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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소설은 '해설'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들다. 특히, 우리 나라처럼 '교육열'이 유난한 환경에서 이 소설은 자칫 '의지박약한 청소년'을 경계하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신동이라 불리던 한 소년이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 '명문학교'에 입학했음에도 친구를 잘못 만나서 '문제아'로 찍히게 되고, 학교생활에도 적응하지 못해 불명예스런 '휴학'을 했다가 끝내 사회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는 줄거리로 읽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는, 제목에서 주는 '위압감' 때문에 '수레바퀴 아래' 깔리지 않으려면 '닥공(닥치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창시절을 참고 견디어야 한다는 강박감을 잘못된 선입견처럼 강제주입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수레바퀴 아래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배경지식을 갖추어야만 한다.
먼저, 주인공의 이름에 주목해야 한다. 이 소설은 '성장소설'에 해당하기 때문에 어린 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 소년 주인공이 바르게 성장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이 '주제파악'을 하기 위한 핵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두 소년의 이름이 지니고 있는 뜻을 헤아려야 한다. 바로 '한스 기벤라트'와 '헤르만 하일너'다. 각각의 이름에 담긴 뜻은 '기벤라트(충고 좀 해줘)', '하일너(치유하다)'다. 이렇게 이름이 지니고 있는 뜻을 알고 나면 주인공 '한스'가 겪는 방황을 십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기숙사의 문제아로 낙인 찍힌 '헤르만'이 사실은 우리 사회가 지닌 병폐현상을 말끔히 '치유'할 수 있는 인재였음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사실 주인공 한스는 자기 스스로 원해서 '공부'를 한 것이 아니었다.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어른들이 하라는대로 공부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한스에게도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 마냥 싫은 것은 아니었다. 공부성적이 우수한 편이었기 때문에 공부를 하면 선생님을 비롯해서 동네어른들 뿐만 아니라 특히 아버지가 유독 기뻐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공부를 잘 하는 한스를 보며 기뻐한 것은 '한미한 가문'을 한스를 통해서 부와 명성을 높일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버지는 한스의 뛰어난 성적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웠고, 대견해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한스는 공부가 즐겁지 않았다. 뛰어난 실력과는 별개로 점점 늘어나는 '공부분량' 때문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스는 점점 또래 친구와 어울리는 시간도 줄어들게 되었고, 스트레스를 받거나 두통에 시달릴 때마다 즐겼던 낚시와 산책도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한스는 학창시절을 '공부벌레'로만 살게 된 셈이다. 그럼에도 한스는 꾹 참고 공부에 매진한다. 아직 한스에게는 '공부'가 인생의 전부로만 보였기 때문이다. 주변의 어른들이 모두 한스에게 공부만을 권하는 분위기여서 한스는 더욱더 '다른 데' 한눈을 팔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게 바로 한스가 '신학교 합격'을 하고도 방학동안에 다른 여유를 갖지 못하고 교장과 선생과 목사에게 일주일 내내 '선행학습'을 한 까닭이다. 마치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마냥 앞만 보고 달리고 또 달리기만 했다. 합격자들 가운데 2위로 합격한 실력자가 입학과 동시에 성적이 뒤쳐지지 않도록 또 공부만 한 셈이다. 이런 한스에게 제대로 된 '충고(조언)'를 해주는 어른은 없었던 것일까? 사실 있긴 있었다. 동네에서 신발을 만드는 '가죽쟁이 아저씨'가 계셨는데, 오직 이 분만이 한스에게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절대 아니다'라고 유일하게 조언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스는 자신에게 유일하게 제대로 된 조언을 해주는 이 아저씨를 자주 찾아뵙지 않는다. 의도적이었던 것일까? 그보다는 주위에 온통 '공부하라'는 잘못된 충고를 하는 어른들 뿐이라서 제대로 된 인생조언을 듣고도 죄책감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한스의 잘못된 판단은 '문제아' 하일너를 만난 뒤에도 계속 이어진다.
