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0)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0%
  • 리뷰 총점8 35%
  • 리뷰 총점6 15%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6.0
  • 40대 8.0
  • 50대 8.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by 임용한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by 임용한" 내용보기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는, 조선 후기 실학자 가운데 상대적으로 저평가 된 박제가의 삶을 통해 조선의 현실 타파를 부르짖은 그의 저술 <북학의>의 내용과 사상과 함께 당시 박제가와 인연을 이어왔던 박지원, 정약용, 이덕무, 유득공, 서이수, 이희경, 백동수 등의 일화와 자료를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박제가의 일생은 부조리와의 싸움이었다. 방대한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by 임용한" 내용보기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는, 조선 후기 실학자 가운데 상대적으로 저평가 된 박제가의 삶을 통해 조선의 현실 타파를 부르짖은 그의 저술 <북학의>의 내용과 사상과 함께 당시 박제가와 인연을 이어왔던 박지원, 정약용, 이덕무, 유득공, 서이수, 이희경, 백동수 등의 일화와 자료를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박제가의 일생은 부조리와의 싸움이었다. 방대한 학식과 재능에도 불구하고 서얼이라는 신분, 동시대 지성의 수준과 괴리감이 있다는 거부감으로 주류사회로부터 냉대와 멸시를 받았다. 또다른 부조리는 조선의 국수주의와 왜곡된 애국심이다. 17~18세기는 세계의 주도권이 서구로 넘어가고 자본주의와 산업화로 인해 기술과 문명의 발전과 변화의 시기였으나 조선은 이 변화를 무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제가는 비상한 도약을 꿈꾸는데 무모한 도전으로 나온 저작이 바로 <북학의(北學議)>다. <북학의>의 본질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선진문화와 선진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주장 외에도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우리 문화와 자부심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그 본질이다.

 

 

 

개혁군주 정조의 서얼차별법 폐지로 말미암아 비판의식이 강한 박제가는 이덕무와 함께 과거에 급제하고 종사관이 되어 중국 사신단에 들어가는 영광을 누린다. 서얼이라는 비상식적 굴레로 두 사람의 재능은 조선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런 그들의 사정을 이해하고 도움의 손길을 뻗쳐준 사람은 얼굴도 본 적 없는 타국의 학자들이었다. 박제가가 조선의 현실을 답답하게 느낀 것은 오직 신분적 장애, 출세의 한이 전부는 아니었다. 조선의 차별과 한심함과 답답함이 조선사람들의 심성이나 한두 가지 잘못된 법이 원인이 아니라 조선의 폐쇄적이고 단조롭고 역동성이 결여된 사회구조에서 기인했다고 보았고 사회 전체의 환골탈퇴를 추구했다. 북경으로의 여정은 박제가에게 폭발적인 깨달음을 주었고 그 주체할 수 없었던 격동과 감동은 <북학의>라는 불멸의 명저를 남기게 한다. 박제가와 <북학의>는 꽤나 유명하다. 청나라의 실용적 기술의 도입과 상공업의 진흥, 해외통상을 제창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실상은, 낙후된 조선사회의 현실을 폭로하고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한 저술집으로 크게 내편과 외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7가지 항목의 논설을 수록했다.

 

우리는 조선사회의 진실을 너무 모르고 잘못 교육받고 잘못 알아왔다. 박제가는 조선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북학의>를 썼지만 오늘날 <북학의>는 조선의 실상과 위선을 각성시켜주는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북학을 주장했을 때, 박제가가 직면한 첫 번째 장벽은 농본사회에 대한 조선의 전 사회적인 집착이었다. 조선은 농본사회를 국시로 삼고 농본을 국가의 목숨처럼 중시했다. 그러나 그 명분으로 상공업을 통제하고 억제한 것이 범죄였으며 농민을 위한 것이 아닌 교활한 논리에 불과한 '우민정치'였으며, 국내적으로는 상공업 억제, 대외적으로는 쇄국과 국수주의를 낳았다. 박제가가 말한 핵심은 농본사회라고 해서 상공업을 억제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상공업 억제 정책으로 인해 제일 큰 피해자는 오히려 농민이다. 농작물을 재배해도 팔지를 못하니 수익성과 환금성이 형편없고 평생 가난하게 굶주리며 헐벗고 살고 땅을 넓히거나 부자가 될 기회도 없다. 농본정책의 목적은 다름 아닌 지배층의 평안과 안정이다. 백성이 가난하고 다른 욕망이 없어야 말을 잘 듣고 통치하기도 편하다. 상공업의 발달로 부를 획득하면 그 다음에 노리는 것이 권력이니, 관료직에 대한 도전과 경쟁을 애초에 국가의 통제 아래 두어 관리한 것이다. 덕분에 권력층에 의한 사회는 안정되었을지 모르지만 국가와 국민은 극빈의 삶을 영위했다.

 

 

 

