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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창문에는 비밀이 있다-김경욱 외 8명, 헬로, 미스터 디킨스
"모든 창문에는 비밀이 있다-김경욱 외 8명, 헬로, 미스터 디킨스" 내용보기
아홉 명의 작가 중 한 명과 SNS 친구인 덕분에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비교적 일찍 접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읽어보지 않았다. 책 소개를 살펴보면서 찰스 디킨스의 작품을 꼭 읽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찰스 디킨스의 그림자는 그리 짙게 드리워지지 않은 듯했다.2012년은 찰스 디킨스가 탄생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였다.
"모든 창문에는 비밀이 있다-김경욱 외 8명, 헬로, 미스터 디킨스" 내용보기



아홉 명의 작가 중 한 명과 SNS 친구인 덕분에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비교적 일찍 접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읽어보지 않았다

책 소개를 살펴보면서 

찰스 디킨스의 작품을 꼭 읽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찰스 디킨스의 그림자는 

그리 짙게 드리워지지 않은 듯했다.


2012년은 찰스 디킨스가 탄생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런 의미에서 주한 영국문화원의 지원을 받아 

제작된 도서가 바로 『헬로찰스 디킨스』이다

2012년 끝자락에 출간된 탓에 책 홍보를 겸한 낭독회 행사는 

공교롭게 201주년이 되는 2013년 1월에 개최되었다

운 좋게도 그 행사에 참석하는 기회가 주어져 

나는 영국문화원이란 곳에 처음 가보았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 리뷰는 책에 대한 내용이 삼 분의 일

낭독회 행사에 대한 내용이 삼분의 이를 차지할 예정이다

한 번 더 솔직해지자면 낭독회에 가기 전 

책을 다 읽고 가지 않았다

아니한 작품도 제대로 읽고 가지 않았다

원래 그런 경우 나는이벤트에 당첨되더라도 참석하지 않는다

작가를 보러 갈 수도 있겠으나 

그 작가가 낭독할 책을 읽지 않은 상태로 앞에 앉아 있는 건 

작가에 대한 예의를 둘째치고서라도 

미리 책을 열심히 읽고 나름대로 질문할 거리도 생각해보았지만 

아쉽게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현재 한국 문학 중 소설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젊은 작가들을 한 자리에서

그것도 일곱 명이나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던 것이다

소설가 박성원과 배명훈이 함께 하지 못해서 조금 아쉬웠지만 

그들의 빈자리를 나머지 일곱 명의 소설가가 잘 채워준 것 같아 다행이었다.



낭독회는이렇게 말하면 좀 거칠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엉망이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낭독회 공간 자체가 정말 별로였다

그 많고 많은 공간 중에서 왜 하필 사방이 뚫려 있는

지나치게 개방적인 공간을 택했는지 여전히 의문이다

낭독하는 소설가의 목소리가 가득 차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개방된 곳이다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

그들이 나누는 대화아이들의 울음소리 등이 거슬려서 

제대로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자리배치도 세로로 긴 직사각형으로 해서 

맨 앞에 일곱 명의 소설가와 사회자가 앉고 

그 뒤로 행사 참여자들의 좌석이 길게 놓여 있었다

영화관처럼 뒤로 갈수록 높아지는 구조가 아닌 

평평한 지대에 접이식 의자를 깔아놓은 탓에 

앞에서 네 번째 줄에 앉았음에도 앞사람 머리에 가려 

소설가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조명도 너무 밝고 심지어 낭독할 때 작게 깔리는 배경음악조차 없어서 

낭독의 맛을 반감시켰다.


뿐만 아니라 사회자로 초대된 씨는 심한 수다쟁이였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려고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그렇게 아는 척하는 게 버릇인지 

그 날 처음 뵌 분이기에 알 수 없지만

그 낭독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사회자가 말이 더 많은 건 

독자를 대신해서 그만큼 높은 수준의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한 과정이 아닌가

그렇지만 그 행사가 사회자 J의 

찰스 디킨스 다시 읽기처럼 느껴졌다는 건 

배가 산으로 가고 있다는 증거 아니었을까.



낭독회 행사 이야기는 이쯤으로 끝내도록 하고 

본격적으로 책을 살펴보자

우선 표지가 정말 예쁘다

안개가 자욱이 깔린 골목 사진은 

헬로찰스 디킨스』라는 책 제목의 느낌을 잘 살려냈다고 생각한다

헬로하고 인사하면 안개를 헤치고 

저 너머에서 찰스 디킨스가 뚜벅뚜벅 걸어 나올 것 같다

그리고 찰스 디킨스의 많은 작품 중에서 

『두 도시 이야기』와 『크리스마스 캐럴』로 한정시킨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 덕분에 같은 작품을 고른 소설가끼리 

그들의 작품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같은 이야기를 얼마나 다르게 풀어냈는지

또 그 속에서 비슷한 점은 무엇인지 발견해낼 수 있었다.


김중혁박성원최제훈김경욱김중혁 

이렇게 다섯 명의 소설가는 찰스 디킨스의 작품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면 

하성란배명훈윤성희백가흠 네 명은 

찰스 디킨스 소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정보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전혀 눈치 채지 못할 작품을 썼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소설가들이 

자신이 쓴 작품에 그리 큰 애정을 보여주지 않아 아쉬웠다

물론 쑥스러울 것이다안다

하지만 쓰다 보니 제목과 내용이 상관없다는 것을

생각만큼 잘 써지지 않아 재미없을 것이라는 말을

해야만 했을까 싶다

솔직해서 좋긴 한데 

그 솔직함이 당신의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감동했을 독자에게 

혹여나 무례로 다가가지 않았을지……. 