반면에 헤르만은 자유분방한 아이였다. 분명 36명밖에 합격하지 못하는 수재 중의 수재임에 틀림없었지만, 하일너는 '신학교'에서 고분고분하게 공부만 하다가 국가가 배출하는 '목사'가 되어 모두가 선망하는 대상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하일너는 그저 '안정된 돈벌이'나 '유망한 직장인'에 만족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자신의 내면이 하고자 하는대로 나아가고 싶은 진취적이며 자유로운 영혼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하일너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자유롭게 지껄일 수 있는, 그렇지만 한껏 절제되고 엄선된 '언어'로 더욱더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일깨워줄 수 있는 '위대한 시인'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때로는 날카로운 사회비판을 담기도 하고, 때로는 아름다움, 그 잡채를 예찬하기도 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고 싶은 간절한 이유도 역시 '이름'과 마찬가지로 '하일너(치유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반된 두 소년이 어둡고 음침한 신학교 기숙사 '같은 동아리방'에서 만나게 된다. '모범생'과 '문제아'가 만나서 벌어질 일이 무엇이었을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책제목'에서 언급하고 있는 '수레바퀴'에 대해서 조망해야만 한다. 작가 헤세는 이 소설을 '자전적인 소설'이라 말했다. 자신의 어릴 적 경험에서 비롯한 소설이 창작된 셈이다. 과연 두 소년 가운데 누가 '작가의 어린 시절 모습'이었던 걸까? 헤세도 어릴 적에 자살시도를 했던 점에 비추어보면 아마도 '한스'였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은 '헤르만'이 작가가 되고 싶었던 이상형이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헤세는 목사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운 형편속에서 '목사'가 되길 강요받았지만 병약하고 자살시도 끝에 '시인'이 되길 꿈꿨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의 두 주인공 모두가 바로 '헤세의 어린시절'을 본뜬 자화상이랄 수 있을 것이다.
소설속에서 한스는 결국 죽음에 이른다. 거대한 '수레바퀴 아래서' 깔려 죽고 만 셈이다. 여기서 '수레바퀴'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괴물과 다를 바가 없다. 아직 어린아이일 뿐인데 어른들이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가차없이 밟아버리고 말겠다는 무시무시한 괴물처럼 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거대한 괴물에 깔려죽은 아이들은 '무엇'이고, 용케 살아남은 아이들은 '누구'란 말인가? 수레바퀴 아래 깔릴 운명은 다름 아닌 '사회부적응자'들이다. 기성세대가 만든 '수레바퀴'는 잘 굴러가기 위해서 그 밑에 깔릴 수밖에 없는 사람은 가차없이 밟고 지나가버린다. 그렇다면 수레바퀴에 깔리지 않고 용케 살아남은 사람들은 '제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인가? 그건 아니다. 수레바퀴가 '왜' 굴러가는지도 모른채 그저 굴러가는대로 아무 생각도 없이 '굴려지는 도구'로 길들여졌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 수레바퀴가 멈추면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만 눈치껏 알고 있을 뿐, 그 수레바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위해 굴러가는지도 모른채 그저 '굴러가는대로' 돌고 또 돌아갈 뿐이다. 그러다 그 수레바퀴에서 '낙오'라도 되면 다시 깔릴 위험도 있고, 아니면 사회에서 버림을 받을새라 허둥지둥 '그 수레바퀴'에 다시 탑승하려 애쓰는 안쓰러운 상황만 펼쳐질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네 인생은 '수레바퀴 위'에 있는 것일까? 아래에 깔리면 사회부적응자이고, 위에 탑승하면 사회적응자라고 할 때, 수레바퀴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듯이 자유롭게 제 갈길을 가는 사람은 없는 것일까? 오직 그런 사람만이 '그 수레바퀴'를 굴리기 위해 '앞만 보는 말'에게 잔인한 채찍질을 가하는 마부(기득권층)와 맞설 '위대한 주인'인 것이다. 이 소설을 읽는 어린 독자들이라면 바로 이 '위대한 주인의 실체'를 마주해야만 하는 것이다. 비록 소설속의 주인공은 비극적인 죽음을 피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우리는 현명해지기 위해 공부를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현명해지기는커녕 '공부벌레'가 되어버리거나 '공부하는 기계'처럼 공부하는 학생들이 되고 만다. 점점 '아는 것'이 더욱 많아질터인데 도대체 왜 그런걸까? 바로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목표'를 상실한 탓이다. 공부에 '성공보장 코스'라도 있는 것처럼 '명문고-명문대-대기업'이라는 코스를 밟아야만 성공한 인생이라는, 아니 적어도 '넉넉한 삶'과 '안락한 노후'를 보장받기라도 하는 양, '닥공'하는 청소년들이 너무 많다. 그것보다는 '나는 어른이 되어서 무엇을 할 것이다'라는 구체적인 꿈을 꾸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나는 학창시절에 지겹도록 공부만 해야 했지만, 어른이 되어서 꼭 '교육부장관'이 되어서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즐겁고 재미나게 공부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들 것이며, 그렇게 공부한 대한민국 학생들이 세계최고의 인재로 발돋움해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멋진 사람이 될 것이..라는 멋진 꿈을 꾸는 학생들이라면 정말 좋겠다. 