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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비젠탈의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용서받을 자격과 용서할 권리에 대하여
지은이 시몬 비젠탈은 홀로코스트로 일가친척 89명을 잃었다. 그후, 미국전쟁범죄조사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1946년 30여명의 다른 생존자와 함께 ‘유대역사기록센터’를 설립운영, 그의 추적으로 1,100명의 나치 범죄자가 법의 심판을 받았으며, 아돌프 아이히만도 포함돼 있다.
이 책은 1부 해바라기와 2부 심포지엄으로 구성됐다. 1부 해바라기는 개정판이다. 2부 심포지엄은 해바라기에 실린 내용과 이의 연장선에서 각국에서 일어난 인권탄압 등에 관해 53명의 소감, 견해가 담겨있다.
지은이는 전쟁범죄, 인권탄압 등의 범죄행위에 국제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스니아 사태는 반인륜적인 범죄라고 주장한다. 인종 청소며, 남녀노소를 불문한 민간학살, 무슬림 여성에 대한 강간 등, 비록 홀로코스트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지만, 그들의 이미 그 당시의 공포를 상당 부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고...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에서 제기 되는 질문은 더 미묘하고, 어떤 면에서는 더 어려운 점이 있다. 상부가 내린 명령에 충실하게 따름으로써 범죄를 수행한 군인이나 익명의 개인에 대해서는 무엇이라 해야 하는가? 당시에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각자의 판단력을 잃고 범행을 강요받은 일반인들, 또는 자신의 행동을 결코 후회하거나 인정하지 않은 극소수에 대해서는 무엇이라 해야 하는가? 권력자가 강요하는 비윤리적 행동을 거역할 경우 감당해야 할 커다란 위험이 있는데도 기꺼이 저항한 영웅적인 개인을 우리는 칭송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 대해서는 무엇이라 해야하는가
또, 보자. 학살이 끝난 후에 그 희생자가 될 뻔했던 사람이 좀 전까지만 해도 원수였던 다른 사람과 평화롭게 어울려 살아갈 수 있겠는가?, 과연 용서의 한계란 무엇일까? 그것은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인 참회만으로도 가능한 것일까? 누군가를 용서하되 결코 잊지 않는다는 것이 가능할까? 어떻게 해야 희생자들 각자가 과거와 화해하며, 그 과정에서 각자의 인간성과 윤리를 지켜낼 수 있을까
세월호 8주기, 아직도 실체 진실규명은 요원하다. 왜 희생자들이 그렇게 많았던가?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뭐 하나 시원하게 밝혀진 게 없다. 벌써 8년이 지났건만,
주제가 너무 무겁다.
<중국강제수용소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라는 글을 남긴 해리 우는 1950년대 말 60년당시 중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구든 자기 자신의 양심과 인간성을 버려야만 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죽어가는 나치 장교의 뒤늦은 참회와 호소에 대해 해리 우는 이렇게 적고 있다. “당신 스스로도 자기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겠지만, 이 사회의 모든 사람들 또한 당신과 똑같은 책임을 져야 한다” 라고...
