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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남은 남성성을 뿌리 뽑아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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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보니 확실히 <남성성>이 문제라는 것은 알겠다. 여전히 사회기득권을 지닌 <남성/남성젠더/남자인간>이 <여성/여성젠더/여자인간>을 비롯해서 <남성성>을 지니지 못한 그밖의 모든 대상에 '불편한 존재'라는 것은 확실히 알겠다. 그리고 또 깊이 공감한다. 이는 내가 남자이고, 또 30대 중반을 넘어선 삶을 살아왔기에 몸소 경험한 내용이기도 하거니와 책 내용을 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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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어보니 확실히 <남성성>이 문제라는 것은 알겠다. 여전히 사회기득권을 지닌 <남성/남성젠더/남자인간>이 <여성/여성젠더/여자인간>을 비롯해서 <남성성>을 지니지 못한 그밖의 모든 대상에 '불편한 존재'라는 것은 확실히 알겠다. 그리고 또 깊이 공감한다. 이는 내가 남자이고, 또 30대 중반을 넘어선 삶을 살아왔기에 몸소 경험한 내용이기도 하거니와 책 내용을 쭉 읽다고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 참 많았기 때문이다.

  좋다. 다 좋다. 그런데 '어쩌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분히 공격적이고 포악한 면을 감추지 않는 것이 <남성성>이라면 '없애버리던가', '격리'시켜야 할 테다. 또 온갖 긍정스러운 것만은 <남성성>으로 취하고, 그밖에 부정적인 것은 <남성성이 아닌 것>에 내줘버리는 '이분법적인 면'이 문제라면, '이분법의 경계'를 허물어서 다분히 '인간적인 것'으로 탈바꿈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남성성>, 다시 말해, <남자다움>에 대한 대부분의 정의는 <여자다움>의 반대로 정해놓았거나, <남자답지 못함>의 반대로 이미 잣대를 세워놓지 않았나? 그러한 현실 상황에서 애꿎게 '모든 문제의 발단은 <남성성>에 있다'고만 지적하는 것으로 끝을 맺어서야 참으로 공허할 따름이지 않느냔 말이다. 한번 더 다시 말해, <남성성>의 문제를 지적했으면 '원인 분석'에 그치지 않고, 보다 명확한 '대안'을 제시해야 옳다고 본다. 가능하다면 현실적인 대안을 말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원인을 밝혀 지적한 것' 밖에 '뾰족한 대안', 다시 말해, 기득권에 충만한 남성성이 스스로 반성해서 바꿔놓을 획기적인 방안 마련에 실패하였다고 본다.

  한마디로 이 책의 내용을 거꾸로 생각해보니 이 책에서 말하는 의미들이 공허하게 느껴졌다는 말이다. 단적으로 말해, <남성성>이 문제가 많아 거세했다고 치자. 과연 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남성서>을 대신해 <여성성>이 대신 기득권을 이룬 사회가 형성될까? 여지껏 역사를 통하여 주체였던 적이 없던 <여성성>이 이끄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아니면 <남성성>이라고 하기에도, <여성성>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성소수자들>에게 맡긴 사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그러므로 <남성성>이 여전히 기득권을 유지해야 한다고 역설하려는 것이 아니다. <남성성의 장점>, 다시 말해, <남자다움의 긍정스러운 점>을 애써 외면하면서 <남성성의 문제>만을 부각시키는 이야기가 공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기득권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반대측 장점'을 나열한다는 것이 한편 어색한 줄은 안다. 또 이런 생각들이 '기본 바탕'에 깔린 상황에서 논리를 전개시켰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다분히 그러한 전제를 외면하고서 '때는 이때다'라는 식으로 매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일하는 곳이 온통 여성(아줌마 선생님들)들에게 둘러싸인 형편이라 곤혹스러운 상황이 연출되기 십상이다. 청일점인 형편이라 애꿎게 '시댁과 남편'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오직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어리숙하게 옹호하는 발언이라도 할라치면, 여지 없이 되돌아오는 말이 "남자는 다 똑같아."다. 그럴 땐 '공적'이 되어 그저 온갖 구박과 원망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에서 내가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표현을 빌자면, 이 또한 <남성성이 가진 기득권> 덕분에 그렇게 몰리는 상황에서도 의연할 수 있는 것이라며, 만약 여성이나 성소수자였다면 그 정도로 의연할 수는 없을 거라며 설명했을 것이다.

