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추천으로 김선우의 사물들을 우연치 않게 읽어봤는데 특히 작가의 세심한 관찰력들이 돋보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라는 감탄을 자아내며 책을 읽는동안 작가의 이야기 늪에 빠진 것 같았습니다. 또한 작가의 예민한 감정들이 글을 읽을때마다 느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말 한문장 한문장 버릴게 없는 책입니다..또한 김선우의 사물들을 읽고나면 여태껏 지나쳐왔던 것들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김선우 시인은 시도 쓰고, 산문도 쓰고, 소설도 쓴다. 나는 그녀가 쓸 때마다 쫓아다닌다. 그녀의 시를 읽고, 산문을 읽고, 소설을 읽는다. 그렇게 읽은 김선우 시인의 글들을 '감동'과는 또 다르다. 생각. 시선. 어떻게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 어떻게 이렇게 볼 수 있지? '감동'보다는 '감탄'쪽이었다. 그게 꼭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모든 글이 꼭 '감동'하고만 인연지어야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김선우 시인의 그런 '낯설게 보기'를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이 '김선우의 사물들'은 압권이다. 얼마나 압권이면 초판, 개정판 다 샀다. 일상 속에서 무가치하게 널브러져 있는 사물, 소품들이 김선우 시인의 '시선'을 통해 새로 돋아난다. 놀랍도록 따스하고, 정감있고, 섬세하게. 부채, 바늘, 숟가락...정말 '이거 뭐지? 이게 글감이 되나?'할만한 너무나 일상적인 사물들이 새로운 가치를 입고, 새로운 얼굴을 갖는다. 그녀의 시선 아래서. 요즘 사물들에 관한 책들이 참 많다. 사물을 낯설게 보려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는...그중 가히 최고다. 다른 글들도 참고할만하고, 생각해 볼만하고 좋은 것들이 많다. 그런데 김선우 시인만큼 '섬세하게'란 표현이 적절한 경우는 드물다. 적어도 내 사견에는 그렇다. 김선우 시인의 시는 꽤 관능적이고 도발적이다. 굉장히 수줍어하면서도 막 내지르는 묘한 양면성을 지녔다. 그래서 어떨 때는 읽으며 시원하고 또 무안해지기도 한다, 솔직히. 그 수줍음이 '김선우의 사물들'에도 깃들어 있다. 그래서인지 '수줍은' 사물들이 꽤 많다. 못, 촛불, 손톱깎기, 생리대 같은...도대체 생리대를 그렇게 풀어낼 수 있는 시선을 가진 이가 이 지구상에 얼마나 될 건가 말이다. 뭘 봐도 한두가지 생각밖에 못하는, 아니 그렇게 길들여져가고 있는 이 시대 모던피플이라면 꼭 봐야하는 텍스트북이다. 얼마나 무심하고, 단편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하게 해 준다. 글과 문장의 유려함을 차치하고라도, 일단 그것만해도 얻는 게 대단하다. 머리가 깨이는 느낌. 시선이 열리는 느낌. 김선우가 해준다. 감사의 인사, 꾸벅! |
'김선우의 사물들'이 삽화가 추가된 개정판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사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 약속을 잊고 지내던 어느날 나는 '물의 연인들'을 읽었고 그것이 그 약속을 일깨웠다. 그 약속은 이런 식으로 빙 돌아 내 잊음을 알려준 것 같다. 부끄럽다. 어떤 이와의 첫만남에 대한 인상은 대부분 강하게 남아 있다. 나는 책 하나하나가 어떤 이라고 생각한다. '김선우의 사물들'에서 첫 번째인 '숟가락'에 대한 인상은 강했다. 숟가락을 관찰하면서 움푹 들어간 것이 주는 느낌, 숟가락이 손을 모았을 때의 모양과 비슷하다는 것. 나에게는 낯설고 생소한 것이었다. 움푹 패이고 무엇을 담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지 몰랐었다. 