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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는 이 순간이 어떻게 속임수가 될 수 있죠?" -227p
작년부터 시간을 소재로 한 소설이 각 문학상에 당선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통해 시간이 흐를수록, 시대가 급변할수록 '시간'을 유예하고 싶은 사람들의 목마른 갈증을 반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시간이란 걸 유예시킬 수 없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지만 인간은 시간 안에서 존재하고 부대끼며 살아간다. 열 달을 엄마의 뱃속에서 움츠려있던 기다림의 시간, 감내의 시간을 지나 세상으로 머리를 들이밀며 울음을 터트렸던 탄생의 시간, 철없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어른이 됐다 자신했던 20대 시절, 그리고 내가 사는 현재. 시간의 연속적인 흐름 안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무엇을 잡고 싶은지, 잃어버린 채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는 이들에게, 잊고 있는 걸 상기시켜줄 『코카브』. 히브리어로 별이라는 뜻을 가진 Kochab는 소설 안에서는 '시간의 문'으로 통한다. 지금, 시간의 문을 통해 나 혹은 당신이 잃어버린 것을 찾을 준비... 되셨습니까?
떠나버린 자, 시간을 되찾으려는 아내. 상실된 무엇을 찾아 결핍된 허기를 채우려 떠나버린 자를 기다리는 자, 그의 이름은 남편.
익숙함은 소홀함이라는 '가면'을 덧씌운다. 그리고 망각한다. 우리의 끓는 점은 이미 오래전에 그 팔딱임을 멈춰버린 것도 모른 채 나는 더는 너에게 '관심'에서 기인한 '애정' 따위는 없다고 애써 자신을 타이른다. 익숙함은 그렇게 사람 대 사람 간의 끈끈한 유대감을 일시에 붕괴시켜 버리기에 안성맞춤인 '감정'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르고 있다. 아니 이조차도 망각의 늪으로 흘려보낸 것이리라.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은 '익숙함'이란 것을. 결국 우리는 모두 돌아가게 되어있다. 익숙함을 잊은 채 순간의 설렘에 눈과 마음이 멀어버린 자는 미래의 풍경을 직접 그리라 캔버스를 건네주어도 희미한 선 하나조차 긋기 두려워하는 법이다. 그리고 언젠가 깨닫게 될 것이다. 보게 될 것이다. 식어버린 애정의 끓는 점을 되돌리기 위해 애쓰고 있는 자신을. 아니라면 이미 진즉 끝났어야 하는 게 마땅하므로. 『코카브』의 이들 부부처럼, 끊었어야 옳았다 후회하지만 결국 남편은 아내를 찾아 떠난다.
잃어버린 시간, 찾고 싶나요? 잊어버렸다. 아니면 애써 잊은 건가. 그도 아니면 '버린 건가'
진실이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86p
그래, 진실을 찾아가봐! 눈 앞에 드러나는 현실이 지긋지긋하게 깨지 않는 악몽 같고 더러운 오물투성이를 덮어쓰고 있다 해도 찾기를 바라는 게 인지상정이니까. 다르게 말하면 진실을 찾으려는 욕구와 의지는 생에 대한 집착과도 이어지는 거니까. 두 눈으로 생을 간절하게 바라보는 자들만이 진실을 찾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최은희 아니... 김은희도 마찬가지다. 아들의 죽음 때문에 시간의 역행성에 사로잡힌 그녀의 두 눈이 진정으로 보고자 했던 건 진실이다. 인정할 수 없는 아들의 죽음은 시간을 거슬러감과 동시에 현실이 된다. 그리고 시간의 문에 굳게 자물쇠를 채우고 다시는 그곳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겠지. 왜냐면 시간의 문이 다시 열리고 현재로 돌아오는 순간 그녀는 '진실'을 보기 싫어도 봐야 하니까 말이다. 소설의 중요 모티브가 되는 시간, 관계.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묘한 접점이 있다. 시간은 흘러가고 이 안에서 관계도 흘러간다. 다만 다른 점은 시간은 인력으로 멈출 수 없고 관계는 가변성으로 점철된 모순의 '구球' 안에서 끊임없이 회전하고 있다는 것 정도랄까. 우리는 이 구를 끊임없이 굴려댄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마지막에는 발밑에서 처량하게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낡디낡아 버린 둥근 형체만 덩그러니 남는다. 이 구를 다시 굴릴지 아니면 영원히 그 자리에 붙박이장처럼 못 박아 버릴지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있다. 관계의 흐름은 온전히 자신이 만든 구 안에서 흘러가기 때문이다. 버려짐과 남겨짐. 이 둘의 상관성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나는 『코카브』를 읽으며 유독 이 두 의미에 집착했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야 달라지겠으나 버려진다는 것은 남겨진다는 것의 대체어다. 이 사실에 익숙해져 버린 이들은 '기다림'에 천착했다가 '망각'에 굴복하며 '체념에' 점령당한다. 은희는 버려졌으나 남겨지는 게 두려웠고 그래서 진실을 직시하지 않는 삶을 택했다. 입양, 아들을 잃어버린 이후, 남편과의 어그러진 관계, 이 뒤에는 그녀가 애써 잊으려 했던 진실이 똬리를 틀고 자신을 집어삼킬 것 같았으므로 침묵했으며 묵인했고 '망각'이라는 기억의 한시성에 의존하길 바랐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 문을 찾아 되돌아갈 수는 있다.-21p
소설은 남편의 시선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형호의 시선이 곧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본연의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녀의 시각적 관점 이전에 인간의 본질적 고민, 우리가 쫓는 게 과연 이상적 삶에 근접한가 같은 것들이 이 소설이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들이니 말이다. 이상적 삶을 위해 분투하는 형호는 곧 나나 당신의 모습과 다를 바 없고 형호의 심리적 고뇌가 당신의 고민과 고통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물론 이들은 아이를 잃고 관계의 소원함에 서로에 대한 무관심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해 나갔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인간 내면의 충돌로 각자의 고치 속으로 파고들었다. 소설의 표면적 줄거리는 분명 잃어버린 아내를 쫓는 남편이다. 하지만 작가가 의도한 게 단지 이성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시각과 입장의 차이 뿐이었을까? 나는 그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코카브』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려 한다면 보다 원환적 사고가 필요한 것 아닐까. 아내가 됐든 남편이 됐든, 이들이 궁극적으로 찾으려 했던 것은 시간이라는 유한성 뒤에 자신이 잃어버린 것, 잊고 있는 것, 찾아야 할 것 등을 돌아보게 하는 원초적인 개인의 '의미'이다. 인간은 누구나 삶이 힘에 부치면 어떤 근원이 모호한지 아닌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맹신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한다는 것, 조차 잊어버리셨나... 삶이 어디로 흘러갈지 아프고 두렵고 겁나는가. 그렇다면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조금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 나는 자주 높은 곳에 올라 하늘과 지평선을 바라본다.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면 오밀조밀 장난감 같은 건물과 한 점 먼지의 무게와도 비례할 것 같은 사람들의 물결이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모두 제각각의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종래에는 같은 도착점을 향해가고 있다는 걸 뛰고 넘어지고 주저앉아 있는 순간에는 알지 못한다. 살면서 어떤 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의 차이점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도착점에 닿아보면 모두 흐릿한 지난날의 추억이 될 뿐이다. 그러니까 내 삶 안에서 선택하는 결정의 순간들, 만남과 인연의 순간들, 아픔과 행복의 순간들, 모든 성취와 열망의 순간들이 각각의 꼭짓점을 기점으로 순환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다만 잊고 있었을 뿐이다. 이제, 그 꼭짓점을 하나하나 이어 오각형이든 육각형이든 자신만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고 의욕을 갖고 돌아볼 때이다. 형호와 은희가 같은 상처로 함몰되었던 고통을 시간의 문, 코카브를 통해 서로의 교차점을 찾아 이어갔듯이 말이다. 작품 속, 코카브 회원들의 개인사는 저마다의 삶의 무게로 나아갈 방향을 잃고 있었다. 어디선가 한 번은 들어봤음 직한 고리타분하고 통속적이고 상투적인 그들의 사연은 내가 아는 누군가 혹은 나의 일이 될 수도 있기에 무거운 중량감이 부여됐던 것이다. 고난의 연속 앞에서도 인간이 스러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빛과 같은 한 줄기 희망 때문이다. 시간의 문을 통해 과거를 바로 잡기를 바라고 되돌릴 수 있기를 바랐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나날의 연속 안에서, 밥벌이의 지겨움 앞에서도 모두가 바라는 건 비슷하다. 내일은 더 좋아지겠지. 오늘보다는 낫겠지. 이런 마음이 아니면 살아내기 벅찬 게 진실이니까.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Francoise Sagan이 법정에서 한 말이다. 표면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이는 삶에 대한 열의도 뭣도 없는 무능력자, 낙오자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언제였던가. 사강의 발언에서 영감을 얻은 김영하의 작품 제목을 보고서는 제정신이 아닌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니까. 왜, 감사하고 또 감사해도 모자랄 삶을 파괴하고 어지럽힐까 싶어서 어리석다는 판단이 먼저 차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마지막 챕터, 은희의 자기 파괴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불현듯 뇌리를 스쳤던 것이다. 어쩌면 이런 말을, 생각을 스스럼없이 내뱉는 사람들이야말로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는건 아닌가 하고. 외려 더 이 삶을 놓지 못해 누가 좀 잡아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음과 동시에 식어버린 외양의 메마름 뒤에 내면 골짜기 어딘가에서 애타게 구원 요청을 하고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의 '막'을 한 겹 벗겨본다. 흐릿하게 시야를 덮고 있는 이 장막이 걷힐 때 비로소 내가 잊고 있었던 것들, 시간에 따라 마모되고 퇴색돼버린 것들이 동공 속으로 초점을 맞출 것이다. 우리를 살게 하는 시간 속의 기억들. 차곡차곡 쌓여가며, 때로는 잊히는 게 더 많다 해도 기억하는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갈 것이므로 괜찮다. 모든 걸 기억할 수 없어도 나는 괜찮다. 시간의 문을 통해 과거를 바로잡고자 했지만 결국은 다가올 내일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염원, 우리는 모두 그렇게 목마르다. 되돌릴 수 없기에 내일에 대한 소망을 품고 살아갈 수밖에 없으므로, 소멸하여가는 하루하루가 언제나 목마르다. 다만 걱정스러운 건 서로의 상처를 돌아보는 법을 몰랐던 사람들. 언제까지고 그렇게 남을지도 모를 우리가 아프고 안쓰럽다는 것. 그뿐이다.