가해자들의 사과 없는 용서가 가능한가, 그 어떤 범죄도 뉘우치기만 하면 용서받을 수있는가, 한 개인이 수많은 희생자들을 대신하여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는가
이 책의 내용은 세계에서 일어난 전쟁범죄와 인권탄압 등에 관해 “용서”란 주제로 이야기한다. 용서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신만이 인간의 행동을 용서할 수 있는 것인가, 각종 범죄의 피해자는 가해자를 용서하는 게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좋다고 말한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가슴 한켠에 응어리진 분노는 사라지지 않는다.다만, 잊어버리려고 노력할 뿐... 입으로는 용서를 말하지만, 그 용서의 대가는 자신에게로 고스란히 돌아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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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쇼아, 아우슈비츠 수용소, 죽음의 수용소, 인종 청소, 최종 해결.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200여명의 유대인과 함께 석유통을 집 안으로 밀어 넣고 집 바깥에서 문을 잠근 채 그 안으로 수류탄을 던진다, 불이 붙은 유대인이 창문밖으로 투신하면 놓치지 않고 그들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한다. 과연 이 언어들이 묘사하는 것들 옆에 '용서'라는 두 음절의 단어를 나란히 놓을 수 있는 것일까? 순간 마음 속에 반발심이 일었다. 머릿속도 생각하기를 멈췄다. 그래, 내가 모르는 '용서'의 사전적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 싶어 국어사전을 뒤져 보았다. '용서'라는 정의를 재확인한 뒤에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용서 1 容恕 명사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줌. ' 용서라는 단어는, 가령 레고를 좋아하는 여섯 살짜리 아들이 애써 조립한 레고 자동차를 망가뜨렸을 때나 요구할 수 있는 말이다. "아들, 엄마 용서해주라. 정말 미안해." 내가 용서를 요청함에 아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속이 상하지만, 다시 만들면 되니까, 다시 더 멋지게 만들면 되니까 말이다. 다시 말해 '용서'라는 말은 200여명의 유대인을 참혹하게 학살한 뒤에, 혹은 몇 십만명의 유대인 아이를 태워 죽인 후에, 셀 수조차 없는 유대인을 발가벗긴 채 구덩이에 세워 놓고 총을 난사한 뒤에 올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결단코.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는 작가인 시몬 비젠탈이 수용소에서 겪은, 어떤 특별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다. 그가 작가가 강제노동수용소 밖의 간이 병원 정리 노역에 투입되었을 때 일어난다. 간이 병원의 한 간호사가 노역 중인 유대인 무리로 다가와 시몬을 어디론가 데려간다. 그 곳은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SS 나치대원이 심한 화상을 입고 온 몸에 붕대를 감은 채, 죽음을 기다리는 '임종실' 이었다. 죽음의 문턱에 선 SS대원은 카를이라는 22세 젊은이로, 시몬에게 말한다. "나는 더 못 살 거예요."라고. 스물 한 살에, 슈투트가르 출신이라고 덧붙이며 끔찍한 고해를 시작하며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말한다. 죽음의 문턱에 서서 마음 편히 죽을 수 있게 해달라는 그를 과연 용서할 수 있을 것인가, 시몬은 독자에게 이 질문을 던지며 1부가 끝난다. 그리고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의 2부인 심포지에서는 그의 질문에 대한 각계각층의 대답이 이어진다. 같은 흙에서 태어난 인간이, 인간을 그토록 무자비하게 핍박하고 살인하는 일이 가능한가? 그러한 범죄를 저지른 집단을 용서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리고 그런 범죄의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그만 용서할 것을 촉구하는 것도 가능한가? 나는 이상의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이 모두 '아니오'라고 생각한다. 종족말살이라는 크나큰 범죄는 결코 용서를 받을 수도, 용서를 구할 수도 없다.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독일인들은 분명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 오는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했으며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러한 무시무시하고도 야만적인 행동에 대해 그 사회든 개인이든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한다. 상관과 국가의 명령에 복종하기 위해 스스로를 '초인'이라 부르며 희생자들을 고문하고 학살했던 자들은 감히 인간이라고 부를 수도, 용서받을 수도 없다. 그리고 이 의견에는 그 어떠한 비판이나 반박도 수용하고 싶지 않다. |
| 나치 대원이 죽음을 앞두고 수용소에서 강제노동을 하던 유대인 한 명을 불러다가 그 앞에서 주절주절 자신의 유대인 학살 기억을 늘어놓고 죄책감이 심하니 자신을 용서해줄 수 있냐고 묻는다. 그런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행위 앞에서 저자인 시몬비젠탈은 침묵을 지킨 채 방을 떠난다. 후에 전쟁이 끝나고 시몬은 '독자라면?' 하는 질문으로 책을 마무리 짓는다. 이 편지는 각계각층의 사람에게 닿아 그들의 답을 엮어 이 책이 완성된다. 아쉬운 점은 각계각층이라고 썼지만 대부분 종교인이다. 그래서 종교(신학)을 경유한 용서에 대한 해석이 많이 나온다. 주로 용서를 중시 여기고 좋게 여기는 기독교 입장과 용서란 때에 따라 다르다고 말하는 유대교 입장이 나온다. 거의 300페이지가 같은 내용을 다른 저자가 쓴 변주일 뿐이다. 그래서 무교인 나는 필자들의 논리에 공감을 할 수 없었다. 