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10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7.0
리뷰 총점 종이책
'책임 있는 정치'의 기억
"'책임 있는 정치'의 기억" 내용보기
“좋은 미래는 분명한 기억을 필요로 한다”.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독일 전 대통령의 <우리는 이렇게 통일했다>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과거는 오래된 미래’라고 하지만, 기억과 경험은 역사를 앞으로 나아가게 추동하는 힘이다. 민족 통일이라는 필생의 영광을 이뤄낸 지도자로서 그가 꼭 전하고 싶었던 것은 이 말이다. “역사의 힘이 우리 사고와 행동을 지배한다
"'책임 있는 정치'의 기억" 내용보기

 “좋은 미래는 분명한 기억을 필요로 한다”.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독일 전 대통령의 <우리는 이렇게 통일했다>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과거는 오래된 미래라고 하지만, 기억과 경험은 역사를 앞으로 나아가게 추동하는 힘이다. 민족 통일이라는 필생의 영광을 이뤄낸 지도자로서 그가 꼭 전하고 싶었던 것은 이 말이다. “역사의 힘이 우리 사고와 행동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우리 세대는 이미 깊이 경험한 바 있다는 그는 그 것을 후세들을 위해 독일 통일의 기록을 남기는 이유라고 했다. 그 경험이 통독임은 불문가지다.

 

  이 책에서 생각할 점은 두가지다. 전체 사유의 상당부분은 통독이라는 과정, 전례를 통해 당면한 한반도 문제의 교훈을 밝히는 것일 것이다. 두 번째는 그 만큼의 비중은 아닐테지만 이를 위해 현 시기 책임 있는 정치에 대한 문제이다. 실상 바이츠제커는 이 책에서 독일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이음매중의 한 곳이라고 표현했다. 이제 그 가장 위험한 이음매가 어디인지는 분명하다.

 

  역사에도 운명은 존재하는가. 지금 한반도 남과 북의 존재들이 머리 끝을 곤두세울 만큼 궁금해 하는 질문일 것이다. 존재들의 운명까지 결정하는 막강한 역사의 힘 때문이다. 평시에는 그런 운명의 힘을 인지하지도, 영향받지도 않지만 어떤 소용돌이의 시기에는 운명론적 힘에 이끌리는 게 인간적 현실이다.

  하지만 이처럼 불안전한 인간이고, 불완전한 인식이기에 오히려 역사는 운명이 아닐 수 있다. 불완전한 인식, 달리 말해 알지 못하는 세계이기에 그것은 개척일 수 있다. 마치 확실한 것만을 다루던 물리학의 근본을 뒤흔든 불확정성의 원리처럼 말이다. 불규칙한 운동이 지배하는 것은 지구의 자장(물리)만이 아닐 수 있다.

 유럽과 독일이 분단돼 있던 동안 동독과 서독 국민들이 경험한 우리는 하나라는 깊은 연대감은 국제적 상황이 통일에 대한 가망이 없어 보이는 시기에도 끊어지지 않았다.”

 서문의 한 부분이다. 때로 역사는 치유할 수 없는 희망이란 질병과 근거 없는 낙관의 힘으로 진전된다. 이런 그의 기억은 지금 한치 앞을 모를 격변속에 있는 한반도의 운명에도 의미심장하다.

  독일의 사례를 보면, 분단이 되고, 베를린 장벽이 생기는 그 순간에서부터 동서독인들은 교류의 끈을 이어가려는 강렬한 요구가 존재했다. 그들의 이념적 분단이 내생적인 것이 아니고 강제적인 것이 원인이다. 이 부분은 또한 우리도 동일하지만, 그들은 내전이라는 과정을 겪지 않음으로서 그 강제적 이념분단의 문제를 넘는 민족적 친밀성에 대한 내적 요구의 보존이 가능했다. 통독의 우연함은 결코 우연함이 아니며, 이런 오랜 요구와 경험의 집약이라할 것이다.

  강제적 분단과 그 상황을 관리하지 못한 우리의 경우는 역사적 경로가 다를 수 밖에 없었고, 그 점이 비극성의 원인이다. 현재적 비극성이다. 원하지 않은 비극이지만 말이다. 정치, 사회, 문화적 기반이 당시 현전히 달랐고, 패전국과 반승전국이란 지위적 차이가 만든 점도 있을 것이다.

  독일 통일의 과정은 결국 하나의 유럽으로 가는 과정에서의 의미가 분명했기에, 역사적 필연이 있었다. 결국 복잡한 국경선을 공유하는 유럽이 역사상 처음으로 통합^연합체를 구성해가는 과정이다. 이는 주변 정세가 통일로 가게 하는 우호적 환경이 조성될 수 있었다는 의미다. 그에 반해 우리의 상황은 좀 다르고 복잡하다. ^중의 날카로운 대결구도 속에 있으며, 하나의 동아시아를 지향하는 과정으로 나아가기엔 주변국의 준비나 정세가 갖추어지지 못한 측면이 많다. 북한과의 통일 내지 평화체제를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주변국의 관리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반대로 주변국과의 외교관계에서 남북의 문제는 늘 우리에게 제약적 요소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실제 한^미 관계에선 이런 요소가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점에서 현재로선 우리에겐 통독과는 또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미도 엿보인다.

