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10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7.0
리뷰 총점 종이책
뇌와 몸, 무엇이 나를 규정하는가: 뇌-육신 대논쟁
"뇌와 몸, 무엇이 나를 규정하는가: 뇌-육신 대논쟁" 내용보기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는 근대 서양 철학의 출발점이면서 근대적 합리성을 대표한다. 즉 인간은 ‘사유’함으로써 존재의 확실성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사고하고 기억할 수 있는 힘’이고, 이것을 주관하는 뇌가 중요하게 되었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내가 나라고 할 때, ‘나’는 ‘나의 뇌’인 셈이다.
"뇌와 몸, 무엇이 나를 규정하는가: 뇌-육신 대논쟁" 내용보기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는 근대 서양 철학의 출발점이면서 근대적 합리성을 대표한다. 즉 인간은 사유함으로써 존재의 확실성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사고하고 기억할 수 있는 힘이고, 이것을 주관하는 뇌가 중요하게 되었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내가 나라고 할 때, ‘나의 뇌인 셈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이러한 정체성은 매우 모호해졌다. 왜냐하면 이제는 뇌 이식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가령 뇌사 상태인 A의 몸에, 전신 불수인 B의 뇌를 이식했다고 한다면, 이 사람(편의상 C라고 하자)의 정체성은B의 뇌에서 기인할까, A의 몸에서 기인할까?

 

물론 현재까지는 뇌가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견해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뇌는 사람의 몸에서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뇌는 성인남성이 일천사백 그램 정도, 성인 여성이 일천삼백 그램 정도 나간다. 그러니깐 무게로만 따진다면 몸 전체 무게의 2% 가량 되는 셈이다. 그런데 인간의 정체성이 뇌에 있는 것이라면 나머지 98%의 몸은 무엇일까?

복거일의 문제제기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보편적이고 타당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따지고 보면 매우 이상하다.

위에서 예로 든 케이스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C의 정체성은 B를 따라간다고 여길 것이다. 분리된 몸이나 새로 얻은 몸에 정체성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드물다. 왜 그럴까? 그것은 앞에서도 지적했듯 뇌가 기억이 있는 곳이고 사고를 주장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고유한 자아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자아 의식은 기억 덕분에 가능하다는 것이 의사나 과학자들의 주장이다.

어제를 산 사람과 오늘을 사는 사람이 동일인이라는 것, 어렸을 적의 아이가 지금의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 모두 기억 때문에 가능하다. 만약 기억이 없다면, 인간의 경험들은  산만하고 단편적인 조각들일 뿐이다. 요약하자면, 기억이 자아 의식을 가능하게 하고, 그래서 기억이 존재하는 곳인 뇌는 자아 의식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뇌에 자신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반박의 여지 없이 타당할까? 우리 기억들은 뇌에 저장되지만, 그것들은 모두 우리 몸을 통해서, 우리 감각 기관들을 통해서 얻어진 것들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우리의 기억은 뇌 스스로 만들어낸 것들이 아닐 뿐더러, 가장 선명한 기억들은 우리 몸이 직접 경험한 것들이다. 그러니까 만약 나의 뇌가 내 몸에서 분리된다면, 내 몸을 통해서 얻은 그 기억들은 훼손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훨씬 추상적이 되거나, 매우 희미해지거나.

 

생각해보면 뇌에 집착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하다.

일군의 의사들과 과학자들은 인간은 모든 유기체들들과 마찬가지로 생식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도 아니고,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궁극적으로 자식들을 낳고 길러서 대를 잇기 위해서이다. , 자식들을 낳아서 기름으로써 자신의 유전자들을 퍼뜨리는 것이 목적이다. 사람과 같은 유기체들은 유전자들을 다음 세대로 나르는 임무를 지닌 존재에 지나지 않으며, 정말로 중요한 것은 유전자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인정한다면, 우리의 정체성은 니가 아니라 성세포를 만들고 퍼뜨리는 기관들에 기인하는 것이 된다. , 뇌보다 몸이 더 중요한 것이다.

인간들은 뇌를 제일 중요하게 여기고, 뇌를 이용한 정신활동들, 그러니깐 문화, 예술, 과학, 종교 등을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생각을 전환하면 성세포들을 생산하는 생식 기관들이 한 사람의 정체성을 대표한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복거일은 아주 흥미로운(?) 예를 하나 든다. 가령, 어떤 사고로 몸이 뇌와 나머지 몸으로 둘로 절단된 사람이 있다고 치자. 의사들이 급히 생명 보존 장치 속에 두 부분을 따로 넣고, 두 개의 사이보그를 만들었다. 인공 몸속에 사람의 뇌가 들어간 사이보그와 사람 몸에 인공두뇌가 들어간 사이보그. 그렇다면 둘 중 어느 쪽이 원래 사람을 대표할까?

지금의 사고방식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 뇌를 가진 쪽이 원래의 사람을 대표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그 두 사이보그들이 각자 인간 배우자를 만나서 살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사람의 뇌를 가진 사이보그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의 몸을 가진 사이보그는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세월이 흘러 사람의 몸을 가진 사이보그는 자식과 손주, 증손주로 대가 이어진다. 뇌가 없다는 것은 사이보그를 통해서 자식들이 나왔다는 사실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매우 극단적인 경우지만, 논쟁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이쯤 되면 이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소설의 시공간 확대에 주목해 온 복거일은 『내 몸 앞의 삶』을 통해 향후 인류가 맞닥뜨리게 될 문제에 대해 질문한다.

뇌가 먼저인가, 몸이 먼저인가.

 

만약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육신교환 수술이 가능해진다면, 인간의 정체성은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향후 대두될 이 문제는 인간의 정체성뿐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원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c*****g 2015.10.16.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