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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모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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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적인 언어를 통해 인간 경험의 주변부와 특수성을 탐구했다"라는 평가와 함께 201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인물.페터 한트케 Peter Handke <관객모독>은 순수하게,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이라서 읽게 되었어요.앗, 이 작품은 희곡이었어요. 아니 이것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희곡~물론 제가 희곡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구성 요소가 있잖아요.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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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적인 언어를 통해 인간 경험의 주변부와 특수성을 탐구했다"라는 평가와 함께 

201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인물.

페터 한트케 Peter Handke 


<관객모독>은 순수하게,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이라서 읽게 되었어요.

앗, 이 작품은 희곡이었어요. 

아니 이것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희곡~

물론 제가 희곡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구성 요소가 있잖아요.

등장인물과 배경에 대한 설명 그리고 대사와 지문 등등.

<관객모독>에는 그런 요소들이 없어요. 기존 희곡의 틀을 벗어난 작품인 거죠.


등장인물은 배우 네 명.

첫 페이지는 《배우를 위한 규칙들》이 자유분방하게 적혀 있어요.


가톨릭 성당에서 신부와 신자들이 번갈아 올리는 기도를 귀 기울여 들을 것.

축구장에서 외쳐대는 응원 소리와 야유 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것.

데모하는 군중들의 구호 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것.

안장이 땅을 향해 거꾸로 세워진 자전거에서 돌아가는 바퀴살이 조용해질 때까지 그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멈추어 설 때까지 바퀴살을 자세히 관찰할 것.

콘크리트 믹서 엔진을 켜고 점점 커지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것.

논쟁 때 오고 가는 말들을 귀 기울여 들을 것.

롤링 스톤스가 부르는 「텔 미」란 노래를 귀 기울여 들을 것.

기차들이 동시에 출발하고 도착하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것.

라디오 룩셈부르크의 히트퍼레이드를 귀 기울여 들을 것.

유엔 회의를 동시에 중계하는 아나운서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것.

「툴라의 함정」이란 영화에서 미녀가 보스에게 앞으로 몇 명이나 더 죽이겠느냐고 질문하자,  

보스는 몸을 뒤로 기대면서 아직 몇 명이나 더 남았지? 라고 묻는다.

범죄 조직 보스(리 제이 콥)와 미녀의 이 대화를 귀 기울여 듣고, 동시에 보스를 자세히 관찰할 것.

비틀스 영화들을 자세히 관찰할 것.

최초의 비틀스 영화에서 링고 스타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조롱당한 후 드럼 앞에 앉아 드럼을 두들기기 시작하는 그 순간의 미소를 자세히 관찰할 것.

「서부에서 온 사나이」라는 영화에서 게리 쿠퍼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할 것. 

위의 영화에서 몸에 총을 맞고 폐허가 된 도시의 황량한 거리를 절뚝거리며 한참을 달려가다 쓰러지면서

날카롭게 고함을 지르는 벙어리의 죽음을 자세히 관찰할 것.

동물원에서 인간을 흉내 내는 원숭이들과 침을 흘리는 라마들을 자세히 관찰할 것.

건달이나 게으름뱅이들이 거리를 걸어다니는 모습이나 슬롯 머신 앞에서 도박하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할 것.   (11-12p)


텅 빈 무대에 배우 넷이 등장하면서 곧바로 관객들을 쳐다보지 않아요. 그들은 걸으면서 연습하고, 말을 하지만 관객을 향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목소리를 제외하고는 다른 이미지가 나타나서는 안 되고, 욕설을 하더라도 누구를 겨냥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들의 말투가 어떤 의미를 나타내서는 안 돼요.

그들은 욕설 연습이 끝나기 전에 무대 앞쪽에 도착하여 자유롭게 서 있어요. 이제 관객을 바라보지만 관객 중 어느 누구도 주시하지 않고, 잠시 말없이 서 있어요.

그다음... 그들은 말하기 시작해요. 말하는 순서는 자유롭고, 모두가 대략 같은 분량으로 대단히 열심히 말해요.


<관객모독>은 매우 짧은 희곡이라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어요.

그러나 읽는다고 해서 그 내용을 다 이해했다고 볼 수는 없어요. 저 역시, 이게 무슨 의미일까를 생각했어요.

정말 아이러니한 것 같아요. 마치 '파랑 코끼리'를 절대로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자꾸만 떠오르는 것처럼.

<관객모독>은 어떤 사건이나 줄거리가 없어요. 배우들은 아무것도 연기하지 않고,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아요. 단지 말만 해요. 

이 희곡에는 무대 위의 불빛도, 배우들이 입고 있는 옷도 무엇인가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밝히고 있어요. 아무것도 암시하지 않는다고.

관객들은 언어의 희극을 즐기는 거라고 이야기해요. 그러니까 관객들은 연극을 체험하는 것이며, 연극 관객의 역할이 되는 거예요.

이제껏 관객은 연극 무대를 지켜보는 관찰자 입장이었다면, <관객모독>에서는 무대 위쪽과 아래쪽이라는 두 세계가 존재하면서 관객의 역할을 맡게 돼요.

그러나 관객이 연극에 참여하지는 않아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앉아 있어요. 관객이 주제이고, 관객이 한 사건이지만 어떤 유형일 필요는 없어요.

 "여러분은 발견됩니다. 여러분은 오늘 저녁 발견된 것입니다." (27p)


제가 <관객모독>을 읽으면서 놀랐던 점은 뛰어난 작품성이 아니에요. 

1966년 6월 8일 프랑크푸르트 탑 극장에서 첫 공연을 했다고 해요. 와우, 이 희곡으로 공연이 가능하다고? 솔직히 배우들이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당시 흥행기획자들과 연극 평론가들은 "이야깃거리가 없는 현학적인 서술"이라는 혹독한 평가를 했대요. <관객모독> 이전에 발표했던 첫 소설 『말벌들』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니 <관객모독>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거죠. 그러나 반전!

실제 공연된 <관객모독>은 관객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한트케가 문학적 명성을 얻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해요. 

<관객모독>에 관한 작품해설을 읽은 후에 《배우를 위한 규칙들》 다시 읽어보았어요.

