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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별과 유적(流謫)의 시간
"격별과 유적(流謫)의 시간" 내용보기
책을 읽으면서 내가 '내면의 일기'를 마지막으로 써본 것이 언제였던가 생각을 해봅니다. 가끔 쓰긴 썼으나 그리 오래 못 쓰고, 여백이 잔뜩 남은 노트만 여러 권 만들어놓고 말았지요. 블로그에 자물통을 잠그고 쓴적도 몇 차례 있었으나, 역시 며칠 태풍처럼 쓰다가 잔잔함만 남았지요.김명인. 저와 같은 시대를 호흡한 저자의 글들을 읽으며,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지나간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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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내가 '내면의 일기'를 마지막으로 써본 것이 언제였던가 생각을 해봅니다. 가끔 쓰긴 썼으나 그리 오래 못 쓰고, 여백이 잔뜩 남은 노트만 여러 권 만들어놓고 말았지요. 블로그에 자물통을 잠그고 쓴적도 몇 차례 있었으나, 역시 며칠 태풍처럼 쓰다가 잔잔함만 남았지요.


김명인. 저와 같은 시대를 호흡한 저자의 글들을 읽으며,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지나간 시간들에 대해, 현재의 삶에 대해 그리고 남은 시간들에 대해 상념의 씨앗을 얻습니다. 


저자는 1977년 대학 입학한 첫해 부터 비합법 학생운동 그룹에 몸을 담아(합법적인 그룹은 껍데기만 있을 때였지요) 박정희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투쟁을 시작합니다. 이어진 전두환 신군부세력까지 20대 청춘의 시간과 열정, 이념등의 모든 것을 쏟아붓습니다. 그 당시 당연한 대우(?)로 감옥생활을 몇 년 하게됩니다. 문학비평을 쓰면서도 부딪는 여러 바람(시대의 피로와 환멸)을 감당못해 평단에는 폐업계를 내고, 인하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학없는 비평작업을 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문학 없는 글쓰기가 때로 적막하긴 하지만 내 글쓰기가 바로 문학의 다른 모습이라는 생각으로 환멸의 문학 혹은 문학의 환멸을 견디며 넘어서고 있는 중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저자가 대학에서 안식년을 얻어 영국 런던의 남서쪽 변두리에 있는 서비튼이라는 동네에서 홀로 집을 얻어 거주하던 중 6개월 동안 저자의 마음길을 따라 걸었던 기행문 형식의 일기입니다. "뜨거운 화염 속 같았던 7,80 년대에 20대를 보내고, 막막한 물속 같았던 90년대와 2천 년대에 3,40대를 보냈던, 그리고 이젠 50줄이 넘어 생을 지탱해 온 팽팽하던 닻줄이 어느새 삭아 헐거워진 한 자칭 지식인의 벌거벗은 내면을 마치 자해 공갈이라도 하는 기분으로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고 싶었다."


투쟁이 없는 시대는 권력자의 힘만 키워 줄 뿐입니다. 투쟁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너와 내가 함께 편안하게 살아갈 공간과 시대를 만들어가기 위해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직접 거리로 뛰어나갈 수도 있지만, 글로, 생각으로 끊임없이 나를 긴장시켜야 합니다. 그저 편안한 공간에 밀어넣고 사는 것은 그저 살다가는 삶일 뿐입니다. 요즘 들어 부쩍 많이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다보면 내가 힘들다고 한숨 쉬는 부분이 한없는 사치로 생각들 때가 있습니다. 이 상념의 씨앗을 저자의 글에서 얻습니다. 저자가 영국 비평가 테리 이글턴의 책을 읽으면서 옮긴 단상이 이 생각을 끌어냅니다. "그(테리 이글턴)는 여전히 해방 투쟁은 계속되어야 하고 문학을 포함한 문화 투쟁은 정치 투쟁의 중요한 한 부분이라고 확실히 못을 박고 있다."


