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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나온 우타노 쇼고의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은 지금까지 보여준 우타노 쇼고 월드에 있어서는 다소 UFO와도 같은 작품이다. 라고 말하면 의미가 오리무중해질테니 더욱 알송달송하기 짝이 없는 우타노 쇼고 월드라는 말에 대해서 먼저 밝혀보자. 개인적으로 우타노 쇼고 작품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 내 관심의 더듬이가 향하는 쪽은 우타노 쇼고의 작품들 중에서도 꽤나 호불호가 갈리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세상의 끝 혹은 시작'이나 '여왕님과 나' 같은 작품들. 물론 여기엔 그에게 또 한 번에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안겨 준 '밀실살인게임' 시리즈도 포함된다. 여기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바로 이 작품들이야말로 여타의 다른 일본 미스터리 작가들과 구별되는 우타노 쇼고만의 독보적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작품들에서 드러나는 우타노 쇼고의 독특성은 그야말로 현재 일본을 바라보는 일종의 필터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왜 그런가? 단적으로 현재 우타노 쇼고가 밀어붙이고 있는 작품들에 내재된 세계관이 그야말로 아즈마 히로키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서 잘 보여준 일본 특유의 포스트 모던적 특성을 마치 복제라도 하듯 충실히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밀실살인게임' 은 그러한 경향이 가장 폭발적으로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밀실살인게임'과 아즈마 히로키의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을 같이 놓고 보면 우타노 쇼고가 현재 구축하고 있는 '월드'의 '코어'가 무엇인지 명확히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아즈마 히로키의 그 책은 무엇보다 문화에 대한 오타쿠적 소비 방식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다. 히로키는 그 방식에 현재 일본의 포스트모던한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고 생각했다. 정보의 생산 보다는 정보를 데이터 베이스에 얼마나 많이 저장할 수 있는가가 더 의미있는 시대. 현실에 통용되는 규칙과 가치 보다 오히려 가상 세계의 규칙과 가치가 더 우월한 시대(이를테면 미소녀 게임에 등장하는 히로인과 얼마든지 실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는 것에서 잘 드러나듯이). 그리하여 더이상 전통 근대의 사유 방식으로는 규명할 수 없는 그들의 사고 방식과 소비를 히로키는 과감히 '포스트 모던'이라 불렀고 그것은 또한 일본 역사상 가장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에도 시대에 대한 강한 향수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여기에 대해서는 미야베 미유키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앞으로 일본은 날로 보수화되어 갈 것이라 전망했다. 그리고 그 전망대로 우리는 일본 보수의 끝판왕을 현재 보고 있는 셈이다. 앞에서 말한 우타노 쇼고의 작품들은 히로키가 말한 특성들을 마치 아주 푹 고아놓은 사골 국물처럼 잘 우려내고 있다. 그래서 읽다보면 아즈마 히로키의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이 일본 포스트모던에 있어 총론이라면 우타노 쇼고는 그것을 현실적으로 응용한 각론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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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노 쇼고 앞에 흔히 잘 붙는 수식어는 '반전'이다.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벗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가 보여준 막강한 반전 때문에 '유주얼 서스펙트' 이후에 브라이언 싱어가 그랬듯이, '식스 센스' 이후에 나이트 샤말란이 그랬듯이 '반전'이란 말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아무래도 독자의 지갑을 열게 하는데 더욱 신경쓸 수 밖에 없는 장르 소설가이다 보니 스스로도 자신에게 붙어버린 라벨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에게 덤벼들듯이 아예 그 반전을 스스로 유희의 대상으로 삼고 말았다.
그러한 유희로서의 반전을 보여준 첫 작품이 내 생각엔 '세상의 끝 혹은 시작'이 아닐까 싶다.(일본 원전을 읽을 수 없는 관계로 번역판만 기준으로 한 생각이니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그는 한 페이지가 멀다 하고 반전을 선사한다. 혼자만의 상상인가 싶으면 현실이고 현실인가 싶으면 상상인 경우가 허다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소설은 '리얼한 것'으로 부터 점점 멀어져 오로지 유희만이 존재하는 게임이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제목인 '세상의 끝 혹은 시작'은 그야말로 적합해 보인다. 현실적인 것으로써의 '세상의 끝'이자 현실의 원칙 따위 우습게 무시하는 '게임'으로서의 시작이니까 말이다. 더구나 '세상의 끝 혹은 시작'은 일본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난 1988년에서 1989년까지 모두 네 명의 여자 아이들을 살해한 미야자키 쓰토무의 사건 을 바탕으로 쓴 것인데 공교롭게도 그 범죄 때문에 이것이 히로키가 말하는 오타쿠로 대표되는 포스트모던적 구현의 첫 시작이라는 점이 더욱 확증된다. 바로 그 미야자키 쓰토무는 무려 5천장이 넘는 호러 비디오를 소장한 이른바 호러 오타쿠로 그 호러 비디오 때문에 그런 엽기적인 살인을 저지른 것이 아니냐는 거센 여론이 일어나 오타쿠라는 존재가 처음으로 일본 사회에 대대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타노 쇼고는 반전에 대한 독자들의 요구 혹은 집착이 게임적 유희와 같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또한 오타쿠적 문화 소비와 연결된다고 보아 미야자키 쓰토무 사건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그리고 정말 그것이 시작이었던 듯, 그는 그것을 더욱 밀어붙인다. '세상의 끝'이 던져버린 것은 오로지 현실과 가상의 명확한 구분이라는 규칙이었으나 '여왕님과 나'에서 던져버린 것은 아예 누구나 다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현실 세계에서 통용되는 '윤리적 규칙'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도 물론 일본 사회에서 실제 일어난 충격적인 범죄가 영향을 미쳤다. 바로 2004년에 일어난 나가사키의 한 초등학교에서 한 소녀가 같은 반 친구인 여학생을 커터칼로 살해한 사건이다. 이는 범인이 초등학생 여자아이라는 점과 범죄 장소가 초등학교라는 점에서 일본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한 마디로 어른들이 지금의 아이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존재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 인지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세계관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세계관으로 움직이는 낯선 존재. 그렇게 우타노 쇼고는 그 사건 역시 그 전 사건과 일련의 연속성이 있다고 보았고 그렇게 완전히 달라져 버린 새로운 세계관으로 무장한 세대라는 점까지 반영하기 위하여 '여왕님과 나'를 더욱 극한으로 밀어붙인 것이었다. '밀실살인게임'은 이런 경향 속에서 이해해야만 왜 우타노 쇼고가 그렇게 썼는지, 그게 단지 팔릴만한 작품을 쓰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는 게 이해된다.
