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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의 예언, 처음엔 혹시 너무 철학적인 내용이 아니까 걱정했었는데 제가 별 쓸데없는 걱정을 했더군요. 초점이 종교에 맞춰져있긴 했지만 종교가 없는 저도 이 책을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그건 아마도 조반니의 삶 자체가 겪는 고난과 사건 속에 매료되었기 때문일겁니다. 조반니의 삶은 정말 너무 기구합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의해, 자신의 신념에 의해, 자신의 사명에 의해 정말 우여곡절이 많은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 기구한 삶을 살다 마지막에 조반니는 아주 큰 깨달음을 얻게 되죠. 그의 삶을 통해 깨닫게 되는 진정한 종교의 의미는 저에게도 어떠한 감명을 주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 담긴지 모르는 교황에게 보내는 편지 한 통과 그것을 빼앗기 위해 조반니를 위협하는 검은 복면의 무리들. 흥미로운 사건 전개와 책 속에 담긴 깊은 의미.
새 해를 맞이하며 읽은 정말 뛰어난 책인 것 같습니다! |
![]() 루나의 예언은 정말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소설 같습니다. 단순하게 보자면 조반니의 우여곡절 삶을 풀이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정말 많은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책의 시작은 제목처럼, '루나'라는 마녀의 예언을 통해서시작됩니다. 마녀 '루나'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처음에는 질투 때문에, 두 번째는 두려움 때문에, 세 번째는 분노 때문에 사람을 죽이며, 네 명째 사람을 죽인다면 그것은 증오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네 번째로 사람을 죽이는 순간 네 영혼은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된다.” 그녀의 예언을 통해 과연 어떤 식으로 그녀의 예언이 이뤄질까, 그런 생각에 책을 놓지 못하겠더군요. 그녀의 언 후 조반니는 정말 그녀의 예언처럼 살인을 저지릅니다. 그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말이죠.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그 순간 조반니는 선택합니다. 마녀의 예언과 교황에게 전해야하는 편지가 주 소재가 되어, 신앙의 참 의미를 얘기하는 이야기 루나의 예언,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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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 찬란하게 빛나는 너의 비극적인 운명을 바라보아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조반니의 삶은 과연 마녀의 예언처럼 될 것인가?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부르는 진실한 욕망을 따라야 한다. 마음의 깊은 곳에 씨를 뿌리신 이는 바로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영혼을 갉아먹던 의심이 사라졌다. 이제 조반니는 삶의 소중한 열쇠를 소유하게 되었다. 때로 삶이 고통스러울지라도 그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루나의 예언 1 - 달. p 101
한 인물의 삶과 종교가 절묘하게 맞물린 책, 루나의 예언.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그의 삶을 통해서 참된 종교란 어떤 것인지 볼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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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성당에 다닐 때 들었던 신부님의 강론 중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아프면 기도만 하지 말고, 꼭 병원에 가세요.’라는 말이다. 아프면 병원을 가든지 약을 먹는게 당연하다. 그런데 신부님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기도에 대한 맹신, 신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경계하기 위함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자신의 몸이 아픈데도 기도하면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병원을 가지 않거나 신이 모든 걸 해줄 수 있으리라 믿는 태도는 신을 믿는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그런데 여전히 종교를 잘못 이해하여 맹신하거나 이중적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특히나 후자의 경우에 큰 실망감을 느끼고 종교활동을 그만두었다.
며칠 전 읽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서 혜민스님 역시 비슷한 말씀을 하고 계셨다. 수행을 많이 하신 분들은 절대 타종교에 대해 비방하거나 배척하지 않는다. 가까운 예로 법정스님과 이해인 수녀님은 오랫동안 교우했다.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스님이고 수녀이기 때문에 안 되는가? 종교는 다르지만 종교가 추구하는 본질이 같기 때문에 서로 교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종교의 취지를 망각한 채 서로 제 종교가 낫다며 날뛰는 광신도들이 종교의 본질을 훼손한다.