가족을 떠나 혼자서 생활한 적이 있습니다. 약 2년 정도. 국외는 아니고, 국내였습니다. 요즘처럼 매서운 날씨엔 가끔 그곳의 따스함이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요즘은 아랫 동네도 춥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서울, 경기 지역보다는 따뜻하겠지요. 경남 통영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혼자만의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깊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공교롭게 이곳 저곳 타지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다보니,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에 쩔어 살았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책 한 권을 마음에 들게 써보고 싶었는데 그저 시간만 흘려보냈습니다. 혼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얼마나 지혜롭게 잘 써야하는지를 느끼게 된 기간이었지요. 저자의 단상에서 리와인드 된 생각이었습니다. 


"사치스러운 이야기 같지만 사람에겐 가끔 격별과 유적(流謫)의 시간이 필요하다. 

가급적 먼 곳으로 가서 생의 짐들을 내려놓고 홀로 눈뜨고 홀로 밥 해먹고 홀로 설거지하고 홀로 빨래하고 홀로 걷고 홀로 돌아와 문 열고 들어서서 홀로 불을 켜고 홀로 책 읽고 홀로 생각하고 홀로 잠드는 그런 시간이.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다른 모든 것들은 저 소실점 부근에 남겨 두고 홀로 자기의 거대한 그림자와 맞서는 시간이, 너는 누구냐 무엇하러 여기까지 나를 따라왔느냐 하고 묻는 절대의 시간이.."


저자가 젊은 시절. 그 암울했던 시기에 부대끼던 몸과 마음의 고통과 상처중 미처 회복되지 못한 부분이 드문드문 드러납니다. 트라우마와 강박증에 면역체계의 이상 증후도 보입니다. 약사 아내를 만나 함께 살아가는 것 그에겐 참으로 다행이고 감사할 일 같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왔으면서도 그 치열하게 뜨거웠던 삶에 동참하지 못한 나 자신을 꾸짖습니다. 나는 여전히 차다차기만 합니다. 


나는 모 블로그 대문에 이런 말을 걸어놨습니다.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은 애틋한 사랑을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책들과의 인연은 참 잘 이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읽고나서 공연히 돈과 시간의 낭비였다고 생각들지 않을 정도로 신중하게 인연을 맺는 편입니다. 일단 내 손에 들어오면 안 읽어줄 수가 없지요. 품어줘야지요. 요즘 특히 좋은 책들을 줄지어 만나고 있습니다. 

"이것저것 책을 읽다보면 이건 내 책이다 싶은 책들이 있는 법이다. 나와 생각이 같은 책. 아니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여 주는 책, 그러면서도 꼼짝없이 내 공감을 끌어내고 내 인식의 지평을 넓혀 주는 책, 나아가 내 정신에 충격을 가하다못해 가슴을 떨리게 하는 책들이 그렇다."  이 글을 읽는 벗들이 이런 책을 많이 만나게 되길 소원합니다. 제 마음처럼 애틋한 사랑을 많이 만나게 되시길..


저자..대단한 오디오 마니아 입니다. 오디오 마니아의 관심은 크게 턴테이블, 스피커, LP판입니다.이 양반 턴테이블을 사러 아픈 몸을 이끌고 이곳 저곳을 뒤지고 다닙니다. 마치 영혼을 치료하는 귀한 약을 구하러 다니듯 그렇게 다닙니다. 실제로 저자에겐 음악이 큰 치유제였다는 것을 느낍니다. 음악에 대한 감상과 해석이 수준급  그 이상입니다. 오디오 마니아 또는 음악 애호가들에겐 이 책을 읽으며 공감대가 많이 형성될 듯 합니다. 한 수 배울 수도 있겠습니다. 




s******5 2013.01.18. 신고 공감 3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가엾고 짧지만 해방' - [내면산책자의 시간- 김명인의 런던일기]
"'가엾고 짧지만 해방' - [내면산책자의 시간- 김명인의 런던일기]" 내용보기
김. 명. 인. 먹고 사느라 잊고 있던 그를 다시 만난다. 어느덧 교수님이 되어, 클래식을 제대로 즐기시는 교수님이 되어, 아픈 몸을 이끌고 런던까지 가서 '내면'을 돌아본다. 아, 이렇게 자리를 잡는 분도 계신다는 생각에 잠시 허청거린다.   그리고 스스로 고백하는 '강박증'(173)의 시간, 1987년 민중혁명의 문학을 외치며 앞장선 그를 쫓아 부나방처럼 떠다니며 열
"'가엾고 짧지만 해방' - [내면산책자의 시간- 김명인의 런던일기]" 내용보기

