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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행복한 삶을 위해 산다. 어떤 이는 내일 행복하기 위해, 어떤 이는 오늘 행복하기 위해, 어떤 이는 언젠가는 행복할 거라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행복처럼 막연한 게 없는 것 같다. 닿을 수 없고, 잡을 수 없는 무지개처럼 말이다. 그래도 우리는 나만의 무지개를 좇는다. 고금란의 소설집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속 인물들도 그렇다. 고단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어떤 결단을 내리고, 삶의 터전을 바꾼다.
표제작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는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소재로 일흔이 넘은 정명희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다. 지나온 삶에 언제나 죽음이 있었다. 부모님과 남편처럼 가까운 이의 죽음만이 아니라, 곳곳에 죽음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녀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을 준비해야 하지만 선뜻 받아들일 수 없다. 그녀와 다르게 자신의 말 벗 친구로 방문하는 하 여사는 죽음을 공부한다.
“할머니…… 이번에 제가요. 사생체험연구소에 다녀왔거든요.(중략) 빈소 뒤에 있는 목관에 들어가 누웠더니 손과 발을 꽁꽁 묶고 안대를 씌우는데 저절로 눈물이 흘렀어요. 관 두껑이 닫히고 못 박는 소리가 요란했어요. 그런데요, 관 속에 누워 있으니 너무 편한 거예요. 아, 휴식이란 이런 거구나,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요즘은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요. 말하자면 죽음도 연습을 하는 거예요. 사실 그동안 죽음은 우리에게 금기 단어였잖아요. ”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125~126쪽)
도시의 편안한 삶을 버리고 고향을 선택했지만 바로 후회하는 남편과 달리 그곳에서 당당하게 홀로 서려는 아내의 다짐을 담은「사름하기 」,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북한을 떠나 한국을 선택한 두 남자가 낯선 환경에 정착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야기「두 남자」, 등에 혹이 있던 아버지에게 벗어나고자 이민을 선택한 여자가 사막 여행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솔롱고스」는 변화하는 삶에 대한 갈망을 만날 수 있다.
‘삶이 일련의 선택의 연속임을 남자는 조국을 버리면서 알게 되었다. 버리든지 가지든지, 이 길로 가든지 저 길로 가든지, 어떤 상황에서건 결국 한 가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죽든지 살든지로 귀결이 되고 죽어도 좋다는 쪽을 선택하고 나면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길이 열리다는 것을, 그런 선택의 과정에서는 어떤 계산보다 본능적인 직관에 따르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두 남자」, 43쪽)
‘무지개의 나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바로 무지개 속이며 이 순간 나는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내 역할을 스스로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자유의지로 행동할 수 있는 내 업장의 끈이 보였다. 끈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솔롱고스」, 190~191쪽) 차분하다 못해 슬프기까지 한 짧은 9개의 이야기 속에 무지개를 잡으려고 발버둥치는 이들이 있다. 누군가에게 무지개는 자유이며, 누군가에게는 고향이며, 누군가에게는 경제적 부유함이며, 누군가에게는 평안이다. 그것은 변화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기존의 것은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소설은 주변 환경이 변한다 해도 내면의 진정한 변화가 생기지 않고서는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이다. 무지개를 잡으려 하지 말고 나 스스로 무지개가 되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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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를 읽고 여러 문학 장르가 있다. 그 중에서 우리 인생을 드라마틱하면서 가까이 느껴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바로 소설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소설 속의 이야기들이 바로 우리 사람들의 이야기이면서 내 자신도 그 속에 빠져 들어가서 함께 생활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소설가들의 창작력은 대단한 것 같다. 얼마든지 새로운 인간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들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대단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물론 어떤 현실 사안을 바탕으로 창작력을 끌어내어 만들어내는 작품은 바로 읽는 독자로 하여금 그대로 인식할 정도였다. 내 자신 이 책의 저자를 처음 대하는 것 같다. 그간 소설을 자주 대하지 않은 면도 있지만 9편의 단편을 통해서 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진 것 같아 매우 좋은 시간이었다. 특히도 각 작품마다 내 자신도 작품 속에서 전개되는 주인공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모처럼 좋은 소설 작품을 통해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서 앞으로 남은 시간을 생활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얻은 시간이 되었다. 내 자신 벌써 내년이면 육십이 된다. 어떻게 생각하면 빨리 흘러간 시간들이지만 여러 사연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물론 이런 사연들도 아주 훌륭한 소설의 제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같이 존재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인생의 몫과 역할이 그렇게 다른지 희한할 정도이다. 물론 서로 통하는 면도 없지 않으나 내 자신과 비교해서 다른 모습의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런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멋진 사회라고 할지, 그렇지 않다고 할지는 각자가 결정할 문제라 생각한다. 그러나 내 자신 인생의 주인공은 그 누구도 될 수가 없고 바로 내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나의 중심이라고 해서 나 혼자만이 결코 살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주변 사람들과 더불어서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어떻게든지 내 자신을 조율해 가면서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도록 해야만 한다. 그런 상황 하에서 이왕이면 강한 자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 얼마든지 우리들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어차피 한 번 주어진 운명이라고 한다면 최대한 사는 것 같은 모습으로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면 열심히 생활해가는 삶이었으면 한다. 이 소설은 바로 이런 우리들의 삶들이 올바르게 갈 수 있도록 여러 교훈을 선사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소설을 통해서 자신과 비교해보면서 더 나은 모습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각고의 노력에서 창조해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만의 멋진 인생을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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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의 단편이 담겨있다. [사름하기]는 전원 생활을 시작한 인숙. 남자는 더 자신의 고향인 시골마을로 내려가고 싶어했고 여자는 싫어했지만 오히려 더 잘 적응하고 남자는 적응하지 못한다.
