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정국이어서였을까? 사회/정치에 관한 많은 책들이 등장하고 사라졌었다. 그 수많은 책들은 한결같이 비슷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는데, '사회문제의 원인은 누군가에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주장이 틀린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그러하니까. 하지만,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 스스로가 피해자일 뿐, 가해자라고 이야기하진 않았다. 신기주의 <우리는 왜?>는 다른 책들과 다른 태도로 주제에 접근한다. 사회비평서의 범람 속에서 이 책이 더 반갑게 느껴졌던 이유다. 이 책은 구체적인 사건보다, 전반적인 흐름과 경향을 짚는다. 다른 책들과 달리 이 책이 좀 더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이 책 역시 '안철수 현상'과 같은 시의성 강한 키워드를 다룬다. 하지만, '안철수 현상' 그 자체를 넘어서 우리가 안철수라고 불리우는 기호를 왜 욕망하는지를 다루기에, '안철수'를 빼고 과거의 '고건', '문국현'을 대입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앞으로 등장하게 될 제2, 제3의 안철수를 대입할 수도 있다. 대상이 바뀔 뿐, <우리는 왜?>에서 다루는 현상들은 과거에서 지금까지 계속 되어왔던 현상들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될 현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를 읽는 내내 불편했다. 책이 정면으로 비판하는 대상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라는 이름의 모든 공범자들을 공격한다. 우리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에, 우리가 곧 피해자이자 가해자이기 때문에. <우리는 왜?>는 '우리' 스스로를 향해 거침없는 칼날을 휘두른다. 읽는 내내 불편하고, 저자의 칼날에 상처받기도 하지만 내 시선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도구였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
|
저널리스트 신기주가 말하는 우리의 현실, 우리가 사는 구질구질한 현실에 해답을 전해주는 책은 아니다.
우리는 왜 꿈을 착취당하는지
지금, 우리가 열광하는 사회 전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또 질문한다.
단지 이러한 사회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대선이 끝나고 모두가 멘붕인 지금,
인생의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사회 구조를 알지 못한 채 그렇기에 <우리는 왜>라는 질문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젊어서부터 보수화될 수밖에 없다. 지금 이십대 대학생들의 보수성향은 이념적이라기보다는 시장적이다. 과거의 대학생들이 시장적이라기보다는 이념적 진보였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십대가 보수성을 띠게 된 까닭은 그래야만 시장에서 살아남기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사립대학 인수를 상아탑의 자율권 훼손으로 보기보다는 10년 뒤 졸업할 때 취업에 유리할 거라고 해석하는 게 시장적 보수다. 지금의 이십대는 분명 과거의 이십대보다 보수적이다. 기성세대를 지배하는 시장이 이십대마저 보수로 만들었다. 리영희 선생은 말했다. “새는 좌우 날개로 난다.” 이제 새는 날지 않는다. 새장 안에서 돈을 먹고 산다. - ‘우리는 왜 젊은 보수가 되는가’ 중에서 |
|
* 나는 '우리'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을까. 곰곰히 생각해봤다. 어떤 시각으로 사회를, 나라를 바라봤으며 이해도는 어느 정도였을까.
우리는 왜,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 삶이 팍팍해지고 무미건조해지고 무기력해지는 이유를 궁금해한 적이 있었나. 그저 세상 탓으로 돌리지 않았나.
