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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추구한다. 마치 헬레니즘 시대처럼 살아간다. 세상과 벗되어 살아가는 기독교인들도 많다. 삶의 자리에서 믿음이라는 것은 사치이듯이 많은 사람들은 믿음을 절대화시키지 않는다. 편리한 믿음생활이 그들에게는 이미 적응되어졌다.
그런데 이 시대와는 다르게 저자는 "죽을만큼 거룩하라"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말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너희들도 거룩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거룩한 삶을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안에 거하라는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저자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렇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라는 당위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과정들을 주님이 인도하심을 보여주고 있다.
지속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내 안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참 능력이라는 것은 내 안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만이 능력이 있으신다. 주님의 능력을 부여받아야만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거룩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그리스도인에게 아름다운 삶으로의 초대가 바로 성화라는 것을 알게 한다. 온전한 성화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저자의 책을 읽고 있으면 참 기쁨과 즐거움이 생긴다.
믿음의 자리에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은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진정한 삶의 자리를 주님의 자리이다. 주님의 자리만이 거룩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에 의해 살아간다. 자신의 신앙으로, 자신의 믿음으로 살아가지만 성화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말씀으로 살아간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소유한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사랑이라고 말했다. 진정한 사랑이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이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거룩하심으로 역사는 사랑임을 가르쳐주고 있다.
하나님을 찾아가는 무지한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찾아오신 존귀한 존재에게 하나님은 거룩함에 동참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거룩함의 축복과 은혜를 알게 될 것이다. 거룩함은 우리의 삶의 열매이며 삶이다. 참으로 소중한 거룩을 주님안에서 누렸으면 하는 저자의 마음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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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말미암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성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 찰스 피니는 사는 동안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서 이생에서 완전한 성화에 이를 수 있다는 확신과 함께 성화를 경험하였으며, 그의 영적인 경험을 제시한 책이 <죽을만큼 거룩하라>이다! 진정으로 행함이 있는 믿음을 통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그 해답을 찾게 될 것이다. 우리가 제대로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이미 구원을 받았으면, 지금도 구원을 받는 중이며, 언젠가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라는 부분을 명확히 알 때 가능하다. 본문내용에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오직 인생을 다스리는 원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즉 생명과 건강, 음식과 의복, 주택과 가구,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생에서의 온전한 성화는 각 개인의 믿음에 달려 있으며, 오직 믿음으로만 온전한 성화에 도달할 수 있으며, 자기 몸을 거룩히 본존함으로써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을만큼 거룩하라>이 책을 읽으면 진정한 성화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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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만큼 거룩하라 : Paul 우리는 어떻게 거룩을 이룰 수 있을까? 이 책은 우리 삶에 거룩을 이뤄나갈 수 있는 비결을 죄를 이기고 죄와 맞서 싸우고 승리하는 것임을 가르쳐준다. 그러므로 거룩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거룩한 분노를 표출할 수도 있음을 저자는 가르쳐준다. 한편 하나님께서 역사를 다스리시며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굳게 믿고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긴다. 그러므로 거룩은 우리 안에 죄와 싸워나가는 것과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기며 나아가는 것 두 가지를 균형 있게 이뤄나가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깊이 깨닫게 된다. 책은 거룩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 다양한 사례들을 제공한다. 물론 성경을 중심으로 또한 우리의 사고를 주님 앞에서 어떻게 변화시켜 나가야 하는지 등의 내용을 통해서 거룩을 향한 다양한 내용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 생각을 새롭게 변화시킬 때 우리는 거룩의 본이 되신 예수님을 묵상할 때 거룩을 이뤄나갈 수 있게 된다. 우리를 살리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묵상할 때 우리는 거룩함에 대한 열망이 생기고 거룩을 기뻐하시는 주님을 위한 삶을 살고 싶어지는 강렬한 마음이 생기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 마음에 거룩을 일깨워주신다. 사실 거룩을 이룰 수 있는 시작도 과정도 그리고 마침도 주님의 전적인 은혜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거룩한 주님의 자녀로 만들기 기뻐하시고 그 원하심을 기꺼이 이루실 수 있는 능력의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역사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교회의 역사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을 연구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또한 이 책을 통해 현재 우리 삶에 어떻게 거룩을 이룰 수 있는지 다양한 배움과 실천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를 주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사랑의 주님 그리고 용서와 치유의 주님께서는 우리를 영화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역사하실 것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된다. 우리는 주님의 소유로 구별된 존재다. 그러므로 세상에게 영향을 받아서는 결코 안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깊이 깨닫게 된다. 날마다 예수님처럼 거룩한 자로 변화되는 삶 곧 성화를 이뤄나가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깊이 깨닫게 된다. 거룩은 성도가 날마다의 삶에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놀라운 비결이 된다. 한국교회에는 주일에만 크리스천이 되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넌크리스천이 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성도가 주님 앞에 성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이 책을 통해 죽을만큼 거룩을 이뤄가는 모든 주님의 백성들이 되길 소망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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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셨다. 성도들의 삶은 거룩한 삶이다. 구별된 삶이다.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입었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화의 삶을 날마다 추구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죄용서 받았다는 것과 죄를 지으면 회개하면 된다는 교리적인 부분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삶, 성화의 삶을 너무나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많은 성도들이 성화의 삶,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는 삶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만약 온전한 성화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고 한다면 오늘 이 사회가 이 정도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이 시대에 찰스 피니가 들려주는 죽을만큼 거룩하라는 그리스도인들이 꼭 읽어야 되는 책이며, 어떻게 온전한 성화를 이루어갈 수 있는지를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는 책이다.