"다른 이상은 없습니다. 폐경기에 여자들이 겪게 되는 현상 같은 겁니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다 성취하고 갖고 싶은 것을 손에 넣은 사람일수록 심하게 압박감을 받는다는 보고가 있어요. 가급적이면 몸을 많이 움직이시고 명상이나 요가 같은 운동도 해보세요." (12쪽)
어디가 딱히 이상이 있는것도 아닌데 남자는 명치끝이 아프다. 한의사든 병원의사든 신경성이라고 말하고 남편은 답답하기만 하다. 도시를 떠날때의 후련함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후회와 자책만 가득하다. 동창회에 갔다가 동기 용우를 만났다. 용우는 어릴때부터 신동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명문대에 갔다. 그리고 그동안 큰 어려움 없이 살아왔고 전교조일을 하기도 하고 참여정부가 들어서는데 앞장서기도 하는등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열심히 해왔다. 하지만 세상일은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눈에가시처럼 여겨지던 대학교수 용우는 학생이 나날이 줄어들다가 급기야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고만다.
그런 용우가 술에 취한듯 남자에게 말한다.
보이지 않는 전쟁터에 살고있는 듯한 위태위태한 삶을 사는 남자. 그런 남자의 모습을 안스럽게 바라보고 그리고 그런 남자와의 삶을 끌어안는 여자의 모습이 담백하게 그려지고 있다.
[두 남자]는 소를 키우는 진구네. 그리고 이웃에 사는 도로가 육차선으로 확장되 논이 수용되 모두가 부러워하던 부자가 되었던 백씨. 백씨는 보상금으로 받은 뭉칫돈으로 주식을 해 돈을 몽땅 날리고 부인마저 대장암 말기로 잃게된다. 그리고 홀로 남은 백씨는 자신의 마지막남은 땅을 팔려고 내놓고 그 땅을 이제나저제나 넘보고 있던 진구네는 닭쫓던 개마냥 그 땅을 잃고만다. 그리고 짖궂게 구제역으로 소를 모두 잃게되는 진구네 이야기를 통해 안스러운 그들의 속내를 만나게 된다.
안타깝고 힘겹기만 한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들의 시간이 녹아나는 이야기들이 고스런히 담겨있다. 내가 살아가는 삶이 잘 사는 것이라 생각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러한 사람을 못 마땅하게 아니면 무언가 아쉬움으로 미련으로 바라보는 삶이 있다. 내가 지나고 있는 시간도 또한 지나갈 시간이고 또한 내가 힘겹게 견뎌야할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누군가와 얼굴을 맞대고 가슴아파하고 애통할 시간을 보내야만 할때도 있다. 그래도 누군가 내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소설은 내게 또 다른 풍요로움을 선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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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사람이 지나가네>에는 모두 9편의 단편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그 9편의 이야기들 속에는 모두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상살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하다. ‘사름하기’와 ‘솔롱고스’는 부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먼저 ‘사름하기’는 남편의 귀향을 좇아 함께 시골에 정착한 여자의 이야기다. 먼저 고향살이를 선택한 것은 남편이었지만, 정작 남편은 정착 한달여만에 고향이 지겨워져서 도시로 향하고, 못내 뒤따라온 여자가 되려 시골이 좋아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솔롱고스’는 오랜 이민 생활 속에서 틀어져버린 부부관계를 마무리하고 귀국한 여자의 이야기다. 오래 전 시숙에게 빌려줬던 돈을 받으러 왔지만 못볼 꼴만 보게 된 그녀는 몽골로의 여행을 선택하고, 몽골에서 느낀 감정들을 이야기속에 녹이고 있다. ‘두 남자’, ‘소 키우는 여자’, ‘산, ’아름다운 숙자씨‘ 등은 현실에 대한 시선인 주로 담겨져 있다. ’두 남자‘는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소 키우는 여자‘는 땅을 둘러싼 시골마을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축사를 가진 주인공이 구제역 파동을 겪으면서 마을에서 고립되는 모습을 통해 삭막한 현실을 담아낸다. 이 작품의 경우 얼마전 뉴스에서 크게 접했던 구제역을 소재로 다루고 있어서 더욱 현실에 닿아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산‘은 단식을 소재로 자연개발에 대한 시선을 담아낸다. 당뇨와 더불어 닥쳐오는 합병증을 막기 위해 단식원에 들어간 주인공은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단식원을 뛰쳐나오게 되는데, 일련의 과정 속에서 주인공이 자연개발에 반대해 단식하는 여승에 대한 시점을 보여주면서 현실을 담아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숙자씨’는 개고기를 매개로 하여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을 묘사하고 있다. ‘라두가’,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그리고 ‘은행나무 그늘’ 등은 주인공의 독특한 입장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라두가’의 경우 시베리아를 여행하는 상민과 남희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그들이 지닌 고민과 감정을 보여준다. 