박제가를 이상한 18세기 인물로 만든 결정적 요인은 외국에 대한 열린 마음이었다. 그래서 <북학의>가 현대인에게 주는 교훈, 시대를 초월하는 빛나는 가치는 박제가의 통찰력과 통찰의 방법이다. 한말까지도 조선에서는 외식업이 발달하지 않았고 도시에도 전문식당이 없었으니, 사극에 나오는 익숙한 장터나 주막 풍경은 지나친 과장이다. 박제가는 중국의 시장과 음식점을 돌아보면서 자본과 이윤, 동기와 경쟁이 단순한 물질적 풍요뿐 아니라 인간의 자세와 미덕, 인간관계까지도 바꾸어 놓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대량제작과 대량판매로 인해 생산효율이 높아지고 비용이 줄어든다는 점이었고, 이 발견에서 대단한 아이템을 발견한다. 국가에서 자본을 투자하고, 기계를 고안해서 간장과 된장 공장을 설립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공장에서 콩을 대량으로 매입하면 농사꾼에게는 판로가 열리고 판매된 간장과 된장은 백성에게 맛있고 위생적인 방법으로 공급되어 싸게 사먹을 수 있고 국가는 재정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이 간장 공장은 조선사회의 변화에 연쇄작용으로 다른 공장도 뒤따라 설립될 것이다. 고리타분한 조선사회에 기계의 위력과 대량생산의 힘, 효율과 생산성의 힘을 보여줄 것이다. 산업혁명의 역사를 보면, 초기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에서 최대 과제는 어떤 산업과 공장을 먼저 시작하느냐는 것이었다. 국민이 가난하므로 값싸고 생활에 필수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상품을 만드는 공장이어야 했고, 박제가는 간장을 골랐으니 정말 탁월한 통찰력이었다. 해방 이후 한국 기업사에서 간장에 착안한 기업이 대성공을 거둔 사례를 발견했으니 그의 통찰은 200년이 지난 뒤에야 증명된 셈이다. 이외에도 중국식 온돌인 쪽구들과 한국의 대류식 난방, 성벽에 이용되는 화강암과 비교되는 벽돌의 기능성과 효율, 운송수단의 중요성, 중국 배에서 착안한 여행 사업, 조선과 중국 간의 상이한 말 사육법 등을 고안해 냈다. 그의 선견지명은 경제학자를 넘어 시대를 앞서가는 선각자이자 계몽사상가였다.

 

박제가는 조선이 검소한 데도 늘 쇠퇴한 이유는 무엇인지 <북학의>를 통해 묻는다. 남용할 물건이 없는데 사치할 이유가 있겠는가? 박제가는 수백 년을 석권해온 빈곤의 경제학을 통타했다. 있는 것을 절약해서 극빈 상태로 살려고 하지 말고 생산력을 높여라. 생산이 늘면 부가 축적되어 구매력이 늘어난다. 판매량과 이윤이 커지면 기술이 발달해서 제품은 더욱 좋아지고 물자가 풍부해지니 물품 가격은 도리어 낮아진다. '재물은 우물과 같다. 퍼 쓸수록 자꾸 가득차고 이용하지 않으면 말라 버린다.' 이 우물 비유는 박제가의 글 중에서 제일 유명한 구절이다. 이 비유를 통해 그는 소비가 미덕이며 소비가 생산을 촉진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사회의 악이며 망국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사치품 생산도 옹호하는데 바로 유통과 부의 순환이다. 이 사상은 경제사상뿐 아니라 지성사적 기준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부자의 지갑을 여는 데는 사치품처럼 좋은 것이 없다. 인간이 삶에 꼭 필요한 것만 구매하는 합리적인 소비를 한다면 우리 주변의 상점과 직업의 90퍼센트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기술이 근현대로 오면서 끊긴 이유는 부와 욕망의 부재가 초래한 결과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간 도공은 부와 명성을 획득한 반면 가난과 천대 속에 있는 조선의 도공은 기술과 디자인 개발에 투자하지 못해 도태됐다.

 

 

 

사람은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는 힘을 다하지 않는다. 잠자는 욕망을 깨워주는 것이 없다면 사람이 지닌 탁월함과 능력은 언제까지나 드러나지 않을 것이고 열정이 빠진 몽뚱이는 바람 한 줄기 없는 가운데 육중하게 서 있는 풍차나 마찬가지다.

버나드 맨더빌 <꿀벌의 우화 The fable of the bees, or private vices public benefits>.

158쪽 中 -P203

 

풍족해서 만족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만족하는 것이다. 맨더빌의 요점은 가난하고 발전도 없으니 예술과 과학도 크게 뒤처진다는 것이다. 근대로 갈수록 국방력은 국력과 경제력에 비례한다. 우리는 한때 만주 벌판을 호령했다고 하지만 16세기 이후에는 주변국과의 국력 격차가 점점 벌어져 전면전을 벌인다면 재정적으로 군비를 감당할 능력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조선은 자기만족에 빠져 척 화만 부르짖고 세상의 변화에 눈을 감고, 아무도 보려고도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욕망을 인정하고 욕망의 긍정적 측면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책 한 권이 이토록 무겁고 답답하게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완고한 조선사회를 체감했던 박제가의 심정이 묵직하게 덮이는 것만 같다. 편협한 국수주의가 아직도 진행형에 있지는 않은지 우리 사회를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d******7 2013.01.10. 신고 공감 10 댓글 10
리뷰 총점 종이책
욕망의 긍정적인 측면을 누구보다 일찍 간파한 선각자-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욕망의 긍정적인 측면을 누구보다 일찍 간파한 선각자-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내용보기
욕망이라는 말 속에는 인간의 본능과 애욕이 포함돼 있는데, 욕망은 정신 분석이나, 철학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대에 들어와서 그렇게 된 것이고,  도덕이 중시되고  체면을 강조하던  전근대적, 봉건사회에서는 금욕을 추구했다. 욕망을 추구하고 드러내는 것은 엄격하게 금기시 됐던 것이다.그런 점에서 '
"욕망의 긍정적인 측면을 누구보다 일찍 간파한 선각자-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내용보기

욕망이라는 말 속에는 인간의 본능과 애욕이 포함돼 있는데, 욕망은 정신 분석이나, 철학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대에 들어와서 그렇게 된 것이고,  도덕이 중시되고  체면을 강조하던  전근대적, 봉건사회에서는 금욕을 추구했다. 욕망을 추구하고 드러내는 것은 엄격하게 금기시 됐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는 제목부터 도발적이면서도 시대를 앞서간 박제가의 통찰력을 드러내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성리학이 지배하는 완고한 사회, 군자를 지향하는 삶이 이상적으로 제시되는 사회에서, 욕망이 삶을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동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꿰뚫어본다는 것은 대단한 선각자라고 할 수 있다.