이들이 간절하게 기다리던 UFO는 서로 간의 소통에서 촉발되는 관심, 믿음, 희망, 사랑,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있다. 당신 안에 UFO를 품고 있다면.
'UFO는 꼭 와요...'
이 문장을 눈에 담는 순간 어떤 마음의 둑이 와르르 무너진 것만 같은 상실을 전해 받는다면... 당신의 마음 안에 있는 믿음을 근거로 한 생에 대한 집착만 있다면... 그리고 그 애착으로 살아간다면... UFO는, 이미 주변 어딘가를 슬며시 배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억하기를... 시간도 퇴색시키지 못한,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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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도를 아십니까?’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역 주변엔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도를 아냐고.. 그들이 이끄는 도의 길이 어떤 건지 모른다. 그들이 말하는 도의 진정한 의미도 뭔지 모른다. 다만 이 세상엔 정말 이상한 사람들 참 많아.. 이렇게 생각했을 뿐. 그 당시에 나는 그런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지금도 나는 그 사람들을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그들은 한 가닥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교통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부는,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그 삶에는 웃음도 즐거움도 행복도 없다. 침묵 안에 달라지는 서로를 보면서도 말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삶은 그냥 먹고 숨 쉬고 생활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까. 그런 삶 안에서 어느 날 아내가 사라졌다. 아내의 행적을 찾기로 마음먹은 남자는 코카브라는 집단에 들어가게 되고, 그 안에서 사람들의 상처와 마주하게 된다. 사람들의 상처를 보면서 자신 안의 아픔과 대면하게 되는 남자에게 시간은 되돌릴 수 있는 것일까?
한때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왜 인생이란 나에게만 이렇게 혹독하고 잔인한 것일까? 왜 삶이란 나에게만 이리도 냉정하고 차가운 바람 일색일까? 하지만 지나온 시간을 반추해 보니 인생이, 삶이 나에게만 냉정하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보면 내 인생의 굴곡 정도는 각도가 깊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그냥 원만한 언덕을 숨차게 뛰어올라간 정도? 그 정도의 굴곡은 인생의 긴 마라톤 안에서 오르막 정도의 아픔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다 투정했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내 인생의 이정도 고난쯤은 웃으면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인생은 모든 것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씩 잃어가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라고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을까 (44) 나이를 먹으면서 종교를 갖거나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이유는 아마도... 얻지 못하고 잃어가기 때문 아닐까? 예전에는 노력하면 가질 줄 알았고,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나 자신을 채찍질 했지만... 맞다. 인생이란.. 조금씩 내 일부를, 내가 가진 어떤 것을 세상 안에 놓아야 함을 알게 된다. 그걸 좀 더 일찍 알려줬다면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았을 텐데.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서려 하지 않았을 텐데.. 높은 곳의 공기는 낮은 곳의 공기보다 신선했을까?
부모에게 아이는... 상상 할 수 없는 보물이다. 부모가 되지 않았다면 나는 그 보물의 의미를 몰랐을 것이다. 인생이 하나씩 잃어가는 것이라고는 하나, 아이를 잃고 싶은 부모는 이 세상에 없다. 그래서 부부는... 아팠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네 탓이라 퍼 부을 수 있었다면 그들은 나름 이겨 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 탓으로 돌릴 수 없었던 그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침묵이란 때론... 악귀처럼 달려드는 무서운 말보다 더 상처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읽는 내내 아팠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아이의 이름이 동현이라서 더... 울컥했다. 나의 큰 아이가 동현이라는 이름을 가져서 이기도 하고, 아이를 먼저 보낸... 어쩜 피할 수 있었던 그 사고를.. 아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면 피할 수 있었던 사고였기에 더욱 아팠다.
이 세계는 이해할 수 없는 불합리한 일들로 가득하니까요. 모든 것을 다 가졌다 해서 행복을 보장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고 해서 평화를 얻는다고 보장할 수 없어요. (201)
하지 못한 게 아니라, 하지 않았다는 말. 운이 나쁜 게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버렸다는 말. (208) 그들은 그 시간 안에서 아마 상처를 치유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이비 종교의 그렇고 그런 이야기 일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위안을 찾는다. 처음에는 무슨 사이비 종교의 이야기를 이토록 애잔하게 그릴 수 있을까 했지만... 과연 사이비 종교의 이야기이기만 했을까? 시간이란 녀석은.. 참 묘하다. 그리고 잘 모르겠다. 그 시간을 잡고 싶기도 하고, 되돌리고 싶기도 하고,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지만 시간이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기에 더 가까이 가고 싶은 모양이다.
또한 그 시간이 있기에 우리는 치유하고, 위안 받는 것일지 모르겠다. 책을 덮고도 쉽게 움직이지 못했고, 그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침묵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위안을 받는다. 기억하는 한 우리의 인생.. 모두에게 의미 있는 시간들 일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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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 낸 시간을 뒤로하고 살아야 하는 시간을 맞이하며 그렇게 살고 있다. 살아 낸 그 시간을 '과거'라 이름하고 그 과거를 아쉬워하기도, 떠올리기도 하고 ,때론 망각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기억이라는 장 속에 차곡차곡 쌓아두며 살아가고 있다. 완전하고 싶고 행복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욕심인지라 지나간 그 시간은 만족보다는 아쉬움이 더 크고 그렇기때문에 만약에 내가 그 때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 이라는 생각을 누구나 한번쯤은 하고 살아가는 것 같다. 현실적으로 불가능 한 이야기이기에 영화나 이야기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며 즐기고 있기도 한 듯 하다.
코카브 (Kokhav) 곧 시간의 문이 열립니다... 제목이 낯설었다. '코카브'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궁금하고 성급한 마음에 책소개를 읽어보니 과거, 시간의 문, UFO..등의 단어가 눈에 띤다. SF소설 ? 판타지물? 인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평소 그런 장르의 소설과는 그리 친하지 않은 편이라 관심이 좀 반감되는 것을 느꼈지만 그래도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한 맘에 첫 장을 펼치게 되었다.
프롤로그에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후 그 상실감으로 버걱거리는 한 여인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간절히 무엇인가를 잡으려는 여인의 안타까운 굳은 결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한형호라는 그녀의 남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저 평범한 부부였고 , 결혼생활이었지만 그들에게 찾아온 아들의 죽음이라는 아픔은, 평범한 가정속에서 일상을 공유하는 부부라는 관계에 깊을 골을 남기게 된다. 4년이라는 시간동안 그들은 그렇게 각자의 생각속에서 자신만을 바라보며 시간이 정지 된 듯 한 하루하루를 무의하고 무의식적으로 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돌연 아내가 행방을 감추게 된다. 같은 공간안에 존재한다는 것 뿐 어떤 교감도 있지 않았던 4년이라는 시간이었지만 막상 그 존재감마저 없다는 것은 그를 불안하게 했고 이런식의 끝은 아니것 같다는 생각에 아내를 찾아나서기로 맘을 먹는다. 아내의 흔적을 찾던 중 발견한 낡은 동화책 <헨젤과 그레텔> 그리고 그들이 숲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뿌려둔 빵조각이나 조약돌과 같은.. 아내가 남긴 흔적들... 친정에 놓고 간 핸드폰 , 교회에서 찾아낸 낡은 손수건, 보육에서 찾은 빨간 이름표 친구의 언니에게서 받은 108번제 전표... 하나씩 발견되는 아내의 흔적들.. 그리고 그 흔적 위에 숨어있던 아내의 아픔들.. 그리고 그것과 대면하며 자신이 잊고 있던 그리고 무심했던 그 무엇인가를 찾아나가는 한형호의 회한과 반성들...