매일 식사때마다 내 손에 들리는 숟가락. 나는 그렇게 가까이 지내는 숟가락을 하루에도 수십번 입술에 대면서도 그것에 대하여 자세히 들여다볼 생각을 안했다는 것이 미안해졌다. 이 책은 이렇듯 사물을 관찰하거나 그 사물에 얽힌 저자의 기억을 끄집어내거나, 더 나아가서 저자의 사회비판이 담기기도 하고, 저자의 즐겁고 명랑한 상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마 이건 이 책의 진행 순서가 이렇다는 내 추측이다. 숟가락, 의자 같은 사물에 대한 관찰을 하다가 촛불에서 고양이와 촛불 사이의 기억, 못에서 옥탑방에서의 기억들, 부채에서 저자의 취향, 손톱깎이, 수의, 화장대에서 저자의 집안이야기, 걸레, 생리대에서 저자의 학창시절 이야기, 부채, 생리대, 휴대폰에서 사회비판, 잔, 수의, 지도에서 저자의 유쾌한 상상들. 특히 죽음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묘지나 수의에 대한 상상, 쓰레기에 대한 사유가 좋았다. 어떤 이의 눈으로 세상은 이렇게 보이는구나!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을 사는 수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이 각자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이렇게 다르구나. 그리고 이렇게 멋질 수 있구나. 그리고 이렇게 멋진 생각과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살았었구나! 이렇게 아름답고 발랄한 상상을 하는 사람도 상처받기도 했구나. 구름에 가려질 때도 있지만 항상 태양은 빛나듯이 꿈꾸고 생기가득한 사람은 그 상처를 이겨내는구나. 이 책은 나에게 이렇게 스며들었다. 머리말에서도 밝혔듯이 사물에 대한 김선우 시인의 글은 '나를 찾아 떠난 여행'이었던 것 같다. 이 책에 나온 20개의 사물들은 어떤 식으로든지 저자의 삶과 관련지어질 수 밖에 없고 그와 관련된 저자의 추억들, 생각들, 상상들은 자연스럽게 나올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것들을 바라보고 냄새맡고 듣고 만지면서 즐거웠고 반성했고 미소지었고 놀라웠다. 저자는 시인이지만 사물을 관찰하면서 분자, 수소, 화합물, 포도당 같은 과학적인 단어를 사용해서 놀랐다. 시인은 과학적인 단어를 쓰지 않는다는 내 선입견이 문제였다. 세상은 언제나 그렇지만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이 책에 나온 20개의 사물들에 대한 글을 읽을 때 나 역시 나와 관련된 그 사물들에 대하여 생각했다. 특히 숟가락, 못, 의자, 바늘, 잔, 사진기에서 나는 공명했다. 내 주의에 있는 사물들. 나는 그것들을 저자처럼 의인화해서 눈맞춰주고 싶다. 안녕, 잘 지내보자, 별 일 없었어?, 눈길 한 번 더 주고. 그렇다면 더 멋지고 따뜻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혹시 모른다. 그 사물들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내가 말걸어주길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은 문장은 아래이다 보이는 것의 뒷면은 보이지 않는 것의 앞면과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7쪽, 머리말) 우리가 사물을 보되 보이지 않는 면이 있다. 우리가 지구에서 달을 보되 달의 뒷면은 보기 힘들다. 사물의 보이지 않는 면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종종 잊는 것 같다. 하지만 분명히 있다! 그리고 사물은 사람들과 관계가 있고 사람들은 사물들을 사용하거나 보거나 만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물과 사람들과의 보이지 않는 관계와 기억들이 있다. 