  물론 이런 역사적 운명의 우호성이 큰 부분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 우호적 환경을 결과로 만들기 위한 독일의 노력과 준비를 잘 안다. 그리고 더 의미심장하고 마음을 끄는 것은 그 부분이다. 2차대전의 책임을 참회하고, 통일을 향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국경영토를 양보할 수 있는 정치와 국가란 정말 힘든 일이다. 폴란드와의 새로운 관계 설정을 위해 서독의 정치가 오랫동안 니더^오디세 라인의 국경 양보를 고민하고 토론했고, 결국 해냈다(197012월 바르샤바 조약/빌리 브란트 시기)는 사실은 너무도 충격적인 감격으로 다가왔다. 그 어려움을 알기에, 현 시기 우리 정치에서 상상조차 해보기 겁나기에, 그래서 정말 가야할 앞길의 구만리 절벽처럼 깜깜해 보여 충격이고, 그렇게 이뤄낸 그들의 용기가 감격이었다. 그랬기에 우리는 용서한다. 그리고 용서를 빈다는 폴란드 주교단의 서한은 가능했을 것이다.

  독일 사례를 보면 우리는 역사에서 우리 스스로 증명해야할 몫이 있다. 우리는 진정으로 무엇을 지향하고 있으며, 그 것을 위해 무엇을, 어떤 노력을 했는가이다. 복잡한 국제정세의 우연한 공간에서는 그 것이 평가받으면, 그로 인해 기회를 기회로 열 수 있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종교의 역할도 눈여겨 볼 점이다. 독일의 기독교^카톨릭은 분단부터 통일까지 장구한 기간동한 민족간 내적 교류의 근원이었으며 용기였다. 이를 통해 다시금 생각한다. “권력과 부화뇌동하는 종교란 이미 신의 편이 아니다. 신은 늘 어리고 약한 자들에 임하신다”(P83).

 

 인생은 늦게 동참하는 자를 벌할 것이다.”

  두 번째는 현 시기 책임 있는 정치의 문제다. 앞의 말은 구 소련의 개혁·개방을 추진한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1989107일 동독 건국 40주년 기념식 참석을 위해 동베를린을 방문해 남긴 말이다. 한달여 뒤인 119일 베를린 장벽은 극적으로 붕괴했다.

 바이츠제커는 책에서 “40년 냉전시대를 무혈, 비폭력으로 종식한 이가 바로 고르바초프라고 했다. 이처럼 고르바초프는 한 인간이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왜 인간에게 시대에 대한 치열한 인식이 필요한지도 웅변한다. 결국 그 인식이 모든 두렵고 망설이는 선택들을 가르는 근원적 힘이다.

 그렇다 책임 있는 정치는 역사의 깊은 저류를 인식하고 거스르는 게 아니라 순응하고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게 국가의 운명과 관련한 정치의 정명이다.

  ‘정명을 잊어버린 정치 행위의 결과는 재앙이다. 이는 정치를 게임과 경쟁으로만 보는 것이다. 다투고 경쟁해야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그 병이 깊어져 반대만을 위한 반대를 추구하다 보면 정반대의 엉뚱한 길에 가 서 있게 된다. 500년 전 조선의 통신사들처럼 말이다.

 당시 독일도 지금 한반도에서와 같은 정치적 대립과 이해관계의 절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방에서는 권위 있는 이들이 서독정부의 헌법 수립과 유럽 동맹 및 대서양 동맹을 최우선시해야한다고 주장했다”(P13)고 한다. 기민당 정부는 분명 이런 동맹파의 흐름 속에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자신들의 세계관이 옳다고 인정받기 위해서 늘 다른 이들의 최악의 것을 기대하거나 바라기까지 했다는 리하흐트 슈뢰더가 회고한 것처럼 그 대립과 논쟁도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경쟁(대립)과 목표를 구분할 줄 아는 것, 자신의 정견을 절대화하지 않는 것, 그래서 애초 출발한 차이를 늘리기 보단 줄여나가는 것, 이런 것이 가능한 정치의 합리성이 기적과도 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것일 터다.

  실상 국가 운명과 관련해 책임 있는 정치의 자세가 거창한 게 아니다. 거대한 국면일수록 그 원리는 명료하고 단순하다. 정치적 이해와 득실로 국민의 마음을 갈라놓치 않는 일이다. 그 것으로 불안을 더욱 키워가지 않는 것이다. 바이츠제커는 독일 통일의 날 연설문에서 진정 위험한 것은 국가의 정치이념 자체라기보다는 이 것을 절대적인 진실로 동일시하는 태도였다고 했다.

  이는 이 책을 읽으면서 품었던 질문(P20)에 대한 답도 될 것이다. “바이마르는 어떻게 무너졌는가. 히틀러는 어떻게 오게 됐는가. 바이마르는 고결했지만 무능했던 것인가. 불안의 계절 뒤에는 늘 악이 오는가”.

l******m 2019.01.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