이 책은 '용서'를 논하기보단 이 책이 나올 당시 시몬 비젠탈의 질문을 두고 벌어진 두 종교간의 입장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나온 것 같다.1부의 시몬 비젠탈 이야기는 읽을만한 가치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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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1부에는 시몬 비젠탈의 「해바라기」라는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의해 89명의 일가친척을 살해당했고, 본인 스스로도 집단수용소에서 홀로코스트를 경험했던 시몬 비젠탈 자신의 경험담을 근거로 한 자전적 이야기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글들과 소설, 영화 등을 통해서도 지금까지 재생산되고 있지만, 당사자가 직접 쓴 글이라는 점, 그리고 그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이 책이 가지는 무게는 남다르다. 그리고 사실 이 글을 쓴 시몬 비젠탈 자체가 매우 상징적인 인물이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인 시몬 비젠탈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전쟁범죄조사위원회(American Commission for War Crimes)에서 활동했을 뿐 아니라, 유대역사기록센터 (Jewish Historical Documentation Center)를 설립해 운영하면서 집요하게 나치 전범자들을 추적했다. 그의 노력으로 1100여 명의 나치들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되는데, 한나 아렌트의 저서로 인해 유명해진 아돌프 아이히만 역시 시몬 비젠탈에 의해 법정에 서게 된 케이스다. 그러므로 이 사람이 쉽게 용서나 화해를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죽어가면서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나치에게 시몬 비젠탈은 용서 대신 침묵을 택한다. 왜냐하면 "망각이란 오직 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지만 용서는 인간의 의지에 달린 문제이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고난을 당한 장본인뿐이기 때문"(p.156)이다. 이것이 시몬 비젠탈이 용서나 화해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견해이다. 관용보다는 정의를 우선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의 마지막을 다음과 같이 끝맺음으로써, 이것이 단순히 본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밝히며, 모두의 것으로 논의의 영역을 확장시킨다.
내 인생에서 벌어진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읽은 독자들도, 나와 입장을 바꾸어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p.156)
이 책의 2부는 시몬 비젠탈의 이 질문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답변이자, 시몬 비젠탈의 글에 대한 짧은 논평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용서와 화해에 대한 많은 견해와 입장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허버트 마르쿠제, 프리모 레비, 장 아메리, 달라이 라마, 투투 주교, 디트 프란(영화 〈킬링 필드〉의 실제 주인공), 해리 우(중국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등 총 쉬흔 세 명이 이 질문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밝혔는데, 각자의 정치적, 역사적, 문화적, 신학적, 윤리적 배경에 따라 서로 다른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어떤 독자들에겐 1부가, 어떤 독자들에겐 논쟁적인 2부가 더 와닿을 수 있겠지만, 확실한 것한 가지는 홀로코스트 이후에도 보스니아 인종학살 등 유사한 일들이 인류에 의해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어떤 특정 사건에 국한하여 그 사건의 당사자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합의하고 해결할 것인가의 차원을 넘어 인류 전체의 차원에서, 거시적으로 이 담론을 바라보고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일치하는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본인들의 가치관과 입장에 따라 다 다른 견해들을 가질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용서는 인간의 의지에 달린 문제이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고난을 당한 장본인뿐이라는 시몬 비젠탈의 주장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일개 국가적 차원에서든 세계적 차원에서든 계속해서 반복되는 인류의 비극적 사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포기없이, 중단없이, 지속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시몬 비젠탈이 쓴 에세이의 제목을 '해바라기'라고 지은 이유를 알기 위해서라도 1부의 글은 꼭 읽어보길 권한다. 그가 겪은 일을 100% 고스란히 이해하고 느낄 수는 없겠지만, 아주 적은 부분이라도 공감하게 된다면, 그가 왜 나치 전범들을 찾고 처단하는데 일생을 헌신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용서는 그 다음의 일이다.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는 바로 그 개정판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제1부 ‘해바라기’에는 시몬 비젠탈의 글이, 제2부 ‘심포지엄’에는 그의 질문에 대한 53명의 답변이 실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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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1부는 ‘해바라기’라는 소제목으로 저자인 시몬 비젠탈의 실제 경험담(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말살프로그램으로 행해진 홀로코스트)과 2부인 제목(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에 대한 찬반 토론으로 구성되어있다. 1부의 내용은 많은 역사물 들을 통해 어느 정도 알려진 내용이니까 넘어가고 나도 이 책을 읽고서 나름대로 의견을 제시하려 한다. 물론 책에서 토론한 여러 사람처럼 박식하진 못해서 단편적인 지시만 가지고서 의견을 제시하기 때문에 부족함이 있을 수 있지만 내 의견을 제시하고 싶었다.