죽을만큼 거룩하라는 온전한 성화가 무엇이고, 온전한 성화가 의미하지 않는 것과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매우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설명하면서 어떻게 온전한 성화에 도달할 수 잇는지를 설명해 주는 책이다. 온전한 성화라고 할 때 성도들이 이해하는 바를 보면 너무나 추상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찰스 피니는 이 책을 통해서 온전한 성화가 의미하는 것과 의미하지 않는 것을 통하여 우리의 생각을 바로잡아 주고 있다. 더 나아가서 현실에서 온전하고 영속적인 성화에 이를 수 있는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과 성화에 이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매우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을 통하여 독자들을 이해시키고 있다. 저자는 왜 그리스도인들이 온전히 성화되지 못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그 이유는 이생에서 온전한 성화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생에서 온전한 성화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만이 온전한 성화의 삶을 추구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런 삶을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거룩한 삶을 추구하고, 어떻게 성경이 말하는 온전한 성화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배우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값진 책이 될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꼭 읽기를 바란다. |
![]() ![]() ![]() 더 나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법
이 책은 의롭게 된 후에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은 칭의, 성화, 영화 라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는 잘 모르지만 성경 공부를 비롯한 다양한 시간을 통해 여러 번 접해본 단어일 것이다. 책을 통해 성화가 무슨 의미인지 알아볼 수 있을 듯 하다.
저자인 ‘찰스 피니(Charles G. Finney, 1792-1875)’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더라도 교회를 꾸준히 출석하는 성도라면 설교 시간에 들어 본 이름일 것이다. ‘제2의 대각성운동’을 이끌었던 설교자인 찰스 피니는 끊임없이 기도와 말씀을 통한 성화의 과정을 강조 하였다.
찰스 피니의 신학은 흔히 존 웨슬리의 신학과 대비되기도 한다. 웨슬리가 하나님의 예비된 은혜를 떠나 인간의 의지로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주장하는 반면, 피니는 누구든지 전심으로 찾으면 더 높은 영적인 삶을 누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찰스 피니는 따로 설교 원고를 준비하지도 않았다. 매일 새벽 일어나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그날 집회에 필요한 성경 말씀이 어떤 것인지를 하나님께 물었다. 필요한 성경 말씀을 받으면 계속 그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이 다만 자신의 입을 사용하시어 성령의 인도로 회중에게 말씀하실 것을 구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 가지 중요한 교리, 즉 칭의, 성화, 영화에 관한 교리와 친숙해져야 한다. <칭의>는 어떤 사람이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일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이 되는 과정에서 맛보는 경험이다. <성화>란 의롭게 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깊이 인식하면서 사랑에 기초한 거룩한 삶, 곧 우리를 사랑해서 구원해주신 거룩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뜻이다. <영화>는 의로워지고 성화된 사람들의 신체적인 죽음과 육신적인 부활이 포함된다.
나는 이미 구원을 받았으며(칭의), 나는 지금도 구원을 받는 중이며(성화), 나는 언젠가 완전한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영화)
성화의 단순하고 일차적인 의미는 하나님께 성별된 상태이다. 성화한다는 것은 거룩한 용도를 위해 따로 구별해놓은 것, 즉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어떤 것을 성별해두는 것이다. 그러기에 성화의 상태란 성별의 상태, 또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따로 떼어두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구약과 신약에서 훤히 드러나는 성화라는 용어에 관한 가르침이다.
