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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 영토를 중심으로 유라시아 대륙에 흩어져 살고 있는 ‘고려인’에 대해 우리가 인식하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90년 소련이 붕괴와 냉전의 종식이 계기가 되어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통교하게 된 후부터 그들의 존재가 한국의 일반인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 책은 이른바 ‘고려인’이라고 하는 우리 동포들의 150년이라는 부침과 영욕의 역사를 전면적으로 개괄한 통사(通史)이며, 더불어 통한의 역사(痛史)라고 할 수 있다. 가난과 지배층의 수탈을 피해 연해주로 흘러 들어가서 정착한 것이 대략 1860년 정도라고 한다. 그 후 조선이 일제에 나라를 잃게 되어 독립투쟁을 위해 연해주로 독립투사들이 모이게 되어 그야말로 가열찬 독립운동을 하게 된다. 유명한 안중근 의사나 홍범도 장군, 헤이그 밀사 중 한 사람이 이상설 등이 바로 그들이다. 또한 척박한 땅을 온몸으로 개간하고 농사만 지을 줄 아는 가난한 동포들도 모두 조국의 독립을 위해 뛰어들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현재의 우리나라가 연해주와 고려인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느껴야 한다.
고려인들은 조국을 잃고 타국에 기생하는 처지에서 국제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릴 수밖에 없었고, 그 와중에 셀 수도 없는 생명이 무고하게 스러질 수밖에 없었다. 차르 시대에는 러시아와 일제의 사이에서, 볼셰비키 혁명의 와중에서는 홍군과 백군의 사이에서, 그리고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결정적으로 1937년에 스탈린에 의해 단행된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는 연해주 고려인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다. 그들은 맨몸만 기차 화물칸에 싣고 중앙아시아 황무지 벌판에 버려졌다. 하지만 그들은 거기에서 놀라운 생명력과 창의력을 발휘하며 그곳 원주민들이 결코 이룰 수 없는 농업을 일으켰다.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에 정착하여 생산하는 농업 생산물은 구소련의 농업생산력의 제고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것이다.
그후 냉전기에 얼마간 안정된 생활을 하던 고려인들은 소련이 분열되어 민족에 따라 여러 나라로 분리되면서 또 다시 뿌리를 잃고 다시 부표(浮漂)하게 되었다. 물론 이 지구상에서 적응력을 따지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우리 민족 고려인들은 다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의 상황에 맞춰 적응해가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전문적인 역사학자는 아니다. 하지만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10여년 이상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각지를 찾아다니며 현지답사를 하고, 관련 인물들과 인터뷰를 하고, 많은 사료를 모아서 ‘고려인의 역사’를 충실하게 엮어내었다. 책 뒤에 묶여있는 수많은 참고문헌만 보더라도 저자가 얼마나 이 책을 쓰기 위해 고심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고려인들의 역사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연해주를 중심으로 한 독립투쟁사의 한 면도 읽을 수 있고, 중간에 끼워져 있는 고대와 중세에서 우리 민족의 중앙아시아 관련사를 배울 수도 있다.