결국 아내의 흔적을 쫒아 알아낸 곳은 코카브라고 하는 어떤 집단시설이었다. 그곳의 모든 사람들은 저 마다의 아픔을 가지고 그 아픔을 되돌릴 수 있는 과거의 어느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그러한 것이 외계의 UFO와의 교신을 통해 그들의 과학문명에 힘입어 가능하며 그것을 믿고 그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그들이 시간의 문을 찾고자 한 이유는 과거의 치유를 통해 현재를 재창조하고 싶은 것이다.(p237)
이 부분부터 이야기의 전개가 더욱 궁금해졌다. UFO와의 교신 그리고 시간의 문이 열이는 D-day .. 공상과학이야기에서나 나올 듯한 그 이야기를 진심으로 믿고 있는 그들.. 그들을 바라보는 독자의 입장에서 과연 그들의 희망대로 되도 이야기가 너무 허무맹랑해서 이상할 것 같고 ,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때 그들이 느낄 상실감은 또 어떻게 이야기가 되려나 하는 걱정반 기대반이라고 해야할까..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나의 기대와 우려를 모두 충족시켜주는 결론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한형호는 아내를 만나야한다는 목적만으로 코카브에 잠입(?)을 해서 그들과 함께 그 생활을 해 나간다. 그 안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과의 교감 그리고 아픔을 공유하며 치유 받는 그 과정.. 시간의 문이 열리는 그 D-day가 그들의 해결점이 아니라 그것을 기다리며 준비했던 그 과정이 바로 그들의 시간의 문이였고 그들의 코카브였던 것이었다.
그렇게 변할 수 있었던 그들이기에 순간이라도 아내와 두 손을 잡고 아들 동현이를 만날 수 있었고 다시 돌아온 현실에서는 등을 보이는 것이 아닌 서로를 마주 보며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서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문이 되어 울타리도 벽도 없는 커다란 세상의 통로가 되어주기로 손을 잡고 결심한다. 시작은 그들을 안타까운 맘으로 바라보며 만났지만 마지막에는 흐뭇한 미소와 함께 맘이 편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던 이야기였다. 과거라는 이름으로 나의 기억의 장 속에 또 한 겹으로 쌓이게 될 지금..이라는 시간 이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살아간다면 그러한 문을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님이 말씀헤 주신 가장 소중한 것.. 항상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그 뒤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흡입력있는 이야기였다. 과연 아내를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아내를 찾은 후에는 과연 코카브가 의미하는 것은.. 그리고 그들의 결론은 어떤 것일까.. 순간 순간마다 생기는 궁금증으로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해마다 나오는 여러가지 수상작들을 챙겨보는 편이다. 기성작가들의 작품을 한꺼번에 만나볼 수 있는 권위있는 작가상도 좋아하지만 몇 해 전부터 젊은작가상이란 수장작들을 눈여겨 보고 있다. 그렇게 만난 작가들이 후에는 더욱 탄탄한 작품으로 수장작을 거머쥐기도 하고 좋은 글을 통해 나의 기대를 만족시켜주는 듯 하다. 이 책은 제 1회 자음과 모음 <나는 작가다> 당선작이다. 자모의 신인작가 발굴을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인 <나는 작가다>의 첫 당선작.. 젊은 작가들보다도 더욱 신선한 신인작가의 글들은 농익은 달달함보다는 설익은 풋풋함이 있어서 나는 참 좋다. 올해의 목표중에 하나가 새로운 좋은 작가들을 만나는 것이었는데 연초에 벌써 한 분을 만나게 된 듯 하여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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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기억력이 점차 떨어져서인지, 도대체 이 제목이 그리도 입에 붙지 않더라. 나중엔 하다하다 코카콜라를 떠올리며 연상작용으로 외웠는데도 여전히 팍 떠오르는 제목이 아니다. 여러 얼굴들의 실루엣이 저마다 무표정으로 생각에 잠긴 듯, 한 곳을 응시한다. <이책은> 슬로우리더 라이터 님의 선물 도서. <저자는>
<책내용 맛보기>
<책읽은 소감> 고등학교때 짝쿵이었던 친구가 있었다. 그닥 연락을 하며 지내는 경우는 아니었지만 친구가 내 결혼식에 와 주었고 나는 임신중이라 친구의 결혼식에 못가서 늘 미안함으로 자리했다. 사는 지역이 다르고 각별한 친밀함은 아니었기에 연락은 자연스레 두절되었다. 재작년에 언뜻 연락처를 알게 되었는데, 얘와 친했던 친구와 먼저 전화를 했다. 소식없이 지내던 사람들과의 전화에서는 아이는 몇이 자연스레 등장하는데, 그 아이가 현재는 아들 하난데, 앞전에 아들 하나를 사고로 잃었으니 그런 언급은 하지 말란다. 즉, 큰 아이를 사고로 잃은후 현재 아이를 낳은 것이다.
여행가서 아빠는 먼저 내려갔고, 엄마와 아이는 같이 있다가 아이가 베란다로 떨어졌단다. 들은 얘기는 단순하지만 그 심적고통이 얼마나 컸을까는 감히 가늠할 수가 없는 정도였겠지... 그렇게 술을 못하던 두 부부는 서로를 보는게 고통인지라 술로 몇 달을 보냈다고 하는데...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몇개월이 얼마나 고통일지는 불 보듯 뻔하겠지만, 그간의 부부간의 신뢰성면에서 경중은 있을법하다. 그간의 보상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새로이 탄생한 새 생명이 그 아픈 자리를 조금은 메워주고 있다는 사실. 트라우마인지라 그 부부는 여행을 못 갈 것 같고, 아이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은 비단 나의 생각일까...
아이를 두고서 생기는 납치나 유괴 혹은 난치병이나 불치병으로 인한 끝없는 장기간의 사투 나아가 병사나 사고사는 부모의 가슴에 평생의 짐으로 얹혀지리라. 부모를 보낸 자식은 특별한 날에만 눈물짓지만,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는 일분일초가 대개는 그리움이고 한이리라. 전국민이 사랑하는 전국노래자랑 장수MC 송해 씨도 30여 년전에 아들을 가슴에 묻었다 한다. 자식을 잃은 달이 다가올수록 잠도 잘 못자고...요즘은 하도 이상한 부모도 많아서 다 그런 부모라 할 수는 없으나 대개는 그런 부모들이 태반일 것이다. 작고하신 박완서 님도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산 장본인으로 남편까지도 먼저 보내고 글의 힘으로 치유를 하며 보낸걸로 아는데...
자신이 고아나 다름없었기에 연상의 여인이 누나처럼 어머니처럼 챙겨주는 살뜰함에서 정이 들었다. 그게 정인건 확실한데 사랑으로 화한건지 사랑이라 믿은건지 둘은 보금자리를 마련했고 결실인 아들도 얻었다. 알콩살콩 이런게 행복이구나를 조금씩 실감했지만 주어진 상황 보여진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뿐, 자신이 어떻게 노력해야 더 나아진다거나 더 행복해지는건지는 모른 남자이자 남편. 특별히 알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아내에 관하여 알 필요도 없었던 결혼생활. 그저 가장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게 전부라 믿었던 남자였기에 가족들 부양하는 것에서는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이가 사고로 죽었다는 것은 한참을 읽고 읽은 후에 드디어 말해준다.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 아이에게 올인하는 삶에서 아이의 영원한 부재가 갖다준 침묵은 너무 깊고 무거웠다. 아이로 인해 두 사람이 대화가 되는 상태에서는 더 심각한 타격이다. 둘 사이의 공간이 각자의 방으로 나뉘어 아내는 아이방에서 칩거하다시피 지내는 상황을 알면서도 다독이거나 보듬어 주질 못한다. 그건 안해야겠다는 마음보다도 자신이 그런 사랑을 받아본 경험이 없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고통스런 상황에서 모르쇠로 일관하는 유형이 있다는 생각도 했다. 또, 자신보다 연상인 아내는 모든면에서 완벽하게 잘 해냈다는게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거나 자신이 도움이 되지 않을거란 지레 짐작을 남편이 했을 수도 있겠다.
같이 사는데 따로 사는 부부. 남편의 건강을 위한 오미자차도 손수 달이고, 아침 밥상도 살뜰히 챙기건만 그건 남편밥상이지 둘이 먹는 경우가 없다. 그렇다해도 같이 먹자는 언급이 없는걸 보면 그런 단계를 지나서 이미 그런 말도 불필요한 단계가 되었다 단정할 수 있으나, 여기선 남편이 그런 곰살맞다거나 살가운 사람이 전혀 아니기에 아내가 맞춰줘야 하는 성격으로 보였다. 어느새 말도 필요없는 단계란 그만큼 감정이 사라진 상태를 말함이라. 지독한 숨막힘만이 자리하는 집은 보금자리가 아니고 그저 썰렁한 공간이 아닐까. 사람의 온기가 없는 집은 냉랭함만이 감돌테고 그 안에서 무슨 정겨운 마음이 싹튼단 말인가. 이런 마른 삭정이처럼 온기를 떠나 눈빛마저도 이미 허공을 떠돌던 아내가 없다. 벌써 이틀이 지났다. 헐! 아내가 사라졌다.