온전한 성화란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이루고 있는 본질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님의 법은 이런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열정이나 충동처럼 타고난 성품을 이루는 체질적인 특징을 완전히 없앤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연스러운 애정이나 분노를 완전히 없앤다는 의미가 아니다. 건강하지 못할 정도로 마음을 흥분시킨다는 의미가 아니다. 몸과 마음의 모든 역량을 언제나 한결같이 온 힘을 다하여 쏟아부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항상 똑 같은 수준으로 감정, 의지작용, 또는 지적 노력을 요구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항상 하나님만이 직접적인 관심과 애정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지속적인 마음의 평온한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죄나 죄인들을 향하여 아무런 거룩한 분노 없이 지속적으로 마음의 평정 상태를 유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무런 정의감도 없이 단지 연민으로 가득한 마음 상태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각자의 가치관, 환경, 관계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거나 미워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관계에 대해 완벽한 지식을 구축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어떤 주체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게 무엇이든 어떤 주체에 대한 아무런 실수도 저지르지 않는다는 의미도 아니다. 서로 다른 이해 당사자들의 상대적인 가치를 정확하게 일일이 다 깨닫는 지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무지하지 않았더라면 마땅히 그렇게 할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여 모든 사람이 회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앞으로 전혀 죄지을 가능성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경계심, 기도, 노력 따위가 이제 더는 필요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가 이제 더는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성화된 영혼이라고 해서 어느 때든지 항상 자신의 감정과 행위가 완벽하게 옳다고 스스로 확신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진정으로 성화로 순순히 인정할 거라는 의미가 아니다. 순종을 확실하게 보장해주는 거룩한 습관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슬픔이나 정신적인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다는 의미도 아니다.
온전한 성화란 하나님께 모든 역량을 현재 있는 모습 그대로 완전히 성별하는 것이다. 온전한 성화란 그런 역량 자체의 어떤 변화를 의미하기보다는 단지 그것을 원래 모습대로 올바로 사용한다는 뜻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어떤 욕구나 감정을 완전히 죽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일에 우리의 모든 존재를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온전히 성별하는 것이다. 약속된 모든 것이 우리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인간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성화된 영혼은 일부러 죄를 짓지는 않을 것이다.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에 가장 충실하고 완전하게 의지한다. 모든 알려진 하나님의 뜻에 우리 마음과 삶을 완전히 순응시킨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섬기려는 지극한 성향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임재가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깊이 있게 하나님과 친교를 나눈다는 뜻이다. 이미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알고 있는 것에 관한 지식을 얻기 위하여 시간의 부지런한 청지기가 되어, 그 일을 위해 자신을 성별시키는 것이다. 온갖 형태의 이기심을 완전히 없앤다는 의미 보다는 우리 이웃의 권리와 관심을 실제적으로 온 마음을 다해 인식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필요하다면 사람을 선대하기 위하여 심지어 죽기까지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기꺼운 마음이다.
성화된 영혼은 어떤 다른 악을 저지르는 것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을 훨씬 더 크게 두려워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최고의 사랑이 의미하는 것이다. 만약 이 세상의 친구보다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 친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을 더 크게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책의 앞부분에서 찰스 피니는 당시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던 성화의 개념을 정의 해주기 위해 강론을 펼친다. 그렇기에 온전한 성화란 ~~~가 아니다. 와 온전환 성화란 ~~~이다. 를 지속적으로 반복함으로써 당시 청중과 독자들에게 성화의 잘못된 이미지를 지우는 것을 강조 하고 있다. 성화라는 단어는 마치 한 순간에 마법에 휩싸이는 것처럼 모든 것이 변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모습이 떠오르지만 그렇지 않다.