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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엄마를 부탁해>로 유명한 신경숙 작가의 책이다. 더우기 신경숙 그녀가 요즘에 쓴 책이 아니라 이십대에 쓴 책이라서 더 놀랍다고나 할까. 책에 실린 열한편의 이야기는 모두 어둡고 아픈 이야기들인데 그녀의 서정적인 문장으로 인하여 우울한 느낌을 받기보다는 아름다운 산문시를 읽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특히 그녀에게 문예중앙 신인상을 안겨 준 , 그녀의 등단 작품인 <겨울우화>는 이십대 , 젊은 작가의 글이라고 하기엔 뛰어난 작품으로 생각되었다. 나는 <겨울우화>를 읽고서 그녀의 작품 <엄마를 부탁해>가 그저 한류 열풍에 힘입어 유명해진 작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녀가 운이 좋은 작가여서, 그녀의 작품이 영어로 번역되어 미국에서도 판매가 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가 저력있는 작가라는 걸 이 책을 읽고 깨달았다.
이 책에는 모두 열한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소설들에는 1980년대의 시골이 나온다. 나 역시 1980년대를 살아낸 사람으로서 많은 장면에서 공감하면서 책을 읽었다. 작가가 이 책 에서 주로 다루는 사건들, 1980년대 운동권 학생의 고난은, 그 시절 불우한 젊음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 사건의 주인공들이 벌이는 사랑과 아픔을,견딜수 없어 소리치는 아픔이 아니라, 입 다물고 참으려해도 스며 나오는 신음소리같은 문장으로 표현해 낸 그녀의 문장력이 감탄스럽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문제는 생각하기에 따라서 사소한 것일 수도 있으리라. 어둡고 사소한 사건을 그렇게 서정적인 문장으로 담아 낸것이 바로 작가 신경숙의 뛰어남 일 것이다.
이상하리 만치 감성을 자극하는 문장, 시적인 문장이기에 그토록 책에 빠져 들수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이건 그녀의 글을 읽는 독자 모두가 느끼는 것일게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상처받고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현실에서의 우리네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굳이 해피엔드로 끝맺지도 않는다.
전에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내용에 대해 한마디로 <너, 많이 아프냐? 나도 많이 아팠다> 라고 하는 걸 읽은 적이 있다. 책의 내용을 한줄로 말할 만한 내공이 내게 있을까. 내공은 없어도 느낌은 있으니까 굳이 <겨울우화>에 실린 신경숙 작가의 단편에 대한 느낌을 한즐로 압축 한다면 < 우리가 많이 아팠던 그 시절의 이야기 모음> 이라고나 할까. 역시나 유명한 작가 김훈 선생의 신경숙 작가의 글에 대한 평을 인용해 본다.
<..세상의 낯선 시간과 관계 속에 하나의 인간 존재가 놓여질 때 그존재에게 숙명적으로 결핍되어 있는 것들을 향하여 신경숙의 글은 간절한 발신음을 보낸다. 그에 답하는 희미한 수신음들이 신경숙의 글속에서 매우 정밀하고 단정하게 포착되어 , 글의 켜와 글의 결을 이루었고, 그 숙명적 결핍에 대한 인간의 교감이 그의 글을 아름답게 긴장 시키고 있다. 그는 문체주의자인 것이다 - 책의 뒷날개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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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작가로서 인정받게 되고, 매니아층이 두터워지면 그 사람의 작품들이 모두 재조명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독자로서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그녀의 작품을 꽤 챙겨본다고 했지만, 그게 모두 장편소설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번에 읽은 겨울우화는 좀더 새로웠다. 학창시절때 책표지가 다른 책으로 만난 기억이 있는데, 이 안에 담긴 단편들이 새로웠다. 작가가 희망했듯이 정말 그런때가 있었지 하는 아스라한 추억도 떠올랐다. 11편의 단편에 담긴 배경들이 거의 30년전인 80년대 언저리였다. 그리고 시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주인공들이 모두 상처 한가지 이상씩은 가지고 있었다. 