아무튼 쇼고는 그렇게 달려왔다. 그런 식으로 스타워즈에서 제국군이 '데쓰 스타'를 만들듯이 자신만의 월드를 만들어왔다.
그리고 2011년. 이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 이 나왔다.
그런데 다르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보여 준 우타노 쇼고 월드와 노선을 같이 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더 이상의 유희가 없다. 작품은 '벗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 하네'의 편집자와 다시 한 번 의기투합해 쓴 것이지만 이 작품의 모델은 그것이 아니다. 사실 이 작품은 '세상의 끝 혹은 시작'의 자기장 안에 있다. 무모하게 말한다면 그 작품을 일종의 리메이크라고도 할 만 하다. 주인공의 상황, 성격 그리고 전개에 있어서 유사한 점이 많이 눈에 띈다. 그래서 마치 그가 새로운 전환점이 되어 주었던 그 때로 다시 돌아가 새로이 시작하려고 하는구나 하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그래, 이왕에 호기를 부려 본 거 나도 '여왕님과 나'를 쓸 때의 우타노 쇼고처럼 끝까지 가 보자. 그래서 단정지어 말하자. 이것은 결별이라고. 뒤이어 어떤 작품이 나올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작품에 있어서만큼은 지금까지 보여준 우타노 쇼고 월드로 부터의 명백한 이탈이라고 말이다.
'세상의 끝 혹은 시작'이 무수한 반전들로 채워졌듯이 이 작품 또한 무수한 반전들로 채워진다. 후반에 커다란 반전들이 나온다고 해서 이 작품이 오로지 그것을 위해 뛴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것은 일종의 크레셴도에 불과할 뿐 반전들은 작품 전반에 걸쳐 내내 등장한다. 그건 또 하나의 주요 배역이라 할만한 스에나가 마스미의 용모(주인공 히라타는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중년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20대였다.)에도 있고 동료직원들이 그녀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히라타가 마스미와 같이 있는 것을 보고는 원조교제 같은 것이 아니냐고 놀리는데 아니나 다를까 뒤에 히라타가 여고생과 데이트를 하면서 이것저것 원하는 대로 사주는 장면이 나와 '뭐야 히라타 그런 사람이었어' 하는 순간 알고보니 아내의 여동생 딸로 밝혀지는 순간에도 있다. 이런 식의 보이는 것과 드러나는 반전의 진실들이 봄날 대나무 밭에 이리저리 돋아나는 죽순들처럼 곳곳에 산개해 있는데 이로써 느끼게 되는 건 여기의 반전들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기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희로써의 반전이 아니라 삶에 대한 어떤 통찰을 매개하는 것으로써의 반전. 다시 말해,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雪國)'이었다'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유명한 첫 문장처럼 삶은 우리에게 보이는 것 이상으로 다양하고 깊은 속내를 감춰두고 있다는 것을 우타노 쇼고는 반전을 통하여 깨닫게 하는 것이다.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에서 우타노 쇼고는 유희에 천착하느라 방기해 버렸던 삶을 다시금 껴안으려 하고 있었다. 환상이 아닌 현실, 도피가 아닌 책임. 그것이 다시금 그 옛날의 터닝 포인트로 돌아간 우타노 쇼고가 다시금 보여주려는 핵심이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타노 쇼고는 작품에서 받게 되는 인상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현실과 연동하는 작가다. 그렇다면 이렇게 변하게 된 계기도 역시 현실로 부터 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건 이 책의 발간 연도를 생각하면 짐작할 수 있다. 2011년. 일본 국민들이 과연 그 해를 잊을 수 있을까? 미국인들이 9.11 때문에 절대로 2001년을 잊을 수 없듯이 일본 국민 역시 2011년을 절대로 잊을 수 없다. 그 해 일본 역시도 9.11에 맞먹는 비극을 겪었으니까 말이다. 미국에게 9. 11이 있다면 일본에는 3. 11이 있다.