아내라는 여자. 동현엄마인 아내. 도대체 아내는 어떤 사람였는지 막막하기가 이루말할 수 없다. 아내의 행보를 찾아 두리번거리다보니 아내의 절친였던 친구는 2년전 고인.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어렵사리 찾아간 장모에게 들은 아내의 출생 비밀...죄인인 듯 송구스러워하는 장모를 더 보는게 죄송해서 서둘러 나와 돌아온 집. 그 집에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철저한 고독과 마주한다. 아내의 일기를 읽다가 그 밤을 지새우는데, 아내의 심중을 공감하기는 어려운 남편. 지나는 시간들 속에서 같이 대화한 적이 있었던가 자책이 자리하지만 그건 일시적 감상일뿐. 불도저라는 별명을 얻을만치 때론 맹목적 밀어부침으로 직장서 인정은 받았는데, 중요한 사항이 있음에도 아내를 위한 행적을 좇기 위해 연차를 낸다.
코카브로의 유도를 위한 것인양 아내는 여기저기 흔적을 남겼다. 전에는 서로 동문서답하듯 별관심없던 부부가 아내의 어떤 포지션을 나타내는걸 금새도 알아보는게 많이 작위적으로 느껴진 대목. 장모의 이야기로 말미암아 아내의 출생지인 천사원을 찾아가고, 아내의 생모를 상봉하고, 아내가 간절히 만나기를 원했던 기자와의 통화후 만남을 가지게 된다. 암튼, 아내의 표식이라고 믿으며 움직이던 그가 부지불식간에 동행하게 된 기자. 그 기자와 함께 코카브의 회원이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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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자기성장프로그램 교육에 참가한 적이 있다. 시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수강료도 저렴했고 초급, 중급, 전문가 과정이 있는데 1주일에 2시간씩 1번을 진행하는데 12주였다. 그러자니 3개월여를 봄학기와 가을학기 그리고 봄학기에 참석했었다. 10~15명의 사람으로 구성되는데 무엇보다 별칭을 사용해 자신을 부각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부담감은 덜한데, 집단상담 형태라 보면 된다. 집단상담을 그때 처음 접했고 받았는데 여러 사람의 관점이나 생각을 한자리서 보는 기회가 매우 유익했다. 나와는 전혀 다른 관점앞에서 깜놀하면서 이렇게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저마다 생활하는데 트러블이 생기는건 당연한거지 싶었고...코카브의 첫 단계는 집단상담이라 할 수 있는 형태였다.
아내를 찾기 위함이지 원해서는 아니었지만 코카브의 일원이 된 형호 씨는 여러 사람과 한 방을 쓰면서 한 그룹안에 속한다. 도무지 화합하지 못할 것 같은 형호 씨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융화되는게 믿어지지 않는다. 이렇듯 융통성있는 사람이었다면 아내 은희 씨가 그토록 감정없는 사람으로 변해가도록 놔뒀을까...두 사람이 이런 지경까지 왔을까...저마다의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만은 그걸 이겨내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리라. 집단상담의 좋은점은 속내를 털어놨을때 자신의 경험치에 따라 처방전이 서로 다르다는것. 자신이 옳다고 여기고 그것만이 맞다고 살아온 세월앞에서 다른 방법도 있음을 알게 되는 것. 또 자신이 가장 힘들어하는 그 무엇이 사실은 약간의 각도만 수정해도 훨씬 가벼워짐을 아는 것.
서둘러 변화하는 것이 어떤 상황이 되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형호 씨의 변화하는 속도는 빠름빠름빠름 이라 놀랍다. 이렇게 쉬이 변화할 수 있고 마음을 열 수 있는 사람이었나 의아하다. 그런 사람이었다면 그 단초를 제공하는 사건이나 계기가 없어서 답답하고 의미없게 살아왔다는 얘기가 되는데, 앞에서 그려졌던 이미지와는 확 다르게 사람이 변하니 타고난 본성이 그리 쉽게 될까 싶은 면에서 인위적으로만 보였다. 또 코카브 라는 단어도 영 다가오지 않는데 UFO어쩌고 그런 단어가 등장하니 일단은 거부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UFO를 완전히 믿지 않는다 그런 차원의 얘기는 아니지만 SF소설을 즐기지 않는 나의 성격일 것이나 일단은 자신이 선호하지 않는 것 앞에선 일순 멈춤이나 통과하고 싶은 마음, 그거 이해해줘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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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으면 대충 훑어보는 습관이 있다. 이 책 또한 받자마자 작가의 친필 사인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책 뒷표지를 훑었다. 그리고 책을 펼쳐 프롤로그를 읽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한 페이지를 넘겼어도 그 다음 페이지로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다. 그렇다 놓기를 몇 번. 다시 책을 펼쳐들었다. 책 읽기도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른가. 그토록 책장이 넘겨지지 않았던 책이 조금씩 읽혔다. 프롤로그가 끝나고 제 1장을 읽기 시작했을때, 프롤로그 부분이 왜 그렇게 넘어가지 않았는지가 우습게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생각해보면, '코카브'란 말이 내게 익숙치 않았던것 같다. 그 뜻도 몰랐거니와, 죽은 아들을 뒤로 하고 집 나간 아내를 찾으러 간 남편의 이야기라는 건 알겠는데, 코카브란 단어가 계속 마음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었다.
일단, '코카브'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별'이란 뜻을 지녔다. 아이가 불의의 사고로 죽고 사 년이 흐른후 갑자기 아내가 사라져 버렸다. 그는 그저 아내를 집안의 붙박이처럼 생각했었다. 아들이 죽고 힘들어하는 시간을 보내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며칠이 지나도 찾지 않다가 아내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더니 장모님이 받았다. 장모님댁에도 없는 모양이었다. 도리어 장모님이 형호에게 물었다. 아내는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사람은 곁에 있으면 소중한줄을 모른다. 그저 그 자리에 영원히 있을 사람으로만 알고 있는 것 같다. 그 사람이 사라졌을때에야 우리는 빈 자리가 우리가 생각해왔던 것보다 훨씬 컸음을 그제야 느낀다.
아내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아내가 머물렀던 아들 방에서 아내의 일기장을 찾았고, 아내의 메모를 발견했다. 그리고 아내의 옷장이 비어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름옷, 겨울옷을 다 챙겨갔던 것이다. 잠시의 외출이 아닌 오랜 시간을 지내러 어딘가로 향했다. 그제서야 형호는 아내에게 너무도 무심했음을 깨닫는다. 아들이 죽고난 후 4년이 지나도록 아내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지냈는지 무관심했음을 깨달았다. 아내에 대해서 더 알아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무관심은 때론 동정심이나 연민마저 잃게 만든다. 또한 잔인함이란 그 방관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27페이지)
아내의 행적을 찾아다니며 아내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을때, 아내의 어릴적의 일을 들으며 하나씩 알아간다. 그리고 아내가 있는 곳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 곳은 '코카브'라는 곳이다. 시간의 문이 열린다는 그곳.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과거의 어떤 간절한 삶에 도달하고자 한다. 간절히 원하는 어떤 시간속으로 들어가기 모여든 사람이었다. 천문학 학회의 모습같으면서도 UFO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아내의 곁에 있지만 아내 곁으로 가지 못하고, '코카브'에서 강의를 받고, 한 방을 쓰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점점 그들이 말하는 어떤 시간을 형호도 기다리는 것이다. 아내를 이해하기 위해서, 어느 순간 이해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 문을 찾아 되돌아갈 수는 있다. (21페이지)
형호의 아내가 메모한 위 글에서처럼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고 딱 어느 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그것은 우리의 염원일 뿐이다. 어떤 일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 시간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또 똑같이 행동하지 않을까. 지극히 현실적인 나는 현실에 충실하라고 말하고 싶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보다는 앞으로 살아가는 날들, 바로 오늘 이 순간부터 관심있게 지켜보고 잘 하라고 말하고 싶다.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잊지 말라고, 나도 작가처럼 말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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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는 말을 많이 듣기도 또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가족을 위한 희생이란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일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한 채 오직 가족만을 위해서 싫은 것도 참아가면서, 다소 부족하더라도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경제적인 벌이와 살림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가족 중 한 명을 잃고 두 부부만 남았다면 그 남은 가족은 희생할 가족의 범주에 들지 못하는 것일까? 분명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는 분명 부부라는 묶임도 있으니 말이다.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아내는 아들을 잃고 세상을 잃고 말을 잃었고, 심지어는 몸에 살이 하나도 남지 않은 것처럼 말라 버렸다. 하지만 남편은 그런 아내를 그저 벽인 양 가구인양 무심하게 대하며 한결같은 무뚝뚝함으로 아내를 살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집에서 사라지고 그래도 한때 남편이었다는 책임감으로 아내를 찾아 나서지만, 그럴수록 아내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하다. 도대체 자신의 아내는 어디로 갔으며, 아내는 정말 자신이 알던 그 아내가 맞는 것일까? 연애기간을 거쳐 결혼한 두 사람이었지만 아내와 아들이 주는 안정적인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남편은 점점 가정을 잊어 갔다. 익숙함과 당연함. 그렇기 때문에 아내의 마음속 깊은 곳에 무엇이 있었는지 아들의 학교 생활이 어떠했는지, 아들이 아내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전혀 몰랐다. 한 번도 제대로 마주보지 않았기에 아들을 잃은 후 아내에게 일어나는 변화들을 감지해 내지 못했고, 결국 아내는 그렇게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아내가 코카브라는 조직에 들어갔음을 알고 그 조직으로 들어간 남편은 아직 아내를 만나지는 못했다. 언젠가 외계의 진보한 문명이 나타나 시간의 문을 열어줄 것이라고 믿는 조직 ‘코카브’. 그 안에는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모두 그들이 바라는 과거의 어느 한 시점으로 돌아가 지금과 같은 후회가 남지 않도록 다른 선택을 하고 싶다. 처음엔 그 조직을 의심하던 남편이었지만 그들과 함께 과거를 돌아보며 조금씩이나마 마음을 열게 되고, 시간의 문이 열린다는 그 순간에는 드디어 아내를 만나게 된다. 이 코카브에는 UFO를 통해 시간의 문이 열리는 그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들이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가슴속에 커다란 상처를 가지고 있고, 시간의 문이 열릴 때 그 상처가 시작된 시점으로 돌아가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그런 기다림의 시간속에 그들은 서로의 아픔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며 어렵사리 상처를 입밖으로 내는 과정을 거친다. 그렇게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그 상처를 서로 봐 주고 어루만져 주면서 서로 괜찮다고 말해준다. 그렇게 입밖으로 내뱉어진 상처는 더 이상 예전만큼의 고통을 수반하고 있지는 않다. 이미 한번 내뱉어져 희석되었고, 또 같은 상처를 공유한 사람들로부터 위로를 받았기에 거듭 희석되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시간의 문을 못 열었다 하더라도 그들에겐 더 이상 그것이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도 그것을 알고 있고 그리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할 것이다. 우리는 무슨 일이 생기면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생긴 누군가를 위해 나는 들을 준비가 돼 있는지도 한번 뒤돌아 봐야 하지 않을까
99.9의 행복과 0.1의 불행이 함께 온다면 그것은 행복한 것일까, 불행한 것일까. - P237 “얼룩이 지워지기 위해선 오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해요. 한참 물에 담가야 하고, 세제나 용해제를 넣어야 하고, 햇볕을 받아 화학작용을 해야 하고… 그래도 지워지지 않아 몇 번이고 다시 빨아야 하고…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그 얼룩이 본래의 무늬이기라도 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어요. 그것이 할 수 있는 전부일 때가 있다고요”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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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아가다 보면 자기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잠시 잊고 사는 것 같다. 그냥 방관하는 자세 말이다. 나조차도 내 주변에 나의 곁에 있는 이들에게는 친절하지 못하고 그냥 옆에 항상 있으니 그 사람의 소중함은 잊고 다른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는 것 같다. 가족이나 옆에 있는 사람이 최고로 소중함을 알아야 하는데 말이다. 이제부터라도 가족에 대해서 더욱 따뜻하고 친절한 한마디라도 더 거는 나를 생각해 보면서 말이다. 그리고 나를 위해 긍정의 마인드를 더 가지고 살아야겠다.