아주 진지하게, 좀 더 깊이 있게... 그러자 '귀 기울여 들을 것'과 '관찰할 것'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 마냥 또렷하게 보였어요.

결국 <관객모독>은 어떤 관객이 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와 가치가 달라질 수 있는 작품인 것 같아요. 


한트케는 1966년에 쓴 「문학은 낭만적이다」라는 소론에서

 "한 단어의 중요성은 그 단어의 의미가 아니라 (......) 그 단어가 언어에서 어떻게 사용되는가 하는 것"이라는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을 인용했다. 

이 언어 철학으로부터 한트케는 한 단어를 다양하게 사용함으로써 생겨나는 유희의 가능성을 배웠다. (76p)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a*****7 2019.11.0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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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없음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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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연극을 보러 가도 공연장의 분위기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내 앞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집중하지 못하고 자주 땅바닥을 보곤 했다. 혹시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어색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지금은 꽤 유명해진 배우가 나온 연극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는 좀 튀는 걸 좋아해서 의미 없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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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연극을 보러 가도 공연장의 분위기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내 앞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집중하지 못하고 자주 땅바닥을 보곤 했다. 혹시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어색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지금은 꽤 유명해진 배우가 나온 연극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는 좀 튀는 걸 좋아해서 의미 없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제 막 연기를 끝낸 배우에게 내가 뭐라고.


페터 한트케의 『관객모독』의 시작은 흥미롭다. 기존 희곡의 서술의 방식에서 벗어난다. 배우를 위한 규칙들로 시작된다. 연극을 준비하는 배우들은 한트케가 지시하는 규칙을 이행해야 한다. 사물의 소리를 듣고 현상을 목도하는 일. 발성을 가다듬고 호흡법을 연습하고 얼굴 표정을 짓는 일이 아닌 소리를 들으며 의식의 밑바닥에 있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네 명의 배우는 대사를 따로 나누지 않고 원하는 방식으로 극을 이끌어 간다.

여러분으로 시작해서 너희들로 끝나는 기괴한 연극. 배우의 음성이 아닌 활자로 된 언어로 『관객모독』을 보면서 무대를 상상했다. 그 안에는 숨을 자유롭게 쉬고 어색하게 눈치를 보는 일도 없을 것이다. 잘 차려입고 오랜만에 문화적 허영심을 충족하러 온 관객을 향해서 독설을 날린다. 기존에 봐 왔던 연극이 아니어서 관객들은 당황할 것이다. 관객을 무대로 끌어들여 그들의 의식을 허세를 낱낱이 까발린다. 『관객모독』은 줄거리가 따로 없는 희곡이다. 


연기를 하지 않는 연기를 하며 대사가 아닌 대사를 한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배우의 움직임과 대사의 상징을 찾는 일은 의미 없는 일이다. 시간의 흐름이 있다고 믿는 관객에게. 지금 무대의 시간이 흘러 다음이 있다고 믿는 관객에게 이곳의 시간은 흘러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고 아무것도 흉내 내지 않는 연극을 한다고 당당히 말한다.

허구의 세계 안에서 환상은 실종된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은 환상이 되어 사라진다. 시간은 정지하고 언어는 소멸한다. 『관객모독』은 언어로써 시간의 부재를 증명하려 한다. 실컷 모욕과 모독을 보여주고 안녕히 돌아가시라는 끝인사를 하는 연극. 당신은 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페터 한트케가 궁금해서 이 글을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 의미 없는 일.

『관객모독』은 의미 없음의 의미를 찾아간다. 당신이 찾고자 하는 의미는 이 세계에 어디를 둘러봐도 없으며 결국 의미 없음으로 귀결되는 결과를 받아들고 쓸쓸히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연극에서 퇴장할 일만 남았다. 한밤중 들려오는 개와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막힌 수챗구멍을 들여다보는 일. 문학은 존재하지 않는 구멍에 나를 끼워 보는 일.



s*****m 2019.10.2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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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적 인간에게 퍼붓는 언어적 전기 치료 - 페터 한트케 『관객모독』
"수동적 인간에게 퍼붓는 언어적 전기 치료 - 페터 한트케 『관객모독』" 내용보기
대단한 선풍을 끈 『관객모독』의 탄생 배경은 다소 서글프다. 23세에 쓴 첫 소설 『말벌들』로 법학 공부를 버리고 전업 작가의 길을 택한 한트케는 현실의 벽에 부딪혔고, 경제적으로 수입이 보장되는 희곡을 써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래서 나온 게 『관객모독』이다. “이야깃거리가 없는 현학적인 서술”이라는 『말벌들』(1966년)에 대한 평과 비슷하게 『관객모독』도 워낙 전
"수동적 인간에게 퍼붓는 언어적 전기 치료 - 페터 한트케 『관객모독』" 내용보기

 

 

대단한 선풍을 끈 『관객모독』의 탄생 배경은 다소 서글프다. 23세에 쓴 첫 소설 『말벌들』로 법학 공부를 버리고 전업 작가의 길을 택한 한트케는 현실의 벽에 부딪혔고, 경제적으로 수입이 보장되는 희곡을 써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래서 나온 게 『관객모독』이다. “이야깃거리가 없는 현학적인 서술”이라는 『말벌들』(1966년)에 대한 평과 비슷하게 『관객모독』도 워낙 전위적ㅡ등장인물의 역을 전혀 분배하지 않은 점, 뚜렷한 서사나 장면도 없는 진행ㅡ이라 여러 곳에서 퇴짜를 맞았고, 1966년 6월 프랑크푸르트 탑 극장에서 어렵게 첫 공연을 열 수 있었다.

전문가들로부터 연극 공연으로 부적합하다는 평을 받았던 『관객모독』이 관객들로부터는 왜 그토록 갈채를 받았을까? 당시 독일의 문단은 패전 후 “연합국 측이 독일을 동과 서로 나누어 지배하게 된 1974년을 기점으로 삼아, 서독 문인들이 독일의 전쟁 범죄 행위에 속죄하는 심정으로 조금도 속이지 않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쓰겠다는 공감대 속에서” 결성된 ‘47그룹’이 ‘신사실주의’ 또는 ‘참여문학’이라 불리며 큰 주류를 형성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하인리히 뵐과 귄터 그라스도 47그룹에 속했다. 그러나 한트케는 그들의 문학을 맹렬히 비판했다.