2011년 3월 11일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원전이 일으킨 비극의 날이. 똑같이 11일에 일어났다는 것이 왠지 모골마저 송연해지는 이 비극 앞에서 향후 미국 문학이 위안과 연대로 나아갔듯이 똑같은 아픔을 가져버린 일본 문학도 그렇게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우타노 쇼고 역시도 그 3.11 때문에 이같은 변화가 생겨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3. 11 이후의 일본 문학이 9. 11 이후의 미국 문학과 비슷한 경로를 밟아가고 있음은 이전에도 여러 징후가 있었다. 무엇보다 미나토 가나에의 변화가 그랬고 국내에 발간된 비교적 최근의 일본 문학들에서도 그런 특성은 현저하게 드러났었다. 무엇보다 2012년에 방영된 미나토 가나에의 속죄를 원작으로 한 구로자와 기요시 감독의 동명 5부작 드라마는 3. 11 이후의 일본 문학의 현재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자성에 대한 촉구였고 삶이 타자와 결부되어 있음에 더욱 눈과 귀를 기울이려는 흐름이었다. 거기에 지극히 현실과 동떨어진, 오히려 현실 보다 더 우위의 가상 게임에 천착하던 우타노 쇼고 역시 참여하고 있었다. 그래서 놀라웠다. 이것이 과연 '여왕님과 나' 그리고 '밀실살인게임'으로 이어졌듯이 또 하나의 연속된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을지 아니면 그냥 한 번 던져본 변화구에 불과할지 그건 아직 모르겠다. 현재의 일본 문학이 보여주는 자성의 기운이 갑자기 뒤덮게 된 우익의 장막 아래서 어떻게 그 생명을 이어갈지 궁금한 것과 똑같이 우타노 쇼고가 보여 줄 다음의 행보 역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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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느껴지는 계절의 모호한 경계, 그리곤 궁극에는 다가올 수밖에 없는 을씨년스러움과 왠지 모를 쓸쓸함이 잔득 묻어 있는 소설이다. 쇄락과 죽음, 돌이킬 수 없는 안타까움 같은 것이랄까? 대형 슈퍼마켓 지점의 보안부장인 오십대 남성‘히라타’, 그의 앞에는 빵과 우유를 절도한 초췌한 여성이 앉아있다. 그녀의 신분증에 기재된 1985년 출생의 기록은 회사의 재산을 지키는 엄격함을 남자로부터 지워버린다. "두 번 다시 이러면 안 돼", "돌아가도 좋아"
남자의 일상적 행동에 일탈이 생긴 것은 곧 사건이랄 수 있을 것이다. 삶을 지탱하는 소중한 기억, 혹은 감히 심연에서 퍼 올릴 엄두를 못 내던 고통의 기억이 건드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여자는 남자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접근하고, 남자는 여자의 추레하고 헐벗은 차림새와 뻔히 읽히는 내면의 진부함으로 외면하지만 교차하는 동정과 연민의 감정까지 피하지 못한다. 겨울날씨에 맨발의 샌들, 닳아 얄팍해진 겉옷은 생활고로 고통 받는 여자임을 감추지 못한다. 다만 그녀의 생일이 1985년 10월 5일이라는 사실이 뺑소니사고로 사망한 딸에 대한 애틋함과 보고 싶은 간절함과 동일한 의미를 부여하게 한다.
소설은 시점을 바꿔 7년 전 딸아이의 뺑소니 교통사고에 의한 사망과 아비로서의 통렬한 애처로움의 기억을 더듬고, 딸의 죽음이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아내의 고통스런 자살의 기억을 술회한다. 외려 피해자인 죽은 딸아이의 부주의만을 열거하며 자신들의 무능력을 회피하는 경찰들에 대한 분노까지, 자식을 상실한 부모의 쓰라리고 아픈 통한(痛恨)이 혼자가 된 남자의 내면을 흐른다. 대기업 임원승진의 유력한 후보자였지만 중앙의 격렬한 경쟁 지대에서 벗어나 지방의 지사로 내려와 억울하게 희생된 딸과 아내의 원통한 응어리를 간직한 채 시간을 지탱하는 고독한 남자, 그가 자신의 딸과 동갑내기인 여자에게 선의를 베푸는 것은 일종의 보상심리였을 것이다.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것은 이렇게 가족을 잃고, 세상을 외롭게 허우적대는 남자와 또 다른 상처를 지닌 여자와의 조우와 같은 흔하고 낡은 패턴의 이야기가 너절하게 들리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폭력배에 불과한 남자와 동거하며 급기야는 진심의 도움을 베풀었던 남자를 간통으로 협박하기에 이르는 여자와 같이 진부함의 끝이 보이지만, 이에 반응하는 중년 남자의 허를 찌르는 태도와 그의 육체적 반전은 이를 완전히 쇄신해 버리는 것이다. 보안부장의 직위를 이용하여 여성 절도범에 성적 요구를 협박했다는 모함과 위협은 가족을 잃은 고독한 중년 남자의 이성을 허물어버릴 만큼의 강박이 되지 못한다. 더구나 그 남자가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면 아마 어불성설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구성이 소설적 우연을 남용하여 이야기의 진정성이나 재미를 반감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전혀 미스터리하지 않았던 소설의 흐름이 이로 인해 내용의 깊이를 더하게 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작가적 역량이라 하여도 무방하리라. 여자가 잊고 간 듯한 휴대전화와 손가방! 이 우연찮은 물건이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넘나들게 한다. 딸아이 사망의 진실? 뺑소니 운전자의 발견? 남자를 10년 남짓에 이르는 고통의 시간에서 풀려나게 하는 해결이 될까?