  이게 과연 내가 <남자>이기 때문에, <남성성>을 지녔기 때문에 나온 결과일까? 그저 단순히 <인간성>을 발휘한 결과는 아닐까? 남자만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발휘할 수 있는 <인간성> 말이다. 다른 사람의 진의를 파악하고, 나에 대한 공격성을 인지하지 않은 상황에서 화를 내는 자신이 사실 지금은 화를 내지만, 오히려 위로받고 공감받고 싶어한다는 것을 느끼면 자연스레 다독여주고 속이 후련해질 때까지 참아주는...친구든, 동료든, 또는 아는사람이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그런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쉽게 단정지을 수 없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참으로 많은 변수를 지녔기에 <일반화>시키기에 얼마간 무리라는 생각이 앞선다. 이 말은 이 책을 읽으면 책 속에 나열된 <근거>를 보며 얼마든지 깊이 공감하든,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든, 아니면 그 반대든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성소수자>가 이 책을 읽었을 때 반응과 <마초>가 이 책을 읽었을 때 반응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대중이 이 책을 읽었을 때 반응이 그러할 것이라고 짐작한다는 얘기다.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에 대한 일반대중의 공감대는 아직 형성되지 못한 상황이다. 문학작품 뿐만 아니라 영화나 TV에서도 <동성애>를 다룬 이야기가 나오고는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아니올시다'인 형편이다. 물론 이 책을 통해 <성소수자들>을 이전보다 더 많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사회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그 토대가 불충분하고, 그 노력도 미흡하다고 본다.

  <남성성>이 더럽고, 치사한 것이라면 이런 <남성성을 거세>하고 당당히 홀로 서는 <여성성>과 <성소수자>가 더 많이 등장하고, 우리 사회에 소개되어 널리 알려진 다음에야 가능할 것이다. 또한 이런 일은 공허한 울림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당장 힘들다고 '기득권의 횡포'를 감내하고 그저 인고의 세월만 지낸다면 언제까지고 이런 부정적인 남성성에 상처받는 <소수자들>은 늘어나기만 할 것이다. 그렇다고 <소수자>가 아닌 <기득권자>가 도와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고 도움을 받아 일어선다면 어찌 홀로 섰다고 하겠는가. 그렇지만 또 지금과 같은 가혹한 현실에서 <소수자>가 스스로 홀로 서기만을 기대할 것인가. 참으로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앞서 명확한 대안이 없는 비판은 공허한 울림이라고 말한 것이다.

  난 남자다. 비록 쓰레기 소리는 듣지 않는 남자라고 스스로 평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는 것이 그렇게까지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내용이 후져서 그렇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딴에는 깊은 공감과 반성을 함께 느끼는 부분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적어도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잘못된 생각을 고쳐야지...하지만 그것만으로 <남성성을 지니지 못한 인간>이 <남성성을 지닌 인간>과 동등한 대접을 받는 '그날'이 언제쯤 올까? 아마도 오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앞서 정말 안타까웠다. 아무쪼록 이런 <이분법적인 구분>만큼만이라도 얼른 하지 않는 '성숙한 사회'가 되길 살포시 기대해 본다.



YES마니아 : 로얄 z******8 2011.04.21. 신고 공감 4 댓글 8
리뷰 총점 종이책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젠더(Gender)”와 “섹스(Sex)” 두 가지 성에 관한 이야기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젠더(Gender)”와 “섹스(Sex)” 두 가지 성에 관한 이야기" 내용보기
“젠더(Gender)”와 “섹스(Sex)” -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둘다 우리 나라의 말로 ‘성’ 이라는 뜻으로 풀이했지만 원어인 영어로는 아주 미묘한 어감 차이가 있다고 한다. “섹스(Sex)”는 생물학적인 의미의 성으로서 타고난 것을 의미하며, “젠더(Gender)”는 사회적인 의미로서의 성으로 인식이 된다고 한다. 그 동안 그 두 가지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본적이 없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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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Gender)”와 “섹스(Sex)” -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둘다 우리 나라의 말로 ‘성’ 이라는 뜻으로 풀이했지만 원어인 영어로는 아주 미묘한 어감 차이가 있다고 한다. “섹스(Sex)”는 생물학적인 의미의 성으로서 타고난 것을 의미하며, “젠더(Gender)”는 사회적인 의미로서의 성으로 인식이 된다고 한다. 그 동안 그 두 가지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알고 나니 좀 창피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이 “젠더”와 “섹스” 두 가지의 성에 대해서 차이점을 비교하고, 더 나아가 그 속에서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성적 소수자들에 관한 개념까지 폭넓게 아우를 수 있도록 내용이 구성되어 있다. 6명의 학자들이 사유한 남성성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성에 대한 새로운 자신만의 시각을 정립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평소에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한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그런지 이해하는데 있어서 다소 난해한 부분이 있어서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새로운 지식에 대한 발견의 기쁨이 조금 더 컷던 것 같다. 무언가를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과 알고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차이였다고나 할까…