 

"여기서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도 서술 불능이 독일 문학을 지배하고 있다.(무언가 아는 것이 없더라도 적어도 서술은 할 수 있어야 한다.) 창조성과 성찰도 부족하며, 이러한 산문은 무미건조하고 어리석다. 그리고 무미건조하고 어리석기는 비평도 마찬가지며, 비평의 방법은 아직까지도 여전히 낡은 서술 문학에서 성장한 것이어서 모든 다른 종류의 문학에 대해서는 그저 비난이나 하고 지루함이나 퍼뜨릴 뿐이다.(1966년 5월 6일, 《디 차이트》)"

 

자국의 동시대 문학에 대한 반발과 함께 한트케의 문학 세계는 다른 축도 가지고 있다. 언어학자 소쉬르의 언어 이론과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철학,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문학 이론, 롤랑 바르트 같은 프랑스 구조주의, “낡아 버린 형식들에 대한 거부”를 창작의 기본으로 삼은 알랭 로브그리예 같은 ‘누보로망’ 작가의 영향이었다. ‘언어 이론, 형식주의, 구조주의 등과 같은 외국 사조’의 영향으로 형성된 그의 문학 논리는 서독 문단을 주도하던 47그룹의 문학 자세와 서술 방법과도 대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특징은 그의 이후 작품에서도 눈여겨볼 점이다.

 

 

“나는 독일어권에서 프랑스 구조주의의 영향을 받은 유일한 작가”

“문학이란 언어로 만들어진 것이지 그 언어로 서술된 사물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내 첫 희곡들의 작법은 (……) 연극 진행을 단어들로만 한정한 것이었다. 단어들의 서로 다른 의미는 사건 진행이나 개별 이야기를 방해했다. 연극이 어떤 구체적인 상(想)을 그리지도 않고,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거나 현실이 아닌 것을 현실로 착각하게끔 하지도 않으며, 오직 현실에서 쓰이는 단어와 문장으로만 구성된다는 점, 그것이 이 작법의 핵심이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방법들에 대한 거부가 내 첫 희곡의 작법이었다.”

        

 

 

옮긴이도 말했다시피 연극 <관객모독>의 인기는 쟁쟁한 주류 문단과 대결하는 한트케의 개성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사건이나 개인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서술해서 어떤 상(想)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단어와 문장만으로 작품을 구성했다는 것이다. 내용은 없고 단어나 문장이 비트 음악처럼 반복되는 연극인 것이다. 이것을 한트케는 언어극이라 부른다. 한트케가 거부한 기존의 연극은 구체적으로 현실을 서술하며, 언어극과 대비된다."고 한 옮긴이의 분석도 옳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하면 『관객모독』에 처음 제시된 ‘배우들을 위한 규칙들’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기도, 축구장 응원 소리, 데모하는 군중들의 구호 소리, 자전거의 바큇살, 콘크리트 믹서 엔진 소리, 논쟁, 롤링스톤즈의 노래, 기차의 소리, 라디오 소리, 유엔 회의를 중계하는 아나운서들의 말, 영화의 소리와 동작, 동물원의 원숭이와 라마들에 대한 관찰, 건달이나 게으름뱅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간과하는 ‘소리와 언어’, ‘원초성과 의미 작용’에 관심을 가지라는 지침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레이션-서술은 극장이 관객들을 꼼짝없이 가두듯 글을 읽는 우리를 가둔다. 나는 e book 듣기로 읽어서 독자보다는 관객의 입장에 더 가까웠는데, 막간 없는 언어 공세가 속사포처럼 이어졌다. “내 희곡은 단어와 문장으로만 구성되었고, 중요한 것은 의미가 아니라 그 단어의 다양한 사용”이라는 한트케의 의도를 안다고 해도 그의 언어유희와 욕설의 심중을 따져 볼 새도 없이 진행되다가 순식간에 끝난다. 이 희곡은 사고, 행동, 현실에서 수동적 인간에게 퍼붓는 언어적 전기 치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 사용된 언어들이 당시에 작용했던 전위성만큼 지금도 그런가 하면 나는 글쎄. 냉소적인 단어와 욕설 대사(“전쟁광들아, 짐승 같은 인간들아. 공산당 떼거리들아, 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들아, 나치의 돼지들아.” 등)를 듣고 지금 사람들이 충격을 받을까. 언어 비트의 전위성이라면 요즘의 힙합 가사가 더 노골적이며 선동적이다. 온갖 장르에서 펼쳐지는 전위성은 『관객모독』을 뛰어넘는다. 그럼에도 전위성의 선두 주자로서 『관객모독』의 의의는 크다. 셰익스피어는 “세상은 무대이고 우리 모두는 배우들”이라고 했다. 한트케가 제안한 ‘배우들을 위한 규칙들’과 이 희곡의 내용 모두는 현실이란 무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이다. 지금 우리는 얼마나 살아 있는가.

 

『관객모독』 밑줄 긋기

 

*

우리는 말만 하기 때문에 그리고 허구적인 것은 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확실치 않거나 모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연기하지 않기 때문에, 이곳에 두 차원 혹은 여러 차원은 존재할 수 없고 연극 속 연극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몸짓도 하지 않고,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고, 아무런 연기도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문학적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단지 말만 하기 때문에, 우리는 문학이 지닌 다양한 의미를 상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예를 들어 이미 언급한 죽음의 표정과 몸짓으로 지금 현재 통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성교의 몸짓과 표정을 동시에 보여 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중 의미를 지닐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중 의미를 지닌 채 연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세상에서 떼어 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문학적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최면을 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허상을 보여 주며 믿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거짓 싸움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두 번째 자연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연극을 보는 것은 최면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상상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눈을 뜬 채 꿈꿀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꿈의 비논리로 무대의 논리를 대하도록 강요받지도 않습니다. 무한히 펼쳐질 수 있는 여러분의 꿈은 좁은 무대 위에서 제한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부조리한 여러분의 꿈은 무대의 현실적인 규칙에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꿈도 현실도 상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삶에 대해서도 죽음에 대해서도, 사회에 대해서도 개인에 대해서도, 자연에 대해서도 초자연에 대해서도, 쾌락에 대해서도 고통에 대해서도, 현실에 대해서도 연극에 대해서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시간은 우리에게서 어떤 비가(悲歌)도 불러내지 못합니다. 