『코카브 』라는 책을 읽기 전에는 그 뜻이 무엇인가 궁금했다. 처음 들어보는 단어라서 왜? 코카브일까?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서 알게 되었다. 작은곰자리 베타는 작은곰자리의 '작은 국자'에서 국자의 우묵한 곳에 해당되는 별이다. 코카브 검색으로 이렇게 코카브의 뜻을 알고 나니 책의 제목이 어울려 보인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 문을 찾아 되돌아갈 수는 있다.
아내가 살아진걸 알게 된 형호 4년이라는 세월동안 아내와 말도 걸어본 것 같지 않고 그냥 살았던 것 같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아들(동현)이 4년 전에 오토바이 사고로 하늘나라로 보내고 그 이후부터 말이 없이 그냥 집에 장롱 같은 존대로 대했던 것 같다. 그냥 집에 있는 그 무엇 말이다. 가끔 절실히 필요할 때 그 무엇이 없다면 우리는 방황하고 헤맨다. 영호는 아내가 살아지자 아내를 한때 너무 소중히 여기도 사랑한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아내의 흔적을 찾는 과정에서 집에 놓여있는 책 위에서 이 메모를 발견한다.
아내의 흔적을 찾아서 형호는 출발했다. 아내의 친구인 미란의 편지가 살아지고 봉투만 남아있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장모님에게 들린 아내는 전화기를 놓고 살아진 것이다. 그리고 알게 되는 아내의 과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아내는 장모님이 친부모가 아닌 양부모님 이셨다. 그런데 그 사실을 처음부터 아내는 알고 있었다. 자기가 기억하는 양부모의 비밀에서 아내는 친구 미란이 양부모에게 가야하는데 자기가 선택되었고 자기만 행복을 누리고 살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차츰 아내가 살아짐의 원인을 밝혀가는 데 거기서 아내의 친모가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리고 아내가 살아지기 전에 전화를 했다는 기자 이강식을 만나게 된다.
‘시간의 문’ ‘UFO를 기다린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은 아내가 마지막으로 갔다는 곳을 알게 된다. 이 알게 됨은 참 웃기다. 아내가 살아지면서 마지막 거친 곳을 찾다 보니 그곳에서 아내가 남기고 간 메모를 받게 되고, 그 메모로 아내가 간 강원도 그곳 ‘코카브’ 단체가 있는 곳을 찾아가게 된다. “사람들이란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하거든요. 일부 사람들은 우리가 추구하는 시간의 소통이 자칫 현실 세계의 질서를 깨뜨릴 수 있다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특히 외계의 생명체 문제는 예민한 문제라 국제적인 기밀로 다루고 있지요. 나름 우리 학회의 보호를 위한 일이니 이해해주세요.” P126 아내를 찾아 간 곳의 경계가 심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내와는 대화도 못하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형호는 점점 자신의 마음에 변화를 느끼게 된다.
아내를 찾아 아내는 만나고 싶은 아들을 그리면서 아들을 만나기 위해 그곳에 간 것인가? 아니면 아내는 아내 자신을 찾기 위해 그곳에 간 것인가? 형호는 이곳에서 같은 팀들과 이야기하고 만나면서 조금씩 느끼고 깨닫게 되면서 아내를 더 생각하게 된다. “과거는 현재를 위한 하나의 계단이에요. 잊어야 하는 대상도 집착해야 할 대상도 아니란 것이지요. 우리가 시간의 문을 찾고 여행을 하며 많은 것들을 뒤바꿀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아야 할 것은 그 어떤 시간도 우리에게 있어 소중하지 않은 시간은 없으며, 설사 그것이 상처라 해도 그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영혼이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에요.” P143 아마 꼭 시간의 문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그 누구를 만나 다시 돌아온다거나 이런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 모인 사람들의 슬픔, 아픔, 아니면 기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 자신의 아픔, 슬픔도 치유해가는 그런 곳 같다. 처음에 아내를 찾아 간 곳이지만 이제 서서히 형오는 자신의 과거로의 여행이 되어 자기 자신을 조금씩 치유해 가는 것 같다.
다들 느꼈을 것이다. 그곳에서 교육을 받거나 이야기 한 사람들은 다들 느꼈을 것이다. 과연 UFO는 왔다 간 건가? 남들은 아니라고 해도 자기 자신들의 마음속에 아주 커다란 별의 밝은 불빛이 비추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내를 찾아간 곳이지만 형호는 자기 자신을 찾은 그런 시간의 문의 여행이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아이 아형은 형호와 같이 살고 싶다고 한다. 어르신, 닥터박, 최 마담, 리나..다들 자기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고 슬픈 얼굴보다는 이제는 웃는 밝은 얼굴들이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아내의 변화를 알게 된다. 둘은 아무래도 오랫동안 행복한 가족이 될 것이다.
“더 이상 내 삶을 당신에게 기대지도 않을 거고, 어린아이처럼 엄마 밉다고 투정부리지도 않을 거고, 미란에게 미안해하지 않을 거고, 무엇보다도....내 자신을 가장 사랑해주면서, 그렇게 살고 싶어.” “그리고...한순간 한순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뜨겁게 살고 싶어. 정말로 살아 있는 것처럼. 늘 동현이를 행복하게 기억하면서.” P296
코카브는 상처가 많아 아파 힘들어하는 분이나 나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분, 아니면 삶이 그냥 밋밋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읽고 삶의 소중함을 알아가길 바란다. 아픔, 슬픔, 상처가 너무 커서 감당하기 힘든 사람들은 모두 조용히 숨어 숨도 못 쉬고 자기 자신만을 자책하면서 사는 이들이 참 많은 것 같다. 그럴 때 안 좋은 선택으로 자살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우울증이 심해져서 사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이런 분들이 읽고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고 문을 열어 그곳에서 밝은 빛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형호가 아내를 찾아 추리해가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작은 티끌이라도 아들 동현을 찾아가는 자기 과거의 여행도 너무 좋았고 나도 나를 찾아 한번 가볼까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제부터는 내 주변, 그리고 나를 위해 더욱 최선을 다하고 재미나게 살고 싶게 만든 소중한 책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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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은희&형호 부부는 여느 커플들처럼 열렬하게 사랑해서 결혼 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이 초등학생이었을때, 오토바이 사고로 하늘나라로 먼저 보냈다. 그 사건을 시점으로 부부는 한 집에서 살기는 했지만, 평범한 대화가 없어지고, 서로 눈길을 주고 받는 일도 없어졌다.
아들의 죽음이 상대방의 잘못인 양, 서로를 무시하는 것으로 벌 주는 듯이 보였다. 서로가 서로를 눈에 안 보이는 투명인간 처럼 여기며 살았다. 말 없이도 일상을 사는데는 지장 없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아들의 사고 이후로 벌써 4년이 흘러 있었다.