박제가가 이렇게 욕망의 긍정적인 측면을 인지한 것은 주로 경제분야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알려진대로 그는 '북학의'를 통해 상업과 유통의 중요성을 강조한 인물이었다. 이 상업과 유통을 통해 검약과 검소함 이 아닌 소비 즉 금욕 아닌 욕망을 추구하는 방향이 경제를 발전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일찍이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의 필자는 농본주의 사회가 갖는 폐쇄적이고 정체적인 한계를 꿰뚫어보고 있었던 인물이 박제가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이 상공업 육성을 억제하고, 유통을 발전시키지 않은 것, 그러면서 농본사회를 추구한 이유는 지배계급의 안정과 평안을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상공업의 발전은 부의 빠른 축적을 가져오고, 부의 빠른 순환을 촉발시킨다.부자가 탄생하고, 또 부의 몰락과 축적이 빠르게 이루어지다보니, 상승과 몰락이 역동적으로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한번 양반은 영원한 양반이 아니라 신분의 교체가 활발해지고, 양반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조선은 백성들이 검소하고 절약하는 삶을 살면서 부나 권력에 대해 욕망하지 않는 농본사회를 만들어놓고, 통치하기 편하게 길들였다는 것이다. 박제가가 과연 그렇게까지 깊게 농본사회의 폐쇄성을 꿰뚫어 본 것인지에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전혀 근거가 없어 보이진 않았다. 귀가 솔깃해지는 주장이었다.


지난 달에 '북학의'를 읽어봤지만 그는 '북학의'에 청나라에서 본 물건이나 집, 도구에 대해 시시콜콜 언급했고, 사사건건 청나라 문물과 조선을 비교하면서, 조선을 강하게 비판했다. 물질의 부족,생산의 부족으로 인해 조선이 겪는 가난이 안타까웠고, 그렇게 우물안 개구리 식으로 폐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조선을 각을 세우며 비판했다. 북학의를 보면 박제가가 과하게 조선을 비하하는 건 아닐까 하는 싶을 정도로 박젝가의 비난 수위는 높았다. 

알려진대로 그는 수레나 벽돌 등 해외 문물이나 도구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것을 언급했는데, 그가 보기에는  도구야 말로 효율성와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 비친 조선은 생산성을 높이고, 효율적으로 자원과 물자를 사용해 생산방식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의욕도 없었다. 침체에서 헤어나올 모색이 없었다는 것이다.


박제가는 청나라에서 그들의 문명과 문화를 직접 목격한 뒤에는 청나라를 비롯한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자고 강하게 피력했다. 도구를 사용해서 체계적인 방법으로 노동하고, 생산하고 효율성을 추구하고,

기존의 방법을 개선하고 발전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취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청의 문물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후하고 조선에 대해서는 일방적이라 할 정도로 비판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박제가가 사람들과 말할 때에도 역시 그랬다고 하니, 그가 조선을 지나치게 폄하하는  건 아니냐는 소를 들었고, 이런 표현으로는 그의 논리가 설득력을 얻는데에 도움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다하더라도  그의 논리는 당시로선 상당히 파격적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소비가 생산을 촉진하고, 상업과 유통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다분히 현대 경제학적 개념에 가까운 논리였다는 점에서, 그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였는지를 일러주고 있다.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는 경제에 관한 논리는 책에서 그다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 박제가의 일생과 그의 족적, 그리고 생을 통해 엿볼 수 있는 박제가의 사상 전체를 아우르고 있지만, 무엇보다 박제가는 폐쇄적이고 닫혀있는 조선사회에 대해 통렬하게 탄식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짧은 분량임에도 경제에 관한 박제가의 탁견은 놀라울 정도로 강렬했다.

부나 권력을 통한 욕망이야말로 생산을 촉진하고 삶을 개선하게 만든다는 경제적 관점 뿐 아니라, 권력을 구하고 조선이 역동적이고 생산적인 사회가 되는데 긍정적인 자극이 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만 봐도 그는 놀라운 인물이었다.


그를 보면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떠올랐다.누구보다 뛰어난 인재였지만 서얼로서 차별을 겪어야 했던 그, 다소 괴팍해 보였던 성격이며, 그의 뛰어난 통찰력이, 그가 지녔던 조선에 대한 도발적이고 도전적인 문제의식을 구성해 갔던 것이다. 그는 어쩌면 자신 안에 있던 권력에 대한 욕망,출세에 대한 욕망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는 그런 점에서 박제가의 좌절된 욕망에 대한 분노와 한탄으로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동시에 금욕을 권하던 사회에서 욕망의 긍정적인 측면을 꿰뚫어보고 경제적인 동력으로 받아들인 탁견과 더 나아가 조선사회의 고루함과 농본주의를 빙자해 지배계급의 안정을 도모했다는 필자의 해석을 감안하면, 그의 통찰은 가히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박제가가 인문학자보다 경제학자에게 더욱 각광받는 인물이고 연구 대상이 된다는 점만 보더라도 그의 사상은 현대의 경제학적인 관점에서도 충분히 가치있는 주장이고, 식견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오자를 지적하자면 120쪽과 표지 뒷장 환골탈퇴가 아닌 환골 탈태.

e****0 2013.04.27. 신고 공감 5 댓글 12
리뷰 총점 종이책
200여 년 전의 외침이 유효한 까닭은?
"200여 년 전의 외침이 유효한 까닭은?" 내용보기
200여 년 전의 외침이 유효한 까닭은? 2012년 18대 대통령선거가 코앞이다. 후보들은 연일 공약을 발표하며 미래는 희망과 함께 우리 곁에 다가올 것이라는 말을 한다. 한국이 당면한 다양한 문제에 대한 정책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하는 것이지만 얼마나 현실성 있는 정책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당면한 문제를 파악하는 것은 자신이 처한 조건과 가치
"200여 년 전의 외침이 유효한 까닭은?" 내용보기

200여 년 전의 외침이 유효한 까닭은?