거울 앞에 발가벗고 서 있는 '우리'를 만날 수 있는 책, '우리는 왜?' 나와 너와 '우리'를 만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만남 후 보다 깊은 사고를 해 보시길 바란다. *
꿈이 표준화되면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진다.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꿈을 이뤄주겠다며 꿈을 흡혈하는 기생산업이 번성하게 된다. -p68
젊은이들은 미디어를 통해 선망을 배운다. 우리가 자기만의 꿈이라고 믿는 가치마저도 조작됐을 수 있다는 얘기다. 현대 사회는 개인의 꿈을 조작한 다음 그 꿈과 꿈을 이루는 방법까지도 패키지상품화한다. 이런 꿈의 착취 구조는 이십대들에게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p71
우리는, 꿈을 착취당한다. 우리가 같은 꿈만 꾸기 때문이다. 자본주의화된 꿈만 꾸기 때문이다. 어떤 직업을 꿈으로 삼는다는 건 산업 구조에서 어떤 기능을 담당하고 싶어 한다는 의미다. 그 기능을 배우기 위해서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 더 비극적인 건 합당한 대가를 치르고 그런 기능을 습득했는데도 사회가 그의 기능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다. 꿈조차도 수요와 공급곡선을 따른다. 사회는 우리에게 사회가 필요로 하는 꿈을 심어주려고 든다. 그런 꿈을 꾸는 순간 노예가 된다. 모두가 같은 꿈만 꾼다. 하지만 진짜 꿈을 꿀 수는 없다. 이젠 자본주의적인 꿈에서 깨어날 때도 됐다. 노예가 될지 별종이 될지는 꿈에 달렸다. -p72
교육이 취직의 수단으로 전락한 상태일 때 학력 디플레이션은 더 빨리 진행된다. 지금 한국이 딱 그런 경우다. 양질의 일자리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켜주지도 못했으면서 이미 직업 교육으로 전락한 대학 교육의 존립 근거마저 앗아가고 있다. -p91
한국 경제는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면서 생산과 저축 중심에서 소비 중심으로 변모했다. 어린 시절부터 소비가 미덕이라고 배우며 자라난 2000년대의 청년들은 어른 경제의 먹잇감일 뿐이다. 어른들은 돈을 흥청망청 쓰는 젊은이들을 탓한다. 정작 어른들은 그 돈으로 산다. 한국 경제는 젊은 세대를 볼모로 살아가고 있다. -p97
우리는 젊어서부터 보수화될 수밖에 없다. 지금 이십대 대학생들의 보수성향은 이념적이라기보다는 시장적이다. 과거의 대학생들이 시장적이라기보다는 이념적 진보였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십대가 보수성을 띠게 된 까닭은 그래야만 시장에서 살아남기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사립대학 인수를 상아탑의 자율권 훼손으로 보기보다는 10년 뒤 졸업할 때 취업에 유리할 거라고 해서하는 게 시장적 보수다. 지금의 이십대는 분명 과거의 이십대보다 보수적이다. 기성세대를 지배하는 시장이 이십대마저 보수로 만들었다. 리영희 선생은 말했다. "새는 좌우 날개로 난다." 이제 새는 날지 않는다. 새장 안에서 돈을 먹고 산다. -p106
지금 한국 사회는 경제적 혁명이 절실하다. 계층 양극화와 산업 불균형과 세대 착취가 임계점을 넘어섰다. 그러나 한국의 군중은 민주주의를 외칠 줄은 알아도 자기 이익을 양보하는 비합리적 손실을 인내할 줄은 모른다. 라디오에서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해서 골목 상권의 숨통을 틔워주는 게 어떠냐는 논의가 벌어졌다. 아주머니 청취자가 말했다. "영업시간 제한에 반대합니다. 불편해요. 시장에 가면 카드도 잘 안 받고 품질도 별로거든요. 영세상인분들을 위해 소비자의 권리가 침해당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우리의 적은 우리다. -p139
초현대자본주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차별을 동력원 삼아 움직인다. 홉스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불안한 자연상태로 봤다. 반대로 현대자본주의에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차별상태야말로 가장 이상적이고 안정적인 자연시장이다. 우리가 남들과 다른 옷을 입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새 옷을 살 까닭이 없다. 우리가 남들처럼 국민임대주택에 살고 싶어 한다면 은행 대출이자를 물어가며 몇 억 대의 아파트에서 살 필요가 없다. 우리가 나와 상대를 구별되게 만들어야 자본주의가 돌아간다. 착취의 주체와 대상이 명백했던 과거와는 크게 다른 점이다. 차별은 근원적이다. 정서적이다. 우리 모두가 차별의 주체이자 대상이다. -p144