우선 여기 의견을 제시한 사람들 대다수가 서양인이다. 물론 서양에서 겪었던 일이니 서양인 중심으로 의견을 듣는 것도 일리 있다 하겠지만 요즘처럼 하나 된 세계에서 동서양을 따지면서 인권을 논하는 것은 우습다. 그래서 나도 쓴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언급된 포에니 전쟁으로 인해 사라져 버린 ‘카르타고’를 두고 정복자였던 로마와 어느 정도 피가 섞인 현대의 유럽인들이 과연 종족 말살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자격이 있는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거의 말살 시킨 미국인들이 과연 이 문제로 왈가왈부할 자격이 있는가? (물론 동양의 역사 속에서도 이와 같은 사례를 찾으라면 많을 것이다). 우선 그 생각이 들면서 저자 시몬 비젠탈의 침묵에 대해 깊은 동감을 느낀다. 사실 누구도 그 현장에서 그와 똑같은 처지를 경험해보지 않고선 강력히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주장할 수가 없다는 것이 내 신념이다. 인간의 잔학성은 주어진 환경에 따라서 나치와 같이 될 수도 있고, 지금 여러 군데서 나타나고 있는 집단살상의 동조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들은 이야기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 일제강점기에도 한국인의 손에 의해 괴롭힘을 당한 사람이 더 많았고, 한국전쟁에서도 북한군보다 오히려 이웃에 있던 남한의 마을 사람에 의해 피해를 본 경우가 더 많다고 들었다. 이러한 인간의 나약함 속에서 누가 누구를 용서한단 말인가? 용서는 피해자 당사자만이 가해자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기독교나 개신교에서는 예수님을 대속 제물로 내세우지만… 이 점에서 볼 때 저자는 우리에게 너무 어려운 숙제를 준 것이다. 더군다나 유대인 아무도 저자에게 대속자의 권한을 위임한 사람은 없다.
동일한 처지에 처해보지 않은 사람의 용서에 대한 견해는 메아리 없는 허무한 외침과 같이 들릴 뿐이다. 여기에 의견을 개진한 사람들이 저자와 같은 환경에 있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주장을 할 수 있을까? 물론 고유의 민족성에 따라 용서의 폭이 더 넓어질 수도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그들에게 피해를 줬던 가해자들을 용서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가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만델라 대통령 같은 경우 그를 괴롭혔던 가해자를 용서하여 국가 통합을 이루고자 했지만, 그것은 통치행위로 반감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용서하지 않은 사람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니까. 우리나라의 경우 김대중 대통령은 국가의 통합을 위해 당신에게 해를 끼쳤던 가해자들을 용서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통치행위일 수도 있고 그릇의 차이일 수도 있다. 같이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피해당한 사람들이 다 똑같이 용서했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 뒤의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하물며 다른 민족과의 관계는 더 말해 무엇하랴. 유대인과 독일인, 한국인과 일본인의 관계가 오버랩 되면서 그래도 우리를 괴롭혔던 일본인들보다는 조금 더 나은 행보를 보인 독일인들을 생각할 때 ‘유대인들은 한국인들보다 조금 더 낫다’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역사란 오묘한 것이어서 세월이 지나면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기록으로만 남을 뿐이고, 그 또한 오래되면 진정성마저 의심받게 되는 것을 오늘의 많은 역사 문헌들을 보면서 다시금 생각해본다. 이 책을 통해서 인간성의 탄력성을 높힐 수 있는 도덕 교육이 강화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성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일이 반복된다면 얼른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고도의 능력을 소망할 뿐이다. 