누군가가 궁지에 빠진 나를 진심으로 구원하려 한다면, 그리고 그 구원의 의지에 고결한 아픔이 있는 것이라면, 그 구원자의 아픔을 위해 나는 어떤 보답을 할 수 있을까? 그가 안은 아픔과 슬픔이 자신의 죽음을 방치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것이라면 그가 죽기 전에 그 고통에서 해방되도록 도울 수 있을까? 그것이 나의 죽음을 요구하는 것일지라도? 그래서 여자의 실수 같은 실수는 진실 같은 진실이 되고, 거짓 같은 새하얀 거짓이 된다. 자신들의 생명으로 하는 보시(布施), 영영 진실을 모르기에 구원되는 이 아이러니, 삶이란 본디 이렇게 부조리한 것일 게다. 정말의 사랑, 죽음의 희생을 통해 구원되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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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작은 도시의 대형슈퍼마켓 보안 책임자 히라타. 어느 날 자신의 직장에서 물건을 훔친 20대 여성을 잡는다. 평소의 그라면 당연히 경찰에 신고해 넘기겠지만 그녀를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바로 죽은 딸과 같은 나이였다. 그에게는 아픔이 있었는데 뺑소니 범에 의해 딸을 잃었고, 범인은 잡지 못했다. 그리고 그 사건의 공소시효가 며칠 지난 어느 날 그의 부인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좀도둑(?) 스에나가 마스미와 친구가 된 히라타는 서로의 속마음을 털어 놓는다. 과거에서 한 발짝도 나 올 수 없는 남자 히라타와 미래가 없는 여자 스에나가 마스미. 그 둘 사이엔 어떤 운명의 실타래가 함께 할까? 그 둘은 아픔에서 헤어 나올 수 있을까?
한때 과거를 원망했던 적도 있고, 빛나지 않은 현재에 화가 났던 적이 있고, 찬란하지 않을 것 같은 미래에 체념하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지 않을까? 한때는 늘 똑같은 쳇바퀴 인생이 싫었다. 특별한 인생을 살고 싶었고, 빛나는 인생을 살고 싶었다. 근데... 이젠 안다. 평범하다는 것.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오늘, 그리고 내일이 어떤 이들에게는 축복이 된다는 것을.
어느 날 사랑하는 딸이 주검으로 변했다. 자전거를 탔고, 헤어 폰을 목에 걸었다. 사건을 담당한 경찰은 딸아이의 부 주위를 지적했지만 히라타는 그렇지 않다고 반박을 한다. 음악을 크게 틀고 자전거를 탄 것은 아닌지,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다가 그런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고 딸의 과실을 이야기하지만 그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히라타는 생각한다. 자신이 조금만 더 딸아이에게 안전을 이야기 했다면 조심할 수 있었던 사건은 아닌지 자신을 책망하고 채찍질한다. 누구의 탓도 아니지만 부부는 생각한다. 혹 내 탓은 아니었는지... 사회의 밝은 빛과는 거리가 멀게 점점 어둠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처럼 침묵의 감옥으로 스스로 들어가 버린다. 만약 딸아이를 친 뺑소니범을 찾았다면 히라타는 덜 괴로웠을까? 그라도 미워하는 힘으로 열심히 살았을까? 범인만 알았다면 다시 평범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
지극히 평범했던 가정이 딸의 죽음으로 무너진다. 누구의 탓도 아님에도 부부는 서로에게 혹은 다른 이에게 손가락질 할 수 없어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 히라타 마코토의 ‘히라’는 평범을 뜻한다. 그는 자조하듯 어릴 때부터 기억을 더듬었다. 이 흔해빠진 성은 그가 태어나 자란 지역에 특히 많아서 초중고를 통해 반에 반드시 한명 이상의 히라타가 있었다. (중략) 이름이 평범하니 체격도 보통, 살집도 보통, 특별히 잘하는 과목도 없고 못하는 과목도 없는 자기소개하기가 아주 난감한 학생이었다. 자신은 이대로 세상에 묻혀 나이를 먹어가겠구나 하고 히라타는 평범한 장래를 상상했다. (중략) 히라타는 평범하게 나이를 먹어갔다. 그런데 딸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아내는 자살했다. 자신은 암 선고를 받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평범과는 무관한 삶을 살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186-187)
나이를 먹는 게 틀림없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오늘과 같은 내일이 싫었지만 나는 생각한다. 평범하게 오순도순 산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이제 조금씩 알게 된다. 누군가는 그 평범한 삶을 위해 죽도록 노력한다는 사실. 이젠 그 의미를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다. 이제 조금 있으면 봄이 온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게 찾아오는 봄이 누군가에게는 찾아오지 못하는 계절이 되기도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쩜... 행복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인생은 겨울만 쭉 이어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지금 내가 가진 이 평범한 삶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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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한 번쯤 되돌리고 싶은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다른 인연과 다른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싶은.... 우타노 쇼고의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의 주인공 히라타 마코토는 대형슈퍼의 보안담당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30대로 보이는 한 여자가 빵 세 개, 주먹밥 두 개, 종이팩에 든 커피우유와 주스를 훔친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평소처럼 경찰서에 넘기지 못하고 그녀를 그냥 보내주게 된 것은 그녀의 주민등록증을 보고 난 뒤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공부하러 갔다가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사건 현장의 모든 정황은 히라타의 딸이 헤드폰을 끼고 문자를 하다가 자동차 소리를 듣지 못한 상태로 사고를 당한 것이라 딸의 억울함이 감소되는 요소로 작용한다. 딸의 죽음을 둘러싸고 아내와의 관계도 소원해지고 마음속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아내는 끝내 안타까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히라타는 좀도둑 여자를 공원에서 다시 한 번 마주치게 되고 두 사람을 둘러싼 소문은 슈퍼마켓 사람들 사이에서 떠돌게 된다. 그녀... 스에나가 마스미가 죽은 딸아이와 생년월일이 같았기에 베푼 선행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나이든 중년의 남자가 젊은 여자를 취하려는 원조교제처럼 비춘다. 더불어 우연히 자꾸 마스미와 마주치면서 그녀에게 기대어 살고 있는 기생충 같은 건달 남자친구도 이것을 이용해서 히라타에게 금품을 요구하기도 한다.