 김. 명. 인. 먹고 사느라 잊고 있던 그를 다시 만난다. 어느덧 교수님이 되어, 클래식을 제대로 즐기시는 교수님이 되어, 아픈 몸을 이끌고 런던까지 가서 '내면'을 돌아본다. 아, 이렇게 자리를 잡는 분도 계신다는 생각에 잠시 허청거린다. 
 그리고 스스로 고백하는 '강박증'(173)의 시간, 1987년 민중혁명의 문학을 외치며 앞장선 그를 쫓아 부나방처럼 떠다니며 열광하던 날들이 스쳐 간다. 물론 나는 지금처럼 그때도 문학 "따위" 에 목숨을 걸지도 못하면서 담근 발을 빼내지도 못하고 젖은 글만 그를 추종하며 잊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런 그가 다시 돌아왔다. 아니 내가 다시 그를 찾은 것이리라. 그의 일기를 일기처럼 읽어가다보니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그를 다시 만난다. 번득임은 무뎌져도 향취는 여전해 읽은 이를 매혹하게 하는 사색의 글과 이야기들, 책에는 온통 그어놓은 줄들이다. 책을 펼치면 서울을 떠나기 전 처음 쓴 일기의 구절들이 내게 되묻기 시작한다.
 정갈하고 단정하게 보낼 것이다. 소박한 밥상 깔끔하게 차려서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읽고 생각하고 쓸 것이다. 길지 않은 시간, 헛된 욕망과 동경에 지불하지 않고 아껴 쓸 것이다. - '집 떠남' 2011.8.24 (13)
 이게 무슨 말인가? 2012. 12. 19.의 처참한 패배 이후 내가, 아니 나를 포함한 몇몇이 이야기하던 '수신(修身)'의 기본 모습이 아니던가. 다시 시작하기 위하여 나로부터, 내 몸과 마음부터 갈고 닦겠다던 연말의 다짐이 서울을 떠나며 런던으로 향하는 그의 일기 첫 구절이라니…. 그리고 그가 돌아온 2012년의 겨울과 2013년의 새해에도 여전히 유효한 말씀이라니….
하지만 모든 게 그렇듯 익숙해지면 아무것도 아니다. - '음악, 내 일상의 마지막 단추' 2011.9.11 (36)
 그렇다. 익숙해지면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으로 끝이라는 사실, 알면서도 늘 잊고 있는 말… 이 일기에는 이런 구절들이 속출?! 한다. 일일이 옮겨적기에 힘이 부칠 지경이다. 하여 이 책은 누구라도 덤벼들어 맛깔나는 글맛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권하고 싶은 책이 된다.
 적절한 비판과 교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공부, 이 싸움을 왜 시작했는가를 늘 잊지 말아야 한다. 내 공부는 처음부터 취미일 수도 교양일 수도 직업일 수도 없었다는 것을. - '테리 이글턴 읽기' 2011.9.17 (53)
 궁극의 영역에서 예술은 가장 아름다울 때 가장 정치적이고, 가장 정치적일 때 가장 아름답다. 동시대 최고의 아름다움은 동시대의 관습과 이데올로기와 충돌하게 마련인 것이고, 그것이 예술인 한 최고의 정치성은 미적 충격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구현되지 않는 법이다. - '미학과 정치' 2011.9.20 (57~8)
 일기를 통하여 우리는 그의 책 이야기에서 철학, 사회 그리고 클래식 음악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영국에서 느끼는 풍경에 대한 소회에 더하여 자연스레 베어나오는 그들 문화의 기풍도 아래의 글처럼 만날 수 있다. 역시 정갈하지만 적확한 표현이리라.