누구나 현재 이 세계는 글로벌 경제 체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 체제라는 것이 무조건적인 개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니 어쩌면 글로벌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우리’라는 닫힌 개념이 더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대륙 곳곳에서 자리하고 있는 고려인 50만 명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한반도 남북을 연결하고 고려인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 퍼져있는 한민족을 아우르는 ‘한민족 네트워크’의 구성은 미래 우리 경제 발전의 엄청난 저력을 발휘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재외 동포들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자세를 길러야 할 것이다. 책 안에서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취업하기 위해 온 고려인 김 갈리나가 말하는 한국 사람에 대한 불만은 이 땅의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참 부끄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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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에 대한 조명은 얼마 전부터 대중 사회까지 퍼져 들어왔다. 아마도 뿌리에 대해 생각해볼 여유가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에 거주하는 2세대의 머리는 고려인들 만큼 혼란스러웠다. 러시아, 소비에트는 한국과는 크게 반발적 감정이 얽혀있지 않지만, 일본은 좋지 않은 감정이 있을 수밖에 없는 역사와 지금까지 이어져온 역사 왜곡으로 인해 일본 디아스포라는 정체성에 매우 큰 혼란을 빗었음을 예전에 책을 통해 접했다. 이번 고려인에 대한 디아스포라적 관점은 무척 새롭다. 왜냐하면, 고려인, 러시아어로 한국인인 까레이스키는 일본 만큼 자주 언론에 거론되지 않았고, 관련 책도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제대로 고려인 삶의 질곡을 확인할 수 있어서 기뻤으며,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다. 50만명이나 되는 고려인이 일제와 스탈린에 의해 필요없이 힘든 삶을 살아야했던 우리 과거가 일단 통한이었다. 국력이 강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시대의 흐름을 잘못 탄 왕조와 그 측근들이 최우선적으로 원망스럽다. 연해주라는 지역은 아직 가본 적이 없지만, 시간이 된다면 연약하여 보살펴줘야했던 조상들의 발자취를 밟아보고 싶다. 그래서 러시아어를 공부하고 있다. 무척 어렵다. 이걸 고려인들이 배웠다니 참 애석하다. 우즈베키스탄도 러시아어를 쓴다. 아주 작은 차이밖에 없기에 러시아어와 같다고 봐야 한다. 슬픈 사실은 우리 고려인이 러시아권에서도 부유하게 살고 있진 않다는 점이다. 여러 기업인들이 진출하고 있지만, 아직도 관심이 부족하다. 이 책을 통해 연해주부터 중앙아시아로 흐르는 시간 중 괴롭게 이별하고 사별하였던 인물들과 그 와중에 민중을 위해 활약했던 인물들도 만나볼 수 있어서 감회가 새로 웠다. 강인한 민족은 말도 안되게 척박한 중앙아시아에서 살아남았다. 기가 막힌 환경에서 말이다. 우리는 앞으로 이들을 우리 권역으로 환영하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내줘야한다. 나부터라도 소통을 통해 그들과 역사를 나누고 마음을 주고 받고 싶어서 언어를 학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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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이방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불현 듯 깨닫고 감사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잘 모르는 또 다른 우리의 역사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일제 강점기, 이웃나라 정부의 가혹한 수탈과 혼란스러운 국제정세 때문에 서민들의 삶이 피폐해져갈 때 수많은 사람들이 쫓기듯 혹은 더 나은 삶을 갈망하며 연해주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평생을 땅을 파서 먹고 살던 농투성이들이었던지라 물과 기운이 다른 그 땅에서도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연명하였는데 되물림되어 오던 근명성과 기술 덕택에 그냥 두었다면 그 땅을 새로운 고향으로 여기며 잘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에나라 남의 땅이었던지라 아무리 아등바등 노력해도 하루 세끼니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삶이 이어졌다. 거기다 일제는 러시아 정부를 압박하여 도저히 고향에서 살아갈 수 없어 떠나온 그들을 핍박하였고, 소련 정부 역시 고려인들이 일본의 스파이 노릇을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들을 억압하였다. 