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을 의지하여 옛 자아와 끊임없이 싸우면서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거룩을 원하는 이들이 읽으면 좋을 책인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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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한 신앙 공동체에서는 복음을 굉장히 중요시 여긴다. 성도들은 반복하여 복음을 배운다. 그리하여 그 복음이 삶에 나타나 이전과 다른 변화된 삶을 살도록 권장한다. 이러한 신앙을 배움을 기초로 나는 칭의, 성화, 영화의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기를 원했다. 더구나 ‘구멍난 복음을 기워라‘라는 책에서도 주장한 현대에 복음이 잘못 전달되어 이단 구원파의 신앙이 우리 교회 안에 존재하고 있고 꼬집어 말하는데 이것에 대해 나 역시 부정할 수가 없었다. 내 스스로를 볼 때 나는 죄와 싸우고 승리하는가? 성령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가? 이러한 고민을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거룩하라고 명령하셨다. 믿음으로 볼 때 이 명령은 이룰 수 있는 명령이다. 이루어야만 하는 명령이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실 때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했다. 나 역시 이 믿음의 고백에 아멘으로 화답하게 된다. 그러나 내 삶은 칭의와 영화 어딘가에 있거나 아니면 잘못된 복음에 대한 지식으로 그릇 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되었다.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의심하게 되었다. 복음을 간단히 정리한 것이 사영리인데 그것은 모태신앙의 나에게 변화를 주기에 역부족으로 느껴졌다. 솔직히 너무 부족하다. 의가 무엇인지, 믿음이 무엇인지, 죄는 무엇인지, 죄에서 어떻게 해방되었는지, 이 세상에서 살 때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성령께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이러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이런 질문을 하는 나는 지극히 정상이다. 나는 하나님을 성실히 믿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삶의 변화가 없었던 나는 마음이 너무나 단단하게 굳어진 영혼이거나 하나님의 높은 지혜를 알기에는 많이 어리석은 인간일 수 있다. 이러한 상태를 어떻게 해결 할 수 있을까 로마서 7장의 참으로 곤고한 자이다. 그러나 내 마음에는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간절함과 나의 이 상태에서 해방되고 자유롭고자 하는 갈망이 있었다. 신약의 말씀들이 내 삶에 이루어져야 하는데 내 삶은 메말라 있었다. 그러다가 읽게 된 ‘죽을만큼 거룩하라’는 나의 궁금증에 매우 많은 부분을 해소시켜주었다. 이 책을 읽고 저자의 통찰력에 감탄했다. 최고의 책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마구마구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개인 믿음과 성화를 위한 조건들을 배웠다. 책을 읽으면서 조금 더 알고 싶은 부분이 생겼다.
이 책의 도움을 받아 더 확장된 지식을 짧게 정리하자면 개인의 믿음은 들음 즉,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생긴다. 비록 개인의 노력이나 수고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은혜를 가만히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배우고 듣고 알아야 한다. 그렇게 칭의에 속해야 한다. 그리하여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게 된다.
칭의를 얻은 자들은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는 열망을 갖고 그 열망에 따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최고의 것들을 실천하고 그리스도의 법을 개인을 넘어 공동체에 세워나가는 것이다. 그것을 돕는 것은 양심과 성령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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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만큼 거룩하라>
살아생전 온전한 성화를 이룰 수 있을까 성화에 이르는 길을 제시해주는 완벽한 가이드북
이 책은,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성화에 대하여, 그것이 예수님이나 되면 가능할 것이라는, 성화의 실현불가능성에 대하여 조목조목 반박하는 변증론적 책이다. 그렇지 않다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성화가 가능하다고 저자는 반박한다. 이 책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 작업을 수행한다. 증명한다. 우리에게 교훈한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건국한 1776년 이후 20년 가량이 지난 1792년에 미국 코네티컷 주에서 농부로 태어난 저자 찰스 피니 목사는 1821년 회심 이후 변호사를 포기하고 목회자가 되었다. 그는 아무것도 섞지 않은 순백의 복음만으로 강력하게 설교하여 5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리스도로 돌아오도록 만들었다.
그는 실제로 자신의 삶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 완전한 성화에 이를 수 있다는 확신과 함께 성화를 체험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확신을 이 책 속에 녹여냈다. 바울이 완전한 성화를 맛본 것처럼 그도 완전한 성화를 성취했으며, 이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수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삶 속에서의 성화’를 얘기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깨우치는 전도자가 되었다.
그는 사람들이 성화에 실패하는 이유를 분석하고 맨 처음 ‘성화’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지레 겁을 먹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는 맨 처음 그리스도인에게 ‘성화’가 무엇인지, 성화의 제대로 된 개념을 정의하는데 긴 시간을 할애하였다.