2012년 18대 대통령선거가 코앞이다. 후보들은 연일 공약을 발표하며 미래는 희망과 함께 우리 곁에 다가올 것이라는 말을 한다. 한국이 당면한 다양한 문제에 대한 정책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하는 것이지만 얼마나 현실성 있는 정책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당면한 문제를 파악하는 것은 자신이 처한 조건과 가치관을 반영하기 때문에 각 후보가 속한 정당이나 개인들의 성장과 그간 정치적 행보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후보를 선택하고 선택된 지도자에 의해 한국이 처한 현실을 타파할 수 있을 것이다.

 

혼탁한 정치, 암울한 민생, 불평등한 외교, 외래문물의 수용, 교육정책의 혼란 등 수많은 현안은 어제 오늘의 문제만은 아니다. 200여 년 전 조선후기를 살았던 실학자들 역시 당시 자신들이 살아가던 조선의 현실의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다양한 방향과 방법을 제시했다. 시대와 자신들의 신분적 한계에 부딪혀 좌절을 맞보기도 했지만 그들의 바람은 면면히 이어져 오늘에 이르게 된 점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 중심에 ‘북학의’의 박제가가 있었다.

 

임용한의 책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는 바로 그 박제가의 삶과 사상을 살피는 책이다. 조선후기 박지원, 홍대용, 정약용, 이덕무 등 실학자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박제가에 주목하고 그에 대한 오해와 편견 등에 대해 사실적 접근을 해가고 있다. 박제가의 출생과 성장, 청년시절 그리고 관료생활 등 그의 사적인 모습과 규장각 검서관과 현감 등 관료생활을 바탕으로 조선 후기 민초들의 생활상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승지를 지냈던 박평의 서자로 태어난 박제가는 신분의 벽에 갇혀 자신의 미래를 내다볼 상황에 절망하지만 어릴 때부터 탁월한 통찰력과 판단력, 방대한 학식과 예술적 재능을 타고 났으며 고분고분하지 않고 직설적인 성격 등에 의해 자신의 뜻을 펴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암울한 시대를 함께 나눈 이들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백탑파로 칭해졌던 박지원, 이덕무, 유득경, 이희경 등이다. 이들과의 교류는 시대와 신분의 한계에 머물러 신세한탄만 하기보다는 자신들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린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정조에 의해 이들 중 박제가와 이덕무를 포함한 백탑파 4인방이 규장각 검서관에 등용된다. 검서관 등용은 가난했던 생활이 안정됨을 의미하며 이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꿈꿔온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펼칠 기회를 만난 것이 되기도 한다.

 

박제가는 네 번에 걸쳐 중국을 방문하고 그로부터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당시 조선이 안고 있던 사회구조적 모순을 타파할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이 북학의라고 볼 수 있다. 북학의는 청나라의 선진문물을 적극 수용하고, 우리 것을 버려야 한다는 ‘중상주의’ 개혁을 중심에 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박제가의 이런 앞선 주장은 당시 기득권 층 뿐 아니라 동료들 사이에도 받아들이기 힘든 사상이었다. 국수주의적 경향성이 농후했던 당시 상황에서 다소 과격한 사상을 담고 있는 북학의는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이 책은 조선후기 실학자와 백탑파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점들을 담고 있다. 박제가와 이덕무, 이서구, 백동수 등과의 교류나 처가인 이순신 후손들과의 관계를 비롯하여 정약용과 박제가의 교류도 비교적 자세하게 밝히고 있어 조선후기 선각자들의 삶과 인적 교류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렇게 박제가의 삶과 사상을 밝히며 그의 외침을 오늘날 여전히 유효한 의미로 되살려 내고 있다. 더불어 17~18세기 조선 후기의 사회가 안고 있던 문제점들에 대해 구조적 모순과 한계라는 시각을 통해 살핀다. 막연하게 생각되어지는 당시의 상황을 오늘날의 삶과 비교하며 무엇을 놓치지 않고 봐야 하는지 또한 알 수 있다. 권력에 대한 욕망보다는 나라와 백성의 문제 해결에 근본적인 관심을 가졌던 박제가의 외침이 오늘날까지 유효한 것은 이와 맥락을 함께한다고 본다.



m*****8 2012.12.16. 신고 공감 2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내용보기
한 민족이나 국가를 패망하게 만든 요인은 무수히 많지만 그중 특출난 하나를 고르라면 단연 ‘국수주의’다. 안으로 걸어 잠그고 밖으로 닫은 쇄국의 문은 항상 패망의 지름길이었다. 무엇보다 5천년이란 짧지 않은 한반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지 않는가? 혹자는 한민족을 단일민족이라 자랑하지만 한민족이 단일민족이란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한민족은 크고 작은 수백 차례의 전쟁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내용보기