과연 보이는 사물들의 감춰진 뒷면과, 사물과 사람과의 보이는 관계의 드러난 앞면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나는 이 문장을 이렇게 이해했고 이것은 두고두고 천천히 시간을 들여 고민해볼 만한 화두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사물은 그냥 사물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건 살아있고 사람과 함께 사는 또 다른 동반자인지 모른다. 이 책을 통해 내 하나의 추측이 확신이 되었다. 김선우님은 아름다움을 진정 사랑한다는 확신. 그것은 그 분의 주위를 밝게 할 것이다. 좀 우울할때, 심심할 때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예쁜 꽃들이나 찬란한 빛깔의 나뭇잎들을 만날 때, 나는 단지 바라본다. 다만 가까이서, 조금 더 가까이서. 보랏빛 영롱한 별무리 같은 예쁜 풀꽃 무리를 바라보기 위해 땅에 닿을 듯 코를 박고 그이들과 눈 맞추지만 성큼 손 내밀어 꺾지 못 한다. 책갈피에 말려두지 못 한다. 그이들이 상할까 봐 함부로 만지지도 못 한다. 덧말을 붙이자면, 고 예쁜 것들이 눈물겨워서 못 꺾는다. 여리디여린 꽃대에 자기 존재 전부로 다만 아름다워진 그이들이 귀해서, 너무 귀해서 못 꺾는다. (43쪽) 머리카락을 채워 넣은 바늘집은 만지는 느낌이 특별하다. 엄마의 바늘집에는 처녀 적 어맘 머리칼이 가득 채워져있었다. 할머니의 바늘집에도 처녀 적 할머니의 머리칼이 가득 채워져있었다. 시집오기 전에 만들었다는, 아직 젊고 아름다웠던 그녀들의 머리카락이 가득 들어있는 바늘집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바늘들. 그것은 좀 기이한 전율과 어떤 일렁거림과 눈물겨움 같은 것을 동시에 일깨우는 것이어서 머리카락을 채운 바늘집은 오래도록 내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91쪽) -> 바늘집에 머리카락을 채워넣기도 하는구나. 머리카락은 세월이 지나도 썩거나 변하지 않을까? 살림을 산다, 는 말이 얼마나 중요하고 근사한 말인지를 깨닫는 데 많은 시간이 흘렀다. 여자들의 가사노동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데 대한 각성의 요구로 언제부턴가 '전업주부'라는 말이 선호되기도 하지만, '살림'을 '사는' 쪽이 아무래도 '전업'이라는 말보다 내게는 더 활기차고 역동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나 자신이 속한 공간을 챙기는 일은 생명 활동이 유지되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를 보살피는 일이다. 집은 '살리는' 일의 기본단위이고 살리는 일을 '살아온' 어머니는 식구들 중 가장 힘이 세다. (135쪽) -> 살림살이라는 말에 이런 의미가 있다니. 가족을 살리는 일이 살림을 사는 일.'꽃'이라는 말과 엄마의 포옹. 이것은 내게 월경이 축복임을 전달한 가장 명징한 계기였다. 이전에 내가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내 몸에 대한 결핍감과 강박은 내가 "엄마, 꽃이 비쳤어."라고 발음한 순간 완전히 내게서 사라졌다. 사소해 보이는 어떤 사건이 한 인간의 전 생애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은 생의 놀라운 비밀 중 하나다. (145쪽) 음식물과 쓰레기라는 말을 이토록 과감하게 합성시킬 수 있는 의식/무의식은 우리 존재의 황폐함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예전에 우리에게 농사는 '짓는' 것이었고 '기르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는 다만 '생산'에 급급하다. 오늘 내가 먹는 것이 어디에서 누구의 수고로운 손을 거쳐온 것인지 직접적으로 느낄 수 없는 상황에서 쌀 한 봉지나 호박 한 덩이 사과 한 알이 공장에서 생산한 인스턴트식품 한 봉지와 다를 바 없이 느껴지는 것도 어쪄면 당연하겠다. 숨결을 느낄 수 없을 때 버리는 이도 간단해진다. 기르고 짓는 마음을 느낄 수 없을 때 음식에 대한 모독은 이미 시작된다. 