책 속의 내용들 중에서도 내가 특히 주목했던 것은 성전환자들(트랜스젠더)에 관해 다룬 이야기들이었는데… 그래서 루인 이라는 사람의 [ 의료 시술 기획과 근대적인 남성성의 발명 ], 나영정은 [ 성전환남성의 남성성 ], 한채윤은 [ 체즈비언의 남성성 ] 이라는 주제들을 가지고 이야기들을 더 자세히 읽게 되었다. 평소 TV에서 보이는 트랜스젠더들을 보면서도 별 반감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진지하게 고민을 하지도 않았으면 그들이 느꼈을 사회적인 절망감에 대해서도 생각지 못했던 나에게 그 분야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젠더 이분법의 사회란 남성과 여성, 즉 훅백으로만 분류되는 사회적인 형상에 대한 아주 고전적인 이야기다. 그러한 고리타분한 개념이 아닌 남성과 비남성의 경계에 대해 사유하고 그들이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닌 이중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그 이유로 인해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 절망들에 대해 심도깊게 고찰하는 부분은 그간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사회적 구성원 이외의 어떤 다른 존재로 인식하며 거리를 뒀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면서 젠더라고 하는 사회적 의미의 성에 대해 좀더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이 책은 젠더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인식하고 있는 이분법적인 의미로서가 아닌 새로운 바람이나 변모해가는 사회적인 영향들로 인해 그와 함께 변하는 그런 종류의 것이며, 우리는 지금까지 알고 있던 고리타분하다 못해 이제는 허울좋기만 한 남성성이라고 하는 편협한 의미에 관한 내용들을 삭제하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에 닥친 성에 대한 새로운 의미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기를 우리에게 재촉하고 있다.

그들이 하는 말들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들에 관해서 굉장히 반발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다. 내 남편이 트렌스젠더들에 관해서는 아예 이야기 하는 것조차 꺼려하는 사람이기에 그럴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아예 처음부터 눈감고 귀막고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지는 말고 한번쯤 편하게 마음먹고 읽어보기를 권유해보고 싶은 책이었다.


 



n******5 2011.04.14.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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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성과 젠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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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가 생물학적 남녀간의 관계라면 젠더는 사회적인 인식의 성인식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남성,남성성과 젠더라는 의미를 남성학의 전문가 6인이 담론으로 나타낸 이 도서를 읽어 가다 보니 불편한 구석도 있고 이해는 가지만 아직까지 사회적으로 드러내 놓은 문제가 아닌 묘한 구석도 발견하게 되었다.어느 사회나 여자같은 남자,남자같은 여자가 존재했고 같은 성끼리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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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섹스가 생물학적 남녀간의 관계라면 젠더는 사회적인 인식의 성인식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남성,남성성과 젠더라는 의미를 남성학의 전문가 6인이 담론으로 나타낸 이 도서를 읽어 가다 보니 불편한 구석도 있고 이해는 가지만 아직까지 사회적으로 드러내 놓은 문제가 아닌 묘한 구석도 발견하게 되었다.어느 사회나 여자같은 남자,남자같은 여자가 존재했고 같은 성끼리 연애하고 결혼까지 하는 소수자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도 있다.몸은 남자이고 여자이지만 생리적,기질적,환경적인 영향하에 남성은 남성으로서의 기질이 부족하고 몸은 여자이지만 여성적인 기질이 부족하여 그들을 때론 중성이니 하여 집단,조직안에서 묘한 차별과 거리감을 두고 있음을 알고 있다.