그게 모두 그 당시 시대상을 갖추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남아선호사상이 컸던 것도 분명 존재했고, 학생운동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한집안의 기둥이라 떠받들어졌던 존재가 사라져 남아있는 사람들이 그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고, 또다른 희생을 강요받기도 했다. 요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는 아마도 이 책의 배경을 오롯이 이해하기란 힘들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아성숙이 대단하고, 또 자기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현시대의 젊은이들이 누구의 대타가 된다거나, 자신의 꿈과 야망을 접고 다른사람의 희망대로 살아간다는 것을 결코 쉽사리 허락하지 않을것 같기 때문이다. 또 이 책에 담긴 글귀들은 세련미를 갖췄다기 보다는 어떤 은유적인 표현이 강했고, 또 요즘들어서는 보지 못했던 문장들이 많아 내용에 앞서 그 묘사하는 대사나 글귀에 빠져들게 되었다. 어느 책에서 읽은지 모르지만, 정말 아주오랫동안 머릿속에 각인되어 도저히 잊혀지지 않고 정말 그런날과 마주할때면 항상 되뇌이고 하는 '빨래하기 참 좋은 날"이라는 문구처럼 이번에 나는 이 책에서 <지친 운동장으로 잘게 부서지는 마른버짐 같은 햇살>이라는 문장이 눈에 확 들어왔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생각해냈을까? 그리고 이 책을 쓸때 작가의 나이가 20대였다는 것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다. 이래서 작가들은 보통사람들과 다른 감성과 묘사력을 갖추고 있다고 하나 보다. 아무튼 대부분의 책들이 등장인물들의 상처를 보듬어안아주고, 과정은 힘들고 벅찼다 하더라도 그 끝은 해피엔딩으로 가고 있음을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 신경숙은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상처를 드러내놓고 "힘들지? 인생은 그렇게 한고비 한고비를 넘는거야"라고 담담하게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신선하기도 했고, 내가 통과했던 시간대의 사람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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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작가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와 <외딴방>을 감동깊게 읽었다.<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면서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속으로 울음을 꼭꼭 삼키며 읽었다.남에게 눈물을 잘 보이지 않는터라 책을 읽으면서도 누가볼까 무서워 차마 드러내놓고 울지 못했다.<외딴방>을 읽으면서는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놀랐다.신경숙작가가 걸어왔던 그 청춘의 시기를 필자도 좁은 땅덩어리 어딘가에서 걷고 있었다는 걸 책을 읽으면서 알았기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겨울우화>를 읽으면서 신경숙작가의 글다우면서도 글답지 않은 모습을 만나고선 많이 놀랐다.필자가 읽었던 두 권의 책은 장편소설이어서 쉽게 씌였고 가독성이 뛰어났다.그런데 단편인 <겨울우화>는 장편과는 다른 무게때문에 오히려 가독성이 떨어진다.그것은 11편의 단편이 저마다 상처를 가진 주인공들의 의식의 흐름을 많이 따르기 때문이다.문체는 장편보다 아름답기 그지없다.그녀는 아름답다못해 아린문장,극한의 멋을 담은 문장을 만들어낸다.문장이 아름다워 가독성이 떨어진다? 이것이 바로 <겨울우화>가 가진 매력이다!
11편의 단편은 모두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1980년대,시골이 주를 이룬다.그래서 1980년대를 지나온 세대는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다.하지만 그부분이 20대에게는 현재와 유리된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될 수 있다.단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또한 우리가 살아오면서 일상에서 만났던 각양각색의 상처를 가진 보통 사람들이다.80년대는 대학가에 학생운동이 한창이었다.<겨울우화>에서 혁수는 학생운동으로 감옥에 가게 되고,그의 애인 명혜와 어머니는 그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는다.<강물이 될 때까지>의 은섭은 전경으로 복무하면서 학생운동하는 후배를 끝까지 쫒아가 잡아서 패준것을 괴로워한다.