음식에 대한 모독은 생명에 대한 모독과 직결된다. (173~174쪽) 아름다움에의 욕망은 무해하다. 적어도 타인을 억압하지 않는다. 누구도 타인의 고통에 대해 다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아름다움에의 욕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미감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복잡한 무의식의 통로를 지니는 세계다. 천 그루의 나무가 있으면 천 가지 이상의 미감이, 만 명의 사람이 있으면 만 가지의 이상의 미감이 존재한다. 만약 아름다움에의 욕망이 사회적 힘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이 다채로운 개별성의 수용과 소통으로부터 발원하는 힘일 것이다. (186쪽) 내 앞의 생으로 오는 것들은 언제나 절박한 호흡으로 온다. 자기 앞의 생에 '오버'란 없는 것이다. 개인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내가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내 앞의 문제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되어온 것이다. 내가 의식하고자 하지 않으면 그저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것이지만, 민감한 더듬이를 지니고 자기 앞의 생에 직면하고자 할 때 생은 얼마간 고달파지지만 또한 얼마나 더 찬란해지는가. (198쪽) 그러나 아무래도 내 무덤은 오랫동안 꿈꾸어 온 '나무 무덤'이 좋겠다. 헐벗은 어느 자그마한 산이나 민둥한 둔덕쯤에 나를 묻고 내 위에 어린나무 한 그루 심어주면 좋겠다. 이 별의 근원 질료로 돌아가기 시작한 내 몸이 어린나무를 기르고 그 나무를 보호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내 무덤을 상상하는 일은 언제나 가슴을 뛰게 한다. 두근거림 속에 내 상상은 점프한다.' '시인 묘지' '음악가 묘지' '누구네 가족 묘지' '무슨 동네 묘지' 등의 예쁜 푯말이 붙어있는 입구에 들어선다. 나이와 종류가 다양한 나무들이 아름답게 자라고 있는 산이나 자그마한 공원 숲을 상상한다. (211쪽) <단어> 1) 아포리즘aporism: 그러나 누군가를 지극히, 열렬하게 사랑하다가 그가 바로 자신임을 깨달은 자의 비극은 '나는 너다!'라는 메마른 아포리즘aporism보다 정직하다.(26쪽) 신조, 원리, 진리 등을 간결하고 압축적인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 아, 아포리즘은 그냥 짧은 글이구나. 그런데 사전에는 aphorism이라고 나왔는데 aporism도 맞는 건가? 2) 구순기: 구순기의 아기에게 엄마의 젖꼭지가 먹을 것을 분출하는 실용적인 샘 이상의 의미를 갖듯이. (33쪽) 입과 입술의 자극에서 성적 쾌감을 얻는 시기. 프로이드가 나눈 심리적 발달 단계의 첫 단계로 대개 생후 18개월까지의 시기이다. 3) 집전(執典): 우울한 날 나는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우울을 집전한다. (33쪽) 4) 이내, 파근하다: 저물 무렵 이내가 파근하게 먼 산자락을 감싸며 내려앉더니 금세 날이 어두워진다. (52쪽) 5) 바지랑대: 방과 부엌의 크기를 합한 것보다 넓은 옥상 마당에 나무 평상이 하나 그리고 옥상의 한끝에서 다른 끝까지 매어놓은 빨랫줄을 이고 있는 각목으로 만든 바지랑대가 있었다. (64쪽) 빨랫줄을 받치는 장대. 6) 되새: 세 시 정각이 완성되려는 찰나, 벽시계의 숫자들이 평야의 하늘을 뒤덮으며 날아가는 되새 떼처럼 흩어져 날아간다. (73쪽) 되샛과에 속한 새.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겨울새. 