 

 

**

이 작품은 일종의 머리말입니다. 다른 작품에 대한 머리말이 아니라 여러분이 과거에 했던 것과, 지금 하고 있는 것, 그리고 앞으로 할 것에 관한 머리말입니다. 여러분은 주제입니다. 이 작품은 주제에 대한 머리말입니다. 여러분의 관습과 도덕에 관한 머리말입니다. 여러분의 행위에 대한 머리말입니다. 여러분의 무위(無爲)에 대한 머리말입니다. 여러분이 누워 있는 것, 앉아 있는 것, 서 있는 것, 걸어가는 것에 대한 머리말입니다. 이것은 삶의 진지함과 유희적인 면에 대한 머리말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할 연극 관람에 대한 머리말이기도 합니다. 또한 다른 모든 머리말들을 위한 머리말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세계극입니다.

 

 

 

 

 

g******i 2019.10.2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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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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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패터 한트케가 그 유명한 [관객모독]의 작가란 사실을 뒤늦게 알고 이 책을 구입했다. [관객모독]이 아주 오래전부터 연극으로 수없이 공연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한번도 보지못했다. 책을 읽은 감상을 적자면 이해불가였다. '치열한 언어실험'이란 표현은 수긍이 간다. 독일어를 알았다면 그래서 독일어로 이 대본을 읽거나 연극으로 보았다면 원어로서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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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패터 한트케가 그 유명한 [관객모독]의 작가란 사실을 뒤늦게 알고 이 책을 구입했다. [관객모독]이 아주 오래전부터 연극으로 수없이 공연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한번도 보지못했다.
책을 읽은 감상을 적자면 이해불가였다. '치열한 언어실험'이란 표현은 수긍이 간다. 독일어를 알았다면 그래서 독일어로 이 대본을 읽거나 연극으로 보았다면 원어로서 분명히 느꼈을지도 모를 뉘앙스나 그 파격적인 형식에 대한 충격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번역해놓은 글로서는 나의 한계였겠지만 어려웠다. '현실의 위선과 부조리를 드러낸 문제작'이라니 그 점에 있어서는 작품의 함의를 읽어낸 뛰어난 독자들이 부럽다.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니 문학이 아닌 연극에서 맛볼 수 있는 새로운 카타르시스가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다. 연극을 봐야겠다.
'독창적인 언어'를 번역해서 읽게 되는 외국인이 그 독창성을 얼마나 음미하고 향유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난 회의적이다. 안타깝다.
h****k 2021.03.07.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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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틀을 깨며 관객을 무대로 끌어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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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모독'은 전통적인 연극의 형식을 과감히 해체한 작품이다.이 희곡에는 뚜렷한 줄거리도, 인물의 갈등도 없다. 무대 위의 배우들은 역할을 연기하기보다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건네며 연극이라는 형식 자체를 해부한다.결국 작품의 끝에서는 관객을 향한 노골적인 비난과 도발이 이어지는데, 이는 단순한 모욕이 아니라 연극과 언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장치다.이 작품은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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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모독'은 전통적인 연극의 형식을 과감히 해체한 작품이다.

이 희곡에는 뚜렷한 줄거리도, 인물의 갈등도 없다. 무대 위의 배우들은 역할을 연기하기보다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건네며 연극이라는 형식 자체를 해부한다.

결국 작품의 끝에서는 관객을 향한 노골적인 비난과 도발이 이어지는데, 이는 단순한 모욕이 아니라 연극과 언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장치다.

이 작품은 관객을 수동적인 관람자가 아닌 참여자로 끌어들이며,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연극’이라는 장르의 틀을 낯설게 만든다.

전통적 서사를 기대한 독자에게는 다소 당혹스러울 수 있지만, 예술이 질문을 던지는 방식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실험적인 작품이다.

큰 의미를 두지 않은 채 읽었지만, 흥미롭게 정독을 하였다.
o******r 2026.03.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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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당신에 대한 모독이자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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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는 극이 시작되기 전 '배우를 위한 규칙들'을 언급한다.그 규칙엔 롤링 스톤즈의 노래를 듣는 것, 비틀스 영화를 자세히 관찰하는 것이 있다.이것은 시대를 파괴할 작품이 시작된다는 선언이다.여기서는 연극이 무엇인지를 다루지는 않습니다. 여기서는 여러분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호기심은 만족스럽게 채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떠한 불꽃도 우리로부터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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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는 극이 시작되기 전 '배우를 위한 규칙들'을 언급한다.

그 규칙엔 롤링 스톤즈의 노래를 듣는 것, 비틀스 영화를 자세히 관찰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시대를 파괴할 작품이 시작된다는 선언이다.


여기서는 연극이 무엇인지를 다루지는 않습니다. 여기서는 여러분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호기심은 만족스럽게 채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떠한 불꽃도 우리로부터 여러분에게 전달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긴장 때문에 그럴 여유도 없을 것입니다. 이 널빤지 무대가 바로 세상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이 널빤지는 세상에 속합니다. 이 널빤지는 우리가 그 위에 서는 것을 도와줍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의 세계입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울타리 밖 구경꾼들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주제입니다. 여러분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우리 언어의 중심입니다. 22p


우리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대화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화하지 않습니다. 25p


극이 시작되고, 배우의 가차없는 독백이 쏟아진다.

이것은 대화가 아니다. 그저 언어가 쏟아지는 극이다. 관객과 소통하지 않는다. 심지어 모욕적인 말들을 쏟아낸다. 대화의 실패가 아닌, 고의적인 대화의 단절이다. 언어 전달은 시작부터 단절을 향해 있다. 관객을 배려하는 듯하지만 어디까지나 배우의 전달만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아니, 처음부터 극이라는 것에 의미가 있었을까?


