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동양고전을 접하면서 흔히 범하는 오류가 있다. 노자와 장자의 사상체계를 묶어서 일반적으로 노장사상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들 사상을 도교와 연결 지어 생각하면서 현실도피적이고 염세주의적인 사상으로 알고 있다. 아마 학교 다닐 때 제자백가에 대해 배우면서 책이나 선생님들이 간략하게 소개해준 것이 그런 생각을 굳히게 해 주었을 것이다. 하긴 사마천도 [사기]에서 노자와 장자를 하나로 묶어 통칭하고 후대의 사가들도 그것을 충실히 따랐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들의 사상을 새롭게 조명한 많은 책들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오해였음을 이해했다고 하지만, 사실 노자와 장자의 차이를 분명하게 이해하기에는 여전히 쉽지가 않다. 또한 장자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자들이 서로 자신이 생각하는 장자의 사상에 대해 얘기하지만, 노자에 대해서는 그러한 서적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우리가 노자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아닐까 싶다.
일전에 어느 책에선가 노자와 장자의 차이를 설명한 글을 본적이 있다. 노자가 무위(無爲)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려 한 것은 무위지치(無爲之治)이고, 장자는 무위를 언급하였지만 이는 무위지치가 아니라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는 것이다. 즉, 노자사상의 본령은 통치에 있는 입세간(入世間)의 입장이고, 장자사상은 자연과 하나가 되어 소요(逍遙) 할 것을 설파한 출세간(出世間)의 입장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노자와 장자를 명확하게 구별하라면 그리 쉽지만은 않다. 노자에 대해서 보다 자세하게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노자의 저작으로 알려진 [도덕경]을 읽는 것이 우선이겠다 싶어 고민 끝에 이 책을 골랐다.
노자는 생몰년이 확인되지 않지만 춘추시대 말기 공자와 동시대의 사람으로 보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욕망 앞에서 광분하는 모습을 보면서 도(道)와 덕(德)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저작이 바로 [도덕경]이다. [도덕경]은 상편 37장, 하편 44장, 총 81장으로 이루어졌으며 기원전 2세기경 한경제때 경서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도덕경]이란 말은 후대에 상편 1장의 시작인 ‘道可道 非常道’의 道와, 하편 1장의 시작인 ‘上德不德’의 德을 합쳐 만든 명칭으로, 경이란 말이 붙은 것을 보아서는 경서로 분류된 한경제 이후의 일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이런 [도덕경]을 번역한 책이다. 저자는 [도덕경]이 5000자에 불과한 짧은 글이지만 여기에 담긴 사유는 심오하기 그지없다고 말한다. 그는 각 장 별로 번역문에 이어 원문을 싣고, 해설과 각주를 다는 형식으로 완역했으며, 해설에는 사상적이고 철학적인 해석보다는 원전이 말하는 바를 그대로 옮기고자 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으면서 노자의 사상을 확실하게 알겠다는 꿈도 사실상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오로지 번역문을 참고삼아 자신이 찾아가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노자의 사상을 제대로 알아가기 위해 스스로 사유를 해야 하니 다소 시간은 걸리겠지만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읽고 또 읽는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노자는 어떤 특정한 가치와 방향을 유일하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가치가 중요함을 말한다. 따라서 자연과 사회의 상반되는 성질 중에 어느 하나만을 기준으로 삼아 다른 모든 것이 그것을 향해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서로 상반되는 성질이 의존하고 맛 물려 있다고 본 것이다. 노자사상의 핵심 중 하나인 無를 놓고 볼 때, 노자가 말하는 유무상생(有無相生)은 有와 無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의존한다는 것을 뜻한다. 세상의 만물은 모두 有에서 생기고 또 有는 無에서 생겨나듯 만물은 늘 서로 의존하며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道 역시 마찬가지이다. 노자는 道를 모든 존재가 따라야 하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덕(德)으로 나타나는 작용이며 그 기저에 자연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기에 그가 주장하는 무위(無爲)는 태고의 자연을 가리키며, 무욕(無欲)은 만족할 줄 모르며, 그칠 줄도 모르고 질주하는 욕망을 경계하는 말이지 싶다. [도덕경] 44장에 나오는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지족불욕(知足不辱) 지지불태(知止不殆)는 내가 늘 생각하는 글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도덕경]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노자가 상대적인 차이를 갖는 어느 한가지에 갇히지 않고 전체를 보는 시선을 갖도록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경계에 갇히지 않고 기존의 시선에서 벗어난 사고, 즉 존재 자체인 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노자가 살았던 시기는 패권을 향해 질주하던 춘추시대였다. 그 시대는 특정한 가치만을 수용하고 다른 가치를 부정하는 극단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런 시대현상을 단지 상대적인 차이밖에 지니지 않는 有들의 경쟁과 대립이라는 병적인 현상으로 본 노자. 그래서 노자의 사상은 비주류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얽매임이라는 有의 세계를 넘어 無의 세계로 나아가는 자유의 사상가가 될 수 있었을 게다.