그저 돈 많이 버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목적달성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꿈'을 꾸고 실현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멋진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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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1906년 독일에서 발간된 이 책의 내용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현실과 조금의 이질감도 없이 다가오는 것일까. 그때 한 소년이 겪었던 마음의 상처와 아픔이 지금 현재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너무나 닮아있음이 마음 아프게 느껴진다. 한스 기벤라트라는 명민한 아이에게 어른들이 준 것은 자신들의 자부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기를 바라는 기대감과 거기에 자신들이 기여했다는 명예심을 드높여주기를 바라는 쇠기둥처럼 무거운 부담감이었다. 한스가 어른들이 추켜세운 공명심으로 인해 또래 아이들보다 우월하다는 자부심을 갖고 그 지역의 단 한 명의 합격자로 유서 깊은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열심히 공부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아야겠다는 뚜렷한 목표의식이 있었다. 그 목적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즐거움을 기꺼이 포기할 줄 알고 충분히 노력했기에 한스는 아직 불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숙사의 같은 방 친구였던 힌딩거의 죽음을 본 한스가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기심에 충격을 받고 경쟁의 선에서 빠져나오자 한스는 행복했지만 어른들은 그를 버렸다. 가장 먼저 교사들이 그를 버렸다. 자신의 성공 보다 더 좋은 것은 마음을 나누며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던 한스에게 교사들은 차갑게 등을 돌렸다. 친구인 하일러가 신학교에서 쫓겨난 뒤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된 한스가 학습에 뒤떨어지자 한때 한스의 재능에 마음을 주었던 교장과 교사들은 그를 매몰차게 대하는데 그 방법은 잔인하게도 무시였고 무관심이었다. 아직 자신들의 기대감으로 돌아올 여지가 남았다고 생각했을 때 교장이 한스에게 말했다. 아무튼 지치면 안 되네.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 깔리고 말테니까 나는 저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끊임없는 경쟁으로 아이들을 내몬 어른들은 경쟁에서 떨어진 아이들은 돌아보지 않은 채 남아있는 아이들을 채찍질해서 경쟁의 수레바퀴를 계속해서 몰아가고 있었다. 이것만이 우리 어른들이, 교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일 수밖에 없었을까 라는 자괴감과 함께 이런 현실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아이들은 곁에 있는 친구들을 다만 경쟁상대로 여긴 채 자신들은 어른들이 정한 그 무엇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경주마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조금이라도 경쟁에서 떨어지면 바로 사람들의 비난을 받으면서 관심에서 멀어지는 한스와 같은 친구들을 보며 그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모든 즐거움을 포기한 채 학습에만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지를 돌아봤을 때 결코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지금의 현실이 그 무엇보다 무겁게 다가왔다. 경쟁의 수레바퀴에서 떨어진 한스를 대하는 고향의 어른들의 모습 또한 한스를 절망스럽게 만들었다. 자신이 그 지역의 단 한 명의 신학생으로 입학했을 때 보여준 어른들의 따스한 마음들은 그가 경쟁에서 떨어지자마자 사라졌다. 한스는 자신이 고향에서 받았던 관심과 애정이 한 순간에 거두어져 가는 것을 똑바로 보았다. 그 경험은 상처에 뿌려진 소금처럼 한스의 마음을 쓰라리게 만들었다. 거기다 한스가 처음으로 이성적인 사랑을 느꼈던 소녀마저 아무 말도 없이 떠나버리자 모두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한스를 불행에 빠뜨렸다. 사람들에게 어떤 이해도 위로도 받지 못한 한스는 죽음이 주는 거짓 위로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그에게 겸손보다 우월감을 먼저 가르쳐준 어른들 때문에 한스는 평범하게 사는 일이 시시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어리지 않았다면 먼 훗날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평범하게 사는 일이야말로 어려우면서도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그러나 한스는 그 모든 것을 알기에는 아직 어렸고 그래서 한스의 마지막을 차가운 강물과 함께 하도록 내버려 둔 것은 한스 자신의 나약함 보다는 어른들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훨씬 더 강하게 들었다. 한스에게 그의 재능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한스를 사랑해 줄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었더라도 한스는 그렇게 죽음이 주는 거짓 위로에 자신을 맡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방학 중에도 선행학습을 위해 그렇게 열정적으로 시간을 내어 가르쳐주던 고향의 교장과 목사와 수학선생이 그 시간의 아주 작은 일부만이라도 다시 떼내어 잠깐 동안 쉬는 일도 괜찮은 거라고 한스를 위로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집안의 명예를 드높일 자식이라고 생각했던 기쁨으로 한스에게 커다란 믿음을 가졌던 아버지가 조금만 더 한스를 지켜보며 그에게 내면의 상처가 아무는 시간을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어른들 역시 한 번쯤은 그 경쟁의 수레바퀴에 올라타 봤을 테고 또 몇 번씩은 경쟁에서 낙오된 채 실망과 안타까움 후회와 절망에 빠진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른이 되면 그 끔찍했던 시간들은 다 잊고 자식들을 그 수레바퀴에 올려놓은 후 자신이 미처 이루지 못했던 최상의 경쟁을 위해 발을 구르며 부추긴 것은 아니었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누구나 살면서 경쟁을 할 수도 있고 어떤 면에서는 경쟁이 반드시 필요하기도 하다. 