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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장과 자베르의 쫓고 쫓는 추격신과 코제트와 장발장의 만나는 장면을 보고 싶어서 책을 펼쳤는데, 생뚱맞게도 <레미제라블> 2권은 장발장의 이야기가 아닌,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쟁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위털루 이야기의 전말은 나그네 3프랑을 주고 농부에게 들은 이야기다. 위고는 왜 위털루 이야기를 꺼냈을까? 이에 대해 위고의 답변이 걸작이다. “과거로 돌아가는 건 작가가 가진 권리 중 하나이므로 1815년으로 가 보자. 더욱이 이 책 1부에서 이야기한 사건이 시작되는 좀 더 그 이전으로 거슬러 가 보자.” 워털루 전쟁의 묘사가 사실적으로 아주 잘 서술 되어 있다.
24601호가 9430호로 되다. 1823년 군함 오리온호가 수리를 위해 항구로 들어왔다. 11월 17일 어제 오리온호 갑판에서 노역하던 한 죄수가 조난당한 선원을 구출하고 돌아오다 바다에 떨어져 익사했으며 시체는 못 찾았다. 그 사나이의 수감번호는 9430호이며, 이름은 장발장이다.
코제트는 쓰러질 만큼 지쳤다. 절망적인 이 어린 소녀는 저도 모르게 “아 하느님!”하고 외쳐 버렸다. 그때 갑자기 물통이 조금도 무겁지 않다는 걸 느꼈다. 누군가 아주 커다란 손이 물통 손잡이를 잡아채 기운차게 들어 올렸던 것이다. 코제트는 조금도 겁내지 않았다.(129면 중에서)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기에 1862년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된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근 150여 년이란 세월 동안 전 세계 다양한 인종, 계층에서 꾸준한 사랑과 관심,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걸까? 해답은 작품 속에 들어 있다. 사실 장발장, 코제트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그렇다고 전혀 낯선 인물도 아니었다. 아마도 어렸을 적 성탄절 날만 되면 만화로 방영해서 보았던 기억이 남아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렸을 적 기억에 남아 있던 조각의 파편들을 맞추기 위해 레미제라블을 읽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이 나올 때는 읽는 속도가 무척이나 빨라졌다. 하지만, 낯선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면 읽는 속도가 조금은 느려졌다. 나의 무지 탓인지, 문화의 차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읽기가 결코 만만한 책은 아니었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벽초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을 읽을 때도 무척이나 애를 먹었었다. 이 책은 구한말 당시에 일상에서 쓰던 조선어로 되어 있어서 읽기가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그래도 내용이 너무 재미가 있어서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만일 이 <임꺽정>을 프랑스 사람들이 읽는다면, 과연 쉽게 읽을 수 있을까? 나 스스로의 위로이긴 하지만 <레미제라블>을 읽는데 속도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좌절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이 작품이 프랑스에서는 대작이라고 해서 우리까지도 꼭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이 책의 가치는 이제껏 단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던 가장 장발장다운 장발장을 만날 수 있다는 데 두면 될 것 같다. 영화를 봤거나, 뮤지컬을 봤다면, 이젠 원작에 도전할 차례다. 사실 방대한 분량에 내용 또한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장발장을 제대로 알려면, 18세기 프랑스 민중들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알려면 이 책을 통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금 영화 ‧ 공연 등의 문화 분야에서 <레미제라블>의 강세가 뜨겁다. 영화는 기존의 뮤지컬 영화의 흥행기록을 뛰어 넘어 500만 관객을 스크린으로 끌어들였고, 국내에서 초연 중인 뮤지컬 레미제라블도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흥행 몰이를 하고 있다. 나 역시도 영화로 이 작품을 먼저 만났는데, 3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영화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을 정도로 짜릿한 대작이었다. 영화를 먼저 봤기 때문에 오히려 소설이 보다 쉽게 읽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직 뭐라 확실하게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이 작품을 읽다보면 이 작품이 도대체 왜 프랑스의 민중 소설이 되었는지 그 이유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게 된다. 다만 한 가지 이 소설의 아쉬운 점은 삽화다. 멋들이진 솜씨의 화가가 그린 삽화가 책 중간 중간에 들어있다면, 소설을 읽는 재미와 더불어 이 책의 가치가 한 층 더 빛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