지금의 세상 역시 온갖 有들이 서로 맛 부딪치는 세계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특정한 자신의 가치만을 수용하도록 요구하는 극단의 세계이기도 하다. 이러한 때, [도덕경]은 존재 자체인 나에 대해 생각하도록 화두를 던져주는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내가 노자에 대해 좀 더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다시 [도덕경]을 읽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해진다. |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를 읽다 문득 도덕경과 같은 글을 보게 된다. 엄청난 시간의 간격과 지역의 간격 속에서 이런 내용을 보면 참 신기하다. 특히 서구인이 공자, 노자를 언급할 때면 자뭇 신기하다. 생각과 생각하고 있다고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도서관에서 도덕경을 찾아봤다. 그리고 읽어보지 않았던 이 책을 펴고 보게 되었다. 참 신기하게도 에크하이트로의 설명과 같은 내용과 형식을 이 책의 초반부에 보게 되니 또 신기할 뿐이다.
처음 도덕경을 볼 땐 원전이 아니라 한자성어 책 속에서 언급되는 도덕경 구절을 많이 보았다. 몇 권을 읽어봤으니 일차원적인 수준으로는 이해가 된 것도 같지만 그것이 스스로 허상을 만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스스로 채워놓은 것이 있어야 비울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무위의 개념과 도, 도를 구현하는 덕과 같은 것이 내 삶에서는 수박 겉을 핥는 정도가 될지 모르겠다. 아직은 유의와 유지(有知)의 세상 속에서 혼탁하고 어지럽게 걸어가는 중이다. 그래도 방향이 어디로 가는가는 어렴풋하게라도 아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위안을 삼기도 한다.
최근 제품 기획을 하나 하면서 사람들은 그 동작과 연결이란 물리적인 부분의 문제, 하고 싶은 것을 말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기획의 내용은 보이지 않지만 그들이 하고 싶은 바를 정리하는 것에 가깝다. 개발자와 이야기를 하고 설명하는 것은 다시 그렇게 동작되는 기술적 요구사항이지만 그 안에 고객과 사용자들이 하고 싶은 바를 심어주는 일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도덕경을 읽으며 몇 주 한 일이 떠오르는데 그런 마음과 자세가 부합하는 것일까?
그런가 하면 지인이 뜬금없이 시장조사를 좀 해보라는 메시지가 왔다. 형님들이 원래 손이 많이 간다. 어쩔 수 없이 숙제를 조금 했다. 내가 하는 일에서도 말씀하신 부분과 연관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 부분이라 세세하게 파악하기가 어렵다. 오후엔 갑자기 집이 어디였더라?라는 엉뚱한 질문을 하신다. 또 얼마 지나서 집 근처에 사무실을 하나 사려고 하신다. 머릿속에 또 복잡해진다. 베풀고 그것에 남아있지 않고, 뽐내지 않으면 된다라고 했으나.. 허허 이러다가 머리끄덩이 잡으러 오는 분위기인데.. 뭔 일인지 난 알 수가 없다.
지금 하는 일도 거래처와 잘 진행되고 있다. 며칠 전에 '정예사'라고 해서 무슨 말인가 했더니 정예 협력사의 줄임말이란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누군가가 잘 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내게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벌써 작년 수준의 매출을 초과한 상태다. 이번달에 들어서며 단가를 조금 내리려고 했더니, 거래처에서 "왜 내려요?"라는 질문을 한다. 오래 영업을 했지만 이런 말을 듣기도 처음이고, 말투를 보면 이런 일에 익숙하지도 않은 담당자의 목소리다. 그러더니 며칠 뒤에 단가조정이 아니라 연간계약을 새로 갱신해 줬다. 이건 또 신기한 일이다. 가끔 팀장 녀석이 마진을 더 확보해도 되는데 왜 그러냐는 말을 할 때가 있었는데 이번에 기가 막힌 타이밍에 더 잘된 거 같다고 신이 났다. 당장 더 남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래가려면 사업관계의 균형도 중요하고, 당장의 이익보다 균형을 위한 최선의 베풂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이런 일이 전체 사업의 레벨업이 되는 전조가 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그 순환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물질, 자본주의 속에 살며 노자가 말하는 마음의 집착을 버리고, 검소하고, 겸손하고 정직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의 구조속에 적응하며 살아가며, 노자의 생각 한 조각을 품고 살아가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일까? 하여튼 세상은 어지럽고, 어지럽다는 것은 정화의 시간이 또 온다는 순리를 기대하며 살아간다. 무엇보다 내 마음의 혼탁함이 세상의 혼탁함에 연결되니 스스로가 내려놓고 돌아가는 일이 중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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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훌륭한 디자인적 구성과 양장의 장점이 빛나는 책입니다. 