1800년대는 자유롭지 않아서 불행하다고 했다. 1900년대는 평등하지 않아서 불행하다고 했다. 2000년대는 열등해서 불행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우리는 늘 불행하다. -p149
한국 사회는 이미 기업사회로 진입했다. 기업사회는 단순히 기업이 득세하는 세상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기업의 논리로 생각하고 사고하는 세상이다. 지금 한국은 대통령 CEO를 가진 (주)대한민국이다. 기업적 사고방식은 우리 안의 모순이다. 재벌을 비판하면서도 총수 일가의 옷차림을 유행으로 받든다. 이제 재벌은 스스로를 아이콘으로 만들어 소비를 부추긴다. 우리는 스스로 효율성과 성과를 최우선시하는 사고방식을 내면화시킨다. 그러다보면 논리적인 귀결로 효율적인 대기업을 두둔하게 된다. 정치는 국민을 따라간다. 우리가 기업처럼 생각하는 한 정부는 기업을 이길 수 없다. 게다가 재벌은 눈에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20대 재벌 회장들을 모아놓고 훈화 좀 한다고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다. 500대 기업 여기저기에 숨어 있는 숨은 재벌들이 진짜 싸울 상대다. 그들은 스스로를 드러내지도 무언가 책임지지도 않는다. 기업집단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보이지 않는 재벌을 법의 테두리 안에 넣어야 한다. 이대로라면 정치의 패배는 필연이다. -p191
미국에서는 경영학이 철학을 대신한 지 오래다. 사람과 조직과 돈과 미래를 읽는 경영자와 경영학자들은 분명 현대의 철인들이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이라고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그룹 명예회장은 말했다. "자본주의에서 기업을 경영하려면 불교에서 가르치는 자비와 같은 남에 대한 배려가 바탕에 있어야 합니다." 듀크대 경제학과의 댄 애리얼리 교수도 말했다. "사회 규범보다 시장 규칙의 번식력이 더 크다는 거죠. 그래서 사회 규범이 적용되던 분야에서도 시장 규칙이 한번 노출되고 나면 사회 규범은 힘을 잃고 마는 겁니다." 인간에 대한 니체적 통찰이다. -p211
<죽음의 무도>에서 시인과 작곡가처럼 피겨스케이터 김연아도 예술가였다. 예술가 김연아의 작품은 '롱 에지'였다. 어쨌든 김연아는 <죽음의 무도>로 우승했다. 언론은 "김연아가 '롱 에지' 판정에도 불구하고 우승을 했다"고 썼다. "2위인 안도 미키에게 완승했다"고 표현했다. 김연아가 표현한 죽음의 환희를 우리는 완승과 우승으로 해석한 셈이다. -p261
스티브 잡스와 이건희 회장은 경영인으로서 여러 모로 닮아 있다.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고 회사를 정보기관처럼 운영하는 비밀주의도 흡사하다. 최고경영자가 제품 홍보문구의 철자 하나까지도 신경 쓸 만큼 세밀한 부분에 집착한다는 점도 똑같다. 독재형 CEO라는 것도 똑같다. 다만 가치관이 달랐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으로 삼성을 지키고 싶어 했다. 삼성에는 이건희 회장을 정점으로 높이 솟아 있는 거대 기업 집단의 자부심과 자만심과 자신감이 배어 있을 뿐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다. 그것이 우리가 스티브 잡스를 전설로 기억하는 이유다. -p274
외환위기 직후 내수 경기가 죽어가자 정부는 카드 발급 규제를 풀어버렸다. 욕망을 통제해줄 지표를 낮춰 대중의 소비를 늘린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게 만든 거품은 카드대란으로 터졌다. 지난 10년간 그런 식이었다. 조종자들은 우리의 욕망을 자극해서 경기를 부양했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부추겼다. 달아오른 경기의 단물은 조종자들이 차지했다. 거품이 꺼졌을 때 고통은 우리의 몫이었다. 우리는 누구도 원망할 수 없었다. 자신의 욕망에 휘말려 뛰어든 진흙탕이었기 때문이다. -p296
행복한 국민은 진실한 국가에 사는 백성이 아니다. 통치를 최소화하는 국가의 국민이다.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는 민주주의와 반민주주의로 나눠졌다. 다음에는 분배와 성장이라는 경제 이슈가 대척점이 됐다. 이제부터는 정부와 제도, 사회와 국가를 신뢰할 것이냐 아니냐에 있다. 의심은 앞으로 한국 사회를 끌고 나갈 커다란 추진력이다. 우리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 -p314
|
우리는 시민이자 유권자이기 이전에 이미 경제주체이자 소비자이다. 말이 좋아서 경제주체이고, 소비자인 것이지 사실은 노예이고 부속품이고 소모품이고 호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해하지 못할 행동들을 하게 될 수 밖에 없다. 결국, 우리는 모두 손에 손을 잡고 지옥으로 나락으로 끌려들어가고 있는 나약한 객체에 불과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