한 민족이나 국가를 패망하게 만든 요인은 무수히 많지만 그중 특출난 하나를 고르라면 단연 국수주의. 안으로 걸어 잠그고 밖으로 닫은 쇄국의 문은 항상 패망의 지름길이었다. 무엇보다 5천년이란 짧지 않은 한반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지 않는가? 혹자는 한민족을 단일민족이라 자랑하지만 한민족이 단일민족이란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한민족은 크고 작은 수백 차례의 전쟁을 통해 다민족으로 변천되었다. 그럼에도 그토록 굳건히 폐쇄정책을 고수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역사에 만일이란 가정만큼 어리석은 질문도 없지만 단 한번이라도 속칭 내부권력을 벗어 던지고 외부로 시선을 향했더라면 한반도의 역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각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우린 역사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사실들이 너무 많다. 그 중에 하나가 조선사회에 대한 실상이다. 왕권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좋은 통치방법은 우민화정책이었다. 똑똑한 이들이 너무 많아도 안 되고 부족해도 안 되는 적당한 관료와 이를 뒷받침하는 적절한 이념, 그리고 대다수의 다루기 쉽고 가난한 백성들이 존재하면 된다. 세습체계, 이보다 더 안정적이고 환상적인 왕권강화 정책이 있을까? 태어나자마자 왕이 되고 고위관료의 길이 열린다면 굳이 조직사회를 재편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서얼은 그 가운데 태어난 지독한 운명을 가진 이들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얼제도가 세종대왕의 작품이라는 것을 아는 이들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서얼은 말 그대로 서얼일 뿐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자질이 있어도 입신은커녕 제 몸 하나 건사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유독 18세기 한양에 박제가를 비롯한 이덕무, 유득공등 서얼 천재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 이들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시와 술로서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당시 이들의 문장이 얼마나 뛰어났던지 중국에까지 명성이 자자 했다고 한. 글깨나 읽는다는 양반들의 중화사상이 극에 달한 시절이라 서얼들은 더욱 시기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특히 외모까지 왜소했던 박제가는 모진 성격 때문에 더욱 심란하고 거친 젊은 시절보내게 된.

 

침울한 인생을 거닐던 서얼들에게 한 줄기의 광명이 보인 것이 정조의 서얼 철폐제도였다. 박제가는 즉시 정조의 눈에 띄었다. 의심 많았던 영조 덕분에 정조는 세손시절부터 누구도 믿지 않았다. 그는 왕의 권위를 위협하는 관료들에 대적하기 위해 자신만의 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박제가의 기대와는 달리 서얼 철폐는 정조의 철저한 정치적 계산이었다. 박제가를 비롯한 서얼들에겐 빠른 출셋길이 열렸지만 그들이 정무에 간여할 정도의 신분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정조는 왕을 중심으로 한 견제 내지는 균형을 계산에 두었다. 하지만 박제가를 중심으로 한 규장각 학사들은 운명을 바꿀만한 역사적 개가를 마련한다.

 

박제가는 정조의 신임덕분에 조선 관료들이 오랑캐라 얕잡아 보았던 청의 수도 북경을 방문한다. 북경은 그야말로 신천지였다. 물밀 듯이 밀려오는 서구문화와 동양문화의 교접은 박제가 일행의 근시안적 사고를 단박에 엎어버렸다. 박제가는 자신이 살아왔던 세상이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 일상적인 믿음에 대한 의문은 변화로부터 시작된다. 이덕무나 유득공이 북경의 일상이나 세세한 여행일지에 관심을 가졌다면 박제가가 바라본 북경은 근원적으로부터의 변화였다.

 

그 중 하나가 조선이 주창하는 농본사회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이었다. 당시 조선은 농업을 최고의 기치로 여기며 상업을 극히 천대했다. 백성의 대다수가 농부임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였으나 문제는 포괄적인 과정과 선택이 여전히 후진적인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다. 충분히 실용적인 농지계량법을 통해 실 이익을 늘릴 수 있었으나 관료들의 관심은 농민의 우민화, , 부자가 되안 되는 것이었다. 개인의 자산획득은 복잡한 사회를 만든다. 일견 기득권을 고민한 관료들에게 변화 없는 조선사회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공식이었다. 모든 상황이 오직 양반의 집권만을 위해 규정된 사회, 만에 하나라도 이를 어기면 즉시 탄핵되는 사회, 박제가는 북경에 다녀올수록 자신의 한계를 더욱 뼈저리게 느낄 뿐이었다.

 

현 시대를 18세기 조선의 시대적 상황과 비교한다면 어처구니가 없을 것이다. 한국은 그 어떤 국가보다 개방적이고 다민족 화되었으며 어떤 민족보다 빠르게 지구촌 동일화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들 한국의 발전을 기적이라 말한다. 300전 북경을 방문했던 박제가가 21세기 한국을 바라본다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박제가를 재조명해야할 이유는 너무도 많다. 그 중 하나가 그의 독특한 시각이다. 우린 자신의 삶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일상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은 조그만 변화에 익숙한 이들에 의해 이루어져왔다. 조선이 현재와 다르지 않는 건 욕망의 집합체라는 사실뿐이다. 서얼 출신으로 조선사회의 밑바닥을 끄집어낸 박제가의 의기, 과연 현 시대에도 그럴만한 용기를 가진 관료가 있을까?

k****4 2012.12.1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2012) - 임용한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2012) - 임용한" 내용보기
1. 퍼즐 놀이를 해보자. 퍼즐의 제목은 조선왕조 500 PIECE! 500개의 조각. 이 중에서 박제가의 조각을 찾아보자. <박제가>를 통해 유추한 결과로는 그는 조선왕조의 중심부가 아닌 끄트머리에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공간적인 제약 때문에 한쪽 단이 말끔하게 잘려있을 것이다. 박지원과 정약용이라는 크고 웅장한 조각과 함께 있을 것이다. 비슷한 크기의 이덕무의 조각도 보인다.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2012) - 임용한" 내용보기

1. 퍼즐 놀이를 해보자퍼즐의 제목은 조선왕조 500 PIECE! 500개의 조각이 중에서 박제가의 조각을 찾아보자. <박제가를 통해 유추한 결과로는 그는 조선왕조의 중심부가 아닌 끄트머리에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공간적인 제약 때문에 한쪽 단이 말끔하게 잘려있을 것이다박지원과 정약용이라는 크고 웅장한 조각과 함께 있을 것이다비슷한 크기의 이덕무의 조각도 보인다. 그래서 말끔한 쪽의 반대편은 매우 기괴한 모양새를 지녔을 것이다. 이덕무, 박지원, 정약용이 아닌 다른 조각은 맞지 않는 것처럼.