옮긴이는 노자의 도덕경의 한자 부분을 세세하게 풀이하고 더해서 약간의 실례들만을 해설에 첨부하였는데, 사견으로는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이러한 구성이 단점이자 동시에 장점이 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이 리뷰에 언급하신 것 처럼 이는 노자 사상의 가장 중요한 기치라고 여겨지는 자유로운 사색을 가로막는 장애물로써의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 하지만 동시에 바쁜 직장 생활 와중에도 짬을 내어 고전을 읽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짧은 시간동안 가볍게 풀이를 읽어가며 도덕경을 즐길 수도 있을 것 입니다. 긴 시간 숙독하며 책을 읽기에는 부담스럽지만, 평소에 도덕경을 읽어보고자 했던 분들에게 아주 좋은 도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덕경은 노자가 쓴 고대 중국의 철학서로, 도와 덕의 원리에 기반한 삶의 지혜를 제시합니다. 이 책은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법, 도덕적 이상,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으며, 간결하고 심오한 문장으로 독자들에게 철학적 사색을 유도합니다. 동양 철학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노자의 사상은 현대의 삶에도 여전히 많은 교훈을 제공합니다. 이 책은 삶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 |
오늘날 우리가 도덕경으로 규정한 판본은 삼국시대 말기에 왕필이 정리한 것이며, 이를 소위 왕필본 혹은 통용본이라고 부른다. 1973년도에 중국 장시성에서 발견된 고분 마왕퇴(BC 168년 추정)에서 발굴된 백서본에 담겨 있는 문장들은 왕필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불어 마왕퇴에서 발견된 도덕경 판본은 중국 삼국시대 말기에 왕필이 편집한 통용본보다 연대가 훨씬 앞섰다. 다시 말하자면, 왕필본의 저본이 바로 백서본인 셈이며, 왕필이 정리하기 이전에 중국의 여러 사서에 인용된 판본도 이 백서본인 셈이다. 백서본은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백서본 갑본으로서 전국시대 말기(BC 247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고, 을본은 한나라 초기(BC 195년 이전)에 제작된 판본으로 추정된다 논어,도덕경,채근담,손자병법 이렇게 구매했는데 언제 다읽나 ;; |
노자 도덕경 이라는 이름 하나 만으로도 압도되는 난해한 한자들의 뜻들을 깔끔하고 쉽게 풀어낸 책. 노자의 깨달음은 그 시대의 공자도 그의 가르침에 한 수 접었다는 말처럼 이상적이면서도 동시에 시대를 불문하고 ‘현재성’을 지닌 철학임. 되게 난해하다고도 느껴지는 여러 장들이 있지만 그 모든 장들이 하나의 공통된 도로서 엮여진 느낌이 드는 도가 사상. 완역이자 입문서로서 충분히 추천 하는 책. 각 장마다 바로 옆에 해설이 있어서 꾸준히 지루하지 않게 완독 가능한 책 |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도덕경을 읽다가 해석이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비교해 보려고 산 책이다. 결론적으로 기존에 읽던 책은 밀어 두고, 이 책 (휴머니스트 도덕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원문을 한글로 해석해 두고, 한자 원문을 보여주고, 그 뜻을 해설해 놓은 구성으로 되어 있다. 처음에는 모르는 한자를 찾아가면서 읽었는데, 흐름도 끊기고 속도도 느려져서 전체적인 뜻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노자는 인위보다는 무위를 주장하지 않았는가!)
18장 위대한 도가 없어지자
위대한 도가 없어지자 인과 의가 생겨났고, 지혜가 나타나자 큰 거짓이 생겨났다. 육친이 화목하지 못하자 효성과 자애가 있게 되었고, 국가가 혼란해지자 충신이 있게 되었다.
박근혜가 있었기에 촛불이 타올랐고, 촛불이 흔들리자 이재명, 윤석렬이 나타났다. 뉴스를 보며 씁쓸한 마음에 리뷰까지 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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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대조대는 성인이시다. 공자의 유교와 덕에 다른 의견의 도덕을 이야기 한다. 무위를 중요시하고...도가도 비상도로 시작하는 도덕경은 어렵지만 한번쯤은 읽어보길 추천한다. 만물이 유와 무에서 시작하는 것처럼.. 나도 새로운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 가겟다. |
노자는 다니기를 잘하는 이는 수레바퀴 흔적을 남기지 않고, 말을 잘하는 이는 흠을 남기지 않으며, 계산을 잘하는 이는 주판을 쓰지 않고, 잠금을 잘하는 이는 빗장으로 잠그지 않아도 열 수 없게 하고, 매듭을 잘하는 이는 끈으로 꽉 묶지 않아도 풀리지 않게 한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성인은 언제나 사람을 잘 구제하기 때문에 버려지는 사람이 없게 된다. 어네나 사물을 잘 구제하므로 버려지는 물건이 없게 된다. 노자는 이것을 습명이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