 어찌보면 잘 사니까, 살 만하니까 흥분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지사지하고 나눌 줄 아는 것이지요. 이 지점이 사실은 아프고도 부러운 지점입니다. - '옛 제국에서 보내는 짧은 편지' 2011.9.25 (79)

 

 

                     -  '아무 데도 안 나간 하루' 2011.10.28 (190)

 이처럼 오랜만에 만난 그의 글은 너무도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어 반짝거리는 글들을 허겁지겁 먹다보니 뷔페에서 배 불러가는 느낌마저 든다. 그래도 얼마만인지. 읽는 쾌감과 더불어 되새김직한 말들이 이처럼 쏟아져나오다니, 문득 [장정일의 독서일기]처럼 이 일기도 계속되어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도 해보았다.

 

 

            -  '렛 잇 비'  2011.11.6 (208~9) 

 주저리주저리 길어진  내 말은 접자. 맛깔나고 즐겨야 할 문장들을 몇 개 더 글 아래에 놓아두고 나는 그가 건네준 선물들중 무엇을 찾아 나의 길을 다시 떠날지 망설인다. 그리고 '되찾아 와야 할 시간들'(317)을 급하게 찾아 나선다. 이 밤.
 우린 아직도 치욕 속에 있고, 그 속에서 누군가는 살아남아 있고, 누군가는 그렇게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이 치욕과 슬픔이 끝나기 전에는. - '되찾아 와야 할 시간들' 2012.1.3 (317)
2013. 1. 31. 밤, 'Let it be'를 들으며 한 달이 어느새 저물어갑니다.
              썩지 않으면서 이대로 조금씩만 더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271)
들풀처럼
*2013-004-01-04
*츨판사에 먼저 아름다운 책, 잘, 제대로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꾸벅.
*그리고 출판사에 건의합니다.
  1. 이 책에 나오는 저작물(음악 포함)의 목록을 뒤에 첨부하신다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징검다리로 더 공부하려는 분들에겐 도움이 될 것입니다.
  2. 주요 어휘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 또는 찾아보기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나름 글 좀 읽었지만 선뜻 설명할 수 없는 - 감은 오지만 ^^; - 말들이 쫌 있습니다.  예) 링반데룽(105), 이그조틱(113)

 

(그리고 13쪽의 '지불'이라는 낱말...)

 

 

 

 

 너의 생각과 행동은 어떤 억압으로부터도 자유로운가, 너의 자유로움은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는가. 그리고 너는 너의 자유를 지금 당장 이행(실천)할 수 있는가. 이것을 기준으로 살 수 있다면 아마 그것은 역사를 초월한 혁명적 삶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혁명이 불가능한 시대에 혁명적 삶을 산다는 것은 사실은 무서운 일이다. 나에게나 남에게나. - '우월한, 혹은 혁명적 삶' 2011.10.6 (111)
 여행이란 것이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흉내로라도 연습으로라도 멀리 떠나 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적어도 여행을 떠나 있는 동안에는 그때까지의 일상과는 다른 시간을 살게 된다.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고 겪는다. 노동도 과제도 없는, 어떤 의무도 없는 순수한 놀이의 순간을 산다. 가엾고 짧지만 해방의 순간이다. - '종이 한 장 차이의 삶' 2011.10.27 (184)
 쓰게 되면 쓰고 아니면 안 쓴다. 그게 좋다. 그래야 쓰고 싶은 글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솔직하게 쓸 수 있다. - '되찾아 와야 할 시간들' 2012.1.3 (311)
 글을 쓰다 보면 처음엔 내 머리로 밀고 나가지만 조금 지나서 글의 조리가 서면 글이 글을 밀고 나가는 단계가 오고 그러면 나는 자판을 두드리는 손만 빌려주면 되는데 - '기억과의 투쟁' 2012.1.30  (340)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어떤 작업을 해 나가려 하든, 내 일상 노동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강의에 있어서는 완벽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일상의 노동이 부실하고 공허해지면 그 나머지는 모두 사상누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내 삶의 마지노선이다. - '런던을 떠나다' 2012.2.13 (349)                                                               

 

 


 

w******e 2013.02.01. 신고 공감 2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