 

2. 퍼즐 놀이로 박제가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 정도로 하고책 이야기로 넘어가보자.이 책은 서얼 출신으로 조선 후기의 부조리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은 책 <북학의>로 현재의 사람들에게 이름을 남긴 대학자 박제가의 삶과 철학을 소개하는 책이다.

 

박제가의 삶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평전 같은 편안함과 안정감이 있었고, 철학을 말하는 부분에는 날카로운 비평이 있어서 만족스럽게 읽었다.

 

유할 때는 유하고 강할 때는 강한 작가의 어조 덕분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한 해 동안 굳게 얼어있었던 단단한 무언가가 깨지는 느낌을 받았다개인적으로 이것은 무조건 옳다고 여겼던 몇 가지가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조금 말랑말랑해졌다고 해야 할까 그런 깨우침을 얻었다.

 

3. 깨우침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것이다. 이 세상을 미세하게 파고 들어가면 이 세상은 카오스 매트릭스의 상태이기 때문에 어떤 조건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과 그에 따른 저항을 달리해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1700년대 후반의 조선은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교해볼 때한쪽으로 매우 쏠려있는 국가체제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므로 극도의 자문화 중심주의(성리학 중심주의)에 빠져있던 조선이 나아가야 저항정신과 자문화 중심주의와 문화 사대주의가 희한하게 뒤엉켜있는 2013년의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저항정신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그렇지만 천재성을 띈 박제가의 사회 비판적인 시선은 우리가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할 능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36P. 인문학적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성적이 좋고고전과 경전을 달달 외우고 있어도남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판단한다면 천재가 될 수는 없다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천재란 사물을 보고 사고하는 능력이 한 세대를 앞서 가는 사람을 말한다.

 

4. 이 능력을 제대로 가다듬지 않는다면 무조건 기술 중심 사회를 추구하자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대한민국 사회의 당면과제는 옛날의 조선처럼 가장 효율적이고, 기술집약적인 국가로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정책의 중심이 국민의 삶의 행복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결부시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앞서도 말했지만, 이 세상은 카오스이기 때문에 그렇다.



k*******7 2013.01.03.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답답하게 느꼈던 수재, 박제가
"답답하게 느꼈던 수재, 박제가" 내용보기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작으면 답답함을 느낀다. 그런 환경의 수재는 불행하다.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제가가 느끼는 조선에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다는 사실이 울분했고, 반항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를 일찍 여위고 고생을 하였고, 서얼이라 과거를 보더라도 원하는 관직에 나가지 못했다. 자신의 뜻을 세우지 못해 반앙아의 모습으로
"답답하게 느꼈던 수재, 박제가" 내용보기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작으면 답답함을 느낀다. 그런 환경의 수재는 불행하다.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제가가 느끼는 조선에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다는 사실이 울분했고, 반항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를 일찍 여위고 고생을 하였고, 서얼이라 과거를 보더라도 원하는 관직에 나가지 못했다. 자신의 뜻을 세우지 못해 반앙아의 모습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정조에 의해 서얼도 과거를 볼 수 있었고, 규장각에 들어갔고 희망을 맛보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의 희망을 엿볼 수 없었으며, 규장각에서 많은 책들의 교정하는 역할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4번의 중국 방문. 그를 변화하게 만들었다. 중국의 문물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뜨이게 된다. 너무나 뒤떨어진 우리나라의 문물과 많이 발달한 문물. 박제가는 그것을 보면서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박제가는 《북학의》를 저술한다. 그의 최대의 명작이다.

 

북학의》를 보면 정말 충격적인 표현이 나온다. 그의 반항아적인 기질이 그대로 글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중국의 시장과 음식점을 돌아보면서 자본과 이윤, 동기와 경쟁이 단순히 물질적 풍요 뿐 아니라 인간의 자세와 미적, 인간관계까지도 바꾸어 놓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벽돌에 대해서 언급한다. 과거 우리나라에도 벽돌을 사용한 유물이 있지만 건축재료로 사용되지 않는 이유는 동기와 이윤의 부재때문이다. 이윤이 나오면 사람들은 험한 지형과 수송의 어렵더라도 사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온돌보다는 중국의 온돌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온돌에 많은 나무를 넣지만 방바닥과 뜨겁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방바닥은 뜨겁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훈훈한 것을 들었다. 이런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 《북학의》이다.

 

북학의》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중국은 나무는 귀한데 목재는 많다. 우리나라는 나무는 많은데 목재가 귀하다' 왜 이럴까? 중국은 만주 깊숙한 삼림지대에서 벌목을 해서 목재를 조달한다. 유통구조가 잘 되어서 나무는 귀해도 목재는 많다고 한 것이다. 반대로 우리는 산이 많고 나무도 많지만 조달이 잘 되지 않는다. 이것은 도로, 수송수단, 유통망이 원해 부족하거나 원시적이어서 이윤이 극히 적었다. 수익성이 적으니 동기유발이 되지 않았고, 효율보다는 시간때우기형 노동형태가 발달한 것이다. 박제가는 이런 한심한 상태를 타파하고 효율성을 수익성을 망각한 사회를 《북학의》를 통해 일침을 가한  것이다.