이 책의 리뷰는 여기에서 마무리 지어야겠다

소설가가 낭독한 부분을 아래에 싣는 것으로 

리뷰의 부실함을 조금이나마 채워지길 바랄 뿐이다.


 

그녀는 사흘 동안 산 속을 헤맸다

주머니 속에 든 후르츠 캔디를 천천히 녹여 먹었다

숲은 어둠이 금방 찾아왔다

누군가 거대한 어둠의 그물을 뿌리는 듯했다

삽시간에 사방이 어두워지면 자신의 발과 손조차 보이지 않았다

구멍이란 구멍을 농밀한 어둠이 틀어막았다

본능적으로 밤이면 걸음을 멈추고 나무둥치에 기대앉았다

새벽이 밝아오길 기다리면서 그녀는 후르츠 캔디를 천천히 빨아 먹었다

처지와는 상관없이 사탕은 다디달았다

녹고 녹아 마지막에 바늘처럼 뾰족해진 사탕 조각이 그녀의 혀를 찔렀다

단맛 뒤에는 늘 비릿한 피 냄새가 뒤따랐다.

하성란두 여자 이야기」 중에서

  

그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갑자기 찬 바닥에 무릎을 꿇고 신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너무 일찍 잠이 깬 탓이 달리 할 일도 없기도 했지만

창밖에 그려진 신성함 가득한 풍경이 그를 기도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다가 이내 소리 내어 큰 소리로 기도했다

고함치다시피 그렇게 얘기하지 않으면 신께서 듣지 못할 거라 믿는 듯

눈 내리는 고요한 새벽을 뚫고 하늘에 닿을 만큼 큰 소리로 기도했다.

고즈넉하던 창밖의 풍경이 그의 기도 소리에 깨어나는 듯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그는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차디찬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몸이 불편하니 자기가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는지도 금세 까먹었다.

백가흠수도원 오르는 길더 송The song 4」 중에서

 

어젯밤 꿈에 우주는 유니버스는 지구 같았고 그보다는 대도시 같았다

그것에 대한 가치 평가는 밥을 짓지 않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하면 된다

근데 하지 않아도 된다

우주는 뭐라 하여도 어찌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혹은 어찌하여도 뭐라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곳에서 나의 세대라고 하는 사람들은 모든 세대를 상대로 싸워 이겼고 

그들이 선택한 방법으로 우주를 살고 있었다

지구적 우주대도시적 우주번화가적 우주

고층 신축 건물적 우주미분양 아파트적 우주

그곳은 밀림과 늪과 집시와 거지와 소수민족과 

버뮤다 삼각지대와 혹한과 혹서가 없는 곳이었다.

박솔뫼밥 짓는 이야기」 중에서

 

잘못 배달된 엽서를 받고서야 언니는 

지금까지 진심으로 누굴 미워해본 적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유 없이 자신을 떠난 남자를 욕하기는 했지만 그게 다였다

언니가 괴로운 건 그 남자가 미워서가 아니었다

왜 남자가 자기를 떠났는지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지금처럼 휴대폰만 있었어도

그러면 언니는 전화를 해서 물어봤을지도 모른다

소리를 한 번이라도 질러보았을 것이다

헤어지고 난 뒤에야 언니는 남자에 대해 아는 거라곤 

이름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화번호도집 주소도몰랐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고 

그러자 남자의 얼굴은 기억에서 사라졌다

어떨 때는 그런 생각이 들어

그 사람은 정말 살아 있던 사람일까

내가 유령을 짝사랑한 건 아니었을까?”

윤성희날씨 이야기」 중에서



모든 창문에는 비밀이 있었고

기민지는 그 비밀이 늘 부러웠다

비밀을 가질 수만 있다면 

누군가 바깥에서 자신의 창문으로 돌을 던져도 

상관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벽을 쌓는 것보다 창문을 만들기가 훨씬 어려웠다.

김중혁픽포켓」 중에서 



크리스마스이브에 산타클로스 빼고는 다 만나셨군요

제가 보기에 그 세 정령들은 별문제 될 게 없습니다

시간의 정령이란 게 이미 우리 안에 있는 존재들이고

딱히 해를 끼치거나 하지는 않으니까요.”

최제훈유령들

 


K는 고개를 돌린다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 길에는 차도 사람도 없다

주변 건물의 모든 창은 불을 끄고 담요를 덧댔다

도시는 담요 뒤에서 숨죽이고 있다

빛의 도시의 빛 한 점 없는 밤이다

5월의 녹색 밤이 거대한 담요처럼 도시를 짓누르고 있다

담요 밖에서 탱크가헬리콥터가, M16이 소리 없이 진격해오고 있다

K는 눈을 감는다

녹색 담요의 밤이 눈꺼풀 안쪽에서 흘러내린다

그러니까 저기는 고요한 탱크의 밤거룩한 헬리콥터의 밤빛나는 M16의 밤

여기는 김치찌개의 밤라면의 밤누룽지의 밤.

김경욱크리스마스 캐럴







b*****9 2013.01.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