아이들이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경쟁을 할 때는 박수를 쳐주고 격려를 해주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아이들이 경쟁에 지쳐 잠시 수레바퀴를 내려왔을 때는 그 동안의 과정을 살펴봐주고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봐주는 것이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자신의 과거였던 아이들이 자신들보다 조금 더 행복해진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어른들의 몫일 것이다. 지금도 수레바퀴에서 떨어진 아이들은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이 있다. 그 아이들이 차가운 강물에 의지하려들기 전에 따뜻한 가정과 사회의 품 안에서 망가지고 상처 입은 몸과 마음을 회복시킬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100년 전에 쓴 이런 소설은 아주 옛날 다른 나라의 불행한 사건쯤으로 치부해버리는 그런 좋은 날이 왔으면 좋겠다. 포슈르방 노인을 구하기 위해 진흙탕 속에 빠진 수레바퀴 아래로 들어간 장발장 같은 어른이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도 꼭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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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사랑 받는 책에는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 나는 이 책을 읽기로 마음 먹었다. 헤르만 헤세는 20세기 소설의 거장이다. 정말 모르는 사람이 없는 거장이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렇게 많은 책들을 읽어봤지만 헤르만 헤세의 책은 읽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시간이 나는 봄 방학인 지금,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이은 가장 유명한 소설인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었다. 이 책의 가장 큰 줄기는 어느 작은 독일 마을에 사는 한스가 아주 열심히 공부해 신학교에 입학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스는 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아주 열심히 공부하고 또 공부한다. 그 때문에 자신의 추억이 담긴 모든 것들을 빼앗기게 된다. 낚시부터 시작해, 친구와 수다를 떨고, 수영하고, 산책하고... 그런 모든 활동들이 오직 신학교에 가기 위한 공부로 뒤덮였다. 부모님과 주변 이웃들, 선생님과 목사까지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한스는 억압에 짓눌려 아주 열심히 공부한다. 그렇게 신학교 시험에 2등으로 통과한다. 한스는 신학교 시험 뒤에 있는 여름 방학 만을 기다려왔다. 여름 방학 기간 내내에 놀아도 충분한 휴식이 되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오히려 신학교 선행을 나가라고 재촉했다. 한스는 첫 일주일만 휴식하고 나머지 여름방학 날들은 신학교 선행 공부를 했다. 왜 어른들은 한스를 쉬게 냅두지 않았을까. 신학교 시험 준비 1년과 여름 방학 동안의 선행으로 한스의 마음은 점점 병들어 가고 있었다. 한스는 아무것도 모른체 신학교에 입학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주변의 선생님들과 어른들의 칭찬을 많이 들었고, 모범생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한스는 신학교에서 지내면서 친구가 별로 없었다. 그리고 하일너라는 친구와 친하게 지내기 시작했다. 하일너는 무식하게만 보이는 공부와 신학교를 아주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거의 경멸했고 이 인식이 그대로 우등생 한스에게 전해졌다. 교장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은 이 이상한 변화를 눈치 채고 많은 약물들을 처방했지만, 전혀 도움되지 않았다. 그렇게 한스는 점점 병들어 갔고, 하일너와의 이별이 기폭제가 되어 심신이 피폐해져만 갔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살면서 기계공 일을 같이 하던 한스는 술을 먹고 집으로 오는 길에 강에 빠져 죽게 된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교육 방식과도 매우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모든 학생들이 아주 열심히 공부하고, 학교에서는 아주 직관적으로 서열을 가린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공부 때문에 제대로 놀지도 못하다 보니, 노는 방법을 모르는 학생들이 매우 많다고 한다. 심지어 어느 학교의 교수가 빠니보틀과 같은 여행 유튜버에게 노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말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수능을 칠 때까지 선행, 선행, 선행만 한다. 여름방학 겨울방학 때는 노는 것이 아니라 더 빡세게 선행을 한다. 참 웃긴 일이다. 물론 공부를 해서 지식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학창 시절에 이렇게 공부만 한다면 실제로 사회 생활 나가서는 분명히 수능이라는 목표를 끝마치고 나서 더 이상의 목표가 없자 사는게 재미없어져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 우리나라가 자살률이 매우 높은 데에는 이 같은 요인들이 분명히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글자 하나 하나가 정말 무게감이 있었다. 나는 아직 중학교 입학도 안한 예비중 1 이기 때문에 한 3~4년 뒤에 읽는 다면 내가 이 책을 통해서 느낀 한국과 관련된 교육 방식, 주변의 압박, 그것 때문에 이어지는 자살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하고 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 책은 중학생 필수 도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최고의 고전이라고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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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 필독서라 미리 구매했어요 아이 학원 숙제용이기도 하구요 문학동네랑 민음사가 워낙 유명해서 두개의 번역 느낌이 달라 2권 다 읽어보려고 주문했습니다 아이도 저도 함께 읽어보려구요 만족합니다 배송 완전 당일 도착!! 너무 맘에 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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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리뷰입니다