 힘과 권력,사회적 지배층으로 오랜 세월 누려온 남성성이 여권 신장과 더불어 사회 각계에서 여성의 발언권과 참여도가 현저하게 눈에 띄고 있으며 (말을 안해도) 이에 남성은 예전의 힘과 권력적인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약소화 되어가는 경향이 농후하다.이는 시대가 탈산업화의 측면에서 서비스업이 강조되다 보니 기질적으로 섬세하고 친절하게 다가가는 업무의 특성과 고객 제일주의도 한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일례로 백년대계를 제일로 삼고 있는 교육계마저 여성(여교사)들이 차지하고 있어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해 줄 남자 교사,어머니의 역할을 대신해 줄 여자 교사가 고르게 포진해야 장차 아이들이 사회생활을 하고 자식을 기르면서 가지와 줄기를 제대로 알고 그에 걸맞는 성역할을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논란이 일수도 있지만 여자교사라고 해서 지도력 및 사회성이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보다 강직한 통솔력과 대세를 이끌 수 있는 것은 여성의 힘보다는 남성의 힘에 의함이 더욱 든든하게 보여지고 역사이래로 남성들이 이끌어 온 지도력과 권력,사회적인 조화와 균형은(큰 줄기의 차원에서) 이를 증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남성이지만 남성으로 살아가기가 불편하고 사회적인 갭과 차별 대우를 통하여 소외 의식을 느끼며 스스로도 남성으로 살아가는 것보다는 성전환을 통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부류도 있겠지만 드러내 놓지 못하는 부류도 미지수이리라 생각한다.성적 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일부 국가에서는 게이들의 연합,연대도 있고 동성끼리 결혼을 하여 인생을 즐기는 자신의 정체성대로 삶을 꾸려 가는 이들도 있다.다만 한국과 같이 드러내 놓고 성적 소수자를 옹호하고 보호하기엔 시기상조이며 인식 또한 거부감과 함께 이단아로 치부하고 있는 실정이다.역사 이래로 명사들의 동성애자들도 많이 있어 왔고 개인의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당당하게 커밍아웃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를 감추고 살아가는 자들은 심리적,정신적인 고통이 더 크지 않을까 싶기도 한다.또한 생리적인 측면에선 여성이지만 여성의 호르몬보다 남성의 호르몬이 많아 남성적인 기질이 많은 여성은 여성의 정체성 보다는 남성쪽에 가까워 남성과 어울리고 사랑하며 살아가기가 힘든 부류도 있을테니 현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인간으로서 이를 정치적으론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기도 하고 혁신적인 조치는 없는지 곰곰히 생각해야할 문제인거 같다.

 속칭 호랑이 같은 남자,여우 같은 여자가 많아 궁합이 척척 맞아 잘 살아가면 멋진 세상이 되겠지만 우주의 만물은 꼭 공식과 인식대로만 되어가는 것은 아닌거 같다.껍질은 남자이지만 속은 여성성을 타고 난 사람,후천적인 환경의 영향하에 여성성에 가까워지는 남자도 있을테고 껍질은 여자이지만 투박하고 걸걸한 목소리의 남자같은 여자도 분명 존재한다.이를 사회적으론 성적소수자 내지 게이,레즈비언으로 인식하는 것같다.경제 민주화를 어느 정도 일궈 놓은 한국은 성적 소수자에 대해 정치적으론 어떻게 대처하고 보듬어 갈지 주목할 문제이다.






j******6 2011.04.2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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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성과 젠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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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1인지 2인지에 따라서 남성과 여성으로 간편하게 두개의 성으로 구분하고 있지만, 성별은 0, 1과 같이 디지털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아날로그적으로 1~100까지 점수를 매겼을때 남성성 1점부터 100점 사이의 그 어딘가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남성성 100이면 마초맨). 남성 중심 이성애적 사회에서 "정상"으로 보이는 성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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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1인지 2인지에 따라서 남성과 여성으로 간편하게 두개의 성으로 구분하고 있지만, 성별은 0, 1과 같이 디지털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아날로그적으로 1~100까지 점수를 매겼을때 남성성 1점부터 100점 사이의 그 어딘가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남성성 100이면 마초맨).

 

남성 중심 이성애적 사회에서 "정상"으로 보이는 성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서, 태어났을때 신체적으로 남자 아이인지 여자 아이인지 모호한 아이들은 병원에서 어느 한쪽의 성으로 살아갈수 있도록 수술을 받고, 신체적인 성별과 정신적 성별이 일치하지 않는 아이들은 성적 정체성을 혼동하면서 방황하며 청소년기를 보낸다. 남자답지 못한 섬세하고 예민한 남자는 성장과정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놀림을 받기 쉽다. 간단히 말하자면 남성성을 지키고자 "인간성"은 훼손하고 있는 형국이다.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헤게모니적 남성다움은 '백인 이성애 중산층 비장애 성인 남성'의 경험이다]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는 내 대학시절, 같은과 남학생으로부터 여자가 왜 남자보다 뛰어날 수 없는 가에 대해서 설교를 들은적이 있다. 그때 나는 화를냈어야 했는데, 너무도 기가막히고 안타까워서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건 백인이 동양인을 무시하는 거랑 똑같은 논리쟎아".

백인 사회에 가면 피부색으로 차별을 받는 억울함을 당할것이 뻔한 이 남학생이, 자기보다 힘이 약해보이는 여학생에게, 아무런 노력도 없이 태어날때 그냥 정해진 성별을 문제삼아 재수없게 잘난척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부류의 재수없는 남자들은 한동안 내 삶에서 지치지도 않고 계속 등장했다. 그들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겼던 "남성성"이란것이 무엇이었을까?

