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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도 더 전에 혼자 경주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당연히 석굴암에도 갔었는데, 고등학생 때 수학여행가서 들른 뒤, 오랫만에 다시 찾은 거였다. 그때 본존불 앞에서 부처님을 향해 두손 모아 합장하며 무언가를 기도하고 있던 중년여성의 모습이 지금까지 눈에 선하다. 공손하게 엎드려 절하고 있던 등에서 간절함이 묻어나와서 부디 저 아주머니의 바람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불자가 아닌 나도 덩달아 부처님께 합장했었다. 그러면서 그때 새삼 느꼈던 것이 나처럼 문화재로, 예술품으로 여기고 석굴암을 구경하거나 감상하러 온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불자들에게는 이곳이 신앙의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석굴암은 신앙의 공간이라기 보다는 그저 문화재도 아니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적이자 조형예술품의 반열에 올라있다.'나라의 정화, 조상의 표상:일제 강점기 석굴암론'에서는 석굴암이 어떻게 최고의 문화재, 유적의 위상을 갖게 됐는지, 그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그 과정은 자연스럽다기 보다는 상당히 전략적으로 추진된 것이었다. 일제에 의해. 일제가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로 조선 문화재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다분히 지배국의 의도가 스며들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석굴암의 위상이 일본이 계획한 대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석굴암이 조선을 대표하는 문화재, 혹은 조형예술품으로 자리잡게 되는 그 결말이 아주 통쾌했다.
일제는 천정이 무너지고, 내부가 흙에 묻혀있던 석굴암을 복원하고 보수했다. 일반인들이 찾아가기 용이하게 공사하고, 그런 뒤 석굴암을 최고의 문화재이자 불교예술의 정수이자, 조선 최고의 예술품이라고 대중들에게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경주와 석굴암은 볼 만한 관광지로 부상하게 됐다. 주목할 것은 이 과정이 모두 관(官)주도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일본 총독부에서는 대체 무슨 목적으로 거액의 예산까지 투입해가며 석굴암을 대대적으로 보수해서 대중에게 알렸고, 조선 최고의 문화재이자 유산이라는 이미지를 확고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서구는 식민지 문화재와 유물,유적들을 발굴, 복원하고 박물관에 전시했다. 그럼으로써 식민지에서는 문화재를 관리할 능력이 없고, 제국이야말로 대신 복원하고 관리할만큼 능력도 있고 나아가 식민지를 다스릴만한 나라라는 것을 과시했다. 식민지 통치를 합리화하는 근거로 활용한 것이었다. 일본이 석굴암을 대한 방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과정에서는 사진이라는 근대 문명 기술이 지대한 역할을 담당했다. 일본은 석굴암 보수 전과 후를 비교하는 사진을 알리는 것으로, 조선의 야만과 일본의 문명이라는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강조했다. 그럼으로써 과학의 나라, 문명의 나라 일본이 문화재의 가치조차 모르는 열등한 나라 조선을 지배하는 것으로 이미지를 만들었고, 지배에 대한 정당성을 증명한 셈이었다.
일제는 문화재 관련 법을 만들고, 조직을 만든 뒤 조선의 주요 문화재와 유적을 담은 도보를 제작했다. 도보에는 사진과 함께 소재지 등 기본적이 정보가 담겨져 있었고, 도보는 대일본제국이 조선 문화재와 유적을 가치를 알아주고 관리하며 선정을 펼치고 있다는 홍보용도로 쓰여졌다. 데라우치 총독이 국내외 손님에게 이 도록을 선물한 것도 순전히 홍보 의도에서였다. 일본은 석굴암을 미학적 견지에서 조선 최고의 아름다움을 지닌 문화재이고 예술품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 평가는 결코 칭찬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 배경에는 신라시대야 말로 가장 절정의 시대라고 규정하면서 조선은 쇠퇴하는 나라라는 것을 부각하자는 숨은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일본의 의도는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석굴암은 조선을 대표하는 문화재와 예술품으로 조선인들에게도 각인됐으니.
일본이 애써 구축했던 석굴암의 이미지는 조선인들의 석굴암에 대한 애정으로 인해 무너졌고, 오히려 조선에 대한 긍지와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표상으로 부각되는 반전이 일어났다.
수학여행이나 답사등을 통해 석굴암이 세계에 자랑할만하고 가치가 있는 문화재이자 예술품이라는 인식이 학생 등 조선인 사이에 공유됐다. 그리고 신문이나 잡지에 석굴암을 매개로 민족의식을 일깨우며, 조선이야 말로 마땅히 돌아가야 할 민족적 지향점으로 여기게 됐다. 일제가 전혀 의도하지 못한 조선의 정화(精華)라는 방향으로 튀어버린 것이다. 더이상 일제의 전술이 먹히지 않았고, 석굴암은 일제의 홍보물이 아니라 조선인들이 민족적 자아를 일깨우며 탈식민의 의지를 높이는데 일조하게 된 것이다. 일제통치의 정당성을 증명해주는 석굴암에서,오히려 조선의 정체성과 민족정신을 상징하는 석굴암으로 이미지를 전복하는 게 성공한 것이었다. 총독부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된 셈이었으니 지고 있던 팀이 9회말 2사후 끝내기 안타로 역전승을 거둔 것 만큼이나 짜릿했다. 석굴암은 이런 우여곡절 끝에 20세기에 이르러 조선의 표상으로 자리잡았고, 지금까지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사랑받는 문화재이자 예술품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나 역시나 보통 대한민국사람처럼 석굴암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일본의 속내를 알지는 못했는데, 일제는 이렇게 문화재를 적극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석굴암을 복원하고 보수하면서 조선인들에게 열등감을 심어주고 지배당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게 만들었던 것이다. 일종의 상징조작을 감행한 것이고, 그 방법은 이미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자신의 식민지에서 써먹은 수법이었다는 점에서, 서구나 일본이나 도긴개긴이었다.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일단 석굴암이란 소재부터 관심을 끌만했고 신선했다. 그리고 마치 음모론을 추적해서 그 가면을 벗겨내고 실체를 밝혀내는 과정을 함께하는 듯 해서였다. 일제의 계략에도 불구하고 석굴암은 조선인의 민족애를 일깨워주는 자리로 돌아올 수 있어서 통쾌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석굴암은 예외에 속하는 행운이 아니었을까. 일제가 반출하거나 약탈하고 여전히 환수하지 못하고 있는 문화재에 생각이 미치고,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그 문화재들의 불행한 운명이 마음에 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