화자는 관객과 배우의 관계에 대해서 언급한다"여러분은 의미가 없습니다" (21p), "여러분이 주제입니다, 여러분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우리 언어의 중심입니다."(22p), "여러분은 우리 언어극의 객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또한 주체입니다"(30p)라고 말하며 수동성과 능동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흥미로운 점은 여러분은 그 무엇이면서 그 무엇도 아니라는 것이 극장이라는 '수동적 형태'에서 전달된다는 것이다. 또한 '당신의 권리'와 '능력'을 말해주지만 그것을 수동적으로 앉아 듣고 있다는 형식은 주체성이 경험되지 않고 그저 수동적으로 전달되는 모순을 보여준다.


수동성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수동성'에 이어지는 관객의 '무능력'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여러분은 어떤 형태도 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암시도 볼 수 없습니다." (22p)에서 볼 수 있듯 "~할 수 없습니다"라는, '무능력'의 주문이 이어진다. 공간도 소음도 빛도 보고 듣지 못한다. 기대의 충족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관객들은 무언가를 기대하며 극장에 왔고, 객석에 앉았지만 그 기대는 충족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 "~할 것이라며" 관객의 존재까지 화자가 설정하고 있다. 행동한다고, 존재한다고 말하기 때문에 존재하거나 행동하는 것인가? 그리고 '존재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실존주의적인 논의로 이어진다.


자 그렇다면, 이 극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여러분은 언어의 희극을 즐기는 것입니다. 25p


화자는 그저 언어의 희극을 즐기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언어 자체가 어떤 희극성을 갖는지 생각해 보라는 말이다.더불어 비극이 아닌 '희극'이라는 표현에서 이 언어의 특징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화자의 말에선 크게 두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첫째로, 언어의 무의미의 대잔치가 벌어진다는 점이다. 둘째로, 상반된 가치의 충돌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들은 단순히 '개소리'로 치부돼야 할 것인가? 이는 '언어'의 불완전성과 무의식, 변증법적 사고를 나타내는 의도된 발화다. 이 불안함, 개소리적 특징은 한트케 작품의 특징이며 의도적인 것이다.


여러분은 이미 나름대로 생각했을 겁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무엇을 거부하는지 아셨을 겁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반복하고 있다는 것도 아셨을 겁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항변하고 있다는 것도 아셨을 겁니다. 여러분은 이 작품이 연극에 대한 토론이라는 것도 아셨을 겁니다. 여러분은 이 작품의 변증법적 구조도 아셨을 겁니다. 여러분은 확고한 반항 정신도 아셨을 겁니다. 여러분은 작품 의도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인식하셨을 겁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무엇보다도 거부한다는 것을 아셨을 겁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반복한다는 것을 아셨을 겁니다. 여러분은 아셨을 겁니다. 여러분은 꿰뚫어 보셨을 겁니다. 여러분은 아직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작품의 변증법적 구조를 아직 꿰뚫어 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알아차립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너무 느립니다. 이제야 여러분은 우리 속셈을 아셨습니다. 31p


먼저 상반된  변증법적 구조에 대해서는 많은 독자들이 이해 했을 것이다. 모순과 대립의 발화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합으로 나아가야 할까? 그러니까, 이 대립적 구도에서 어디로 나아가야 하냐는 의문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저 관객과 배우의 관계에 대해서, 수동-능동의 틀을 갖고 노는 재미에서 멈춰야 할까? 


배우는 관객의 생각이 너무 느리다 말한다. 말이 먼저 오고 사고는 그 뒤에 혹은, 의미보다 언어가 먼저 나타난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메시지인, 인간은 언어에 갇혀있다는 구조주의적 특징과 의미 전달의 붕괴다. "여러분은 존재 가치가 없습니다."(32p)라며 과한 모독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깊은 비판이라기보다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라는 주문이다. '가벼운 형식'을 빌려서 말하고 있다.


"시간은 여러분의 순간에 따라 측정됩니다."(33p), "시간은 이미 지나가고 있습니다. 시간은 반복되지 않습니다."(34p),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대해 말합니다. 우리는 가장하지 않습니다." (35p) 여러분은 무엇인가가 됩니다. (...) 여러분은 관객입니다. (...) 여러분은 참여할 수 있습니다. (37p)


시간은 반복되지 않지만 관객의 순간에 따라 측정되며, 극 속에서 관객은 무엇인가가 된다 말한다. 앞서 관객의 수동성을 강조했지만, 관객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극장은, 특히 배우가 말하고 있는 공간은 결코 세계가 아니며 질서도 없다. 그러나 배우는 살아 움직이기도 한다. 무한한 생명을 지니는 원천이다. 그러니까 결국 배우에게서 무언가가 시작된다는 의미다. 무대는 생명이 없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배우로부터 가능성이 피어난다.


화자는 예술을 감상하는 것은 앉아있는 사람에게 더 어울리며, 모두가 똑같아져 몰입해 시간과 자신 스스로도 잊게 되는 순간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 이후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서있는 상태에서 여러분은 야유하는 사람의 역할을 더 잘할 수 있었을 겁니다."(39p) 주체와 생각하는 주체의 구분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야유는, 부정적 발화는 뒤에서 언급하듯 진실포착의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분과 함께 연기했던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세계는 이곳에서 항상 뒤따라오는 세계였습니다."(49p) 그러나 관객과 배우는 함께 연극 되지 않는다. 언어는 먼저 앞서 나가고, 뒤틀린다. 