 

이 책에서는 다양한 성별을 지닌 여섯명의 저자들이 "남성성"을 저마다 독특한 시선으로 해부하고 해석하고 있다. 모두 신선하고 탁월한 견해들이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남성성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단지 이책의 저자들처럼 현재의 상황을 똑바로 바라보고 이러이러한 점은 잘못됬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으로보아, 남성성이나 그 반대급부로서의 여성성을 강요하는 사회는 이제는 시대 착오적으로 더 이상 지속되기 힘든 사회라는 점만은 명확해지고 있다.

 

그때 테스토스테론 과잉으로 내게 일장 연설을 했던 그 남학생은 아마 지금은 남성 호르몬 감퇴로 고개숙인 남자가 되어 있을텐데, 이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반쪽짜리 인간인 '남성성 놀이'를 그만두고 지금즘은 성숙한 한 '인간'이 되었기를 바란다.

 

s******g 2016.07.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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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남성성에 대한 6가지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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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기본적으로 사회학/여성학 책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책은 6명의 저자의 각각의 글을 엮어서 편찬되었으며, 각각의 글을 읽기 편하게 편집되어있다.   6명의 저자의 각기 다른 6가지 주제가 있지만, 책의 큰 주제는 남성성과 비남성성에 관한 얘기이다. 국가 또는 사회는 남성성의 가치에 대해 정립하여 그것을 구성원에게 직간접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남성성이 아닌 것,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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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기본적으로 사회학/여성학 책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책은 6명의 저자의 각각의 글을 엮어서 편찬되었으며, 각각의 글을 읽기 편하게 편집되어있다.

 

6명의 저자의 각기 다른 6가지 주제가 있지만, 책의 큰 주제는 남성성과 비남성성에 관한 얘기이다.

국가 또는 사회는 남성성의 가치에 대해 정립하여 그것을 구성원에게 직간접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남성성이 아닌 것, 즉 대칭적인 것으로 여성성을 얘기하지만 사실 그것은 사회의 기만이며 여성성은 없고 남성성이 아닌 무엇, 즉 비남성성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주제이다.

 

저자들은 남성성은 유전적,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며 사회문화적으로 필요에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지적한다. 사회는 남성성이 남성만이 타고나는 특별한 지위의 합리적인 근거라고 얘기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섹스(생물학적 성)와 젠더(사회적 성)를 구분한다고 얘기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섹스와 젠더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남성(섹스)은 남성성(젠더)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논리를 사회는 거리낌없이 펼치고 있다는 얘기이다.

 

저자들은 이에 대해 날카롭게 질문한다. 남성만이 남성성을 가질 수 있는가?, 남성의 남성성은 평등한가?, 여성이 남성성을 가질 수 없는가?, 여성의 남성성은 남성성에 대한 모방에 불과한가?, 동성애 남성의 남성성은 정통적 남성성의 선에서 벗어난 것인가? 아울러 그것은 곧 위반을 의미하는가? 등의 질문을 저자들은 매우 예리하게 독자들에게 묻는다.

 

현대사회(특히 한국사회)에서는 남성이 지닌 정통적 남성성의 가치를 최선으로 인정하며, 그것만이 합리적인 것이고 이성적인 논리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남성성이 아닌 무엇에 대해서는 폄하하고 배제하려는 경향을 지닌다. 저자들은 주장한다. 역사적으로 형성되어져온 남성성이 과연 진정으로 남성성이라 할 수 있는가? 아울러 남성성/비남성성으로 구분짓은 젠더이분법적 사고가 과연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는가?

 

책의 자세한 내용은 직접 저자의 목소리로 읽어보길 권한다. 분명한 것은 이 책을 통해 남성성에 대한 사회문화적 이해관계를 해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며, 성이 갖는 사회적인 가치에 대해 통찰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여성/남성성에서 소외된 남성/성소수자에 대한 인권 감수성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x****7 2015.05.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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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이면에 존재해왔던 또다른 남성성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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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 무슨 수업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 우리말로 성(性)이란 것을 지칭하는 단어인 섹스(Sex)와 젠더(Gender)의 차이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당시 내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 역시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 너무 오래전이라서 - 섹스란 것은 일단 신체구조로 봤을 때 나뉘는 성별을 의미하며, 헤테로섹슈얼(heterosexua, 이성애자), 호모섹슈얼(homosexual,
"사회의 이면에 존재해왔던 또다른 남성성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고찰" 내용보기