그렇게 빈 껍데기처럼, 투명인간처럼 지내던 아내가 사라졌다. 며칠 여행이라도 갔으려나... 친정에 갔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증오와 미움도 느껴지지 않는 아내지만, 아직 남편의 역할이 끝난 게 아니어서 일말의 의무감으로 그녀를 찾아나선다. 막상 찾아나서려니 아내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이 없다는게 막막했다. 짚이는 데라도 있어야 하는데,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게 이런 심정일까. 참으로 답답했다. 4년 동안 변변한 대화조차 없던 부부였고, 아내에 대한 애정과 관심도 식은지 오래였으니 당연한 얘기였다.
그러다 아내의 일기장이 발견되고, 오래전 기억을 더듬어 차근차근 하나씩 단서를 쫓아간다. 그러나 밝혀진 진실은 어이없고, 황당했다.
UFO? 시간의 문이 열린다고? 코카브?
이상한 단체의 꼬임에 넘어갔는지도 모를일이다. 사이비 종교에라도 가입이 된거면 이혼으로 갈라서기 전에 골치 아픈 일에 엮이게 될지도 모른다.
아내를 찾는 길에는 십여년의 결혼생활을 했지만 그가 몰랐던 사실도 드러난다. 아내가 장인, 장모의 친 딸이 아닌 입양아라는 사실이 그랬고, 아들의 죽음은 사고가 아닌 자살일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사실이 그랬다. 믿기 힘든 혼란스러운 얘기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혼란스러움과 충격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게 되자, 그 모든 충격을 먼저 겪었을 아내의 마음은 어땠을까에 머물렀다. 그동안 그녀가 방황했을 시간이 아프게 느껴졌다. 아픔과 고통, 혼란스러움이 얼마나 많은 시간 아내를 혼자 울게 했을까 하는 마음에 한없이 가엾게도 느껴졌다.
'코카브' 라는 곳은 UFO를 믿는, 또 다른 세계를 믿는 사람들의 단체 이름이다. 코카브의 회원이면서 시간의 문을 통해 또 다른 세계로 떠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시간의 문'이 열리는 D-day 가 언제일지 궁금해 했다. '시간의 문'이 열리는 장소와 시간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데, 그 중요한 날짜와 장소는 코카브 회원이 아니면 알 수가 없다.
현재로서는 코카브의 위치조차 수수께끼다. 아내는 분명 그 코카브를 향해 떠났을텐데 그 코카브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코카브를 찾는 과정이 중요하지는 않은 듯, 생각보다 쉽게 코카브의 위치를 알아내고 코카브에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알파, 베타, 감마, 델타. 그 안에서 쓰는 용어다. 사람을 지칭하는 계급 정도로 보면 되는데, 델타의 지위(?)인 그는 베타의 아내를 당장은 만날 수 없다고 한다. 교육을 받고 코카브 내부 프로그램을 이수한 후에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아내를 만나기 위해 코카브의 회원인 척 하면서 교육을 받고, 숙식을 해결하며, 믿음이 있는 양 사람들과 어울린다.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또 하나같이 아픔을 간직한 공통점이 있었다. 공통적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했고, 행복했던 시간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 이었다.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채 5~6명 단위의 여러 그룹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처음엔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사람들이 모두 미쳤거나, 철저히 세뇌 당한게 아닐까 했었다. 그러나 차츰 그 자신도 코카브에 빠져들고 있었다.
과연 그들이 말하는 '시간의 문'은 열릴 수 있을까? 그들 각자가 원하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책 초반에 "UFO" 라는 단어가 나와서 '아! 내 취향이 아닐 수 있겠다!' 성급한 결론을 내렸었다. 그러다 중반 이후로 가면서는 코카브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졌다. 저자와 함께 아내를 찾고 있었고, 코카브의 시스템과 최종 목표가 뭔지 함께 궁금할 정도로 소설에 몰입되어 있었다.
코카브 회원들의 저마다의 사연을 보면서는 훌쩍 거리기도 했다. 진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형호가 느끼는 회한과 뉘우침을 보면서 어쩌면 과학적인 지식으로 무장한 불법단체처럼 보이는 코카브가 여러사람의 삶을 구원해 주는 좋은 단체일 수 있겠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손상된 생각과 상처를 고쳐주고 치료해주는 훌륭한 병원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목적한 바는 따로 있었겠지만 말이다.
역시 이 책도 아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 자리에서 금방 읽더니, "엄마! 마지막 부분이 슬펐어? 아까 훌쩍거렸지?" 한다. "넌 그 부분 안 슬펐어? 뭉클하지 않았어?" "어. 조금 그런 부분도 있기는 한데, 많이는 아닌데... 아형이 '배신자'라고 하는 부분은 재밌잖아."
실제로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소리내어 킬킬 거리기도 했다. 일정부분 아들에게는 동감이 덜 될 수도 있었겠다. 아직 어린 아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아들도 나도 재밌게 읽었다. 주위에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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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쪽지와 함께 책 한 권이 나에게 왔다. '코카브', 히브리어로 별이라는 의미의 단어란다. 그러니까 어느날 나에게 별 하나가 온 것이다. 이 책의 프롤로그는 좀 애매모호하다. 마치 안개속을 걷는 듯했다. 뭐지? 어떤 여인 둘이 상실의 아픔, 그리고 종교와 과학에 대하여 갈등하는 모습을 보인다. 도대체 뭘까? 프롤로그라는 안개를 지나면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 펼쳐진다. 남편이 있고 그 남편은 결혼생활에 실증이 난 듯 하다. 매마른 고목나무처럼 신혼초의 달콤함과 애틋함이 사라지고 남은 거라고는 권태와 반복되는 일상 뿐이다. 그래도 아내는 식사를 챙겨주고 집안일을 한다. 마치 집안 가구나 가전제품처럼. 남편에게 아내는 그런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어느날 남편은 이상한 걸 느낀다. 아내가 사라졌다. 더이상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 소설을 이끄는 동력은 '아내찾기'이다. 남편은 결혼생활에 실증이 났고 아내 또한 흥미가 없는 듯 하다. 그저 서로에게 할 일만 하는 그런 무미건조한 부부가 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남편은 황당했고 곧 당황한다. 며칠이면 오겠지, 하지만 오지 않는다. 경찰에 신고할까? 집안을 뒤쳐 아내와 친한 친구 집에 전화를 건다. 그것도 한밤중에. 이 남편 급했나 보다. 그런데 이미 그 친구는 몇 해 전에 자살했단다. 아, 그렇지. 맞아 아내의 그 친구는 죽었었지. 이 남편 아내에 대해 무심하니 아내의 절친이 죽은 것도 깜박 한다. 남편과 술도 마셨다는 그런 아내의 절친인데. 혹시 친정에 갔나? 장모와 통화하지만 거기에는 없는 듯 하다. 옷장을 뒤지니 옷이 가지런하다. 준비된 떠남이란 것을 알 게 된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는 걸 알 게 된다. 회사에 출근한다. 이 남자가 다니는 회사는 건설회사. 이 회사에 취직하게 된 것은 아내 덕이 크다. 아내의 지인이 이 회사에 있었다. 아내는 동사무소에 근무했고, 남편은 공익근무요원이었는데 그 때 둘은 연예를 해서 결혼한 것이다. 재개발로 회사앞에 시위대가 있어 시끄럽다. 거기가서 대충 진정시키고(거짓말로) 남편은 휴가를 낸다. 본격적으로 아내를 찾으러 다니는 것이다. 여기부터 마치 '어드벤처' 게임이나 추리소설 같다. 어드벤처 게임은 주인공이 장소를 이동하고 사람을 만나면서 단서들을 찾고 그 단서들로 인해 새로운 사실을 알 게 된다. 그러면서 점점 실체와 비밀에 가까워지고 문제나 사건을 해결해 간다. 이제부터 '아내가 어디에 갔을까?'라는 해답을 찾는 과정이 펼쳐진다. 이 부분부터 매우 흥미로웠다. 마치 추리소설 읽는 듯 했다. 남편은 회사에 휴가를 내고 아내의 행방을 찾는다. 먼저 간 곳은 장모님댁이다. 거기서 아내가 사라졌음을 장모님께 얘기한다. 장모님으로부터 아내가 고아원에서 입양해온 아이였다는 사실을 알 게 된다. 그리고 며칠 전에 아내가 장모님을 찾아온 것도 알 게 된다. 남편은 아내가 있었던 고아원을 찾아간다. 거기에서 아내가 얼마 전에 그 고아원에 찾아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고아원에서 원장님의 횡포와 폭력에 아이들이 상처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편은 아내찾기 게임의 단서들을 잘 찾아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열쇠 역시 고민끝에(가끔 임기응변과 약간의 과장으로) 발견한다. 이건 이 소설에도 나왔지만 마치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와 비슷하다. 아내는 자신을 찾을 만한 단서들을 여기저기 뿌려 놓은 듯 하다. 헨젤과 그레텔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조약돌과 과자를 길에 뿌려 놓은 것처럼 아내는 장모님집에 고아원에 그리고 집안에 자신을 찾을 만한 단서를 남겨둔 것 같다. 남편은 장모님집과 고아원을 거치면서 아내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알 게 되고 그동안 아내에게 많이 무관심했음을 알게 된다. 아내가 어릴 적에 있었던 고아원의 원장은 헨젤과 그레텔의 마녀처럼 고아원의 아이들을 괴롭히고 노예처럼 학대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본다면 고아원은 과자집이고 고아들은 버려진 헨젤과 그레텔들이다. 고아들을 헨젤과 그레텔과에 비유한 것은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우연히 직장동료에게 아내가 전화했었다는 말을 듣는다. 기자 전화번호를 묻더라고, 그래서 알려줬다고 한다. 남편은 그 기자 전화번호를 알게 되고 그 기자에게 전화한다. 그리고 아내가 '코카브'라는 단체에 대해서 물었다고 한다. 남편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아내가 이상한 단체에 흥미를 느꼈다는 것이 놀랍다. 자신이 그동안 너무 아내에 대해 몰랐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낀다. 