<밤길>에서는 유년기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숙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죽게 되고,기차에서 만난 젖이 안나오는 여자와 그녀의 아이에게 자신의 젖을 물리는 여자가 나온다.수녀가 된 명실은 친구인 화자에게 다르게 살고 싶다고 고백한다.<지붕>의 원희는 전쟁의 피해로 온전치 못한 '곰배팔이'에게 강간당한 상처로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初經>에서는 학생운동하다 붙잡히는 오빠와 미쳐버린 언니가 등장한다.말기암을 선고받은<등대댁>,결혼의 희망이 사라지자 자살하는 <외딴방>의 희재언니까지 등장인물은 모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여름 햇살은 폭죽처럼 터져 묵은 먼지가 앉은 유리창에서 반짝 튀었다.-p15 지친 운동장으로 잘게 부서지는 마른버짐 같은 햇살이 아니라,지친 모습으로 운동장을 바라보는 주름진 노인의 뺨에서 반짝이는 액체라는 것을-p22 그와 동료들이 햇살이 작살처럼 꽂히는 잔디밭 위에서 스크럼을 짜고 사박자의 구호를 외칠때,나는 화장실에서 최루가스에 매운 눈을 씻어내며 늪 속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p35 알 수 없는 내면 어디에서 어떤 힘이 자꾸 그녀 자신을 거울 앞에 세우곤 했다.그러나 아무리 들여다보아도,자신이 몸을 사리고 있던 그라는 껍질조차 툭 터져버린 그땐 어디에서도 그녀 자신이 보이지 않았다.p101
누구나 아픔하나쯤 안고 살아간다.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시대적인 아픔,가정사.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80년대를 이렇게 건너왔구나'에 생각이 미친다.이 작품이 신경숙작가의 대뷔작이라니 깜짝 놀랐다.그녀 나이 20대 후반에 이런 문장을 썼다는게 믿어지지 않는다.문장이 찾아올때 집으로 돌아간다던 그녀.신경숙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은 문장에 있다.너무 고와서 곱씹어 읽게 하는 문장들.역설적이게도 필자는 이 문장에 턱 걸려 넘어지고 만다.아이러니.나무를 보느라 숲을 보지 못해 자주 흐름을 놓친다.
<겨울우화>를 읽으면서 한 권의 책이 자꾸 겹친다.미술에서 트롱프 뢰유라는 눈속임기법을 문학에 도입한 <잉글리쉬 페이션트>가 그것이다.<겨울우화>는 다빈치의 스푸마토처럼 그 경계가 흐릿하다.하나의 풍경을 만날때마다 화자의 기억은 또 다른 기억을 불러오는 구조다.그래서 몽환적인 느낌을 불러옴과 동시에 갑갑하다.자꾸 80년대로 돌아가는 화자의 기억이,소설에 동화같은 느낌을 불어넣는다.그러면서도 해피엔딩은 없다.다만 작가는 '너,아프구나~그래 많이 아프지~'어루만져주는 느낌이 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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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씨의 소설은 정말 오랜만에 읽었다. 그녀의 작품을 읽은지 꽤 오래 되었지만 그래도 최근 읽은 작품이 <엄마를 부탁해(2008)>였다. 그리고 그전에는 <외딴방(1999)>, <딸기밭(2000)>을 읽었다. 많은 작품을 읽지는 않았지만 내게 신경숙이라는 작가는 '표현력이 뛰어난 작가'로 기억되어 있다. <겨울 우화(2012)>를 포함해 내가 읽은 네 편의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단연코 <외딴방>이었다. 아니 각 작품들의 포인트들이 조금 달랐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고 그 중에서 전체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 <외딴방>이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리고 <딸기밭>은 그녀의 표현력에 흠뻑 취할 수 있는 작품이었고 <엄마를 부탁해>는 이 중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었다. 이 작품 <겨울 우화>는 단편소설 모음집이라 그런지 이상 세 작품의 느낌들이 모두 담겨 있었다.
이 작품 <겨울 우화>는 내가 아주 어린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너무 어렸기에 그 시절의 많은 것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새삼 내가 살았던 그 시절로 돌아가 볼 수 있었다. 등장인물들의 암담한 삶, 희망과 빛이 없어보이는 암울함이 작품 속에 가득했다. 이 절망감은 나를 때론 숨막히게 하고 비로소 기분좋은 이야기로 마무리 되길 바라게 했다. 그러나 이야기의 끝은 시종일관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잔잔했다. 침울했다. 그러나 이야기의 끝은 행복하지 않지만 그 상처와 아픔을 그대로 둔 채 아픔과 슬픔과 고통을 독자 스스로가 이겨내길 격려하고 있다.
<겨울 우화>는 아련한 작품이었다. 어쩐지 아픈고 쓸쓸한 등장인물들의 표정처럼 쓸쓸하고 고독했다. '겨울 우화'는 11편의 단편 소설 중 한 편의 제목이지만 어쩜 이리 11편을 집약할 수 있을까? 봄이 오기 전 찬 기운이 가시지 않은 그때를 꼭 닮은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신경숙의 소설 자체가 생기발랄하거나 화사하진 않다 사실. 그런면에서는 신경숙의 조심스럽고 섬세한 느낌들이 잘 드러나는 단편들이었다.