우타노 쇼고의 책 중에서 이 책 느낌이 괜찮다. 미스터리 소설이 갖추어야 할 반전도 있고 내용도 덤덤하고 차분하게 풀어놓고 있지만 가족을 잃고 자신마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최악의 상황에 놓인 한 남자의 모습이 온전히 느껴지는 슬픔이 묻어 있다.
자신에게 항상 따뜻하고 도움을 주는 히라타가 마냥 고맙고 감사한 마스미...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그를 도와주고 싶다. 허나 이 노력이 오히려 히라타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마음마저 흔들리게 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여기에 히라타의 후배이자 그를 담당하고 있는 의사의 추리는 맞는 것인지? 아님 이 또한 또 하나의 트릭인지? 온전한 진실은 밝혀지지 않아 더 흥미롭고 감탄하게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 색안경을 쓰고 보는 경향이 어느 정도 있다. 히리타와 마스미의 관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해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이야기란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의 눈과 상관없이 친절을 베풀고 그 친절을 받으면서 변화를 가져보려는 여자의 모습이 우정 비슷하게 보여 따뜻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허나 이 모든 것을 한순간에 바꾸는 계기가 나타나면서 하라타는 인생 전체를 바뀌는 선택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을 잃어버렸기에 그의 선택이 나쁘다고만 할 수 없는 마음이 드는 게 안타깝다. 가을 뺀 계절을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이유가 온전히 느껴지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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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반전소설이다!
오랜만에 집어든 소설,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을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출판평론가 한기호 선생이 자신의 블로그에 “내가 만난 최대 반전의 소설”이라는 평에 혹해 덜컥 주문을 했고, 주말에 도착한 책을 일요일에, 엄밀하게 말해서 세 시간 만에 읽었다. 처음부터 중반까지는 잔잔함을 훔쳐보듯 느끼듯 읽었고, 결말의 70여 페이지는 숨 쉴 틈 없이 훑어 읽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뭐냐, 이 미친 반전은!”
여기 한 사내가 있다. 좋을 일도 없고, 굳이 찾지도 않을 것 같은 사내, 그래서 만나지는 못했지만 아무런 표정이 없을 것 같은 무미건조한 사내, 하지만 알고 보면 복이라곤 지지리도 없는 우울한 사내다.
“대학에서 마케팅 동아리에 든 것은 십 년쯤 시대를 앞선 것이었지만, 졸업 후 창업할 만한 재능과 배짱이 없어 대부분 회사에 취직했다. 그리고 마차를 끄는 말처럼 일하는 것이 당시 일본의 평범한 샐러리맨의 모습이었다. 열렬한 연애는 아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적령기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가정보다 일을 우선하는 아버지와 집안일을 야무지게 돌보며 취미생활에 바쁜 엄마, 엄마와는 나이차 있는 자매 같지만 아빠는 다소 무시하는 딸, 홈드라마에서 그려지는 전형적인 가정이었다. 히라타는 평범하게 나이를 먹어갔다. 그런데 딸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아내는 자살했다. 자신은 암 선고를 받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평범과는 무관한 삶을 살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186-187쪽)
주인공 히라타 마코토는 지방 대형마트의 보안책임자로서 특별할 것 없이 일상을 보내는 한 50대 남성이다. 그는 불의의 사고로 딸을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까지 잃은 기구한 운명의 사내, 한마디로 홀아비다. 근무 중 음식을 훔치다 들킨 20대 여성 스에나가 마스미를 취조하다 그녀가 9년 전 교통사고로 죽은 딸과 같은 나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평소 같았으면 경찰을 불렀을텐데, 그녀를 놓아준다. 죽은 딸과 같은 나이라는 이유만으로...이것이 인연이 되어 두 사람은 우연히 그리고 일부러 만나게 되고 서로를 알아간다. 하지만 사람 속이란 게 한 길 아니, 한 치라 할지라도 전부 알 수는 없는 법이다. 두 사람이 서로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결말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만날 사람은 언젠가 꼭 만난다.”는 말이 있다. 살다보면 거짓말 같고 소설 같은 뜻밖의 조우(遭遇)를 경험을 하게 되는데, 말 그래도 ‘운명 같은 만남’이다. 읽는 내내 복 없는 사내 히라타 마코토의 심경을 추측했다. 그리고 끝내 그에게 공감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뺑소니사고, 공소시효, 자살, 가족해체, 데이트폭력 등의 일본의 사회문제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우리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주인공은 미래의 내 모습 같아서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작가 우타노 쇼고의 다른 작품을 읽고 싶게 만든 작품이었다. 최고의 반전 소설, 맞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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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 / 우타노 쇼고
1.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대한민국은 참 살기 좋은 나라입니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봐도 이렇게 계절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나라는 흔치 않으니까 말이죠. 봄이 와서 씨앗을 뿌리고, 여름에 싹이나고, 가을에 싹을 거두고, 겨울에는 땅을 쉬게하여 영양을 공급하고. 각각의 계절은 그 필요에 따라 특징이 명확합니다. 하지만 요즘엔 봄과 가을이 사라진 듯 합니다. 그래도 봄은 꽃이피며 약간의 흔적을 찾을 수 있지만, 가을은 정말이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립니다. 이 순환의 과정에서, 하나의 계절이 사라진다는 것. 그것은 여러모로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가을이 사라진 자연은 풍요로움을 느끼기엔 너무나 빈곤할 테니까 말이죠.