예전에 - 무슨 수업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 우리말로 성(性)이란 것을 지칭하는 단어인 섹스(Sex)와 젠더(Gender)의 차이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당시 내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 역시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 너무 오래전이라서 - 섹스란 것은 일단 신체구조로 봤을 때 나뉘는 성별을 의미하며, 헤테로섹슈얼(heterosexua, 이성애자), 호모섹슈얼(homosexual, 동성애자), 바이섹슈얼(bisexual, 양성애자)등에서 볼 수 있듯 사랑하는 대상이 이성이든 동성이든 상관없이 자신의 신체구조나 성별에 의문이나 위화감을 갖지 않는 것으로 보아 신체적인 부분에 국한되는 성이다라고 대답했고, 젠더는 트랜스젠더(transgender)라는 용어에 사용되듯이 자신의 성별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면을 볼 때 이는 정신적인 면이 중시되는 성이라 대답했다. (그 당시에는 트랜스젠더가 트랜스섹슈얼로도 쓴다는 걸 몰랐다) 사실 그 생각은 지금도 별로 변함이 없지만, 사실 이런 정의는 아주 소극적인 정의이며 협소한 정의라고도 할 수 있다.

일단 남성성을 이야기하기 전에 생물학적인 성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볼까.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구별은 어떻게 가능할까. 생물학적 접근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역시 외부성기의 형태일 것이다. 어떤 구조의 외부성기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성별이 결정되며 그것이 모호할 경우에는 - 인터섹스의 경우 - 의사의 기준에 따라 성별이 결정된다고 한다. 이럴 경우 생물학적인 성이란 것도 근거가 모호해진다. 우리는 생물학적인 성이라고 하지만 결국 이는 인위적으로 구분된 성이 아닌가 하는 담론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읽으며 이런 식의 접근도 가능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무척 흥미로웠다. 그렇게 보자면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남성, 여성이란 꼬리표가 붙게 되고 그 꼬리표에 따라 우리는 사회가 요구하는 젠더 규범에 따라 성장하게 된다. 그렇다면 젠더 규범이란 것 역시도 인위적인 성별 구별을 위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왜 우리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가지의 성으로 인간을 나누는 것일까. 태고의 인류는 모계사회로 시작했지만 정착을 하게 되면서 부계사회로 전환되어 갔다. 그때부터 남성과 여성의 헤게모니 싸움이 시작되었고, 그것이 힘이 더 센 남성쪽으로 기울어져가면서 남성위주의 사회가 되어 왔다는 것이 대체적이고 일반론적인 역사인식이다. 남성은 지배자, 여성은 피지배자라는 인식이 확고해진 후 그후엔 남성들 사이의 차이와 차별이 생겨났다. 여성은 남성들간의 헤게모니 싸움에 밀려 버려 역사속에서는 거의 묻혀버린 존재로 격하된다. 그렇다 보니 남성성과 여성성을 구분할 때의 이미지는 우열이란 것으로 나뉜다. 대칭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열인 것이다. 결국 남성성이란 각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의 정점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남성성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할까.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신체적 · 정신적 형질? 물론 그 의미가 맞긴 하지만 이것이 꼭 남자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도 한 때는 남자애로 오인받을 정도의 모습을 하고 다녔는데, 그렇게 보자면 당시에는 나의 성별이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진 어떤 남성성이 발현된 결과인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애당초 남성성이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난 고작 삼십여년을 살았지만 그 기간동안에도 - 남자와 여자의 차이랄까, 남성성과 여성성의 차이등을 자각할 수 있게 된 후로 - 사회가 원하는 남성상과 남성성이 아주 빠른 변화를 보였다는 걸 보면 남성성이란 불변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국한해서 볼 때도 이럴진대, 범위를 더 넓혀 보면 남성성이란 것은 세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나라와 국적, 인종에 따라 다양하게 발현될 수 있는 성질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경우 남자들은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고 그래야 한다는 것이 사회의 정의처럼 내려져 있는데, 그에 딱 부합하는 남자들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 보면 그다지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봤다. 결국 남성성이란 것은 남자들은 이래야 한다는 대략적인 범위를 정해놓고 그 범주에 들어가면 남성적이고, 그 범주에서 많이 벗어나면 여성적이란 말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각기 다른 시대를 상정해 놓고 보자면 시대에 따라 남성성이 확연하게 달라지는 것도 볼 수 있다. 조선시대는 양반계층이 남성성의 일반적 모습이었을 것이다. 문을 숭상하고 무를 배격하는 이미지의 남성이 조선시대 남성성이었다면 일제시대의 경우에는 폐병쟁이이 허여멀건 얼굴의 남성들이 그 시대 남성들을 대표하는 남성성이었을지도 모른다. 해방 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는 허약한 남성보다는 나를 지키고 부강하게 하는 무력을 숭상하는 남성성이 한동안 그 시대를 대표했을 것이고, 군부독재가 끝나고 민주화 바람이 불어오면서부터 또다른 이미지의 남성성이 시대를 대표해 왔을 것이다. 요즘은 무슨무슨남이라 붙은 신조어가 하루가 멀다하고 생겨나는데 이는 예전과 달리 지금은 다양한 남성상과 남성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가 될지도 모르겠다. 