그녀는 어째서 이전의 <겨울우화>를 다듬어 다시 내놓았을까? 그녀의 데뷔작과 초기 작품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일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한 번 독자들에게 내 자식들을 곱게 단장해 선보이는 엄마의 마음으로 다시 내놓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써놓은 아픔과 슬픔과 힘겨움과 고통을 엄마의 눈으로 보고 보듬어 주고 헤아리게 된 듯 하다. 그렇지만 내심 그녀의 신작이 어서 나와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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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쯤으로 기억된다. <풍금이 있던 자리>로 내가 처음 신경숙을 만난 게. 그리고 문학동네에서 펴낸 <강물이 될 때까지>로 이어진 그녀의 인연은 줄잡아 이십여년이나 되었지 싶다. 그 사이 강산이 두번이나 바뀌었고 이젠 나보다 더 그녀의 책을 좋아하는 딸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얼마 전엔 눈이 벌게 진 딸아이가 갑자기 나를 와락 끌어 안더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라며 어찌나 펑펑 울어 대던지. 어안이 벙벙해 물어보니 이유인즉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방금 읽었단다. 나 역시 그 책을 읽으며 숨죽여 울었기에 말 안해도 딸아이의 심정이 십분 이해 되기에 꼬옥 안아주며 걱정말라고 네가 결혼해서 손자,손녀 낳거든 옛날 애기해주는 할머니가 될란다고 했다. 책 한 권으로 딸이이가 갑자기 효녀로 탈바꿈 하길 바래 본 적도 없지만 나도 모르게 울컥해진다. 갑자기 엄마 생각도 나고.
등교한 딸아이 방을 청소 하다 말고 책상 위에 미쳐 다 읽지 못하고 펼쳐 놓은 책을 몰래 읽다 청소하는 것도 잊어버리기 일쑤였는데. 어느새 훌쩍 커버린 딸아이가 내 서재의 책들을 야금야금 읽더니 급기야는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주문하는가 하면, 작가를 지명해 내게 추천까지 한다. 몇편의 베스트셀러와 함께 등단 27년의 신경숙 그녀는 이제 우리만이 작가를 넘어 해외에서도 널리 읽혀지는 작가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꽤나 안목이 있지 않은가. 유명세를 타기전의 그녀를 일찌감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신경숙 작가의 장편소설을 비롯해 여러 권의 산문집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건 그녀는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 허투루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보다 더 시적인 문장들을 그녀의 작품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아름다운 우리말과 표현들을 그녀의 글을 통해 새삼 발견하곤 한다. <강물이 될때까지>라는 제목의 단편이 <겨울우화>라는 제목으로 재출간 되었다. 그간 출판사의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결혼과 더불어 몇번의 이사 끝에 <강물이 될 때까지>를 잃어 버렸기에 무척이나 반가웠다. 책을 펼치자마자 기억이 가물가물했던 책 내용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책을 읽는 내내 보물 찾기를 하듯 그렇게 어렴픗이 하나씩 생각나는 기억의 실타래를 따라가며 읽게 된 단편소설집이다.
감수성 풍부한 그녀의 문체를 대하는 게 행복했지만 읽는 내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잊고 있던 가슴저린 기억들이 스물스물 기어나와 가슴 한켠에 묻어 둔 묵은 상처를 헤집어 놓는다. 애절한 사랑도, 농촌의 버거운 삶도, 남존여비 사상의 희생양이였던 불행한 여인네들의 삶도 아닌 학생운동에 몸담았던 선배, 학우들의 모습이, 그들의 불우한 삶과 나의 비루한 변명을 책 갈피마다 만나게 되는 걸 피하고 싶어 몇번이나 책을 덮엇다 도로 펼치길 여러차례 내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책을 일자고 마음을 다잡고 마져 읽어 냈다.
