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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하나를 훔친 죄로 감옥에 들어간 장 발장은 거듭된 탈옥을 시도하다 실패를 한 덕분에 '19년'을 복역하게 된다. 그것도 자기 자신의 배고픔 때문이 아니라 굶주리고 있을 어린 조카들을 위해서 훔친 죄인데 말이다. 형량의 가혹함을 따지기도 전에 이야기는 장 발장이 미리엘 주교과 만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잘 알려지다시피 장 발장은 이 만남을 통해 '새 인생'을 부여받는다.
미리엘 주교의 '선물'을 받은 장 발장은 성실하게 새 삶을 이어가고 어느 덧 부를 쌓게 되고 덕망도 얻어 시장의 자리에 올라간다. 그러고도 자기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일보다는 더 많은,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며 살아간다. 정말 본 받을 위인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이런 장 발장의 모습을 시기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기득권층'이라고 할만한 사람들은 장 발장의 행보가 아니 꼽고 눈에 거슬린 모양이다. 이런 시기와 질투를 '자베르 경감'으로 투영하여 장 발장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끈질기게, 그리고 모질게 말이다. 결국 시장의 자리부터 빼앗기게 된다. 자베르 경감의 '술책'에 빠진 장 발장은 '자신'을 밝히며 자신을 대신해서 억울한 형벌을 받게 될 불쌍한 사람이 생기지 않게 자수를 한다.
또 하나의 불쌍한 사람은 '코제트'다. 코제트의 엄마는 '미혼모'라는 이유만으로 세상의 미움을 받으며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가장 큰 형벌은 소중한 딸과 함께 살 수조차 없는 현실이었을 것이다. 코제트는 또 어떠한가? 아무 것도 모르고 '태어난 죄'밖에 없는 가엾은 소녀는 사랑하는 엄마와 떨어져 지내면서 못된 여관 주인 내외의 괄시와 폭력을 고스란히 감내하며 살아가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끔찍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 장 발장과 코제트가 서로 만난다. 단순히 마음씨 따뜻한 부자와 불쌍한 소녀의 만남일까? 아니다. 이 둘의 만남은 모진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사람이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담은 '따뜻한 인간애'를 보여 준다. 인류가 다른 동물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생존 능력'을 부여받았으면서도 이렇게나 번성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인 '사랑' 말이다.
그 '사랑'은 아버지가 딸에게 한 없이 주는 '아가페적인 사랑'과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사이를 연결해주는 '원초적인 사랑'으로 갈라져 보여준다. 이 두 가지 사랑이야기도 마찬가지로 '척박한 세상에서도 인류가 살아가는 희망'의 증거로 보여준다. 위고는 인류에게 이 두 가지 사랑이 있는 한 '희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세상은 기필코 따뜻해질 거라고 말하는 것 같다.
<레 미제라블>이라는 원제목의 뜻은 '비참한 사람들', 또는 '불쌍한 사람들'이란다. 위고는 이런 제목으로 무엇을 말하려 했던 것일까? 고민을 많이 했더랬다.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장 발장이란 인물을 부각시키며 영웅적인 모습을 본 받으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는데, 장 발장과 코제트,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관계'를 살펴보니, 위고의 의도는 '인류애', 다시 말해, '사랑이야기'를 한 것만 같았다. 사랑이야기는 남녀노소 동서고금을 통틀어서 가장 인기를 끄는 소재다. 그래서 이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아이들이 재밌다고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어린이를 위한 '축약본'이기는 하지만 오랜만에 다시 읽은 <장 발장>은 내 어릴 적 가난한 추억과 함께 묘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