인간의 삶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삶의 사이클에서 어떤 부분이 사라져 버린다면, 더욱이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었다면 그 상실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 낼 겁니다. 항상 변하지 않을것 같았던 평범한 삶에서, 갑작스레 하나의 나사가 빠져 버렸을때, 그 때 그의 삶은 극적으로 달라지고 말았습니다.
2.
주인공 히라타 마코토는 지방 대형마트의 보안책임자입니다. 잘나가는 기업의 촉망받는 인재였던 히라타지만, 뺑소니 사고로 딸을 잃으며 동시에 많은것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아마 내색하지 않았지만 자책감 때문이였을 겁니다. 딸의 부주의를 자신이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그를 더욱 힘들게 했을 겁니다. 히라타보다 더욱 약했던 아내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의 평범했던 삶은 딸 하루카를 잃은 후 극적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불행들이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그런 그에게 죽은 딸과 같은 나이의 아이가 찾아옵니다. 마트의 음식을 훔치다 걸린 스에나가 마스미 앞에서, 히라타는 냉정할 수 없습니다. 비단 그녀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잃어버린 가을을 찾기 위해 조카인 마히로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합니다. 가족을 지키지 못한 자책감은 마스미를 돕고싶다는 마음으로 바뀌게 됩니다. 삶에 미련은 없습니다. 비참하게 살아가는 마스미를 위해 히라타는 한가지 조건을 제시합니다.
3.
인간의 삶을 계절로 비유해 보았을때, 50줄의 히라타는 가을에 해당될 겁니다. 하지만 그에게 가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평범했던 일상이 무너지며, 연쇄적으로 많은 것들이 달라졌으니까요. 그 사라진 가을을 찾아주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하지만 그가 알게된 진실은, 그녀가 생각했던 진실과는 많은 것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그의 겨울은 붉게 물들고 말았습니다.
제목만큼이나 내용이 아련하게 남았습니다. 무언가의 부재로 사람은 무척이나 연약합니다. 눈앞의 단순한 진리도 헤아리지 못할만큼 어리석게 만들죠. 그가 그녀에게 희망을 주었고, 그녀 역시 그의 삶의 이유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그녀에게서 소중한 것을 뺏어갔고, 그녀 역시 그의 인식속에서 소중한것을 빼앗은 존재로 남았습니다. 모든 것은 어렵습니다.
계절이 사라진 삶에서 사람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뒷맛이 무척이나 아렸던 책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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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우타노 쇼고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
예전에 우타노 쇼고의 2003년 작품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이하 <벚꽃>)를 읽으면서 꽤나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일종의 서술트릭 기법을 사용한 이 작품은 마지막 50페이지를 남겨두고 뜻밖의 반전이 일어나면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서술트릭이란 것은 간단하게 말해서 작가가 약간 편향된 서술방식을 사용해서 독자들의 눈을 속이는 기법이다. <벚꽃>,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위의 두 작품이 인물의 정체와 관련된 서술트릭이라면, 누쿠이 도쿠로의 <통곡>은 시간의 흐름을 교묘하게 배치해서 독자들의 눈을 속인 작품이다. 나는 <벚꽃>을 읽기 전에 이 작품에 서술트릭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마지막까지 트릭의 정체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으니, 작가가 얼마나 치밀하게 트릭을 준비해두었는지 알 수 있다. 이제와서 보면 <벚꽃>의 트릭은 소설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로는 이런 트릭을 구현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서술트릭이 만드는 반전
아무튼 <벚꽃>이 워낙 인상적이서 그랬는지 몰라도 이후에도 우타노 쇼고의 이름을 보면 '반전'을 떠올리게 되었다. 혹시 이번 작품에도 반전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이런 기대감을 가지고 펼쳤던 작품이 2011년에 발표된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의 마무리는 <벚꽃>과 같은 강렬한 반전이라기 보다는 의외의 결말에 가깝다. 작품의 주인공은 지방의 대형마트에서 보안책임자로 근무하는 50대의 남성 히라타 마코토다.
히라타는 한때 잘나가는 직장인이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한 덕분에 서른을 앞두고 과장대우가 되었고 그때 단독주택을 장만했다. 결혼할 때는 사장이 직접 나서서 자신이 주례를 보겠다고 자청했을 정도다. 그랬던 히라타가 무슨 이유에선지 홀아비가 된 채, 지방의 마트에서 고작 보안책임자로 일하며 좀도둑이 드나들지 않는지 감시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가 20대 여성인 스에나가 마스미를 만나게 된 것도 보안 일 때문이다. 그녀는 마트에서 주먹밥과 빵, 커피우유 등을 훔치다가 적발된다. 히라타는 마스미의 신분증과 전화번호, 주소 등을 확인한 후에 그냥 돌려보낸다.
이때부터 마스미는 히라타의 주위를 맴돈다. 히라타가 공원 벤치에서 혼자 점심을 먹고 있으면 다가와서 '항상 여기서 점심을 먹어요?', '봄날 같네요'라고 말을 붙여오는 것이다. 처음에는 무뚝뚝했던 히라타도 시간이 지나면서 마스미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이 둘은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많은 짐을 지고 살아가는 남녀
도입부만 봐서는 추리소설이 아니라 무슨 로맨스 소설 같다. 이런 도입과 전개는 <벚꽃>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잔인하고 기괴한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빠르게 전개되는 추리소설들에 비하면 우타니 쇼고의 이 두 작품은 무척이나 차분한 편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뉘앙스도 전혀 추리소설 같지가 않다. 어쩌면 이것도 반전 또는 의외의 결말을 위한 포석일 수 있다. 차분하게 진행되다가 뜻밖의 사건이 터지면 그만큼 충격이 강렬하게 다가올 테니까.