사는 게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힘겹게 하루하루를 사는 서민들의 삶 또한 호락호락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녀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의 삶은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다. 이직도 치유되지 않은 시대의 아픔이 비오는 날 도지는 신경통처럼 불현듯 찾아와 가슴을 쑤셔대니 말이다. 무던히도 인내하며 보냈던 지난 세월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해 보지만 신경숙 작가의 말처럼 지나고 보면 예사롭지 않은 삶이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잊으려 애쓰며 살아갈 뿐.
아름다운 문체로 쓰여진 낱낱의 단편을 모아 놓은 단편집 전체가 하나의 장편 소설처럼 읽혀지는 것은 신경숙 소설의 특징이기도 할 게다. 그녀의 개성이 모두 담겨 있는 이 책을 지난날을 반추하며 그렇게 읽어 내려간다. 신경숙의 다른 책들과 더불어 딸아이의 도서 목록에도 오른 이 책을 딸아인 얼마만큼이나 이해할까. 동시대를 살았던 나 조차도 미처 못다한 공감과 이해를 딸아이에게 바라지는 않지만 책을 통한 감동은 세대를 아우르는 힘을 지녔음을 나는 믿는다. "좋은 책을 읽는 순간들이 인생에 축적되면, 뜻하지 않은 시련과 고통에 빠졌을 때 그 순간을 견딜 힘과 앞으로 나아갈 힘을 동시에 준다"고 말한 신경숙 작가처럼, 독서를 통해 사춘기의 고민과 갈등도, 방황도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고통의 시간을 이겨낼 수 있길 바란다 독서야말로 세대를 이어주는 교두보가 아닐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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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과거를 회상하는 진솔한 이야기! 겨울 우화를 통해 한 시대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게 되었다. 진부한 내용과 진행에 따른 독자들의 다양한 평가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저자의 유명세에 따른 책의 기대에 못미치는 부분들은 많지만 한편으로는 이야기속에 초대받았다는 데에서는 새로운 느낌이었다. 70, 80대를 살아온 독자로서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암울했던 시기에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펼쳤던 삶. 그러나 암울했던 시기는 지금도 계속되어진다는 아이러니한 현실앞에 목놓아 울어야 하는 시대적 반항아를 다시금 떠오르게 한다. 이 책속에 주인공이 마치 내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동시대에서 일어났던 현장에 내가 다시금 뛰어들어간 기분이다. 왠지 동질감을 갖게 한다. 신경숙 작가의 처녀작임에도 현대적 시각으로 다시금 편찬되어진 것은 현실에 희망을 잃은 이들에게 다시금 과거의 품었던 생각들을 펼쳐보이며 희망을 찾아가자는 것인지, 아니면 과거의 연소이 현실이라는 것을 직시하게 하는 것인지는 저자의 의도를 혼자 살펴본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시대에는 희망을 찾지만 희망을 놓쳤다. 과거는 희망을 쫓는 희망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모두가 현실을 도피하고자 한다. 무엇 때문일까. 과거는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등의 모든 분야가 열악했다. 희망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먹고 사는 것, 삶에 대한 진솔함은 있지만 인권이 무시되었다. 먹고사는 것이 단지 희망이었다. 그럼에도 미래를 꿈꾸었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은 그것이 무너졌다. 신경숙 작가는 현실속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겨울 우화를 다시금 출판하고자 함이 아닌가 싶다. 꽁꽁 얼어붙은 우리들의 가슴에 다시금 따뜻한 한줄기의 따사로운 햇빛을 주고자 함이 아닌가 싶다. 과거를 살아왔던 독자로서 사실 새로운 것을 찾지 못했지만 작가의 본 뜻을 읽고자 노력했다. 저자가 진정 이책을 통해 세상과 독자들에게 무엇을 나누고자 했는지 공감대를 찾고자 했는지 우리는 자신의 위치에서 가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는 분명 나의 삶을 이끌고 있다. 과거의 나, 현재의 나를 다시금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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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신경숙작가의 <풍금이 있던 자리>라는 책을 사서 읽고 누군가에게 빌려 줬다 돌려 받지 못했다. 인터넷도 없는 시대여서 신인작가의 작품을 읽을 기회는 신춘문예와 같은 문학상이라는 신문광고란을 통해서였는데 아마도 나는 그때 우연히 알게 된 제목에 이끌려 서점에 갔던 것 같다.