수십 마리에서 수백 마리씩 무리지어 나무에 앉아 있다가 일제히 땅에 내려앉아 먹이를 찾는다. 7) 고리버들: 엄마의 반짇고리는 고리버들로 만든 것이었고, 할머니의 반짇고리는 대나무 껍질로 만든 것이었다. (87~88쪽) 버드나뭇과에 속한 낙엽 관목. 8) 달비장수: 내 언니들은 달비장수가 아직 마을을 다니던 시절, 할머니의 머리칼로 맞바꾼 조청이며 꿀단지를 기억한다. (88쪽) 머리카락 수집상, 가발 수출용. 9) 쥘부채: 거기엔 대나무 편에 한지를 곱게 바른 쥘부채 하나가 있다. (106쪽) 접었다 폈다 하게 되어 있는 부채. 10) 그로테스크: 피부의 변신물인 머리카락이나 손톱은 몸의 일부였다가 떨어져나가고 나면 사물화된다. 몸에서 분리되는 순간 쓸고 치워야 하는 골칫거리가 된다. 게다가 그것들은 몸에서 떨어져나가는 순간 조금쯤은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에 가까워진다. (121쪽) 황당하고 괴이한, 이질적인 것의 결합. 11) 성속일여聖俗一如: 걸레는 성속일여聖俗一如의 화두를 들고 자기 온몸으로 정직하게 구도하는 사물이다. (131쪽) 약도 과하면 독이 되고 독도 적당하면 약이 된다는 의미. 12) 담지한: 걸레 냄새는 시들어가는 것과 피는 것의 순환을 담지한 냄새다. (136쪽) 13) 정치(精緻): 월경에 대한 사유는 정치精緻해야 한다. (142쪽) 정교하고 촘촘함. 14) 벙그는: 벙그는 망울을 보며 꽃소식에 마음 동동거릴 때부터 하나둘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기까지의 꽃나무는 미래의 힘으로 찬란하다. (154쪽) 15) 심상하게: 그는 심상하게 묻는데 나는 쩔쩔맨다. (170쪽) 16) 탐진치: 나의 공덕을 생각하면 이 공양 받기가 부끄럽습니다. 오로지 탐진치를 끊고 수행을 위한 약으로 먹나니, 이 음식을 먹고 마땅히 도업을 이루게 해주십시오." (174쪽) 탐진치[貪瞋癡] -> 욕심ㆍ성냄ㆍ어리석음. 이 셋은 수행인을 해롭게 하는 것이 가장 심하므로 3독(毒)이라 함. 17) 다사로움: 젊거나 늙은 엄마의 화장대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이 얼마간의 다사로움과 물기를 머금기 십상인 것처럼. (180쪽) 18) 페이소스pathos: 십 대를 지나면서 거의 누구나 죽음에 대한 막연하고도 낭만적인 페이소스pathos를 경험하듯이 말이다. (182쪽)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19) 미감: 미감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복잡한 무의식의 통로를 지니는 세계다. (186쪽)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 20) 채도: 지도 위로 채도가 좋은 햇볕이 비스듬히 떨어지는 날이면 더 좋고 비가 오는 오후나 안개 낀 소읍의 오전이어도 좋다. (190쪽) 색의 선명도, 색이 얼마나 순수한가. 빛의 3원색인 빨강, 초록, 파랑의 채도가 가장 높고 이 세 색을 섞을수록 채도가 낮아진다. 색의 3원색인 빨강, 노랑, 파랑의 채도가 가장 높고 이 세 색을 섞을수록 채도가 낮아진다. 21) 굴광: 무구한 알몸의 느낌, 수의는 옷이지만 출발 지점에 놓인 벗은 몸 - 알몸을 향해 굴광하는 옷이다. (203~204쪽) 22) 배면背面: 죽음이 원죄의 귀속이나 불연속의 비애가 아니라 삶의 연속성을 추동하는 배면의 힘이라는 것을, 삶과 죽음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서로에게 젖줄이 되어주고 있다는 동양적 사유는 인류가 지녀온 가장 활달하고 거침없는 자유 의식과도 긴밀히 연결되어있는 듯하다. (207쪽) 몸체나 사물의 뒤쪽 부분. 23) 원융: 게다가 봄물이 가득 오른 제주 바다 한 자락까지 시야에 함께 들어오는 짧은 한순간, 출렁이는 풍성한 것들 속에 싱싱한 초록으로 물이 오른 무덤들은 그 선명한 빛깔들의 향연 속에 삶과 죽음의 원융을 아득한 율동으로 펼쳐 보인다. (210~211쪽) <의문> 1) 천 그루의 나무가 있으면 천 가지 이상의 미감이, 만 명의 사람이 있으면 만 가지의 이상의 미감이 존재한다. (186쪽) -> '만 가지의 이상의', 이 부분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