남성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이렇게 바뀌어 왔다면 소수자들은 어떤 식으로 분류해야 할까. 사실 분류한다는 의미가 저들은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미리 깔아놓고 하는 생각이지만, 딱히 분류라는 단어가 들어갈 자리에 집어넣을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되려나. 그들은 어디에 속하는 걸까, 라고. 

남장여자, 동성애자, 트랜스남성. 이들은 우리사회의 소수자들이다. 이들은 어디에 속하는 걸까. 일단 동성애자를 보면 게이이든 레즈비언이든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성별에 대해서는 아무런 위화감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각각 남성에 속하고 여성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남장여자는 남성에 속하는 것일까 여성에 속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 사람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에 따라 갈린다. 본문에 나와 있듯 <방림한전>의 남장여성은 남자로서 살았고 남자로 죽었다. 딱히 성전환을 하지 않아도 그는 이미 정신적으로 남성이었다. 이를 여성의 남성성이라 봐야 할까? 정신적으로 남성이었기 때문에 남성의 남성성이 발현되었다고 봐야 하는 게 옳지 않을까. 이렇게 보자면 트랜스 남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신체적 성과 정신적인 성이 불일치해서 고통을 받아왔고, 성전환등을 통해 자신의 정신적 성과 신체적 성을 맞추었다. 이들은 남성인가 여성인가. 앞서도 말했듯 정신적인 면을 우선으로 놓고 보자면 이들은 남성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들을 남성이라 부르지 않고 꼭 다른 수식어를 붙인다. 사회규범의 허용범위를 넘는다는 뜻이겠지.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소수자가 아닌 다수의 남성들 역시 자신의 남성성을 시험받고 있다. 마지막 담론인 신자유주의 이후의 남성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부와 권력밖으로 밀려난 남성들은 루저가 되든지 사이버마초가 된다. 이 담론은 앞에 나온 여타의 담론과 달리 내게 큰 거부감을 주었는데, 특히 초식남과 사이버마초들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쓴웃음이 지어졌다. 초식남은 먹는 입만 남은 동물적 입이고, 사이버마초들은 나름대로의 정치적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는데, 내가 보기엔 사이버마초들은 근육뇌와 배설할 입만 달린 머리에 여성을 소유물정도로 생각하는 존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남성우월주의자이며 사이버공간에서만 기를 펴는 불쌍한 소수자에 불과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다른 (성적)소수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면 이들은 골방에 틀어박혀 배설만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이들이 그렇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한계가 있지만, 그걸 떠나서 생각해 봐도 난 이들의 생각에 동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앞서 나온 다른 담론들에는 대개 수긍을 할 수 있었지만, 이 담론에 있어서만은 '돈'으로 인생이 갈린 남성들의 이야기에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난 우리나라 남자들이 자신의 남성성을 강조하고 싶을 때 하는 말이 정력과 군대라는 두마디면 다 정의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이상하게 정력이란 것에 신경을 많이 쓴다. 정력보강을 위해 해외에 나가거나 이 음식을 먹으면 정력이 좋아진다고 하는 등 이상하게 정력이란 것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난 티비를 보면서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남자들을 보면서 얼마나 자신의 남성성에 자신이 없으면 정력에만 자신의 남성성을 거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웃겼다. 도대체 이런 발상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이상적인 남성성이라든지 이상적인 남성상의 변화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거의 불변하지 않는 법칙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 보자면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남성성은 많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한편 군입대 문제로 이슈가 되는 연예인들은 우리나라의 또다른 남성성인 '군대'의 남성성을 외면했기 때문에 성토의 대상이 된다. 징병제를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군대에 일단 다녀오거나 군대에 갈 예정인 사람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군대에 가지 않는 사람들을 배척하고 매장하는 분위기이다. 대신 스스로 군복무를 선택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아주 관대한 입장을 보인다. 지난 3월에 해병대에 입대한 배우 현빈이 여전히 국민적 영웅처럼 대접받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드라마로 여심을 잡았다면 해병대 입대로 남심을 장악했달까. 어떻게 보면 남성들이 현빈에 대해 지지를 보내는 것 역시 자신들의 실추된 남성성을 그가 보상해주기 때문이라고 착각하고 있는데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 젠더 규범과 남성성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서, 그리고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사회의 또다른 면을 보게 되었다. 내가 여성의 젠더 규범에 따라 성장해왔기 때문에 자칫 모르고 지나칠 수 있었던 다양한 이면들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나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어진다. 그리고 각각의 젠더규범에 맞춰서 성장한다. 하지만 각각의 젠더규범이란 - 이 책에서는 특히 남성성이란 것으로 말해지지만 - 유일한 것도 영원한 것도 아니다. 어쩌면 아주 먼 미래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이란 말 자체가 없어지고 각 개체가 가진 인간성만으로 개인을 판단하는 세상이 오지않을까 하는 낙관적인 생각도 해본다.