표제작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는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매개로 주인공의 과거와 조우한다. ‘은행나무 그늘’은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마을에 이사 온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동네가 공동 소유한 은행나무를 두고 벌어지는 일들을 묘사하고 있다.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에 담겨진 단편들의 두드러진 특징은 특히 주인공을 중심으로 개인의 문제와 다양한 사회적 측면이 얽히면서 이야기가 구성된다는 것이 큰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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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란 작가의 소설은 처음 읽었다. 이 책은 <바다표범은 왜 시추선으로 올라갔는가> <빛이 강하면 그늘도 깊다> 에 이어 고금란 작가의 세번째 소설집이라고 한다. 이 책에 실린 여러편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작품의 주인공들이 버거운 삶의 무게 때문에 허덕거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활을 애써 외면하려 하지않고 꿋꿋이 견뎌 내려고 한다. 또 한가지 작품들에서 공통으로 느껴진 것은, 평범한 독자인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는다거나 공감하기가 좀 어려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저자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잘 전달이 되지 못한 거 같다. 우리나라 작가가 쓴 작품이니 번역과정에서 빚어지는 ,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그런 일은 없음에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웬지 힘이 들었다. 힘이 들었다는 표현 또한 애매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소설 책을 읽으면서 힘이 들었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설명을 해야 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기차에서 만난 사람에게, 또는 단식원에서 만난 사람에게 어떻게 그렇게 자기의 속마음을 애기할 수가 있는건지. 나이든 여자는 기차에서 처음 만난 남자에게 성적인 얘기를 별 부끄러움 없이 할수 있다는 식의 설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알기로 나이 든 사람은 오히려 그런 대화를 민망해 하는 것으로 안다.
건강을 위해 단식원에 입소 했다가 배고픔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퇴소한 오십대 남성의 얘기를 그린 <산>에서도 그렇다. 초등학교 교사라는 말라깽이 여자가 주인공인 남자에게 한 말만해도 그렇다. <... 그 편지에서 저는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의 정적과 평온을 보았거든요. 편지에 나타난 언어는 아득하고 고요했어요. 그분은 정말 생명을 걸고 자신의 바람을 표명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태도와 언어 사이에 어떤 이물질도 없다는 느낌, 죽음을 눈앞에 둔 이의 언어에 이렇게 깊은 정적과 평온이 깃들어 잇다는 것은 정말 믿기 힘든 일이었어요 >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어요.오래전에 그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니 견딜수 없었어요. 자기자신에 대한 사랑없이 어떻게 남을 사랑할수 있을까요? 자신의 목숨을 버릴각오로 투쟁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일까요?> ...과연 그 사랑의 크기와 깊이는 어떠 할까요? > 그녀는 계속 울었다. -
물론 소설은 실화가 아니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독자의 공감을 끌어 내려면 등장하는 케릭터의 행동이나 대사가 자연스러워야 한다. 단식원에서 처음 만난 아저씨에게 저렇게 (교과서를 읽듯이)속마음을 얘기 하면서 울기까지 하는 말라깽이 초등 여교사는 고금란 작가의 작품에 잘못 끼어 든 케릭터 같다. 물론 작가도 사람이고 독자의 취향에 맞게 글을 쓴다는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게다. 하지만 아무리 소설이라도 보편적인 정서를 생각해서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이든 사람의 거리낌 없는 행동도 당당한 것과 뻔뻔한 것은 다른 것 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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