<루나의 예언>(창해)을 읽으며 종교의 본질을 다시 생각했다. 종교의 지향성에 대해서는 명확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 소설이 드러내고자 했던, ‘인간의 존엄성’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은 오래도록 가슴속에 남을 것이다. <루나의 예언>은 한 편의 소설이지만 종교에 관한 철학과 성찰이 깊이 있게 담겨 있다. <장미의 이름>에 버금가는 뛰어난 종교소설이다.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탄탄하게 구성되었다. 그래서 쉽게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세계적인 종교사학자이자 철학자인 저자 프레데릭 르누아르가 장장 15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니 그 열정과 정성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소설은 한 남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우연히 수도원에 옮겨진 한 남자. 그가 수도원에 옮겨진 뒤 의문의 죽음이 연달아 발생한다. 그 남자는 과연 누구일까? 의식이 없었던 남자의 기억이 되살아나며 그가 어떻게 해서 수도원까지 오게 되었고, 위험에 처하게 되었는지 베일이 하나씩 벗겨진다.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난 그가 점성술,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철학에 빠져들며 처하게 되는 거짓말 같은 운명은 종교문제와 결부되어 독자의 흥미를 돋우고, 종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아직도 세계는 종교문제로 갈등이 심하다. 이는 신이 아닌 인간이 그 종교를 해석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종교의 본질로 다가선다면 다른 종교들과 다를 것이 무언가? 나는 이제 무신론자가 되었으나 종교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종교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긍정적 요소 또한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앙을 가진 사람이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모습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과 다른 종교를 철저히 배격하고 미신이라 치부하는 치졸한 모습을 보면 정말 화가 난다. 역사적으로는 십자군의 행태가 그랬고, 현재는 이스라엘이 이슬람 국가와 대결하는 모습이 특히 그렇다. <루나의 예언>이 전하는 것처럼 종교의 형식주의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가 거룩한 신성을 만나 아름다운 가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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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의 예언 1,2-프레데릭 르누아르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오르한 파묵의 <소설과 소설가>이다. 이 책은 오르한 파묵이 하버드대학에서 강연한 것을 정리한 것으로, 저자(오르한 파묵)가 생각하는 소설 속 플롯, 인물, 배경은 무엇을 의미하고, 어떻게 설정 하는가에서 부터 소설 독자로써 한번쯤 궁금했을 ‘당신은 진짜 이와 같은 것들을 경험했나요?, 소설의 주인공은 개성적이고, 독특해야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까지 포괄한 책이다. (소설에 대해서 관심 있고,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읽어 보시면 유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책을 보면서 눈에 띄는 부분은 ‘소설의 가치’를 말하는 부분이다. P11 내게 소설의 가치는 우리로 하여금 소박하게 세계에 투사 할 수 있는 중심부를 찾아 나서게 만드는 힘에 있습니다. 더 간단하게 말해, 소설의 진정한 가치는 우리에게 삶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느낌을 얼마나 이끌어 내느냐에 따라 평가되어야 합니다. 소설은 삶에 관한 우리의 중심 사상에 호소해야 하고, 그러한 기대 아래 읽혀야 합니다. 즉, 소설의 가치는 소설의 중심부를 찾아 나서게 만드는 힘 이면서, 이것이 우리의 실제 삶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작가는 소설의 중심부는 쉽게 눈에 띄지 않아서, 독자들은 끊임없이 소설 속 배경, 인물, 단어 등을 통해서 그 중심부로 한 걸음 한걸음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고 말한다. 오르한 파묵에게 ‘소설의 진정한 가치’는 독자로 하여금 소설의 중심부가 무엇인지를 찾아 나서는 원동력이며, 이런 행동으로 인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친 것이라는 것이다. 그 중심부는 쉽게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독자마다 다르게 보일 수도 있으며, 그로 인하여 자신들의 삶에 다양하게 영향을 줄 것이다. 이번에 읽은 <루나의 예언>은 다양한 소재들로 구성 되어 있다. 몇 가지 단어로 추리면, 기독교, 예수, 자유의지, 운명, 철학, 여자, 사랑 등이다. 소설에서는 이 7가지 단어를 적절하게 버무렸다는 것이다. 그 만큼 ‘소설의 중심부’를 무엇인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르한 파묵의 ‘소설의 가치’에 의거해서 중심부가 무엇인지를 찬찬히 고민을 했다. 즉, 이 소설의 중심부가 무엇이고, 그리고 나의 삶에 영향을 준 것은 무엇인가? 라는 이 두 가지를 기준으로 <루나의 예언>의 중심부를 찾아 나섰다. 내가 생각하는 이 소설의 중심부는 ‘인간이 자유의지와 운명이라는 족쇄에 매여 있다’는 것이다. 이 자유의지와 운명은 서로 대립 관계의 단어들이다. 자유의지의 사전적 의미는 일반적으로 외적인 강제ㆍ지배ㆍ구속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행위를 선택할 수 있는 의지를 말한다. 