범인 또는 사건의 의외성을 극대화한 것이 반전이라면, 이런 반전이 있는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 독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의외성을 맛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많은 독자들이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나름의 논리와 감으로 범인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이런 노력이 매번 성공을 거둔다면 작품을 읽는 재미가 반감될 것도 같다. 작가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작품을 읽고 대부분의 독자들이 범인을 맞춘다면 그런 굴욕도 없을 것이다. '속는다'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 아니지만, 이런 반전에 속아 넘어가는 것은 나름 즐겁게 느껴진다. 어쩌면 우리들 인생에서도 막판의 대반전을 기대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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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서 여름인데 어째서 가을이 빠지고 '이윽고' 겨울인지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라는 단 한 작품으로 미스터리를 사랑하는 독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작가 우타노 쇼고의 신작인데요, 후반부 단 몇 페이지로 세상이 바뀐다는 평에 역시 반전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히 반전을 위해 읽혀질 소설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심오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름에서 얼마쯤 시간이 흐르면 당연히 찾아오는 계절은 가을. 그 가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마치 사라져버린 것처럼, 빨간빛으로 채색된 겨울이란 단어에 가을이 쏙 들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쩐지 가슴 뭉클하게 몇 번을 되뇌어보게 만드는 제목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봄. 히라타, 그 이름처럼 평범하게 자라 평범하게 대학에 가고 평범하게 취직해서, 비록 뜨거운 연애는 아니더라도 한 여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하루카라는 딸을 얻었습니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직장에서도 좋은 자리에 올랐죠. 매일 다른 사람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해서 밤 12시까지 일하고 4시간 정도 쉰 후 다시 출근하는 일상. 토요일 출장도 마다하지 않았고 접대에서도 빠지지 않았어요. 그것이 평범한 히라타가 평범하다 믿는 인생이었고 남자로서 최고의 자리라 생각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아내와의 사이도 나쁘지 않았고 딸 하루카와의 의견차이로 인해 벌이는 입씨름조차 행복이라 여겨질만한 나날들.
여름. 하루카가 뺑소니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히라타와 아내의 세상은 단숨에 무너지죠.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히라타는 견딜 수 있었을 겁니다. 그는 평범한 샐러리맨, 일을 하다보면 하루카의 죽음도 서서히 희미해질 것이라 믿었으니까요. 하지만 그의 아내는 하루카가 사고를 당하던 날, 테니스클럽 송년모임에 갔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죄책감에 홀로 허덕입니다. 그나마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이 공소시효가 끝나는 순간 끊어져버리고, 결국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고 말죠. 그렇게 히라타의 여름이 지나가고 그는 지금, 혼자입니다.
가을. 직장에서 좌천당해 한 마트의 보안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히라타 앞에 딸 하루카와 태어난 해가 같은 마스미가 나타납니다. 단순한 좀도둑이라 생각했던 그녀 앞에서 히라타의 마음과 생각은 다시 하루카가 사고를 당했던 그 때를 정처없이 떠돌고, 자꾸만 신경쓰이는 그녀를 처참한 인생에서 구해보고자 노력하죠. 그런 그의 사정을 알게 된 마스미는, 그 때까지는 굉장히 연약하고 비루했으며 가엾은 여자였던 그녀는, 조금이라도 그에게 보답하기 위해 일생일대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겨울. 그 때까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병은 때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히라타라를 잠식해오고, 그는 현재,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교적 담담한 문체지만 내재된 슬픔과 고독은 굉장히 깊고 큽니다. 딸아이의 죽음으로 순식간에 붕괴된 가정, 그리고 절망. 그리고 그런 절망 속에서 순순히 죽음을 기다리는 이가 아무 조건 없이 크고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 무언가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죠. 그래서 하게 된 고백이, 그러나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 과오. 결국 마스미는 부족했던 거에요. 히라타가 안고 있는 슬픔과 괴로움을 전부 이해하기에는. 매일 남자친구에게 맞고 비열하게 이용당하면서도 이 남자가 나 없이 어떻게 살까를 염려하는 바보같고 부족한 그녀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선택으로 인해 히라타가 남은 얼마를 홀가분하게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세상에 존재하기 어려운 '구원'이라 부를만한 것이 아닐까요.