다 읽어 가기도 전에 전부터 내 책에 관심이 많던 이들로부터 다 읽으면 빌려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또 여러 사람이 동시에 그랬기에 더더욱 누가 먼저 가져 갔는지 기억이 안나는 이유가 되었다. 그 다음부터는 누군가에게 책이 아니더라도 빌려주게 되면 꼭 메모를 하곤 한다.
정작 신경숙작가의 이름을 또렷이 기억나게 하는 그녀의 작품을 들자면 나는 <리진>을 꼽는다. 그 뒤에 여러 베스트에 오른 작품중에 <엄마를 부탁해>도 있지만 세월이 흘러도 리진을 읽었을때 찡했던 그 때가 떠올라 혹시 다시 읽어 싶어도 아껴두고 있다.
작가의 20대 때 쓰여진 처음의 작품을 일부러 찾아 읽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운전을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희망으로 밝은 싱그러움을 느끼고 싶었다. <겨울우화>(2012.12 문학동네)는 신경숙작가의 작가로 만들어준 고마운 첫작품이기에 더 기대에 차 읽었다.
총 11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소설집에서 단연코 나는 <겨울우화>와 <외딴 방>을 꼽는다. 첫 등단작품이라는 의미도 있고 세심하고 꼼꼼한 성격이 드러나는 작가의 성격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사인 주인공 명혜는 애인인 혁수가 교통사고로 감옥에 가게 된 사실을 대신 어머니께 알려주기 위해 가는 기차안과 밖 풍경을 비롯해 가르치는 아이가 보내 준 편지와 함께 이미 이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혁수모와의 대화까지 마치 풍경화 한 편을 보고 있는 착각을 느끼게 해준다.
작품에 등장하는 학생운동으로 숨어 지내는 오빠, 자식들 걱정과 남편의 구박을 감내하는 전형적인 어머니의 모습, 술과 죽은 자식을 가슴에 품은 아버지의 모습까지 조금 겹쳐지는 부분이 많이 있어 한 편을 읽고 잠시 숨을 고르고 읽는 것이 나름 방법이 이 책을 읽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외딴 방>에서 주인공인 희재언니와의 이야기는 고통 그 자체다. 소름이 돋기도 했다. 다른 작품들과 확연히 다르게 다가 오는 결말이기도 하고 그녀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데 말줄임표가 유난히 다 하지 못한 언니와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같기도 해서다. 서른 일곱개의 방이 있던 집, 마주치려고 해도 만나지지 않는 사람들틈에서 알게 된 희재언니, 신지도 못하고 선반 위에 올려 놓은 하이힐과 교복도 모두 그녀가 갖고 있는 얼마 되지 않은 재산이자 희망이었다.
책의 맨 뒤에는 작가의 1판과 2판, 이번에 다시 발행된 3판의 에필로그가 나란히 수록되어 있다. 20대의 그녀가 어느새 50대가 되어 다시 펼쳐보는 자식과도 같은 작품들을 대하는 작가의 느낌과 독자들에게 건네는 당부처럼 들린다.
다른 작품들에서 다소 희미하게 보이는 인물들이 갈수록 명확하게 보이는 것은 다만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닐게다. 유난히 기차, 추운 겨울, 마당에 비치는 눈부신 밝은 햇빛에 대한 작가의 지나치리 만큼 세밀한 묘사가 익숙하지 않아 늦은 오후같아 얼른 깜깜한 밤이 되길 바랬는지 한 편 한편을 다 읽을 동안 길게 느껴지는 것은 이미 빠른 전개와 자극적인 묘사에 길들어져 있는 나를 되돌아 보게 했다.
p147
해안으로 들어가는 차단기 앞에 지나 갈 기차처럼 그가 서 있다.
p 157
갑자기 그녀 자신 안에 있는 그에게 물이 스며들어 미래는 눅눅했고, 추억에는 이끼가 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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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책을 읽고 그 내용에 대해 말해주던 선생님이 두 분 생각난다.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과 중학교때 영어 선생님. 국어 선생님은 줄거리와 함께 몇 가지 이슈를 꺼내면서 생각거리를 던져 주셨다. 영어 선생님은 주로 소설의 감성적인 문장을 소개하면서 읽을 만한 책을 권하셨고 그 중 하나가 '깊은 슬픔'이었다. 신경숙, 사람 이름을 잘 못 외우는 내게 이 작가는 오래 기억되어 왔다. 하지만 부끄럽게 한 권의 책도 읽은 적이 없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기 마련이다. 나는 이 책, '겨울 우화' 와의 만남이 참 반갑다. 단편소설집으로 '겨울우화', '강물이 될때까지', '조용한 비명', '황성옛터, 등대댁 등 모두 11편의 글이 실려 있다. 1990년에 <겨울 우화>로 처음 출간된 후 <강물이 될 때까지>란 제목을 걸고 약간 수정하여 나왔고 이번에 다시 첫 제목으로 회귀했다. 이제는 좋아하는 이가 워낙 많은 유명한 작가가 스물 둘에 등단한 첫 작품이 '겨울 우화'라니 더 관심이 가서 다시 책을 펼쳐보고 싶다.