그래야 이상한 권력자가 나타나서 인간성 말살 정책을 펴고자 할 때 자기 자신을 지키면서 그 권력자에 대항하여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가망성이 조금이라도 있을 것이니까… 아니 사회의 흐름 때문에 권력자의 요구대로 인간성 말살 행위에 동참했다가도 얼른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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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출간된 당시 대학, 고등학교, 신학교 등에서 홀로코스트에 대한 정규 과목이 신설된 무렵이어서 토론할 만한 요소가 많은 작품으로 교재로 사용되었다. 저자는 자기가 집단수용소에서 겪은 사건을 회고하며 책의 뒷부분에서 독자에게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는가?” 라고 묻는다. 죽어가는 나치와의 비극적 만남, 그리고 평생 떨쳐내지 못한 인간적 고뇌!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는 개정판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1부 해바라기는 시몬 비젠탈의 글이, 2부 심포지엄에는 그의 질문에 대한 53인의 답변이 실려 있다. 어떤 이는 비젠탈의 침묵을 옹호하고, 어떤 이는 그가 용서를 거절한 것을 비판한다.
유대인을 격리 수용하기 위해 만든 거주지인 게토에 가면 정보를 알 수 있다. 바깥 소식 바로 전쟁 소식을 가져왔다.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이 나누는 이야기가 사실이건 헛소문이건 말이다. 몇 주가 지나도록, 낮에 일하고 땀이 흠뻑 밴 옷을 그대로 입은 채 뒤엉켜서 잠을 자고 악몽을 꾸었다.
SS대원들의 말에 의하면 인원 등록은 단순한 ‘재고 조사’가 아니었다. 일거리를 배분하고,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일꾼들을 골라내 처리하는 대개는 가스실로 보내졌다. 아스카리는 본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동아프리카에서 독일인이 고용한 흑인 병사를 일컫는다. 아스카리들은 노래 부르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음악은 수용소 생활에서도 중요한 몫을 차지했다.
SS대원들은 음악에 맞춰 걸으라며 윽박질렀고, 수용소를 벗어나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군인 묘지를 쳐다보았다. 무덤가마다 해바라기가 한 그루씩 심겨 있었다. 저자는 죽은 군인들이 부러워졌다. 모두는 이 세상과 연결되는 해바라기를 한 그루씩 갖고 나비가 무덤을 찾아와 주었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점차 죽음의 근사치에 스스로를 적응시켰다.
어느 날 간호사가 SS대원 부상자 앞에 데려갔다. 코와 입, 귀를 제외하고 붕대로 감겨 있었다. 그의 이름은 카를이라고 하였다. 저자는 유대인인 내가 죽어 가는 나치의 고백을 듣고 있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대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버지와 불타는 집에서 뛰어내려 죽은 아이가 ‘엘리’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 대원은 죽을 날을 기다리며 여기 누워 있는 기나긴 밤 내내 누구든지 유대인을 만나면 모든 것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자 했다. 부탁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것을 알지만 당신이 대답해 주지 않으면 결코 마음 편히 죽지 못할 거라고 하였다. 저자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도움을 요청받은 사람으로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다. 마음을 정하고 아무 말 없이 방을 나섰다.
저자의 친구나 동료는 시몬이 대원의 말을 들어주었는지 걱정을 하였다. 몇 년이 지나 독일 군인의 어머니를 찾아갔다. 착한 아들이었는데 SS에 지원한 것을 아버지는 싫어했다고 한다.
[심포지엄] 내 생각은 확고하다. 시몬은 그토록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람들을 대신해 범죄자들을 용서해서도 안 되고, 또한 용서할 수도 없다. 자기 이야기를 들어 줄 만한 유대인을 한 사람 불러다 놓는 카를의 행동이야말로 전형적인 나치의 모습이 아닌가.