 

이런 박제가도 세상의 힘에는 어쩔 수 가 없었나 보다. 정조가 승하하게 되면서 그는 유배를 가게 되었다. 다행이 유배 생활 2년 만에 조보에 박제가를 정순황후가 석방하라 명령했던 것이 실렸다. 그러나 그는 금방 석방되지 못했다. 의금부에서 그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 1804년 2월 6일에 누구의 밀고에 의해 그는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1805년 4월 25일 박제가 향년 5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의식주를 인간의 기본욕구라고 한다. 의식주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수준을 충족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의식주의 욕구가 현대는 많이 높아졌지만 과거 우리의 조상들의 의식주의 욕구는 그리 높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 같이 힘이 드니 괜찮다는 생각이 발전을 더디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박제가의 《북학의》는 그런 우리들의 생각에 일침을 가한 것이 아닐까?    

a****5 2012.12.22. 신고 공감 1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내용보기
?읽으면서 가슴이 아픈 책이었다. 박제가의 인간적인 모습이 와닿는 책이었다. 그가 어떻게 꿈에 가득찼다가 다시 절망했는 지를 느낄 수 있었다. 어찌보면, 오늘날은 그가 꿈꾸었던 날이리라. 신분에 상관없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고 세상을 바꿔갈 수 있다는 생각을 단순한 꿈이 아니라 실천으로 이어갈 수 있는 세상 그러나, 그는 결국 그의 시대에 피지 못하고 책자만을 남기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내용보기

 ?읽으면서 가슴이 아픈 책이었다. 박제가의 인간적인 모습이 와닿는 책이었다. 그가 어떻게 꿈에 가득찼다가 다시 절망했는 지를 느낄 수 있었다.


 어찌보면, 오늘날은 그가 꿈꾸었던 날이리라. 신분에 상관없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고 세상을 바꿔갈 수 있다는 생각을 단순한 꿈이 아니라 실천으로 이어갈 수 있는 세상


 그러나, 그는 결국 그의 시대에 피지 못하고 책자만을 남기고 지나가 버렸다. 하긴, 그 시대에 그런 사람이 한 둘이 아닌지라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곤 할 것이다. 백탑파에는 그런 인물이 하나둘이 아니다. 그나마 박제가는 이렇게 저렇게 주목받고 있지만...


 국사 교과서에서 북학의를 좋게 소개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는 북학의의 구체적인 내용은 조금 거칠고 낯설은 부분이 적지 않다. 중국의 것을 지나치게 높이고 국내의 것을 낮춘다는 점에서 사대주의라 비판받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모습도 박제가가 처했던 시대적 상황과 현실을 묘사한 뒤에 읽으니 왠지 이해가 되었다. 이 책의 좋은 점이 그런 부분에 있는 것 같다. 인간 박제가의 모습에서 시작해서 그의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것 말이다.


 최근 EBS 다큐 서당 3부작을 읽었는데, 이 서당 3부작도 배경이 18세기라서 서얼 학동들이 등장한다. 박제가와 비슷해 보이는 캐릭터들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묘사되어서 이 책을 보면서 구체적으로 대입해 볼 수 있었다.


 반복해서 읽고 있는 책이다. 현대인들이라면 읽으면서, 아쉽고 동시에 감사할 그런 책인 것 같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a**l 2013.01.05.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내용보기
아침 일찍 투표를 마치고 지금은 한가로이 책을 보고 있는 중이다. 다른 해와 달리 투표 열기가 높다는 방송을 보면서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의 주인공 박제가가 외치던 "바꾸고, 버리고, 개혁하라!"는 사상이 지금 시대에도 통용되고 있는 것을 지켜보며 들었던 아니 들수밖에 없었던 생각이기도 하다. 조선의 현실타파를 외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내용보기

아침 일찍 투표를 마치고 지금은 한가로이 책을 보고 있는 중이다. 다른 해와 달리 투표 열기가 높다는 방송을 보면서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의 주인공 박제가가 외치던 "바꾸고, 버리고, 개혁하라!"는 사상이 지금 시대에도 통용되고 있는 것을 지켜보며 들었던 아니 들수밖에 없었던 생각이기도 하다. 조선의 현실타파를 외치던 박제가와 현실의 정치가 오버랩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 나뿐만은 아니테니. 책을 통해 그간 몰라왔던 박제가의 성장과정과 왜 그가 개혁가가 되었는지를 알수있었다. 서얼차별법의 폐지를 주장했던 이들은 서얼들 뿐 아니라 양반들도 마찬가지였다? 신분에 대한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서얼들이야 말할것도 없지만 양반들까지 서얼차별법의 폐지를 원할줄은 몰랐다.

 

조선후기 실학자인 박지원, 홍대용, 정약용, 이덕무 등과 함께 북학파(백탑파)의 일원인 박제가. 그간 다른 실학자들에 비해 박제가가 덜 주목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그런 박제가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의 사상을 다시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승지를 지낸 박평의 자식으로 태어나지만 어머니가 서얼인 관계로 박제가 또한 서얼이 될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왜 태어날 자식이 서얼로서 천대받을 것을 알면서도 그런 혼일을 했느냐고 따질수도 없고 누가 그들을 서얼이라는 신분제도로 묶어놓았는지 따져보고 싶은 심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얼이라는 신분제도를 만든 사람은 성군이라 일컬어지는 세종대왕이시란다. 세종대왕은 자신이 좋은 뜻으로 만들어 놓은 신분제도로 인해 후대의 백성들이 고통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실까?

 

신분의 한계에 걸려 신세한탄으로 세월을 보내던 그들에게 기회를 준 이는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였다. 기존의 기득권층이 자신의 세력이 될수없음을 잘 알고 있는 정조는 불운한 신분으로 인해 한이 품고있는 서얼들을 기용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집현전을 대신하는 규장각을 만들었고 박제가와 이덕무 등을 포함한 백탑파의 4인을 검서관으로 등용했다. '정조는 1778년 3월에 파견한 동지사冬至使(해마다 동짓달에 중국으로 보내던 사신)에 증광시에 급제하 박제가와 이미 1774년에 급제한 이덕무를 각각 정사 채제공의 종사관과 서장관 심염조의 종사관으로 임명했다.' (p.109) 채제공이야 누구나 알만한 정조의 심복 중의 심복이고 이덕무와 박제가는 심염조의 추천으로 정조의 승낙을 얻어 종사관으로 청나라에 가는 기회를 얻었다.

