들은 이야기를 위해 존재한다. 아니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지어내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종이 위에 새긴 글씨건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이건 컴퓨터 속에 깜박이는 빛이건 그 어딘가에 달라붙어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들이 그런 건 아니다. 더 많은 이야기들은 공기 중에 흩어져 사라지고 만다. 그 이야기들은 때가 되면 다시 그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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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물질들은 이야기를 위해 존재한다. 아니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지어내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종이 위에 새긴 글씨건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이건

컴퓨터 속에 깜박이는 빛이건 그 어딘가에 달라붙어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들이 그런 건 아니다.

더 많은 이야기들은 공기 중에 흩어져 사라지고 만다.

그 이야기들은 때가 되면 다시 그 어디엔가 달라붙어 살아있는 이야기로 되돌아 올 것이다.

그러니 어디엔가 부유하고 있는 생각의 입자를 잡아내고 싶다면

우리는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아니면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를 작동시키든 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집필 목적을 적은 글이라 생각한다.

공기 중에 흩어져 있는 이야기를 다시 살아있는 이야기로 되돌리는 작업을 하는

목공인형작가의 글이다.

나도 이야기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말로 이야기를 만들기보다는 글과 그림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재주가 좀 있는 듯 하다.

대부분의 내 이야기의 대부분은 공기 중에 흩어져 사라지지만

누군가에게 포집되어 족적을 남기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그럴 땐 참 행복하다.

그 누군가가 당신일때는 더욱더...

 

 

- 치즈를 훔쳐먹은 쥐

우리를 보고 무얼 훔쳐 먹는 다고 말들 하는 게 그건 말이 되는 소리가 아닙니다.

어디 한번 따져 봅시다. 훔친다는 것은 남의 것을 몰래 가져간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남의 것과 내 것이 따로 있다는 말입니까?

하지만 우리 쥐들에게는 소유를 구분하는 것이 의미를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인간들의 소유욕 따위란 아예 있지도 않단 말씀이지요.

네 것 내 것 구분 없이,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는 것이 우리들 원칙입니다.

그러니 나는 결코 치즈를 훔쳐 먹은 적이 없습니다.

거기 치즈가 있어서 먹었을 뿐입니다.

훔치고 다닌다는 그런 가당치 않은 말은 제발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습니다.

 

 

- 개와 의자 이야기

개와 의자와 사람의 관계이야기.

역사적 변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책의 하이라이트.

 

l***1 2013.03.1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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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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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토막을 깎고 다듬어서 만든 목물, 그 목물을 다른 목물과 연결을 하니 멋진 장면이 연출된다. 아니 그 목물들은 홀로 있어도 멋있다. 술을 마시는 할아버지, 잠을 자는 아이, 그 아이를 들여다 보는 해골, 거미, 의자, 강아지, 새끼 새에게 벌레를 물어다 주는 어미새, 사다리를 타고 보름달에 오르는 사람....   충분히 이 목물들은 홀로 있어도, 함께 있어도 한 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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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토막을 깎고 다듬어서 만든 목물, 그 목물을 다른 목물과 연결을 하니 멋진 장면이 연출된다. 아니 그 목물들은 홀로 있어도 멋있다.

술을 마시는 할아버지, 잠을 자는 아이, 그 아이를 들여다 보는 해골, 거미, 의자, 강아지, 새끼 새에게 벌레를 물어다 주는 어미새, 사다리를 타고 보름달에 오르는 사람....

 

충분히 이 목물들은 홀로 있어도, 함께 있어도 한 편의 이야기가 만들어 질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펼치면 빙그레 미소가 떠오른다. 아마도 독자들은 자신의 추억 속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할 것이다. 

아들이 어릴 때에 레고를 가지고 놀았다. 레코는 그 종류가 다양하여서 얼마든지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장난감이다.

똑같은 레고 상품이라고 하더라도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서, 언제 만드느나에 따라서, 어떤 생각을 하면서 만드느냐에 따라서 새로운 장면이 연출된다. 그런데, 아들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장난감 통에 있는 다른 장난감들을 함께 배열하면서 놀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왜 그 장난감을 그곳에 배열하였는가를 이야기하면서 놀았다. 문득, 그 장면이 떠올랐다.

이 책의 저자인 작가이자 목수인 김진송도 아들처럼 나무토막을 다듬으면서 이야기를 생각하였을 것이다. 페트롤리우무스의 전설을  떠올리면서, 로봇아이를 생각하면서 작업을 하기도 했고, 개와 의자를 보면서 개를 닮은 의자를 만들기도 했을 것이다.

      

움직이는 목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톱니바퀴를 몇 개를 달아야 할 것인지, 톱니바퀴의 크기는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에  달아야 할 것인지, 세밀하게 계산한 설계도와 제작과정이 목수의 생각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스쳐간다. 작가이자 목수인 저자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목물을 다듬었을까, 아니면 목물을 만들어 놓고 이야기를 생각했을까?   물론, 그 순서가 무슨 상관이 있으랴.

작가의 이야기가 있어서, 목수의 예술작품이 있어서 좋기만 한데....

이야기를 만드는 것과 목물 작품을 만드는 것은 너무도 닮아 있다. 이야기는 말을 엮어서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이고, 목물은 부분 부품이 모여서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톱니바퀴가 물려서 기계가 만들어지고, 그것은 곧 작품이 된다. 

저자는 그가 만든 목물들을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라고 표현한다. 목수에겐 목물을 만드는 것이 이야기의 시간을 이미지의 시간으로 바꾸는 일이었던 것이다.

글로 가득찬 책들이 말하지 못했던 그 부분들을 이미지로 가득 채우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일을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가 하였을까?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기계장치가 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내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책표지의 순하디 순한 강아지의 얼굴을 보면서 우리집 강아지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어진다. 동물병원에서 누군가의 집으로 팔려간 강아지가 이 집, 저 집을 거쳐서 새로운 주인을 만나고, 그곳에 적응해가는 이야기를, 작은 두 눈망울은 언젠지도 생각나지 않는 흘러간 시간 속에서 엄마 개의 젖을 먹고, 형제자매끼리 물고 뜯던 그 시절을 그리워 하는 듯한 촉축함이 묻어난다.

이야기가 있기에 추억이 있고, 이야기가 있기에 꿈이 있는 그런 이야기 속으로 잠깐 들어가 보면 어떨까?

 

 

 



n******5 2013.02.07. 신고 공감 0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