어떻게 쓰여졌느냐에 따라 순문학이라고 부르는 작품이 될 수도 있었던 소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살인범의 공소시효와 뺑소니범의 공소시효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목숨에 대한 고찰, 법제도에 대한 비판도 담겨 있고요. 유치하고 조금 낡은 느낌이지만, 한 사람의 운명이 다른 사람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고 인력으로는 끊을 수 없는 우연이 반복되어 맞게 된 결말이 주는 가슴싸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이럴 수도 있구나, 안타까움과 함께 나의 인생의 남아있는 계절들은 부디 평안하기를 바라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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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노 쇼고 曰, 「いろいろな意味で今までにやったことのないこともやっているので、何とも言えません。読んだ人がどういう風に感じるのかが、楽しみというか怖いというか。今回はシンプルに物語を書くことを心がけてつくったので、そのあたりを読んでいただければと思います。」 이대로라면 '참 속 편한데' 라기보다는 '쿨해도 너무 쿨한 거 아냐?' 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얄밉다. 내용도 현실성이랄지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느껴지긴 해도 짐짓 모르쇠로 방어하는 무관심한 필치는 발군이다. 소설은 작가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라든가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 또는 누쿠이 도쿠로의 『통곡』과 궤를 함께하지 않을까 했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틀어져버렸다. 그것도 뒷맛이 좋지 않고, 씁쓸하게. 그런데 말인즉(표현이 이상할까?), 슬픈 것도 재미의 일종이고, 무서운 것도 재미의 한 축이며, 심지어 짜증이 난다 하더라도 넓은 의미로 보자면 그것 역시 재미의 하위 카테고리에 들어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한 번 더 꼬아서, 그러니까 '히라타의 간파(혹은 오해)'가 의도된 것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들지만 말이다(아니면 마스미 역시 결과를 예측했으면서도 의도한 것이라면). 그 이후는 작가가 알아서 할 일이고. ……'마지막 5페이지로 세계가 반전'이라는 식의 가열한(!) 일본 측 카피가 절반의 성공으로 느껴질 만큼, '몸서리가 쳐지다'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어이쿠 하고 놀라기는 했다. 앞서 말한 '부족한 개연성' 보다는 이쪽이 낫달까, 아니면 미스터리 같지 않은 미스터리랄까. 우타노 쇼고답다.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의 세계에서 대체 누가 헌신했고 누가 구원받았나? 누가 거짓말을 했고 누가 보상받았나? 누가 주체이고 누가 객체인가? ▼ 저자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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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노 쇼고, 권남희 역,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 비채, 2012. Utano Shogo, [HARU KARA NATSU, YAGATE FUYU], 2011. 우타노 쇼고의 소설이 이렇게 재미있다니... 일본소설을 즐기며 느끼는 감정 중의 하나는 바로 치밀한 심리 묘사로 얻게 되는 마음의 공감이다. 어떤 사건이나 갈등의 전개와 함께 펼쳐지는 현실감 있는 심리 서술은 인간에 관한 깊은 성찰을 하게 하고 본성에 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만난 대부분은 남자보다는 여자에 관한 심리였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작품은 사쿠라바 가즈키의 [내 남자](재인, 2008.)와 미나토 가나에의 [소녀](은행나무, 2010.), [왕복서간](비채, 2012.), [경우](비채, 2013)... 등이다. 서정적인 이미지로 다가오는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은 마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처럼, 남성의 마음 심리를 너무나도 잘 그려내고 있다. 마치 거울로 내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1985년 10월 5일생."(p.11) 네 경우도 그래. 신분증을 보기 전까지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딸애와 동갑이란 걸 알고 나니 마음이 안정되지 않더군. 작년에도 1985년생 누군가가 물건을 훔치다가 잡혔는데, 역시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돌려보냈어... 면허증을 보고 깜짝 놀랐어. 10월 5일이었지? 딸아이는 5월 10일이야. 월과 일의 숫자가 바뀐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마는, 뭔가 특별하게 느꼈어.(p.80) 히라타 마코토는 벤쿄도 요시우라 가미마치점의 보안 책임자이다. 그는 근무 중에 매장에서 빵과 주먹밥을 훔친 초라한 몰골의 여자를 만나는데, 우연히도 죽은 딸과 생년이 일치한다. 이것으로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되는데... 거부감으로 서로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지만, 어느 순간 이들은 서로의 마음을 터놓는다. 가슴속에서 말이 넘쳐 금방이라도 입 밖으로 쏟아질 것 같았다. 그러나 한마디라도 했다간 모든 것이 붕괴될 것을 알기에 히라타는 꾹 참았다.(p.50) 역설적이지만, 그걸 버틸 수 있게 한 것은 무거운 짐이었던 에리코의 존재였다. 자신이 여기서 쓰러지면 남겨진 아내는 어떻게 되겠는가. 지켜준다는 것이 곧 의지하는 것이란 걸 깨달았다.(p.132) 그러나 슬픔은 없었다. 후회, 안타까움, 상실감, 원통함, 아픔, 절망... 아무런 감정도 일지 않았다. 유일하게 남은 감정이라면 허무였다. 히라타의 마음은 어둡고, 깊고, 무겁고, 빛이 닿지 않는 짙은 안개로 뒤덮였다.(p.154) 한때는 도쿄 본사에서 임원 승진 대상으로 거론될 만큼 전도유망했던 남자는 딸아이의 뺑소니 사망 사고 이후에 모든 것이 뒤바뀐다. 행복한 가정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아내는 슬픔과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는 남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슬퍼하고 싶어도 슬퍼하지 못하고 좌절하고 싶어도 좌절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내는 결국... 인간사란 애초에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히라타 마코토와 스에나가 마스미에 한하지 않고, 모든 사람의 인생이 마찬가지다.(p.287) 딸을 잃은 상실감,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 육체의 질병...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생,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가족의 해체와 모든 것을 잃게 된 남자는 평생을 가난과 핍박으로 처절하게 살아온 여자에게 마지막 기회를 제공하려고 한다. 하지만 운명의 잔혹함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호의는 오해를 불러오고 갈등은 극에 달하는데... 이전에 읽은 작품과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여자는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모습으로 그려져 작가의 부정적인 여성관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러나 중년의 남자와 딸과 같은 여자의 인연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독성을 높이고, 하나둘 가진 것을 잃어가는 남자의 심리 상태 묘사는 다른 어떤 소설과 비교하여도 단연 최고이다. 평범한 남자의 평범하지 않은 인생은 남자라면 누구나 마음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