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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살고 있는 시골로 이사올 때 화분만 실은 차가 한 대였다. 아파트에 살면서 거실과 베란다에서 키우던 식물들이었다. 식물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던 나였는지라 사실 화분이 그렇게 많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포장업체에 견적을 받으면서 화분을 놓고 가자는 나의 말에 아내는 결사반대를 했고, 아내의 요구대로 모두 가져왔지만 그해 겨울을 나기 전에 거의가 죽었다. 하필 이사 온 다음날 새벽 첫서리가 내리는 바람에 마당에서 갈 곳을 기다리던 화분 속 식물들이 난리를 겪은 셈이다.
서울에 살면서 꽃이나 나무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어느 날 문득 베란다의 창을 통해 바라본 아파트 정원에 피어있는 꽃이, 나무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날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 어둑할 무렵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와 회사 지하주차장으로 시계추처럼 오고 가는 동안 나무나 꽃에 시선이 머무를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쉽게 말해 정신이 조금이나마 한가해지면 경치가 눈에 들어왔지만 대부분의 날들이 혼미한 정신과 함께였던 것 같다. 시골로 이사와 넓은 마당을 보면서 아내는 정원을 만들겠다고 들떠있었지만 처음 나는 시큰둥했다. 둘러보면 천지가 나무와 꽃인데 굳이 집안에까지 그럴 필요가 있겠냐 싶었고, 또 정원이라는 것이 조경가가 설계하고 조성하는 거창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리 할 것이 없는지라 주말이면 이곳저곳 아내의 요구에 따라 땅을 파고 흙을 날랐다. 그렇게 해서 어설프게나마 정원이라는 것이 틀을 잡아가면서 마음이 변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는 것과 함께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보면서 식물이 인간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런 식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정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꽃들이 피고 마당에서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내가 시골에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고, 그런 책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책 [서울 골목길 비밀정원]은 조경전문가가 서울의 골목길에서 찾아낸 소박한 정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만약 내가 계속해서 도시에 살고 있었더라면, 아니 이곳에서 정원이라는 것을 가꾸지 않았더라면 절대 읽지 않았을 책이기도 하다. 꽃과 나무에 관심이 없었기에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겠지만, 정원이란 집안이 넓은 단독주택이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한 고정관념 탓에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 치부했지 싶다. 그러니 도시에서 살면서 그런 곳을 보았다 해도 아마 무심하게 지나쳤을 것이다. 하긴 집안 베란다에 그렇게 많은 화분이 있었음에도 무슨 꽃이 피는지, 어떤 나무가 있었는지 도통 생각나는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
저자는 오래전부터 대규모의 재개발이나 재생사업 등으로 사라지는 서울의 공간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을 해왔다고 한다. 그 일을 하면서 유난히 좁은 골목길이나 가게 앞, 옥상 등에 만들어진 정원을 보고서 매력을 느꼈다는 그는, 이미 예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지만 관심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 조경가 없는 정원을 보물찾기하는 심정으로 찾아 기록했다고 한다. 그렇게 서울의 골목길을 탐사하면서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비어있는 공간에 자발적으로 가꾼 조그만 정원들을 비밀정원이라 이름 붙였고, 그 탐사기록인 이 책을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비밀정원을 찾아 떠난 여행의 기록’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찾아낸 비밀정원을 ‘치유와 휴식의 정원’, ‘소통과 연결의 정원’, ‘재생과 보존의 정원’, ‘기억과 흔적의 정원’이라는 4개의 장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그러나 정원을 만든 사람들은 과시를 위한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 화려하고 세련된 정원을 만든 것이 아니라 각자 지니고 있던 애절한 사연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든 소박한 정원이기에 굳이 카테고리로 나눌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한옥의 조그만 마당에, 대문 앞에, 옥상에, 그리고 골목길을 따라 고무다라이, 깨진 항아리, 마대자루를 화분삼아 만들어진 정원에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흔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그럼에도 매일 같이 그것들을 돌보는 사람이 있기에 정원이 된 것이다. 사람의 손길이 멀어진다면 그것 또한 공해이기에 비밀정원은 가꾸는 사람들의 정성을 먹고 자란다.
저자가 찾아내는 비밀공원들을 따라가다 흥미 있는 정원 두어곳을 발견했다. 하나는 가게 앞에 정원을 꾸민 곳이다. 분식집, 여인숙, 슈퍼, 약국, 수선집, 밥집, 심지어 야시시한 술집 앞에도 정원이 꾸며져 있다. 화분 몇 개가 소박하게 놓여 있는 곳, 간판을 빼곤 가게 앞 전체가 숲처럼 꾸며진 곳, 가게 출입문을 따라 양쪽으로 조성된 곳, 생김새나 모양은 주인의 취향에 따라 가지각색이지만 그곳이 가게인지, 꽃집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화분하나 가져다 놓고 한그루의 나무나 꽃을 심다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가게를 찾아오는 이 혹은 그곳을 지나가는 이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는 정원, 어쩌면 정원이라 할 수도 없지만 그런 정원이 더 정답게 느껴진다. 다른 하나는 말 그대로 골목길 정원이다. 담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는 화분들이 동네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해주는 것 같다. 한 사람이 대문과 담 앞에 화분을 내놓기 시작했고, 이어 동네사람들이 동참하면서 정원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래된 골목길이지만 입구에서부터 양쪽 담을 따라 늘어선 화분들이 마치 양탄자가 깔린 골목길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이처럼 저자가 찾아가는 비밀정원은 대부분 오래된 지역이다. 도시재개발로 많은 지역이 거대한 아파트 단지로 바뀌면서 소박한 정원은 사라져가지만 아직도 시간의 흔적이 쌓여 있는 곳곳엔 우리가 모르는 비밀정원들이 숨어있다. 누구나 생각과 의지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나 만들 수 있는 소박한 비밀정원들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고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런 비밀정원에 피어 있는 꽃과 나무들로 인해 이웃과 소통과 나눔이 이루어진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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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고 친근한, 너무 익숙하고 친근해서 '비밀 정원' 이라는 멋진 표현으로 불리기에는 너무 평범하지 않나 생각하며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익숙하고 친근한 사진들이지만, 보면 볼수록 정원이라 불리기에 충분할 만큼 이를 가꾼 이들의 정성이 느껴졌고 상가든 가정집이든 이 특별한 '정원' 탓에 안이 잘 보이지 않으니 '비밀' 이란 표현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한 동네 골목을 비밀 정원으로 본 작가의 시선이 놀랍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화초와 식물 가꾸기를 좋아했나 새삼 깨닫게 되어 놀랐다. 어디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친근한 사진을 모아 엮은 책을 읽고 내가 놀랐다는 사실도 놀랍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