y*****5 2011.04.2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성차와 남성성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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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위에서 본 것처럼 더 이상 위험과 용기를 추켜세우지 않으며 오로지 안전만을 추구하게 되었다. 위험이 제거된 모험의 사회에서 남성다움이란 쓸데없이 문제나 일으키는 거추장스러운 것에 불과한 것이 된다. (153쪽) 평소에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던 부분이어서 인지 책을 읽는 내내 이해가 될 듯 말듯 하는 주장과 논리에 고민을 하였다. 남자와 여자 여자의 정체성에 대
"성차와 남성성에 대한 고찰" 내용보기

세상은 위에서 본 것처럼 더 이상 위험과 용기를 추켜세우지 않으며 오로지 안전만을 추구하게 되었다. 위험이 제거된 모험의 사회에서 남성다움이란 쓸데없이 문제나 일으키는 거추장스러운 것에 불과한 것이 된다. (153쪽)

평소에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던 부분이어서 인지 책을 읽는 내내 이해가 될 듯 말듯 하는 주장과 논리에 고민을 하였다. 남자와 여자 여자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남자의 성에 관한 남자의 역할과 남자가 가지고 있는 그 신체적 특징성에 대한 그리고 그로 인한 남자들만의 세계와 성차에 의한 사회적인 고찰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고 하여야 할 것 같다. 사실 성차에 의한 고민은 남성의 우월적 사회지위에 대한 여성들의 진출에 대한 고민 정도로 생각하였는데, 신체적으로 남성이면서 여성이기를 원하는 사람 아니 여성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 신체적으로 여성이면서 남성의 사고와 행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신체적인 상징이 성차를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다행스럽다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남자의 몸에 남자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렇게 살아온 세상이기에 성차에 대한 부당함이나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했음을 인정한다. 대부분의 경우 현재도 마찬가지지만 신체적 성차에 의하여 사회적 성차를 구분 짖는 일이 당연시 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남자라는 것이 정말 사회적으로 좋은 것인가? 남성성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사회에서 남성성은 어떻게 형성이 되었으며 해방이후의 남성성과 현재의 남성성의 변화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가부장적인 가족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우리나라의 관습상 여성의 역할을 제한이 되어있었고 재력을 가지고 있는 아니 노동력을 가지고 있었던 남성이 가정에서 혹은 사회에서 우월적 지위를 확보한 상태이다. 하지만 산업의 발달은 여성의 사회진출과 함께 남성이 견고하게 지키고 있던 노동시장의 영역을 잠식당하게 되면서 여성과 남성의 역할에 많은 정체성과 고민을 안겨 주게 된다. 예전과 같은 남성의 지위를 얻을 수 없으며 가부장적인 권한과 위엄은 찾기 힘들다. 가부장적인 남성성이 어떤 의미와 폐쇄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남성으로 성전환을 한 사람들의 경험담을 토대로 알 수 있다. 비합리적일 수도 있으며 성적인 공감대로 이루어진 남성들의 폐쇄성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이해를 할 듯하면서도 이해하기 좀 난해 한 것은 내가 그 입장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젠더에 관한 문제는 어쩌면 소수에 대한 생각일 수도 있고 다수의 남성이라는 이미지가 가지고 온 부정적 의미를 담을 수도 있다. 그렇게 남성의 역할과 남성성에 대한 의미는 많이 변화되었고 남성이 가지고 있었던 고전적인 책임감을 버리고 자기 자신에게 즐거운 일에만 몰두하는 초식남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고, 그를 자연스럽게 이해 할 수 있는 사회로 발전이 불가피 할 것 같기도 하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떠나서 책이 말하는 아니 여러 명의 저자가 말하는 것은 단 한 가지인 듯하다. 사람은 신체적인 구조에 의하여 젠더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의 성장과정 속에서 자신의 성차를 만들어 가고 그 성차를 사회가 인정하고 그에 맞는 대우를 받고 살아가는 일에 어쩌면 무게를 두고 있을지 모른 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도 내가 이해 하지 못하는 고민으로 고민 하는 사람들과 내가 여성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당연시 하는 일에 화가 나있을지 모르는 나와 다른 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사회를 만들어 가기를 바라는 마음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성차가 먼저 있고, 그 후에 젠더가 오는 것이 아니라 젠더가 성차와 성차의 의미를 생산하는 것이다. (36쪽)



a********8 2011.04.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