설상가상으로 볼셰비키 혁명으로 정국이 불안정해졌고, 고려인들 사이에서도 의견 대립이 심화되는 가운데 몇몇 극단적인 공산주의자들은 신념대로 기꺼이 혁명에 동참했으나 이용만 당하고 슬픈 최후를 맞이하기도 하였다. 그 후 집권한 스탈린은 연해주에 있던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는 황당한 발상을 하게 되는데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화물차에 실려 척박한 땅에 버려진 고려인이 무려 수 만명ㅣ었다. 동물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끌려가다가 아이가 죽고, 부모가 죽고, 기차가 멈추면 시체를 땅에 묻고 통곡하는 사람들의 곡성이 들판을 울리는 참혹한 관경이 서걱서걱 심장을 저며대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버려진 곳은 농사도 지을 수 없고, 살 집 조차도 변변히 없는 땅. 얼어 죽고, 습한 기운에 약해진 몸이 견디지 못해 죽고, 음식이나 물을 잘못먹어 죽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니 가히 전쟁터의 참상을 방불케한다. 게다가 무자비하고 막무가내식의 이주 정책 때문에 가족들이 여러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진 경우도 많았다고 하니 고향에 그대로 머물렀다면 겪어야 했을 6.25에 못지 않은 참극이다. 그래도 그들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들의 2세, 3세들이 그곳에서 혹은, 다시 어딘가로 이동하여 살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고려인이라 여기고 있지만, 러시아어로 말하고, 생각하며 러시아 노래를 부르고 러시아 소설을 읽는다. 그들은 정서적으로 소련인에 가깝다. 그러던 어느날, 소련이 무너지고, 또 다른 혼란이 찾아왓다. 몸은 중앙아시아의 어누 소국에, 정신은 러시아에, 뿌리는 한반도에 있게된 수많은 디아스포라들이 탄생한 것이다. 그들은 대체 어느나라 사람일까? 저자는 유라시아의 새로운 민족으로 그들을 규정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의 모습 그대로 앞으로의 수많은 날들을 어딘가에서 살아가야 하며, 그들ㅢ 후손들도 같은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이 여러 장으로 일목요연하게 나누어져 있었고, 각 장 속에 또다시 신문 기사와 유사한 소제목들이 붙어 있어 내용이 쉽게 쉽게 머리에 들어왔다. 게다가 유라시아 고려인들의 역사를 총정리했다는 저자 스스로의 평가가 무색하지 않게 내용이 자세하고 방대하다. 거기다 각 나라에 거주하는 유라시아 고려인들의 인터뷰를 수록하여 최근의 동향을 전하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다만, 유라시아 고려인 문제의 해결책을 나름대로 제시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같은 뿌리를 가진 한 민족으로서가 아니라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은 공기로 숨 쉬는 한 지구인으로서 이 책을 읽어보기를 전 지구인에게 권하고 싶다. 유대인의 역사를 아는 것처럼 유라시아 고려인들의 삶을 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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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 150년 주류성 김호준 지음
이름도 대기 힘든 나라로 강제이주하게 된 역사를 기자의 눈으로 쓴 책입니다. 고려인 사회는 민족의 이름에서 한국과 조선을 배제하고 고려인이라고 말한다. 남한도 북한이 아니라는 고려인의 고민을 보여준다. 해외동포들을 보면은 조선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혀 다른 고려인이라고 표현을 해서 놀라웠다. 조선의 연해주 이주는지신허에 최초로 고려인 마을이 들어선 1863년설이 유력하다고 생각한다. 한명에서 가족에서 또는 마을전체가 아주하기도 했다. 연해주를 가면은 잘살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차별은 있었다. 세부류로 나뉘는데 1부류는 조세, 노역, 군역의 의무를 이행하고 상투와 댕기를 자르게 했다. 2부류는 매년 러시아 비자를 발급받도록 했다. 비자발급비용이 두어달월급만큼 든다. 3부류는 여권과 비자없이 불법적으로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런상황인데도 인구가 계속해서 늘어난 이유는 조선에서 일제의 수탈로 먹고 살길을 읽은 사람과 연해주는 쌀 생산의 급격한 증가가 외부 노동력의 유입을 필요로 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나름 기틀을 잡고 있었던 고려인들을 소련공산당은 강제이주를시작했다. 병원에 입원하고 친척집에 있던 사람들까지 단1명까지 놓치지 않고 말이다. 그 속의 잔인한 진실은 소련 내 모든 고려인을 추방 대상으로 시키도록 되어 있으며 고려인을 일본스카이로 몰기도 하고, 이주자에게 사유재산을 가지고 간다고 했지만 최소한의 식량및 옷가지밖게 가지고 갈수 없었고 부동산같은 재산들의 보상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이주민들의 기차를 검은 상자라 불리웠다.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고 또 최종장소를 말해주지 않고 또 그때 상황에 따라 변경되어서 가족간의 생이별로 이어졌다. 내려진 장소는 허허벌판에 아무것도 없는 갈대밭이었다. 그래서 땅굴파고 살수밖에 없었다.