나는 기독교인이 유대인을 향해 독일인의 범죄를 용서하라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믿는다. 유대인 생존자들을 향해, 당신들이 무려 600만 명의 희생자들을 대신하여 독일인을 용서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는 우리 중 누구에게도 없다.
내가 만약 유대인의 입장이었다면, 나는 분명히 그 SS대원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을 것이다.
그 나이 어린 살인자가 뉘우친 것은 사실이나 그의 뉘우침에 자기 연민이 섞여 있었다. 다른 사람을 죽인 살인자 주제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기는 죽기엔 너무 젊다고 불평하는가 하면 심지어 자기가 불태워 죽인 그 유대인들은 금방 죽었기 때문에 자기만큼 고통을 당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다시 읽어보아도 승질이 나는데 만약 나였다면 욕을 한 보따리 퍼부었을 것이다. 세상에는 마땅히 해야 할 용서도 있지만 결코 해서는 안 될 용서도 있다는 것에 공감한다. 모든 용서가 아름답다고 섣불리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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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마지막 질문을 읽으며, 당신이 참 대단합니다 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나라면 그리 침묵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저자는 이 일을 두고 이리 깊은 생각이 드는것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러고 읽기 시작한 다른 이들의 생각들을 보며, 깊은 생각에 빠질 수 밖에 없구나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SS 대원이 오만했다고 봤다. 저자의 친구의 말처럼 신부를 통해 용서를 빌것이지, 왜 유대인이여야 했는가.라는 말에 그의 오만이라 생각했다. 전쟁중이였고,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고 있던 상황에서 내일을 장담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을 불러다 놓고 용서해달라는 그 SS대원에게 나는 화가 났다. 그러기에 나는 침묵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그가 죽어가는 상황이 아니였더라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을 것인가라는 생각도 함께. 그리고 그가 그토록 어린 나이에 전쟁의 참상을 막 봤던 순간이 아니였더라면. 그래서 나는 저자의 두 침묵(SS대원과 그의 어머니)이 대단해 보였고, 그의 침묵은 유대인을 대표해서가 아니라 적어도 한사람의 인간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에서의 용서는 포함되었다 생각한다.
이 책에 종교인들의 생각이 있다. 다수는 그 용서는 하느님만이 해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라면 하느님조차 피고인일뿐" p.274
이 제목을 보면서 비록 무신론자 이지만 유대교신학자의 이 말은 홀로코스트가 주는 의미가, 그 안에서 저자가 보였던 행동이 얼마나 큰 의미였는가를 생각케 한다. 쇼어가 하느님의 의도였는바는 모르겠다. (신정론의 주장처럼) 하지만 일어나선 안되는 일이였음에는 거의 모든 이가 동의하는 바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연이 존재하는 역사적 사실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가를 놓고 볼때, 지금도 곳곳에서 일어나는 복수라는 이름의 학살앞에서는 그저 씁쓸할 따름이다. 심지어 피해자였던 이들이 팔레스타인에 행하는 공격과 그런 공격을 지켜보며 웃는 가학적 행위에 대해서는 더더욱.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일제 치하에서 일어났던 많은 범죄와 그 청산되지 못한 과거를 떠올 릴수 밖에 없었다. 누구도 동의하지 않았던 위안부 협의부터, 강제징용에 대한 재판 침해까지. 그리고 여전히 사죄없는 일본. 또한 민주화를 위한 많은 투쟁속에서 스러져간 삶들에 대해서도 말이다.
내용을 조금 알고 보긴했다. 뭐 그럴수 있지. 그게 이토록 고민할 거리인가 하면서 읽기시작한책은 저자의 고뇌와 여러 이들의 의견이 나를 깊은 생각속으로 끌고 간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더 나은 앞을 바라보게 하길 바란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해보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이런 큰 일을 겪고 "유대인 역사기록센터"를 설립해 나치 범죄자들을 추적하여 법의 심판을 받게한 저자에게 박수를 치게 만들었다. 개인적인 복수로 그저 그들을 찾아 개인적으로 처단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할 수 있지만, 정당한 법의 심판하에 세웠다는 저자의 정의가 너무도 대단해보여서.