등장 인물들은 맺고 끊는 게 확실하지 않은 감정적으로 여리고 정 많은 사람들이다. 어려움이 닥치면 극복하려 이는 있고 약한 맘으로 숨거나 피해버리는 이도 있는 등 교훈적이기보다 현실적이어서 해피엔딩이기를 바랐던 기대를 무색케 한다. 뒤안(집 뒤에 있는 마당이나 뜰), 함석 지붕, 고구마순, 남색 치마, 녹슨 철봉, 110v, 도배, 교복, 운동권 학생, 아픈 아주머니... 어린 시절 시골에 살면서 자주 들었던 말이 생각나서, 어렴풋이 보일 듯한 기억, 후회되어서 '어쩌면, 어쩌면...' 했던 순간, 잊었던 혹은 흩어버리려 애썼던 누군가가 떠올라 읽다 멈췄다를 반복했다. 이 책은 제목처럼 따뜻함이 그리워지는 겨울에 읽는 편이 좋겠다. 한 편으로서의 감동도 있고 그 안의 작은 부분이 독자의 아린 기억을 끄집어내어 쓰다듬기도 하는 것 같다.
단편 소설은 읽는데 오래 걸리는 편으로 설날 전에 시작해서 얼마 전까지 봤다. 하나를 보고 나면 갈무리하고 새로 길을 나설때의 여밈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 같다. 여러 편 중 '겨울 우화', '初經', '외딴 집'이 마음속에 남아 있는 시간이 길었다. '외딴 집'이란 같은 제목의 장편 소설이 생각나서 어떤 관계가 있나 싶었는데 대략적인 배경과 줄거리를 보니 초기 단편작에서 살을 붙인 듯 하다. 어린 아기에서 어른으로 훌쩍 커버린 모습 같다. 다음에 읽고 싶은 저자의 책은 '외딴 집'과 '깊은 슬픔' 이다. 오래전 버스 터미널에서 '100원만'하고 손을 내밀어서 처음에는 놀랐다가 당연하게 여겨지던 바보 형은 이제 아저씨가 되어 있었는데 몇 년전만 해도 보이더니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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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이후 오랫만에 신경숙 작가님의 신작을 만나게 되어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는데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27년전 작가의 등단작품이었다. 두번씩이나 표지의 제목을 달리해 발간한 책이었는데 내게는 처음 읽는 작품이라 신작처럼 새로웠다. 이 책의 제목이 된 겨울우화를 비롯해 모두 열한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70~80년대 암울하고 힘들었던 서민들의 이야기가 독자들의 마음까지 어둡고 무겁게 만든다.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주인공들의 삶,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써도 황폐해진 육신과 정신에는 빛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희망이 보이겠지, 잘되겠지라는 해피엔딩의 결말을 기대했는데 열한편 모두 절망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울함만 남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겨울우화'의 작품 속 인물들과 조정래 작가의 7-80년대 작품들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암울한 현실들..다르다면 조정래 작가는 서민들의 애환을, 신경숙 작가의 작품 속에는 그래도 지식인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 차이점 같다.