 

이 사행을 다녀온후 이덕무는 연행록인 <입연기>를, 박지원은《열하일기》를 박제가는《북학의》를 지었다. 박제가의《북학의》에는 충격적이어서 거부감이 드는 내용이 많다는데 마치 요즘의 급진개혁가가 국민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보면 그도 조선의 급진개혁파에 가까웠나보다. '중국은 문자(한자)의 근본이다. 우리말을 버리고 중국 말을 쓰자. 그래야 우리도 오랑캐(동이)라는 명칭을 면할 수 있다. ~ 아닌가.' (<내편>,<한어>) (p126) 이글에서 심한 반발심을 느껴야 했다. 마치 지금의 영어가 세계의 공통어이니 한글을 버리고 영어를 나라말로 쓰자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니까. 반쪽 양반이라도 양반이니 세금을 내지않을 것이요, 어려서부터 한문을 익힐수 있으니 그런 말을 할수있겠지만 일반 백성들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탓이다. 반면 조선이 말해주지 않은 조선의 실상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장점도 있다.

 

농본사회를 국시로 삼고 농본을 국가의 목숨처럼 중시했던 조선, 상업과 공업을 천시했고 양반일지라도 문관과 무관으로 갈리어 문관만을 우대하고 무관을 무시하고 외면해왔기에 조선은 무력했고 그토록 많은 외세의 침략을 받을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상공업의 억제정책으로 인해 가장 많은 피해를 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농민들이었다. "청나라가 밉다면 더더욱 적에게서 배워서 이겨야 한다. 적과 싸워 이기려면 먼저 적의 칼을 뺏어야 하는 법이다." (p.141) 박제가가 주장했다는 이말에 떠올려지는 이가 있으니 바로 인조의 장자인 소현세자다. 청의 문물을 받아들여 조선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가 소현세자이며 그로 인해(?) 부왕에게 미움을 받았고 왕권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독살당했다는 설이 있다.

 

우리것의 장점을 부정하는 것 같은 박제가에게 반감이 일었지만 그것을 효율가 경제성이라는 점에서 살펴보면 그의 말이 옳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만 공격적이다시피 급진적이었다는 점에서 그가 조선사회에 환영받지 못한 원인을 찾아볼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왜 여기서 이런 말이 생각나지?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우리 것을 보존하며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더 나아가 더 좋은 것으로 만들어낼수 있다면 무조건적인 폐쇄정책보다 적당한 선에서 문호를 개방했더라면 외국에 의해 무력으로 침략당하고 강제적으로 개방하는 그런 사태는 면할수있었을까? '백성은 최대한 평등하고 가난하게 살아야만 한다.' (p.185) 과연 조선의 관리들은 백성들이 이런 삶을 살기를 원했던 것일까? 정말 그런 것을 바래왔다면? 책은 읽으면 읽어갈수록 충격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조선이야 말로 사회주의 다운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었을까 싶다.

 

천 년, 백 년을 두어도 썩지 않을 소중한 금과 은을 쉽게 떨어지는 비단 등의 사치품을 무역하는 데 소모해버리는 것이 어찌 옳겠는가. - 이익,《성호사설》권 11, <인사문>



s*******1 2012.12.19. 신고 공감 1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조선의 현실타파를 외친 박제가의 삶과 사상
"조선의 현실타파를 외친 박제가의 삶과 사상" 내용보기
지금은 신분이 평등한 사회이지만 조선후기까지만 하더라도 신분의 차별은 매우 심했던 것 같다. 그 중에서 같은 양반임에도 서얼에 대한 차별이 심하여 서얼 출신의 경우 고위관직에 오르기는 거의 불가능했던 사실을 생각하면 지금 시대에 태어난 것이 정말 행운이 아닌가 생각한다.   박제가의 일생은 두 가지 부조리와의 싸움이었다고 저자는 요약하고 있다. 하나는 일세의 천재
"조선의 현실타파를 외친 박제가의 삶과 사상" 내용보기

지금은 신분이 평등한 사회이지만 조선후기까지만 하더라도 신분의 차별은 매우 심했던 것 같다. 그 중에서 같은 양반임에도 서얼에 대한 차별이 심하여 서얼 출신의 경우 고위관직에 오르기는 거의 불가능했던 사실을 생각하면 지금 시대에 태어난 것이 정말 행운이 아닌가 생각한다.

 

박제가의 일생은 두 가지 부조리와의 싸움이었다고 저자는 요약하고 있다. 하나는 일세의 천재에 대한 부당한 억압이었고, 다른 하나는 조선의 꽉 막힌 국수주의와 왜곡된 애국심이었다. 17~18세기 조선이 직면했던 역사적 과제는 변화와 발전이었음에도 조선은 세계의 주도권이 서구로 넘어가고 있는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거나 무시함으로써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버리고 말았다.

 

당시 조선의 정치가와 지식인은 국수적, 형식적, 감정적으로 대처했으며 그것이 불길한 징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박제가는 이러한 무모한 태도에 거칠게 도전했고 그래서 나온 저작이 바로 <북학의>다. 박제가 사상의 핵심은 외국을 배워야 한다가 아니라 외국 문화에서 배울 것을 찾고 나를 변화시키는 통찰과 분석의 태도와 방법에 대한 깨달음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박제가는 우리가 너무나 당연시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우리 문화, 우리 것에 대한 습관적 태도, 자랑과 자부심에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신랄하게 느껴지는 그 비판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21세기의 한국사회가 여전히 그 감성적인 국수주의와 자기기만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서얼차별로 인해 같은 양반이면서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고위관직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이 꽤 많았던 것 같다. 그 한 예가 바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박제가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정조대왕을 개혁군주로 생각을 해 왔지만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박제가 등의 서얼출신 실학자를 대하는 정조의 태도를 보면서 정조도 시대적인 흐름과 정치적 한계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게 있을 수 없겠지만 조선후기에 실학자들을 중용하고 외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고 개선 발전시켰다면 우리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36년간의 일제의 억압을 받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안타깝기 그지 없다.


 

a*****a 2013.02.0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