다시는 쇼어같은 범죄가 세상 어디에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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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은 정말이지 견딜 수가 없었다. 우리에겐 먹을 것이 하나도 배급되지 않았다. 매일 잠깐씩 막사 밖으로 나갈 수 있을 때면, 우리는 말 그대로 땅 위에 엎드려서 소처럼 여기저기 드문드문 나 있는 풀을 뜯어 먹었다. 그런 ‘외출’이 있고 난 뒤에는 시체 운반 담당의 일손이 바빠졌다. 왜냐하면 그런 ‘음식’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기 때문이다. 시체는 손수레 위에 차곡차곡 쌓였고, 그 과정은 정말 끝도 없이 되풀이되었다. P.128
저자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학살자들에 의해 89명의 일가친척을 잃고 전쟁이 끝난 후 미국전쟁범죄조사위원회에서 활동했다. 그의 집요한 추적으로 1100여명의 나치 범죄자들이 법의 심판을 받았으며 여러 업적으로 인해 훈장을 받았고 96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이 책의 초판이 1976년에 나왔고, 출간된 직후부터 토론할 만한 요소가 많은 작품이어서 교재로 널리 사용되었으며 미국 출간 20주년을 기리기 위해 개정판으로 새로 나왔다.
저자 시몬 비젠탈은 야노프스카 집단수용소에 수감되어 생활하던 중 어느 날 임시병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기술전문학교에서 SS대원(나치스 친위대)을 만나 그가 저지른 극악무도한 비인간적인 만행에 대한 실상을 듣게 된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눈이 멀어 앞도 볼 수 없는 SS대원은 죽어가는 상태에서 자신의 범죄 사실을 시몬에게 고백하며 용서를 구한다. “제 부탁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건 압니다만, 당신이 대답해 주지 않으면 저는 결코 마음 편히 죽지 못할 겁니다.” 저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끝까지 침묵을 지켰지만 이렇게 예기치 못하고 불편한 만남으로 인해 딜레마에 직면하게 되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단순히 용서해야하나 말아야하나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에서 벗어나 저자가 처했던 상황과는 다르지만 우리도 여전히 과거사 논쟁의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입장에서 각별히 주목하고 고민 해 볼 질문이라고 생각된다.
53명의 신학자들, 지도자들, 작가들 등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보내왔고 여러 답변 중에서 2개만 골라보았다. ●로저 카메네츠(작가, 미국인) 저는 그와 같은 상황에서는 침묵만이 최선의 답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죽을 운명의 포로였던 당신으로서는 말할 수 있는 자유조차도 없었겠지요. 그 상황에서는 용서고 단죄고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가 보기에 당신은 그저’유대인’에 불과했지요. 유대인 한 명이나 유대인 한 사람 혹은 고유한 인생과 역사와 슬픔을 지닌 한 개인이 아니라, 그 냥 ‘유대인’ 으로만 말입니다. 그것은 당신을 제대로 존중하지 않은 행동이었습니다. 결국 당신을 ‘인격체’로 대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를 인간으로 보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당신의 탁월함이었습니다.
●호세 호브데이(카톨릭 수녀, 미국인) 나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후손으로서 평생 이 땅에서 차별대우를 당해 왔다. 악행에 대한 기억은 우리의 마음속에 몇 년이고 그대로, 몇 년이고, 몇 년이고 그대로 남아 있고는 한다. 그리고 매번 내게 용서의 필요성을 상기시키는데, 그것을 결국 용서하기까지 나는 실상 그 악행의 영향력 안에 사로잡혀 있는 셈이다. 연민은 모든 것을 감싸 안으며, 모든 피조물에까지 확장되어 적용될 수 있다. 식물이나 동물, 두 발 달린 갖가지 종류에게도 말이다. 용서는 우리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나 같으면 카를을 용서했을 것이다. 그의 마음의 평화뿐 아니라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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