그런데, 앉아서 예술을 감상하며 몰입해 똑같아지는 경험을 하는 관객들은 그저 수동적으로, 부정적으로 바라봐야 할까? 일체감, 통일감은 수동성의 부정적 의미만을 갖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화자는 시간을 초월한 몰입의 세계에서 일체감을 경험하고 나와 개인으로 서야 할 필요를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관객이 두 시간대에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40p) 연극이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별 의미가 없었던 많은 연극들에는 사실은 숨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 대화나 몸짓, 소도구 사이엔 항상 어떤 저의가 있었고, 그것은 여러분에게 뭔가 의미를 표현하려고 애썼습니다. 항상 연극들은 어떤 애매한 의미나 불확실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49p) "우리는 오직 말만 하고 시간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없고 또 아무것도 보여줄 수가 없습니다."(53p)


시간 속에서 전해지는 언어로는, 언어의 '모습'으로는 어떤 진실을 보여줄 수 있다. 상연할 수 없는 배우는 그저 말만 할 수 있다. 현실을 보여주지 못하는 언어는 죽어있을 뿐이라는 의미다. "우리는 자신을 세상에서 떼어낼 수 없습니다." (54p) 하지만 그렇다. 우리는 현실과 엮여있다. 더 아나가 연극은 세상과 떨어질 수 없다는 의미다. 현실을 바꾸는 촉매제가 되어야 함을 암시한다. 혹은 배우는 애초에 시간을 벗어나지 못했기에, 유일하게 두 시간에 걸칠 수 있는 관객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음을, 변화는 관객에게 달려있음을 암시한다. 언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의미를 찾아야 한다. 능동과 수동의 상태와 통일감과 몰입의 세계를 직접 겪으며 나아가야 한다. 단지 앉아서 죽어있는 연극을 보는 수동적인 통일감이 아니라. 연극을 보고 난 뒤 관객은 생각을 하고 움직이게 '될 것이다.' 연극에 몰두한 통일체였다가 흩어지는 개인이 된다.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여러분은 곧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손뼉을 쳐야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점차 현실 세계로 돌아올 것입니다. ... 그리되면 여러분은 더 이상 연극에 몰두했던 통일체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한 장소에서 여러 다른 장소들로 흩어질 겁니다. 56p


자 이제 한트케의 삶과 시대를 말해주는, 옮긴이 윤용호의 도움을 조금 받아보자.

<관객모독>이 1966년에 완성되어 초연되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당대는 서구에서 변화의 물결이 일던 시기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쓰자"는 운동으로, 당대의 인기를 얻었던 47그룹을 오히려 서술 불능자라고 비판하며 논란에 올랐던 페터 한트케의 <관객모독>은 그의 젊음, 주장의 새로움, 비판의 논란과 함께 인기를 얻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생각했듯 <관객모독>을 무대에 직접 올려 성공할 거라 예측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편으론 <관객모독>의 흥행에서 현대사회의 모순을 볼 수 있다. 인간은 현실을 잊으며 비판에 들어가길 시도한다. 비판은 결국 부르주아의 산물이자 그 태도적 표현일 수밖에 없는 그 한계임을 생각해 보자. 관객은 이런 구도에서 한 번 더 모독 혹은 모욕을 받으며 스스로를 비판의 무대 한 가운데에 세운다. 그렇기에 이 개소리(?)의 향연으로 이루어진 작품이 발표되었을 때는 상당한 돌풍을 일으켰을 것이며, 이 양식이 현대 시와 같은 작품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고려할 때 그의 작품은 나름대로 가치를 갖지 않을까. 어쨌든 한 세계를 부수고 나오지 않았는가.


"한트케가 젊은 날 심취했던" 형식주의구조주의의 영향과 소쉬르의 언어학 이론에 기반을 두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작품은 소쉬르의 언어이론, 문자나 음성을 말하는 기표와 그것이 가리키고 있는 의미 내용인 기의의 관계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둘의 관계는 필연적이지 않고 자의적인데, 그렇다면 단어는 의미를 확실하게 표현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기표는 기표 간 차이에 의해서 의미가 도출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낱말의 대치되는 나열과 배우와 관객의 관계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아무것도 묘사하지 않으며, 우리는 우리 자신일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연기해 본 적이 없습니다." (53p)라는 말은 기표의 특징, 진실과 진리를 내포하지 않은 문자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우리는 저절로 움직이는 소도구들이 아닙니다. (...) 우리는 우리입니다. 우리는 작가의 대변자입니다. (...) 우리 의견이 작가의 의견과 일치할 필요는 없습니다."(24p)라는 말은 문자는 짐짓 의미와 연결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갈등 속에 있지만, 기표가 가지는 자의적 특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건이나 개인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서술해서 어떤 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단어와 문장만으로 작품을 구성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한트케는 언어극이라 부른다. 한트케가 거부한 기존의 연극은 구체적으로 현실을 서술하며, 언어극과 대비된다. 사실극, 또는 동독에서 브레히트가 노동자들을 계몽하기 위한 공연 기법으로 주장했던 서사극을 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76p



우리는 오직 언어로만 표현합니다. 41p


 화자는 언어로만 표현한다. 언어의 한계를 말하고 있지만, 동시에 사회와 연결된 언어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이는 언어라는 구조에 갇힌 인간을 표현하는 것이자, 흘러가는 언어와 포착하지 못하는 인간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화자의 말들은 리듬감을 느끼게 하며 쉽게 의미를 놓치게 하고, 사람의 혼을 빼놓는다. 현대사회가 무의미의 축제로서 일정한 리듬을 통해 정신을 흩트리지만, 그것 자체를 즐거움으로 느끼는 사회가 아니던가. 흘러가는 언어와 그럴듯한 언어, 표현할 뿐 의미를 갖거나 포착하지 못하는 사회. 이것이 희극이자 비극일 것이다.


"여러분은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에겐 말이 건네졌습니다. 여러분에겐 말이 건네질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말이 건네지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지루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에게 공기 같은 존재하는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는 바로 여러분이 있기 때문에 말하는 것입니다."(28p) 언어는 의미 전달에 실패하고 그 자체로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말이 건네야만 하는 인간 세상의 모순을 동시에 말하고 있다. 존재하고 있기에 말하고 있다. 그렇게 언어는 사회적으로 형성된다.