그리고 아내가 다니던 교회의 집사님을 만나러 간다. 집사님을 통해 아내가 교회내의 소모임에 있었다는 것을 알 게 된다. 코카브는 그렇게 이상한 단체는 아닌 것 같고 과학과 관련되어 있고 UFO와 시간의 문을 믿는다는 걸 알 게 된다. 아내와 코카브라는 단체에 대하여 상당 부분을 알게 된 남편과 기자는 그 단체의 본거지가 있는 곳을 아내의 손수건에 새겨진 무늬로 알아낸다. 강원도 산골 어느 부근이다. 둘은 잠입에 성공하여 거기서 코카브 회원으로 지낸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모여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인생을 살면서 강한 상실과 후회의 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코카브는 시간의 문이 열릴 것이라고 말하고 그 때까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거식증이 있는 남자 아이는 할머니를 두고 며칠 나갔던 사이에 할머니가 굶어죽은 얘기를 한다. 어떤 의사는 의료사고로 괴로웠던 얘기를 한다. 어떤 여자아이는 동생을 세탁기에 넣어서 죽은 얘기를 한다. 이렇듯 여기 코카브에 모인 사람들은 과거의 아픈 상처 하나씩은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 과거로 가는 시간의 문을 간절히 기다리러 이곳에 모인 것이다. 아내 그리고 남편도 그런 상처가 있다. 5살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은 것이다. 그 때 이후로 부부는 서로에게 소원해지고 웃음도 적어진 것 같다. 과거가 현재를 괴롭힌 것이다. 즉, 코카브에 모인 사람들은 과거의 상처로 현재가 괴로운 사람들이고, 과거를 바꾸고 싶은 사람들이다. 남편과 기자가 아내의 행방을 찾으러 다니면서 무당을 만난다. 아내가 이 무당을 찾아왔던 것이다. 이 무당을 통해 아내의 절친은 아내가 고아원에 있었을 때 있던 친구라는 사실을 알 게 된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평생 그 둘을 괴롭힌 사슬 역시 알 게 된다. 절친이지만 그 둘은 서로에게 벗어날 수 없는 사슬을 묶어버린 것이다. 이 소설에서 놀라운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둘 사이에 얽힌 사슬에 대한 오해와 반전이다. 입양하러 장모가 왔을 때 장모는 전에 길을 가리켜준 아이를 입양시키고 싶었다고 한다. 그 아이는 아내의 친구였다. 그런데 아내가 손을 들어 아내가 입양된 것이다. 아내는 그 이후로 친구에게 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운명이 바뀐 순간이었기에. 친구의 행복을 가로챘다는 죄책감이 아내를 괴롭혔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가 자살하기 전에 아내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친구의 마음을 알 게 된다. 그런데 진짜 반전은 장모님의 말이었다. 장모님은 입양하러 간 날 아내 얼굴만 보이더라고.. 그러니까 아내는 입양되는 순간부터 마음의 짐을 지고 있었고 입양된 부모에게 잘 보이려고 기억이 사라진 것처럼 위장한 것이고 남편에게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 고아원 친구와 계속 만나면서도 그 친구와 그 때의 진솔한 대화를 나누지 않은 것 같다. 한바탕 울며 '미안했어~~'라고 풀면 될텐데. 그러면 친구와 아내는 그들을 묶고 있던 사슬을 풀 수 있을텐데. 장모님 역시 아내에게 그 때 입양하러 갔을 때 너만 보이더라고 말했다면 아내는 좀 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텐데. 그리고 남편은 아내를 찾으러 다니면서 자신의 죽은 아들에 대해서도 몰랐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내는 그 아이가 죽은 이유를 대충 안 것 같다. 남편과 아내는 아이와 소통을 잘 못한 것이다. 아이가 어떤 고민이 있는지(아이는 왕따를 당해서 괴로워했던 듯)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고 감싸주지 못한 것 같다. 아이에게 관심과 사랑이 부족했던 것 같다. 아내는 그것에 대하여 괴로워했을 것이다. 남편 역시 괴로워한다. 나는 껄끄러운 일일수록 말하기 불편한 것일수록 조금씩이라도 터놓고 얘기해야 풀린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감추고 미룬다고 그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점점 깊숙한 곳으로 숨을 뿐이다. 그것 때문에 언젠가는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것은 상처이고 숨기고 피할수록 썪고 부패할 뿐이다. 남편과 아내가 아이에게 좀 더 관심을 가졌다면? 아내와 아내의 친구가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미안함과 의문을 풀었다면? 장모님이 입양할 때의 얘기를 진솔하게 아내에게 했다면? 아내가 남편에게 자신의 어릴 적 얘기를 했다면? 남편이 회사의 재개발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눠었다면? 이들의 상처와 고통이 이렇게 깊고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살면서 상처받고 고통받을 수 있다. 누구나 상처 하나 비밀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 그 상처와 고통을 어떤 식으로든지 드러내고 치유하려고 해야 한다. 그것을 숨기면 곪고 썪어서 더 큰 상처가 되어서 치유되지 힘들 지경까지 갈 수 있다. 그 상처를 방치하고 무관심해지면(이것이 습관이 된다) 나중에 그것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게 된다(잊어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삶이 황폐해진 이유가 그 상처 때문인지도 잊게 된다. 그 숨기고 피한 과거의 상처가 내 현재와 미래를 괴롭힌다. 이 얼마나 괴로운 일일까? 상처를 드러낼 때 상대방의 반응이 두려울 수 있다. 이건 누구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처럼 그렇게 반응이 두렵지 않다는 걸 드러내 보면 알 것이다.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면 사람들은 위로하고 싶어할 것이다. 도대체 우리 주위에는 상처받고 괴로워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것일까? 코카브에 모인 사람들 중에 '시간의 문'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코카브에서의 생활하면서 자신의 상처가 조금씩 치유되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고 그것으로 인해 상처는 치유될 수 있다. 코카브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의 상처를 들어 준다. 이미 '시간의 문'이 열리든 안열리든 코카브에 모인 사람들은 코카브의 교육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 상처가 치유되어 있었을 것이다(내 상처를 드러내는 것만으로 치유된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 그 과정을 통하여 자기 자신과 주위에 대하여 더 알 게 된다. 마지막으로 남편이 가보고 싶은 곳을 가는 여행 중에 아들이 놀던 운동장과 교실에 간다. 남편은 그 과정에서 아들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상처가 치유된 듯 하다. 그래서 '시간의 문'이 열릴 듯 한 그 순간 이후에 아내와 손을 맞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과거의 상처가 무서운 것은 그것이 현재와 미래의 삶을 망쳐버린다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 장모와 아내, 아내와 친구, 남편과 아내와 아들 이들 모두는 그들이 안고 있는 상처가 현재 그들의 삶을 망쳐놓았다. 그 괴로움을 없애는 길을 서로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이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상처가 있고 아픔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상처와 아픔이 자신의 삶을 망치게 놔두지 말아야 한다. 그건 내 삶에 대하여 그리고 그 상처의 대상(상실, 미움의 대상)에게 미안한 일이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서로에게 이방인일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말할 수 있고 들어줄 수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내 상처를 드러내고 남의 상처를 쓰다듬어 준다면 '시간의 문' 같은 건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현재에 그 아픈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코카브에 모인 사람들은 더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의 문'이 필요없을 것이다. 시간과 현상과 존재와 소통에 대한 철학적인 메시지가 이 책에 담겨 있다. 남편은 아내에 대한 자신의 무관심을 반성한다. 살면서 정말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미련은 미련한 짓이라는 말이 있다.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털털 털고 온전히 나만의 현재를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과거라는 감옥 속에 현재의 삶을 가두어놓는 건 스스로이다. 그 감옥을 탈출하는 길은 약간의 용기와 대화, 관심, 사랑, 눈물이다. 더불어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이라는 물을 준다면 준다면 행복한 삶이라는 꽃이 필 것이다. 먼저 가족에게 관심을 갖고 대화를 시도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완벽한 존재는 없지만 완벽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왜 지구는 자전하여 밤낮이 바뀌고 공전하여 계절이 순환하는지, 왜 남자와 여자의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지, 왜 이 두 종류의 사람이 결혼하여 또 다른 사람을 낳는지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과 사랑을 가지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아는 것은 결국 나를 아는 길이다. 다른 이에게 다가갈수록 우리는 점점 나에게로 다가가는 것이다. 