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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인생을 즐기기라도 했어? 이제 막 피어나는 꽃 같은 여자에게 어차피 땅 속에 묻힐 몸 아낌없이 주라고 아무 꺼리김없이 조언하는 집시 여인. 여자가 숙성한 만큼 늙어버린 집시여인은 여자와 집시여인이 재회한 자리에서 이렇게 안부를 묻는다. 최소한 인생을 즐기기라도 했냐고. 기쁘게 긍정하는 여자의 벅찬 고갯짓을 흐뭇하게 바라봤을 집시여인. 여자는 한 남자와 10여 년 동안 사랑하는 관계를 유지하다, 호텔에서 주말을 함께 보내고 공항으로 향하던 택시 안에서 추락 사고로 사망한다. 유일한 증인인 운전수가 혼수 끝에 깨어나지만 사고난 상황을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백미러에 비친, 남녀가 힘겹게 키스하려는 광경이 그렇게 충격적일까. 왜 그들은 힘겹게 키스를 하려 했을까. 신분이 밝혀진 남녀, 조금씩 드러나는 그들의 행적, 유럽 각지에서의 애정 행각, 그에 대한 기록과 증거들을 꿰맞추어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완성해나가는데,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그들의 죽음보다 그들의 사랑이 이상하다. 서로에 대한 갈망과 무덤덤함이, 때로는 두려움과 불안이 이상 행동으로 드러난다. 허나 그들에게는 그들의 관계를 유지케 하는 자극이 되어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자동차 사고는 그들의 의도적인, 사랑의 마지막 자극일까. 최소한 그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인생을 즐긴 사람일 거라는 확신으로 책장을 덮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 이외에도 여러 진실은 존재할 수 있음이 이에 대한 근거라면 근거일 수 있겠다. 그들이 아는 진실이 그들에게는 더 절실하다면 그 진실이 진실에 한층 가까울 수도. 알바니아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 소설 <사고>는 <돈키호테>,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를 새롭게 접근하며 사랑을 탐구하면서 사랑처럼 복잡미묘한 발칸의 정세를 어지럽게 읽을 수 있다. 사랑이 그러하듯이 슬프지만은 않은, 그렇다고 기쁘지만은 않은 조서는 사람의 또 다른 이면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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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읽는데, 뮤지컬 헤드윅의 넘버가 생각이 났다. 아주 오랜 옛날, 두 쌍의 팔과 두 쌍의 다리를 가진 사람, 하나로 된 머리 안에 두 개의 얼굴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제우스가 그들을 반쪽으로 갈라 영원히 만나지 못하도록 했다는 그 슬픈 이야기말이다. 이 작품에도 플라톤이 말한 양성 인간에 대한 언급이 되고 있다. 남자와 여자가 한 몸안에 있었고, 신들에 의해 둘로 갈라졌다는, 그래서 우리는 평생 나머지 반쪽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이란 숙명적으로 슬픔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뮤지컬 헤드윅의 'the orogin of love' 중에서
공항으로 향하던 택시 한 대가 갑자기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탑스했던 한 쌍의 남녀는 바로 죽고, 가까스로 의식을 회복한 운전기사는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 뒷좌석의 연인이 서로 힙겹게 키스를 하려했다고. 백미러에 비친 그 광경때문에 자신이 주의를 잃어서 사고가 난 것 같다고. 그들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인지, 혹은 남자를 겨냥한 정치적인 살인인지, 혹은 연인의 자살인지..진실을 알아보기 위해 조사원이 파견되어 사건발생 40주전부터의 이야기를 치밀하게 조사한다. 십여년전부터 연인관계를 지속해오던 두 연인의 관계에 대해, 그들을 죽음으로 이끈 미스터리한 사고에 대해, 여러가지 정황조사로 시간이 재구성되기 시작한다.
같은 상황도, 각기 자신만의 해석으로 다르게 기억할 수 있다고 한다. 이쪽 방향에서 보는 시각과 저쪽 방향에서 보는 시점이 전.혀.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한 공간에 함께 있어도, 각자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생각하는 건 언제나 다르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나는 이 특별한 연인들의 관계를 구성하면서, 두 사람이 어떤 시간을 함께 보내고, 어떤 사랑의 행위를 하느냐보다는, 그들의 심리 상태에 주목하고 싶다.
그녀는 생각했다. 모든 게 다 부질없는 짓이야. 이 남자를 상대로는 절대 이길 수가 없어. 그럴 기회는 벌써 오래전에 지나갔고, 이제는 너무 늦어버렸다. 로베나가 그보다 우월한 점이 있다면 그건 젊은 나이였다. 하지만 로베나는 한 번도 그 무기를 쓰지 않았다. 벨트 아래는 가격하지 않는 법이다.
베스포르에게 로베나는 감당하기 힘든 존재였다. 베스포르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기분이었다. 무슨 법인지는 그 자신도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그는 법의 보호망 바깥에 있었고, 그걸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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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이라는 이스마일 카다레의 소설을 나는 처음 접해보았다. 일본의 소설가나 중국, 미국, 기타 유럽의 베스트셀러 작가들과는 그래서인지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낯설면서도 어딘가 설익은 음식을 먹는 듯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 맛이 풋풋해서 숟가락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힘이 분명 작가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사고]는 특이한 소설이다. 추리소설도 아니면서 끊임없이 궁금하게 만들고 관계를 규정짓게 만든다. 하지만 파고드는 형식이 아니라 알려주는 형식이라 약간 밋밋한 감도 없지 않았다. 공항으로 향하던 택시 한 대가 17킬로 미터 앞에서 추락했다. 운전기사는 살았지만 승객 두 명은 즉사했는데, 둘은 연인사이인 것으로 보여진다고 소설은 시작되고 있었다.
갑자기 골짜기로 굴러 떨어진 택시. 그리고 살아남은 택시 기사의 증언, 알바니아 국적의 남자와 젊은 여자! 이들의 관계를 파헤치던 조사원이 마지막 일주일간의 행적 기록을 포기했다. 그리고 그는 평온해졌다. 호텔 외부에서 살해당한 로베나의 사체를 처리해야했을 베스포르 Y. 그리고 조사원의 끊임없는 의심은 소설의 재미를 놓치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마지막 몇 장을 두고 또 다시 헷갈려버렸다. 로베나가 살아있다니.....! 머리 색깔을 바꾸고 이름도 나베로로 바꾸고 살아가고 있다는 증언. 왜 그녀는 자신을 살해해야만 했을까.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도 잠시 떠올려 졌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로베나와 베스포르에게 집중해야만 했다.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오묘한 소설 이스마일 카다레의 [사고]. 과연 그의 다음 작품은 어떠할지 궁금한 가운데, 왜 르몽드 지가 그에게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라는 타이틀을 붙여줬는지 알 것만 같았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야. 마지막 순간까지 독자로 하여금 그 진실을 탐독하게 만드는 힘. 궁금증을 유발하게 만드는 힘. 그래서 안도감을 주지 않는 치밀한 계산력 등등이 그를 지적인 작가로 돋보이게 하는 것은 아닐까.
다 읽고 지인에게 선물하면서 "읽어보고 나와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면 꼭 이야기해줘"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을 보고 모두의 결말에 대한 느낌이 달랐듯 [사고]역시 그 결말에 대한 느낌이 사뭇 다를 것 같아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어졌다.
p. 우리가 안다고 믿는 진실 외에도 여러 가지 진실이 있을 수 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