"잉기까지 오는데 한 달 넘어 걸렸지. 짐승이 실는 기차에 한 바곤(객차)에 네 가족씩 탔지. 춥지. 배고프지 해서 애들은 죽고, 노인들도 마이죽었지. 기차가 스면 부모들은 죽은 자슥들을 땅에 묻고... 또 기차 타고 갔지. 어디매 가는지는 아무도 몰랐지. ... 처매 이기는 전부 깔밭 (갈대밭)이랬지. 그래 손으로 호매로 밭을 매고 물길 내고... 갈로 집을 지었지. 정말 짐승이처럼 살았지. ... 인잔 일없소(괜찬소)"
강제이주를 당한 이후에도 제한을 받았다. 국경지역으로 이주를 금지당했고, 도주 방지를 위해 기차에서 먼 곳으로 이주했고, 관리하기 쉽도록 천가구 이하로 제한했다. 고려어를 배우지도 못하게 했다. 도망 보다는 먹고 살기 힘들어서 고려인의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고본질(여러사람이 공동으로 하는 사업이라는 을 말하여 농업을 기본으로 했다) 이라는 공동경작으로 양파나 수박을 농사 지었다. 집을 떠나 가족들을 보지 못하기는 하지만 돈을 많이 벌었다. 투자비의 3-10배까지 벌었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고려인의 역사는 공연장에서도 지명에서도 화폭에서도 모습을 감추었다. 고려인의 기구한 이주인생은 한반도에서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로 이주에서 부터 독재자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에서 1953년 이후 교육이나 직업저인 이유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지로 개별적 재이주이다. 그 이후는 1991년 소련붕괴 후 약 10만명의 고려인이 다시 유랑의 기로 접어들때이다. 대부분 러시아 행 재이주로 결말이다.
"나의 부친은 (원동의) 하바로프스크 시에 묻혀 있다. 어머니는 (러시아) 크림 주 엠파트라 시에, 외할머니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주미르자 촌에, 친할아버지는 연해주 수하놉카 촌에, 외할머니는 타슈켄트 주 사마르스코예 촌에, 그리고 친할머니는 카자흐스탄의 침켄트 시에, 형님은 연해주 크라스키노 촌에 안치돼 있다. 그러니 이 고인들을 누가 모셔서 성묘를 할 것인가. 기가 막힐 일이다. 악마의 나라에서만 이 같은 일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몰아낸것도 아닌데 당연히 살아도 되는 내 나라에서 세계 이곳저곳으로 떠돌아 살아야 하는 나그네 인생이 안쓰러웠다. 적응했다고 말하면서 다른 나라로 이주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 고려인들 언어나 문화는 러시아향이 나지만 마음은 그때의 조선을 그리는 것이 아닐까 한다 러시아와 조선의 문화가 공존하는 그곳에 화투라는 문화가 끈질기게 남아 있다는 것을 보고서 재미있었다 정체성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한민족이라고 절반이상이 응답했다는 글을 읽고서 몸은 편하게 읽었지만 마음만은 가시방석이었다. 내가 모른는 친천들일 그곳에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무섭기까지 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또 고려인들이 한국으로 들어오고 싶다면 방안을 마련해주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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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을 접하다보면 늘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힘들었을까?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책은 조선시대부터 빈곤과 억압을 피해 한과 슬픔을 안고 러시아의 연해주로 이주한 고려인들에 대한 아픈 역사를 담은 책이다. 단순이 시대적 배경이 그러해서라고 넘어가기엔 너무나 아프고 고단한 역사를 가진 고려인에 대한 내용을 접하고 보니 저자가 왜 그토록 한국에도 러시아에도 고려인에 대한 역사가 없음에 대해 기막혀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방대하고 세세한 역사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흐름이 재미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진도가 안나가는걸 느끼면서 스스로 역사에 대한 인식이 너무 부족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간혹 방송에서 봤던 먼 타국에서의 고려인에 대한 이야기를 볼땐 그저 아주 오래전 우리조상들이 그곳에 살지 않았을까? 그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조국에서 버림받고 먼타국에서 또다른 소수민족으로서 박해와 멸시와 정체성조차 가져보지 못하고 피땀흘리며 살아온 그분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이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17세기부터 시작된 고려인들의 연해주 이주는 궁핍속에서도 농사와 축산업등 많은 일을 하면서 20세기초까지 32개나 되는 정착마을이 생길정도로 고려인들의 생활터가 되어간다. 이곳은 훗날 항일독립운동을 지원하는 중심부역할이 된곳이기도 하다. 역사책속에서 익히 봐왔던 독립투사들의 활동사항들을 보며 지금의 자유의 나라에서 잘살고있는것도 그분들의 나라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현실일것이다 그나마 정착되어 살던 고려인들에게 스탈린의 강제 이주정책으로 18만명이 중앙아시아로 수송되어 강제로 분산배치되어 살게 된다. 그후 2차대전과 독재체제에 마침표를 찍는 스탈린의 사망으로 고려인 사회는 수많은 변화를 맞게 된다.