그리고 운명의 사전적 의미는 일반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결정을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자유롭게 삶을 개척하는 것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삶의 길을 이미 정해져 있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자유의지’와 ‘운명’이라는 놈을 가졌다 라는 의미는 ‘인간은 주체적인 동시에 자신의 미래에 대해 두려운 존재’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유의지’와 ‘운명’이라는 사이에 놓여 있는 인간의 모습을 ‘조반니’라는 남자 주인공으로 보여 주고 있다. 조반니가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자유의지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아는 것이 ‘독자의 삶’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리고 운명과 자유의지를 어떻게 가지고 사용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제2권, P169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생각이 분명 해졌어. 우리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라는 것을 말이다!” (중략) “그래, 우리는 삶에 열심이지. 그러나 그것에 매달릴 뿐 진정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어. 존재에 집착하는 것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야. 요컨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산다는 것은 예술이지.” 조반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묵었다. “무슨 뜻 입니까?” “아주 간단해, 하나님은 의견을 묻지 않고 우리를 창조하셨지. 즉, 우리에게 ‘존재’를 준 것이고, 그의 뜻에 따라 우리는 존재하게 되었어.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우리는 그에 대해 부정할 수 없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삶을 주셨다면 이제 우리가 삶을 살아야 하는데, 바로 거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지. 우리는 각각의 삶에 도구가 아니라 작가가 되도록 부름 받은 것이야. 예술 작품처럼, 우리는 무엇보다 삶을 먼저 갈망해야 해. 그리고 삶을 상상하고 깊이 생각해야 하지. 마침내 삶을 깨닫고, 다듬고, 조각해야 하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모든 사건들, 다시 말해 삶의 행복하거나 불행한 모든 단편들을 통해 이루어져. 철학을 배우거나 요리를 배우는 것처럼, 우리는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해. 삶의 가장 훌륭한 교사는 삶 자체이며, 삶을 통해 우리가 겪는 수많은 경험들이 진정한 스승이라고 할 수 있지.” 이 책은 두 사이에 놓여 있는 인간에게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삶을 주신 것은 운명이지만, 삶을 작가처럼 사는 것은 자유의지 라고 말이다. 이 두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만을 선택하는 것이고, 서로 상호 보완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고, 산다는 것은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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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의 참된 가르침을 전하다 - "루나의 예언" 2012년도 말에 빠져버렸던 서양미술사는 세계사를 보는 관점을 완전히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것은 세계사의 역사의 중심에 종교가 그 흐름을 좌지우지 했기에 그랬다. 그래서 이런 대하 드라마 같은 소설을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루나의 예언"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내게 정확히 딱 찾던 책이었다. 프랑스에서는 "프레드릭 르누아르" 신드롬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혹자들은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와 비교된다고 평가될 정도로 루나의 예언은 세계사의 중심에 있었던 종교와 그 속에 두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을 통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조반니와 엘레나의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루나라는 신비의 소녀를 만나면서 알게 되는 조반니의 3가지 예언을 통해서 그 이야기의 큰 틀이 만들어진다. (루나의 3가지 예언은 책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의 설정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것은 조반니가 운명과 맞붙게 되면서 저지르게 되는 살인 질투, 두려움, 분노를 말한다. 그것은 책속에 앞으로 일어날 일들 복선처럼 항상 깔려있기에 그 전개가 더 흥미있게 다가오는 것이다.)그리고 그 중심의 큰 줄기로 조반니와 신과의 관계가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과 맞물리면서 이야기가 되고 있다. ![]() 이 책은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는 저자 "프레드릭 르누아르"가 철학자, 종교사학자이자, 작가이다 보니 수없이 많은 중세 시대의 실존했던 이야기들이 책 속에 살아 움직이듯이 녹아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으로 대표되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부터, 우리에게는 좀 익숙하지 않은 점성술, 이슬람과 카발라의 이야기 베네치아와 몰타 기사단, 붉은 수염의 이야기, 거기에 로맨스까지 빠지지 않으면서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만든다. (내 생각에 아마도 이 책은 분명히 몇 년안에 영화로 제작되지 않을까 싶다.) ![]() 사실 나는 종교에서만큼은 항상 중립적인 성격을 지키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어떤 종교관에 대해서 선을 끊지 않기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 위의 재미있는 스토리 속에 저자가 가장 중요시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인간의 사랑 그것도 신에 대한 사랑이 바탕에 있지 않았나 싶다. 