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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화숙은 한국일보의 기자이다. 기자생활만 30년이 넘었고, 최근 몇 년간은 지면에 칼럼을 주로 싣고 있다. 트위터나 인터넷의 기사로 그의 글을 접하곤 했었는데, 글쓰기에 대한 오랜 내공과 사실을 꿰뚫어 본질에 접근하는 힘있는 서술방식은 칼럼니스트 중에 단연 발군이다. 이 책은 저자가 2008년부터 지면을 통해 쓴 칼럼과 방송에서 논평한 글을 정리하여 펴낸 것으로, 시기별로 이슈가 되었던 여러 사건과 문제들을 글을 통해서 날카롭게 비판하고,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방향성과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글은 누군가에게 읽혀지기 위해 쓴다. 개인의 일기를 제외하고는 모든 글은 독자를 대상으로 한다. 물론, 일기조차도 미래의 어느 순간에 나 자신이 다시 꺼내어 읽어보기 위해 쓴다고 보면 모든 글은 독자가 있다. 그래서, 제대로 된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독자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기자도 마찬가지다. 독자의 관심을 끌어야 기사가 된다. 물론, 독자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는 기사가 가장 좋은 기사라는 건 아니다. 최근 인터넷 기사들은 클릭수를 높이기 위해 선정적인 사진과 단어를 경쟁적으로 배치하곤 하는데, 뜨내기 손님의 관심은 받겠지만 정작 독자의 시선으로부터는 외면당한다. 기자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하루에 생산되는 수많은 기사들 중 대부분이 일회용품처럼 잠깐 등장했다 사라지고 만다. 기자는 사회의 문제를 고발하고, 부정부패와 비리를 감시하는 역할도 한다. 그래서 언론을 사회의 공기라고 하는 거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뉴스거리가 안 된다. 대부분 사회의 문제는 고질적이다. 공무원사회의 비리, 정치권의 부정, 기업의 위법은 과거부터 계속 돼왔기 때문에 기사로 써봤자 별로 가치가 없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서화숙기자가 글을 쓰는 방법으로 제안하는 것이 ‘새로운 사실과 해묵은 문제 사이에서의 균형잡기’라는 거다. 사람들은 새로운 사실에만 귀 기울이지만, 문제는 대부분 해묵은 오래된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이슈와 사건들을 과거의 해묵은 문제와 결합시켜서 독자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도 수면위로 올려서 독자와 사회를 환기시키는 거다. 늘 그런 방식으로 사안을 접근해서 글을 쓰고 있으며, 그래서 저자의 글이 독자들에게 보다 가깝게 느껴지고 새롭게 다가서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기자의 여러 글 중에서 눈에 띄는 칼럼 한편을 소개하면 ‘스타와 지식인’이라는 글이다. 스타와 지식인은 어떻게 구분하는가에 대한 명쾌한 해석이 돋보이는데, ‘배웠느냐 연예인이냐 상관없이 스스로에게 주목하게 하면 스타이고 메시지에 주목하게 하면 지식인이다’라고 말한다. 이 논의에 의하면 아무리 박사학위를 받고 일류대학에 교수를 하고 있어도 인기와 유명세에 힘입어 자신을 브랜드화 시켜 상업적 돈벌이에 활용한다면 이는 스타에 가깝다. 문제의 많은 부분을 자신에게 찾으라 하고, 시스템을 바꾸는 데는 아무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몇몇 지식인이 정작 힐링의 대상이 되어야 할 소외계층의 주머닛돈을 벌어들이는 행태는 그들의 사회적 위치와는 상관없이 지식인의 행동은 아니다. 오히려 인기연예인이지만 이효리가 유기견 보호에 힘쓰고 김여진이 홍익대 청소노동자와 연대할 때 그들은 자기 소신을 지키고 메시지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지식인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뛰어난 묘사와 독특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유려한 글쓰기도 매혹적이지만, 저자와 같이 사실에 근거하여 내용이 분명한 글을 읽을 때의 쾌감도 그에 못지않다. 게다가 사회를 보는 따뜻한 시선과 한편에 기대지 않고 사안을 보는 균형감, 부정부패를 견디지 못하는 엄정함 등을 비추어 봐도 저자는 좋은 기자이자 말 그대로 지식인이지 않을까.
학생으로 하여금 또래의 생활태도를 감시하게 하면 또래의식이 생겨나기 힘들다. 아무리 좋게 말해도 어른의 끄나풀로 청소년을 쓰는 것이니 이렇게 비교육적인 일이 어디 있을까(…) 민주주의를 체험하기는커녕 어린이의 심성을 파괴하는 것이 초등학교 학생회장 제도이다.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야 할 강릉의 학생회장은 달리 보면 은폐된 사이비 학교 민주주의가 빚어낸 괴물이자 희생자이다.(…) 초등학교 과장의 어린이는 누구나 동등하게 교사로부터 아낌없는 보살핌을 받아야 할 나이이다. 고등학교에서 선도부라는 것을 없애야 한다. 중고등학교에서 학생회장은 말 그대로 자치회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청소년의 심성을 파괴하는 일은 이제 그만하자. 학교는 분명 지식을 익히는 곳이지만 동시에 친구들과 어울리고 도덕심을 닦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 과도한 학습은 청소년의 정신을 갉아먹어 사회 전체가 큰 비용을 치른다.(…) 공부는 혼자서 판단하고 살아갈 능력과 스스로를 성찰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다. 사교육이 나쁜 것은 지식 주입을 공부의 전부로 여겨서 스스로 탐구하고 성찰하는 능력을 빼앗기 때문이다. 부자들이 더 유리해서만은 아니다.(…) 우격다짐으로 쟁여넣은 지식이 명문대를 들어가는 기준이 되니까 명문대를 나와봤자 세계인들과의 경쟁에서는 하위다. 영국의 시인 존 윌멋은 ‘동물과 사람이 다른 것보다 사람과 사람이 더 많이 다르다’고 했다지. 울퉁불퉁한 청소년기를 거쳐서 반듯한 성인이 되는 것이 반듯한 청소년기를 거쳐서 편법으로 재산을 늘린 울퉁불퉁한 성인이 되는 것보다 좋다. 배웠느냐 연예인이냐 상관없이 스스로에게 주목하게 하면 스타이고 메시지에 주목하게 하면 지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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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간 있었던 다양한 사건들. 나와 관계 없다는 무관심, 일상에 찌들어 버린 무기력, 쓰레기 정보의 범람으로 인한 피로로 인해 애써 무시하고 지나쳐왔던 사건들. 아니, 어쩌면 내게는 그런 사건들의 전후 인과관계를 비롯해 그 사건들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사고능력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나 자신에게 실망하면서도 이 사회 전체가 어떻게든 균형을 잡고 굴러가리라 믿는 것은, 이 책의 저자와 같은 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적당한 분량의 칼럼들을 읽고 있으며 이런저런 안개속 상황들이 정리되는 느낌도 받고, 내 견해와 비교하며 나만의 온전한 생각도 만들어보는 기회로 삼기도 한다. 다만... 책 속의 많은 주제들이 아직도 해결,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현실적인 좌절은 어쩌지 못했다. 과연 우리의 미래는 어떨까? 저자가 말하는 민낯은 가면을 벗어던지고 난, '커밍아웃'을 하고 난 뒤의 부끄러운 얼굴이다. 누구나 부끄럽지 않은 민낯을 가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아니, 그런 세상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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