그렇다면 언어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한트케 식으로 말해보자. "당신은 들숨 날숨을 쉬고 있습니다. 당신은 눈을 3초마다 꿈뻑거립니다. 당신은 생각하는 걸 생각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행동들을 하나하나 생각할 것입니다."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숨 쉬는 것을, 눈을 감는 것을 의식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처럼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하게 해주는 것, 간혹 무의식이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여러분에게 말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신을 의식할 수 있습니다." (42p)


좀 더 넓게 봐서<관객모독>의 전체 틀을 언어 체계에 빗댈 수 있다. 관객은 발화자고 배우는 단어다. 혹은 작가가 발화자고 배우가 단어라는 틀로 생각해 보자. 관객들은 기대하며 연극을 보러 오지만 기대가 충족되지 않는다. 미시적인 측면과 거시적인 측면 모두에서 바라본다면, 극의 전개와 소쉬르의 주장이 공명한다. 화자는 당당하게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것이라 선언하는데, 이는 언어의 한계를 알면서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드러낸다. 화자의 발언 중 무능력, 기대의 불충족의 특징에서는 정신분석 이론을 엿볼 수 있다. 작품의 변증법적 구도는 현실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연극의 역할을 내비치고, 양가적인 심리적 감정을 인식하게 하며, 그것들을 그대로 내뱉음(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으로써 치유될 수 있다거나 진실을 포착할 수 있다는 함의를 갖는다. 


너희들은 뛰어난 연기자들이다. 멍청하게 서서 구경하는 꼴통들아, 조국도 없는 불쌍한 작자들아, 사이비 혁명가들아, 찌꺼기 같은 작자들아, 자기 나라를 헐뜯는 작자들아, 내면세 계로 이민 간 작자들아, 패배주의자들아, 수정주의자들아, 보복주의자들아, 군국주의자들아, 평화주의자들아, 파시스트들아, 주지주의자들아, 허무주의자들아, 개인주의자들아, 집단주의자들아, 정치적인 미성년자들아, 훼방꾼들아, 인기나 노리는 작자들아, 반민주주의자들아, 자학이나 일삼는 작자들아, 박수나 구걸하는 작자들아, 대홍수 이전에나 있었을 괴물 같은 작자들아, 돈에 팔려 박수나 치는 작자들아, 파벌이나 일삼는 작자들아, 천민들아, 돼지처럼 탐욕스러운 작자들아, 노랑이들아, 극빈자들아, 불평분자들아, 아첨꾼들아, 지적(HnB9)인 프롤레타리아들아, 허풍쟁이들아, 아무것도 아닌 작자들아, 쓸모없는 작자들아. 61-62p


극 말미에 욕설과 칭찬, 금기의 단어가 쏟아진다. 욕의 이미지, 자극, 파괴, 부정, 갈등들이 쏟아진다. 무수한 경계들과 모순들, 무의식을 무수히 내뱉는다. 정확히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정확히 모욕할 수 있을 때까지. 혹은 그저 모욕하고 싶은 마음이 해소될 때까지. 모든 대상들이 부정적으로 표현되지만, 책을 읽는 독자 혹은 관객은 이 대상 중 어떤 하나에 속할 것이다. 동시에 이 모든 것들은 인간 안에 있는 발화의 욕망으로, 독자 혹은 관객들을 겨냥하고 있다. '너'의 이야기가 아니면서도 '너'의 이야기임을 말하는듯하다. 이 작품은 머릿말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인간 행위의 시작은 언어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부정성과 어긋남은 당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환영받았다. 모독이 환영이 되는 순간이다.

여러분은 여기서 환영받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63p




YES마니아 : 로얄 d********9 2025.02.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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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관객모독 - 피터 한트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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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어   소쉬르에 의하면 언어는 문자를 통하여 소리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기표와 문자와 소리 이미지를 통해 개념이 발생하는 기의로 구성되어있다. 그런데 기표와 기의는 일치하는것이 아니다.   '빨갛다'라는 표현만 있고, '불그스름하다'는 표현이 없다면 불그스름한것을 '빨갛다' 라는 개념으로 인식할것이다. '개'를 말할때 어떤 사람은 흰 개를 떠올릴수 있고, 어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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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어

 

소쉬르에 의하면 언어는 문자를 통하여 소리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기표와 문자와 소리 이미지를 통해 개념이 발생하는 기의로 구성되어있다.

그런데 기표와 기의는 일치하는것이 아니다.

 

'빨갛다'라는 표현만 있고, '불그스름하다'는 표현이 없다면 불그스름한것을 '빨갛다' 라는 개념으로 인식할것이다.

'개'를 말할때 어떤 사람은 흰 개를 떠올릴수 있고, 어떤사람은 검은개를 떠올릴수 있듯이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르게 연상되는것이다.

 

즉, 언어는 형상 및 현상을 정확히 표현할수 없고, 정확히 표현하지 않을수 있다.

(그래서 라캉은 '기표는 기의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이때 기호는 그것 자체로 본질적으로 의미를 담고있는것이 아니라 관계속에서 차이에 의해 의미가 규정지어진다

'개'는 그 자체에 '개'의 본질을 담고있는것이 아니라 기호적 약속일 뿐이며, 그 약속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임의적인것이다.

즉, '개'는 '강','고','아'..등 다른 여러것으로 부르기로 약속하더라도 무방하다.

다시말해 임의적이라는것은 '개'가 아닌것과 구별짓기 위한 차이에 불과한것이다.

 

의미가 차이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것이며, 따라서 이와같은 차이의 관계를 본질로 하는 그물망이 언어체계이다

 

「관객모독」은 반복적이고 유사한 단어의 나열을 통해, 대상 또는 현상의 의미, 성질, 기능, 가치가 이미 주어진 개념이 아니라 이러한 언어의 차이에 따른, 그러므로 체계속에서 관계에 따른 것임을 표현한다.

 

p21 여러분에겐 말이 건네졌습니다. 여러분에겐 말이 건네질 것입니다.

 

p30 무언의 언어들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무언의 언어들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침묵은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습니다.

 

p31 여러분은 우리가 반복한다는것을 아셨을겁니다. 여러분은 아셨을겁니다. 여러분은 꿰뚫어보셨을 겁니다. 

 

p35 이것은 연극이 아닙니다. 이것은 진실이 아니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모순을 깨닫습니다. 시간은 여기서 언어연극에 사용됩니다.

 

p36 우리는 마치 말을 반복할수있는것처럼 행동합니다. 우리는 겉보기에는 반복합니다. 여기는 가상세계입니다. 여기서 가상은 가상입니다. 가상은 여기서 가상입니다.