온전한 성화란 하나님께 모든 존재를 성별하여 올려드린다는 뜻인데 하나님 자신과 그분을 섬기는 일에 모든 것을 헌신하는 상태를 말한다. (18쪽) 사람은 한동안 하나님께 전적으로 성별하여 올려드릴 수 있지만 그 이후 세속적으로 사용하거나 다른 목적으로 타락할 수 있기 때문에 ‘영속적인 성화’가 필요하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누가복음 10장27절 말씀)
어쩌면 성화의 모든 것은 이 성경말씀 하나로 정의를 내리고 실천의 모든 것을, 성취의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성화가 무엇인지 규칙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설명한다. 그리고 무엇이 성화가 될 수 없는지 그 반대편의 사례도 꼼꼼하게 살펴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 책은 에세이 형식이거나 설교 형식의 책이 아니라 성화에 대한 기준과 규칙을 설명해주는 완벽한 가이드북이다. 그의 규칙에 대한 설명이 얼마나 집요하며 꼼꼼한지는 규칙 9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규칙 9. 어떤 요구조건과 또 다른 조건이 서로 조화되지 않는 방향으로 어떤 법을 해석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예를 들어 만약 첫째 계명이 하나님을 유일한 생각, 주목, 애정의 대상으로 삼도록 우리에게 요구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면 우리는 자기 이웃을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둘 째 계명에 절대 순종할 수 없다. (24쪽)
사실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는 눈에서 비늘 하나가 벗겨지는 시원한 통찰의 기쁨이 있었다. 대부분 크리스천은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말씀에 대해 도대체 어느 정도로 사랑하라고 얘기하는 것인지,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라니, 사실은 거의 실천 불가능한 정도를 요구하는 게 아니냐는 다소 의심스런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성화’에 대하여 현실의 삶에서는 죄인인 인간이 실현하기에는 불가능한 상태가 아니냐는 판단을 내리고 만다.
그러나 저자는 만약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계명이라면,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는 그렇게 조화되지 않는 방향으로 어떤 법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규칙을 미리 알려주고 설명해준다. 그런 성경해석에 대한 규칙이 1장에서만 16개가 설명되어 있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온전한 성화에 대한 개념을 바로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16개 규칙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나면 2장에서는 “온전한 성화가 아닌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부분을 다룬다.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하며 실천적인 성화를 돕도록 한다.
온전한 성화란 하나님께 모든 역량을 현재 있는 모습 그대로 완전히 성별하는 것이다. 온전한 성화란 그런 역량 자체의 어떤 변화를 의미하기보다는 단지 그것을 원래 모습대로 올바로 사용한다는 뜻이다. 온전한 성화란 자연스러운 열정이나 충동처럼 타고난 성품을 이루는 체질적인 특징을 완전히 없앤다는 의미가 아니다. (30쪽)
그 단계가 지나고 나면 그는 “온전한 성화를 현실에서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한다. 저자는 온전한 성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성화를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고, 성화에 이를 수 있는 풍성한 수단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를 돕는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시한 약속을 통해서 그 성취는 반드시 가능하다. 저자는 이를 위해 7가지의 원리를 제시하며 꼼꼼한 설명을 이어간다. 그리고 저자는 온전한 성화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라고 외친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완전한 성화가 가능하다는 다섯 가지의 약속을 제시한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첫 번째 계명에 대한 순종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에 대한 순종을 전제로 한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 없이 하나님을 뜻을 다해, 마음을 다해 사랑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법을 우리 마음속에 깊이 기록해 두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법은 바위에 새긴 글처럼 우리 영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온전한 성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저자는 성경에서 온전한 성화를 이루었던 바울의 삶을 조명하며, 우리에게도 가능한 영역임을 설명한다. 이미 이 세상의 삶에서 성화를 이룬 사람이 있는데, 우리가 못하겠다고 거부하거나 포기할 수는 없다. 우리는 현재의 삶, 이생에서만 분명히 사도로, 선지자로, 복음전도자로, 목사와 교사로 섬길 수 있다. 따라서 성화도 이생의 삶에서 가능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얼마든지 이 일을 행할 수 있다. (128쪽)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우리는 어떻게 완전한 성화에 이를 수 있는지 설명하며 책을 끝낸다. 성화는 감정이 아니며, 율법도 아니다. 그것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성화는 오직 믿음만으로 가능하다. 내가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능하도록 하신다. 아멘.
나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온전한 성화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이생의 삶속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나의 죄된 모습으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경지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보니 그런 생각은 무지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매우 오만한 생각일 수도 있겠다는 깨달음이 왔다. 성화를 내가 내 힘으로 이루려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그가 또한 이루시길 원하고 성령 하나님이 친히 나와 동행하시니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성화, 포기하지 말고 가슴에 품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히브리서 11장 6절 말씀)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24절 말씀)
온전한 성화의 상태는 하나님의 은혜와 상관없이 어떤 율법적인 행위나 자신의 힘으로 수행하는 어떤 종류의 행위로 도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즉 자신 스스로의 힘으로, 또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 기울이는 어떤 노력으로는 결코 이르지 못한다. (191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