내가 기독교에 대한 교리가 좀 약하기에 저자가 중요시하게 내세웠던 이야기 특히나 마지막 "점성의 편지" 내용 부분이 정확히 이해가 되지 못한 부분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가 책을 통해서 말하고자 했던 진심을 느꼈기에 책을 덮는 순간에도 가슴이 벅차지 않았나 싶다. 2013년 루나의 예언과 시작된 이 순간이 아마도 올해가 더 기쁜 해로 나에게 다가 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삶에 대한 의문과 진정한 사랑에 목말라 있는 독자라면 이 겨울이 가기전에 루나의 예언을 읽어 보라고 꼭 한 번 추천해주고 싶어진다.. |
![]() 소설 [루나의 예언]은 유럽 17세기 중 마녀사냥으로 시작되는데 주인공이 마녀로 몰리는 제목 속의 루나인가 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루나의 도움을 받고 있던 한 남자 조반니의 굴곡진 인생과 사랑,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비록 소설 속 인물이지만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까지 기구할 수 있을까 싶다 ![]() [루나의 예언]은 내가 예상했던 종교적인 소설만은 아니었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끝없는 물음과 답들 고대 아리스토텔레스부터 플라톤, 루터 등의 사상과 유일신을 섬기는 다양한 종교들의 스승들이 고루고루 등장하며 인간의 본질과 종교와 신에 대해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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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용두사미야~~~첫부분은 추리소설의 흥미로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중간에 가면서 왜 집중력이 떨어지게 하냐구~~아깝다...첫부분은 좋았는데...마을사람들과 수도원, 마녀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체같은 남자. 마을에 이상한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사람들이 죽음으로 마녀사냥을 시작하는 사람들. (형사가 없던 시대라) 수도원으로 찾아가 사건을 해결하려 하는데.......
여기까지는 좋았다고~~!! 죽은 시체같이 겨우 숨만 붙어 있는 남자. 왜 이 남자는 마녀라고 불리는 여자와 숲속 집에 있나? 그것도 죽음 직전의 깡마른 모습으로? 시작은 얼마나 좋은가? 처음 10여 페이지는 너무나 흥미가 있었다. '이 남자에 대해 알고 싶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범인은 누구인가?' 라는 물음을 작가도 했는지 남자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남자는 평범한 남자였고 한 여자에게 첫눈에 반한다. 하지만 여자는 귀족가문의 딸이었다. 그녀에게 반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남자는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사회였다. 첫눈에 반한 여자에게 말을 했다 그만 죽지 않을 만큼 맞고 만다. 그것도 여자 앞에서.
이 정도까지도 참을 수 있었다. (워낙에 로맨스를 안 즐기기 때문에) 그 뒤에가 정말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책을 덮을까..말까..수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모처럼 만난 프랑스 소설이다 보니 참았다;;;;
남자는 여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오직 그에겐 그 여자 엘레나 뿐이다. (점점 이게 뭐야???) 남자는 떠돌며 스승을 만나 점성술을 배우고 또 우연히 여자와 재회하게 된다. 이번엔 자신이 몇년 전에 매를 맞은 그 남자라고 밝히고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어 두 사람은 몰래 만나 사랑을 나누다 질투에 먼 남자가 여자의 약혼자를 살해하게 되고 쫒기게 된다. 그렇게 또 두 사람은 헤어진다.
이제 뭐야?? 언제 살인의 비밀을 풀거냐고??? 아.....기대만 잔뜩했다. 이게 뭔가. 살인사건의 이야기가 아니라 종교와 로맨스 뿐임;;;
그러나 로마 교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조한다는 명분 때문에 인간의 자유의지를 희생시키는 거짓된 타협은 할 수 없었네. 사실상 자유의지라는 민감한 문제에 대해 인간의 존엄성을 되살린 것은 루터가 아니라 오히려 로마교회였어. 많은 허물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로마교회는 루터를 비롯한 예정론자들과 달리 인간의 자유의지를 중시했지. (p.171, 1권)
"천문학을 공부하신 건가요?" 남자가 조반니의 지식에 관심을 보이면서 물었다. "아닙니다. 천체력이라는 도표를 가지고 있어요. 과거 수십 년의 천체 위치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 3년의 천체력을 얻기 위해 모든 수입을 투자했어요. 그래서 출생천궁도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태어난 시점의 천체 위치에 관한 내용과 향후 천체의 이동을 비교하면서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을 예언할 수 있는 것입니다." (p.247, 1권)
식사를 하면서 그는 철학과 신학, 점성술에 대해 많은 걸 질문했다. 심야 기도를 알리는 구령이 울리자 이브라힘은 다음날 마저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헤어지면서 그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왜 처음부터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나? 미리 알았더라면 자네를 수용소로 보내지 않고 관저에서 일하게 했을 텐데......자네의 삶이 너무나 가슴 아프군." (p.163, 2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