밤의 사색이라는 헤르만 헤세의 에세이를 읽고 헤세의 책들을 읽기 시작했어요 어떤 책을 읽든 밤의 사색이 제일 좋다 생각했는데 수레바퀴 아래서는 조금 고민이 되네요 개인적으로 데미안보다 공감이 가는 성장 스토리였습니다 읽히기도 더 잘 읽혔어요! 그리고 세계문학을 살 때 가장 먼저 고려해보는 출판사가 문학동네와 을유출판사인데 수레바퀴 아래서는 문학동네가 번역이 좋은 것 같아요 가독성도 좋고 잘 읽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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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의무와 국가가 교사에게 맡긴 직무는 소년들의 거친 힘과 자연의 욕망을 제어해 뿌리부터 송두리째 뽑아버리고, 그 대신 국가가 인정하는 차분하고 절도 있는 이상을 심어주는 것이다. 학교의 그러한 노력이 없었더라면, 지금 행복한 시만과 성실한 관리가 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걷잡을 수 없는 격렬한 개혁가, 쓸데없는 공상이나 하는 몽상가가 되었겠는가! P.59 <수레바퀴 아래서>는 독일의 교육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현실도 그려지고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나 또한, 학생 때 부모님께 그리고 선생님께 인정받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해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채로... 우리 집안은 공부에 대한 관심은 크게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 공부를 잘하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어렸던 나 조차도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을 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 나는 개성이 있는 아이들은 특히 경멸하고, 나쁘게 보았 던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은 공부를 해야하지만, 꼭 반에 한두명 정도는 공부가 아닌 미용에, 공부 외의 것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사회에 동화 되지 않는 그들을 보며 때로는 한심하게 때로는 이상하다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성인이 된 지금은 모든 직장에서, 직원들에게 개성과 창의성과 다양성을 요구한다. 초, 중, 고, 심지어 대학생 때도 개성과 다양성은 찾아 볼 수 없도록,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같은 내용을 주입 시켜 놓곤 이제 와서 나에게 다양성을 요구한다. 공부.. 잘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으로써 하나의 인간으로써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향하는지 뚜렷한 길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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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으로 유명한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찾아보다가 수레바퀴아래서라는 작품을 알게 되었다. 주인공은 신학교에 입학해서 성공을 강요받고 본인이 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살다가 삶의 목적을 잃게되는 주인공 한스의 이야기이며, 헤르만 헤세의 청소년기를 바탕으로 쓴 자전적 성격을 가진 소설이다. 좋은 성적을 이어가다 여러 이벤트가 발생하고 그 이벤트로 인해 정신적 압박을 받아 심신이 피폐해진다. 그러다 고향에 돌아와서도 우울한 일만 생기고 배드엔딩으로 끝이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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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작가의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책을 '데미안'과 같이 구매를 하였다. 이 책 역시 헤르만 헤세를 대표하는 작품중의 하나이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을 읽어보면 다소 이해하기 어렵거나 가끔씩 추상적인 문구들이 나오는데 공학도의 나로서는 한번씩 난처함을 느낀다. 하지만 인터넷을 빌려 그 내용을 이해했을때 깨닫는 즐거움이나 감동은 단순히 스스로 이해했을때의 배 이상으로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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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시춘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성격의 소설로,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화자 한스 기벤라트가 기성 세대로 대표되는 어른들의 권위적이고 억압된 사회에 점차 억눌리는 과정을 섬세하고 서정적인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당시 독일의 마이스터 제도나 교육 제도, 수도원에서의 삶, 엘리트로서 주위에서 받는 기대와 시샘 등이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