우리는 완전히 남과 소통할 수 없지만 끊임없이 남과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나를 제대로 이해하는 길이고 상처를 치유하는 길일 것이다. ------------------ 우리에게는 믿음이 아니라 과학이 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믿는 것이 과학임을 전제할 때, 그곳은 생의 이면에 놓인 비밀을 알고 또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자, 생각해보세요. 집사님 눈앞에 문 하나가 있습니다. 그 문을 밀고 나아가면, 집사님이 영영 잃어버린 어떤 한 순간이, 영원한 찰나가 되어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11쪽) 무관심은 때론 동정심이나 연민마저 잃게 만든다. 또한 잔인함이란 그 방관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나는 어쩌자고 아내의 절친한 친구의 죽음 앞에 그토록 무례했던가. 또한 그 사실을 어떻게 잊고 있었을까. (27쪽) 소망과 신념이 강할수록 실족(失足)을 두려워하는 법이니까요. (68쪽) 그는 세계적으로 붐을 읽으킨 코카브(히브리어로 '별'을 뜻함) 연구학회의 실질적인 수정으로서, (39쪽) 물론 내 말은 거짓이었다. 사장의 출장은 없었고 다음 주에도 면담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수십 년간 반복되어온 재개발 문제가 이러한 농성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41쪽) -> 합리화 인생은 모든 것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씩 잃어가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라고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을까. (44쪽) 그러나 그런 내게 신이 되돌려준 것은 무엇이던가. 고작 저 순진한 영혼의 죽음뿐이다. 열 살짜리의 아이에게 죽음이 필요한 의도란 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마치 아들이라도 돌려줄 것처럼 전보다도 더 뜨겁게 기도하고 울던 아내와 달리 나는 더 이상 신을 이해하고 싶지도, 용서하고 싶지도 않았다. (61쪽) 한참 만에야 에덴기도원 인근의 정보를 뒤져 그곳이 지금은 엄마사랑영아원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엄마사랑...... 엄마를 잃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법한 아름다운 이름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것이 마치 과자의 집처럼 잔인하게만 느껴졌다.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으로 유혹하고 있는 듯했던 것이다. (75쪽) 그녀는 말을 멈춘 후 다시 한 번 뒤를 흘끔 돌아보았다. 두려움이 서린 얼굴이었다. "복수를 위해서였다고 할 수 있겠죠." "복수요?" "이곳의 원장은 마녀나 다름없었어요. 우리를 학대하고 곧잘 체벌했죠. 아마 아내분이 자랐을 당시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원장이 좋아하던 방식은 피라미드 구조였거든요." (85쪽) 물질은 풍요롭되 정신은 피폐한 요상한 시대이니 말예요. (94쪽) 차를 멈추고 살펴보니 흑판에 분필로 아무렇게나 적어 놓은 'Kokhav'라는 글자뿐이다. (121쪽) "우리의 시간이란 현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현재에 머무른다고 해서 현재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바로 조금 전, 1초 전, 1분 전, 1시간 전의 순간 역시 이 공간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우리가 느낄 수 없는 미세한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에너지는 물리적인 의미의 에너지가 아닌 애당초 존재할 수 없는 무형의 존재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기억과 같은 느낌의 것이지요. (134~135쪽) "기억이 살아 있다는 것이 낯설게 들리실 겁니다. 하지만 들어보세요. 우리가 눈을 감고 계속을 떠올려보면 금세 그 차갑고 시원한 계곡물의 감촉이 다리에 와 닿지요. 무성하게 드리운 나무 그늘이나 풀벌레 소리, 날아드는 모기나 진한 흙냄새까지...... 이것은 단지 상상일까요? 아뇨, 현상적인 발현은 아니지만 분명 그 광경 그 풍경이 우리 내면에 살아 있는 것입니다." (135쪽) -> 현상학이 생각난다. "부모님도 없고, 아들도 없고, 아내도 없는 사람입니다. ......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모두 사라져버렸네요. 그래서 무언가를 찾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그 무언가를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그것을 찾고 또 되돌아갈 수 있기만을 바랍니다." (138쪽) "이것이 이렇게 순진해요. 가면 가는 거지, 왜 못 가! 우리가 떳떳하지 못할 게 무어가 있다고. 더 더러운 것들도 떵떵거리며 사는 세상이야!" (141쪽) -> 위안부가 떠오른다. 한국으로 시집 온 동남아시아 여자들이 불행한 길로 갔다가 고향으로 못 가는 심정. 과거는 현재를 위한 하나의 계단이에요. 잊어야 하는 대상도 집착해야 할 대상도 아니란 것이지요. 우리가 시간의 문을 찾고 여행을 하며 많은 것들을 뒤바꿀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아야 할 것은 그 어떤 시간도 우리에게 있어 소중하지 않은 시간은 없으며, 설사 그것이 상처라 해도 그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영혼이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에요." (143쪽) "다르지 않겠죠. 하지만 우리가 살아온 모든 과정이 세뇌의 연속 아니던가요? 유교 사상이 지배했을 때 우리의 모든 세계는 유교의 이념으로 재단되었죠. 충효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고요.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평등의 이념은 황당한 이야기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름 자유의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까지도 세뇌는 이어지고 있어요. 도덕적, 윤리적, 사회적 성공과 취업, 결혼에 이르기까지 우리도 모르는 사이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해 세뇌당해왔다는 생각 안 드세요? 아주 작게는 다른 것을 틀리다고 종종 지적당하는 것부터 우리의 세계 역시 온전히 옳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 (146쪽) -> 공감되는 내용이다. 그것은 아마도 작은 찰나의 빛을 꿰어내는 기술이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151쪽) 문득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뜨거운 슬픔과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밀려왔다. 그 사랑과 신뢰를 나는 누구에게도 되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152쪽) 나는 나도 모르게 팔짱을 풀고 아이 쪽으로 얼굴을 기울인 채 그 어두운 눈을 들여다보았다. 아이가 살아온 짧은 생이 때론 수십 년을 산 어른들보다 더 길고 무거울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167쪽) "우리의 시간은 모두 소중합니다." (169쪽) 사람마다 각각의 이유와 인생이 있다는, 간단하지만 오묘한 진리를 통해서 말이다. (182쪽) 눈앞의 대상이 존재가 되는 게 아니라 존재로의 필요성에 의해 대상을 보았던 것이다. (189쪽) 다만 우리는 과거에 사는 존재가 아니고 현재와 미래를 살고 살아가야 할 존재들임을 전제했을 때 그 과거의 해결점이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에요. (202쪽) "나도 이 세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완벽한 부몬느 없어. 누군들 완벽한 사람이 있던가. 환벽한 사람이 없으니 환벽한 부모도 없지. 완벽한 부부란 건 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서로 조금씩 완벽해지기 위해 노력하지만 혀가 팔꿈치에 댛을 수 없듯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거야. 단지 서로 익숙해질 수는 있어도 말이야. (214쪽) 그러나 그 다양한 질문 속에 '만약 내가 입양아이고, 그것이 실은 친구의 운명을 빼앗은 것이라면'은 없었다. (233쪽) "자격은 필요없어요. 그냥 받으시면 되는 거예요. 앞으로, 우리도 누군가에게 되돌려주면 되는 거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떤 일에 있어서 이유 같은 걸 따질 이유는 없더라고요. (230쪽) 인간의 내면이란 어떤 의식적인 행위로 움직일 수 있는 것만은 아닌 것이다. 또한 결국엔 그 갈등과 직면해 해결해야 하는 것도 인간이 가진 의지라는 것도. (255쪽) "얼룩이 지워지기 위해선 오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해요. 한참 물에 담가야 하고, 세제나 용해제를 넣어야 하고, 햇볕을 받아 화학작용을 해야 하고...... 그래도 지워지지 않아 몇 번이고 다시 빨아야 하고......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그 얼룩이 본래의 무늬이기라도 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어요. 그것이 할 수 있는 전부일 때가 있다고요." (262쪽) 어쩌면 이러한 마지막을 견딜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리적으로는 짧았던 시간이었으나 현상학적으로는 이곳에서의 시간이 내 삶의 전체를 관통하고 있었다. (283쪽) <단어> 1) 스티치: 연분홍 바탕에 빨간 스티치로 꽃문양이 누벼진, 아내의 것이다. (89쪽) 2) 가욋돈: 살아가며 누구나 비밀 한 가지 정도는 가지게 된다고 한다. 나에게도 비밀이 있다. 관자놀이에 보기 흉한 흉터가 하나 있다는 것이라든가, 형수님이 숨겨둔 가욋돈을 털어 부산으로 놀라 간 적이 있다는 것, (117쪽) 3) 비상(砒霜): 코카브의 이야기가 정말이었으면 좋겠군요. 시간을 역행할 수 있는 신기술 말이에요.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모든 것을 망각시키는 비상(砒霜)이라도 있든지 말예요." (160쪽) 4) 둥치: 폭우가 쏟아진 뒤에 청명하게 빛나는 하늘과 검은 둥치에 푸름을 품은 나뭇가지처럼 말끔한 얼굴로 그녀는 나를 보고 있었다. (286쪽) <참고> 바이어 명명법은 독일의 천문학자 요한 바이어가 만든 것으로, 별의 밝기에 따라 그리스어 알바, 베타, 감마, 델타 순으로 이름을 붙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