 

p41 우리는 오직 언어로만 표현합니다. 우리는 단지 말할뿐입니다. 우리는 표현할 뿐입니다.우리는 우리 자신을 표현하는게 아니라 작가의 생각을 표현할 뿐입니다.

우리는 말로써 표현합니다. 우리 말은 곧 우리 행동입니다. 우리말은 곧 연극이 됩니다.

 

 

 

 

2. 의미

 

칸트가 의미는 내 머리에서 발생한다고 한것처럼 인간은 대체로 주체적으로 의사를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가 속한 구조에 의해 규정되어지는 것일수도 있다.

 

과거 사회에서 만들어진 집단의식과 규범이 있고, 그것이 세대로 전승되어 집단표상으로 발현된 사회에 내가 있는것이다.

그리고 집단표상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예가 언어이다.

 

"언어는 집단 표상에 근거한 사회적 존재이다."  --「종교에서 철학으로」 F.M.콘퍼드

 

다시말해, 언어를 사용한다는것은 의미가 외부의 구조(문화, 공간 등의 무의식적 영역)에서 발생하는것이며, 그 한계 안에서 갇혀있다는것을 뜻한다.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의식이 규정된다.

예를들어 모성애라는 단어는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희생을 강요함이 내포되어있다.

 

그래서 소쉬르는 '언어가 의식에 선행한다'라고 한다.

 

달리 말하면,  언어를 사용하는 한, 나는 외부의 구조에 의해 규정되고 제어된다.

 

또한 동일한 말이더라도 그 어감에 따라 다른 의미로 인식되기도 한다.

'잘한다'의 고유 의미는 '능숙하다'이지만 '한심하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며,

어느 피부과 실장님처럼 조곤조곤 상냥하게 말하지만 야릇한 멸시감을 주기도 한다.

 

즉, 기호는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는것이 아니라 관계속에서 의미가 형성된다.

그 관계는 시간성 속에서 형성된 기억으로 인해 만들어진다.

 

「관객모독」은 이러한 무의식적 영역인 구조적 틀에서 규정지어진 특성을 배제한 언어의 무의미성을 표현한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오는 욕설은 욕설이지만 관객은 기분이 상하지 않는다

욕설과 관객의 관계성, 시간성이 없기 때문이다.

 

p41 이곳엔 두 장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곳엔 오직 한 장소만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장소의 통일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의 시간, 즉 관객과 청중의 시간은 우리들의 시간, 즉 말하는 사람의 시간과 통일체를 이룹니다.

 

p44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현재를 의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보내는 이 시간이 바로 여러분의 시간임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p50 연극은 현실을 의미했습니다. 연극의 현실은 순수한 현실일수 없습니다. 연극은 의미를 암시했습니다.

시간이 연극에서 제거되는 대신 비현실적인 가상의 시간이 진행되었습니다.

 

p51 현실인 시간은 연기될수 없습니다. 시간은 연기될수 없기 때문에 현실 역시 연기될수 없습니다.

시간을 제거한 연극만이 연극입니다.

 

p63 쩨쩨한 인간들아,. 이랬다 저랬다 하는 인간들아. 오로지 반대만 하는 인간들아. .. 약아빠진 인간들아. 낙천적인 인간들아. 

신사 숙녀라고 자칭하는 인간들아, 그대들, 사회 문화계의 명사라는 그대들, 현존하는 그대들, 형제 자매인 그대들, 친애하는 청중 여러분, 동포들이여.

 

 

 

m******5 2021.07.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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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한트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후로 그의 책을 읽고 있는데 사실 그의 책들은 술술 잘 읽히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있음. 이 책도 마찬가지로 강렬하면서 불가해했다. 페터 한트케 작품 중에 이 책이 제일 재밌고 좋다. 과거를 부정해야만 앞으로 나갈수 있을까? 그것은 아직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 나서도 모르겠다. 물론 변화는 있어야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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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한트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후로 그의 책을 읽고 있는데 사실 그의 책들은 술술 잘 읽히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있음. 이 책도 마찬가지로 강렬하면서 불가해했다. 페터 한트케 작품 중에 이 책이 제일 재밌고 좋다. 과거를 부정해야만 앞으로 나갈수 있을까? 그것은 아직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 나서도 모르겠다. 물론 변화는 있어야 하지만.

s*******4 2020.12.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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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에 있는 서적들을 즐겨 보는 편인데 이번에는 피터 한트케의 관객모독이라는 서적을 구매 및 주문을 해서 보게 되었다~피터 한트케의 관객모독이라는 이 책에서 피터 한트케 작가의 필력이 대단히 돋보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앞으로도 생각날 때마다 피터 한트케 작가가 쓴 관객모독을 가끔 꺼내어 읽어 보고 읽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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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에 있는 서적들을 즐겨 보는 편인데 이번에는 피터 한트케의 관객모독이라는 서적을 구매 및 주문을 해서 보게 되었다~
피터 한트케의 관객모독이라는 이 책에서 피터 한트케 작가의 필력이 대단히 돋보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생각날 때마다 피터 한트케 작가가 쓴 관객모독을 가끔 꺼내어 읽어 보고 읽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h****i 2020.07.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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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모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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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한트케' 작가님의 '관객모독'에 대한 리뷰 :) 시간, 장소, 행위의 통일, 감정 이입과 카타르시스 같은 전통적 연극 요소들을 뒤엎고, 내용과 형식에서 분리된 언어 자체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희곡 역사에서 가장 도발적인 작품 중 하나라는 관객모독. 관객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음으로써 현대 사회의 허위와 위선을 조롱하고 풍자한 마지막 부분을 이 작품의 절정이라 소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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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한트케' 작가님의 '관객모독'에 대한 리뷰 :)
시간, 장소, 행위의 통일, 감정 이입과 카타르시스 같은 전통적 연극 요소들을 뒤엎고,
내용과 형식에서 분리된 언어 자체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희곡 역사에서 가장 도발적인 작품 중 하나라는 관객모독.
관객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음으로써 현대 사회의 허위와 위선을 조롱하고 풍자한 마지막 부분을

이 작품의 절정이라 소개하고 있는데 어렵다는 후기가 있어 각오하고 읽었음.

c**********8 2020.06.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