오늘날까지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읽으면서 죽기전에 오매불망 그리던 모국을 한번 가보는게 소원이라던 옛고려인들의 애절함에 가슴이 아려왔다. 참 당연시되던 편안한 일상들이 그들에겐 평생을 걸고 싸워야했던 삶의 전부였을텐데 이책을 읽는내내 인간의 삶의 본능이 주는 의미외에 조국이주는 당연함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생각해봤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재 지금도 수많은 고려인들이 여러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있다. 역사의 한줄기를 따라 흐르는 그들의 근성은 그들만의 몫이 아니라 한민족의 뿌리로서 그들의 정체성을 찾아 역사를 다시금 알리고 보듬고 안아줘야할 우리 모두의 몫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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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힘이 약하다면 누가 피해를 볼까? 구한말 우리역사를 되짚어본다면 알 수 있다. 조선시대 후기 불안한 국제정세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 정치적 갈등이 고조되면서 많은 백성들은 먹고 살기 위해 나라를 떠나야 했다. 만주로 연해주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주했다. 특히 연해주로 이주한 백성들의 발자취는 동서냉전의 시대적 기류 때문에 그들과 우리는 수 십 년간 아니 백 년 가까이 서로의 존재를 잊고 살았는지 모른다. 이제 시대가 변해가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끊어진 정서적 동질감을 잇는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
현·근대사에 우리 민족은 많은 고난을 겪었다. 일제침략으로 국운이 기울고 주변 강대국들은 마음껏 우리민족을 유린했다. 이 때문에 백성들은 나라를 등지고 이곳 저곳 낯선 땅에서 방황하게 된다. 기록에 의하면 1860년대에 조선인들이 처음 러시아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고려인이라고 부르면서 민족의 정체성을 잊지 않았다. 최초 이주민은 먹고 살기 위한 방편으로 이후에는 일제 침략에 맞서 독립을 위한 전초기지로 활용되었다. 이렇듯 만주나 연해주는 우리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곳이었다.
그러다가 소비에트 연방이 탄생하면서 고려인들은 다시 한번 고난의 역사가 되풀이된다. 소비에트 연방에서도 나라 잃은 백성들을 반겨줄 리가 만무하다. 많은 지도자들이 숙청되고 러시아국경지방에 일본진출을 우려하던 소비에트 연방은 고려인을 일본의 앞잡이로 생각하여 지속적인 이주정책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소비에트 연방의 내전에서 수많은 공헌을 했음에도 그들은 러시아인으로부터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으며, 새로운 개간지를 일구어내면 러시아인에게 빼앗기는 일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우리민족의 근면 성실함으로 끈질기게 버티며 살아왔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고려인의 삶은 비참하고 비통했다. 지금껏 고려인은 구소련 지역에서 살고 있다. 나라의 약함으로 나타난 불가피한 불행이지만 이들은 극복하여 나름대로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그러면서 이들의 정체성 고립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화되었다. 이제는 우리가 고려인의 정체성을 깨우는데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며 이들과 교류를 더욱 활발히 하여 경제적 자립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관계 발전을 위한 초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삼국시대까지 우리 역사의 발상지이며 우리땅이라 자부하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낯선 땅이 되어버리고 이곳에서 뿌리를 내린 고려인과 한반도에 사는 우리가 이제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하루빨리 찾았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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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 150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