열한편의 작품에는 다양한 아픔이 담겨져 있다. 학생운동을 하다 학교에서 재적당하고 사회에 뛰어 들었지만 그를 품어줄 사회는 없었다. 하는 일마다 좌절을 맛 봐야했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애인을 바라봐야 하는 주인공, 학생운동을 하다 경찰을 피해 고향집에 숨어 든 오빠와 남자에게 버림받고 고향을 등진 언니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여동생의 말못할 아픔, 마음을 나눌 친구 하나 없이 외롭게 세상을 등진 친구를 잃고서야 소중함을 깨닫는 사람들, 사고로 아들을 잃고 실의에 빠진 아버지, 누구보다 억척스럽게 살아왔건만 암세포에 모든 희망을 빼앗겨야하는 주인공 등등 참 모질고 고통스럽고 참혹한 현실들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작품들을 읽다보면 등장인물들이 열한편에 모두 등장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웬지 앞작품에서 나왔던 인물과 사건인것 같아 혼란스러움에 되돌아 다시 읽게 된다. 연계성은 없는데도 열한편이 옴니버스처럼 연결된 느낌이 들었다.
열한편 모두 인물들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자연의 세밀한 풍광 묘사는 감탄사가 부족할 정도로 뛰어났다. 유난히도 은유적이고 의인화적인 표현들이 많아서 문장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섬세한 표현들때문에 더 많이 등장인물들의 상황에 공감할 수 있었고 작품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좀 더 희망적인 이야기들이었다면 즐기면서 읽을 수 있었을텐데..주제가 너무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들이라 아쉬움이 많이 남은 작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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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집은 앞서 읽었던 [종소리]보다 훠월씬 가라앉는 느낌입니다. 처음부터 이런 분위기일 것이라 각오(?)는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작품들의 폭이 [종소리]에 비해 그리 크지 않다고 할까요. [종소리]에는 직장을 그만 둔 남편의 곁을 지키는 부인의 모습이 있었고 갑자기 모습을 감춰버린 악어를 기르던 다방 여인과 피부관리사도 있었으며, 새로 이사 들어올 사람을 위해 자신이 그 집에서 겪었던 기이한 일들을 적은 편지와 독경을 남겨둔 여자도 있었죠. 시골집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연민을 느끼는 처자도 있었고요. [종소리]에 실린 작품들도 발랄한 축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겨울 우화]에 실린 이야기들은, 뭐랄까, 제각각 다른 이야기임에도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등장인물들의 심리에 별반 차이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아, 그건 미처 몰랐어요. 내가 배반하는 거라고만......독특한 배반요. 우린 정말 닮았군요. 오, 당신도 끔찍했겠어요. 이제야 맘 놓고 위로하고 싶어요......그럼 지금 상태도 나와 마찬가지예요? 슬프지도......괴롭지도 않고.......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뜻도 없고......현기증 같은 나날......죽을 때까지 삶의 외곽으로만 공기처럼 부유할 거란 생각......가슴으로 사는 날은 없겠고......머리로만 살게 될 것 같은......징그러운 막막함.......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면 등장인물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막막함, 자신의 존재의 필요성 등을 끊임없이 묻고 찾아내려 한다는 거죠. 그것을 누군가는 사라져버린 옛 애인이 자신을 찾는 것이 진정 자신을 사랑해서,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한 사건에서, 또 누군가는 친구의 죽음으로 동일한 질문들을 되뇌고 있습니다. 그것을 직접적으로 내보이고 있는 작품이 바로 저 인용한 대사가 나와 있는 <조용한 비명>이라고 생각해요. 작가가 다른 작품에서는 상징적으로, 간접적으로 내세우고 싶었던 것을 <조용한 비명>에서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형태로 만들어버린 거죠.
전체적으로 읽기 쉬거나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는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종소리]에서는 작품의 해설을 어떻게 하든 상관없이 나름대로 작품을 해석할 수 있었고 내 안에서 나만의 이야기로 만드는 일이 어렵지 않았는데 [겨울 우화]에 실린 이야기들은 반대로 그러기가 쉽지 않았어요. 우리는 모두 자신의 존재와 삶에 대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지만 그것을 깨닫고 질문을 던지는 방식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실제로 이야기들을 읽어나가면서 '혹시 이것은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작가 본인의 경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표현하는 내용과 방식이 굉장히 촘촘하다고 느꼈거든요. 자신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우울-같은 감정이었다고 할까요.
작품집 맨 마지막에는 '현대적 실존과의 접촉'이라는 제목으로 작품에 대한 해설이 실려있는데요, 저는 일부러 읽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들은 아마도 두고두고 읽게 되지 않을까 라는 예감이 듭니다.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호기심을 부르는 세상이었거든요. 덧. 신경숙 작가를 처음 알게 해 준 작품 [외딴방]과 동일한 제목의 작품이 실려있습니다. |